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를 주제로한 생명존중 가치 지도방안1) 안락사 사례영국인 레지널드 크루(74)는 스위스 취리히의 작은 아파트에서 스위스 의사가 준비해준 수 면제인 바르비투르를 과다 복용한 뒤 아내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지난 4년간 진행성 마비를 일으키는 신경질환인 `운동뉴론질환'으로 고생해왔던 크루는 이 로써 취리히 소재 비영리단체인 `디그니타스(Dignitas)'의 지원을 받아 자살한 외국인의 대 열에 합류했다.크루는 그동안 계속 자살을 희망해왔지만 영국에서는 자살을 도와주는 행위가 허용되지않기 때문에 스위스행을 택했던 것. 불치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인 디그니타스의 설립자 로드빅 미넬리 사무총장은 AP통신 에 "크루는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평화롭고 고통없이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디그니타스는 특히 자살 지원 단체 중에서도 외국인들을 지원해주는 유일한 단체이며불치병으로 고생하다 안락사를 원하는 외국인 환자들의 스위스행이 점차 늘고 있다.크루씨의 사망으로 디그니타스의 지원을 받아 자살한 환자는 모두 146명에 달했으며 지난 2000년에는 50명의 환자가 디그니타스의 지원 하에 자살했고 지난 해 에는 75명으로 늘 었다. 디그니타스의 설립자인 루드빅 미넬리 사무총장은 올해 그 숫자가 더욱 늘어날 것으 로 전망했으며 디그니타스는 연간 회비 18달러를 내는 외국인 회원만 2천350명에 달한다.영국에서 자살은 합법이나 타인의 자살을 지원하는 행위는 최고 징역 14년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다. 미국에서는 오리건주(州)가 유일하게 의사의 협조를 받아 자살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이 역시 끊임없는 논쟁에 시달리고 있다.현재 불치병 환자의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유일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도 환자가 합법적 거주자여야 하고 환자와 의사간 오랜 유대관계가 성립할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안락사가 허용된다. 그러나 스위스는 타인의 자살을 도와주는 행위를 사 실상 용인하고 있다. 특정한 사익(私益)이 개입됐을 경우에만 형사 처벌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돼있으며 다만 이를 통해 영리를 취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상담원이나 의사는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를 위해 수면제를 준비해줄 수 있다.그러나 이를 환자에게 건네주거나 복용을 직접 도와줄 수는 없다.디그니타스는 단지 불치병에 시달리면서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의사를 반복적으로 표명해 온 환자들이 자살하는 것을 도와줄 뿐이라고 주장한다.크루는 지난달 영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4마일을 달리는 것과 같 고 그것에 넌덜머리가 난다. 나는 단지 지구상에서 사라지기를 원한다"면서 디그니타스를 "내게 남겨진 유일한 기회"라고 말했었다.미넬리 사무총장은 "절망에 빠져 원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라면서"나는 이를 자랑스럽다고 말하진 않지만 나의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2) 안락사 찬반 논쟁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개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주장합니다.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의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며, 이 환자를 위하여 고통을 진정시키는 진통제 사용 이외에 다른 어떤 치료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그 고통과 비참함을 빨리 종식시킬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누워 있는 환자는 일을 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없으며 인간으로서 어떤 목적도 성취할 수 없는, 실제로 죽은 인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 불치의 병을 치료하는데 그의 가족들에게 정신적,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주고 막대한 의료 비용은 그 환자의 가정과 재산을 파탄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자의 생명을 빨리 단축시키는 것은 자비로운 행위라고 봅니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의사의 중요한 임무이므로 이것은 비윤리적인 행위가 아닌 것입니다.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계속되는 고통과 회복의 희망이 없는 병에 시달릴 때 자신의 생명을 끊는 것은 개인의 기본적 자유이고 자율적인 결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일반적으로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인간 생명의 본래적 가치를 부정하고 현세적인 안락한 삶이나 사회적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적 가치만 주장할 뿐, 인간 자신이 지닌 고유한 내재적 가치, 본래적 가치, 초월적 가치를 경시합니다. 따라서 현세적인 안락한 삶을 실현할 수 없는 생명, 아무런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없는 생명은 가치를 상실한 무가치한 존재이고 생존의 의미를 상실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어떠한 상태에 있든지 관계 없이 그 자체로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따라서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없고 아무런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없는 생명도 인간 생명으로서 똑같은 가치와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개인이 사회의 공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개인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의사의 가장 기본적이며 고귀한 임무는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일인데 환자를 도와서 죽게 한다면, 그 결과로 의사 자신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사회 전체가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로 변화될 것입니다.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의미 없고 무가치하다고 생각되는 환자의 안락사를 용인하게 되면, 수많은 비윤리적인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환자 자신이 고통스럽고, 그의 가족에게 큰 부담을 주고, 그 사회에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다고 하여 그의 생명을 종식시키는 일이 허용된다면, 이러한 미명 아래 수많은 생명이 없어질 것입니다. 또한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설정한 방향에 따라 안락사의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많은 모순이 따릅니다. 오랫동안 고통 중에 있으며 진통제를 사용해온 환자가 자기 생명을 끊는 데 있어서 정상적인 정신상태로 신중하게 숙고하여 결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남아 있으며, 또 진통제로써 고통을 완화시킬 수 없어서 죽음을 꼭 선택하여야만 하는 지속적인 고통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안락사의 남용과 오류를 막을 충분한 안전 장치가 없고, 현실적으로 안락사의 실시를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안락사를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인간 생명의 절대적 존엄성입니다. 안락사는 이에 대한 반역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거가 생명 보존을 위한 치료 의무에 적용될 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이러한 절대적 존엄성을 지닌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어떠한 치료 중지도 정당화될 수 없고 인간 생명은 진정 기본적이고 귀중한 선이요, 또 현세적 최고선이라고 할 수 있을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마땅히 보존되어야 할 절대적인 가치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최근 안락사에 대한 논쟁은 환자의 명확한 요청에 의한 자발성의 여부입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개인의 기본권으로 주장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이러한 권리란 환자가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니고 평화롭게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리일 수 있습니다.3) 도덕과 교수학습 지도안학습단계학습과정교수-학습활동시간자료 및 유의점도입동기유발*교사는 안락사의 실제 사례를 제시한다.*학생들은 이와 관련해서 경험 (뉴스나 신문, 주변에서 경험한 것들.)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5‘안락사 사례전개본활동역할놀이* 교사는 학생들에게 문제 상황을 제시한다.(불치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며 안락사를 간절히 원하는 환자와 치료가망성이 없는 환자를 바라보며 고민하는 의사와 보호자의 상황)*교사는 위의 상황에서 어떤 가치가 대립하고 있는지 학생들에게 질문한다.(생명존중, 개인의기본권, 선택의자유권)*학생들은 모둠별로 역할놀이를 실시한다.위와 같은 상황에서 환자, 보호자, 의사의 입장이되어 각자가 지지하는 가치에 따라 역할놀이를 한다.(예를들면 환자의 입장에서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죽을 권리를 요구하며 입장을 지지하고 의사의 입장에서는 생명존중 가치를 내세우며 안락사는 무조건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할 수 있다. 또는 의사나 보호자의 입장에서 환자의 요구. 즉, 개인의 자유로운 권리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권리를 수용하여 안락사를 허용할 수도 있다.)* 학생들은 위의 활동을 통하여 살펴본 가치들의 타당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의사라면 어떻게 대처할지 그 이유를 들며 발표해 본다.
유가 진리관과 주입식 교육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유가사상은 당대의 어지러운 세상을 안정시켜 보고자 한 공자의 사상을 모태로 하고 있으며 이 사상을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단연 ‘인’ 과 ‘예’라 할 수 있다.다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성선설과 성악설로 구분되나, 두이론 모두 유가사상의 큰 맥을 뿌리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유가 진리관과 주입식교육의 관계에 대한 고찰에 앞서 먼저 유가사상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인과 의의 관계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먼저 仁은 인간의 본성이자 禮를 욕구하는 내면적 근거이다.즉 인은 타고난 것이며 인간은 예로써 그 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禮는 인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본성을 회복하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克己復禮’ 는 이러한 예의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극기 하여 복례한다는 것은 예로 수신함으로써 즉, 인간의 욕망을 예로써 절제함으로써 예의 모습을 표방한 인을 회복하는 것이다.예로써 인을 회복한다는 것은 타고난 본성의 선함을 일컬으므로 이는 성선설의 입장에서의 예로 볼 수 있다.그러나 성악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할지라도 예가 크게 달라질건 없다.다만 성악설은 예로써 인간의 악한 본성을 절제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자 했다.즉, 궁극적 목적이 예를 통한 본성의 회복이 아닌, 어지러운 사회를 예로써 바로잡는 것에 있었다.살펴본 바와 같이 두 이론의 궁극적 목적은 조금의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수신에 있어, 예의 중요함을 주장한 것은 동일하다.그렇다면 禮는 무엇인가?예는 그자체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예는 끊임없는 자기 수양이자, 만인을 위한 수양이다.유가사상에 있어 예는 없어서는 안 될 핵심 포인트며 누구도 이를 배척할 수 없다.배척할 수 없다는 것은 숭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며, 이는 예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요, 또 이는 예가 아닌 것은 의심하여 배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즉, 유가에서는 오직 예라고 단정 지은 절대 진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에 비추어 예가 아닌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이 말인즉, 교육이나 자기 수양에 있어 그 내용이 되는 것은 오직 예에 어긋남이 없는 것이요, 따라서 교육이나 수양을 통한 궁극적 목적은 이에 통달한 선인들처럼 되어야 하는 것이라, 결국 이는 그들의 예를 본받아 수양하고 교육해야 함이다.여기에 본받는 다는 것 자체에는 이미 그 본이 존재하고 그 본은 선대의 경험으로 만인이 옳게 여기는 바라. 누구도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옳게 여긴다.바로 여기서 우리는 유가진리관과 현대 주입식교육의 상관관계를 추론할 수 있다.지식과 교과서는 본이요, 그 본은 선대의 경험에 의해 옳은 것으로 검증받은 절대선이라. 학생들은 본을 본받아야 하고 교사는 절대 선을 전수해야 한다. 절대선이 아닌 것은 전수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학생들이 본처럼 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어린이 철학교육 방법에 대한 고찰“ 철학은 무엇인가? “ 라는 질문에 대답해 본적이 있는가?이 질문은 7자의 단어로써 상대를 난처하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많은 사람들은 늘 철학과 살을 비비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어떤 명제의 형태로써 권위자의 입에서 오르내려지면 두려워하고 당황 한다.이는 분명 철학이 두 얼굴을 가지고 있음 이겠다.철학적 지식의 형태가 그 한 면(面)이요,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철학적 활동의 형태가 다른 한 면이다.전자는 후자의 산물로써 시대에 남겨진 업적이며 능히 그 업적을 교육 가능하나 그 지식은 철학적 활동의 결과일 뿐 그 자체로 진정한 철학적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고기를 낚아주는 것 보다 고기 낚는 법을 일러주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고 실질적이라 하지 않던가.결국 철학자가 저세상으로 가버리면 남겨진 사람은 평생 그분이 남긴 지식 안에서 살아가는 수 밖 에 없다.따라서 철학교육은 철학적 지식의 전수보다 철학적 사유의 근본과 사유를 시작하게 하는 원동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다.그렇다면 이러한 철학교육이 어린이에게도 가능할 수 있을까?결론부터 말하자면 yes다.서울대 황경식 철학과 교수는 “성인이 실용적 사고에 젖어있는 반면 아이는 세상, 우주, 자연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있다”며 “초등학교 3, 4학년만 돼도 철학적 사고는 위축 된다”고 말했다.결국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이 있는 한 모든 인간은 철학을 할 수 있으며 아이들 또한 생각할 수 있으므로 철학을 할 수 있다. 다만 철학적 사유의 주제나 방법, 혹은 깊이 등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철학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우리는 이 물음에서 또 한번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물론 아이들은 철학함을 본능적으로, 숙명적으로 타고 난 인간이므로 철학을 할 수 있다.하지만 이를 교육시킨다는 것, 즉 철학함을 언어적으로 교육하는 것은 그 방법론에 있어 여간 난처하지 않을 수 없다.철학이 언어적으로 교육한다고 되는 것일까? 다시 말해 사고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해서 되는 것일까?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이는 어렵다.‘해라 해라’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방법을 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만약 그래서 되는 일이었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소크라테스가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결국 철학은 주입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활동으로써 철학함을 몸소 체득하고 철학함을 습관화 시키는 것, 즉 철학하고 싶음이 생기게 하는 것 이다.철학하고 싶음은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싶은 것이며 이는 철학의 목적에 다가감으로써 인간삶의 궁극적 목적을 정립하는 초석이 되는 것이다.이제 위 문제의 논의를 위해 잠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철학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이를 통해 우리는 철학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생각해 봄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무엇인가 ? ”철학은 일반적으로 ‘왜?’ 라는 질문에 차근차근 의미를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그것은 어린이에게 철학을 가르침에 있어서도 예외가 되지 않으며 지금까지의 어린이 철학교육은 이를 바탕으로 접근하고 있었다.이는 앞서 살펴본 어린이 철학의 가능성의 토대위에 활동을 통한 철학함의 체득을 목적으로왜? 라는 질문에 대해 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대답할 수 있도록 연습시키는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철학의 목적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위에서 정의한 것처럼 철학을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논리적 대답’ 이라고 했을 때 어딘가 미완성 적인 느낌을 떨칠 수 없다.대답 그 다음은 무엇인가? 그것에 대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대답해야 하는가? 라고 다시 반문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결국 철학의 궁극적 목적은 논리적 대답이 아니다. 철학의 궁극적 목적은 떨침을 통한 마음의 안정이며 행복이다.여기에서 또 다시 ‘왜 행복해야 하는가? ‘ 라고 꼬리를 물수 있는가?그러나 그것은 원초적 본능이자 만물의 이상이므로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이제 갈등의 여지가 생겼다.철학은 질문에 대한 논리적 대답이 아니었다.지금까지의 철학교육은 갈등의 종식을 표방한 갈등의 자극이었다.결국 잠깐의 갈등을 종식시키거나 혹은 보류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완전한 갈등의 종식을 통한 행복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토론을 통한 논리적 사고의 접근을 통한 철학교육 역시 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토론이라는 것 자체가 갈등의 종식을 표방하지만 그 갈등의 종식은 서로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 합리화함으로써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때문에 완전한 화합이 아닌 잠정적 합의 일뿐 언제나 갈등의 씨앗은 내재되어 있다.따라서 토론을 통한 철학교육은 갈등의 내재에 의한 불안정 요소가 강하며, 끊임없는 혼란의 연속이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는 철학의 목적과는 괴리가 생긴다 할 수 있다.이는 서구적 사고에 입각한 철학교육의 폐단이라 생각한다.논리적으로 따져서 승리하는 것, 양분시켜 승패를 가늠해야 하는 것, 논리적인 것만이 옳은 것 이라는 서구적 사고가 철학교육의 발목을 잡고 있다.논리적인 것이 그러한 관점에서 승리는 보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곧 모든 사람에게 행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개인의 행복 역시 각각 다르므로 몇몇 사람에겐 논리적으로 승리하는 것이 행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얼마나 되겠는가?하지만 마음의 안정됨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이라 동의 할 수 있을 것이다.따라서 철학은 개인 각자의 마음의 안정을 추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우리는 여기에서 동양적 사고관을 통해 그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즉 혼란의 종식은 종식이되 그것이 논리적 사고를 통한 잠정적 종식이 아닌 혼란자체를 혼란으로 받아드리지 않는 긍정적 수용의 측면에서 마음의 안정이다.모든 갈등과 혼란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지 않음에서 출발한다.따라서 철학교육은 물자체(物自體)의 받아드림을 통해 시작해야 한다.이제부터 논의되는 철학교육방법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닌 물자체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전개될 것이다.먼저 어린이 철학교육에서 그 대상에 주목해 보자.어린이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강하며 욕심이 많고 이기적이다.자기의 능력범위를 벗어난 것도 취하고 싶어 한다결국 어린이는 자기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마음이 불안정 해진다. 즉 이는 행복이 아니다.따라서 이시기에 특히 자신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즉 자신을 돌아보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마음의 불안정을 해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래의 안정한 마음을 회복한다.여기서 철학의 방향은 크게 만족, 체념, 수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첫째, 현재의 자신에 대한 만족은 욕구를 감소시킨다. 이는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잘 하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하게 하며 그 자체로 마음의 혼란을 감소시키므로 이는 마음의 안정을 도모한다.초등에서는 자기중심적이고 움직임 지향적인 어린이의 특성에 비추어 ‘만족’의 측면을 특히 부각시키는 것이 보다 효과 적일 것이라 생각된다.‘만족’을 체득하는 구체적, 가시적 활동으로는 자신을 정확히 알아보는 활동, 자신의 능력범위를 알아보는 활동, 그리고 그것에 감사하는 활동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활동에 의한 체득보다는 통찰에 의한 체득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둘째로, 체념은 자신의 욕구를 취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누었을 때 취할 수 없는 욕구를 과감히 떨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또한 마음의 안정을 추구한다.내 것이 아닌 것을 욕심내지 않는 것이다. 이는 물건이든, 사람이든 똑같이 설명되는 이치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거나 관계를 엮으려 할 때 마음의 동요를 느끼게 되므로 이를 떨치는 것이 마음의 안정에 꼭 필요하다.셋째는 물자체(物自體)의 수용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는 것. 나와는 다른 남을 인정하고 그 자체로 받아드리는 것은 마음의 혼란을 종식시킨다.마음의 동요는 나와는 다른 남을 나와 같게 만들려고 하는데서 일어난다.
불평등의 재생산을 조장하는 고교등급제최근 교육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고교등급제’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거운 이슈로 자리잡고 있다. 고교등급제란 대학입시에서 전국의 고교를 서열화 하여 대학입학전형에 반영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최근 이대, 고대, 연대 등의 대학에서 이 제도를 수시 모집에 적용함으로써 이것에 대한 문제가 가시화되며 뜨거운 논란이 일고있다.우리나라가 학벌위주 사회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서울에 있는 일류대학을 졸업하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평가받게 되고 좋은 직장으로의 취업도 그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많은 학생들은 그들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길 원하고 또 그것을 목표로 공부를 한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열심히 공부하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수시 모집 제도가 생겨나고 내신점수의 중요도가 높아짐에 따라 또 다른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동안 각 고등학교들은 서울과 지방, 비강남권과 강남권이 별다른 차별 없이 모두 동일한 수준으로 취급되고, 그 안에서 우수한 내신을 가진 학생들은 수시 모집을 통해 좋은 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다 보니 각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더 좋은 학교에 더 많이 진학시키기 위해 내신 부풀리기 현상 등의 각종 비리들을 저지르게 되었고, 각 대학에서는 수시 모집을 통한 학생선발 기준 역시 모호해 지게 되면서 수시 모집에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 수시 모집은 모든 고등학교가 동일한 수준에서 평준화 된 상태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비 평준화 지역도 많고 각 고교마다 수준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는 학교에서의 1등이나, 못하는 학교에서의 1등이나 내신위주의 수시 모집 에서는 모두 같은 1등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이유로 고등학교를 등급을 매겨 등급에 따른 차등점수를 부여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한 것으로 밝혀져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의 시행에 대한 의견은 그 이익집단의 사회계층에 따라 그 입장이 판이하게 갈리고 있어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그렇다면 어떠한 집단이 어떠한 이유로 고교등급제를 찬성, 또는 반대 하는것일까?이제부터 고교등급제에 대한 각각의 주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먼저 고교등급제 라는 생소한 말을 꺼내어 사회의 혼란을 야기 시킨 집단의 주장을 살펴보자. 무엇 때문에 고교 등급제가 필요한 것일까?앞서 말했듯이 고교간의 학력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평준화 지역에서는 그 차이가 명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비 평준화 지역에서는 고교간의 실력차이를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비 평준화 지역에서는 입학시험을 통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되고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은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따라서 일류 고등학교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이게 되고, 중학교 때는 손에 꼽히게 공부를 잘하던 학생들도 일류 고등학교에서는 하위권으로 밀려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성적을 내었을 때 같은 학교 내에서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서열화 시키면 1등부터 꼴찌까지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워야만 한다. 중학교 때는 상위권이었을 지라도 지금은 하위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한 학교 내에서만 학생들을 비교한다면 수능점수 이든, 내신점수 이든 그 서열화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문제는 바로 다른 (이류, 삼류) 학교와 내신을 비교할 때 생기게 된다.일류 고등학교에서의 내신 1등이나, 이류 고등학교에서의 내신 1등은 수시모집 선발시 모두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일류 학교 1등은, 이류 학교 1등에 비해 분명 그 수준이 높다. 이류 학교 1등은 일류 학교로 전학 오게 되면 중위권도 지키기 어려운 것이 그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는 수시모집 선발시 두 학교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있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학교에서는 고교등급제를 주장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또 다른 예로는 강남권 학생들과 비 강남권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 얘기가 조금 다르다.앞서 말한 비 평준화지역은 고교에 대한 서열이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강남권과 비강남권은 암암리에 존재하는 것이다.분명 평준화 지역인데 어찌하다보니 비 평준화 지역처럼 특정학교가 수준이 높아지게 되고 학교간의 학력 차가 크게 벌어지게 된 것이다.이렇게 되면 이 경우도 암암리에 일류학교 이류학교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그 학교들의 사정 역시 앞서 말한 경우와 같아지게 되며, 이에따라 고교등급제를 요구하게 되는것이다.이들은 고교등급제가 시행되게 되면 일류학교 학생들은 다른 학교와의 비교내신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자기 능력껏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이는 교육경쟁력을 높여 대학에서도 더 좋은 인재를 등용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이들의 주장에는 모순이 있다.이들은 자신들이 일류 고등학교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수시모집에서 손해를 보고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류 고등학교로 진학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류 고등학교, 혹은 비 강남권 고등학교로 전학이나 진학을 하게되면 자연히 그들은 내신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수도 있을 텐데 왜 가지는 않고 말만 많은 것일까?이들의 태도로 봤을 때 분명 일류 고등학교에서 얻고있는 혜택이 더 많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학벌이나 학습환경이나 학습조건 등이 분명 유리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것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학벌위주 사회에서 인맥 또한 중요하다보니 같은 학교를 나온 선배에 도움을 기대할 수도 있으며, 다 같이 공부하는 면학적인 학습 분위기와 유능한 교사의 수업, 그리고 학생간의 질 높은 정보의 교류 등이 그들이 얻고 있는 혜택들이라 볼 수 있다.앞서 말한 이들의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버릴 수 없는 혜택 때문에 고교등급제를 주장하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이로써 고교등급제를 주장하는 이익집단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대부분의 중, 상류계층임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계층이동을 지향하는 소수의 하류계층도 있는 주장에 대해 살펴보자.이들에 따르면 고교등급제는 또 다른 불평등을 낳는 것이다.이로써 계층 간의 갈등은 고조되고 상대적으로 빈곤계층의 위화감만을 조성시킬 뿐이다.고교등급제의 시행이 문제되는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먼저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을 통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재생산으로 볼 수 있다.사회,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진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교육을 좋은 조건과 환경속에서 받을 수 있게 해준다. 좋은 조건과 환경이란 최소한 먹고사는 것에 있어 자녀들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며,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고, 부족한 공부에 필요한 정보가 얼마든지 공급될 수 있는 것이며, 학업에 유해한 모든 시설이 차단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돈 걱정 안하고 유능한 과외나 학원을 다닐 수 있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다.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녀 역시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고 이에 따라 그들의 자녀는 등급이 높은 고등학교의 진학이 수월해 진다. 또 그 자녀들은 좋은 대학의 진학이 용이해지게 되며, 대학 졸업 시 높은 사회, 경제적 지위를 얻을 가능성 또한 높아지게 된다.이것은 가진 자의 투자에 의한 가진 자의 재생산이다.상대적으로 갖지 못한 자는 시작부터 교육조건과 교육환경이 덜 갖추어져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부분에서는 시작부터 뒤 처지는 경쟁을 해야만 한다. 당장 부모가 무능력 해서 먹고살기도 바쁜 상황에서 공부는 사치일 수 도 있다. 또 공부를 계층상승의 도구로 생각하고 죽어라고 노력해봐도 과외 받은 가진자의 자녀를 따라가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좋지 못한 환경 속에서 일류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며, 이것은 역시 대학진학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은 다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드리게 만들뿐이다.그러한 이들에게 있어 수시모집은 한 가닥 희망일 수 있다.가진자와 차별 받지 않고 내가 능력껏 공부하면 그 범위 안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다.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내신을 쌓아 그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대학에 지원할 수 있으며 학진학할 수도 있다.그러나 고교등급제가 시행되게 되면 이 한 가닥 희망 마져도 없어지는 것이다.가진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강남권 고등학교로의 진학은 가지지 못 한자들의 경제적 형편으로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이는 학생들의 수학능력과 수준차이를 떠나서 근본적으로는 경제적인 우열관계에서 생기게 되는 불평등인 것이다.결과적으로 고교등급제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재생산을 가속화 시킬 뿐이다.고교등급제 시행의 또 다른 문제점은 특정고교로 학생들이 몰리게 되는 현상이다.대학 진학 시 유리한 고교로 사람들이 몰리게 되는 현상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는 지방에서 서울권으로, 그리고 비강남권에서 강남권으로 몰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지역 고교의 균형 있는 발전은 예상하기 힘들다. 특정 고교로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그 학교에서 학생들을 선발할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을 어떠한 잣대로 잴 것 인가도 문제이다. 또 그 과정에서 돈을 주고 입학하는 등 비리가 생기는 것 역시 뻔한 일이다. 이 역시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차이를 들어 나게 하고 빈곤층은 점점 사회로부터 도태되게 만들 뿐이다.마지막으로 고교등급제를 시행할 때 어떤 고등학교를 어떤 기준에 따라 등급을 적용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만약 고교등급제가 시행된다 할지라도 등급을 결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하다.강남권에 위치한 학교는 모두 1등급을 주고 비강남권은 2등급, 지방은 3등급, 이런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서울대 진학률을 가지고 등급을 결정할 수 도 없는일이다.그러므로 고교등급제는 학교간 등급을 결정할 수 있는 기준도 모호하고, 모든 학생들이 동등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여건이 마련된 것도 아니며, 특정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리게 되는사회적 문제를 야기 시킬 가능성이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이제도의 시행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또한 현 정책이 고교평준화 상태이기 때문에 이미 평준화된 학교들을 등급을 매긴다는 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현재로써는 고교등급제의 시행이 어려우며, 다만 그에 대한.
과목명국어관련단원넷째마당. 인물과 하나되어학년3차시2차시 (40분)학습목표시를 듣고, 말하는 이의 마음을 말할 수 있다.준비물교과서, 동시 녹음 자료, 미디어 플레이어,학습단계학습형태교수-학습 활동시간비고교사학생도입전체학습◎동기유발- 동요 ‘이 몸이 새라면’을 들려준다.여러분은 지금 ‘이 몸이 새라면’이라는 동요를 들었어요. 이 노래에 나타나 있는 마음은 무엇일까요?이 동요 속에는 어딘가로 날아가고싶어하는 사람이 마음이 담겨있어요.시도 마찬가지에요. 시 속에도 말하는 이가 있고, 그 사람의 마음이 시속에 나타나 있어요.자, 노래 속 사람의 마음이 되어‘이 몸이 새라면’을 같이 불러봅시다.대답한다.-날아가고 싶다. 멀리 떠나고 싶다.등등의 대답이 나올 수 있다.※ 가사에 유의해서 듣지 못한 경우다시 한 번 들려준다.7‘전개전체학습◎목표확인오늘 수업을 통해 여러분은 시 속에서 말하는 이를 알고, 그 사람의마음을 말할 수 있게 될거에요.그럼 오늘 공부할 시를 한 번 들어봅시다.◎동시듣기- 미디어 플레이어를 이용하여 준비한 동시 ‘동생 때문에’를 들려준다.억울하게 혼났던 일을 떠올리며 ‘동생 때문에’를 들어봅시다.듣는다.※ 잘 듣지 못했을 경우,다시 한 번 들려준다2‘3‘동생 때문에새로 산 장난감동생이 부러뜨렸지 뭐야화가 나서 꿀밤 한 대 줬지세게 때린 것도 아닌데내 동생, 큰 소리로 우는거야엄마가 달려왔고난 벌을 섰지형이면 형 노릇하라는 엄마 말씀장난감은 부러지고들어올린 두 팔은 아파오고씩씩거리며동생을 노려보았지만동생은 엄마 뒤에 살짝 숨었어그리곤 활짝 웃는거야으으잘못은 동생이 먼저했는데왜 나만 혼이 나야 하는지나, 이제부터동생할거야전개짝활동전체활동개별활동자, 여러분 ‘동생 때문에’라는 시 잘들어보았나요? 시 속에서 어떤 일이일어난 것 같나요? 짝과 함께 얘기해보고, 발표해봅시다.- 토의할 시간을 준다.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토의한 내용을 발표해봅시다.‘동생 때문에’에서 말하는 이는 누구인가요?말하는 이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요?‘동생 때문에’에 나오는 ‘나’가 되어 엄마와 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고, 발표해 봅시다.(다양한 의견을 들어본다.)- 시 속에 상황에 대해서 발표한다.-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아본다.- 말하는 이의 마음에 대해 말한다.억울하다, 화가 난다, 분하다 등의여러 표현이 나올 수 있다.- 교과서 안의 말 주머니를 완성하여 발표한다.5‘5‘10‘정리전체활동◎정리활동- ‘내 동생’이라는 시를 들려주고,말하는 이와 말하는 이의 마음을말하게 한다.‘내 동생’이라는 시를 들어봅시다.- 듣는다.6‘내 동생졸졸졸날 따라와요, 내 동생이“왜 따라오니?”“형이 좋아서”동생이 날 좋아하는구나쿵쾅쿵쾅날 따라해요, 내 동생이“왜 따라하니?”“형이 하니까”동생이 날 보고 배우는구나난 동생의 거울이구나동생의 좋은 거울 되어야지‘내 동생’에서 말하는 이는 누구인가요? 말하는 이는 어떤 마음인가요?‘동생 때문에’와 ‘내 동생’의 말하는 이의 마음을 비교하여 말하여봅시다.- 발표한다.◎마무리 및 차시예고자, 이제 여러분들은 시를 듣고, 말하는 이를 찾을 수 있나요? 말하는이의 마음도 이해 할 수 있나요?이제부터는 시를 접할 때, 오늘 배운대로 말하는 이와 말하는 이의 마음을 알 수 있겠죠?내일은 말하는 이 뿐만 아니라 시 속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공부해보겠어요.인사하면서 수업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