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Ⅰ.서 론Ⅱ.본 론1.동학혁명의 역사적의의2.자주민주통일성업을 위한 올바른 접근방법Ⅲ.결 론Ⅰ. 서 론오늘날 인류는 진화냐 파멸이냐 하는 분기점에 서 있다. 진화는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고 있다. 문명의 전환기는 인간에게 새로운 각성과 결단으로써 잃어버린 생명과 정신을 되찾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동양전통사상의 객관적 지혜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창조하고 계시하는 초월적인 신으로 보지 않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활동 속에서 자신을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우주의 생명으로 파악하고 있었다.우리민족은 우주의 근원적인 생명을 한 이라는 말로 표현해 왔다. 한 은 많은 개체를 하나의 전체에 통합하면서 확산과 수렴의 순환적 활동을 수행하는 한울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학사상은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지혜와 희망을 줄 것이다.동학사상이 출현하게 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역사적(歷史的), 시대적(時代的) 배경을 통해서 당시의 민중들과 민족국가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던 때에 가장 주된 문제점이 무엇이겠는가 이다.동학혁명(東學革命)을 진행하는 기간 동안 제시된 보국안민과 제국구민을 통해서 본다면 당시 우리 민중들은 밖으로는 외세로부터의 자주권(自主權)을 찾고 지키는 문제에서부터 안으로는 삼정문란과 봉건왕조로부터 자유로울 있는 정치적(政治的) 해방, 즉 신분제에서 해방되는 것을 주된 이해와 요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외세의 간섭과 지배야욕이 한반도로 집중되는 이 시기는 서구에서 자본주의 열강들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식민지를 하나 둘 획득해나가면서 침략과 수탈을 일삼과 정치적(政治的), 경제적(經濟的), 군사적(軍事的) 지배를 실현하기 위해 광분하고 있던 시대였다.이러한 때에 자본주의 열강대열에 합류되지 못하고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트고 있던 나라들이나 서구 시민혁명과 종교혁명을 거치지 못한 봉건적 왕족국가들에서는 민주주의적 제 권리를 찾는 문제와 또한 외세로부터 자주와 독립을 실현하는 문제는 중요한 문제로 와 생 많은 사람 동귀일체하는 줄을 사십평생 알았던가 하여 장래 세계는 인류 전체가 다같이 일체적인 평등·자유를 얻게 되리라는 것이요, 둘째는 쇠운이 지극하면 성운이 오지마는 현숙한 모든 군자 동귀일체하였던가 하여 신시대 의 성운을 맞이하는 방법으로는 동귀일체적 단결이 있어야 되리라는 것이고, 셋째는 동귀일체에 대한 철학적 체계이다.인간 사회는 모든 개인의 집결체요 협동체요 조직체이다. 그러므로 개인은 부 을 기할 수 없고 전체인 사회를 떠나서는 개인의 생존을 영위할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는 개성의 자유를 존중하는 개인자유적 민주주의가 있고, 개인은 사회적 존재라 하여 사회화에만 편증하는 전체주의가 있는 바, 이는 둘 다 일리가 있는 반면에 양쪽 다 편중의 결함이 있다. 편중은 부조화를 낳 고 부조화는 질곡을 초래한다.동귀일체의 철리는 능히 부조화를 조화할 수 있고 편중을 쌍전할 수 있다. 동귀일체의 원리에서는 인간사회를 한 개의 인체와 같이 본다. 즉 사회는 육 체의 전체와 같이 개인은 세포의 각 개체와 같이 본다. 그리하여 육체 전체는 모든 기관을 꾸준히 조절하여 세포의 균형적 발전을 기하고 세포 각자는 각 자 개성을 완전히 발휘하여 전체의 계속적인 기능을 잘 할 수 있도록 한다. 인간사회도 이 원리에 맞도록 조직하여 사회와 개성의 쌍전적 발전을 도모하 자는 것이다.2사인여천설(事人如天說)인내천은 그 응용에서 사인여천이 되고 사인여천은 그 실천에서 평등·자유 를 주장한다. 수운은 그의 천인합일사상, 시천주사상에 기초하여‘인시천(人 是天)’사인여천’의 사상을 정립하였다.먼저 천인합일사사에 대해 살펴보면 수운은 ‘천(天)’과 인(人)’은 모두 신령성이 있고 지기로 만들어져 있으므로 서로 감응하여 신령한 기화를 매개 로 해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며, 사람이 명덕을 더욱 밝히면 이 천인합일의 신령한 지기의 상태가 되어 지극한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수운의 위대한 독창적 발견은 인’안에 ‘천’이 들어오는 새로 운 인간중심적 천인합일학의 원리에 기초하여 포덕천하(布德天下), 광제창생 (廣劑蒼生)의 대 사상을 품은 세계적인 대 종교가이면서 한편으로는 열렬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래서 그는 함지사지 출생들아 보국안민 어찌 할꼬 라고 하여 이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애타게 걱정하고 그리하여 그 방법으로는 각 자위심하지 말고 동귀일체하라는 것을 재삼재사 강조하고 나아가 애국운동 먼저 한다고 하여 개벽운동의 당면과제로서 정신개벽, 민족개벽, 사회개벽을 제시하였다.4천직천록설(天 天祿說)수운은 경제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 없으나 한울님이 사람 을 내고는 반드시 직업을 주었다. 는 말씀과 한울님이 사람낼 때 녹없이는 아니 낸다. 는 천직천록설에 의거해 본다면 수원의 경제적 평등권을 여실히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천리로 볼 때에는 일월성신 산하해륙은 다 같은 공 유물이라 인류전체의 생활을 영위 할 수 있는 것이요 인간 자체에는 자기 생 활을 자작자급할 수 있는 이목구비, 사지백체의 기관이 구전하고 그에 따른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자존하는 만큼 이 근본천리로서 인간 각자에게 천직 과 천록을 고르게 준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일 세상은 천직을 잘 지키는 노동자, 농민은 천록을 받 지 못하여 기아에서 울고, 천직을 지키지 않는 무리들이 도리어 남의 천직까 지를 독점한 셈이니 이것은 천리천명(天理天命)에 위반한 사회적 죄악인지라 당연히 근본적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5노예해방수운은 동학은 시천주사상과 인시천사상에 기초하여 독창적인 구조의 평등 사상을 정립하였다. 그 평등사상의 구조를 보면 인간은 누구나 마음 안에 각 각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데, 이 한울님이며, 모두‘동일한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사람은 본래 모두 평등하다고 보고 주창한 것이었다.예컨대 신분평등의 경우를 보면 양반도 평민도 그리고 천민이나 노예도 모 두 동일한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양반과 평민·천민·노예도 서로 완 전히 평등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장한 것이다.수운은 이러한 평등사상으로 양반신분제도를 부정하고 분되었다.수운은 선천세계 5만년이 원시미개기·융성기·쇠망기를 다 거쳐 후천세계 가 개벽할 시운에 도달하자 한울님께서 그동안 보국안민, 광제창생을 위해 고 민하셔서 수도하고 있던 수운 자신을 선택하여 동서고금에 없던 대도인 동학 의 원리를 가르쳐 줌으로써‘동학’이 창립되었으며, 따라서 동학은 후천세계 는 동학의 시대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선천세계 제3기 말기까지의 모든 기 존 종교와 사상과 학문을 부정하고 동학의 혁명적 새로움을 강조한 사상이었 다고 볼 수 있다.이와 같이 우주생성의 원리가 통일에서 분열로 분열에서 통일로 진전하는 과정을 밟는 것과 같이 인간사회의 진화변천도 역시 이 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나니, 이로써 보면 선천개벽은 통일로 다시 회복되는 과정을 이름이다. 이 원리는 우주의 전체진화에도 적용되고 사회발전에도 적용하게 된다. 우리 인류사회의 발전과정을 역사적으로 회고해 본다면 먼저 원시 공동사회는 한 개의 통일체제였다는 것이다.그러나 그 통일체가 일전하여 노예제도가 생기게 됨으로부터 분열이 시작하 였다. 그리하여 본래는 평등하고 무차별하던 인간군이 노예와 자유민으로 분 열되고 나아가서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지주와 소작인, 자본가와 노동자 그리고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으로 분열되어 왔다.생각해 보면 현대에서 재통일되는 최초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계급 적 과정에만 아니라 종교·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것이 다같이 과거에는 통일로부터 분열되어 오다가 지금은 분열에서 다시 통일을 향하여 나아가는 중간과정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동학의 개벽운동은 바로 이 원리에 기초하여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통일을 도모하자는 것이다.8불연기연적 역사관동학사상, 특히 수운(水雲)의 사상은 하느님과 인간, 자연과 인생, 물질과 정신, 주체와 객체, 전체와 부분 등, 이원론적으로 나뉘기 쉬운 모든 대립구조를 극복하 여 하나로 종합하는 능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것을 가능케 한 수운의 방법론 은 '불연기연'에서 찾아볼 수 있다.첫째, 불연기연은 '생성(生成)수운은 우선 이를 개벽하였다. 수운은 서학의‘천당선’에 반대하고 천국은 지상에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세계는 그 근본에서 고해도 마 굴도 아니다. 세계 그 자체가 극락, 천국의 소질을 가졌으며 인간은 그 본질 에서 시천주인 신령적 존재이므로 종교적 정신개벽에 의하여 인간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키고 정치적 사회개벽에 의하여 인간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키고 정치적 사회개벽에 의하여 인간의 생활을 최고도로 행상시킨다고 하면 이 인간으로 하여금 지상천국이 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하였다.참으로 우리 인간이 신령적 존재임을 자각하기만 하면 생로병사에 대한 미 망은 곧 해소될 것이요. 불연기적 인간성의 본질에 맞는 사회제도가 실현되기 만 하면 부귀빈천에서 생겨진 모든 참화와 고통은 완전히 제거될 것이요, 인 간의 무한역량을 충분히 발휘시키기만 하면 모든 자연계에서 오는 재해도 최 소한으로 경감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공상이 아니요 망담이나 허언이 아니 다. 동학의 정치운동은 이 지상천국을 최고 목표로 하여 추진시킨다. 그는 전 국의 백성들에게 동학을 가르쳐서 모든 백성들이 동학에 입도하면, 입도한 백 성들은 모두 군자와 지상신선이 되고 모든 백성들이 동학에 입도하여 일체가 되는 날이면 동국과 이 세상은 군자와 지상신선이 모여 사는 지상천국이 건 설되기 시작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동학신도가 되어 굳게 단결하면 서양도 조선을 침입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하였다.그런데 지상천국의 이상은 원래가 영원성을 가지는 것으로 어느 한 시대, 한 단계의 혁명에서만 완성될 것이 못되므로 동학의 정치운동은 항상 보다 나은 신사회를 지향하여 전전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리하여 동학의 지상천국 의 이상은 서학의 천당설에 대결하여 만든 강렬한 지상천국건설의 유토피아 사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이상에서 우리는 몇 가지 예를 들어 동학의 중심사상의 이론적 근거와 혁명 적 자주성을 개략적이나마 파악하여 보았다. 이와 같은 이론족 근거와 혁명적 정신을 가진 정.
종교를 알아야 문화를 안다.? 韓?中?日의 종교문화 중심으로 ?Ⅰ. 머리말인류학에서 종교는 인간과 함께 하는 또 다른 자들의 세계, 그들에게 부여하는 신성한 힘과 상징, 그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되는 의례에 대한 연구이다. 한편, 종교의 세계는 과학기술이 지배적인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유지, 변형, 재창출되고 있으며, 제반 정치, 경제, 사회 영역에서의 변화와 상호 관련된다. 즉, 종교는 그 종교가 속한 사회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사회 구성원들의 인간관이나 세계관 등과 같은 기본적 가치관의 형성은 전적으로 종교의 몫이다. 그래서 어떤 사회를 이해하려 할 때 종교를 간과한다면 그것은 절반을 놓친 셈이 된다.여기서는 현대 인류 사회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종교의 문화적 측면을 비교 문화적 시각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한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무엇보다도 다른 나라의 문화와 비교하는 것이 첩경이 아닐까 싶다. 이 경우 다른 나라의 문화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문화를 우리 스스로 돌아볼 때 놓치기 쉬운 많은 면을 비추어 준다는 면에서, 또 그럼으로써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비교문화학적 시각은 매우 유용한 시각이라 하겠다.) 한?중?일 종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다른지에 대해서는 쉽게 표현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종교 문화는 서양이나 아랍권의 종교문화와 비교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그것보다는 비교적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종교와 비교 연구해 보면 보다 쉽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중국과 일본의 종교는 우리나라의 종교와 많은 면에서 동이(同異)점이 동시에 발견되기 때문에, 이 두 나라의 종교와 명확하게 다른 점이 발견되면 전 세계의 여러 문화가 견지하고 있는 종교문화 속에서 우리의 그것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가 자동적으로 드러날 것이다.아울러 현대 인류 사회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종교의 문화적 측면을 이해함과 동시에 현대 한국 사회제사지내는 제레법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 ‘봉선(封禪)제례’가 가장 성대했다. 봉선이란 제왕이 천(天)?지(地)를 제사지낸다는 것이다. 봉(封)은 태산(泰山)정상에 제단을 설치하고 제천(祭天) 즉, 하늘을 제사지내는 것이고, 선(禪)은 태산 근처의 작은 산에서 제지(祭地) 즉, 땅을 제사지내는 것이다. 왜 태산에 가서 제사를 지냈는가에 대한 의문은, 고대 중국인들은 중국의 높은 산 가운데 5악(五岳)을 꼽는데, 5악 중 태산이 가장 높아 하늘과 거리가 가깝기에 직접 천제(天帝)에게 아뢸 수 있고 태산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만물의 시작 즉, 음(陰)과 양(陽)이 교체되는 곳으로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2) 조상에 대한 제례조상에 대한 숭배는 태고시대부터 발단되었고 주(周)대 초엽, 종법(宗法)제도가 형성되자 조상숭배를 제도화하였다. 그 후로 제왕?관원?서민 등이 너나할 것 없이 조상을 숭배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제왕은 종묘를 건축하고 조상을 제사지냈다.마스페로(H. Maspero)는 중국종교의 특성을 귀족주의이며 집단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귀족들만이 덕(德)을 가졌으므로 선조에 대한 제사를 지낼 권리가 있으며, 반면에 선조가 없는 천민들은 제사지낼 권리가 없었다. ??? 종교는 사실상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국가의 일이었다. 아무리 작은 공동체일지라도 제사지내기 위한 장(長)이 필요했으며, 이 장은 공동체의 단합을 위해서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일부 학자들은 통치자들이 왕권의 정통성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조상숭배의 종교를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3) 군자성현에 대한 제례‘군자성현(君子聖賢)’ 이란 역사상 인류문명에 공헌한 탁월한 사람을 가리킨다. 옛 사람들이 그들의 비범함이 신(神)을 타고났다고 인정한데서 비롯되었다. 역대의 제왕(帝王)을 일컬어 군(君)이라고 한다. 역대의 제왕들은 모두 선대의 제왕을 제사지냈다. 사당을 건축하고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냈는데, 만세의 사표(師表)를 일컬어 사(師)라 하며, 전통상 공자(公子)와 관공들의 빈번한 내왕으로 동방과 서방의 문화적인 교류가 증대되었다. 중국의 4대 발명품은 모두 아랍상인들을 통하여 아랍에 전해졌다가 다시 유럽에 전파되었다.)2. 일본의 종교일본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 재래적(在來的)적 사상이 강한 일본에는 800여 신이 존재한다. 그래서 ?야오 요로즈?란 말이 있다. 이것은 신의 존재가 800여개가지나 된다는 의미이다.일본의 고유 종교는 생산과 생활의 공동체에 의해 영위되어진 농경의례를 주체로 하는 애니미즘, 자연숭배, 조령(祖靈)숭배, 주술로 발달했던 종교였지만, 고대국가의 성립과정에서 북아시아계의 샤머니즘이 부가되어 그 형태가 빠르게 형성되었다. 6세기경에 중국, 한국에서 불교가 전래되어 종래의 신기신앙(神祇信仰)과 습합(習合)해서 고대불교 국가체제가 만들어졌다. 또 불교 전래를 전후해서 중국에서 민중도교가 전래되어 불교를 주축으로 하는 종교사상 전개에 큰 역할을 했다. 고대를 통해 불교의 습합이 진전되고 불교를 주축으로 하는 불주신종(?主神從)의 신도)사상이 성립했지만 신도(新道)는 불교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은 채로 민족 자유종교로서 유지되었다.중세에는 일본화 된 불교의 신조류가 발전해 종교사상을 더욱 다원화시켰다. 일본의 종교는 다원적으로 공존해왔다. 유럽의 그리스도교는 토착화된 민족종교를 흡수해 그리스도교의 일원화를 달성했지만, 일본에서는 집단의 종교인 민족종교로 출발하는 신도(新道)와 외래불교가 각각 개성을 보존한 채로 습합해서 다원적인 유파를 형성해 민족종교의 성격을 이어 받은 신사신도(神社新道)가 맥을 이어왔다. 이세신궁을 비롯한 신사(神社)의 대부분이 이것으로 , 현재는 도쿄 시부야 구에 있는 신사본청이 통괄하고 있다.일본의 종교사상의 신 관념은 다신교가 지배적이고 주술성, 샤머니즘, 권위주의적 경향이 일관되어 있으며 가정을 단위로 하는 조령숭배가 공동체와 국가의 제사로 이어지고 있다. 가정과 공동체를 단위로 하는 종교생활은 조상신과 지연적이고 혈연적인 신의 신앙에서 출발하는수회의 가톨릭 포교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있었다.(17세기 초기 가장 번성했던 시기에는 신도수가 약75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숫자는 오늘날의 일본 전기독교파의 신도 수와 거의 맞먹으며, 인구가 오늘날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았던 당시를 생각할 때 얼마나 많았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봉건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지배자의 판단으로 말미암아 점차 탄압받기에 이른다. 신자는 박해를 받기 시작했으며, 1613년에는 외국인 선교사들을 국외로 추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가톨릭 탄압 이후에도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구미의 여러 나라들과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다시 일본에 있어서 기독교 포교가 성행하게 되었다.1859년 이후 프로테스탄트 선교사가 미국으로부터 파견되고 또한 가톨릭, 러시아 정교도 왕성한 포교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들 외국인 선교사들은 일본에서 사회사업이나 교육사업에도 종사하기도 하고, 일본에 있어서 유럽이나 미국의 문화 도입에도 공헌하게 되었다.일본에 있어서 근대문화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구미의 여러 나라 문화를 의미하는데, 구미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기독교적 사고나 생활방식의 일보와 도덕, 사상 등도 일본에 도입되었다. 오늘날의 일부일처제 등도 서구문화 도입의 한 예가 되고 있다.오늘날 기독교 신자의 수는 프로테스탄트 60만 명, 가톨릭 40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 숫자는 불교계에 비하면 매우 적긴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 일정한 지위를 확보하고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교육사업에 있어서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기독교에 근거한 교육을 실시하는 사립학교도 많다.라. 신흥종교신흥종교는 메이지 유신으로 급격히 봉건사회가 붕괴되고 근대사회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민중의 불안과 욕구를 반영하여 현세중심, 인간본위의 구제를 강조하며 성립, 발전하였다. 이들 신흥종교는 신도계, 법화종계, 밀교계 등으로 나눌 수 있지만 교의가 서로 뒤섞여 있고 생활과 직열광적으로 받아들이고 열정적으로 믿어서 단숨에 그 원조가 되는 나라들은 따라잡고 있다.기독교가 가장 최근에 들어온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남긴 흔적은 적지 않다. 가장 가시적인 것만 보더라도 예수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는 다른 종교 교주의 그것을 제쳐 놓고 ‘성탄절’ 이라는 칭호를 가장 먼저 획득했고 공휴일로 가장 먼저 지정되었다. 게다가 교회는 왜 그렇게 많은지 온 시내의 밤하늘에 빛나는 빨간 십자가가 여간 자극적이다. 한 건물에 교회가 두 세 개가 동시에 들어가 있는 경우도 흔하다.)Ⅵ. 한(韓)?중(中)?일(日) 종교문화1. 중 국중국문화는 중국민족이 형성?발전하는 역사 과정 속에서 창조한 민족 문화의 총화이며, 각 시대의 문화는 그 시대 성격을 특징짓고 있지만, 민족 전통은 일맥상통 하는 민족정신과 민족 특색을 내포하고 있다.중국문화의 특징은 지역과 종족의 동일성을 추구하기보다는 문화적 동일성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있다. 50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이어 오면서 중국은 다른 종족에게 국권을 빼앗긴 적도 여러번 있었지만, 이러한 문화적 뿌리(혹은 주체의식)에 힘입어 다른 문화를 동일성 속으로 용해시켜 버릴 수가 있었다. 이 문화 우월주의(중화사상))에 의해 중국은 중국다운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중국 문화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는 선존재(先存在)의 구조로서 이해하기보다는 공동체나 더 큰 규모의 공동체 집단에 영향을 미치게 된 어떤 주도적인 방향 설정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 타당성을 갖는다.)중국의 종교는 유럽이나 서부아시아 종교와는 달리 ‘국교(國敎)’로 지정된 종교가 없으며 여러 종교가 병존하면서 어느 나라에서 전래되었던지 간에 중국에 자리 잡으면서 중국 본토의 종교와 어울리면서 중국만의 특색을 띠고 있다.2. 일 본일본의 문화이해를 위해서는 ‘일본인 이해’가 핵심이 되며, ‘일본인의 이해’를 위해서는 ‘일본인의 마음’내지 ‘일본인의 의식’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