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생광전’을 보고...“흠... 이게 뭐야?”처음에 내가 박생광전을 보러 가서 한번 쭉 훑어보고 한 말이다.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려 한건지, 왜 그런 방법으로 표현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와, 같이 간 내 친구는 멍해져서 한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제목과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해석을 해 보면서 여러 작품을 둘러보았는데, ‘무당’이라는 작품이 특히 관심이 갔다. 무당의 얼굴이 짙은 남색인 게 특이했고 등장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분위기 같은 것이 왠지 으스스했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무당’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약 3개가 있었는데 내 생각엔 그 3개가 이어진 스토리 같았다. 우선, 첫 번째 그림은 무당의 얼굴이 어두운 색이고, 장군님 같은, 무섭게 생긴 남자와 함께 있는 그림이다. 생각을 해 보았는데, 한을 품고 죽은 영혼이 무당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무당에게 귀신을 씌게 한 것 같았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연결해 주는 사람이 무당이므로 귀신은 무당에게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눈이 파랗고 얼굴이 검게 변한 것이고, 한을 품었기 때문에 칼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맨 손으로 칼을 두 자루나 들고 있었다. 그리고 무당이 흰 이를 보이며 웃고 있는데 이것은, 귀신들려서 정신이 이상해 져서 그런 것 같다. 또, 옆에 있는 남자는 귀신을 잡는 장군 같은데, 귀신들린 무당에게 칼을 빼앗겨서 무당은 칼을 2개나 들고 있고 이 장군은 손에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무당이 들고 있는 부채에는 울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슬픈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약간 역동성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귀신이 무당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런 것 같다. 역동성을 느끼게 하는 요소로는 무당의 양 쪽으로 뻗고 있는 팔이라든가, 장군의 손, 빨간색과 파란색의 대비 그리고 화면이 두 사람으로 꽉 차 있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두 번째 그림은 무당의 목이 몸에서 잘려 나가 있는 모습인데, 그 얼굴은 여전히 어두운 짙은 남색이며 늙고 지친 모습이었다. 끝내 장군이 귀신을 잡지 못하고 귀신 들린 무당은 가지고 있던 칼로 자살을 한 것 같다. 자살을 한 이유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귀신이 한을 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부채 안의 사람은 표정이 무표정으로 바뀌었는데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나타내는 것 같다. 부채 안에 있는 사람은 애기중과 여승 같았다. 그리고 주위 배경이 첫 번째 그림에 비해 산만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은 무당의 집이 귀신 때문에 엉망이 된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을 보면 전체적으로 정신없고 산만한 듯한 느낌이 많이 드는데 자살하는 장면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며 노란색, 파란색, 빨강색을 주로 사용한 것도 그 효과를 위해서 인 것 같다.세 번째 그림은 얼굴은 여전히 어두운 색이지만 처녀처럼 보이는 무당이 등장하고, 아까 부채 안에 있던 여승들이 그림 밖에 나와 있고, 부채 안에는 양반처럼 보이는 남자가 들어가 있다. 내 생각에는 한을 품게 된 계기를 보여주는 것 같은데, 양반은 웃고 있고 여승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아 양반과 여승 사이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것 같고 무당이 그것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래서 무당에게 귀신이 들리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굉장히 스산한 분위기가 나는데 이것은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 주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파란색을 많이 사용해서 이러한 효과를 낸 것 같고 여승의 창백하도록 하얀 얼굴과 슬픔이 담겨있는 무표정이 으스스한 분위기 형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산수화전’을 보고...(월전미술관)월전 미술관은 찾아가기 조금 힘든 위치에 있었다. 택시 아저씨도 잘 모르셔서 물어물어 겨우 찾아갔다. 주위로 은행나무가 쭉 심어져 있고, 한적해 보이는 미술관이었다. 들어가는데 신경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래서 마음껏 작품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대부분의 작품들이 수묵담채화였다. 먹을 사용한 그림은 왠지 모르게 여유로움과 운치가 느껴져서 참 좋다. 여러 산수화들을 감상하였는데 이영찬의 ‘해풍’이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이 작품은 말 그대로 해풍을 묘사한 그림이다. 검은 색의 큰 바위들이 군데군데 있고 해풍에 의해 파도가 울렁이고 있다. 사실 ‘해풍’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파도가 울렁이는 것이 해풍 때문인지 스스로 그러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참 힘들다. 그런데도 그림을 보면서 해풍 때문에 바다가 일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그만큼 작가가 섬세하고 훌륭하게 표현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작품을 보면,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한 것이 없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큰 바위는 하나하나 신경 쓰기 어려우므로 어느 정도는 같은 색으로 칠했을 법도 한데, 명암의 차이라든가 울퉁불퉁한 면 같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 정말 세세한 곳 까지 붓 터치를 다르게 한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바위의 빛이 바랜 부분은 약간 하얗게 처리하고 움푹 들어간 부분은 진하게 처리한 것 등이 있다. 또, 파도가 일렁이는 것도 너무 실감나게 잘 표현한 것 같다. 물의 흐름을 선으로 표현해서 파도의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도 나타내려한 작가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물결을 그리는 기법이 미술을 잘 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마냥 신기하기만 하였다. 나는 특히 흰색 처리를 잘 못하기 때문에 물이 흰색인데도 그럴 듯 하게 물결로 만들어 버린 화가가 참 대단하게만 느껴졌다.앞부분의 파도는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뒷부분의 파도는 잠잠하게 그린 것도 인상적이었다. 뒤의 파도를 굉장히 잠잠하게 표현함으로서 앞의 파도가 해풍의 영향을 강하고 받고 있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 뒤 쪽에는 커다란 바위산 하나만 그려놓고 앞 쪽에 울퉁불퉁하고 거칠어 보이는 바위를 많이 그림으로서 강한 이미지를 나타내려 했다. 앞의 바위들은 활발히 일렁이는 파도와 잘 어울렸고, 뒤의 잔잔한 파도는 수평선과 만나면서 그 위로 있는 구름과 잘 매치가 되었다.배경을 살펴보면, 수평선 위로 구름이 가득 차 있고, 그 뒤로 어렴풋이 해와 산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약간의 색 변화를 주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붉은 빛과 회색빛이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다 표현하지 않고 수많은 구름에 가리게 해서 신비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것 같다. 이 구름들이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산과 만나는 부분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멋지게 나타내었다. 꼭 눈이 덮인 것 마냥 구름을 표현하였고 군데군데 있는 구름들은 눈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구름에 싸여있는 바위산의 모습은 정말 일품이었다. 이런 곳에 신선이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유가와 법가의 인간관의 차이를 정리,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점 하나를 택하여 유가 혹은 법가적 관점에서 해결책 모색해 보기”김선민 교수님2004. 4. 27(화)전기공학과2002170669김명지*유가와 법가의 인간관유가는 하늘과 만물 곧 우주의 모든 존재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입장이다. 그것은 우주를 하늘, 땅, 그리고 사람의 3 요소(3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하늘은 물질세계를 넘어 인간에게 성품을 부여하였으며, 땅은 물질적 자연의 세계로서 인간의 신체가 여기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는 땅의 형상을, 인격적으로는 하늘의 기품을 이어받은 중간적 존재로서의 위치를 차지하는 소우주이다.유가의 기본원리 가운데는 인성을 곧 천성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내포하고 있으며, 결코 인간을 근원적으로 어리석다거나 죄가 있다고 부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을 초월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말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 유교의 이상이고 과제이다. 또한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을 떠나서 저세상에 가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세상이 가장 축복스러운 곳이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지켜야 할 원칙은 하늘의 원칙, 곧 천륜으로 받아들여진다. 父子, 君臣, 夫婦, 長幼, 朋友의 인간사회 속에서 만나는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서 인간이 멋대로 만들어 속박하는 것이라고 거부할 것이 아니다. 또한 친애함(親). 정당함(義). 분별함(別). 차례지킴(序). 미더움(信)이라는 오륜의 규범은 인간관계 속에서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하지만 마치 하늘에서 별자리가 운행되는 법칙처럼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여진다.유교 이념에서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성품은 순수한 선이요, 보편적인 이치이며, 욕망과 연결 되어 있는 육신은 선의 기준으로부터 이탈하기 쉬운 충동적, 가멸적 존재이다. 유교는 이러한 우주적 연관 속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행동하고 살아가는 도리를 근본 문제로 삼고 있다.그러나 사욕이 혹 본성을 가려 그 유혹에 넘어가는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극기복례하려고 애쓰는 것이 인간이다. 이와 같이 악에 빠졌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선에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굳게 신뢰하고 있다. 선에의 자각은 수기로 이어 지고, 수기를 하고 나면 필연적으로 안인으로 이어진다. 《大學》에서는 이를 8단계로 삼아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확충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은 도덕의 주체이다. 그러므로 《論語》에서도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인간은 극기복례를 통하여 천인합일의 경지를 개척하지만, 그것이 중단되는 순간에 생생화육의 질서에 순응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유가의 인간관을 윤리 도덕적 인간관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도덕적 인간관의 이상형으로서 유가에서는 군자를 제시하고 있다. 군자란 하늘의 계승자로서 인간의 원형 또는 이상적 인간이며, 회복되어야 할 인간의 본래적 모습이다. 군자는 도덕이 순수하게 갖추어져 있고 학문도 역시 뛰어나며. 날로 상달을 추구하고 인예를 중시하는 사람이다.유가에서 인간은 기질에 따라 욕망을 갖게 되고, 욕망은 사물의 소유를 추구하게 된다. 물질로 달리는 욕망은 마침내 마음을 물질에 사로잡히게 하여, 물질과 인간 사이에 주객이 전도되기에 이른다. 곧 물질에 유혹되어 인간이 이끌려 다니면 인간은 물질에 예속되고 만다. 유교전통문화는 이러한 물질적 욕망을 축소하고 통제하여 마음이 주재하는 독립된 인간존재의 자족하는 즐거움을 추구하여 왔다. 그래서 “마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 라고 읊은 데서처럼 옛사람의 생활풍속은 작은 욕망을 통한 즐거움의 발견이다. 이처럼 부귀. 공명의 온갖 욕망을 훌훌 벗어 던지고 절제된 작은 욕망속에서 정신적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유교문화의 인간관에서 가능하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유교에서의 ‘인’은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용하고 일치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반면에, 법가에서는 유가와는 다른 인간관을 가지고 있었다.법가의 사상은 부유한 국가와 강력한 군대(富國强兵)를 건설하기 위하여 일체의 헤게모니를 권력헤게모니에 의하여 통합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권력헤게모니에 의하여 자본헤게모니(귀족계급)을 소멸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귀족계급의 독립성은 부국강병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 이다. 권력자가 법을 수단으로 하여 부국강병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법가사상에서 기본적인 수단인 법은 도덕적 종교적 규범으로서의 법이 아니다. 그것은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합리적으로 도출된 규칙이었다. 법이 도덕적 종교적으로 정당한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고 법의 본질과도 무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법의 집합표상은 동서양 어느 시대의 역사에서도 없는 독특한 것이다. 법가사상의 핵심은 권력과 법에 의하여 부국강병을 이룩할 수 있는 효율적인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권력과 법에 의하여 신분계급체제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이사상은 중국에서 종교, 도덕 등의 관념적인 방식이 아닌 실존의 법사상을 발전시킴으로서 법의 공정한 집행과 중앙집권화 된 관료 제도를 확립하는데 위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신상필벌의 원칙은 군주의 강압적 통치를 부추겼고, 대부분의 백성들은 그로인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법가사상은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일반 대중 속에 전파되지 않고 사라졌다. 하지만 위정자, 즉 왕이나 권부에 들어가면서 체제유지적인 유가사상에 편입된 것으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법가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국가는 강력한 통제와 조종을 통하여 부강을 꾀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군주는 법과 세와 술로 민중과 백관을 통솔하며, 그 제재 방식은 종교적, 도덕적인 것이 아닌 사회 조직의 정점에 선 왕의 권세와 법의 강제에 의한다고 하였다. 가치 판단의 기준은 현실적으로 효과 있는 결과를 낳았느냐 안 낳았느냐 이고, 따라서 '고대의 도와 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상황을 연구하고 대처 방안을 내는 것'이 관리들의 임무가 된다는 것이다. 이 사상은 민중에게 정치에 대한 의논이나 생각을 하지 말고 다만 복종하라고 가르쳤다.법가에게 있어서 인간은 오직 당근과 채찍에 의하여 지배되는 존재였다. 말하자면 인간은 이기적 존재였다. 이러한 점에서 법가의 인간관은 오늘날의 인간관과 거의 동일하다. 다만 법가는 당근보다는 채찍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통찰하였다. 왜냐하면 당근은 한번 제공되면 다음에는 더 많은 당근이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존의 관습과 집합표상은 합리적 목적(부국강병)을 위하여 서슴없이 타파되어야 하고, 사회적 연대는 권력에 대한 복종을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파괴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인간을 법 앞에 서는 단독자로 만들어야 권력은 안전해지고 나라는 부유해지고 강력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칙에 의하여 법가는 합리적이고 세밀하게 규정되고 엄격하게 집행되는 법에 의한 권력적 규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백성들은 상호감시를 하기 위하여 다섯집, 열집 등으로 조직되었으며, 법을 어긴 자는 상호 신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신고가 되지 않고 법을 어긴 자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이웃은 연대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시 나라를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하는 것은 농업생산을 증대시키는 것이고, 따라서 국민으로 하여금 음악이나 교육 기타 문화적인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업에 전념하지 않으면 안 되게 규제하였다. 두 사람 이상의 남자가 한집에 거주하게 되면 반드시 분가하여 각각 따로 농사를 짓게 규정하였다. 만일 분가하지 않으면 부역과 납세를 두 배로 하였다. 예악, 상업, 서비스업, 교육, 여행 등은 금지되고 노동력이 있는 모든 남자들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업에 힘써야 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힘을 모아 밭을 갈고 베 짜는 일을 본업으로 삼았고, 곡식이나 베를 많이 바치는 자는 부역을 면제해 주도록 하였다. 전 쟁에서 군공(軍功)이 있는 자는 각각 그 정도에 따라 벼슬을 주고, 사사로이 싸움을 일삼는 자는 경중에 따라 벌을 주었다. 힘센 자는 싸움에 힘쓰고, 노약자는 지키는데 힘쓰고, 죽은 자는 후회가 없고, 살아있는 자는 근면에 힘쓴다. 이것이 법가의 부국강병의 원칙이었다. 백성의 부귀에 대한 욕망은 죽어서 관이 닫힌 뒤에야 멈추는 것이니, 부귀의 문이 필히 전쟁에서 열린다면 백성 들은 전쟁 소식을 들으면 서로 축하하고, 앉으나 서나 마시거나 먹거나 노래하는 것은 전쟁에 대한 것일 것이다. 이것이 법가의 인간을 규정하는 방식이었다.*사회 문제나는 얼마 전에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비디오로 빌려 보았다. 이 영화가 굉장히 흥행했었는데 사정이 안 되어서 영화를 보지 못했었다. 친구들이 모두들 정말 재미있다고 하여서 언제 한번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심심해서 비디오를 빌리러 갔다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이 영화는 제목이 암시하듯 살인에 대해 다룬 내용이었다.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범인은 굉장히 잔인한 방법으로 무려 10건이나 살인행위를 저질렀다. 얼마나 잔인하게 사람을 죽였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속이 안 좋았다.레포트를 쓰려 하는데 우리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을 때 나는 바로 살인문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영화가 나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서 굉장히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살인 문제를 택하였다.*유가적 관점에서 해결책 모색유가에서 가장 근본적인 윤리규범은 인 이다. 인은 주된 목적은 사랑이다. 공자는 인이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애인을 항상 강조하였다. 인이 예의 전통 규칙과 예의를 지니는 생활에 부가해야 할 것들은 사랑, 적극적 공감, 자신과 같은 존재로서의 타인에 대한 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