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엘리트의 형성 과정을 통한 성격 분석한국 사회의 권력 구도는 단순한 엘리트론 적 모델에 근거하여 간단히 설명 될 수는 없다. 이것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수립 된지 50년 밖에 안 되는 짧은 세월 동안 한 엘리트 집단이 확실히 뿌리를 내릴 수는 없다는 것과 현재 우리 나라 권력의 중심에 있는 엘리트 집단의 성격상 그 구성원의 저항 없이 자리잡을 수는 없으리라는 이유에 기인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권력 기반 구조가 자리를 잡음에 따라 전체적인 경향은 뚜렷하게 한 가지 공통적 성향을 갖는 집단으로 그 범위가 좁아지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그 성향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성향을 갖는 집단이 어떻게 해서 한국 사회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엘리트 계층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고찰한다.한국 사회의 권력 구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사와 결부시키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 시키기는 불가능 하다. 따라서 이제부터 진행하는 논조는 한국사에 대한 이해와 동반되어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1) 현 한국 엘리트의 모체와 친일적 성격, 그 변모현재의 한국 사회의 중심 엘리트의 모체는 19세기 말 조선 말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구한말 당시 한국의 엘리트 계층은 두 그룹으로 나뉠 수 있다. 그것은 서구의 제국주의와 맞물려 어떻게 조국을 근대화 시키는가에 대한 문제를 두고, 두 부류로 갈라져 있었는데, 개화를 주장하는 쪽을 개화파, 개화를 반대하는 쪽을 수구파로 분류할 수 있다. 이때 수구파와 충돌하는 개화파의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개화파에 속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실질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때문에 여러 가지 사건이 있기도 한다. 1갑신정변이 그것인데 권력 기반 구조가 취약한 그들은 삼일 천하로 계획은 실패하게 된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조선 안의 개화파의 핵심 인물들은 숙청 당하고 제 앞가림만을 잘하는 삼류들만이 남게 된다. 이들은 정계의 인맥, 경제적 위치, 정치 경험과 명성을 토대로 권력 구조의 기반을 충분히 갖추게 된다. 결국 이들이단은 곧 친일 세력이다. 친일 세력이 아니고서는 부를 축적하거나 무력을 갖는 권력 기반 구조를 갖기가 불가능 했기 때문이다. 정치계의 엘리트계층은 당연히 한일 합방시의 공신 들이 그 자리를 차지 한다. 재계의 엘리트 계층은 당시 근대화가 덜 된 상황을 감안할 때 지주계층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필연적으로 친일 세력이 될 여지가 충분 했다. 소작인들의 소작 쟁의를 총독부에서 해결해 주었고, 결정적으로 친일파가 아니고서는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모든 자원을 소실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언론, 예술, 문학, 종교, 군부, 경찰, 관료 등 모든 분야에서 친일 세력이 엘리트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일제의 통치 하에서 경제적이든, 정치적으로든 권력의 기반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친일 행각을 벌여 일제 하에서 엘리트로 떠오른 사람들 중 몇몇을 예를 들면, 정치 분야에서 이완용과 송병준 등의 사람들을 거론 할 수 있고, 언론계에서 방응모, 유광렬, 이상협, 재계에서 박흥식과 문명기, 학계에서는 백낙준, 이병도, 문인에서는 최남선, 이광수, 서정주 등 각 분야에서 엘리트 계층은 친일파로 구성되었다.한국의 친일적 엘리트 성향은 해방이 되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1945년에 일제 시대가 끝나고 남한에 미군정이 들어섰다. 다음은 미군 상륙 일주일전 하지중장이 그의 대리인 해리스 준장에게 내린 명령서이다.명령서 대로 미군정 초기에 미군은 일본인 관리를 고문으로 유임 시키고, 조선 총독부의 한국인 관리와 경찰 등 이미 형성 되어진 친일파 집단을 그대로 통치 기구로 흡수하게 된다. 이러한 미군정의 구상은 점차적으로 관료들을 한국인으로 교체하는 한국인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친일파가 재등장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일본의 경우, 미군 총사령관의 명령으로 일제의 군국주의 체제를 지지한 대학교수, 관공서 관리, 국회 의원들 21만명을 직위 해제 시킨 것과 반해, 한국의 경우는 정책상에서의 엄청난 차이가 있게 된다. 여기서 미군정의 성격이 드러나게 되는데, 머지 2명은 여운형과 조만식인데 여운형은 친일파들과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다 하여 참여를 거부 했고, 조만식은 북쪽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전부가 한민당 관계자로 구성 되게 된다. 또한 46년 군정관리를 한국인으로 교체할 때에도 경무부장에 조병옥, 수도 경찰 청장에 장택상, 문교 부장에 유익겸 등 주요 군정 통치기구의 책임자를 한민당으로 임명 헀고, 사법계 인사에서도 대법원장에 김용무, 사법부장 김병로, 김찰 총장 이인 등 모두 한민당 관계자로 임명했다. 어떻게 이러한 구도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는 미군정과 의사소통의 매개인 통역관들이 주요 그 입김이었는데, 이들 통역관들의 대부분이 한민당 관계자였고, 하지 준장의 통역관 역시 이기붕으로서 이 사람 역시 한민당 관계자이다. 이렇게 이승만을 정치적 구심점으로 하는 극우세력과 친일 세력은 각 분야에서 강력한 친미 반공세력으로 그 성격이 변모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틀 속에서 한민당은 이승만 정권을 창출하는 기반이 되었다.표 1- 1946년 군경찰 간부중 친일경찰 비율직 위 경찰 총수 총독부 경찰 출신 비율(%) 치안감청장국장총경경감경위 181030139969 15825*************837583 총 계 1,157 949 82이승만 정부에서의 친일적 성격을 대표 할 수 있는 집단으로 경찰이 있다. 위의 표와 마찬 가지로 전체의 82%가 친일 경력을 갖고 있었고 나머지 18% 또한 조선 총독부와 관계 되어 있던 것으로 여겨 진다. 이러한 인사를 담당한 것 역시 한민당의 경무부장 조병옥과 수도 경찰 청장 장택상이었다.또 하나의 이승만 정부하의 친일 집단으로 군이 있다. 군은 해방 이후 숫자도 적고 역할도 크지 않아 중요한 세력은 아니었지만 이승만 정부 수립 후 정권을 떠 받치기 위한 핵심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표 2- 조선 경비대시기 일본군 출신의 군 수뇌부원용덕채병덕이형근정일권 만주군 군의병과일본 육사 49기일본 육사 56기일본 육사 55기 군영부 교장, 경비대 총사령관, 8연대장1연대장, 통위부 병기부대 사령관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가 조직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 친일 경찰과 군간부들에 의해, 반민특위 관련 의원과 관계자에 대한 테러와 암살이 계속적으로 이어졌는데, 그 주모자는 반민특위 검거 대상이었던, 노덕술과 최운하 등 경찰 수뇌부의 친일 경찰들이었다. 이 들은 백민태라는 자객을 고용하기도 하였는데 반미특위에 의해 노덕술이 체포되자 백민태가 자수하면서 그 내막이 드러나게 되었다. 반민특위는 49년 1월 화신재벌 박흥식의 검거를 시작으로 8월 31일 해체되기 까지 305명을 체포했다. 이들중 몇몇을 살펴보면, 일제하의 귀족 작위를 받은 박중양, 중추원 참의를 지냈던 조병상, 김갑순, 김연수, 방의석 등 이 있는데 이들 중 동아 일보 사주 김성수의 동생이자 경성방식 사장인 김연수는 만주국 경성 주재 총영사를 지낸 친일 기업인이었다. 검찰에 체포되어 죄를 시인하였는데, 재판에 회부된 그날로 석방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반민특위의 활동에 대해 비난과 소극적 보도를 유지한 동아 일보는 호외를 발행하면서까지 김연수의 석방을 보도하기도 하였다. 또한 총독부 경찰 출신으로 노덕술, 김덕기, 이원보, 최연등이 검거 되었는데, 노덕술의 경우 테러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수사과장직을 내놓고 피해다니다가 특경대에 체포되는데 체포 당시 경관 4명이 그를 보호 하고 있어 정치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반민특위의 친일파 조사와 검거가 진행 됨에 따라 이승만과 경찰, 군과 반민특위와의 대립이 매우 심화되었는데, 때문에 많은 방해 공작을 행하기도 한다. 그중 몇몇을 소개하자면, 49년 5월 17일 1차 국회프락치 사건이 발표되었고 반민특위를 주도한 소장파의원들이 간첩혐의로 투옥되었고, 6월 6일 경찰에 의한 특경대 습격사건에서는 노덕술과 최운하가 검거 된 상황에서 김태선과 장경근의 지휘하에 특경대원 35명을 체포하고 관계 서류를 압수하였다. 결정적으로 6월 26일 김구 암살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그 배후는 아직도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정황적으로 당시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던 친일 구성원이 변하지 않았지만 그 성격이 변한 엘리트 집단 자체를 지칭하기 위해서 쓴다. 이들은 일제하에서 찬양하던 그들의 군국주의적 사상과는 별개로 해방 후에는 친미, 반공적 성격을 띄며 천재적인 변신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실 엘리트라는 것은 당시의 주류 사상과 권력의 핵심에 있기 때문에 해방 이후의 한국에서 친미적, 반공적인 성격을 갖는 것은 당연 할 수 밖에 없지만, 그 구성원의 변화가 없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성격이 변하기는 하였지만 구성원이 같은 이 집단을 초기의 형성 과정에 비추어 친일파라는 단어를 계속 쓰도록 하겠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부터 쓰는 친일파라는 말은 사실상 친일파라기 보다는 친미반공파이다. 하지만 그 집단의 구성원이 해방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2) 한국의 엘리트 형성의 과정 2 2~6공 (장면 내각~ 김영상 정권) 시기이승만 정권에서 좌절 된 친일파 청산의 문제는 후에도 해결되지 않는다. 2공 시기의 장면 내각의 수뇌인 장면 또한 친일 경력이 현재에 드러났고, 그 뒤 집권한 박정희 자신 또한 일제 통치 기간 동안 육군 대위이었다. 박정희의 경우 개인의 친일성 문제는 크게 부각 되지 않는다. 육군 대위라는 직급상 엘리트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와 결합 된 세력에 있다. 그가 정치를 진행함에 있어 친일 엘리트와의 결합은 필수적이었다. 자신의 친일 경력이 문제가 될 수도 있었고, 친일 엘리트와 갈등 구도에 있다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정착되는 것에 부정적 효과를 낳을 것임이 명백 했다. 또한 그의 정부 주도의 경제 정책과 관련해 기업과의 유착이 당연시 되었는데, 당시 국내에서 융통 되는 자본의 출처는 친일 엘리트가 일제 하에서 형성된 권력 기반을 바탕으로 산출된 자금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그들과의 유착은 한국 사회에서 친일 엘리트를 존속시키는 차원을 넘어 그들의 입지가 확고히 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박정희 자신의 친일성 보다는 친일적 엘리트.
20021160 이재설동북아시아 지역 공동체 결성의 가능성1. 지역 블록화의 국제정세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지역 블록화의 움직임은 현재에 와서 하나의 커다란 국가라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국가 공동체를 탄생 시켰다. 유럽 연합(EU)이 그것인데, 유럽연합은 경제적으로 사실상 완벽한 한나라이다. 경제적으로 국경의 개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그것을 요약해보면 크게 관세의 장벽, 비관세 장벽, 소통의 장벽의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지금 유럽연합의 경우 각 구성 국가간의 관세, 비관세, 소통의 장벽은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나라간의 FTA(Free Trade Agreement)의 체결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EU의 경우 개별 국가가 아닌 유럽의 국가 거의 대부분이 참가한다는 점에서 그 문제의 스케일이 다르다. -하나의 엄청나게 큰 시장을 탄생-이러한 지역 블록화 경향은 유럽에 국한되지 않는다. 북아메리카에서도 이미 FTA를 체결하여 NAFTA(North America Free Trade Agreement)를 결성 하였고 동남아시아에서도 FTA의 형태는 아니지만 ASEAN이라는 지역 블록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중동에는 사실상 OPEC이 지역 경제 공동체를 대표하는 기구이며 아프리카에서도 미미하지만 지역블록 공동체 결성의 움직임이 시작 된지 오래 이다.그렇다면 지역블록화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다른 동아시아 국가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입장이다.-첫번째로, 비소속 국가와 소속 국가와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프랑스에 TV를 수출한다고 생각해보자. EU가 결성되기 전에 독일의 TV와 우리나라의 TV는 같은 관세율이 적용되면서 프랑스 시장에 팔렸지만 결성 된 후, 한국의 TV는 독일의 TV와 가격경쟁력 면에서 관세 만큼의 우위를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서게 된다. 지금의 예는 프랑스에 수출하는 우리나라의 TV의 양에 그 영향이 부정적으로 비례한다.(Deadweight+가격경쟁력 감소) 프랑스에 수출하는 TV의 양은 그라진다. 하지만 만약 프랑스 TV시장에 진출해 있는 미국의 TV회사도 그러한 손해를 감수하는가 하는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생긴다. 한국에 비해 미국시장이 워낙 커서이기도 하지만 EU에서 미국의 TV에 관세를 적용한다 하면 NAFTA 또한 프랑스 산 와인에 보복 관세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 시장의 프랑스 산 와인에 대한 관세율의 인상은 그리 프랑스의 와인 수출에 많은 영향을 주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일본이나 중국 시장을 포함 한다면 프랑스 뿐만이 아닌 EU에서도 한국산 TV에 기존의 관세율을 부과하는 문제에 관해 다른 입장에 서게 된다. 위와 같은 예로서 지역 공동체의 결성은 그 구성 국가에게 다른 지역 공동체의 배타적인 보호 무역주의에 대해 보다 더 능동적으로 대처 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킨다.둘째로, 지역블록화가 되면 그 당사국에 다른 국가와의 무역과는 별개로 얻어지는 이익도 있다. 산업 구조의 바람직한 이동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보면, 한국과 중국이 FTA를 맺는다고 생각해보자. 중국에서는 쌀 1kg을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한국보다 적다. 이것을 비교우위라고 이야기 하는데, 다시 말하면 중국은 쌀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한국에 비교 우위이다.-쌀 같은 경우 노동력의 비용에 비례하여 비용이 증가하므로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중국에 대하여 반도체에 있어서 비교 우위이다. -반도체의 경우 노동력보다는 기술력과 자본이 중요한 요소이다.-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한국이 반도체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1, 쌀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2, 중국이 반도체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2, 쌀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1이라고 생각 하고, 두 나라의 총 생산량은 20이라고 생각할 경우의 그래프는 다음과 같다.그래프를 분석해 보면 한국은 반도체만 생산하고 중국은 쌀만 생산하는 것이 두 나라에 서로 이득이 되는 방향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실제는 여러 가지 다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이런 양상이 되지는면에서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쪽으로 산업 구조의 집중도가 이동하게 된다.-구조 조정된다.- 이것은 지역 공동체의 결성으로서 달성 할 수 있는 문제이다.cf) 한국의 쌀 생산 비용이 반도체와 같은 1이라고 생각해도 같은 답이 나온다. 그것은 반도체가 중국보다 비교우위에 있어서 나타나는 결과이다. 또한 한국의 쌀 생산 비용이 반도체보다 적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비교해서 비교 열의 이면 반도체에만 생산을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향이다.2. 각 나라의 당위성2.1 한국의 입장한국 경제의 발전 과정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 한국의 경우 자원이 거의 없고, 또한 한국 전쟁 이후에는 전 국토가 폐허가 되어 이렇다 할 산업시설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가야 할 방향은 외국의 차관을 끌어와서 그 이자 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는 형태의 산업이 되었다. 그 방법으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노동 집약적 산업이 시작 되었고 국내의 시장은 전무했기 때문에 주로 외국에 수출되는 상품이 만들어 졌다. 아직까지 그 큰 틀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바뀐 것은 그 상품이 좀더 고부가가치의 상품으로 계속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경우 수출이 국내 경제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수출이 차지하는 비율-GDP(經常) GNI(經常) 輸 出 GDP에 대한 비율 GNI에 대한 비율 1995 4,894 4,881 1,246 25.5 25.5 1996 5,200 5,183 1,300 25.0 25.1 1997 4,766 4,740 1,386 29.1 29.2 1998 3,177 3,121 1,321 41.6 42.3 1999 4,058 4,007 1,452 35.8 36.2 2000 4,617 4,592 1,759 38.1 38.3 2001 4,273 4,261 1,513 35.4 35.5 (단위:억 달러,%)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은 기계·운송장비 39.7%; 공산품 24.6%; 화학제품 6.8%; 광물연료 3.5%이다.(1998) 주요 수출 품목인 기계 운송장비, 공산품은동체 결성이 필요하다. 이것은 일본과 중국의 입장도 마찬가지 이다.한국의 주요수출국은 미국 17.2%, 중국 16.0%, 일본 9.2%, 타이완 3.9%, 스위스 3.7%, 영국 3.2%-(1998)으로 상당히 분화되어 있다. 이중 중국과 일본의 26.2% 비율을 무관세로 수출이 가능하다. 또한 앞으로 중국의 발전 가능성을 볼 때 무관세 무역 국가에 대한 수출 비중이 훨씬 증가 할 것이라고 예견된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이 무관세이면 우리 나라 시장으로의 수입도 증가할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과 비교해 열의에 있는 품목 들은 구조 조정이 불가피 할 것이고 농산품등에 대해서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에게는 이득이다. 중국의 엄청난 상품 구매력은 한국이 가진 비교 우위 산업에 대해 내수시장 보다 수십 배는 더 큰 시장을 안겨준다. 중국 뿐만 아니라 일본 또한 엄청난 구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수 시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수출 시장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가 절실하다.결론적으로, 한국의 입장에서 동아시아 지역공동체 결성은 엄청난 호재이다. 단기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관세에 대하여 보다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을 뿐더러, 장기적으로 중국이라는 엄청난 시장을 갖게 된다.2.2 중국의 입장중국은 지난 50년간의 공산주의의 포기와 함께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나라이다. 산업구조는 1차 산업 21%, 2차 산업 47%, 3차 산업 32%로 아직 까지 고도화되지 않은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아직까지 확실한 수익을 기대 할 수 있는 투자처가 산재해 있다. 중국으로서는 그 자본이 어느 자본이던 간에 자본의 유입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렇기 위해서 중국으로써는 상대적으로 자본의 여유가 있는 일본과 한국과의 교류가 필수적이다.중국의 주요 수출 품목은 기계·운송장비 23.9%; 섬유·고무·금속 제품 18.8%; 식품·동물 6.1%; 화합물 및 화학관련 제품 5.6%; 광물연료·윤활유 3.8관세에 민감한 상품들을 주로 수출한다. 관세부과에 대한 대응면에서 중국은 지역 공동체가 필요하다.중국의 주요 수출 국으로는 홍콩 21.8%; 일본 20.4%; 미국 17.7%; 대한민국 5.0%; 독일 3.9%; 싱가포르 2.5%; 네덜란드 2.3%; 타이완 1.9%이다. (1996) 이중 홍콩 21.8%, 일본 20.4%, 한국 5.0%의 50%가 넘는 부분이 비관세 무역화 된다. 중국의 입장에서 단기간에는 확실히 이득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중국은 일본과 한국에 비하여 아직 성숙되지 못한 자국의 유치 산업에 대해서는 보호 할 수 없게 되므로 몇몇 산업만이 발달하는 기형적인 국가가 될 위험 또한 있다. 하지만 한 국가 전체가 특화된 산업을 중심으로 구조 조정되는 WTO체제의 무역 하에서는 언젠가는 실현될 일이기 때문에 다만 중국으로서는 그 시기를 앞당긴다고 생각 할 수 있는 문제이다.2.3 일본의 입장일본은 2차 대전의 패전국으로 당시 군정을 실시한 맥아더에 의해 일본 산업의 근간이 대기업들이 분할되는 위기에 처해있었다. 하지만 한국 전쟁 발발과 동시에 일본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미국이 물자를 공수하고 그 물자를 통해 군수품을 생산하는 형태의 공업이 시작되었다. 그 후 점점 성장해 나가 80년대 후반 미국과 거의 동등한 수준의 경제규모를 자랑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일본은 산업이 최대로 고도화 된 상태의 국가이고, 더 이상의 투자처가 확실하지 않다. 90년대 중반의 버블 경제의 붕괴와 함께 한때 위기를 겪은 일본은 현재 안정을 되찾기는 했지만 여전히 디플레이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세계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이고, 최대의 외환 보유국이며 또한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다. 다시 말해 돈이 넘쳐 나고 있는 상황이며 여기에 소비심리가 상당히 위축되어 은행에 돈을 주고 돈을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중국의 입장과 일본의 입장이 접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일본의 넘쳐 나는 자본을 중국에 대한 투자에 투입한 다면 중국은 상황-
The Nobel Prize in Chemistry 20031. Peter Agre"for the discovery of water channels"aquaporin water-channel protein은 이온이나 charged solute가 아닌 물이 잘 침투한다. mammalian aqp은 plasma membrane에 있다고 믿어졌음에도 불구하고 rat aqp6은 콩팥 상피의 세포질안 소포에 제한되어 있다. aqp6은 기능적으로 다른 알려진 aqp과 다른 것을 알수 있다. Xenopus laevis oocytes에서 표현되었을 때 aqp6은 낮은 water permeability를 갖는다. 그러나 water channel inhibitor로 처리하면 h2o, 물 투과성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10배가 되고 이온전도력을 일으킨다.aqp6는 H+-ATPase와 콩팥의 수집관에서의 acid-secreting alpha-intercalate cell의 intracellular vesicles에 배치한다. pH가 5.5보다 낮으면 음이온의 전도력은 급격하고 가역적으로 AQP6 oocytes에서 활성화된다. pore의 cytoplasmic mouth의 72번 위치에서 lysine에서 glutamate으로 위치를 결정짓는 변화는 음이온/양이온에서 선택적으로 바뀌나 pH 활성이 변하면 그친다. 이 연구에서는 aquaporin의 ㅇ특이한 biophysical의 특성을 증명하고 anion-channel function이 이미 알려진 구조의 단백질에서 조사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2. Roderick MacKinnon"for structural and mechanistic studies of ion channels"Phosphoryl group의 공유 결합 attachment가 Na+/K+ATPase에 생기면 그 모양에 변화가 생긴다. 이것을 conformational change라고 하는데, 세포는 이를 이용해 Na+와 K+의 농도차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백질에 결합된 리간드에 의해 달라지게 된다. 다시 말해, 리간드와 결합된 단백질에는 K+는 아닌 Na+만 결합하게 된고 또 다른 폼은 K+만 결합하게 된다. 그림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