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개념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죠셉 나이(Joseph S. Nye Jr.)에 의해 1990년경부터“소프트 파워”란 용어를 사용되었다. 파워(Power), 즉 힘에는 군사력같은 하드(Hard) 파워 (딱딱한 힘)가 있는데 이는 강제력 및 금전에 기초하여 상대를 압박해 강요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반면에, 문화를 토대로 한 소프트(Soft) 파워 (부드러운 힘)는 자신이 발산하는 매력을 통해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이끌리게 함으로서 스스로가 바라는 것을 획득하는 힘을 말한다. 즉 자신이 바라는 것을 타자도 바라도록 만들 수 있다면 당근과 채찍을 그다지 사용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타자를 움직일 수 있다는 면에서 훨씬 효과적인 국가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프트파워의 원천은 다양하여 한 나라의 문화 전반, 정치적 이상, 정책과 제도 차원의 매력을 포괄하는데, 이들 요소가 타자의 눈에 매력적이고 정당하다고 비친다면 그 나라의 소프트파워는 증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프트파워 개념은 국제질서 상에서의 “국익’ 혹은 ‘국가전략’의 차원에서 자국의 문화, 이미지, 제도, 정책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이론적 자원으로 기능함은 물론이다.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요소소프트 파워를 구성하는 첫째 요소는 가치(velue)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솔선수범하여 추구하고 지키는 국가로 여겨질 때,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리더쉽을 따르게 된다. 두 번째는 교육 시스템을 들어 볼 수 있다. 미국은 매년 50만 명에 이르는 유학생들이 전 세계에서 미국에 있는 3천여 개가 넘는 대학에 공부하러 온다. 이들은 창의력과 성실한 노력을 중시하는 미국의 정신에 소리 없는 영향을 받는다. 셋째로 미국의 문화 수출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영화와 TV프로그램, 예술, 학술논문들, 그리고 인터넷에 범람하는 미국적 내용들은 지구촌 시대에 무시 못 할 영향을 주고 있다.이러한 맥락 속에서 현대의 대중문화 및 디지털콘텐츠도 소프트파워의 한 구성요인으로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교통통신의 눈부신 발달과 자유무역체제의 확산으로 지구촌의 거리감은 더욱 줄어든데다 미국 이외에 지구촌의 적지 않은 지역에서도 중산층이 성장하면서 문화산업의 시장규모가 크게 확대되었고, 또 정보화를 통해 디지털 기기가 급속하게 대중화되는 상황에서 이들 문화상품은 경제적 수익의 면에서뿐만 아니라 상징과 이미지 전파의 측면에서도 무시 못 할 존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중문화 및 디지털콘텐츠 분야를 포함하여 문화 전반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적극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현대의 산업현대의 산업은 중후장대(重厚長大)에서 경박단소(輕薄短小)로, 그리고 다시 온후지정(溫厚之情)이 있다. 중후장대 산업이라 함은 전통적인 의미의 산업으로 철강, 조선, 석유화학 같은 굴뚝산업을 말한다. 경박단소의 대표적인 예는 반도체다. 반도체는 부피가 작지만 그 부가가치는 중후장대 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오늘날 산업의 화두는 온후지정이라 하겠다. 이는 바로 문화산업을 뜻한다.문화산업은 그 범위가 점점 커지고 있다. 공연예술, 영상, 음반, 디자인, 게임 등은 물론이고 음식, 패션, 화장품, 심지어 자동차 등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새로운 시장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예를 들어 자동차를 살 때 우리는 자동차의 '기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지닌 '가치', 즉 기호를 선택하는데 이런 경향은 고급차일수록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현대 쏘나타가 BMW5 시리즈와 같은 급으로 시장에서 평가된다면 좀처럼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평가는 중국의 소비자들에게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한류가 한몫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쏘나타는 더 이상 '현대자동차'가 아니라 '한국 문화의 기호'로 인식되는 셈이다.즉, 현대산업이란 문화이고 이는 한마디로 오감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 패션, 건축물 등이 시각이 작용한 결과라면 음악은 청각이, 음식은 미각이, 화장품과 향수는 후각이 작용한 결과다.산업계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 - 3D오늘날 3D라고 하면 산업주의 사회와는 달리 디지털(Digital), 유전자(DNA), 디자인(Design)을 뜻한다. 이 세 가지가 정보사회를 움직이는 파워이다. 산업자본주의는 하드를 중심으로 한 것이지만 지식정보시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재를 자본으로 삼는다.1.디자인(Design)산업계의 소프트 파워로 손꼽히는 것이 디자인이다. 한국제품은 기술과 함께 디자인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디자인은 일상생활 용품 속에서 바로 접촉하는 것이어서 국가 이미지와 그 브랜드 가치로 발전되는 것이다. 디자인의 힘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魅力)에서 생기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유람선이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의 군선(軍船)을 제압한 것과 같은 힘이다. 전후 일본에서 마쓰시타는 미국의 백화점에서 같은 물건인데 값에 차이가 생겨나는 것이 디자인의 차이라는 사실을 알고 제일 먼저 기업 내에 디자인부를 신설했다. 그것이 메이드 인 재팬과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역할을 했다. 기업은 상품만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이미지를 디자인하여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한다. 지금 산업 디자인만이 아니라 한복을 비롯한 한국의 패션 디자인 등이 이탈리아를 능가하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예전에는 하드파워(기술)를 만든 후에 소프트파워(디자인)를 적용했지만, 요즈음은 소프트파워(디자인)를 만든 후에 하드파워(기술)를 적용한다.2. 유전자(DNA)한국인의 유전자가 바로 상품이 되기도 한다. 한국인의 얼굴, 한국인의 캐릭터가 한류의 핵심이기도 하다.신체의 유전자는 '진(Gene)'이라고 하고 모방하는 문화의 유전자는 '밈(Mem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인이 활을 잘 쏜다는 것은 이미 옛 중국 문헌에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요즈음 한류열풍의 주인공인 배용준을 보자. 배용준은 한국인이면서도 일본 여성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용모를 하고 있다. 한국말로는 번역하기 힘든 '야사시사(優しさ.부드럽고 공손함)'와 섬세함이 있다. 일본에서의 욘사마의 인기는 캐릭터에도 있다. 팬들을 '가족'이라고 부르고 항상 예의바르다. 그를 보려고 몰려 온 팬들이 부상했을 때에도 그들을 먼저 위로하는 마음씨를 보여줬다. 그래서 '일본 여성들이 외국인과 결혼한다면'이라는 설문에 한국 남성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는 아직도 유교문화가 살아 있다는 것이 큰 메리트로 작용한다.3.디지털(Digital)디지털 기술의 특색은 상품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호환성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음악, 화상이 서로 넘나들고 가상세계와 현실의 벽도 무너졌다. 그래서 한류로 한국 탤런트가 뜨면 그것이 바로 성형수술이라는 의학분야와 연결된다. 그에 비해 하드는 문자 그대로 딱딱해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소프트 상품이 갖는 경쟁력이다.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소리와 영상을 물건처럼 저장, 가공, 복제하여 교환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관점에서 본 한국지금 일본의 소프트 업계는 프로그래머 150만 명의 '대(大)실업시대가 온다고 야단들이다. 영어를 더 잘하고 인건비는 더 싼 인도와 중국의 프로그래머들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적으로는 진보다 보수다 해서 보혁갈등이 심하지만, 소프트 파워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100년 전 구한말이나 반세기 전 해방 직후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땅을 파봐야 석유는 나오지 않는다. 뚫어야 할 시추공은 바로 한국인의 머리와 가슴이다. 묻혀 있는 이 창조력이야말로 21세기의 번영을 담보하는 자원이다. '싱글 리얼리티'에서 양쪽을 아우르는 '패러 리얼리티'로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세계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21세기의 막차를 놓치게 된다. 나이와 관계없이 머리가 굳은 사람들이 '소프트'해져야 '소프트 코리아'가 된다.
⊙자민당 파벌정치의 변천과정Ⅰ.서론일본 자민당의 역사는 파벌성쇠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1955년 11월 자민당이 발족될 당시 자유당, 민주당, 대진당 등 여러곳의 세력이 합쳐서 이루어져 파벌의 연합체로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파벌들은 서로간의 합의로 총리와 각료, 간사장등 요직을 배분하고 선거결과와 국민여론에 따라 총리를 교체함에 의해 정국안정과 장기집권을 누려왔다. 또 1996년 자민당은 연립내각을 구성하여 다시 정권을 획득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자민당은 거의 일관해서 우세정당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안정성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자민당에 대한 파벌정치의 변천과 특성을 살펴보기로 하겠다.일본에서의 파벌이란일본에 있어서 파벌이라고 하면 흔히 자유민주당(自由民主黨 이하 자민당)을 연상한다. 파벌의 사전적 의미는 'faction(파벌)'에 가깝지만 자민당의 파벌은 'machines(종당)'에 가깝다. 파벌의 존재는 흔히 비생산, 비능률, 밀실협상, 이권유착 등의 전형으로 국민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기도 한다. 자민당 내에서도 파벌존재가 국민의 신뢰를 상실시키고 있다는 이유로 자성의 비판이 높을 때도 있으나 파벌은 일본정치를 움직이는 핵심이다.따라서 자민당 지도자들이 파벌해산을 시도하거나 연출할 때도 있으나 실제적으로 자민당 내의 파벌해산은 없다. 오히려 파벌은 자민당 내에서 큰 힘이 되기도 하며 해산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민당은 파벌이라는 메카니즘을 통해서 일본정치를 움직이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사전협의 (Consensus) 체제와 각 방면에 걸친 폭넓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작용한다. 또한 파벌에 대한 의존은 자민당은 지도부의 중요한 정책과 과제에 대한 당내 합의를 도출하는데 소요시간을 단축시킨다. 오부치(小淵惠三) 전 총리가 쓰러졌을 때 다음 총리 결정에서 당내 각 파벌들이 보여준 신속함, 타협과 양보, 그리고 대국을 보는 정신은 파벌정치의 좋은 예라 하겠다.Ⅱ.본론1. 실리적인 교환관 단순하다. 그 핵심은 영수가 파벌성원들에게 '돈과 자리'를 보장해주고 대신 성원들은 영수를 당 총재로 밀어주는 실리적 교환관계이다. 자민당 일당지배체제에서 당 총재는 곧 총리를 의미한다. 정치가로 입신하려면 영향력과 장래전망이 보이는 영수를 골라야 하고 정권획득이 최종목표인 영수는 가능한 한 자신의 파벌을 당과 정부요직에 많이 배치해야 한다. 이 관계는 정치인들에게 한정되지 않고 관료나 기업인들에게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정책결정에 대한 영향력 행사와 돈의 교환관계로 이어진다.영수가 장래성이 있는 인물이면 파벌성원 수가 많아지고 성원수가 늘면 영향력이 커지고 들어오는 돈도 많아진다. 이것은 다시 파벌 힘을 더욱 키운다. 보수합동 이래의 구호 '정치는 돈과 머릿수' 라는 철칙이었다. 파벌은 파벌간 또는 개별 정치인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결과적으로 무임승차를 배제하는 등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고 있는 조직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 운영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거대파벌이 등장하면서 합리성은 손상됐다.2. 자민당 내의 파벌1955년 통합 사회당에 대적하기 위해 자유당, 민주당, 개진당 등 보수계 정당들이 뭉친 이른바 보수합동을 통해 자리잡기 시작한 자민당 장기 일당지배체제(55년체제)는 초기 느슨한 군소파벌 형태에서 70년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시절엔 한 파벌이 정치판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파벌체제로 발전했다. 다케시타(竹下登)파는 다나카파의 연장이고 오부치(小淵惠三)파는 다케시타파의 연장이다.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우노 소스케(宇野宗佑),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등 다른 파벌 또는 무파벌로부터 여러 총리들이 등장했지만 70년대 이후 일본정치를 지배해온 것은 다나카파에서 이어져온 이 파벌이다. 그럼 여기에서 자민당 내의 각 파벌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1. 오부치파2. 모리파3. 에토 가메이파4. 호리우치파5. 야마사키파3. 자민당 장기 집권 체제인 '55년 체제'등장 배경과 그 의미일본 정치에 있55년 11월 15일, 보수세력의 통합으로 형성된 자민당과 혁신 세력의 결집인 사회당과의 대결 구도를 의미한다. 이 체제는 외견상으로는 양대 정당제지만, 실제는 보수 세력의 결집체인 자민당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일당우위 정당체제였다.전후 일본은 국내의 평화 헌법 체제와 냉전적인 미-일 안보체제라는 모순된 구조 속에서 정치 안정과 경제 고도 성장을 이룩해야 했다. 이러한 이중 구조 속에서 일본의 국내 정책은 안보 체제의 강화 방향으로 전개되었으며, 이것을 담당했던 것이 바로 반공적 성격을 가진 보수 정권이었다. 그래서 보수 세력의 결집체인 자민당이 출현하게 된 것이고, 위의 배경들이 자민당 출현의 배경이 된 동시에 자민당 장기집권의 외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1955년 10월 좌파 사회당의 주도로 좌우로 분열되어 있던 사회당이 통합되고, 같은 해 11월 자유당과 민주당의 보수 통합에 의한 자유민주당이 출현하여 일본정치의 '55년 체제'가 성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55년 체제'는 지지율 64%의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던 보수 정치세력의 자유민주당과 약 30% 가량의 지지율을 점하고 있는 혁신적 세력인 일본 사회당이라는 양대 정당제를 기본 정치구조로 하여 시작되었다. 하지만 자민당은 냉전과 혁신 세력에 대한 위기 의식을 바탕으로 안정된 기반과 강력한 정권을 갖는 전형적인 지배정당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고 ,따라서 현실적인 일본의 정치 제도는 '전형적인 일당지배체제'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민당의 장기 단독정권은 1993년 7월 호소카와 연립정권의 출현 전까지 3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4.자민당의 장기 집권 요인1) 외적요인미국의 일본 점령과 미, 소를 중심으로 하는 동서 냉전이라는 시대적인 상황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미국의 간접군정과 미국의 대일 정책의 영향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1950년에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구정치인, 재벌을 주축으로 하는 보수세력을 다시 등장시켜 친미 안정 정권을 구축한다. 이 과그는 현실주의적인 입장을 취해 냉전체제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미국에 의한 안전 보장을 택하였으며, 당시 그가 정계, 재계, 관계를 망라하여 구축한 파벌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정치를 주름잡고 제 1당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2) 내적요인(1) 선거제도의 유리함이다.일본 선거제도인 중선거구제(준비례대표제) 선거제도 자체가 가져온 유리함에 정수배분의 불균형이 가져온 유리함이 더해진 결과다.(2) 자민당의 체제의 원리, 즉 시대의 지배적 가치와 일체화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3) 자민당이 자신들의 핵심 지지자에 대해 정책상의 특별 배려를 통해 장기집권의 틀을 마련해왔다.(4) 1970년대 세계 석유파동 이후, 특히 베트남의 공산화 이후 일본인 사이에서 조성되고 있는 보수화의 물결 이다.(5) 일본의 제 1야당인 사회당의 정권 창출결의 미약함과 자민당 대신에 정치 권력을 담당할 만한 수권정당이 없다는 점이다.5.1993년, 자민당 파벌정치의 붕괴55년 체제하의 일본정치의 상황은 표면상으로 양대 정당제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민당의 일당우위, 장기집권체제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정치적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권의 교착 상황에 빠지게 되었고, 자민당의 금권, 부패정치가 정계, 재계, 관료계의 구조적 유착현상 아래에서 양성되어왔다.자민당 장기 단독 정권이 쇠퇴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자민당의 금권정치와 정치부패이다. 장기집권과 그 속에서 형성된 정-관-재(政-官-財)의 유착구조로 인한 정치부패와 정책결정과정의 밀실화를 초래하였다. 파벌 체제 유지비용으로 막대한 정치자금을 소요하고, 정치부패를 가져오는 체제로 변질되었고, 일본 경제의 침체라는 경제적 상황과 함께 맞물려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이 감소하게되었다.1988년 6월 리쿠르트 사건을 계기로 자민당 55년 체제의 붕괴 움직임이 시작되어 마침내 1993년 6월 18일 긴급 상정된 미야자와 내각 불신임안의 표결 결과 총 475표 중 찬성 255표, 반대 220표로 중의원이 해산되어 자민당이 패배함으로써 38년간의 자당, 신생당, 공명당, 일본신당, 민사당, 신당사키가케, 사민련의 7당과 민주개혁연합의 1회 파로 구성된 비자민 연립내각이 일본신당 당수인 호소카와를 수상으로 지명하고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6.1996년, 자민당 정권으로의 복귀비자민 연립정권으로 구성된 호소카와 내각은 우르과이라운드 합의와 쌀시장 개방 등의 업적을 올리기도 하였으나, 호소카와 수상이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1994년 4월 호소카와 수상이 사임하였다. 차기 수상은 신생당 당수인 하타가 내정되었으나, 정치개혁을 모토로 결집한 비자민 연립은 통합신당의 결성 문제 때문에 신생당, 공명당, 일본신당, 사민련 등의 주류파와 사회당, 민사당, 사키가케 등의 비주류파로 양분되었다. 이러한 분열 과정에서 연립정권 내부에서 혁신세력 고립 전략에 의해 고립된 반주류파의 사회당과 사키가케가 자민당과의 연립정권 구성에 합의하여 연립정권에서 이탈함으로써 소수 여당정권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타 내각은 1994년 6월 자민당으로부터 내각불신임안이 제출되자 자진 퇴진하였다. 이로써 비자민 연립정권은 붕괴하게 되었다.하타 내각을 퇴진시킨 자민당은 정책이나 이념보다는 정권회복에 중점을 두어, 1994년 6월 사회당과 사키가케를 포함시킨 3당 연립정권을 구성하였고, 연립 내각의 수상으로는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를 추대하여 47년만에 사회당 출신의 당수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자민당은 사회당에 수상은 양보하였지만, 중요한 각료의 지위는 자민당이 차지하고 있어 실질적인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사실 자민당이 야당으로 있었던 기간은 1955년 이후 단 11개월에 지나지 않았다.1996년 총선에서 자민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을 몇 가지 요약해 보면,첫재, 야권의 분열.둘째, 총보수화의 흐름 속에 정치안정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증가.셋째, 지난 연립내각에서 경기회복이 이루어진데 따른 하시모토 내각에 대한 경기대책 기대심리 고조. 넷째,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무당파가 선거에 대거 불참한 대신 하토야마 유키오
미래예측 (기법)1. 4가지 범주기준① 예측대상분야에서 기초이론의 정립여부② 과거와 현재의 경험적 자료가 이용가능 여부기초이론 정립기초이론 미정립경험적 자료의 이용가능인구증가나 경제성장 등의 예측기법시계열분석경험적 자료의 이용불가능이론 구도화 기법델파이기법2. 델파이 기법 (특징·단계)▶개념어떤 문제를 예측, 진단, 결정함에 있어서 의견이 일치를 볼 때까지 전문가 집단으 로부터의 반응을 체계적으로 도출하여 분석, 종합하는 조사방법▶특징; 델파이 방법은 위원회와 토의법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한 방법① 익명을 사용함으로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고서도 수정가능② 통제된 피드백을 포함하는 반복과정을 통하여 미래예측에서 중요한 쟁점에 대한 적정 한 정보를 추출해 낼 수 있다.③ 다수의 견해를 통계적으로 종합하여 분석해 미래사회를 확률적으로 표현▶델파이 방법의 실시 단계① 1단계; 최초의 설문지는 개방식 (중요사태 식별 선정)② 2단계; 1단계에서 선정되 목록에 오른 사태들의 발생 시기 1차 추정연구책임자는 참여자들의 의견을 통계적으로 종합, 요약, 평균, 중위수등 산출③ 3단계; 연구 책임자가 정리한 종합의견을 본 후 다시 발생시기 추정( 2차 추정)만일 종합의견과 자신의 의견의 차이가 큰 경우 자신의 의견을 합리화 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함④ 4단계; 3단계와 같은 과정을 되풀이▶이상과 같은 과정을 통해 의견의 분산도를 좁혀간다연구책임자가 만족 할 만큼 의견이 모일 때까지 앞의 과정 되풀이한다3. 시계열분석 (개념. 기본과정)▶개념시간의 경과에 따른 어떤 변수의 변화 경향을 분석하여 그것을 토대로 미래의 상태를 예측하려는 방법추세분석(외삽예측, 투사, extrapolation)▶세가지 기본전제① 지속성② 규칙성③ 자료의 신뢰성과 타당성비용편익분석1. 파레토효율과 칼도-힉스 기준 비교▶파레토효율(or 최적)이란;자원의 재배분으로 더 이상 사회의 복지향상이 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적어도 한 사람의 후생을 감소시키지 않고서는 다른 한 사람의 후생을 증가시킬 수 없도록 자원이 배분된 상태→파레토 개선; 자원이 파레토효율이 아닌 상태로 배분된다면 정부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여 공공정책을 추진가능→시장실패그림...▶칼도-힉스 기준(보상기준);어떤 정책 혹은 사업으로 이익을 본 사람이 손해를 본 사람의 손해를 보상하고도 여전 히 편익을 남겼다면, 그 정책 or 사업의 유용성을 인정할 수 있다→보상기준(or 칼도-힉스 기준);여기에서의 보상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단지 보상해 줄 수 있다는 가능성만을 의미→잠재적 파레토 개선 기준이라고도 함2. 비용편익분석의 절차 (9단계)▶1단계; 누구의 편익과 비용을 계산할 것인가 결정→ 대부분 국가수준에서 함▶2단계; 대안들의 목록을 선택·대안들은 무수히 많다·인간의 제한된 합리성, 예산상의 제약, 정치상의 제약을 고려▶3단계; 잠재적 영향을 밝혀내고, 측정지표를 선택·영향은 그 사업에 사용되는 자원과 산출물을 모두 포함·이러한 영향 중에는 관찰할 수 없거나, 측정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4단계; 사업기간(수명)에 걸친 영향을 계량적으로 예측·사업집행기간과 그 이후의 모든 영향을 예측해야 함·그러나 복잡한 사업의 장기예측은 지극히 어렵다▶5단계; 모든 영향의 금전화·생명과 같은 중요한 영향들은 무형적이고, 금전적으로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다(잠재가격 문제)▶6단계; 현재가치를 찾기 위해 시간을 할인·미래의 편익과 비용을 현재와 비교하기 위해서는 현재가치를 환산해야 함·따라서 시간을 할인해야한다. 그러나 시간할인율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음▶7단계; 모든 편익과 비용을 합산·한 개의 사업이면, 순현재편익이 0보다 크면 채택, 그렇지 않으면 기각·여러 개의 사업이면, 가장 높은 순현재편익을 가진 사업 채택▶8단계; 민감도 분석·민감도 분석은 불확실성을 다루려는 시도...So 객관성 확보에 중요·할인율 등을 조금씩 변화시켜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분석▶9단계; 가장 큰 순사회편익을 가진 대안을 결정(추천)..결정이 아님·CBA는 결정하는 것이 아님. 결정은 정치·행정 영역에 이루어짐·CBA는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서 하나의 input, voice에 불과3. 세 가지 의사결정·투자결정 (순현재가치, 비용편익분석법, I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