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진정한 승리자 인가?- ?임진왜란은 우리가 이긴 전쟁이었다?을 읽고 -목 차1. 들어가며2. 책의 주요 논지3. 배울 점4. 조선이 승리한 요인5. 생각할 점6. 맺으며1. 들어가며중고교 시절에 국사책과 담 쌓지 않는 이상, ‘임진왜란’ 하면 누구나 이순신 장군을 떠올린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기며 전사하신 민족의 영웅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임진왜란이란 7년 전쟁 동안 왜군은 전쟁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회군했고, 이것은 노량해전에서 일본 함선 500여척과 접전해 200여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고 있던 가운데 적의 흉탄을 맞고 선상에서 돌아가신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이 있었기 때문이라 여긴다.그렇다면 조선 수군의 무적신화는 이순신 한 사람의 영웅과 거북선 몇 척으로 이룬 것일까? 조선의 관군과 의병들은 칼과 활, 낫과 괭이로 일본군의 조총과 맞선 것일까? 과연 조총은 막강한 살상력을 가진 절대적 무기였을까?명나라는 동맹국인 조선의 안위를 근심하여 출병하였고 일본을 몰아내는데 적극적으로 나선 우리의 고마우신 분인가? 그리고 임진왜란은 조선의 패배인가, 승리인가?이런 의문을 풀기위해 나는 ‘임진왜란은 우리가 이긴 전쟁 이었다’를 읽고자 한다.2. 책의 주요논지1592년 임진년, 일본의 침략으로 막이 오른 7년간의 전쟁. 조선과 일본, 명나라 3국이 혈전을 벌인 대규모 국제전 임진대전쟁은 조선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4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국가간 정규 전쟁이 아닌 ‘왜놈들의 난동’ 쯤으로 치부하면서 숨기고 싶은 치욕스런 민족 수난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기고도 이긴 줄 몰랐던 조·일 7년 전쟁 그 전모와 성격을 규명, ‘임진왜란관’을 명쾌하게 바로 세웠다. 이 책은 임진왜란을 새롭게 되짚어봄으로써 그 동안 왜곡되었던 임진왜란의 진실과, 패전으로 기억되고 있는 잘못된 시각을 풍부한 고증을 통해 바로잡아, 진정한 승리의 환호와 민족의 자존을 회복시킨다.이 책의 주제는 명확하다. 바로 제목 그대로 '임진왜란은 우리가 이긴 전쟁 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인들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비난하는데 중심을 둔 나머지, 자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마저 깨닫지 못했고, 여기에 일본을 비하하는 사고가 덧붙여져 전쟁(war)이 아닌 난동(revolt)으로 임진왜란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임진왜란부터 정유재란까지 7년간을 연대기 형식으로 엮고 있어, 임진왜란의 전개과정을 비교적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3. 배울 점최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을 통하여 조선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우선 흥미 있는 임진왜란에 관한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임진왜란에 대한 생각과 편견들을 비판하고 좀더 새로운 각도로 임진왜란에 대해 탐구하였다.우선 임진왜란이 단지 말 그대로 '임진년에 일어난 왜놈들의 난동' 이 아닌 국제전쟁 이었고 또한 그 전쟁에서 조선의 힘으로 승리를 하였다는 것을 주장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 주장에 대해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임진왜란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해왔던 편견과 생각들을 깨려고 노력한 책이다. 임진왜란을 비롯한 조선의 우월함과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움을 새삼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권장한다.확실히 임진왜란(저자의 의도대로라면 ‘임진대전쟁’ 또는 ‘조일전쟁’)은 조선이 승리한 전쟁이라 볼 수 있다. 이 전쟁에서 일본의 목적은 조선을 점령하고 명나라를 넘보는 대륙진출의 거대한 야망에 있었다. 조선은 결과적으로 이를 좌절 시켰으며 국가를 보전하였다. 일본은 2차에 걸쳐 조선을 침공, 대규모 공격을 가했으나 끝내 점령에 실패하였으며 조선은 국토가 폐허로 변하고 엄청난 인명의 희생을 치렀으나 마침내 침공군을 격퇴하고 국가를 보전하는데 성공했다.따라서 조선은 승리하고 일본은 패배한 것이다.그런데 어찌하여 임진왜란하면 막연히 왜군에 패배한 전쟁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사건이 너무 크게 기억돼서 그런 것인가? 아님 모종의 음모가? 우리를 패배자로 조종하려는 일본인들의 역사왜곡인가?당시 조선은 일본을 비하하여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래서 이 전쟁을 국가간의 정규전쟁으로 보지 않고 불법적인 무장집단의 난동으로 보려 한 것이다. 전쟁에는 승리와 패배가 있지만, 난에는 평정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조선의 승리의 환호와 민족의 자존을 잃어버려 왔다. 40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침략한 일본을 꾸짖고, 당시 조선정부의 무능력함과 국방에 소홀히 하고 결국 명에 원군을 요청할 수밖에 없음을 한탄하고 있을 뿐이다.4. 조선이 승리한 요인조선이 일본을 저지한 이유에는 발달된 조선의 과학기술문명, 명나라의 원군, 히데요시의 무리한 원정, 이순신과 의병의 활약 등 다양한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내가 특히 주목하는 요인은 다음과 같다.첫째, 일본군의 보급로 차단이다.일본에 입장에서 전쟁터는 외국영토이기에 전선이 깊어지면 보급로가 길어져 본국으로부터의 병력과 각종 군수 물자의 수송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조선의 중심부로 진격할수록 일본군의 보급로가 길어져야 한다. 이 길어진 보급로를 차단하거나 교란할 수 있다면 일본군에게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둘째, 조선의 혹독한 겨울이다.당시 일본(왜)에는 목화가 전래되기 전이기에 삼베옷 비슷한 것을 입고 왔을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남방에서는 지내던 일본군에게, 조선 북쪽지방의 혹독한 겨울은 몹시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셋째, 일본군의 조총은 실제전투에서 살상력이 큰 무기는 아니었다.이순신은 전쟁 초기에 조총의 사정거리를 눈여겨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조총의 사정거리는 조선군의 화살보다 조금 길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순신은 전투가 벌어졌을 때 함선이 가급적 일본군의 조총 사정거리에 들지 않도록 하며 포격전을 벌였다.5. 생각할 점임진왜란은 패배한 전쟁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일본군은 우리나라의 주요지점 만을 점령했을 뿐이지 전국적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일본은 조선을 완전히 점령치 못했다는 주장에 이를 수 있다. 그 근거로 당시 조선의 군현이 330개였는데, 136개 군현만 왜군의 침입을 받았고 194개 군현은 전혀 적의 침입을 받지 않았음 내세울 수 있다. 그러니까 41.2%만 피해를 입었고, 피해를 입지 않은 군현이 58.8%로 더 많았다는 것이다.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당시의 전쟁은 수도를 비롯한 주요 거점을 점령하는 것이 목표이지, 전국 각지의 군현을 전부 점령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게다가 히데요시의 궁극적 목적은 중국대륙 진출이었으니 굳이 조선의 모든 군현을 점령해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다음으로 전쟁이 끝난 상황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물론 일본의 침략야욕을 저지시키고 국가를 보전한 전쟁이지만, 이 전쟁에 참여한 세 나라 명나라, 조선, 일본 모두 복구하기 힘든 피해를 입었다. 특히 명과 일본은 전쟁이후 정권이 바뀔 정도의 큰 변화를 겪는다.일본에서는 전쟁이후 곧바로 정변이 일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몰락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장악한다. 명나라에서는 전쟁이 끝난 뒤 46년 만에 만주 여진족인 청나라에게 중원을 내주고 멸망했다. 명나라는 전쟁 전부터 이미 조정이 부패했었고 당쟁이 끊이지 않은데다가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때 조선의 출병으로 국력이 극도로 쇠약해져 결국 망한 것이다.
영화 ‘홍등’을 보고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때에 난 ‘홍등’ 을 보았다. 그 시절 영화를 보면서 품었던 궁금한 점을 최근에 다시 보며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의문은 다음과 같다.첫째, 왜 대감의 얼굴은 영화 상영 내내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영화 속 등장인물 중 가장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대감의 얼굴은 보일 듯 하며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가장 강한 권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작용한다는 것을 장예모 감독은 말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중국을 지배하지만 결코 그 실체를 인민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공산당 정부처럼 말이다. 네 명의 아내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절대권력을 가진 사람이 대감이다. 따라서 한 늙은 남자의 초라한 모습을 굳이 등장시키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얼굴을 카메라가 잡아주는 순간, 대감의 신비하고 마를 줄 모르며 샘솟는 권력의 강줄기는, 동네 도랑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이 기법은 다른 영화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기도 한다.둘째, 마지막에 ‘송리안’ 은 진짜 미친 것일까?누벽의 자물쇠 채워진 방으로 끌려간 셋째부인이 살해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본 송리안은, 대감을 살인자라 외치며 절규한다. 그리고 대감을 비롯한 그들은 그녀를 미쳤다고 단정한다.게다가 다섯째 부인이 집에 들어오는 날도 송리안은 헝클어진 머리와 초점 잃은 채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영화 관객으로 하여금 “진짜로 미친 것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을 사실로 믿게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비록 불륜을 저지른 셋째 부인이지만, 시비를 가리지 않고 마음대로 누벽의 자물쇠잠긴 방으로 끌고 가 형벌을 집행해버린 대감의 권력 앞에 송리안은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진실을 감당하고 폭로하기에는 대감에 비해 그녀는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마도 미친 척 하는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셋째, 왜 그토록 발 안마에 집착하는 것일까?안마가 시원하고, 받을 수만 있다면 계속 꾸준히 받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게다가 민감한 부위인 발을 노련한 전문가가 해주는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송리안은 하녀로부터 매일 밤 비단으로 감싼 발을 두드리는 안마를 받는다. 여럿의 애첩들이 벌이는 간정과 시기, 질투, 애증의 극중 스토리와 함께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부호 대감의 씨를 잉태하는 길만이 최고의 선택이었고, 이의 방편으로 대감과의 잠자리를 위해 첩들은 매일 밤 발바닥안마를 즐긴다. 발바닥을 두드리는 ‘다닥다닥’ 소리와 함께 온통 붉은 색채의 내실과 그 주변을 붉게 물들이는 홍등의 처절한 영상이 펼쳐지다. 모든 것이 최상의 상태일 때 쓰는 표현으로 만족(滿足)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즉 이는 발이 편안함을 빗대는 것이다.
영화 ‘인생’을 보고처음 ‘인생’ 이라는 제목에 주목하게 되었다. 어떤 영화 이길래, 인생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았다.한 사람이 인생이 사소한 선택으로 얼마나 크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이다. 도박으로 집을 잃지 않았다면 부귀는 죽었을까? 자고 있는 아들을 억지로 깨워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면 아들은 살았을까? 3일 동안 굶은 왕박사에게 만두를 사주지 않았다면 딸을 살릴 수 있었을까? 지나가버린 과거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지만, 적어도 영화를 재미있게 보게 해주는 것에는 틀림없다. 또한 영화를 보는 내내 무척 불안했다. 영화 ‘인생’은 암울한 중국 현대사 속에서도 상당히 행복해 보이는 한 가정을 지속적으로 보이지만, 그 행복은 매번 큰 장애물을 겪는다.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언제 저 행복을 깨뜨릴 불행한 사건이 터질지 모르기에 불안했던 것이다.전체적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이다. 인생이라는 것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여서 오히려 몰입할 수 있었다. 중국의 공산화와 그 이후의 격동의 세월을 보내는 한 평범한 가족의 인생을 그리고 있다. 진지하게 고민해볼 겨를도 없이 주변의 변화에 적응해가는 아주 현실적인 삶을 그린 영화였다. 큰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는 작은 개개인이 겪어야 했던 질곡과 슬픔도 서려 있다. 역사의 큰 수레바퀴가 조그만 개인을 원치 않은 방향으로 몰아가기도 했으며, 때로는 그 수레바퀴 밑에 깔려 비운을 맛보게 하기도 했다.부귀와 그의 처는 이러한 역사의 굴레에서 이탈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다 써 보지만, 인생은 부조리했다. 노름으로 빈털터리가 되고, 딸이 벙어리가 되고, 전쟁에 잡혀 나가 죽을 뻔하고, 외아들이 죽고, 벙어리 딸이 아기를 났다가 죽는 등 부귀의 인생은 이름과는 전혀 반대로 비천하며 슬프기까지 하다. 커다란 역사의 흐름과 자그마한 한 가족사가 병치되었다. 하나로 일치될 수 없는, 그러나 격동의 세월로부터 독립적일 수도 없는 한 가족의 삶을 그린 것이다.장예모 감독은 중국 한 가정을 내세워 중국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국공내전'부터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에 이르는 역사를 한 가정의 변모로써 그려나가고 있다. 물론 이 가정은 중국의 평범한 가정 즉 '민초'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생활 속의 녹차들어가며개인적으로 녹차를 즐겨 마신다. 새벽에 항상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출출한 뱃속에 음식을 넣기에는 무척 부담된다. 이 때 녹차만한 간식 및 음료는 찾기 힘들다. 평소 막연히 건강에 좋을 거라는 믿음으로 마셨을 뿐, 녹차의 효능과 올바르게 마시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녹차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그러나 도서관에서 녹차에 대한 서적을 마땅히 찾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전반적인 차에 관한 서적을 읽고, 녹차에 관한 부분에 대해 중점적으로 알아보겠다.녹차에 대한 관심녹차가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누구나 아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녹차에 대한 여러 가지 유용한 점과 다양한 기능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녹차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 보다 열광적이다. 찻잎을 우려 마시면서 여러 가지 도구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예전과 다르게 녹차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티백의 종류도 그 맛과 향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다. 또 차게 마실 수 있도록 만든 캔 음료를 어디서든 자동판매기에서 구입할 수도 있게 되었다.단순한 음료에만 그치지 않고 녹차를 탄산음료화 한 것과 녹차 소주까지 개발되어 시판되고 있다. 거기다 녹차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히트 상품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녹차 국수, 녹차 껌, 녹차 초콜릿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녹차 식품이 개발되어 소비자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녹차가 우리에게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녹차의 효능◆ 다이어트녹차 한 잔의 열량은 1Kcal 정도다. 열량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녹차는 언제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거기다 녹차에는 체내의 지방축적을 억제하고 지방을 분해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체중조절이 필요할 때에 마셔야 할 음료이다. 기름진 중국음식을 많이 먹어도 중국 사람들이 그리 뚱뚱하지 않은 것은 바로 차를 즐기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는 녹차의 효능이다. 특히 운동 전후에 마시는 녹차는 콜레스테롤을 억제해주고 운동시 체지방을 우선적으로 연소시켜 주기 때문에 운동효과를 높여준다.◆ 피부미인녹차에 들어있는 카테킨 성분은 피부노화를 예방하고 지친 피부에 수렴작용, 진정작용을 한다. 또한 녹차에는 주름을 방지하고 윤기를 주는 비타민A와 토코페롤도 풍부해 젊고 건강한 피부를 만든다. 비타민C가 레몬보다 약 8배나 많이 들어있는 녹차는 멜라닌 세포의산화를 방지해 기미, 주근깨를 예방하고 미백효과로 피부를 하얗게 가꾸어 준다.◆ 피로와 스트레스피로감을 느끼는 주된 원인은 혈액주의 젖산 때문인데, 심한 육체노동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 젖산이 체내에 축척된다. 이 때 녹차를 마시면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원인인 젖산의 생성을 방지하고, 생체활동의 활력소 역할을 하기 때문에 피로감을 없애주고 원기를 회복시킨다. 또한 녹차의 쓴맛은 체내의 음이온을 활성화시켜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고 녹차의 은은한 향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풀어주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암을 예방녹차를 마시면 카테킨 성분이 체내에 흡수되어 주로 위나 폐, 대장, 간에 분포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카테킨은 암세포의 주위를 둘러싸 활성을 억제시키기 때문에 하루 3잔 이상의 녹차를 마시면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암을 예방할 수 있다. 특히 폐암에 대한 억제율은 64%, 간암은 45%, 대장암은 52%, 위암은 20% 등으로 녹차의 항암효과가 밝혀졌다.◆ 살균효과녹차에는 강력한 살균효과가 있어 식중독 세균, 위궤양을 일으키는 피로리균 등의 병원성 세균을 비롯하여 충치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살균작용을 한다. 또한 O157균에 대한 강력한 살균효과도 있어 주목받고 있다. 일식집에서 회나 초밥 등 날 음식을 먹고 난 후 꼭 녹차를 내는 것도 녹차가 식중독을 예방하기 때문이다.◆ 고혈압, 당뇨녹차가 건강에 좋다는 주요인은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기 때문이다. 특히 녹차의 카테킨 성분은 혈압상승 작용을 하는 안지오텐신Ⅱ의 생성 효소를 억제해 주고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기 때문에 고혈압을 예방해준다. 또한 당질의 소화흡수를 지연시키는 작용을 하여 포도당이 혈액 중으로 흡수되는 것을 늦춰 준단. 따라서 급격한 혈당치의 상승이 억제되고 혈당치를 낮춰주기 때문에 녹차를 마시면 당뇨병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건강한 치아녹차에는 불소가 들어있어 치아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불소는 치아표면을 코팅하여 산으로부터 치아를 보호하고 충치세균의 증식을 억제시켜 준다. 또 치석을 형성하는 효소의 활성화를 억제하고 입 냄새 제거와 치아 변색방지에도 효과적이다.◆ 알코올, 니코틴을 해독술을 마시기 전이나 후에 녹차를 마시면 알코올 분해기능의 특수 음료를 따로 마실 필요가 없다. 녹차중의 카테킨과 비타민C, 아스파라긴산, 알라닌 등의 아미노산은 알코올 분해를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녹차로 숙취를 예방하고 술도 빨리 깰 수 있으므로 술을 마실 때 녹차를 함께 마시거나 섞어 마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또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는 녹차의 카테킨이 니코틴 중독을 막아준다. 담배를 끊기로 마음먹었다면 녹차를 수시로 마시는 것이 많음 도움이 된다. 또 흡연자에게 항상 부족한 비타민C의 좋은 공급원이 되고 흡연으로 발생하는 발암물질을 중화시키는 작용도 한다.◆ 중금속, 다이옥신녹차의 카테킨 성분은 중금속과 결합하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중금속을 체내에 흡수되지 않고 체외로 배출시킨다. 녹차는 납과 구리, 카드륨 등 몸에 축척되어 치명적인 해를 주는 중금속을 배출시키므로 수돗물에 찻잎을 함께 넣고 끊여 마시면 물의 중금속을 제거해주는데 큰 효과가 있다.뿐만 아니라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진 다이옥신도 흡착하여 체외로 배설시킨다. 다이옥신은 암을 유발하고 생식기능을 저하시키는 물질로 주로 음식물을 통해 신체에 유입된다.◆ 냄새 제거녹차가 함유하고 있는 성분들의 복합적 작용으로 냄새 제거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냄새제거에 녹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녹차의 어떤 특수 성분을 추출하기보다 녹차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 고기나 생선을 요리할 때 녹차를 첨가하면 누린내나 비린내를 없앨 수 있고 마늘을 먹고 난 후에도 녹차를 마시면 입 냄새 제거에 효과적이다. 실내에 녹차 말린 것을 두면 잡 냄새가 없어지고 냉장고 냄새 제거에도 탁월하다.녹차에 대한 오해◆ 하룻밤 지난 녹차는 독약?찻잎 중에 함유되어 있는 단백질, 당분, 지방 등으로 곰팡이가 쉽게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생긴 말인데, 차를 우려낸 직후 냉장고에 보관하면 성분의 변화가 적어 차의 향과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녹차로 약을 먹지 마라?중국인들의 이야기 중에 약을 복용할 때에는 찻물로 마시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찻잎 중의 폴리페놀 성분이 약 성분 중에 들어있는 알칼로이드 성분과 결합하여 약의 효과를 저해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약의 종류에 따라 알칼로이드 성분이 약리적인 효능을 나타내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약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녹차 티백의 철사가 비위생적이다?티백 제품을 만들 때 금속선으로 마무리한 것이 있는데, 이것은 철사가 아니라 알루미늄선이다. 스테인리스 주방기구와 같은 재질이기 때문에 녹이 슬거나 하는 등의 걱정은 할 필요 없고, 인체에 무해하다고 할 수 있다.◆ 녹차는 하루에 몇 잔 마시는 것이 적당한가?하루에 적당한 카테킨 섭취량은 1000mg 정도로 보통 녹차 10잔에 해당하는 양이다. 하지만 진하게 마실 경우에는 7잔 정도면 적당하다.◆ 녹차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녹차에 들어있는 카페인 함량이 커피보다 많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차는 낮은 온도에서 우려내기 때문에 카페인은 60~70%만 빠져 나오므로 실제로는 커피보다 훨씬 적은 편이다. 카페인 함량이 녹차는 한 잔에 약27mg, 커피는 66mg 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위가 약한 사람은 녹차를 마시지 마라?차를 마시면 순간적인 수렴미가 있어서 덜 익은 감을 먹었을 때와 같이 떪은 맛을 느끼게 된다. 수렴미를 느끼는 원인은 차의 카테킨 성분이 혀의 표면 단백질과 만나면 응고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의 폴리페놀 성분이 가지는 수렴 작용은 위장 점막을 보호하고 위장의 운동을 왕성하게 한다. 또 살균작용이 강해 위에 염증을 일으키는 피로리균을 억제하고 유독물질에 대한 해독 작용으로 위가 안 좋은 사람에게 오히려 이롭다. 또한 신경성 위장병에는 더욱 효과적이다. 그래도 걱정이 된다면 식전에 진하게 마시기보다 식후 연하게 마시는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공자, 사람을 알고 사람을 사랑한 인간1. 들어가며생노병사 !그것은 나에게 무척 쉬우면서도 또한 무척 어려운 주제였다. 왜냐하면 생노병사는 바로 인생이기 때문이다. 무슨 책을 읽든 내가 과연 인생을 감히 단정지어 표현할 있을까? 자칫 가식적이고 과장된 문장을 풀어놓는 것은 아닐까 라는 불안이 책을 선정하는 내내 나를 죄어왔다. 그래서 혹시 한 인간의 삶을 출생부터 사망까지 조명해보면 뭔가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음의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을 찾고 싶었다.1 내가 평소 알고 싶어하는 사람,2 많은 사람들이 위인이라 여기는 사람,3 현재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유유한 천지여! 중국의 길고 긴 역사 세월속에서, 누가 2천여 년의 사상사에 줄기차게 영향력을 미쳐왔던가? 찬란한 별들이여! 수많은 역사 문화의 위인 중에서 고대 문화의 전통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이는 누구일까?그것은 바로 공자이다.2천5백여 년 전에 살았던 공자. 시간적으로 말한다면, 현대와는 너무나 멀다. 그러나 사실상 공자와 우리들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는 유수처럼 흘러가는 세월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는 웅장하고도 광활한 역사의 긴 강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지금까지 흘러 내려오고 있으며, 이 발전 과정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나는 그런 그를 통해, 그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인생의 참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2. 본 론공자는 성이 공씨, 이름은 구, 자는 중니이다. 그는 지금부터 25세기 반 전인, 기원전 551년에 노나라에서 태어났다. 70세가 넘은 아버지 숙량흘과 10대의 어린 어머니 징재 사이에서 태어나 70여 세의 생애를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살았다.공자는 어려서부터 주위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고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그를 추종하는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장년기에 들어서서는 많은 문인들이 그를 따르게 되어 마치 한 유력한 정치집단을 연상케 하게 한다.아시아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한 위대한 사상가의 일생은 실로 매우 초라하게 보인다. 기독교의 예수, 불교의 석가모니... 모두 현대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며, 그들의 인생은 신격화 되어있다. 그러나 그들에 비해 공자의 인생은 미화되기는 하였어도 보다 인간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그의 가르침은 내게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공자 생애의 평범성과 현실성은 그의 인간성이 영감이나 계시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수양과 자기 운명을 장악하려는 노력의 결과임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도 노력하면 위대한 성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유교적 전통에 뿌리 깊은 것이다. 또 인간은 교화와 발전이 가능하고 개인적·사회적 노력을 통해 완벽하게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유교의 핵심사상일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의 깊은 뜻은 유교무류(有敎無類) 에 나타나 있다고 생각한다.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공자의 교육 목적은 인(仁)을 실천하기 위함이지 다른 목적이 아니므로, 가르침에 빈부나 귀천, 출신, 나이 등에 대하여 차등을 두지 않았다. 이것은 사람은 누구든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공자의 제자들은 신분이나 빈부차이가 컸다고 한다. 공자는 그에게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최소한도의 예의만 지키면 신분의 고하, 재산의 많고 적음과 나이의 고하를 묻지 않고 받아들였다. 신분계급이 절대적이던 약 3천년 전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과히 파격적이며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등학교 때 해석본 논어 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중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아쉽게도 어떤 제자에게 한 말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어느 날 제자A가 무척 저돌적이고 적극적이어서 말실수를 많이 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말하기 전 3번 생각하고 말하라 라고 했다. 후에 제자B에게는 넌 2번만 생각하고 말하라 라고 한다. 이에 궁금하게 여긴 한 제자가 왜 A,B에게 각각 다르게 얘기하는지 묻자 공자는 A는 성질이 급하니 3번은 생각해야 하고, B는 지나치게 신중하니 2번이면 족하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절대 진리란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있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성품과 주위환경에 의해서 그 뜻은 다르게 전달 될 것이다. 이것을 공자는 보여준다.그래서 공자는 훌륭한 교육학자이며 철학자이고 사상가로서 현재에도 사람들에 입에 오르내리며, 성현으로 추앙받는 것이다.그렇다면 좀더 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그는 우리에게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나는 그동안 진지하게 공자라는 인간에 대해 성찰하지 못했다. 유학사상은 고리타분하다라는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언저리만을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공자 를 만났다. 그리고 공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한다면 새삼스럽지만, 정말 공자는 위대한 성인이었다. 그가 겪은 인생역정 그 삶의 고독과 쓰라림을 마주하고 그 사상적 영향력을 살피고 나니, 공자는 2천여 년의 시공을 넘어 현재의 성인으로 나에게 다가왔다.과연 공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의 삶을 한 마디로 말하기엔 너무나 힘들다. 그러나 굳이 표현하자면 인간에 대한 참다운 애정을 가진 인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인간에게서 위대함이란 바로 성공과 좌절이라는 두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이런 점에서 공자는 완벽하지도 않고 성스럽지도 않은 일개 인간에 불과했다. 때로는 제자들과 헤어져 초상집 개처럼 동문 밖에서 서 있기도 했고, 때로는 대사구 라는 높은 자리에서 정치적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공자는 역사적 위인이다. 그런데 가끔씩 위대한 인물들은 쉽게 신격화된다. 2천여 년의 봉건 사회속에서 공자는 점점 지고무상의 성인 으로 바뀌어갔다. 그 사람됨은 누구나 무릎을 꿇게하는 우상이 되었고, 그 사상은 절대적 진리가 되었으며, 그 언행은 판단과 시비의 기준이 된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봉건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을 이룩한 동시에, 근대문명을 가로막는 막중한 병폐를 남겼다.때문에 한때의 찬란한 빛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고, 병폐는 현실의 위기로 변하였으며, 공자의 신성한 권위는 붕괴되기 시작했다.이것이 바로 지금의 공자의 운명이다. 그러나 성인 이라는 지위의 종결이 공자의 종적까지 감춰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근현대의 정치와 사상의 변천 속에서도 공자는 끊임없이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공자는 역사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현재 세계 문명의 대조류에 대처하는 사고력을 계발하게 해주었다. 홍콩과 대만의 신유가학자들은 공자를 역사 박물관의 진열품에서 현대 문명 건설의 참여자로 변화시켰다. 그들은 현대문명이 공자를 필요로 하며, 공자 역시 현대 문명에 힘입어 다시 우뚝 솟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 대륙에서는 1980년대 이래의 현대화와 문화 전통의 관련성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쟁하고 있는데, 공자는 이 가운데 가장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만큼 공자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어떤 사람은 전통 농업 문명의 상징으로서 공자는 단지 현대화로 향하는 길에 짐이 될 뿐이라고 여겼으며, 누군가는 공자가 긍정적 미래를 실현시키는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공자가 짐도 아니고 미래의 등대도 아니며, 현재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한 요인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