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 담긴 신비로움 -감상날짜: 2005년 11월 23일최승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0185064 비서학과방유진시작하며…이번 무용시간을 통해 낭만발레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지젤부터 시작해 봉산탈춤, 학춤 등 한국의 전통 무용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의 무용을 봤다. 수십 가지 됨직한 무용 공연 중에서 내가 이번 무용 공연 감상문으로 선택한 것은 최승희의 보살춤이다. 비록 최승희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일부로서 짧게 보여진 보살춤이었지만 그 강렬한 인상은 전율이 되어서 다른 어떤 무용공연보다도 깊게 내 머릿속에 남아있게 되었다. 과거 조선시대에 무용복 이라고 보기엔 힘든 파격적인 의상 때문인지 아니면 보살의 평온함과 매혹적인 여인의 모습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이미지가 동시에 떠올랐다는 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최승희의 보살춤은 확실히 다른 무용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그래서 보살춤의 의미, 그 속에 담긴 최승희의 무용 사상, 시◦청각적 효과와 움직임의 분석 그리고 보살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보살춤에 숨겨진 매력과 내가 왜 이토록 최승희의 보살춤에 신비로움을 느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보살춤에 대해서……보살춤은 최승희가 관세음보살상에서 착안한 무용작품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보살을 형상화 하고 있다. 최승희는 1930년대 초 서양의 현대 무용을 주로 선보였으나 미국과 유럽,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친 후 동양 무용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이 시기에 최승희는 중국의 돈황 석굴을 관람 한 후 보살춤의 아이디어를 얻어 창작하기에 이르며 이 보살춤은 후에 최승희 대표작으로 꼽힌다.보살춤에 담긴 최승희의 사상최승희는 중국의 고전극 가운데는 대단히 풍부하고 아름다운 무용소재들이 있다고 여기며 만약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중국 무용예술을 창조한다면 기필코 서양발레보다 더 훌륭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였다. 즉, 최승희는 심미적 가치가 있는 예술 무용을 중국에 전파하였을 뿐 아니라 더욱 심층적인 예술 무용을 중국무용 분야에 불어넣었다. 이러한 예술서 과거 조상들의 창조는 전해내려 오면서 오늘의 예술전통이 되고 오늘의 예술가들의 새로운 창조는 곧 후세들의 전통이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춤, 중국 무용과 중국의 정신이 합쳐진 춤. 이것이 보살춤이 아닐까 싶다.절제의 공연장치최승희의 보살춤에는 특별한 무대배경이나 무대 소품이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 웅장하고 거대한 배경을 모두 제작했던 서양의 무용과는 확실히 대조되는 부분이다. 오직 최승희의 무용을 보여주는 전율이 흐를 것 같은 신비로운 조명만이 공연장치로 쓰인다. 어두운 무대에서 푸른 빛이 반나체인 그녀의 배꼽 아랫부분에서 떨어지더니 차츰 확산되면서 음악이 고조되어 가는데 공간상에 선을 그으며 지나가는 그녀의 동작을 불빛은 그저 묵묵히 따라가기만 한다. 이런 절제의 공연장치는 무용을 단조롭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무용을 강조하면서 환각인지 현실인지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환상적으로 만들었다.화려하고 관능적인 무용 의상무용에서 의상 곧 무용복은 그 모양이나 선을 통해 부용수의 사상, 감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무용복은 무용수의 움직임과 표현을 관객에게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특히 홀로 추는 춤에서는 의상은 더욱 강한 인상을 준다. 보살춤에서 보여지는 의상의 특징은 불상이나 벽화와 같은 고대 예술품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의상이었다. 여기에 현대적이고도 세련된 디자인을 적용하여 그 인품을 한결 고귀하고 신비스럽게 보이도록 했으며 또 미모와 육 체의 선을 살려 화려함과 관능적인 느낌이 일어나도록 했다. 석굴암의 11면 관음상과 닮은 꼴 의 의상을 걸치고 머리에 관을 쓴 그는 다양한 수인으로 불교의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의상을 보면 당시로선 파격적인 배꼽을 드러낸 의상이었다.최승희의 춤에는 의상말고도 몸에 걸치는 장식품이나 장신구 또는 가발 같은 것이 많았다. 특히 보석 류의 장식품과 구술을 꿴 줄을 몇 가닥이 보살춤 의상의 전부였다.그녀가 직접 삼천개의 구슬을 손수 달았다고 전해지는데 그녀는 만만치 않은 무게의 의선하고 우대하여 그이와 함께 생활을 하기가 예사였다. 그리고 최승희는 안무를 할때에 반드시 옆에 반주 악사를 두고 했는데 이는 그 춤에 맞는 가락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최승희는 반작곡이나 편곡을 하면서 안무를 하는 수가 많았다. 이러한 안무방법을 쓰기 때문에 최승희의 무용은 음악성이 높은 춤으로 창조되었다. 이렇게 최승희는 반주 음악에는 많은 투자를 했다.윤태섭이 작곡한 보살춤의 음악은 지역적인 면을 고려해 공연하였다. 이를테면 같은 보살춤이라도 한국 일본 중국에서의 음악이 다 달랐다고 한다 내가 수업시간에 본 보살춤이 어떤 한국 일본 중국 중 어떤 지역적 특색을 갖고 있는 음악인지 정확이 모르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엔 한국적 음악이 아닐까 생각된다. 중국과 일본의 음악의 가벼움 보다는 한국적인 경건함과 신비로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승희는 어릴 적 무용을 시작하기 전에 성악을 먼저 공부하면서 성악가의 꿈을 키웠었다. 하지만 가계의 어려움과 동경의 음악학교에서의 입학거부의 이유로 그 꿈을 접었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음악적 재능은 여전히 그녀의 몸 속에 남아 그녀의 무용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움직임보살춤은 불보살의 자비행을 춤사위에 담아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이다. 처음에는 벽면에 딱 달라붙어서 정적인 선조의 미를 보이다가 나중에는 천천히 앞으로 나와서 입체적인 미를 보여준 다음 음악이 그치자 다시 처음 동작으로 되돌아가 벽면에 다시 붙는다. 마치 돌로 된 부처상을 동적으로 승화 시킨 것 같다. 한 손은 일직선을 똑바로 그리면서 내려오고, 한 손은 똑바로 옆을 선을 긋고 지나가면서 나오는 자태는 보살의 신비로움을 여실히 풍기에 충분하다.이와 같이 보살춤은 특유의 세련미를 갖추면서 미적인 움직임이 적은 편에 속하는 무용이다. 보살 춤을 추는 최승희의 눈빛은 마치 관객석에 구석구석마다 앉은 사람들 모두가 다 자기를 보고 춤을 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눈빛이었다. 시선을 둘 때는 이 지구에서 태양계를 지나 은하수를 지나서 우주 본체의 기를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감각적이고 우아한 신비로움을 보니 왜 사람들이 그토록 그녀의 보살춤에 열광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그녀의 무용을 관람한 게 아니라 그녀의 몸놀림에 홀린 게 아닐까 싶다.보살춤에 대한 열광최승희는 1939년 4월 중순부터 네덜란드로 건너가 암스테르담에서 공연을 했는데 이 공연을 보고 암스테르담 텔레그라프 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평을 하였다 ‘얼핏 보기에 전혀 표정이 없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변화되는 얼굴의 아름다움, 그리고 수시로 변하는 손짓, 리드미컬한 음악의 반주, 그이가 표출해 내는 조각적이고 색채적인 아름다움-최승희의 춤은 이처럼 독창적이면서도 매혹적이어서 위대한 인상을 준다. 바로 이것이 네덜란드 관객들의 최고 눈길과 관심을 끌었다.’브뤼셀 그랜드(Brussels Grand)지는 “우리 서양인의 눈에는 가장 매혹적인 표현의 신선함과 명쾌성을 지니고 있었다”라고 했으면 도이치 네셔날 제이티(Deutsch National Zeiting)지는 “그녀의 예술은 신이 생생하는 압도적인 화상이다. 그녀의 창작은 만장하는 관객에 의해 최고의 찬사와 함께 같은 차원의 감사로서 영접되었다”라는 평가를 했다.같은 해 6월 15일 브뤼셀, 로마, 헤이그 등 유럽 순회공연을 끝내고 파리로 온 최승희는 대망의 무대라고 볼 수 있는 예술의 전당 국립극장 샤이오에 서서 을 추었다. 이때 관중 속에는 피카소, 장 콕도, 로망 롤랑 등의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보였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신문 ‘피가로’는 보살춤을 추는 최승희를 선이 아주 환상적인 동양 최고의 무희라고 격찬했다.이렇게 많은 대중들에게 특히 유럽인에게 한국 민속 무용을 이해시키도록 연출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이를 성공한 최승희의 무용의 매력이란 비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마치며……‘무용의 이해와 감상 시간’ 중 교수님께서 최승희의 보살 춤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이는 최승희의 춤이 미국의 무용가 ‘루스세인트데니스’의 인도 춤에 영향을 받았을 거라 여긴다 라고 하학에 기초한 춤이 보살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상을 통한 표현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 무용과도 달랐다.그리고 보살 춤은 관세음보살상을 나타내면서 그 속에 담긴 최승희의 창조무용에 대한 정신, 그녀의 움직임을 뒷받침해주는 신비롭고 파격적인 의상과 무대장치 음악이 완벽히 조화되어 있었다. 이런 조화가 보살춤에 담긴 매력이고 사람들이 보살 춤에 열광하는 이유인 것 같다.이렇게 보살 춤에 대해 내가 왜 이토록 신비로움을 느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거 같다. 한국사람의 80%정도는 무아지경의 감각에 스며들게 하는 신기가 있다고 한다. 나 역시 한국인의 80%에 속하는 보통사람인지라 최승희가 보여주는 보살의 자태에 나도 모르게 신기에 빠져 전율을 느낀 것 같다.이번 감상문을 위해 여러 최승희에 관련된 여러 서적을 읽으면서 획기적인 창작무용을 선보이는 것 이외에도 그 동안 최승희에 대해 내가 모르는 부분은 엄청나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은 한낱 빙산의 일각이었으리라. 일미터 칠십이라는 좋은 체구에 미인인 여자로 과감하게 반나체로 춤을 췄던 최승희는 이제야 볼 수 있는 육체 예술을 70년 전에 벌써 시도한 장본인이었다. 그녀는 120여 종류의 한국 무용과 창작 무용을 만들고 보급시켰다. 그리고 최승희는 우리 민족의 딸로는 최초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경이로운 공연을 했고 동양 무용을 내세워 서양 무용에 도전 했으니 누구보다 더 앞서가는 예술 사상가였다. 이렇게 그녀는 분명 우리 민족의 사기를 올려놓았고 썩어있는 기생춤에 민족적 정신을 넣어서 예술 무용으로 승화시킨 우리나라 무용의 대가라고 여기고 싶다.참고문헌강이향(1993), ‘최승희 생명의춤 사랑의춤’ 지양사고승길(2005), ‘아시아춤의 근대화와 한국의 근대춤’ 민속원고야문(1951), ‘조선무용가 최승희’ 문오출판사김경애외 2명(2001), ‘한국문화예술총서6: 우리무용 100년’ 현암사이애순(2002) ‘최승희 무용예술연구’ 국학자료원정병호(2004), ‘춤추는 최승희’ 현대미m
We can’t just Sit back and Hope일찍이 스티븐스빌버그는 비록 그가 본 영화는(대부분이 디즈니영화) 거의 없었어도 8살 때부터 영화제작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만화책이나 미술, 티비와 같은 시각적 이미지에 매료되었다. 그의 부모님이 그가 티비를 거의 보지 못하게 해도 그는 티비위에 담요를 덥고 티비를 봤다. 그는 아이같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응시를 했다. 이런 그의 시각적 집념은 그에게 이야기말하기(Storytelling)의 재능으로 나타났다 나는 그에게 무엇이 그가 이야기를 하도록 했는지 (compel: 강요하다) 물어보았다.“나의 욕구는 주위 관심의 중심에 서는 것이어서 저는 항상 이야기에 끌렸습니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간단해요 저는 새로운 학교에 있었고 눈에띄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알게된 것은 내가 이야기를 말하길 좋아한다는 것이였지요 저는 3명의 여동생이있는 집안에서 자랐고 우리들은 항상 우리의 위치를 (가족 이목을 받는데) 위해 항상 싸우고 부모님의 관심을 받기위해 노력했지요. 내 동생들은 특이한 일을 했지만 저는 동생들이 한일을 합한 것보다 훨씬 더 특이한 일을 했지요. 저는 카메라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습니다”그의 첫번째 카메라는 아버지가 빌려주신 8-mm 코닥 카메라였다.“저는 내 영화의 배우로 여동생들 썼고 내가 좋아하는 대로 그들을 버릴수가(trash: 파괴하다 =destroy ) 있었습니다. 그는 소년 같은 미소로 설명했다. “동생을 죽이고 다시 죽이는 것은 좋은 이야기 속 재미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나의 8mm 영화를 보여드렸고 부모님은 반응을 보이었지요. 이것이 제가 처음 가족사이에 제 위치를 발견한 방법입니다. 저는 제가 할수 있는 일을 발견했고 사람들은 그것와 제게 흥미를 가졌습니다. 3,4번째 8mm 서사 영화를 만든후에 저는 이것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내 직업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영화가 힘들 가지고 있다는 걸 배웠던 거지요”스필버그가 10대였을 때 그의 부모님은 이혼하셔다. 이사건의 충격은 후에 그의 영화의 반복적인 주제로 쓰이게 된다. – 이혼으로인해 뿌리채뽑힌 (uprooted) 아이들, 갑자기 불완전해진 어린아이들의 삶. 그의 영화 ET(the Extra-terrestrial)는 헤어진 형들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태어난 영화라고 말했다.그가 10대 후반이었을 때, 스필버그는 그의 가족들과 함께 애리조나에서 북가주(북부캘리포니아)로 이사를 했는데 그곳에서 그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영화제작을 계속 하게 되었다. 그가 학과공부를 소홀히한탓에 그의 성적은 엉망이 되었다. 졸업후, 그는 어떤 major 영화학교에도 들어갈수없었고 그래서 결국 LongBeach에 있는 cal state에 다니게 되었다. 이때, 그는 22분짜리 단편영화 amblin이라는, 모하비사막에서 바다로 가기위해 hitching을 하는 한 소녀와소년에 대한 로드무비(road picture)를 만들었고. 이 단편 영화는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Amblin'은 베니스 국제 영화제와 아틀란타 영화제에서 상을 탔고 그것은 유니버셜 영화사TV 총제작자 시드니 쉐닌버그의 눈에 띄었다. 쉐닌버그는 스필버그와 7년 계약을 맺었다무엇이 그의 영화들을 그렇게 성공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 영화들을 다른 것들과 다르게 했을까?(무엇이 그의 영화의 차이점일까?)““나는 무엇이 영화들을 다르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대답했다. “ 내 영화의 90%는 프랙카파라 나 프레스톤 스털지 의 영화방식 처럼 구식입니다 제가 만들었던 많은 영화들은 50년 전에도 인기가 있었을 것이며, 그것이 내가 많은 구식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나는 fuuddy-duddy 입니다.(선천적으로 시대에 뒤쳐진 사람). 저는 정말 stick-in the-mud fuddy-duddy(시대에 뒤쳐진 사람의 강조표현: 진창에 빠진 구식사람)입니다. 나는 아들이 날 부르는 것처럼 매우 retro(후퇴자)입니다. 나는 나의 부모님이 그렇게 하신것 처럼 내 아이들이 tv를 많이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들이 뉴스를 보는 것을 감시하는 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길 바라지도 않고, 그애들이 보지 못한 저쪽의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과 자신들이 아직 수용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갑자기 알게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스필버그는 아이들을 끔찍히 사랑하며 보수적인 아버지다. 그 점에 있어서 과연 어떻게 그가 미국의 엔터테인먼트에서 섹스와 폭력을 배재할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그는 대답했다. “저는 그런 짓 안 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검렬 또한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같은 쇼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사람은 우리가 공중파로 내보낸 것 극장에 내보낸 것 또는 비디오가게나 레코드 가게로 내보낸 것들의 내용물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검열과 기호, 도덕적 책임감 사이에는 한계선이 있습니다”나는 그가 금세기의 고충과 현재 미국 사회의 폭력성을 감안했을 때 미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 큰 희망을 가지는지 물었다.“나는 항상 매우 희망적입니다” 그는 답했다. 그러나 우리는 가만히 앉아 수행동적이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그룹, 지역사회, 종교, 감화시키는 세계적 의견에 대해 더 행동적이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앉아서 총과 마약이 사라지기 바라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의견을 표명할 의무, 세계를 고칠 업적을 남길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
가치창조를 위해서이 책은 ‘經營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經營의 기본적인(그렇지만 核心적인) 원리와 현대 경영의 총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껏 피상적인 경영 이론만을 접해온 나에게 현실적 사례와 그 사례가 주는 구체적인 경영학적 시사점은 단순한 놀라움 그 이상이었다.이 책에서는 시대를 이끈 혁신, 경영의 핵심과 실행에 관한 9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한다. 조안 마그레타는 우선, 경영의 핵심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회사의 목적과 비전을 이끄는 가치 창조, 가치 창조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조직 구성이 바로 그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경영의 실행에 대해 논한다. 현실 직시를 통한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기업 내 외부 환경 파악, 회사 전체의 목표와 사명에 맞는 핵심역량, 미래 불확실성과 혁신 등이 그것이다. 이 중 내가 가장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이 책의 시작을 여는 ‘가치창조’ 부분이다. 사실 ‘가치경영’이라는 말은 너무도 많은 경영학 수업과 경영학 관련 서적, 또 많은 경영인에게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고, 나와 같이 경영학을 배우는 학생이 아니더라도, 신문을 읽고 TV 뉴스를 보는 일반인이라면 익숙할만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쉽게 생각해 온 ‘가치창조’라는 개념에 기업경영의 원리가 숨어있고, 거기에서 모든 경영의 핵심과 실행의 기본 원칙이 시작된다.우선 ‘가치창조’란 어떠한 활동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즉, 어떤 행위로 인해 주변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때 가치가 창조 되었다고 말한다. 기업경영에 있어서 가치는 전적으로 고객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상품, 서비스, 회사에 대해 가치 있다고 판단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전적으로 고객이 결정하고 선택한다는 것이다. 조안 마그레타는 그 대표적인 예로 코닥의 $1짜리 자동카메라를 들고 있다. 코닥의 자동카메라 출시 당시, 고객이 원하던 바는 싼 가격에 가족의 행복, 추억, 우정, 가족애 등을 한 장의 사진에 간편하게 담아내는 것이었다. 코닥은 ‘고객’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1세기가 넘게 코닥의 성장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이러한 가치에 대한 개념은 기존 Manufacturing Mind와는 상반되는 Marketing Mind에 그 기반을 둔다. 수요에 대한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산업경제시대에 테일러에 의해 고안된 효율성의 개념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족함의 절대적인 기반이라는 자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와서 여러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Manufacturing Mind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만들지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한 기본적인 고민 없이, 단지 어떻게 만들지, 어떻게 생산할지에 대한 몰입은 현대 기업에게 치명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서 초과공급현상은 어떤 시장에서든 당연하게 여겨진다. 즉, 소비자는 공급자에 대해 우월한 위치에 서있고, 따라서 수요자의 Needs를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가치에 respond하는 것만이 공급자가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공급자는 ‘만들어서 파는 것’이 아니라 ‘팔릴 것을 만들어야’한다. ‘우리의 비즈니스가 무엇’이고, ‘우리의 고객이 누구’이고 ‘우리 고객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저하고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를 위해 노력할 때만 고객이 그 생산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1970 - 1980년대 미국의 자동차 시장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자동차 업계는 고객이 누구이고 고객이 원하는바가 무엇인지를 잊어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 차의 고급화에 포커스를 맞췄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하지만 이 당시 미국 소비자의 Needs를 읽어낸 일본의 도요타, 닛산, 혼다 등은 작으면서도 소비자들이 원하는 튼튼하고 실용적인 차를 대량생산, 저가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미국자동차시장에서의 일본 자동차 Market share는 점점 늘어갔고, 이것 또한 일본 자동차업계의 발전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일본의 자동차는 지금까지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우위적인 위치를 점령했다고 볼수 있다.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를 위해서 기업은 기업내부에서 일어나는 일과 생산물뿐만 아니라, 기업 외부적으로 생산되는 원재료, 중간재에 대해서도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해야한다. ‘가치사슬’이 그것이다. 가치 사슬은 회사와 공급업체들이 상품을 디자인, 생산, 판매, 배달하고 사후수리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노동 전반에 걸친 행위와 정보의 흐름을 뜻한다고 한다. 조안 마그레타는 기업의 가치창조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인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이렇게 마그레타는 가치창조의 개념과 그 배경, 또 가치창조를 위한 조건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현재, ‘가치창조’의 개념이 널리 확산되고 그 중요성이 여러 비즈니스 전문가에 의해 강조되면서, 대부분의 현대 기업은 기업 목표를 고객을 위한 경영 즉,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로 변경했다. 이전까지 거의 모든 기업의 목표가 이윤 창출이었다는 점에 착안하면, 이러한 변화는 분명 긍정적이고 놀라운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기업이 진정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업의 이윤이란, 이 책에서 제시한 여러 사례가 말해주듯, 가치창조 뒤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부산물이라 하겠다. 많은 경영인은 아직, 이 가장 절대적이고 원칙적이며, 또 쉬운 법칙을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한듯하다.나는 이 글을 읽으며, 그렇다면 과연 가치의 원천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산업경제시대에서의 가치는 생산량 증가와 비용절감이었다. 즉, 가치는 회사내부의 의사결정과 Plan, 조직구성원의 행동 등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다르다. 가치의 유무여부는 100% 그것을 사용하는 고객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가치는 고객이 어떤 상품을 선택하는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치의 원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첫째,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이다. 이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삼성의 애니콜이 (일부에서 지적하는 조악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핸드폰 시장을 장악한 이유가 될 것이다. 초기 핸드폰 회사들은 복잡하고 많은 기능을 중요시한 핸드폰을 생산하는데 주력을 다했었다 그래서 핸드폰의 잦은 고장으로 핸드폰 AS 센터를 두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삼성 애니콜은 이러한 시장에 애니콜의 튼튼함을 강조하면서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평가을 받을 수 있었다. 둘째로, 이미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소비자는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나 서비스의 이미지를 구매한다는 말이 있다. 터무니없이 비싼 명품 구두나 가방에 대해 소비자가 기꺼이 많은 액수의 돈을 지불하는 이유가 이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용가능성이다. 아무리 품질과 이미지가 좋더라도, 접근용이성이 떨어진다거나, 가격저항선에서 걸린다면, 고객은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는다. 넷째로는 서비스이다. 서비스는 마케팅믹스와 관련된 부분인데, 그 대표적인 예로, 자동차 할부 판매를 들 수 있다. 한 고객이 어떤 자동차의 품질과 그 이미지에 만족을 느끼고 구입하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차는 그 고객이 생각하던 것보다 상당히 비쌌다. 이용가능성이 떨어져 고객은 그 차를 구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 때 자동차 판매사원이 할부구매를 제안했고, 고객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즉 여기서 말하는 ‘서비스’란 위의 3가지 요소 외에 고객의 제품 구매 여부를 결정케 하는 기타의 마케팅 전략을 말한다. 삼성의 이윤을 이끄는 source중 상당 부분(애프터서비스, 친절한 사원 등)이 ‘서비스’로 설명된다.지금까지 많은 경영학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의 중요성에 대해 귀가 아프게 들어왔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그 진짜 의미를 깨달았고, 경영에 있어서의 의의를 스스로 정의내릴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단지 시대의 조류에 역행하지 않기 위해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를 외치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경영자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