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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계천재가 된 홍대리 를 읽고
    ‘회계 천재가 된 홍대리’를 읽고……최현미‘회계 천재가 된 홍대리’는 이야기 형태를 빌어 회계 문외한들에게 회계를 알려주는 책이다. 그런 연유에서 회계의 실무보다는 회사 경영에 관련된 한편의 드라마 같은 책이었다. 실제로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소설의 구성단계를 가지고 있고, 갈등과 위기, 배신이라는 소설적인 장치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편으로는,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단서가 되는 것이 항상 과소평가 당하던 재무제표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소설책임과 동시에 회계책임이 틀림없다.‘회계 천재가 된 홍대리’의 1편과 3편에서 공통적인 요소가 바로 회사의 위기이다. 여느 드라마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그래서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현실 속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 바로 믿는 도끼에 발목이 찍히는 일이다. 1편에서는 여사장을 도우며, 회사의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고 있다고 믿었던 정태호 상무는 비자금을 조성하고 재무제표를 조작하는 비행을 저지르며 최고 경영자의 자리를 차지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런 내부의 공격을 미리 발견하게 해 준 것이 바로 재무제표이다. 3편에는 홍회장의 수족이라 할 수 있었던 박시모 구매부장은 거래처에서 리베이트를 받아 챙겼고, 문대호 영업 부장은 경쟁사로 옮겨가 회사를 공격하였다. ‘엎친데, 덮친격’ 이라는 표현이 꼭 맡는 이 상황에서, 주인공 홍대리에게 유일한 무기가 되어 주는 것이 바로 재무제표이다. ‘지피지기백전불태 [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말처럼, 재무제표라는 청진기를 통해 자사를 잘 파악하고 난 뒤에야, 절세 [節稅]와 같은 방패와 투자와 같은 창으로 공격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지은이가 세 권의 책을 통해 계속해서 강조했던 것은, 이런 재무제표들이 외부관계자들을 위해 보여주기 목적으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가장 기초가 되는 재무제표를 간과해서는 안되겠다.-동상이몽-각 부서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지만, 모두 제 각각이다. 영업부는 매출증대를 위하여 판매장려금과 매출할인을 한다. 나 또한 영업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이러한 것들이 살갑게 느껴졌다. 회사 전체의 이익과 관련된 생산원가나 매출 총 이익 혹은 수금율, 자금 회전율 보다는 매출율을 높이기 위해 접대비와 매출 할인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업부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바로 ‘영업사원은 수치로 말한다.’는 것이다.또 생산부에서는 생산율에만 신경을 쓴다. 1편에서 생산팀은 불량품을 검사하는 검사비용과 재 작업하는 비용이 총 생산비의 20%이상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공정을 세분화하여 과정별로 수율 관리 함으로써 품질관리 비용을 15%이하로 낮추는 프로세스 혁신을 통한 원가절감을 이루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는 것은, 부서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산팀에서는 목표판매량에 맞추어 생산을 하였지만, 영업현장에서는 판매율이 많이 부진했기 때문에, 재고만 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재고문제는 처리비용과 상품 가치 저하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게 된다. 이러한 재고 자산의 회전율은 각 부서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 질 때서야 줄일 수 있는 것이다.-재무제표의 이용자들은 바로 고객-지은이는 이런 소통의 문제를 전 편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다. 비단 생산부와 영업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재무제표를 만드는 경영지원부와 그게 관련된 이해 관계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회계 담당자의 고객은 회계 정보를 이용하는 모든 이해 관계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회계 담당자들은 그들의 고객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경구가 많다. 따라서, 회계 정보와 관련된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고객이라는 마인드로, 회계정보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준다면, 회계업무와 관련하여 각 부서간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회계 천재가 된 홍대리’에서 각 캐릭터들 사이에 갈등의 요인이 되었던 것은, 성장과 안정이었다. 1편에서는 ‘클린 VS 클린업, 2편에서는 비용절감 VS 매출증대, 그리고 3편에서는 유통 VS 관광 VS 유통(유기농)’ 이런 식이었다. 한가지 제품으로 어느 정도의 매출액에 도달하고 나면, 이미 시장은 경쟁으로 포화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런 경우에 ‘비용을 절감하여 안정을 취할 것’과 ‘이익 잉여금을 다시 투자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낼 것’ 사이에서 회사는 고민하게 된다. 물론 3편에서 유통업에서 관광업으로 아예 업종을 전환 했었던 홍부자는 큰 손해를 보았지만, 계속해서 지은이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투자를 통한 개발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여있는 물은 썩기에, R&D에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제품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요점이었다고 생각한다.각 부서간의 커뮤니케이션, 회사의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는 세금문제, 그리고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재무제표의 중요성,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어문학을 전공한 나에게는 생소한 것이기도 하지만, 회사 구조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 책을 통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가 속한 부서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전체를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독후감/창작| 2009.12.17| 3페이지| 1,000원| 조회(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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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제]영화제 분석
    나는 평범한 소시민이고, 아직 수입이 없는 학생이다. 차도 없다. 그러다보니 즐길수 있는 여가 활동이 매우 한정적이다. 친구들을 만나도 밥을 먹고나면, 으레 자연스럽게 극장으로 향한다. 이렇게 영화를 즐겨보지만, 내가 보는 영화또한 매우 한정적이다. 주로 입소문이 많이 난 한국 코미디 영화나, 헐리우드 영화이다. 레포트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내가 그렇게 자주 접하던 ‘영화산업’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 수 있었다.지난 10월 14일 부산 국제영화제가 성황리에 막을내렸다. 하지만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제들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10월 말부터 11월 초는 부산 국제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아니 부산 국제영화제에 못지 않은 다양한 영화제들이 서울에서 열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들이 서울이라는 지역적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열린 대표적인 영화제들은 ‘아시아 인디 영화제’,‘서울 유럽 영화제’,‘일본 영화제’,‘인디 다큐 페스티벌’,‘대한민국 청소년 영화제’ 등이 있었다.@일부 영화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찾기.‘아시아 인디 영화제’,‘서울 유럽 영화제’,‘일본 영화제’는 우리나라 영화산업을 주름잡고 있는 CGV와 메가박스가 주최가 되었다. 이 주최측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기위해, 인터넷으로 CJ CGV 와 메가박스의 연혁과 모회사를 찾아보았다. 그리고는 마치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수있는, 알아서는 안될 사회의 부조리를 알아버린 주인공처럼, 중요한 사실을 알아버렸다.우선 메가박스에 대해서 설명하겠다.2000년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Coexmall)에 개관한 복합상영관으로 지하 1·2층의 전용면적 6,500평에 일반 상영관 16개관과 입체영화관 1개관이 있다. 동양제과㈜가 세우고 계열사인 메가박스씨네플렉스㈜가 운영한다. 대형관 3개, 중형관 8개, 소형관 5개, 입체영화관 1개(24석)이며 총 좌석수는 4,336석이다. 좌석을 스타디움식을 설계하여 시야가 가리지 않고 좌석폭이 560mm제과공업(주)으로 변경하였다. 1975년 주식을 상장하였다. 1977년 웨하스 제조시설 도입에 이어 캐러멜·초코파이·캔디바 등의 제조시설을 도입·증설하고, 익산·대구 등지에 공장을 건설하는 등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1984년 동양종합상사(주)를 합병하고, 1986년 현재의 이름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오리온초코파이를 비롯한 파이류와 초콜릿, 비스킷, 껌, 캔디류 등 주요 제품을 익산, 청주 공장과 중국 현지법인에서 연간 4,000억 원 규모로 생산하고 있다. 1997년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랑방경제기술개발구에 연산 2,000만 달러 규모의 초코파이 공장을 건설한 데 이어 1998년에는 상하이[上海]에도 생산공장을 건설하는 등 해외현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러시아·중국·중동·동남아시아, 유럽과 미주지역 등 세계 60여 국가에 각종 과자를 수출하고 있다. 제과를 중심으로 1990년대 초반부터 유통·방송·외식·스포츠사업 등에 진출해 왔으며, 최근에는 CATV와 영화사업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1999년에는 미국의 미디어그룹 타임워너의 자회사인 TBS와 네덜란드 투자회사인 모리타인베스트먼트인터내셔널로부터 대규모 외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하였다. 1994년부터 케이블TV 사업에 진출한 영상사업은 OCN(영화), 투니버스(만화), 바둑TV, 온게임넷(게임), MTV(음악) 등 9개의 채널을 보유하고 있으며, 1995년부터 시작한 외식사업(패밀리레스토랑 베니건스)은 2003년 현재 전국에 18개의 매장을 오픈하였고, 1999년 6월에는 영화 및 인터넷, 음악 등의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미디어플렉스를 설립하였다. 한편 2001년 9월 1일부터 동양제과(주)를 비롯한 식품 및 미디어부문 16개사를 동양그룹에서 분리하여 오리온그룹으로 독립하였다. 2002년 1월 건강생활사업부를 신설하여 기능성식품을 출시하고 있으며, 9월 외식사업부문을 분할, 롸이즈온(주)을 설립하였다. 2003년 12월 말 현재 총자산 6150억 원, 매출액 5114억 원, 당기순이 Pacific'는미국 씨티그룹과 유럽의 CVC 캐피탈파트너스의 조인트 벤처로 아시아 지역투자를 위해 설립된 대형 바이아웃(BUY-OUT)펀드입니다.삼성의 자회사라고 굳게 믿었던 CJ 엔터테인먼트 또한 외국의 자본이 들어와 있었다. 다양성과 신예 감독.영화 발굴, 인디 영화 지원이라는 이름하에서 이루어지는 영화제와 그들이 말하는 사회 봉사 프로젝트(CGV)가 순간 그들의 지독한 상업성을 감추기 위한 ‘눈가리개’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깨끗하고 편안한 영화관을 더 선호하는 우리에게 외국자본이라는 것이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국내 영화산업이 이런 거대기업과 외국자본에 의해 움직인다것은 달갑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들이 베푸는 ‘영화의 축제’가 그들이 말하는것처럼 단순히 영화산업의 발전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치밀한 마케팅 전략이라는 느낌만 주었다.1. 서울 유럽 영화제정식명칭은 ‘서울 유럽 영화제 (Seoul European Film Festival)-메가필름페스티발(MEga Film Festival)'이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하는 서울 유럽 영화제는 2005년 10월 26일부터 30일까지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렸다.올해의 슬로건은 ‘U love, Neurope’ 으로, 여기서 ‘U’는 영화와 유럽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며 ‘Neurope’은 새롭다라는 뜻의 ‘New’와 유럽 ‘Europe’이 합해진 단어로 젊은 유럽과 그 문화를 의미한다.-Makers-주최- 메가박스 씨네플렉스(주)주관- 스폰지(Sponge)2002년 설립된 영화사 스폰지는 유럽과 일본, 미국 등의 예술영화 전문 배급사와의 탄탄한 네트워크 와 마케팅 그리고 전문화된 인력으로 구성되어 그동아나 (도그빌),(자토이치),(돌스),(볼링 포 콜롬바 인),(검은 물 밑에서) 등 다양한 고급외화를 국내에 수입, 배급해 왔으며, 메가박스에서 주최하는 제 4 회,5회,6회 서울유럽영화제를 주관을 맡고 있습니다.후원--프로그램-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내셔널 초이스 부문에서는 제10회 부산영화제에서 상나잇 익스프레스(midnight express) 도 있었다. 10월 28일 에는 두잇+ 로보+나인송즈, 10월 29일 은 나인송즈+ 내심장이 건너뛴 박동+ 두잇을 함께 볼수 있었다.특별상영 1 부분에는 ‘유럽의 특별한 시선’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내가 제일 관심있게 보았던 부분이다. 유럽의 다양한 문화에 관심있는 관객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이색적이고 다양한 소재를 다룬 다큐멜터리들을 소개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춤과 음악, 바다속 깊이 카메라를 들이대 포착한 경이로운 야생동물들의 삶과 그리고 생태계 파괴 문제를 둘러싼 정치과 경제등 국제적 이해관계의 얽힘 등 다양한 주제들을 각 영화만의 독특한 형식을 통해 담아냈다. 딥 블루, 쇼로, 다윈의 악몽, 이베리아 가 상영되었다.특별상영 2 는 ‘빔벤더스 회고전’ 이었다. 베를린 천사의 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더 블루스, 랜드 오브 플렌티 가 상영되었다.이벤트1. DBM 음악전문 방송. 김진표의 비트 플러스 공개방송10월 28일 :바비킴, 이상은, 불독맨션, 에스진,29일: 유니, JK 김동욱, M STREET, 더 스토리2. Dance Propose& Music Propose3. Neuropean Exhibition - 새로운 유럽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하고 환상적인 체험 전시회4.포토 이벤트- 유럽에서 찍은 사진 또는 생활속의 유럽을 나타낼 수 있는 사진 을 게시판에 올려주세요.5.심리진단. 도전 골든벨, 러브레터 프로포즈. 등.10월 28일 저녁, 인터넷으로 대충의 줄거리를 보고 특별상영 부분의 ‘딥블루’나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고 싶어 메가박스로 갔다. 유럽영화제는 대성송인 듯 했다. 전석이 다 매진되었다. 선택의 여지 없이 그냥 헐리우드 영화를 봐야했다.2. 일본영화제- 개최 의의 및 목적제2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는 일본문화청 주최, 일본영상산업진흥기구와 메가박스 씨네플렉스가 공동주최하는 일본영화축제이다. 영화제를 통해 한일양국간 소통과 이해의 폭을 더욱 넓히고자 기획된 메가박스 일본영화제는, 특히 한일된 컨셉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전략과 서비스로 단기간 내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영화관 체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제2회 영화제 특징1) 다양성의 힘! (슬로건)2회 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의 힘!’이다.1960년대 초반 작품에서 2005년도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망라하는 다채로운 45편의 영화를 통해 일본영화의 여러 장르를 조망하고,일본의 모습과 생활상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특히 김홍준 감독(리얼판타스틱영화제 운영위원장)이 어드바이저로 참여해, 작품선정에 만전을 기했다.2) 국내 미공개 일본작품 최초 상영!45편 전 작품이 국내 미공개 일본영화인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 특히 개막작 과 일본핑크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는 일본보다 먼저 영화제를 통해 한국에서 첫선을 보인다. 또한, 1회 영화제를 통해 한국관객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일본영화 중 하나로 꼽힌 도 관객의 기대에 부응해 상영될 예정. 이 밖에도 일본에서 가장 독특한 문화를 자랑하는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 을 비롯해, 일본영화의 주요 특색으로 꼽히는 , 등의 시리즈물도 여러 편 소개된다. 일본에서 수십번씩 제작되는 시리즈물을 접해보는 것도 이번 영화제의 빼놓을 수 없는 부분.3) 심포지엄 및 다양한 이벤트 개최, 감독 및 배우 내한!일본영화의 ‘다양성의 힘!’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상영과 더불어, 양국간의 영화와 문화 전반에 이르는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세 번의 심포지엄 및 관객들을 위한다양한 이벤트도 준비된다. 또한, 폐막작 의 오가타 아키라 감독을 비롯해, 의 감독이자 의 배우이기도 한에모토 아키라, 의 사와이 신이치로 감독, 의 주연배우 시모모토 시로 등이 영화제 기간 동안 내한할 예정이다.심포지엄 1.「한국에서 일본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일정 : 11월 12일(토) 17:00~19:00 메가박스 11관사회 : 테라와키 켄 (일본문화청 부장·영화평론가)참석 : 고이즈미 타카시 (감독 / ), 사사키 시로 (프로듀서 / , ),차승재 (제작자 /주었다.
    독후감/창작| 2005.12.09| 9페이지| 3,000원| 조회(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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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 독후감] 법정 무소유 독후감 평가B괜찮아요
    이번에 내가 읽은 책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이다. 그동안 수필과목 레포트를 위해 읽은 책중에서 가장 맘에 든 책이다. 평소에 읽고 싶던 책이었고, 또 그동안에 읽은책은 오래되어서 읽기도 어려웠고 진부하고 면이 많았다. 책이란 사람들 사이의 이해의 부족이나 차이점을 극복해주는 참 신기한 물건인 거 같다. 작가와 나 사이의 종교 혹은 종교에서 오는 문화의 이질감을 극복하게 해주었으니 말이다.책의 초반에 ‘너무 일찍 나왔군’이라는 소제목의 수필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한강을 건너기 위해 나룻배를 타러 나왔는데 한걸음 앞서 배가 떠난 경우 스스로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이부분을 읽으면서 지난번에 읽은 수필집이 생각이 났다. 그 책에서도 버스정류장 가까이만 가면 발걸음이 빨라 지는 것을 보고 시간은 이처럼 흐를 뿐인데 그걸 느리다 빠르다 함은 인간의 영교한 셈 버릇 때문이라고 했다. 거기서는 같은 현상을 두고서 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을 설명한 반면 법정스님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낙은 주관적인 인식여하에 달린 것을 설명하고 있다. 가령 아름다운 장미꽃에 ‘하필이면’ 가시가 난 것이 아니라 아무짝에 쓸모없는 가시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앞서가지 않으면 뒤처지는 경쟁시대를 살고있는 우리에게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각박한 경쟁시대에는 어차피 바꿀수 없는, 놓쳐버린 것 마저도 붙잡고서 후회할 것이 아니라 포기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마음이라도 편하게 갖는 것이다. 하지만 망쳐버린 지난 한국수필 중간고사 시험 때문에 아직도 괴로워하는 나를 보면 법정스님이 말하는 이런 마음의 자세를 아무나 가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절에도 도둑이 많이 드나보다. 책에서 절에 도둑이 든 이야기가 2번이나 나온다. 한번은 한 노스님의 이야기이고,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법정스님이 탁상시계를 도둑맞은 이야기이다. 스님은 시계를 도둑맞고 나서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물건이란 본래부터 내가 가졌던 것이 아니고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기 마련이니 조금도 아까울 것이 없다고 했다. 이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에 지갑을 읽어버린 경험이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난 뒤 어머니께서 지갑을 사주셨다. 명품은 아니었지만 평소 워낙 가지고 싶어했던 것이고 또 10만원이 넘어서 가격또한 내가 느끼기에는 꽤 비싼 편이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지갑이 없어졌다. 목욕탕에 두고 온 것 같았다. 다시 목욕탕에 돌아가서 사물함을 다 뒤져 봤지만 당연히 없었다. 그날 오후 가족끼리 오붓하게 외식을 하러 갔었는데 그때까지 나는 계속 울고있었다. 왠지 울지 않으면 어머니께 혼날 것 같아서 정말 좋아하는 복죽을 입에도 대지않고서 계속 울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처음부터 니 물건이 아니었다고 생각해라.” 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하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말하신 ‘니 물건’ 이란 개념은 소유의 개념이다. 법정스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물건과 나 사이의 인연의 개념이다. 이 둘은 확실히 다른거 같지만, 서로 통하는 것 같다. 둘다 집착의 개념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소유에대한 집착, 인연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그 물건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이다. 그 후 나는 지갑을 우리집 자가용 서랍장에서 발견하였다. 그것이 거기에 왜 들어가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아버지를 더욱 존경하게 된거같다.한 아버지가 친분이 있는 노승에게 자신의 아들을 보낸다. 사연인즉, 자신의 아들을 집이고 학교에서고 다 포기했으니 정신차리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늙은스님은 아이를 훈계하지 않고 따듯한 손길로 맞아준다는 이야기다. 이 글의 소제목을 설해목이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나무들이 사뿐사뿐 내려쌓이는 가벼운 하얀 눈에 꺾이고 만다는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하나는 햇님과 구름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시합을 하는 동화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햇볓정책이다. 동화에서는 햇님이 구름을 이긴다. 햇님의 따사로운 햇살에 나그네는 외투를 벗는다. 하지만 좋은 취지에서 시작되었던 김대중 정부의 햇볓정책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퇴임할 시기에는 불법으로 5억불을 송금해 무분별하게 북한을 지원했던 것이 밝혀져 대중들의 비난을 받아야만 했기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햇볓정책으로 받은 노벨 평화상에 대해서도 돈을 주고 샀다는 유언비어를 하고 다닌다. 노무현 정부도 이어서 시행하고 있는 햇볓정책이 어서 빨리 성과를 거두어서 북한이 마음의 외투를 벗었으면 좋겠다.법정스님은 사람들 사이의 이해를 오해라 하였다. 사람이란 저마다 자기 중심적인 고정관념을 자니고 살기 때문에 어떤 사물에 대한 이해도 따지고 보면 그 관념의 신축작용이기에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이해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마다 이해하는 것이 다르고 또 완전한 이해를 할수 없다는 것이다. 이글을 읽으면서 심정이 매우 복잡하였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완벽한 이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지금 내가 맺고있는 인간관계가 철저히 오해라는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의 미니홈피를 통해 일촌을 맺는 것이 유행이다. 온라인의 시대가 되면서 오히려 오프라인의 시대보다 인맥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을 쓰고 그것을 위해 할애하는 시간도 엄청나다. 그런 것이 모두 오해라는 말에 나는 정말 허무했다. 하지만 법정스님의 말대로 사람들의 평판이란 한쪽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라는 말도 맞다. 그렇다면 법정스님이 말하는 누가 뭐라 하건 흔들리지 않는 진리는 어떻게 얻을수 있을까? 나같은 세속인에게는 너무 어려운 문제이다.
    독후감/창작| 2005.05.05| 2페이지| 1,000원| 조회(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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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 독후감] 김남중 수필
    항상 그렇지만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려운 것 같다. 어린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나 새끼 새가 처음 날갯짓을 시작할 때 그 시작은 힘들고 두려울 것이다. 본능적인 것이지만 경험이 없고 서툴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도 그 첫마디가 어려운거 같다. 나에겐 지금 이 시작이 너무 어렵다. 평소 글을 읽는 것에만 익숙하고 쓰는 것에는 서투르고 누군가 내가 쓴 글을 평가한다는 것이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처음만 잘 견뎌내면 그 다음은 처음보다 나을 것이라 믿고 어렵게 글을 쓴다.내가 읽은 책은 김남중 선생님의 ‘인생연극’이었다. 뵌 적도 없는 분께 선생님이란 존칭을 쓰는 것이 낯설기는 하나 책의 내용이 교훈적이고 작가와 나의 세대차이로 책을 읽고 난후 할아버지로부터 인생과 인간관 그리고 삶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 듣는 기분이다. 책의 주요 내용은 지은이가 투병중 느낀 인생에 대한 것과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겪은 일 이 대부분이고 여행 중 느낀 수상과 신화도 있었다.책은 ‘지식대중’이란 제목의 수필로 시작되었다. 제 2차 세계 대학 총장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고 임어당 박사의 연설을 인용하여 지은이는 글을 전개 하였다. 한국은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근면과 노력에 의해 부유해 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이 가난한 나라? 낯설게 느껴진다. 불과 20년 사이에 한국은 몰라볼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판단하는 기준에 따라 아직 부족한점이 많아 선진국은 아니지만 개발도상국의 수준은 벗어났다. 물론 선진국이니 개발도상국이니 하는 잣대도 선진국에서 만든 것이니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적으로 가난은 벗어났을지 몰라도 문화적으로 봤을 때는 아직 개발도상국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경제적 여유를 문화생활이나 내적성숙에 사용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부를 위해 투기, 도박을 일삼는다. 온 국민이 무위도식하며 돈벌기를 원한다. 20년 전 지은이는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예상했는 듯 하다. 그는 창조적 교육의 힘에 의해 지식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한국의 철학이 새로 탄생하는 것이고 지식 대중이야말로 한국과 동양의 근대화를 완성하고 동서 문화의 융화의 꿈을 실현하는 유일한 힘이라고 역설하였다. 지은이의 바람대로 경제발전으로 얻은 이 여유를 국민 개개인의 내적 성숙을 위해 애쓴다면 문화의 근대화로 한국은 다시 한번 거듭날 것이다.‘인생 연극’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작가는 인생이 연극인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는 것이 인생연극이라 하였다. 연극에서의 실수는 희극이다. 작가는 인생연극에서 한 가지 실수는 병가의 상사이지만 실수를 연속하는 날에는 비참한 낙오자가 된다고 경고한다. 지금까지의 나를 되돌아보면 그동안의 실수는 부모님의 품에서 미성년자의 지위로 감안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생이고 지금부터의 실수는 인생의 큰 오점이 될 수도 있다. 비슷한 예로 고등학교 때 지각은 그냥 화장실 청소나 잔디밭 풀 뽑기로 벌을 받았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한번의 지각은 바로 성적과 관계 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성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성적과 학점이 나쁘면 남들이 다 노는 방학에도 계절 학기를 듣기 위해 학교에 와야 된다. 이정도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졸업하는데 남들보다 오래 걸리거나 취업에 큰 지장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도미노와 같다. 물론 한번의 실수는 아니지만 대수롭지 않게 느끼는 실수 때문에 연결된 다른 것 또한 실패하거나 지연되는 것이다. 수많은 실수와 실패가 또 다른 성공과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앞으로의 실수는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이 책에서 여자는 어머니, 프랑스 여자, 직업여성 3의 여자가 등장한다.지은이는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께 연민을 느낀다. 어머니께 보답하지 못하고 효도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신을 책망하고 지은이에게 어머니는 그리움의 대상이다.‘프랑스 여인의 각선’이라 소제목이 붙었다. 프랑스 여자들의 각선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콧대 높고 시건방진 것이 매력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 여자가 아니라 파리와 파리지엔을 동경한 것처럼 느껴졌다. 밤이면 춤추는 물랑루즈와 빛나는 샹젤리제 거리, 밤이 깊어도 어둠이지지 않는 그곳의 자유로움을 동경한거 같다. 이 글은 책이 발간된 86년 이전에 쓰여진 것일 테니 당시의 지은이나 독자에게 파리지엔의 이야기는 상당히 매력 있는 흥밋거리 이었을 것이다. 한번도 파리를 가본적은 없지만 대중매체와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를 다녀볼 수 있는 지금 파리의 이야기는 고전적이다. 오히려 아프리카의 밀림이나 동남아시아 등의 제 3세계의 문화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직업여성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 기생, 창녀란 단어가 자주 사용 되었다. 지은이는 위암 환자였다. 수술을 위해 병원에서 보낸 시간 동안 간호원들에 대해 느낀 것을 적었다. 간호원을 단순히 간호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예쁘다고 말하면 부끄러워하고,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응석부리는 중년의 환자를 어린애 어르듯 하는 그들은 어머니이고 여자였다. 반면 다른 의미에서의 직업여성인 기생과 창녀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 되었다. 부드러운 손길이나 따스함을 강조할 때는 기생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반면 핏기 없고 아픈 사람을 강조 할 때는 창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병든 닭이니 밀가루 반죽 등 창녀를 대신할만한 더 적합한 표현들이 많다. 여성운동을 하거나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은 아니지만 단순히 같은 여자로서 이런 표현은 굉장히 불쾌했다.옛날 영화 중에 추억을 사고파는 내용의 영화를 소개했다. 이 작품 속에서 추억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불행하다. 그래서 추억이 없는 사라들은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남의 조상의 추억을 사려고 한다. 꼭 조선말기에 족보를 사고파는 것과 같은 이야기인거 같다. 지은이는 영화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지만 추억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아름다운 것은 사라지고 괴롭고 슬펐던 일이 아름답게 추억되어서 추억은 아름답다. 추억이 없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지은이는 추억이 없는 사람은 싱거운 사람이라고 한다. 아마도 괴롭고 슬픈 일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여기서 지은이의 나이를 알 수는 없지만 위암 수술을 받은 후 인걸로 봐서 60세 쯤 된 거 같다.이쯤에서 지은이는 인생을 다시 한번 파노라마처럼 돌려본다. 지은이는 전남 일보의 창시자 였다. 지은이는 맥아더 장군을 존경했고, 그의 해임소식을 자신이 28분 만에 사설을 완성한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 자세히는 나와 있지 않으나 사람을 잘못 만난 탓에 미군정 법령에 의해 전남일보의 판권이 없어지는 위기에서 벗어나는 사건에 대해서도 나와 있다. 자세한 내막은 나와 있지 않으니 소설 같은 긴장감이나 박진감은 없었지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작가가 존경스러웠다. 그 일이 작가에게는 가슴과 머리에 깊이 남는 추억이었다. 젊은 시절의 힘들 고난과 시련. 물론 그것을 극복해 내지 못하고 전남일보가 사라졌다면 그것은 추억이 아니라 아픈 과거 혹은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어쩌면 다시 재기하지 못하고 영원히 실패하여 인생의 낙오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은이는 힘든 역경을 잘 견뎌냈다. 작가는 투병 과정과 거기서 느끼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한다. 두 번의 위 암제거 수술을 받고 체중도 20kg이나 줄어든다. 그는 젊은 시절 몸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죽음을 성스럽게 여기기를 원한다. 유한한 인생에서의 도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아직 죽음이나 병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아서인지 투병 내용이 너무 길어 좀 지루하기도 했다.
    독후감/창작| 2005.05.05| 4페이지| 1,000원| 조회(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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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 문화, 타고르] 타고르와 이슬람문화 평가B괜찮아요
    1. 타고르타고르는 1868년 인도 벵골주 캘커타(현재의 방글라데시)의 명문의 대성(大聖)이라 불리는 아버지 데벤드라나트의 15명의 아들 중 열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들도 문학적 천분이 있었고, 타고르가(家)는 벵골 문예부흥의 중심이었다. 집안의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1세경부터 시를 썼고, 16세 때 처녀시집 《들꽃》을 내어 벵골의 P.B.셸리라 불렸다. 인도 고유의 종교와 문학적 교양을 닦고, 1877년 영국에 유학하여 법률을 공부하며 유럽 사상과 친숙하게 되었다. 귀국 후 벵골어로 작품을 발표하는 동시에 스스로 작품의 대부분을 영역하였고, 산문·희곡·평론 등에도 문재를 발휘하여 인도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그의 작가 생활은 대개 4시기로 나눌 수 있다.5세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벵갈의 셸리라고 불리던 시대가 그 첫 번째다. 첫 번째 시집은 하고 하여 익명으로 나왔는데, 이 시기의 작품은 유미적(唯美的)이었다.제 2시기는 아버지에게서 ‘실레이다’ 영지 관리를 위임 받고 그곳으로 가서 자연과 가난한 농민 생활을 접하고, 갠지스 강과 대자연의 품에 안기어 명상을 하던 887~1895년경이라고 하겠다. 이 시기의 작품은 사회악과 인습에 도전하고 농촌개혁에 뜻을 둠과 동시에 작풍에 현실미를 더하게 되었다.제 3시기는 을 내고 전 인도의 국민운동을 따라서 펜을 무기로 삼고 필봉을 휘두르는가 하면 학교를 세우고 나라 안을 돌아다니며 국민의 각성을 부르짖던 시대라고 하겠다.그러나 자기의 길이 원래가 정치나 사회운동이 아님을 알고 산티니케탄으로 돌아가 경건한 종교 시인의 실을 걸어가게 된 이후를 제 4시기라고 하겠다. 이때 유명한 를 썼다. 그는 1913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아 세계에 알려졌다. 그 뒤 세계 각국을 순방하면서 동서 문화의 융합에 힘썼고, 캘커타 근교에 샨티니케탄(평화학당)을 창설하여 교육에 헌신하였으며 벵골분할 반대투쟁 때에는 벵골 스와라지 운동의 이념적 지도자가 되는 등 독립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그가 세운 학당은 1921년에 국제적인 비스바바라티대학으로 발전하였고, 오늘날에는 국립대학이 되었다.2.기탄잘리‘기탄잘리’는 ’라는 뜻으로, 157편을 수록하여 1910년에 출판하였다. 그 중에서 57편을 추려 타고르 자신의 영역(英譯)으로 1912년에 영국에서 출판하였고, 다음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유럽에서도 절찬을 받았다. 영역판에 수록된 시에는 제목이 없고 번호만 붙였다. 모두가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것으로, 원시(原詩)의 유려한 운율과 힘찬 것을 잃은, 박력이 결여된 점이 있다고는 하나, 이는 영역이라기보다 영어에 의한 새로운 작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신(神)에의 귀의(歸依)와 열렬한 경애(敬愛)의 정(情), 즉 뜨거운 신앙을 뼈대로 하고 있다.그의 문학은 자기의 토착 유산에 뿌리를 박고 있는 까닭에 인도 고유의 종교에서 벗어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인도의 고대 사상에서 새로운 세계관의 원동력을 찾고자 하였다. 이 원동력의 근원은 아마도 였다고 보인다. 특히 이 경전이 그의 의 한 근원적인 바탕이 되었고, 산스크리트 문화의 부흥에도 큰 영향이 미치게 된다. 타골은 이러한 인도 고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자기 사상의 가람을 세우고 삶을 영위하고 스스로 무한의 실현에 살고 생명의 행복을 터득하여 사랑과 아름다움으로 신을 찬양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사명과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이다. 이 시에는 그의 세계관의 뿌리가 박혀 있고 또 그 형상의 아름다움이 풍기는 향기는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첫 시야말로 이러한 세계관을 단적으로 지적하여 주는 서론적인 시라고 하겠다.임께서 이 몸을 무한케 하셨나이다. 이것이 임의 기쁨이외다. 이 연약한 그릇을 임은 비우고 또 비우시어 항상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시나이다.이 가냘픈 한낱 갈대피리를 임은 산을 넘고 골짜기를 넘어 가져오시와 영원히 새로운 멜로디를 불어 넣으셨나이다.불사의 임의 손길이 닿자 이 가냘픈 가슴은 기쁨에 넘쳐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마을 하나이다.임의 무궁한 선물은 극히 작은 이손을 통해서만 오나이다. 세월이 흘러도 임께서는 끝없이 퍼붓건만 아직도 채울 여지가 남았나이다.여기서 타고르가 노래하고 있는 임은 신이다. 그는 신을 유일한 존재로 표현하고있고, 신은 지극히 나약한 개인을 무한의 자리에 까지 이끌어 준다. 또 그것은신의 기쁨이 된다. 그러나 고마운 신은 창조를 거쳐서 그 존재를 이바지 하는것만으로 족하지 않는다. 항상 새로운 생명으로 그 존재의 부족을 채워 주는 것이다. 여기서 브라마의 세계는 생명을 준 존재에 그치지 않고 진화 발전을 도모하여새 생명을 무한히 전개토록 한다.3.타고르의 시에서 찾을 수 있는 이슬람 문화위의 시에서 타고르는 인간을 갈대 피리에 비유하였다. 그런데 일찍이 아프가니스탄의 수피즘 최고의 시인 ‘몰라비’가 라는 제목으로 인간을 ‘갈대피리’에 비유한 바 있다.지성이나 언어를 통한 불완전한 분석이나 표현으로는 종교의 세계가 소유하는 지고의진리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고의 진리는 비젼을 통해서 만유인력과도 같이자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은 역시 수피댄스와도 상통한다. 수피댄스 또한 지성이나 이성, 혹은 언어와 같은 불완전한 표현을 배제하고 빙글 빙글 도는 행위를 통해 자동적으로 신과 접하는 경지에 도달한다.4. 그렇다면 인도에서 이슬람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알아보자.7세기에서부터 약 3세기동안의 인도는 외부의 침입이 없이 평화로운 시대였다. 부의 축적으로 생활은 매우 풍족하였으나, 정치 조직은 미약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므로 인도라는 국가의식이 결여되어 있었고, 국가정치는 부패한 관료들에 의해 특히, 왕의 이익만을 위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때를 틈타 이슬람교도들은 중앙아시아의 통상로를 따라 서북인도에 침입하여 신드지방을 병합했고, 10세기말에는 펀잡지방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1001년에는 술탄 마하멜이란 사람이 이슬람의 대군을 이끌고 전면적으로 인도를 공략하여 인도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 후 1192년에 일어난 전쟁으로 이슬람교도들은 인도를 완전히 정복하고, 1205년에는 인더스 하구로부터 갠지스 하구에 이르는 부분을 석권하였다. 이렇게 해서 인도에 들어오게 된 이슬람교는, 문화적으로 발전했던 이란에서 성장한 이슬람교로 대부분이 고행에 의한 신인합일을 주장하는 신비주의적 요소가 짙은 수피파였다. 12세기에 들어 인도에 이슬람왕국을 세워 계몽운동을 펴며 굳건한 기초를 다진 이슬람교는 13세기 이후에는 인도사회에서 실질적인 지배력을 갖게 되어 델리왕조와 무굴왕조를 탄생시켰다.5.방글라데시의 이슬람 역사방글라데시 이슬람교의 역사는, 곧 인도 내의 이슬람교의 역사와 같다. 이슬람교는 인도로 들어오면서 기존해있던 힌두문화와 많은 융합을 이루면서 인도적 문화변용을 이루었다. 16세기 전반에 무굴제국을 이루어 이슬람교를 주축으로 북부인도를 지배했던 이들은 제3대 악바르 황제 때 가장 융성하여 이슬람교의 전성기를 맞았다. 악바르 황제는 종교적 인격을 강하게 지녔고, 타종교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했다. 이렇게해서 외래의 정복왕조가 인도의 토착세력으로서 기반을 굳히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 후 이슬람교는 힌두교의 베다사상과 불교의 영향으로 혼합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어 상징적이고 예술적으로 변하여 감정과 경험에 치중하게 되었다. 자연히 이들은 치유의 신비요법과 미신, 주술, 비정통적인 관습 등으로 민간생활을 주도하며 대중종교로 확산하였다. 이들은 지역의 관습과 신앙과도 타협하며 인도의 천민층을 개종시켰다. 이렇게 되자 인도에 들어 온 이슬람교 세력은 종교적, 정치적인 세력 중심지와 지리적으로 격리되게 되었다. 이슬람교는 차차 세속화되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그래서 18,19세기에 울라마를 중심으로 서서히 개혁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힌두교나 불교에서 받은 혼합주의와 미신들의 영향에서 이슬람교를 정화시키고자 노력했다. 이것은 14세기의 이슬람교사상을 침식당하지 않게 이슬람 신앙의 본질적이고 중심적인 요소를 재확립하자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을 벌인 자들은 일반적으로 행동주의자, 적응주의자들이었으며 군사적 위치를 확보하였다. 또한 19세기 후반에는 근대화운동으로 번져 서방에 대항하고,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합법적 정부를 세우고자 이슬람 민족정신을 일깨웠다.
    인문/어학| 2005.05.05| 6페이지| 1,000원| 조회(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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