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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융 심리학과 욥에의 응답-구약의 욥기를 융 심리학적으로 보기 시작하여 기독교 전체의 흐름을 융 심리학으로 풀어냄
    융 심리학과 욥에의 응답(1) 욥에의 응답을 쓰게 한 꿈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방문한다. 그는 시골에 살고 있었다. 그곳이 어딘지는 모른다. 그 집은 18세기 풍의 집이었고, 방이 무척 많고 몇 개의 비교적 커다란 별채가 딸려 있었다. 내가 듣기로는 그곳은 온천장의 여관이었고 많은 위대한 인물, 유명한 사람과 왕자 등이 묵었다고 한다. 게다가 몇 사람이 죽은 뒤 그들의 석관들이 이 집에 있는 납골당에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이곳의 관리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생시와는 달리 탁월한 학자였다. 나는 아버지를 서재에서 보았다. 그런데 거기엔 둘 다 정신과 의사인 Y박사와 그의 아들이 있었다. 내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 아버지는 대답을 위해 빛나는 생선껍질로 제본된 이 절지 메리안판 성서(Merian Bible)를 가지고 와서 구약, 아마도 모세 5경을 펼쳤다. 그리고 어떤 구절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Y박사는 전혀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아들은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 아버지가 노망이 들어 흥분상태로 의미 없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이 결코 병적인 흥분으로 나온 헛소리가 아니고 너무나 유식하고 현명한 논란이어서 우리의 둔한 머리로는 따라갈 수 없을 뿐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열정적으로 심오한 이념에 넘쳐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짜증이 났다. 그리고 아버지가 우리와 같은 세 사람의 바보들 앞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유감이라고 생각했다.그때 장면이 바뀌었다. 아버지와 내가 길을 건너 집 앞에, 아마 장작을 쌓아 놓는 작은 헛간 같은 곳을 향해 서 있었다. 우리는 크게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큰 나무가 잘려서 쓰러지는 소리였다. 나는 거기서 최소한 두 사람의 노동자가 바쁘게 일하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게 그 장소에는 귀신이 잘 출몰한다고 말했다. 일종의 소리를 내는 요정들(poltergeist)이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게 틀림없었다.우리는 두꺼운 벽으제가 되었다. 이어서 그의 내면의 세계로 전환하면서, 즉 나이 먹으면서 융의 탐구는 그가 76세 때 쓴 이 욥에 관한 작은 책과 더불어 끝났다.융이 이 『욥에의 응답』에서 묘사하고 있는 야훼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이고 자아도취적이다. 이미 충분히 언급해왔듯이 야훼의 이중성, 곧 그의 어두운 부분을 명료하게 들추어내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이것은 불경스러운 것이다. 어떤 하나님이 그런다는 말인가? 그러나 융은, 예전 11세 때 바젤 대성당 위에 배변하던 하나님의 환상 때와는 달리 이와 같은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정면으로 하나님의 원형과 대면한다. 아니면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융은 그의 의식을 신성에 대한 그의 이미지와 경험에 대항해서 곧추세우고 있다. 그가 그의 어린 시절의 환상을 이해하기로는, 대성당을 산산히 부서뜨리고, 어마어마한 똥으로 기독교 교회를 매말라 버리게 한 것은 그가 아니라 하나님이었다.융의 ‘자아’와 ‘자기’ 사이의 내적 전투는 지속되었고, 이런 양상의 중요한 열쇠는 초기 그의 아버지에 대한 영적 실망에서 찾을 수 있다. 『욥에의 응답』에서 융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대답을 요구한다. 그러나 욥과는 달리, 그는 굴복되지는 않는다. 융이 그것에 설수 있는 사람들을 증명해 보이고 요구한 것처럼, 사람은 정면으로 누미노즘을 만나야 하고 그것이 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합할 수 있는 지 없는 지를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자아’는 ‘자기’와 합의를 만든다. 아니면 일반적인 용어로 말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개인(the individual with God)을 형성한다.욥에의 응답에서 융이 기술하고 있는 것은 개인적 과정이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욥을 통한 적극적 명상(active imagination)으로 하나님과 대화 하고 있다. 융은 욥의 곤경과 동일시하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욥의 무의식적 억울함과 동일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전능한 하나님 앞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든 융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을하기를 고집했다.그러므로 야훼의 물음에 욥은, “자신의 뜻을 어둡게 하고 통찰이 없는 것은 야훼 자신이다”라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야훼는 자신의 전지성으로 자기가 욥을 겁주고자 한 시도가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물론 잘 알았을 것이다. 게다가 야훼의 대극성을 인식한 욥에게 그의 협박은 그리 크게 작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문제는 정작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야훼가 욥의 현실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욥이 얼마나 부당한 처사에 힘들어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기보다, 자기 자신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만 온통 집중하고 있다. 그러므로 욥은 하나님의 변증법적 내적 과정을 촉발시키는 외부적 계기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야훼는 오히려 자기 앞에서 항거하고 있는 자가 욥이 아니라 다른 어떤 강력한 적대자, 즉 그에게 도전할 가치가 있는 자처럼 취급하며 행동한다. 그것은 그의 두 번에 걸쳐 반복된 말에서 잘 나타난다.“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묻는 말에 대답해 보아라.”야훼는 욥에게서 신에 속하는 무엇을 본다. 즉 그는 거기서 그 자신에 버금가는 권력을 본다. 말하자면 야훼는 욥에게 의심 많은 자의 모습을 투사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을 은밀히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두렵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모든 권력수단을 동원해서 상대방에게 힘을 과시하지만, 그것이 욥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훼는 하찮은 욥을 짓누르려 한다.“네가 나의 공의마저 깨뜨리려느냐? 너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나를 단죄하려느냐? 네가 하나님 같은 팔을 지녔으며, 그와 같은 소리로 천둥칠 수 있느냐?”욥은 마치 자신이 신인 양 야훼의 도전을 받는다. 이 현상은 전적으로 야훼의 투사 때문이다. 당시의 형이상학에서는 다른 신이란 없었다. 그에 버금가는 것이란 사탄밖에 없다. 사탄은 야훼 안에 있는 또 다른 속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정의로운 지만, 거기에서는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인류최초의 끔찍한 형제살해 사건이 벌어진다. 이것들은 야훼의 창조행위가 불완전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인류가 창조된 때부터 선과 악이 상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것이 창조의 순간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뱀이다. 이브를 유혹한 뱀은 아담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더 의식화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것은 아담보다 먼저 창조되었다. 그런데 악을 이 땅에 끌어들여 자신의 계획을 꼬이게 한, 그런 뱀을 과연 야훼가 창조했을까? 야훼 자신이 그런 어리석은 행위를 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야훼의 어두운 아들인 사탄의 짓이다.야훼는 아담에 앞서서 파충류를 창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능이 낮은 보통 뱀이었는데, 사탄은 그 뱀 중에서 나무 뱀을 선택해서 그것의 형태로 자신을 위장했다. 그때부터 뱀이 가장 영적인 동물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뱀은 누스(영, 오성)의 상징으로 쓰이게 되었고 높은 존경의 대상이 되었으며, 신의 두 번째 아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허용되었다. 급기야 그 뱀은 낙원에서 아담의 첫 번째 부인 릴리스(Lilith)가 되었으며, 아담은 그녀와의 사이에서 악마의 무리를 낳았다고 한다. 전승설화에서는 아담이 그의 하늘의 전형과 마찬가지로 두 명의 부인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이것을 융식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면 이렇다. 플레로마의 상태, 또는 바르도(Bardo)에서는 물론 완전한 세계의 놀이가 지배한다. 거기에서 조물주는 자신의 조력자로서의 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여성적이고 독립적으로 신 옆에 있던 소피아, 곧 지혜였다. 그때의 세상은 일원론이었기 때문에 갈등이 없었다. 그러나 창조, 즉 시간과 공간에서 명확한 사건으로 세계가 넘어갈 때, 사건들은 서로 마찰하고 부딪치기 시작한다. 플레로마의 세상이 무의식이자 곧 일원론의 세계라면, 천지창조의 세계는 의식의 분화이자 이원론의 세계로의 진입이다. 따라서 창조는 역시 오염된 것으로 판명된신할 한 아들을 원한다. 우리가 충분히 살펴본 바대로 이 아들은 무조건 정의로워야 하며, 이것은 모든 다른 미덕보다도 우선해야만 한다. 하나님과 인간 모두 맹목적인 불의(blind injustice)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에녹은 그의 황홀경(ecstasy)에서 그 자신을 ‘사람의 아들’,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한다. 우리가 욥에게서 단지 추측했거나 불가피하다고 추론했던 신적인 고양(godlike elevation)을 에녹은 체험했던 것이다. 욥 자신은 “그러나 나는 안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 있음을...”이라고 고백했을 때, 그와 같은 것을 예감한 것 같다.간단히 정리하면, 야훼의 내적 불안정성(the inner instability of Yahweh)은 세계 창조의 전제조건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비극적 합창으로 봉사하는 플레로마적 드라마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피조물과의 조우가 창조자를 변화시킨다. 구약성서에서 우리는 기원전 6세기경부터 이러한 발달의 흔적들이 증가하는 것을 발견한다. 두 주요 정점은 처음이 ‘욥의 비극’이고 두 번째가 ‘에제키엘의 계시’이다. 욥은 죄 없이 고통당한 자(the innocent sufferer)이고, 에제키엘은 야훼의 분화와 인간화(the humanization and differentiation of Yahweh)를 목격한 사람이다. 『에녹서』는 대규모로 이를 미리 예기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은 아직 땅에 발붙이지 못한 채 단순한 계시로서 공중에 떠 있었다. 융은 생각하기를 기독교가 어느 날 느닷없이 세계사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배경에 의해 역사적으로 준비된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출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강조한다.⑧ 하나님 육화의 모델-그리스도사탄에 의해 원죄를 저질러 타락한 인류의 시조에서 나온 첫 번째 아들인 카인은 실패작이었다. 그는 사탄의 이상화된 상이었으며 작은 아들 아벨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모상(copy)이라면, 아벨이 성공적인 하나님의 아들인데 그는 신인의 선있다.
    심리과학| 2014.11.07| 43페이지| 3,000원| 조회(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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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의식에 관하여
    무의식에 관하여? 프로이트 이전과 이후 -1. 무의식의 발견프로이트 이전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인간이 무의식에 지배받고 있음을 증명하고 이해시킨 것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용기와 업적은 기념비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의식의 개념이 프로이트에게서 만개되기까지는 수많은 역사가 그 밑거름이 되었다.인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무의식 현상에 대하여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그런 것들을 무의식 또는 심리현상이라고 생각하지는 못 했고, 다만 그 시대의 사고방식으로 표현해냈을 뿐이다. 예컨대 원시시대에는 의식 불가능한 현상의 기원을 외부로부터 오는 것으로 알고 병이란, 마술사가 어떤 이물질을 사람 몸에 집어넣어서, 영적 존재의 침투로, 영혼의 상실 때문에, 타부를 위반해서, 마술에 의하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의 치료는 속임수를 써서 치료자가 그 이물질을 빼내는 행위, 귀신축출(exorcism)행위 그리고 몸과 분리된 영혼을 불러들이는 주술적 행위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고대에는 그리스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신비주의자들도 무의식의 개념을 어렴풋하게나마 사용한 바 있다. 비근한 예로 융은 원시 기독교 시대의 영지주의와 중세의 연금술 및 중세 가톨릭 신비주의자들 속에서 그들의 무의식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집단 무의식’의 증거로 삼으면서 그의 분석심리학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어떻든 현대의 무의식을 이야기하려면 서구의 르네상스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서구 사상은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하였기 때문이다. 내용 면에서 볼 때 서구 사상은 다시 절대주의를 거쳐 계몽주의로, 그 후 낭만주의로 이어졌다. 20세기 초에 이르면 이 낭만주의에서부터 실존주의가 꽃을 피우게 된다. 이러한 사상적 골격을 기준으로 역동정신의학의 발달사를 간추려 보면, 절대주의 시대는 중세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시대였기 때문에 정신 질환을 귀신들림으외부에서부터 내부로 끌어들인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메스머의 동물 자기설은 계몽기 내내 각광을 받다가, 서서히 그것의 원동력은 최면술임을 알게 되었다. 이 때 대표적인 인물이 베른하임과 샤르코이다. 샤르코는 인간의 ‘고정된 무의식적 관념’(unconscious fixed idea)이 신경증의 핵일 수도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들도 나중에 자세히 언급된다. 이러한 터전 속에서 자네와 프로이트는 인간내면의 탐구에 혁명적인 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이 과정 속에서 무의식에 관한 것들을 다시 찬찬히 돌아보면 다음과 같다. 즉 자기설과 최면술은 인간 정신의 구조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이것들로부터 인간의 정신은 이중적이라는 개념으로서의 이중 정신설(二重精神說, dipsychism)과 그 정신은 하부인격들의 덩어리라는 개념으로서의 다중 정신설(多重精神說, polypsychism)이라는 두 모델이 발전되어 나왔다. 초기 자기시술자들은 어떤 사람을 자기수면(magnetic sleep)에 들도록 했을 때, 그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는 전혀 새롭고 더욱 명석한 인격이 출현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19세기 내내 이 두 종류의 정신이 어떻게 서로 관계하는 지에 대하여 관심을 집중해 왔다. 즉 두 인격이 서로에게 열려있는(open) 상태인지 아니면 닫혀있는(closed) 상태인지 하는 의문을 초기부터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이중 정신설은 『이중 자아(The Double Ego : 1890)』라는 유명한 책을 쓴 드스와(Max Dessoir)가 발전시켰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정신을 두 층으로 구분하면서, 이 각각의 층은 그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즉 그는 이 두 자아들을 각각 ‘위에 있는 의식’(upper consciousness)과 ‘아래에 있는 의식’(under consciousness)이라고 명명하고, 이것들은 서로 복합적인 연상고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는 ‘아래에 있는 의식’을 꿈에서는 암시적으로만 들어나지만 자연적 몽유병 실을 이해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다중 정신설이라는 단어는 자기시술자였던 듀란드(J. P. Durand)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인간의 기관이 해부학적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 정신적 자아를 가지고 있어서 이 모든 자아들은 하나의 통괄적인 자아(a general ego), 즉 최상위 자아(the Ego-in-Chief)의 지배를 받으며, 이 최상위 자아가 보통 말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각각의 하부자아(subego)는 그 자신만의 의식을 가지며, 지각할 수 있고, 기억을 보존하며, 복잡한 정신 작용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하부자아의 합이 우리의 무의식적 삶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면상태에서는 주 자아(主自我)는 옆으로 밀려나기 때문에 최면술사는 직접적으로 여러 하부자아를 접하게 된다고 보았다.‘닫힌’ 이중 정신설은 자네의 잠재의식(subconscious) 개념, 그리고 프로이트의 억압된 기억과 경향들의 총합이라는 초기의 무의식 개념의 전형이 되었고, ‘열린’ 이중 정신설은 융의 무의식 이론의 근거가 되었다. 그래서 융에 있어서 ‘개인 무의식’은 원형으로서의 ‘집단 무의식’에 열려 있다. 프로이트와 융은 모두 이중 정신설에서부터 다중 정신설의 모형으로 나아갔다. 즉 프로이트는 처음의 의식-무의식의 이중모형을 후에 가서는 자아-이드-초자아라는 삼중모형으로 전환했으며, 반면에 융은 인간의 인격을 보다 더 복잡한 조직으로 발전시켰다.병인(病因)에 있어서도 액체설 (또는 동물 자기설)이 부정된 다음, 시술자의 의지의 힘이라는 심리적 개념이 퓌제귀르에 의해 도입되고, 나중에는 심리적 세력 또는 신경의 에너지라는 생각으로 변천하였다. 19세기말에 오면 최면술사나 학구적인 의사들 모두 정신질환은 신경 에너지 결핍의 결과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모호하기는 하지만 최면술 이후 자네와 프로이트 그리고 융으로 이어지는 인간 정신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키는 예비적 개념이 되었다.프로이트 이후실험 심리학자들은 20세기 내내 의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상쩍다는 입장이었다. 인지심리학과 사회심리학은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꺼렸다. 그러나 소수의 과학자들은 무의식에 관한 실험을 끈질기게 수행했다. 그 결과 무의식적 과정이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몹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런 과정은 반드시 조사되어야 했다. 오늘날 고전이 된 1980년대의 그 실험들은 사회적 행동의 무의식적, 자동적 요소에 대해서 강력한 증거를 보여주었다.우리가 사실은 무의식의 영향 때문에 스스로의 감정, 행동, 타인에 대한 판단, 비언어적 소통방식의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가 1980년대에 잇따라 나왔다. 심리학자들은 결국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의식적 사고가 차지하는 역할을 재고하게 되었고, 무의식이라는 용어가 부활했다. 가끔은 무의식 대신에 다른 의미로 더럽혀지지 않은 ‘비의식’, ‘자동적’, ‘암묵적’, ‘비통제적’ 의식과 같은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이 쓰이기도 했다.19세기 과학자들은 신경세포가 활동할 때 혈액순환이 증가한다는 점이야말로 뇌의 어느 부분이 어는 시점에서 작동하는지를 알아내는 열쇠라고 보았는데, 정확한 판단이었다. 세포가 활동을 할 때는 산소 소비가 늘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로 두개골 외부에서 뇌의 산소 소비를 지도화할 수 있다. fMRI는 MRI 기계를 약간 변형해서 뇌 속 원자들의 양자 전자기적 상호작용을 이용한다. fMRI는 정상적인 뇌가 가동하는 모습을 비침습적(noninvasive)으로, 삼차원으로 탐구할 수 있다. 뇌의 지도를 제공함은 물론, 그중에서 어느 부분이 어느 순간에 활동하는지도 알려준다. 활동 영역이 시간에 따라서 어떻게 변하는지도 추적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특정 정신과정을 특정신경경로나 특정 뇌 구조와 짝지었다.오늘날 신경과학자들은 흔히 뇌를 기능, 생리, 진화적 발달을 기준 삼아 셋으로 거칠게 나눈다. 1) 가장 원시적인 영역은 ‘파충류 엔스가 유일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해부학적으로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은 약 20만 년 전, 행동과 문화면에서 현재의 인간적 특징을 띤 것은 불과 약 5만 년 전부터였다. 선조 호모 종에서 현재의 우리까지 오는 동안, 뇌는 두 배로 커졌다. 커진 부분들 중 가장 많이 차지하는 곳이 전두엽이었으므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몇몇 특징들을 관장하는 장소가 전두엽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전두엽에는 미세운동의 선택과 실행을 담당하는 영역들이 들어 있다. 특히 손가락, 손, 발가락, 발, 혀의 움직임을 담당한다. 이런 움직임이 야생에서의 생존에 중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얼굴 움직임의 제어도 전두엽에서 한다. 얼굴표정의 섬세한 변화 역시 사회적 소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간 생존에 중요한 요소이다. 전두엽에는 운동관련 영역들 외에도 전전두엽피질이라는 구조가 있다. 이것은 이마 바로 뒤에 있다. 인간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 구조에서이다. 전전두엽피질은 목표에 따라서 생각과 행동을 계획하고 조정하며 의식적 사고와 인식과 감정을 통합하기 때문에, 이곳을 의식의 장소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변연계에 해당하는 복내측 전전두엽피질과 안와전두엽피질은 전전두엽피질에 포함된 하부구조들이다.이처럼 뇌를 거칠게 세 부분으로 나누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각의 기능을 구분지어 실행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실재에서는 수많은 신경연결이 세 영역을 잇고 있어서 세 영역이 하나로 통합되어 협동적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의식과 무의식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변연계가 주로 감정의 영역이고, 신피질이 주로 사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여 변연계에서는 무의식이, 신피질에서는 의식이 활성화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 모든 것들이 서로 통합하여 활동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로 그렇다는 표현은 쓸 수 있을 테지만...어떻든 이와 같은 심리학이 엄밀한 실험과학이 되기를 바랐던 분트나 제임스와 같은 선구자들의 꿈은 드디어 현실이 되고 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에는.
    인문/어학| 2014.05.16| 8페이지| 1,000원| 조회(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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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상관계이론과 종교 - 애너-마리아 리주토의 『살아있는 신의 탄생』
    대상관계이론과 종교- 애너-마리아 리주토의 『살아있는 신의 탄생』 -1. 대상관계이론에 대한 프로이트의 공헌리주토는 대상관계이론에 입각한 인간의 신의 표상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프로이트 이론을 정리하고 있다. 다음은 그녀의 정리 내용이다.종교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반복되는 프로이트의 전제는 대상으로서의 아버지가 신 개념 형성에 본질적인 내용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악마의 개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신분석학은 아버지 콤플렉스와 신에 대한 믿음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은 개인적인 신이 심리학적으로 고양된 아버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신과 악마의 개념형성에 필요한 자료들을 제공해주는 대상 표상(object representation)이다. 즉, 아버지는 신과 악마에 대한 개인적 원상(imago)이다. 다른 두 아버지가 이 과정에 기여하게 된다. 한 아버지는 원시집단의 원초적 아버지(primal father)로서 그의 영향력은 조상을 매개로 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미친다. 다른 아버지는 현재의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아이의 실제적인 아버지에 대한 대상 표상이다. 비록 악마에 대한 것은 보통 사람에게 잘 나타나지 않아서 개인의 정신생활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 악마적인 생각의 자취들을 설명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원초적 아버지와 실제적 아버지 모두가 신과 악마라는 두 대상 표상의 형성에 기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프로이트가 대상관계이론에 공헌한 점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모든 새로운 대상들은 내재화된 원상을 이용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 대상들은 원상들의 정황 속에서만 감지되고, 리비도적 애착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2) 대상이 내재화 되는 과정은 어린 시절이 끝나면서 중지된다. (3) 대상의 최종적인 내재화는 어떤 식으로든지 신성의 내재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개인의 사적인 신을 이해하는데 기여한 프로이트의 공헌은 다음과 위니캇(W. Winnicott)의 이론으로 신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다. 즉 유신론적인 종교를 위한 심리적 영역은 환상과 놀이가 발생하는 중간영역이며, 이 공간은 우리의 심리적 경험과 우리가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종교라는 문화적 공간은 우리 자신이 신을 필요로 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스며들어 와 있는 부모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믿음, 신화, 종교적 의식과 예배형식으로 구성된)의 영역이다.결론적으로 대상관계이론의 입장에서 종교의 문제를 리주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신은, 중간대상 - 장난감, 담요, 또는 정신적인 표상 - 이 강력하고 실감나게 환상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 안에서 아이가 창조한 하나의 특별한 대상 표상의 유형이다. (2) 모든 중간대상이 그러하듯이 신은 ‘밖과 안에 그리고 안팎의 경계선에’ 동시에 위치한다. (3) 신은 특별한 중간대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곰 인형이나 담요처럼 푹신한 천으로 만들어진 대상이 아니라 표상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표상은 일차적 대상 표상들로부터 왔다. (4) 신은 다른 중간대상이 일반적으로 따르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도 특별한 중간대상이다. 일반적으로 중간현상이 전체 문화 영역으로 확산되면서 중간대상은 점차 그 대상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풀려나고, 결국 몇 해 안에 그 의미를 잃는다. 그러나 신은 전성기기 동안에 점차 관심을 받다가 오이디푸스 시기에 절정에 도달한다. 이어서 신은 오이디푸스 위기가 해소된 후에 승화된 리비도적 대상이 된다. 이후로도 중간대상 표상으로서의 신은 항상 더 큰 인정이나 더 큰 거절을 위해 잠재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신은 전 생애를 통해 중산대상으로 남아 있으면서 자기 자신, 다른 사람들 그리고 삶 자체와의 관계에서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것은 그 신이 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마치 곰 인형처럼 아이가 인생에서 발견한 일차 대상으로부터 신적 요소의 절반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신적 속성의 나머지 절반은 자신의욕구충족의 경계를 넘어 서로에게 반응한다. 위니캇의 표현대로 하면 그들은 각각 서로의 눈을 통해서 놀이의 영역으로, 즉 중간영역으로 들어간다. 스피츠(Spitz)는, “유아가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젖을 먹는 동안 입 안의 감각을 느낄 때, 그는 촉각적 지각과 시각적 지각을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전체 상황을 분화되지 않은 하나의 전체로, 즉 그 안에 있는 경험의 한 부분을 전체적 경험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형태적 상황으로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에릭슨(Erikson)은 이 발달단계 동안 기본적인 신뢰(basic trust) 능력이 발달한다고 보았고, 말러(Mahler)는 이때 자기와 대상은 공생관계에 있게 된다고 보았다. 이때 코헛이 말하는 ‘자기 대상’(the self-object)이 형성되기 시작한다.사람은 그가 칭찬받을 만하고 감탄할 만하다고 보는 어머니의 눈빛을 기대한다. 대상과의 자기애적 관계를 경험하는 처음 단계에서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대상이 그를 칭찬 받을 만하고 훌륭하고 힘 있는 아이로 보아주는 것이며 이는 보통 어머니의 눈빛을 통해서 반영된다. 위니캇과 코헛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핵심적인 경험인 타자 또는 거울에 의해서 반영(mirroring) 받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고 서술한다. 그것은 생의 초기에 아이들이 갖는 첫 번째 직접적인 경험으로서 신표상의 형성에 사용되는 경험이기도 하다. 리주토는 ‘자신에 대한 최초의 통합 경험’이 ‘어머니에 대한 최초의 통합 경험’보다 앞선다고 제안한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는 아이에게 아이 자신의 표상을 주기 위해, 즉 그의 모습이 어떤지를 말해주기 위해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의 얼굴과 몸의 부분들의 이름을 말해주기 위해 거기에 존재한다. 위니캇이 말했듯이 어머니의 눈과 전체 얼굴은 아이의 첫 번째 거울이다. 후에 그 경험은 첫 번째 신의 표상 형성에 직접적으로 사용된다. 창세기 1: 27 “신이 자기 형상 곧 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청조하셨다”는 말은 신의 반영(mirroring) 기능을 잘 자존감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한, 그리고 자기애적 격노를 길들이기 위한 방어적 요소에 기초한 것이다.이러한 실패의 예가 바로 프로이트다. 리주토는 이러한 유형의 붕괴를 프로이트가 겪었을 것이라고 보고 그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그 붕괴가 그로 하여금 인간이 자신의 이미지에 따라 신을 창조했다는 생각을 갖게 했고, 또한 두 살 때는 명백하게 존재했던 그의 신 표상을 정교화하는 작업을 중단하게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사랑했던 유모가 신앙이 깊은 사람이었고, 자주 그를 예배에 데리고 갔던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는 해고되었고 심하게 가치 절하되었다. 이것은 어린 시절 프로이트가 그의 신표상을 형성하는데 사용했던 그녀에 대한 과대적 원상이 파괴된 사건일 수 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프로이트가 신에 관해 설교했을 때 그의 어머니가 그것을 우습게 여겼던 일이다. 그의 어머니는 프로이트를 자신의 분신처럼 귀히 여겼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잘 난 자식으로 생각했던 여인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프로이트의 종교적 열정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사실상 프로이트 어머니는 종교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어떻든 이 두 경험들 모두는 신 표상을 정교화하는 그의 능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그로 하여금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가 다른 영역에서 성취했던 것과는 달리 인간 경험 영역 안에서 성숙의 깊은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던 것으로 보인다.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신 표상에 있어서 반영적 구성요소는 아이와 어머니의 눈맞춤, 어머니의 초기 돌봄 그리고 반영해주는 어머니의 인격적 행위 등에서 최초로 경험된다. ② 반영에 대한 욕구는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화하는 것이지 결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신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경험들과 연결시킬 수 있을 때, 아이는 자신이 반영 단계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이 신 표상을 정교화하는데 최초의 재로들로 사용하게 된다. 만약 아이가 반영 경험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nthropomorphic causality)에 대한 초기 개념에 속한다. 그는 곧 물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그는 누가 이 물건 또는 저 물건을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 하고, 누가 바람과 해와 가장 중요하게는 아기를 만들었는지를 묻는다. 아이의 생각으로는 모든 인과관계의 작인은 추상적인 원리나 기계적인 요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바라기 때문이다. 예컨대 만약 어른들이 신이 구름을 만들었다고 대답하면, 아이는 신을 구름 같은 큰 물건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큰 사람으로 상상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모든 아이들은 신이 힘이 세고, 존경할 만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며,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느낀다. 아이는 경험을 통해서 그러한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직 두 사람, 즉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는 그 순간에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모의 표상을 이용하여 자신의 신 표상을 만들 수밖에 없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때 아이는 그가 들은 대로 수많은 물건을 만드는 신의 위대한 역할에 적합하도록 부모의 표상을 ‘높인다.’ 그러나 결국 그의 끊임없는 질문들 속에서 누구도 신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 순간 모든 것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그의 개념이 무너진다. 그러나 그 결과는 확실히 신은 보통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4) 남근기 : 이 연령의 아이에게 있어서 자기 가치에 대한 자기애적 몰두는 매력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대상관계적 소망들과 서로 얽히게 된다. 아이는 그가 선호하는 부모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얻기 위해 적대자인 부모와 오이디푸스 경쟁에서 승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이 패배한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부모를 통하여 아이는 자신이 작은 어린아이이며 어머니나 아버지의 가장 친한 동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부모의 엄격한 행동과 함께 강렬한 거세공포와 굴욕감으로 인해 아이는 당분간은 자신이 실제로 작은 존재라는 사실과, 다른 한 사람에게 가.
    인문/어학| 2014.05.16| 9페이지| 1,000원| 조회(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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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이트와 종교
    프로이트와 종교프로이트가 중요하게 여겼던 문제들 중 하나가 바로 종교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1904년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The Psychology of Everyday Life)에서 창세기의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구절을 “인간이 자신 안에서 신을 창조했다”로 바꾸어 놓게 된 배경을 훌륭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 이후 종교에 관한 그의 연구는 이 강력한 최초의 사상으로 거듭해서 되돌아갔다. 그는 이런 사상을 확장 발전시켜 나갔다.그는 1907년에 「강박행위와 종교의식」이라는 첫 종교 논문을 발표했다. 이것은 그가 종교를 하나의 병적 현상으로 보았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글이었다. 그는 종교를 강박신경증의 일종이라고 보았다. 이어서 그는 1913년 분트와 융의 영향을 받아서 「토템과 타부」라는 종교기원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그 이후 1927년 종교의 본질을 밝히려고 한 「환상의 미래」, 1930년 「문명속의 불만」, 1933년 「신 정신분석 입문강좌」의 말미에서, 그리고 1939년 그의 마지막 저서인 「모세와 일신교」 등에서 종교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1) 프로이트 무신론의 발생 배경프로이트는 무신론자였다. 마르크스 무신론과 더불어 프로이트 무신론의 할아버지는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Ludwig Feuerbach; 1804-72)이다. 포이에르바하는 신학자로 출발해서 헤겔주의자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무신론적 철학자(atheistic philosopher)가 되었던 인물이다. 철학은 신학이 아니라 자연과학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프로이트 시대를 잠깐 돌이켜 보면 다음과 같다. 프로이트가 태어나기 2년 전인 1854년에 로마 교황 피오 9세(Pius IX)가 성모 무염시태(無染始胎: Mary`s immaculate conception) 교리를 선포하였을 때, 독일 괴팅겐에서 열린 제31차 독일 자연 과학자와 의사들의 모임에서 철학적 혹은 과학적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공개토론이 벌어졌다. 이것은 해부학과 생리학을 가르치유능한 체코 출신 유모가 있었는데, 그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여서 어린 프로이트에게 천당과 지옥, 예수의 구속(redemption)과 부활 같은 교리를 주입시켰다. 그녀는 어린 프로이트를 미사에 종종 데리고 다녔다. 그 후 집에서 프로이트는 미사 드리는 흉내를 내거나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설교하고 설명하는 흉내를 내는데 익숙했다. 어쨌든 이것이 훗날 프로이트가 기독교의 의식과 교리에 반감을 갖게 된 근원이 된 것은 아닐까? 프로이트가 1907년 발표한 첫 종교 논문 제목이 「강박행위와 종교의식」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그는 강박신경증을 ‘종교의 병적 대응물’(a pathological counterpart of the formation of a religion), 종교를 ‘인류공통의 보편적 강박신경증’(a universal obsessional neurosis)이라고 기술하고 있다.두 번째 가톨릭 반유대주의 체험은 다음과 같다. 프로이트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그는 비유대인 친구가 거의 없었다. 반유대주의적 그리스도인들로부터는 매일 온갖 종류의 모욕이 쏟아졌다. 그는 12세 때 아버지가 겪은 일, 즉 한 소년이 길 가던 아버지의 새 털모자를 벗겨 진흙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야 유대인 놈아! 길 아래로 내려가!”라고 외치자 그의 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이를 감수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졌다. 이런 체험들은 어린 프로이트에게 증오와 복수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불신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69세 때의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열등감과 소외감을 느끼도록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것들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어떻든 그 당시 물리주의 생리학(physicalist physiology)은 관념주의 자연철학(idealist philosophy of nature)을 완전히 몰아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 여인을 성적으로 취하면 안 되는 두 가지 타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 년에 한 번씩 토템 동물을 죽인 후 그 씨족 또는 부족의 힘을 새롭게 강화시키기 위해서 그것을 나누어 먹는 의식을 가졌다. 이 준성사적 토템잔치(quasi-sacramental totem-meal)로부터 신성한 존재(처음엔 동물형태)에 대한 숭배와 희생제사가 나왔다는 것이다.이러한 진화론적 인종학적 가설들의 배경 속에서 프로이트의 종교에 대한 생각이 형성되어 나갔다. 처음 그는 자신이 1907년에 발표한 「강박행동과 종교」에서 제안한 “종교의식은 신경증적 강박행위와 유사하다”는 논제를 종교 역사에서도 확증해 보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는 이런 내용을 4 편의 논문으로 정리하여 『토템과 타부』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원시인들의 관습이나 종교적 태도가 신경증 환자들의 강박행위와 비슷하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원시인들의 정신생활의 일면이 현대까지 남아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였다.이제 프로이트의 노력을 간단히 돌아보자. 그는 어린이의 동물공포증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어린이의 동물공포증이란 애증을 갖게 하는 아버지에 대한 공포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어린이에게 아버지는 엄마와 달리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오이디푸스적 관계로 보면 징벌하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포는 토템신앙에서 원시부족들이 토템 동물을 대할 때의 심정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들도 토템동물을 죽이는 것을 금하면서도 일 년에 한번 그 동물을 희생시키는데서 알 수 있듯이 토템 동물에 애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토템동물은 또한 자신들의 시조(최초의 아버지)의 상징이었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토템신앙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결시킬 수 있는 실마리를 잡았다. 만일 그것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련된다면 토템의 타부인 토템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과 동일한 토템에 속하는 여성은 성적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지와의 화해가 이루지는 것이라면, 속죄해야 하는 죄는 당연히 아버지 살해의 죄일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아들 그리스도가 그 죄에 어울리는 자기희생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과 화해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서양)는 이런 기독교를 통해서 원시 시대에 지은 죄를 적나라하게 인정하는 셈이라는 것이 프로이트의 논리이다.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 기독교의 성찬식인데, 그것은 토템잔치가 거의 변형 없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찬식은 본질적으로 아버지를 다시 축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자면 그 범죄 행위의 반복인 것이다. 다음은 프로이트의 설명이다.아들은 대체로 여자들 때문에 아버지를 반역하게 되는데 아들의 자기희생은 여자들을 전적으로 포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아버지와의 화해는 거의 완벽해진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에 양가적 감정이 들고 일어나 그 반대의 권리를 요구하고 나선다. 아버지에게 최대한으로 보상하고 화해하려는 바로 그 순간 아들은 아버지에 ‘대항’하려는 소망을 달성한다.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아니 아버지를 대신해서 신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들의 종교는 아버지의 종교와 교대한다. 그리고 이 교대의 표상으로 그 이전의 토템 향연이 성찬식으로 부활한다. 이제 이 대목에 이르면 동포들은 아들의 고기나 피(아버지의 고기나 피가 아니다)를 받아들여 음미하고, 이 음미함을 통해서 신성을 성취한 아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이처럼 기독교에서는 아버지 살해 개념을 종교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초기 기독교의 형태를 만든 바울은 인류가 하나님 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에 불행하게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목숨을 희생 제물로 바친 후에야 인류가 이 죄에서 풀려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다. 한 편 이 아들은 아버지를 대신하게 되어서, 아버지 종교로 출발했던 기독교는 이제 아들 종교로 탈바꿈하였다. 아버지를 몰아낸다는 것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러나 원초적 아버지(primal father칙에 대한 지식이 증가하면서 종교적 관념은 세 번째인 도덕적 기능에 집중되었다.이처럼 종교는 나약한 인간이 보호받고 싶어하는 원망적 사고가 기본이 되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 다시 말해서 관능적-본능적 삶(sensual-instinctual life)의 산물이고 응용 심리학적 기법을 통해서만 해독이 가능한 환상(illusion)일 뿐이다. 여기서 ‘환상’이란 말은 (1) 종교가 도덕적으로 거짓이라거나, (2) 인식론적 의미에서의 오류라는 뜻이 아니다. 그리고 (3) 비현실적이라거나 현실에 반한다는 뜻도 아니다.프로이트는 「환상의 미래」의 결론 부분에서 종교가 인류의 보편적인 강박신경증이며, 어린아이의 강박신경증과 마찬가지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생겨났음을 다시 한 번 더 정리한다. 그러면서 만일 이 견해가 옳다면 성장과정이 불가피한 운명처럼, 인류가 종교에 의존하다가 더 성장하여 그 종교를 떠나는 것도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고, 지금 우리는 그 발달 단계의 한 복판에서 종교를 막 떠나려 하는 중대한 시점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나약하여 힘 있는 부모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유아가 성장해야만 하듯이 인간은 영원히 어린애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결국 적대적인 생활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현실에 대한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진보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것이 이 책의 유일한 목적”이라며 인간의 성장능력을 강조했다. ‘현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종교의 해체에 따르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이 아니라 순수하게 인간에 바탕을 둔 새롭고, 합리적이고, 실제적인 세계관의 형성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이것은 살인의 금지와 문화적 규제들을 신의 계시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성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감정과 본능적 소망들을 지성과 이성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개인이든 종족이든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아있을 수는 없다. 인간은 성장하지 .
    인문/어학| 2014.05.16| 11페이지| 1,000원| 조회(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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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학] 융의 하나님 형상에 관한 연구
    C. G. Jung의 하나님-형상(the God-image)에 관한 연구1. 서론하나님-형상은 현대인의 정신을 이해하는데 중심이 되는 개념 중하나이다. 특히 그리스도교 문화 속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돋보인다. 융이 말하는 하나님-형상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화적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거시적으로는 사회현상의 진화적 과정으로, 미시적으로는 개인 정신의 발달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거시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서구인의 역사는 하나님-형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의 하나님-형상은 그것의 진화적?역사적 발달과정을 통해 일련의 변형을 겪어왔으며, 융은 그의 현상학적 방법으로 지금의 우리가 하나님-형상의 발달에 있어서 또 다른 진화적 도약의 경계선상에 놓여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과정을 에딩거(Edward F. Edinger)는 역사적으로 연속되어 있는 여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 단계들은, (1) 정령신앙(animism)기, (2) 모권제(matriarchy)기, (3) 위계적 다신숭배(Hierarchical polytheism)기, (4) 종족 일신교(tribal monotheism)기, (5) 보편적 일신교(universal monotheism)기, (6) 정신의 발견 즉 개성화(the discovery of the psyche, individuation)기 등이다(Edinger, 1996 : xv-xxii).(1) 정령신앙기는 역사적으로 인류의 수렵채집기의 특성에 속한다. 이 때는 자율적인 객관적 정신(the autonomous objective psyche)이 산만하게 확산되어 있다고 믿고 그것들을 경험했던 시기이다. 그 원초적 정신은 동물, 나무, 장소, 강 등 어디에서나 자율적 영혼을 경험한다.(2) 모권제는 땅을 경작하기 위해 수렵과 채집은 덜 중요시되고 보다 더 안정된 사회가 우선적으로 중요하게 되었던 농경문화에서 발생한다. 이때의 인간은 자양분이 풍부한 대지의 위대한 어머니가 원초적 요인이 되는 하나님-형상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데카르트(Ren Descartes, 1596-1650)는 이러한 인식론을 더욱 발전시켜서, ?Cogito ergo sum"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제시하였다. 이 말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번역하기보다, ?나는 의식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번역해야 보다 더 정확한 번역이 된다. 다시 말해서 가장 확실한 지식의 기초는 인간의 사고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나 지각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이처럼 데카르트에 있어서 확실한 지식의 기초는 주관적 경험이었다(Edinger, 4).뒤이어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이러한 정신의 주관성을 매우 정교하게 관찰한 끝에 더욱 더 심오하게 발전시켰다. 칸트의 기초적인 발견은 선험(a priori)이라는 주관성의 형태와 범주들이었다. 칸트에 의하면, 바깥 현실의 지각은 선천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지각방법으로 순서 지어져 있고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각의 이런 형태는 시간과 공간이다. 시간과 공간은 바깥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마음이 물결처럼 밀려오는 지각자료들을 정돈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지각의 형태들이다. 더욱이 지각하는 것들을 파악하고 개념화하는 힘은 타고난 이해의 범주에 달려있다(6).이러한 범주에 따라 그는 ?현상적 사실?과 ?물 본체적(物本體的, noumenal)인 것?을 구별하였다. 즉 ?현상적 사실?은 시간과 공간의 선험적 범주로 결정되는 감각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물 본체적인 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현상은 감각과정의 결과이고, ?물 본체?는 아니다. 그리고 인간의 지식은 다만 현상적 사실의 한계 내에서만 가능하며, ?물 본체?는 인간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Charet, 1993 : 287). 따라서 논리적으로 형이상학은 인식이 불가능하다. 즉 형이상학은 인간이 자기초월적 세계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아래에서 성립되기연속성을 단절시킨다. 이러한 단절은 물론 공포나 무의식적 강박행위에서도 나타나지만 본능으로서의 무의식적 행위는 유전성, 균일성 그리고 규칙성을 가지므로 그것들과 구별된다(CW 8. par. 266). 이처럼 본능은 학습되거나 훈련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본능은 한편 직관적 요소를 가지는데, 그 직관은 무의식적인 내용이 의식으로 갑자기 돌출되어 나오는 것이다. 직관은 지각의 과정이기는 하나, 그 때의 지각은 의식의 행위에서와는 달리 무의식적이다. 그러므로 직관은 ?본능적? 이해 행위(an "instinctive" act of comprehension) 이다. 직관과 본능이 그 과정에 있어서는 이처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본능이 보다 상위의 복잡한 행위를 수행케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충동(a purposive impulse)이라면, 직관은 보다 상위의 복잡한 상황 수용을 목적으로 하는 무의식적 이해력(the unconscious, purposive apprehension)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직관은 본능의 경이로운 뒷면이라고 할 수 있다(par. 269).무의식의 보다 깊은 층(집단적 무의식)에서 융은 선험적 ?직관?의 타고난 형태(a priori, inborn forms of "intuition")를 발견하고 있다. 이 타고난 ?직관?이란 모든 정신과정의 선험적 결정인자들인 ?지각과 이해력의 원형들(the archetypes of perception and apprehension)?을 주로 지칭하는 것이다(par. 270).다시 설명하자면, 본능이란 선험적이고 유전적인 것 즉 본래 우리 안에 있는 속성이다. 집단적 무의식은 바로 이러한 본능에 속한다. 그런데 그 집단적 무의식 안에는 본능적 ?직관?이라고 하는 무의식적 이해력이 존재한다. 그 무의식적 이해력인 ?직관?은 한 마디로, ?지각과 이해력의 원형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집단적 무의식은 본능적으로 지각과 이해력의 힘을 가진다. 이것이 바로 집단적 무의식이 근본적으로 인간의 성 앞에서 인간의 권리를 표명하는 일종의 중보자 또는 옹호자를 갈망하게 하였다(313)고 융은 덧붙이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가 인간의 형상으로 인간 안으로 내려온다. 에스겔의 환상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즉 하나님은 그 자신을 인간의 형상(인자)으로 하고 에스겔 앞에 나타난다. 그 형상은 다니엘 7장에서 지속되고, 중보자 형태는 에녹서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융은 그리스도가 에녹서의 인자형상과 유사해서 자신을 그것과 동일시했다고 생각했다(Edinger, 79).이러한 신성의 육화는 두 가지 측면을 내포한다. 첫째로 육화된 신성은 하나님이 인간의 반응에 의하여 좌우될 수 있다는 관점을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육화된 신성은 인간 내면에 있는 신성의 발견 또는 자각 여부에 따라 그 힘이 발휘된다는 점이다. 즉 인간이 취하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또한 하나님 존재양태에 영향을 준다. 인간은 하나님에게 의존되어 있고 하나님 역시 인간에게 의존되어 있다는 양방향성의 존재양태는 예측할 수 없는 왕을 달래기 위한 찬양 또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향한 어린아이의 기도 대신에, 책임감 있게 사는 삶과 우리 안에서 신성한 의지가 충만케 하는 것들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예배일 것이며 하나님과의 교제일 것임을 일깨워 준다(Jung, 1975 : 316).둘째로 신성의 육화는 결과적으로 선과 악을 뚜렷하게 갈라놓는다. 이 신성의 육화를 심리학적으로 다시 해석해 보면, 야훼는 의식이 반영되지 않은 형상(an unreflected image)으로써 아직 선과 악의 대극적 분화가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과의 괴리를 알면서 그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면 의식차원 밖에 있던 하나님은 하나님-형상을 통하여 인간과 관계를 맺는다. 즉 무의식의 의식화인데, 이렇게 무의식의 하나님이 의식화의 과정으로 들어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신성의 육화이다. 이 과정을 통하여 미분화 상태의 야훼는 의식이 반영되는 형상(a reflected image)이 되면서 양 대극으로 대극과 연합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에 대한 답이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 사건 속에 있다.융이 지금까지 설명해 왔듯이 그리스도교의 ?자기? 즉 하나님-형상이란 그리스도와 적 그리스도, 이 둘 모두를 포함하는 원형이며, 이 둘 모두가 그리스도교적 상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융은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이라는 상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심리학적 해석을 내리고 있다.두 도둑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린 구세주의 이미지는 그리스도와 적 그리스도가 갖는 동일한 의미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리스도와 적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해주는 위대한 상징이다. 그 상징들은 우리 의식의 분별력을 점진적으로 발달시켜서 우리 마음속의 갈등을 알게 하여 우리를 위협 가운데 놓이게 하며, 또한 화해할 수 없는 대극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자아?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는데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자연적으로 거기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자아?는 완전히 죽는다. 의식의 핵심이 파괴되어야 완전한 무의식이 활동하기 때문이다.해결할 수 없는 의무적 갈등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우리는 최상의 궁극적 결정을 해야 한다. 이때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자아?의 상대적 죽음뿐이다. 다시 말해서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 있기만 한 방관자로서의 ?자아?는 단지 무의식에 복종하여 그것의 결정에 따라야만 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본래 그 안에 적절하게 속해 있어야 하는 ?그림자?를 내포하고 있지 못한 ?자기?의 그리스도교적 상징이지만, 이것은 개성화의 심리적 양상을 그리스도교 전통의 관점에서 조심스럽게 예시해 주고 있다(par. 79).융은 두 도둑과 함께 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상징을 하나의 개성화 과정의 틀이라고 보았다. 개성화란 무의식으로부터 의식으로, 그리고 ?자아?로부터 ?자기?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서 각각 분리되었던 ?자아?와 ?자기?가 서로 연합?화해되어 가는 다.
    인문/어학| 2003.10.22| 20페이지| 1,500원| 조회(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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