- 목 차 -Ⅰ.머리말Ⅱ.본 문1.운하란 무엇인가?2.한반도 대운하에 관하여a. 주요 노선b. 경부운하c. 경인운하d. 호남운하e. 북한운하f. 제주운하3. 한반도 대운하의 주요쟁점과 각 진영의 입장Ⅲ. 맺음말(나의 생각)Ⅳ. 참고문헌Ⅰ.머리말최근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그의 대표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가 공약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란 남한에 있는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의 4대강을 중심으로 하여 물길을 연결하여 운하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대운하는 주요 강의 물길을 바뀌고, 국토 지형에 일대 변화가 가져오는 대역사다.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는 이 당선인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이고 공약은 지켜져야 할 국민과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대운하는 고도의 정치적 사안이기도 하다. 또 대운하 건설은 여론의 찬반이 확실히 나뉘어 있는 쟁점이다. 섣불리 밀어붙이면 자칫 국민 분열을 부를 수 있는 민감한 뇌관인 것이다. 그래서 2008년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에게 큰 화두로 다가오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가 무엇이고 어떤 쟁점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본 문1. 운하(運河))란 무엇인가?내륙에 선박의 항행이나 농지의 관개, 배수 또는 용수를 위하여 인공적으로 만든 수로(水路)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교통기관의 일부분으로 보고 있다. 운하의 대부분은 육지를 굴착하여 만드나 매립(埋立)을 할 때 남겨둔 수로, 하천에 손질을 하여 만든 인공수로도 운하라고 부른다. 운하는 기능적으로는 수운용 운하와 관개용 운하로 대별되고, 또 구조적으로는 수에즈운하와 같은 수평운하(水平運河)와 파나마운하와 같은 유문운하(有門運河)로 나뉜다.2. 한반도 대운하에 관하여a. 주요 노선한반도 대운하의 주요 노선은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기본적 으로 북한운하까지 구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남한의 12개 노선 약2,100km와 북한의 5개 노선 약1,000km를 합하여 17개 노선 3,100km에 이르는 방대한 구상을 담고 있 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한 쪽은 경부운하 540km, 호남운 하 378km, 경평운하 104km, 금호운하 113km, 남해운하 220km, 경춘운하 75km, 안동운하 67km, 충청운하 200km, 여평운하 81km, 광평운하 72km, 아산운하 114km, 새만금운 하 135km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북한 쪽 운하로는 평 원운하 379km, 경원운하 267km, 평개운하 206km, 사리원 운하 135km, 청천운하 58km 등이 계획되어 있다.b. 경부운하ㄱ. 공사구간경부운하는 약 212Km의 한강과 약 288Km의 낙동강 사이의 조령산 인근 40Km만 인공수로로 이어 주고 하상이 낮은 일부 구간을 준설하면 합계 540Km의 거대한 종관수로(縱貫水路)가 열리는 것이다. 조령지역을 통과하는 방법을 터널로 할 것인지 스카이라인(Sky Line)으로 할 것인지는 차후 국민들의 여론과 전문가의 견해들을 수렴하여 정해질 예정이다. 터 널 의 경우 2개가 건설되며 45m 높이의 충주 리 프트를 통해 터널로 진입한 후 57m 높이의 문경 리프트를 통해 낙동강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 구 간 통과시간은 약 32시간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이 터널 방법은 갈수기 때 운하 용수공급이 불필 요하고 용지보상비도 들지 않는다. 스카이라인 방법의 경우, 해발 300m의 협곡에 물을 채워 리 프트로 배를 올리고 내려서 통과하게 하는 것으로서 운하의 연장 길이는 101Km가 되며, 80m높이의 리프트 5개, 갑문 4개가 설치된다.ㄴ. 시설경부운하에는 한강구간에 6개의 갑문과 1개의 수중보를 설치하고 2개의 화물터미널, 14개의 여객터미널, 5개의 복합(화물+여객)터미널 도합 21개의 터미널을 두며, 낙동강 구간에는 6개의 갑문에 1개의 화물터미널, 19개의 여객터미널, 6개의 복합터미널 도합 26개의 터미널을 설치하며 요소요소에 문화, 관광, 스포츠, 레저시설도 건립되어 우리의 생활을 한결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앞으로 운하를 운항할 배의 크기와 높이에 따라 일부의 다리도 철거 혹은 개보수를 해야 한다.ㄷ. 공사비공사비는 조령산 구간이 터널공사일 경우 14.9조원, 스카이라인 공사일 경우 15.8조원이 예상되는데 골재채취랑 약 8.3억 톤의 매각대금 8조원으로 공사비의 56% 정도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민자를 유치하여 국가예산을 쓰지 않고도 건설이 가능하다.ㄹ. 공사기간공사기간은 세계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건축토목기술을 고려할 때 경부운하에 약 4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c. 경인운하한강 하류의 행주대교에서 인천 계양구 계양동 (桂陽洞)과 서구 검암동(黔岩洞)을 거쳐 황해로 연결되는 한국 최초의 운하로 이 운하건설 사업 은 1965년부터 논의를 거듭해왔으나 아직 계획 단계에 있다. 총길이 20.5km, 너비 110m, 깊이 3m의 규모로 건설하되, 행주대교∼계양동 4.2km는 기존 굴포천(掘浦川)을 준설하고 나머지 16.3km는 수로를 뚫어 건설할 예정이다. 이 운하계획은 과거 김포 굴포운하 공사와 관련이 깊다. 당시 조운(漕運)항로는 염하(鹽河)를 거쳐 서울의 마포 경창(京倉)으로 들어오는 항로였으며, 염하는 만조 때만 운항이 가능하였고, 특히 손돌목 부근(강화군 불은면 광성리 해안)은 뱃길이 매우 험하였다. 그리하여 지금의 인천 서구 가좌동(佳佐洞) 부근의 해안에서 원통현(圓通峴:일명 원통이 고개, 인천 남구 간석동)과 지금의 굴포천을 거쳐 한강을 직접 연결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러한 시도는 고려시대의 고종 때와 조선 중기의 중종 때 각각 있었지만, 원통현을 뚫지 못해 실패하였다. 지금의 굴포천은 그 때 판 도랑이다. 경인운하가 건설되면 소형선박이나 바지선(barge)을 이용하여 화물을 직접 서울로 운반하여, 인천항의 화물적체현상을 대폭 줄일 수 있고 동시에 포화상태에 이른 경인고속도로의 화물수송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다. 또한 영종도 신 국제공항과 서울 간의 새로운 교통로 역할을 함으로써 서울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다. 이 외에도 관광자원 효과, 한강 하류 수해방지 효과도 가진다.d.호남운하ㄱ. 공사구간 및 시설1999년에 전남 나주에 들어섰던 스웨덴의 상 용차 회사인 스카이나 코리아가 3년 후 공장 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려다가 년간 물류비가 5 억원이 절감된다는 이유 때문에 항구도시인 경남 사천으로 이전을 했다. 영산강의 뱃길이 열려 광주나 나주가 내륙 항구가 된다면 그런 비극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광주의 기아 자 동차가 하루에 목포 신항으로 차를 600대 씩 실어 나르기 위해서 현재는 운반트럭으로 한 차에 5대씩 120번을 목포까지 싣고 가서 상하차를 해야 하는데 운하가 열리면 2,500톤급 화물선 하나에 선적해서 바로 외국으로 나감으로써 연간 물류비를 90억원이나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호남운하(영산강운하)는 낙동강 하구에서 낙동강 본류구간으로 할 것인지 서 낙동강 구간으로 할 것이지 아직 정해지지 않아 숙제로 남겨져 있는데 경부운하와 달리 영산강을 물길 복원의 개념으로 준설하기만 하면 바로 운하가 만들어 지므로 공사기간도 짧고 비용도 적게 드는데 단지 영산강은 농업용수로도 사용하지 못하는 5급수이기 때문에 차제에 오염원을 철저히 차단하는 등 수질관리 시설도 병행되어야만 한다. 호남운하의 1차구간은 83.6Km로서 4개의 갑문과 여객부두를 포함한 4개의 부두, 8개의 다리가 만들어진다.ㄴ. 공사기간 및 공사비호남운하는 경부운하와 동시에 착공하는데 4년 걸리는 경부운하보다 빨리 끝나게 되어 2,5 ∼ 3년이면 끝날 것으로 추정된다. 수로공사에 1조 3천7백억원, 교량공사에 3,640억원이 들어가며, 수질환경개선에 약 2조 2천억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e. 북한운하한반도대운하의 주요 노선은 통일시대를 대비하 여 북한운하까지 기본적으로 구상되어 있다. 북한 의 5개 노선 약 1,000km, 합하여 17개 노선 3,100km에 이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평원운하 379km, 경원운하 267km, 평개운하 206km, 사리 원운하 135km, 청천운하 58km 등이 계획되어 있 다.f. 제주운하남북 17개 노선에 3,100Km를 구상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가 건설되면 홍해와 지중해를 이어주는 수에즈운하와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운하와 같은 바다와 바다를 연결하는 운하 즉 연해(連海)운하, 해양운하, 지협운하, 연양운하를 제주도에 건설할 수 있다. 이는 육지와 제주를 연결하는 새로운 도전이다. 인간 환경 지식중심의 쾌적하고 풍요로운 제주구현과 제주국제자유도시 건설을 목표로 하는 제주비전 2011은 한반도 대운하와 함께 신 제주 건설의 모태가 될 것이다.3. 한반도 대운하의 주요쟁점과 각 진영의 입장찬성한반도 대운하를 둘러싼 쟁점반대2011년 경부축 컨테이너 물동량의 14%, 2020년까지 22%를 운하가 담당물류개선경부 축 물류구조상 육상운송, 항공운송으로 충분, 물동량 전환효과 거의 없을 것운하건설 기간동안 통해 최소 30만, 최대 70만명 고용 늘고 건설 이후에도 다양한 일자리 파생고용창출연간 7만 명 수준에 불과하며 건설기간에만 존재하는 불완전한 고용일 뿐15조원소요비용15조원에는 생태계 파괴비용, 유지관리비용 등 누락8억㎥의 준설골재 판매로 60%,나머지는 민자 유치로 충당, 국민세금 불필요재원조달실재 골재 채취량 1.6㎥에 불과하고 민자사업 잘못되면 비용보전에 국민혈세 투입 불가피통상 24시간, 길어도 36시간 이하운항시간갑문통과 등으로 60시간 이상강바닥이 깊어져 저수 공간이 늘어나므로 홍수 발생 줄어 들 것홍수통제강수량 계절 편차 심한 한국 기후 특성상 홍수 일상화 r될 가능성한반도 생태계 복원효과환경생태
목 차1. 서론한니발과 스키피오에 대한 소개2. 본론A. 카르타고와 로마의 성장과 충돌B. 한니발의 로마진격C. 위기의 로마D. 영웅 스키피오E.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불행한 최후F. 제3차 포에니 전쟁과 카르타고의 멸망3. 결론(나의 생각)1.서론(한니발과 스키피오)포에니 전쟁하면 떠오르는 장군이 한니발과 스키피오일 것이다. 이 두 장군은 카르타고와 로마의 명운을 걸고 포에니 전쟁에서 맞선 인물들이다. 그런데 스키피오는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그 평가가 라이벌 한니발 때문에 늘 가리워진 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포에니전쟁에 대해서 알아보고 한니발과 스키피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1.한니발카르타고 장군·정치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에스파냐 로 건너갔고, BC 221년 장군으로 선출되었다. BC 219년 봄 로마의 동맹시(同盟市) 사군툼을 공격하여 이를 함락시 켰고,이듬해 제2차포에니전쟁(한니발전쟁이라고도 한다) 을 일으켰다. 에스파냐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남프랑스를 점령한 뒤 눈에 덮인 알프스를 넘어 북이탈리아로 침입하 여 트레비아강변·트라시메누스 호반 전투를 비롯하여 이탈 리아 각지에서 로마군을 크게 무찔렀다. 특히 BC 216년 칸나에 전투에서는 천재적인 용병술을 발휘하여 전사상 손 꼽히는 대섬멸전을 전개하였으며 한때는 수도 로마까지 육 박하여 들어갔다. 그러나 지구전으로 끌려들어갔기 때문에 전선은 점차 교착상태에 빠졌고 그 뒤 이탈리아반도 남쪽 끝에서 전투를 계속하였다. BC 203년 본국으로 소환되고, 아프리카에서 싸웠는데 BC 202년 자마의 결전에서 대(大)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군에게 패하여 제2차포에니전쟁은 카르타고의 패배로 끝났다. 그 뒤 로마·카르타고 사이에 평화조약이 체결된 뒤에도 장군직을 유지하였으며, BC 196년 행정상의 장관으로 뽑혀 재정개혁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적인 국제(國制) 변혁을 이룩하였다. 로마에 대해 보복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나, 친로마파의 책동과 로마의 간섭으로 카르타고에계속 약탈하는 한니발을 제쳐놓고 카르타고 본토의 직접 공격을 주장하며, 원로원 수석 Q.M.V. 파비우스를 비롯한 원로원 내부의 반대를 누르고 아프리카로 진군하였다. 본국으로 소환된 한니발을 BC 202년 자마의 싸움에서 무찔렀으며, 로마의 승리로 전쟁을 종결시켜 <아프리카누스>라는 칭호를 얻었다. 제2차마케도니아전쟁이 시작되자 BC 199년 원로원 수석에 지명되었으며, 이후 헬레니즘세계로 진출을 개시한 로마국가의 최고 지도자로 활동했다. 특히 로마와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와의 싸움에서는 BC 190년에 집정관이며 군총사령관이 된 동생 루키우스 스키피오의 부관으로 소아시아로 건너가 로마의 승리에 공헌했다.2.본론A.카르타고와 로마의 성장과 충돌카르타고는 기원전 8세기 페니키아인이 북아프리카 튀니스 만에 건설한 도시국가이다. 카르타고라는 이름은 고대 로마인들이 부른 것으로서 페니키아어로는 콰르트하다쉬트(새로운 도시)이며 그리스인은 칼케돈이라 불렀다. 로마는 카르타고인들을 페니키아인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포에니라고 불렀다. 당시의 북아프리카는 토양이 매우 비옥하여 농업이 발달하였으나 카르타고는 지중해 통상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해상 무역에도 주력하여 부를 축적했다. 카르타고는 로마와 비슷한 공화정을 채택하였지만 군대 편제는 시민병 중심의 로마와 달리 누미디아의 기병, 스파르타의 보병과 북아프리카 일대의 종족, 그리스인까지도 낀 용병대가 주축이 되었다. 기원전 6세기 무렵 카르타고는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코르시카, 사르데냐, 에스파냐 등지에도 진출하여 식민도시를 건설하였으며 서지중해에서 최대의 세력을 떨치는 강대한 국가로 성장했다. 카르타고는 계속해서 서방을 향하여 판도를 넓혀 갔으며 시칠리아 섬을 놓고 약 300년 동안 그리스인과 충돌을 되풀이했다. 일곱 개의 언덕에서 일어난 로마는 이 무렵 이탈리아 전체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중부 이탈리아에 많은 식민도시를 건설하고,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도시들과 동맹을 맺은 로마는 서서히 이건대로 거액의 배상금을 물고 시칠리아에서 완전히 떠나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다. ?B.한니발의 로마진격400여 년 동안 시칠리아에서 식민지 경영에 종사하던 카르타고가 시칠리아를 로마의 속주로 내주고 심사가 편할 리 없었다. 전쟁 후 용병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에스파냐로 건너가 식민지를 건설한 카르타고의 명장 하밀카르 바르카스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하밀카르 장군은 아홉 살 난 맏아들을 신전으로 데려가 로마를 평생 적으로 삼을 것을 맹세시킨 다음 아들과 함께 에스파냐로 건너갔다. 카르타고의 명문 바르카스 가문에서 태어나 부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로마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온 이 아이가 바로 한니발이다. 그가 18세 되던 해 부친 하밀카르는 죽고 하밀카르의 사위 하스두르발이 통치권을 위임받았다. 하스두르발이 8년간 에스파냐를 통치하다 암살당하자 기원전 221년 이제 26세 된 한니발은 에스파냐의 카르타고군 총사령관직을 이어받았다. 20대의 젊은이였지만 한니발에게는 로마를 멸망시키겠다는 크나큰 야망이 있었다. 그는 에스파냐의 지배를 우선 공고히 해 놓고 여러 부족을 평정한 뒤 기원전 219년 드디어 출병한다. 그가 가장 먼저 공격한 곳은 에브로 강남쪽 에스파냐의 동해안에 있는 도시 사군툼(사군토)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 사군툼은 로마와 동맹관계에 있어 급히 로마에 도움을 요청했다. 로마는 항의 사절을 보냈지만 한니발은 이를 무시한 채 공격을 계속하여 8개월 만에 사군툼을 함락시켰다. 로마는 사군툼 침공을 로마에 대한 도발행위로 간주하고 카르타고에 전쟁을 선포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시작이었다. 기원전 218년 여름 한니발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쟁준비를 마치고 로마로 향했다. 카르타고 본국과 에스파냐의 수비는 동생 하스두르발에게 위임하고 이미 상당한 병력을 남겨둔 상태였다. 한니발은 해로를 택하지 않고 육로를 택했다. 1차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의 북방 한계로 정했던 에브로 강을 건너 북진한 그는 에스파냐와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의 경계인 피레네 산맥으로 기병이 6천 명 가량이었다. 로마군에 비해 수(數)적으로 열세인데다 에스파냐인, 누미디아인, 리비아인 등 여러 민족의 혼성부대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피레네 산맥을 넘고 갈리아인들과 산발적인 싸움을 치렀으며 론 강을 건너 험준한 알프스 산맥까지 넘은 그들은 연대감이 투철한 역전의 용사들이 되어 있었고 사기가 충천했다.C.위기의 로마기원전 218년 12월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과 로마 군이 최초로 맞붙은 곳은 티치노 강변이었다. 티치노 전투에서 한니발은 승리를 거두고 로마군을 지휘하던 집정관을 거의 사로잡을 뻔했다. 중상을 입은 로마 집정관을 구해낸 용사는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한 집정관의 17세 된 아들이었다. 아버지와 같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라는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장차 한니발과 맞서 조국 로마를 위기에서 구해내게 된다. 그러나 전쟁 초기의 한니발 군대는 금방이라도 로마를 삼킬 기세로 연전연승한다. 이는 전적으로 한니발의 뛰어난 전술 때문이었다. 카르타고 군은 티치노 전투에 이어 벌어진 트레비아 강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기원전 217년 봄에는 이탈리아 중부의 트라시메노 호숫가의 전투에서 로마 군을 거의 전멸시키며 계속 남하를 계속했다. 이 무렵 한니발은 눈병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이제 사흘만 달려가면 다다를 만큼 로마가 지척에 이르렀지만 한니발은 전열을 가다듬고 병사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했다. 고된 행군과 격전으로 병사들이 지칠 대로 지치기도 했지만, 로마 주변에 있는 로마 동맹도시들이 동맹에서 이탈하기를 바라고 기다린 까닭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니발의 기대와 달리 로마의 동맹도시들은 쉽사리 로마를 배신하지 않았다. 기원전 216년 초여름 한니발은 남쪽으로 이동하여 로마의 식량보급기지 가운데 하나였던 칸나에 지역을 공격했다. 한니발의 전술은 여기서도 혁혁한 전과를 올려 로마 군을 거의 섬멸했다. 이 때 19세인 스키피오는 로마 패잔병 가운데 섞여 있었다. 한니발이 이 때 로마를 침공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칸나에 전면서부터 대세는 완전히 역전된다. 에스파냐에서는 로마 군이 그의 지략에 힘입어 몇 차례 승리를 거두었다. 설상가상으로 한니발에게 더 슬픈 소식이 닥쳤다. 기원전 208년에 한니발을 지원하기 위해 3만의 군대를 이끌고 에스파냐를 출발한 그의 동생 하스두르발이 형과 상봉하기도 전에 북부 이탈리아에서 패배하여 목이 잘린 것이다. 로마 군이 카르타고 군 진영에 보낸 꾸러미 속에서 한니발은 11년 만에 상봉하는 동생의 얼굴을 보았다. 스키피오는 에스파냐를 제압하고 로마에 개선하였다가 시칠리아에 부임한 뒤 다시 아프리카로 건너가 카르타고 본국을 공격했다. 카르타고는 속수무책으로 패배하고 로마의 한니발을 불러들였다. 한니발은 로마의 멸망이라는 필생의 꿈을 뒤로 하고 본국으로 귀환해야 했다. 스키피오의 로마 군과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은 자마 전투에서 최후의 격전을 벌였으나 한니발의 전술을 응용한 스키피오의 책략으로 로마 군이 압승을 거두었다. 이 때 스키피오는 아프리카의 정복자의 의미인 아프리카누스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얻는다. 자마 전투로 카르타고는 로마와 강화조약을 맺었다. 카르타고는 20척 이하의 배만 남겨두고 로마에 양도했으며 북아프리카 외 모든 영토를 잃고 50년 동안 배상금 1만 탈렌트를 로마에 분할하여 갚아야 했다. 로마의 승인없이는 아프리카 안팎을 불문하고 전쟁할 수 없다는 조항도 있었다. 이 조항은 나중에 카르타고 멸망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양국의 강화 사절 대표는 한니발과 스키피오 두 사람이었다.E.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불행한 최후패전 후에도 로마를 멸망시키겠다는 한니발의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한니발은 카르타고 중흥을 위해 내정에 힘쓰다가 정적들의 압력이 강해지자 기원전 195년 에페소스로 망명했다. 에페소스에 궁전을 둔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는 야심가로서 로마와 전쟁을 준비중이었으므로 한니발을 환대했다.?기원전 191년 안티오코스 3세는 해전의 경험이 전무한 한니발에게 해군의 지휘를 맡기고 자신은 육지전을 맡았지만 결과는 둘 다 패배였다. 스키피오다.
일본의 역사왜곡문제 - 교과서 문제와 자유주의 사관목차들어가는 말 2Ⅰ. 자유주의사관에 대해서 31. 자유주의사관의 등장배경2. 자유주의사관이란3. 자유주의사관 주장자 및 단체의 활동4. 자유주의사관과 위안부문제5. 자유주의사관과 남경대학살문제6. 자유주의사관의 허점Ⅱ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주요인물 101. 후지오카 노부가츠(藤岡信勝)2. 니시오 간지(西尾幹二)3. 사카모토 다카오(坂本多加雄)4.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よしのり)5.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Ⅲ. 일본의 역사왜곡 -전개과정 17Ⅳ. 일본의 역사왜곡 - 교과서 문제 191. 일제 강점기2. 개화기3. 조선시대4. 고대사5. 수정 요구 후 바로잡혀진 사례6. 기존 7종 교과서의 내용과 수정 요구 의견Ⅴ. 역사왜곡에 대한 반응 331. 일본 사회의 양심2. 한국의 대응3. 북한과 주변국의 반응4. 2001년 이후 역사왜곡교과서 문제에 대한 국내 기사 모음맺는 말 64참고문헌 65들어가는 말요즘 아시아에서는 역사왜곡이 한창 유행이다. 중국은 서북공정으로 티벳을 중국 역사에 편입시킨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동북공정에 주력해 고구려, 발해, 백제 등을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한반도 침탈에 대해 정당한 행위라 규정하며, 위안부 동원을 비롯한 일제가 자행한 가혹 행위들을 일체 부인하고 있다. 역사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기록은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다. 이 점을 악용해 일부 국가들은 의도적이고도 전략적인 역사왜곡을 감행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유포하거나, 교과서에 싣는 방법으로 왜곡에 쐐기까지 박고 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사안에 대해 이들은 어떤 목적으로 국제 사회의 비난까지 감수하며 파렴치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들의 역사왜곡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 인식의 방법론에서 드러나는 오류 역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국가는 국익추구라는 명분하에 대담하게 이기적인 행태를 취하곤 한다. 이는 국가의 실리가 좌우되는 무역 협정에서 흔히 것을 요구할 수 있고 일본은 결과적으로 도덕적으로도 우위의 위치를 가질 수 있다.☞이 주장은 당시 언론의 호응을 얻지 못함.「애매한 도덕가이어서는 안된다」「우선 공리주의자가 되라」라는 탄잔의 말을 인용→ 식민지 영유의 비도덕성으로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었다고 후지오카는 말함. 즉 탄잔이 주장한 식민지 포기를 후지오카는 매우 자유주의적인 것으로 극찬, 받아들임. 자기 자신 또한 그러한 자유주의적 관점에 서있다고 함. 그렇기 때문에 탄잔의 이러한 주장은 자신들에게 참고가 되며 매우 중요하다고 함.♣탄잔의 영향을 받은 후지오카가 주장하는 것.→우리는 일본인이기 때문에 자국(일본)의 생존권과 국익추구의 권리를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다른 나라도 또한 똑같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쟁점들에 대해서는 상대국의 입장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즉 국익 추구 권리는 모든 국가에 있기 때문에 상대국의 국익추구의 권리 인정은 당연-바로 이것이 자유주의적 입장! (←형식상으론 상대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일본의 국익을 고찰할 것을 강조. 그러나 실제로 그가 그런 입장을 고수, 행동하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군대 위안부 문제, 남경 대학살 등에 관한 기술을 삭제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상대국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국익 추구는 뒷전이고 오로지 일본의 이익만 절대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쌍방의 시점에서 생각, 시점을 이동시켜 보며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이런 사고방식을 전전(戰前)에 실행한 언론인, 자신이 큰 감명을 받았다는 탄잔이 내세운 식민지 포기론.→일본은 식민지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지 못한 상태였고 만주를 유지키 위해 미국과 대립하게 됨. 전전 미국은 일본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었기 때문에 어떤 이익도 되지 않는 식민지를 위해 미국과 대립하는 것은 계산에 맞지 않다라고 주장.→이러한 역사관이 지금까지의 역사교육에서 확실히 표명된 적은 없다고 함. 탄잔과 같은 전전(戰前) 「자유주의자」라고 불려진 원칙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을 지배, 수탈하여 얻게 되는 경제?정치적 이득과 침략 의도를 철저히 은폐하고 자국의 논리를 합리화한 서술이며 자국의 안정을 위해서는 이웃 나라 민중들이 느꼈던 아픔이 무엇이든지간에 식민화할 수 있다는 군국주의적 발상의 역사 서술이다.②2005년 검정 합격본 - 일본정부는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 권익을 방위하기위해 한국의 병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10년 일본은 무력을 배경으로 한국내의 반대를 억누르고 병합을 단행했다. 구미열강은 영국의 인도,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미국의 필리핀, 러시아의 외몽고 등, 자국 식민지지배를 일본이 인정하는 대가로, 일본의 한국병합을 인정했다.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얼마나 격렬한 한일 투쟁이 전개되었느냐에 대한 언급 빠져있다. 러일전쟁은 프랑스의 자원을 받은 러시아와, 영국과는 동맹, 미국과는 밀약을 맺고 있었던 일본을 둘러싸고 벌어진 대리전 양상을 띠었는데 러시아가 패했고 러시아와 프랑스가 외몽고와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하고 있어, 러일전쟁에서 패망하였기 때문에 포츠머스 조약(한국에 있어서의 일본의 우월권을 승인함)에 의거하여 어찌할 수 없이 일본의 한국 지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를 마치 세계열강의 승인을 얻은 것처럼 서술하였다.2)한국 병합 후 조선 총독부가 근대화에 노력하였다.●후소샤 교과서의 왜곡 내용①2001년판 - 한국 병합 수 일본은 식민지가 된 조선에 철도?관개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개발을 하고, 토지조사를 개시하였다.②2005년 검정 합격본 - 한국병합 후 설치된 조선총독부는 철도?관개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개발을 하고, 토지조사를 개시하여 근대화에 노력하였다.근대화지상주의(근대만 달성되었다면 그것이 식민지 수탈의 일환이든, 이민족 통치에 의해서건 상관없다는 태도)에 입각한 서술임에 분명하다. 철도는 일본이 기획한 조선 침략정책의 핵심이었고 1904년 5월 일본 정부가 작성한 ‘대한 시설 강령’에는 ‘교통기관을 장악할 것’, ‘ 철도사업은 조선 경영의 골자’라는 내용과 한 것처럼 보임. 이미 백제는 나당 연합군에게 멸망당한 후였기 때문에 백제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표현은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음.7) 연표 문제① 백제와 신라의 건국이 서기 300이후로 기록되어 있음. ‘삼국사기’의 연대에 의하면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백제는 57년, 신라는 18년에 건국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② 조선 시대에는 ‘이씨’를 표시해 놓았음. 일본에게 멸망한 조선을 ‘이씨조선’으로 격하시키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붙인 것이다.③ 1948년 정부 수립 이전 시기를 한국 부분만 ‘미소 점령’이라고 기록해 두었다.5. 수정 요구 후 바로잡혀진 사례1) 고구려가 일본에 접근하고 백제와 신라가 조공을 하였다?2001년판 - 570년 이후가 되면 동아이사 일대에 그때까지의 제국의 동향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새로운 사태가 발생하였다. 고구려가 갑자기 야마토 조정에 접근하였고, 이어 신라와 백제가 일본에 조공하였다.2005년 검정합격본 - 삭제2) 조선은 문관이 지배하는 국가이다?2001년판- 일본은 에도 시대를 통하여 무가 사회라는 측면에 있어서 열강의 무렵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서양문명을 배우는 자세로 정책을 전환하였으나, 중국, 조선 양국은 문관이 지배하는 국가였으므로 열강의 위협에 대해 충분히 대응할 수 없었다는 생각도 있다.2005년 검정 합격본 - 그런 반면에 일본은 에도시대를 통하여 국민의 교육수준이 높고, 무사에게는 책임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열강의 군사적 위협에 민감히 반응했다.3) 동학당이 한 때 한성까지 도달할 정도였다?2001년판 - 1894년 조선 남부에 동학의 난이라고 불리는 농민폭동이 일어났다. 한 때는 수도 한성에 육박하는 기세를 보였다.2005년 검정 합격본 - 조선 남부에 갑오농민전쟁이라고 불리는 폭동이 일어났다. 한 때는 조선반도 일부를 제압할 정도였다.4) 일본이 조선을 중립국으로 만들고자 군비를 증강하려 하였다?2001년판 - 일본 정부 가운데는 러시아의 힘이 조선에 미치기 전에 조선을 중립국으로 하는 조약을 각국에 체결하 왜 일어났는가(중략)이번에 7개 출판사가 "자주규제"를 행한 이유로는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만드는 모임" 등 우파에 의한 공격의 영향, 둘째는 광역채택제도 하에서의 교과서채택에 대한 영향, 셋째는 정부·문부성과 정치인의 압력이다. 물론 첫째, 둘째도 무시할 수 없지만 결정적인 것은 세 번째 이유이다. 다시 말하면 이번의 "자주규제"는 교과서회사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부·문부성에 의한 강한 정치적 압력에 의해 강제되었다는 점이다.3) 국제적인 비판과 국민운동의 성과를 준수하는 여론을!일본 역사교과서의 내용은 80년대 중반부터 개선되기 시작하여 90년대에 비로소 식민지지배의 실태나 침략전쟁의 사실, "종군위안부", 남경대학살, 731부대, 강제연행이나 동남아시아의 주민학살 등 가해·전쟁범죄, 나아가 오끼나와 전투의 진실이 대부분의 교과서에 기재되게 되었다. 어린이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게 하기 위하여 전쟁을 가해와 피해, 가담과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학습하는 것이 교과서에서도 겨우 가능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시아제국을 비롯한 국제적인 비판과 32년간 다투었던 이에나가 교과서재판을 비롯한 일본국민의 운동의 성과이다.이러한 오랜 노력에 의한 성과가 우파의 압력과 정부의 정치적 개입으로 인해 허사가 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특히 '종군위안부'에 대해서는 유엔인권위원회가 채택한 쿠라마스와미 보고가, "위안부의 사실을 학교교육에서 가르치도록" 권고하였고 일본정부도 인권위원회에 "역사교과서에 위안부를 기술하고 있다"고 보고해 왔다. 이번의 정부 개입에 의한 기술의 삭제라는 사태는 국제공약을 공공연히 무시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입으로는 전쟁의 반성을 주창하고 있으나 그 정부가 교과서 내용에 정치적으로 개입하여 교과서회사의 '자주규제'라는 체제에 의해 역사적 사실을 교과서로부터 삭제하려는 것은 국내외로부터 비판받아 마땅하며 절대로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2000년 9월 12일 연락회, 어린이와 교과서전국네트 21, 사회한다.
다국적기업들은 이번 한미간 FTA가 자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론이 나도록 하기 위해 막후에서 어떠한 행동을 취했고 이것이 양국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차 례Ⅰ 서 론Ⅱ 본 론1. FTA의 정의와 현황2. 한국의 FTA 체결현황3. 다국적기업이 한-미FTA 체결을 유리 하게 하게 하기 위해 행한 행동4. 한미-FTA의 결과와 다국적기업으로 인하여 양국에 끼칠 영향Ⅲ 결 론? 참고문헌서 론요즈음 한-미 FTA체결이 성사된데 이어 한-EU FTA협상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우리나라는 칠레와 처음으로 FTA를 체결한데 이어 미국, EU,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과 FTA 협상을 맺으려고 하고 있고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닌 셰계의 대세적인 하나의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FTA를 한 개도 체결하지 않은 국가는 거의 없는 실정이고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해 나가고 있다. 1995년 WTO라는 자유무역협정체제로 세계가 편입되면서 이제는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되고 만 것이다. 세계경제의 중심국가인 미국마저도 우리나라와의 FTA를 비롯해 경제협정을 맺고 경제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WTO라는 다자간 무역체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FTA가 더 확산되고 이용되는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2,3가지를 들어보자면 첫째. 자유무역협정에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던 미국이 90년대 이후 적극적 입장으로 선회하여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의 중심국인 미국의 입장 변화가 상당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다.둘째. WTO라는 다자간 무역체제는 회원국이 너무 많기 때문에 국가간 협상을 타결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급속도로 변화하는 통상환경 속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광범위한 무역자유화 요구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데 있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국가들은 협상이 용이하고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타결이 가능한 자유무역협정을 선호하게 되었다.셋째. 이제 세계경제의 주체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으로 구성된 유럽 강소국간 모임인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과의 협상은 2005년 1월에 개시, 7개월만에 타결되어 2005년 12월에 서명되었다. 이 협정은 상품무역뿐만 아니라, 서비스무역 자유화, 투자확대,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경쟁, 방송서비스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내용으로 하고 있어, 양측간 무역·투자의 확대 및 포괄적인 경제협력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최근에 한-미 FTA가 체결되어 양국의 국회의 비준만을 남겨두고 있다.우리의 제4위 수출시장인 ASEAN 10개국과의 FTA 협상은, 2004년 11월 한-ASEAN 정상회의에서 협상 개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2005년 2월에 협상이 개시되어 2005년 12월 FTA 기본협정 및 분쟁해결제도협정에 서명하였고, 상품자유화 방식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상품자유화 방식의 경우, 수입액 기준 97% 자유화(90%는 관세철폐, 7%는 0~5%까지 관세감축)에 합의하였다. 특히 중국보다 3년이나 늦게 협상을 개시하고도 중국과 동일하게 2010년까지 자유무역지대를 설립에 합의하여 우리 기업의 동남아 시장 선점의 길을 제공하게 되었다. 2006년 상품분야 잔여협상 및 서비스·투자협상이 타결되어 한-ASEAN FTA가 완성되면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장과 동남아시장을 하나로 연결하는 아시아 지역 통합의 허 브(Hub)로 부상하게 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캐나다와는 2005년 1월 및 3월 두차례의 사전협의의 결과를 바탕으로 2005년 7월 양국 통상장관 회담시 FTA 협상 개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2005년 12월 현재 3차례의 협상이 개최되어 상품, 서비스, 투자, 경쟁, 정부조달 등 세부 분야별로 협의가 진행 중에 있다. 멕시코와는 6차례의 공동연구 회의를 마치고, 2005년 9월 양국 정상회의에서 전략적 경제보완협정(Stragetic Economic Complementat미FTA가 없더라도 충분히 관세 등을 피해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GM-대우나, 르노-삼성의 경우에도 GM, 르노 차원에서의 세계적 생산구조조정을 통해 무역장벽을 넘나들어왔다. 이번 협상에 사활을 걸 이유가 없는 셈이다.섬유의 경우는 자동차와 달리 협상의 내용에 따라 상당한 이익을 볼 수 있는 분야다. 섬유 관련 기업들은 꾸준히 정부관계자들을 만나 자신들의 주장을 설명해 왔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이고, 따라서 강력한 로비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섬유산업은 협상 여하에 따라 상당한 이익을 볼 수 있는 분야다.무역구제는 어떨까? 한국의 주력 수출대기업들 삼성, 하이닉스, 포스코등의 다국적 기업들 - 반도체, 철강, 전자 등 - 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여온 분야다. 그러나 여기에는 미국 국내법이라는 철벽이 놓여있었고, 정부 협상단은 이 문제에 대해 사실상 손을 든 상황이었다. 대기업들은 이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기 힘들다’는 데 공감했다 .공격형 이슈들을 점검해 보면 한국의 재계가 왜 한미FTA에 대해 큰 압력을 조성하고 있지 않은가를 알 수 있다. 받을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기대를 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이들의 대체적인 평가였다.국민적 이익이 걸린 ‘수비형’ 의제들에는 △의약품, △농산물, △금융, △서비스 투자 통신, △지적재산권으로 구성된 이들 수비형 의제의 특징은 농산물과 방송분야를 제외하면 특정한 이해당사자가 아닌 국민적 이익이 걸린 분야들이라는 점이다. 이들 분야에서는 누구도 ‘목숨걸고’ 수비를 하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의 이익이 침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지금 천정배 의원 등 구여권 출신의 정치인들이 가장 문제삼고 있는 것이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인데 이 제도는 시행되기 전까지는 그 실상을 알기도 어렵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도 분명치 않다. 간단히 예를 들어 론스타가 한국에서 몇 조를 가져가도 자신의 월급을 론스타에 빼앗겼다고 느끼는 노동자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비스, 지적재산관철시킴에 따라 국내 농민들의 원성을 한몸에 모으기도 했다. 이번 한미FTA에서 미국이 농업부분에 대한 양보를 절대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타이슨 푸드ㆍ카길ㆍ스위프트 등 초국적 육류 독점기업이 로비를 했기 때문이다 카길을 비롯한 농업 분야 다국적기업은 한미 FTA의 체결에 쇠고기 시장 개방이 선결과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회에 로비를 통하여 쇠고기 시장이 재개방되지 않으면 FTA 체결을 할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을 이끌어 냈다. 미국과의 FTA가 시급했던 우리나라로서는 선결과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문제를 미국의 의도대로 체결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카길 등의 다국적기업의 로비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3.론스타(금융)1991년 미국 텍사스주(州) 댈러스에 설립된 폐쇄형 사모펀드이다. 론스타는 텍사스주의 별칭에서 딴 것이다. 미국의 연기금, 사립학교 재단, 유럽계 투자자 등 대형 투자기관이 주요 투자자들이며, 주로 부실채권 정리, 부동산 운용, 구조조정 등에 투자한다.2004년 현재 세계 14개국에 6,000여 건, 180억 달러 규모의 부동산 관련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투자 자산의 75%가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부실채권 정리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투자금융 회사인 골드먼삭스그룹이나 도이체방크 등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노무라증권[野村證券]과 니혼채권은행[日本債券銀行] 등으로부터 5조엔 정도의 채권을 매입하였고, 2002년에는 도쿄쇼와은행(지금의 스타은행)과 타이완[臺灣]의 제일은행을 인수하였다.한국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로부터 5000억 원 이상의 부실채권을 사들이면서 진출하였다. 이후 계속 투자를 확대해 현재 투자규모만도 10조 원을 넘는다. 2001년 6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스타타워, 2002년 한빛여신전문(주), 2003년 4월에 극동건설(주)을 각각 인수한 데 이어, 같은 해 8월에는 한국외환은행(주)을 인수함으로써 한국에서도 은행업을 가스법을 없애라고 요구했다. 이는 단순한 요구조건이 아닌 4대 선결조건중의 하나였다. 이 결과 한국 국민은 한미 FTA를 위해 연간 1조2000억 원의 세금을 걷는 것을 포기하고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더 많이 마셔야만 한다. 결국 미국측이 요구한 이 조건은 받아들여졌고 자동차 분야의 주요 협상 결과는 관세 양허에서는 (양국 모두 대부분 자동차품목을 3년내 철폐),자동차 원산지 규정에서는 미측이 선호하는 순원가법과 우리측이 선호하는 공제법/집적법을 자동차 원산지 계산시 선택적으로 사용하는데 합의한 것이다. 이런 협상 결과에 우리나라의 자동차 다국적기업들은 환영했지만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협상 결과라면서 의회에 한-미 FTA 비준을 거부하도록 로비를 하고 있다.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은 우리나라의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처음에는 조건을 내세웠다가 그 조건이 받아들여지고 자신들의 시장도 많이 개방이 되자 태도를 바꾸어 이번엔 비준을 거부하도록 의회에 로비를 하고 잇는데 이는 강력한 로비단체인 전미자동차협회를 통하고 있다. 이 로비단체는 막강한 로비력을 사용하여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4한미-FTA의 결과와 다국적기업으로 인하여 양국에 끼칠 영향)한-미 FTA는 미국측이 처음부터 내세운 4대 선결과제를 내세움에 따라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 4대 선결 조건은 스크린쿼터 축소, 약값 재평가 중단, 광우병 쇠고기 수입,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기준 완화 등 한미FTA 개시 선언 이전에 폭력적으로 해결된 한미 통상 무역 과제들을 말한다. 이 4대 선결과제가 먼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FTA협상을 진행 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는데 여기에는 해당되는 분야의 다국적기업들의 의회나 정부에 대한 로비의 힘이 컸다. 이처럼 다국적기업들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FTA가 비준되고 발효되기까지의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 이번 한-미 FTA의 결과를 분야별로 간단히 알아보고 다국적 기업들로 인하여 어떤 했다.
차 례Ⅰ 서 론Ⅱ 본 론1. 화폐의 정의와 우리나라의 화폐 현황2. 외국의 고액권 화폐와의 비교3. 우리나라 고액권 발행의 필요성4.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고액권 발행과 리디노미네이션의 비교)5. 외국의 화폐개혁 사례(EU,터키)Ⅲ 결 론? 참고문헌서 론1973년 1만원 화폐가 도입된 이후 34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는 국민소득은 400달러에서 2만달러 가까이로, 약 50배 급증했고 수출입 물량기준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러한 경제규모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30여년 동안 고액권 지폐는 1만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는 OECD 30개국의 최고액권이 평균 18만원대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것이다. 또한 세계 공용 통화인 미 달러화를 기준으로 상대적 가치가 4자리수인 통화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점에서 일각에서는 고액권 발행과 함께 한발 더 나아가 디노미네이션을 주장한다. 이미 상품권이나 수표로 10만원권이 통용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10만원 고액권 발행을 늦추는 것은 결국 경제적으로 많은 경제적 부담과 함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에서이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고액권 발행이 정치, 경제적인 부패와 부조리가 만연한 현재의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많다. 또한 신용카드가 활성화되고, 수표 및 상품권이 사용되는 상황에 굳이 10만원 이상의 고액권을 발행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계자료를 보면, 수표 발행과 관리 및 유통에 한해 평균 7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하고 있고, 가장 널리 쓰이는 10만원권 자기앞수표의 경우 평균 유통기간이 8일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비용과 국민경제의 확대에 따라, 고액권 발행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과연 이러한 고액권 발행이 꼭 필요하며, 현 시기가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힘든 상황이다.이런 논쟁 속에서 마침내 정부는 5만원권과, 10만원권의 고액권을 2009년도에 발행하겠다고 했고 리 GDP나 1년 정부 예산을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1만원권 최고액권은 경제운용을 위한 규모면에서도 너무 작다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OECD 국가중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보다 뒤처지는 나라들도 1만원짜리 보다 훨씬 큰 가치를 지닌 고액권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현재 고액권 발행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 할것이다. 일례로, 1인당 GDP가 한국보다 떨어지는 체코의 최고액권은 약 19만원이고, 한국의 2/3 수준인 멕시코나 폴란드의 최고액권은 5~6만원 정도이다.3우리나라의 고액권 발행의 필요성)(1) 경제규모우리나라는 70년대 국가 주도의 개발기간을 지나 80?90년대 아시아의 용으로 성장하면서 발전을 거듭해왔다. 아래의 최근의 표는 90년대 중반부터의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80년대 중반에 국내 총생산이 100조원을 돌파했었는데 2006년에는 6800억달러(600조원)를 넘어섰다. 15년만에 국내 총생산은 6배 증가했고 국민소득도 80년대 중반에 2500불이었는데 2006년에 18000불로 7배가 증가했다.GDP(經常)GNI(經常)1인당GNI(經常)經濟成長率1?(%)GDP디플레이터(%)억원억달러억원억달러천원달러GDPGNI상승률지수19974,911,3485,1644,884,5745,13610,62911,1764.7-2.793.919984,841,0283,4614,762,4543,40410,2897,355△6.9△8.3△8.399.419995,294,9964,4525,233,5534,40011,2279,4389.59.4△0.199.320005,786,6455,1185,761,6005,09612,25710,8418.55.50.7100.020016,221,2274,8206,210,2794,81113,11510,1603.82.83.5103.520026,842,6355,4696,850,6905,47514,38811,4997.07.02.8106.520037,246,7496,0807,254,2036,0 하겠다.③ 유통비용의 문제자기앞수표는 은행이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 조폐공사에서 받아 각 지점에 나누어준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은 용역회사를 동원해 수표를 받아와야 하고 다시 다른 용역회사를 통해 지점에 나누어 준다. 또한 은행은 회수돼온 수표를 최소 3년이상 동안 마이크로 필름에 담아 보관한 뒤 폐기 처분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부대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1만원권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은 결국 수표 유통의 문제점으로 전가되고 있는 셈이다.④ 사회적 비용의 문제10만원권 자기앞 수표가 사실상 10만원권 고액권의 역할을 함으로해서 생기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10만원권 자기앞 수표를 사용하는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자영업자들은 10만원권 수표의 사용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은행에서는 지방에서 발행된 수표에 대해서는 추가로 추심 수수료까지 요구하거나, 아예 받지 않고 있다. 10만원권 자기앞 수표를 발행할때나 그 이상의 고액 수표를 발행할 경우에는 대부분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징수해야 하며 지방 발행 수표의 경우에는 입금시에도 수수료를 지불해야만 입금이 가능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각은행의 단골 고객이나 우량고객에게는 수표와 관련된 수수료등을 면제해주고있기 때문에 이는 곧 은행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이로 인해 결국 이러한 수수료 부담은 다른 고객들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분실과 도난에 따르는 위험도 고스란히 소비자가 져야만 하기 때문에 10만원권 지폐가 없이 자기앞 수표의 유통은 결국 사회적인 비용을 초래하고 있고 더욱 더 증가하고 있는 자기앞 수표의 사용과 함께 그 비용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액권 화폐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4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1)고액권 발행이 미치는 영향①고액권 발행의 장점첫째, 현재 고액권을 대신하고 있는 10만원권 수표 사용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둘째, 1만원권이 등장한지 30년이 넘은 지금 경제규모와 유통의 편익을 위해 발행해야 한 심리가 억제되고 이로 인해 물가가 안정되는 측면을 기대할 수 있을것이라고 한다. 넷째, 지하자금의 양성화를 촉진시킬 수도 있다. 지하자금이 양성화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화폐의 개혁적 성향으로 인해 그러한 소기의 목적을 어느정도는 달성할 수 있을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현재 부동자금이 적게는 300조에서 많게는 600조원대로 추산하고있는 우리의 현실을 볼때 지하에 퇴장한 자금이나 현재 금고에 묵히고 있는 자금들이 양지로 나와 이들 자금이 선순환을 일으키거나 금융기관 혹은 기업으로 흘러들어가 긍정적 작용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②리디노미네이션의 단점첫째, 컴퓨터 시스템 변경비용이 막대하게 소요된다. 단기적으로는 새로운 화폐의 제조와 함께 컴퓨터 시스템을 비롯하여 자동판매기, 장부, 전표, 전자금융 거래기 등의 모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러한 비용은 단기에 지출되어야 하고, 준비가 필요한 만큼 정부 및 기업, 금융기관의 막대한 비용이 따르는 일이다. 새로운 화폐체계와 금융시스템의 정비까지 이루어져야 하는 만큼 범정부차원의 준비와 국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며 이러한 막대한 비용에 대한 소화도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둘째,결과론적으로 물가를 상승시키는 현상을 가져올 것이다. 기본적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이 의도했던 물가안정과 인플레심리 안정은 오히려 우수리단위가격이 절상되면서 결국은 물가를 상승시키는 현상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짧은 기간에 엄청난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게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충분히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측면이다. 셋째, 국민들의 심리적 불안감이 증폭 될 수 있다. 기존 통화의 사용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실수가 잦을 수도 있고, 이로인한 국민들의 유무형적 손실이 증가한다면 오히려 사회적인 손실과 함께 불안심리가 고조될 가능성마저 있다.5외국의 화폐개혁 사례(1)유로화)① 개관1979년에 만들어진 유럽통화시스템 (EMS: European Monetary Systish Markka5.94573한국EU협회 자료④ 교환규칙첫째, 1997 년 6월 이사회는 회원국 통화와 유로화의 전환비율 및 표기 규정 (반올립 한계)에 관한 규정(Regulation No. 1103/97)을 채택한다.둘째, 전환비율은 1 Euro에 대한 회원각국 통화의 액면가를 표기한다.일반적인 표기는 6자리로 (일례로 Dutch Guilder 2,20371) 전환비율을 표기할 때 생략없이 모두 명기한다.셋째, 회원 각 국의 중앙은행은 2002년 1월 유로화 지폐가 정식 통용되기전에 유로화와 자국 통화의 교환을 시행해야한다.⑤ 유로화 출범 후 유럽경제2002년 1월 유로화를 도입할 당시 EU회원국들은 통화가치를 통일시킴에 따라 자국의 통화가치 하락과 물가상승 등을 심각히 우려했다. 유로화 출범을 통해 이탈리아의 화폐가치1936.27대 1로떨어졌고 그리스는 340.75대 1, 포르투갈은 200.48대 1, 스페인은 166.386대 1등 대대적인 화폐 평가절하가 이뤄졌다. 하지만 화폐가치가 2000분의 1가까이 절하된 이탈리아의 경우 물가가 첫 달에만 0.2%포인트가 올랐을 뿐 우려했던 물가불안은 없었다. 상품가격을 구권기준과 신권기준으로 이중 표기해 유통업체가 함부로 물가를 올리지 못하도록 경제장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2) 터키의 화폐개혁① 개관)터키는 2005년 1월 1일자로 화폐단위를 100만분의 1로 쪼개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즉 지폐의 도안은 똑같고 첫 숫자 뒤의 '0' 이 6개 잘려 나가는 것이다. 터키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신문 한 부에 30만리라, 담배 한 갑은 350만리라에 팔렸다. 화폐로서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화폐개혁 후 현재 1달러에 1.3리라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원화가 달러화에 대해 1000대1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화폐단위로만 본다면 터키는 한국보다 훨씬 선진국이다2천만 터키리라가 20 new터키리라로 바뀌었다.터키중앙은행은 고액권 2종을 추가하여, 터키의 최고액권은 100new리라가 되었다. 리디노미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