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학의 주요발달과정 - 시대별 구분(1) 기술적 행정학(고전적 행정학) : 1880년대 - 1930년대1) 대두배경엽관주의의 폐단이 야기되면서 정치로부터 행정의 독립주장 대두. 행정은 정치권력의 현상이 아닌 관리기술로 파악 되어야 하는 주장.2) 주요내용- 행정을 정치현상이 아닌 사무·관리·기술·집행의 현상으로 파악- 정치행정이원론과 공사행정일원론을 취함- 능률성의 제고- 폐쇄체제 이론- Weber의 관료제이론에 토대- 행정의 독자성 강조3) 관련학자-W. Wilson - ‘행정의 연구’-White - ‘행정학 입문’-Willoungby - 오권분립론 제창-Gulick - '행정과학논문집’ , Urwick - POSDCORB4) 기술적 행정학의 공헌과 문제점- 공헌 : 행정의 독자성 제고, 공사행정동질론 탄생, 실적주의의 확립- 문제점 : 환경과의 관련성 무시, 공사행정의 동일시, 정치와 행정의 구별은 거의 불가능, 이들의 행정원리는 부정확하고 비과학적이라는 비판, 인간적 요인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2) 반발적 행정학 : 1930 - 1940년대1) 기능적 행정학① 대두배경1940년 전후를 고비로 하여 행정학의 방향 전환을 맞게 되었다. 종전 이론의 부정확성·단순성을 통감하고 4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철저한 비판과 도전이 개시되었다. 정치와 행정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입장으로 정치행정일원론 내지 기능정 행정학이 대두된 것이다.- 경제적·사회적 변화 : 경제 대공황을 거치면서 연방정부의 행정기능은 더욱 확대·강화되었다.- 행정국가화 경향 : 행정권에 의한 위임입법의 급증, 행정재량범위의 확대, 입법과정에 있어서의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의존 관계의 강화, 광범위한 정책결정권을 가진 각정 행정위원회의 설치 등으로 행정의 정치적 기능은 중대한 사회적 의의를 띠게 되었다.- 행정능률개념의 재정립 : 행정의 정치기능이 뚜렷해져 민주주의와 능률을 조화시키는 관점에서 행정능률의 개념을 재검토 내지 수정하게 되었다.② 기능적 행정학의 내용- Dimok의 이론 : 정치와 지배하였다. 행태과학을 행정학에 도입한 선구자는 Simon이다. 그는 그의 저서 ‘행정행태론’에서 의사결정이 행정의 핵심이며, 행정과정은 의사결정과정이라는 기본명제를 제시하면서 의사결정을 행정연구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960년대에는 행태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활용한 조직발전에 관리과학의 한 분야로서 급격히 부상하였다. 조직발전론은 조직의 인간적 측면을 중시하여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함으로써 조직 전체의 개혁을 도모하려는 체제론적·응용행태과학적 접근방법이다.(4) 개도국을 위한 비교행정과 발전행정 - 행정연구의 국제주의1950년대에는 Gaus, Riggs 등을 중심으로 생태론적 접근방법이 활용되어 환경이 행정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1950년대 말에 비교행정 연구는 본격화되었다. 비교행정론은 각국의 행정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해 행정학의 과학성을 높이고 일반화된 행정이론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대두되었다.개발도상국가의 행정에 대한 기술원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미국 행정학의 문화기속적 속성과 보편타당성의 한계가 노정되면서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공통으로 타당한 행정학을 만들기 위해 비교행정 연구가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1960년대에 리그스의 주도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발전도상국의 행정행태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파악한 것은 좋았으나, 환경을 강조한 나머지 행정의 독자성을 과소평가하여 종속변수로 취급한데에 문제가 있었다.발전행정은 주로 개발도상국가의 발전에서 행정의 역할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국가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행정의 역할에 초점을 두고, 어떻게 국가발전사업을 선정·관리할 것인가에 관한 전략과 처방을 제시하는 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5) 관리과학과 정책과학을 발전1960년대는 미국 행정학이 비약적으로 성장·발전한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우선 1960년대에는 공공문제에 OR, 체제분석 기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활용한 행정개혁이 추진되는 등 관리과학의 학문적 체계가 완성되었다.또한 ‘위대한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기 시적하였다. 정부실패 또는 공공부문실패 개념이 이때 등장하였고 또한 자원난과 재정위기를 배경으로 신보수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등자한 ‘작은 정부’ 이념에 기초하여 ‘감축관리론’이 등장하였다.또한 1970년대에는 행정성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민간부문의 관리기법을 공공부문에 적용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부활되었다.오스트롬은 미국 행정학의 ‘지적 위기’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공선택론을 행정학에 도입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는 정책결정에서 경쟁과 대안적 서비스 전달체제를 고려에 넣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공공선택론은 행정의 고객 중심주의·소비자 중심주의, 그리고 행정에서 소비자보호 운동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왔다.(8)신공공관리론1980년대 중반 이후 규제 완화와 민영화가 확산되면서 점차 정부부문의 독점성이 파괴되어 왔다. 이제는 정부도 공공서비스 공급면에서 하나의 경쟁주체로서 민간부문 또는 사회부문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경쟁자로서의 정부 위상과 역할변화에 대응하여 1990년대 접어들어 ‘행정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야?’에 대한 문제의식과 아울러 고객(국민) 중심적 행정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경향이 형성되고 있다.행정에의 민간경영기법 도입·활용, 공공서비스의 품질 혁신, 경쟁원리의 활용 등이 연구의 중심주제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물결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T. 행정학의 발달과정Ⅰ. 행정학의 발달- 행정현상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인간이 정치공동체 내지 국가를 형성?조직한 이래로 존속되어 왔으나 오랫동안 정치학이나 법률학의 일부로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행정은 국민국가의 등장으로 관료화가 진행되고 전문직업관료가 등장하는 등 근대적 관료제가 형성되면서 행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등장하면서 행정학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분과학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대행정학의 주류는 크게 16세기 중엽부터 18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프러시아(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한 행정사상이다. 관방학의 근본사상은 국가가 모든 복지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행복추진주의적 복지국가관이다.전기 관방학과 후기 관방학의 비교)구 분전기 관방학후기 관방학시 대1727년 이전1727년 이후사 상신학(왕권신수설)자연법 사상(계몽주의 사상)학 자Osse, Seckendorf관방학의 아버지 Justi국가기능의 분화미분화(통합)경찰학의 분리, 독립기 타왕실재정의 가계화재정상의 분리2. 독일의 슈타인 행정학- 관방학과 전통적인 공법학에 비판을 가하면서 슈타인에 의한 독자적인 행정학이 등장하였다. 슈타인 행정학은 경찰개념을 가치개입적인 정책결정을 담당하는 헌정과 사실적인 정책집행 기능인 행정의 개념으로 구분하고 이원화 하였다. 슈타인은 헌정을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개인의 권리로 보는 반면, 행정을 개인의 복지향상을 촉진시키는 국가활동(정책집행)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헌정과 행정은 서로의 입장에 따라 우위가 달라진다는 상대적 우위성을 주장하였다.3. 프랑스와 영국 행정학의 성립과 발달① 프랑스 행정학- 프랑스는 행정학의 기원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18세기 말에 발달한 경찰학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 시기의 경찰은 국가작용과 활동을 의미하였다. 이후에는 프랑스의 행정연구는 법학적 연구가 주도적 이었다. 법학적 연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경영학적 행정연구를 한 페이욜과 사회학적 행정연구를 한 크로지에 등이 등장하였다.② 영국의 행정학- 영국에서는 절대주의가 중앙집권화를 수반하지 않고, 의회주의가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유럽의 다른 국가들처럼 관방학이나 경찰학 등 국가경영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영국에서는 행정학 연구의 전통이 없으며 군주의 정실주의가 성행하였다. 영국행정학은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국 행정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행정학이 형성되던 당시부터 지방자치에 관심이 높았다. )4. 미국의 행정학의 성립과 발달① 미국 행정학의 성촉진시킨 계기는 첫째, 행정 기능의 확대와 강화이다. 여기에선 독점자본주의에 따른 빈부격차, 노사문제 사회갈들 등 다양한 폐해가 등장하자 정부가 이에대해 해결책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는 행정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과학적 관리운동이다. 행정의 과학화와 능률화에 기여하였다. 셋째, 행정개혁운동이다. 공무원제도개혁, 선거제도개혁, 시정개혁 등 세 가지로 보았다. )Ⅲ. 한국 행정학의 발달1. 조선시대의 실학적 행정학- 우리나라에서 이미 행정학적 변모를 갖춘 대표적인 학문으로서 조선시대의 실학을 들 수 있으며 많은 실학자들이 있지만 우리는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을 으뜸으로 뽑는다. 그 이유로서는 첫째, [경세유포]와 [목민심서]등을 통해 행정개혁 사상을 전개시켰는데 [경세유포]를 통해서는 당시의 행정제도상의 여러 병폐를 지적하고 개혁방안을 제시한 책으로서 중앙행정의 개혁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고 [목민심서]는 주로 지방의 행정개혁안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목민관인 지방관리들이 지켜야 할 윤리 강경과 갖추어야 할 경륜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방대하고 체계적이었다. 둘째, 연구와 이론의 지향 면에서 볼 때 실학적 행정연구는 경험적?규범적?처방적 연구가 혼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행정의 현실을 경험적?실증적으로 철저하게 파악함과 동시에 나라의 부강과 민본, 위민의 규범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과 처방을 행정의 모든 면에 걸쳐 체계적으로 이루고 있는 것이다.)2. 일제시대의 행정학- 일제식민지 통치시대에 도입된 행정법학적 행정학이 우리나라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행정학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식민통치를 위한 일본 관료제의 이식과 통치수단으로서의 행정법학의 이용으로 사실상 근대적 법치국가적 행정체제가 확립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한국의 행정과 행정학 연구를 불가능하게 한 암흑기 또는 후퇴기로 볼 수 있다.3. 해방 이후의 행정학 연구- 우리나라에 있어 현대행정학은 해방 이후 미국 행정학이 본격적으로. )
중국이 분열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러 명의 학자들과 시민들과 그 외 전문가들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고 있습니다.중국은 우리처럼 단일 민족이 아니라 한족을 중심으로 다양한 소수민족으로 어우러진 국가입니다. 그들은 오랜 옛날부터 서로 투쟁하기도 하고 협력에 이르러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 을 봐도 북방의 이민족 침입을 우려하는 내용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또한 한나라때 이르면 지금의 몽골족인 흉노와의 대대적인 전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강성하던 한나라가 기울기 시작한 것도 상당부분 북방이민족과의 투쟁이 그 원인에 있다고 봅니다.예로, 홍콩을 들어보겠습니다. 홍콩은 특별 행정구입니다. 아편전쟁이후 영국에 할량되었다가 1997년 무려 1백년 만에 중국으로 반환되었습니다. 이른바 ‘일국이제(一國二制)’라 하여 중국 대륙은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이면서 홍콩은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홍콩사람에 의한 홍콩 통치를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1990년 4월 제7기 전국 인민대표자 회의 제3차 회의에서 통과된 9장 160조 홍콩 기본법에 의거 향후 50년간 현 체제를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자치권을 보장하는 것이 요점이지만, 중앙정부에 대한 반역이나 분리?선동 등은 당연히 금지되고, 집회 또한 허가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 지폐에서도 그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모택동을 비롯하여 소수민족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정부의 이러한 배려는 홍콩의 지속적인 번영이 중국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독립을 지향하려는 대만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만도 원하기만 한다면 외교와 국방만 중국정부에 일임하고 얼마든지 홍콩처럼 기존의 체제를 유지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첫 번째 이론에 의해서 보면 중국분열은 대단한 발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그들은 6?70년대 인류최대의 학살인 문화대혁명을 겪고 자본주의로 변신(사회주의+자본주의)하고 연 경제성장률 10%를 기록하여 가히되었습니다. 특히 대만은 50년이 넘게 중국과 적대적이고 싱가폴은 중국제 상품에 밀려 GDP가 후퇴했습니다. 미국은 팍스아메리카나를 부르짖으며 전 세계를 제패해왔는데, 새로운 적국인 중국을 상대로 빠르면 10년 내로 전쟁할 수 있습니다. 2억5천만VS13억 요즘 동북공정이 발표됨으로써 중국은 사실상 가상적국이 되었습니다. 사실 한족은 역사를 살펴보면 진, 당, 명 등 5개 국가뿐입니다. 5호 16국,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세력을 떨치던 나라는 대부분이 북방민족으로써 중국이 고구려와 정복왕조들의 역사를 빼앗고, 심지어 몽고제국의 역사와 원나라의 역사도 자기네들 것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일찍이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은 중국(당시의 청나라)를 가르쳐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들지 마라 라고 했습니다. 나폴레옹의 예언이 현실화 됐습니다. 그들의 세력을 견제하려면 미국과 대만 동남아 러시아와 세력동맹을 맺어야 합니다.중국은 자국분열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홍콩 대만 등에게 이러한 정책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공산당 독재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고 게다가 달라이라마로 유명한 티베트는 온갖 핍박을 받았고 30년 전의 북아일랜드인들처럼 취급받았습니다. 티베트뿐만 아니라 중국은 위구르 외몽고, 만주를 강탈하고 소수민족을 박해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능성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민족의 비율이 너무 적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은 중국분열은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예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중국분열이 되면 우리나라에게는 행운입니다. 30년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는 독일은 300여 개의 나라로 분열시켜 독일민족의 단합을 막음으로써 자국을 보호하였습니다. 어느 한 나라가 지나치게 강대해지면 주변국가들이 불안해집니다. 이 공식은 수 천년동안 변함 없는 불변공식입니다. 중국분열은 강대한 나라가 수천개로 크고 작은 나라로 쪼개지기 때문에 강대국이 될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된다면 만주를 되찾고 몽고는 외몽고를 되찾아야하며 대만을 공, 또는 부드러운 자치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남은 영토는 중원을 수백 수천개로 갈기갈기 찢어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장차 대한민국이 안전해집니다. 만약 중국이 분열이 되지 않는고 강대국이 되면, 미국과 자원이 풍부한 중앙아시아를 두고 다툴 것입니다.하지만 중국 분열의 가능성은 그 배후세력이 미국이 있다는 것에서 타당성을 발휘하고도 있습니다. 현재 미국이 원조해주는 중국 주변의 국가나 민족으로는, 티베트, 아프간, 이라크, 러시아, 일본, 한국, 대만, 베트남, 인도 정도가 있습니다. 베트남은 원래 공산권 국가였습니다만, 호치민 자기 자신도 서양에 대한 입장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베트남이 개발도상국으로써의 입지가 확고해지면서, 수많은 자본이 베트남으로 유입이 되고있습니다.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무조건 미국과 호의적인 입장을 취해야함은, 세계 어느 국가라도 마찬가지 사실이라는 점에서 베트남이 미국의 우방이라는 주장을 할 수가 있게되는 겁니다.(사실 중립에 가깝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소련 이후로 미래의 적으로 예상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위에 제가 나열한 나라들을 세계지도에서 콕 찍어본다면 전부 중국을 둘러 싸고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미국이 다민족국가면서도 분열가능성이 작은 이유는 급속한 고성장과, 개방적인 이민정책으로 인해서 민족적 융화가 상당히 매끄럽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새뮤얼 헌팅턴이 히스패닉 계에 의한 미국 분리운동에 대해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그건 사실 말도 안되는 소리에 가깝습니다. 테러이후 문명의 충돌이라는 새로운 이설을 제기하여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만, 사실 그가 주축으로 잡는 내용은 인간의 말초적이고 본능적인 면을 너무 도외시한 경향이 있는 것이 그저 하나의 이설이 된 이유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중국은 미국에 반해 민족간의 융화가 되지 못했습니다. 사실 중국이 발전하기 위해서, 최대한 큰 영토로 국가를 끌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민족국가라는 장기적 플랜에 따른 중국인들의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중국이 한국의 역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이유는 한반도를 먹기 위해서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민족주의의 발현이라고 하긴 하지만, 그건 경제적으로 발전한 경제특구와, 해안가, 중국 대부분이라는 한족들만이 그런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륙쪽에서의 입장은 해안과는 전혀 판이한 실정입니다. 56개 민족 간의 융화가 전혀 되지 못한 상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조선족만 한족과 융화가 가장 많이 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전혀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는 중국의 경제발전에서 비롯되는 불협화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중국간의 민족갈등, 의견차이가 심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사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실리주의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면 도태되고 마는것이 현실입니다. 사우디옆에 아주 작은 나라가 있습니다만, 최고 통수권자는 미군을 이용하여 자국의 불안한 치안을 담당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전폭적으로 미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습니다. 만약의 시나리오를 가정해봅시다.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입니다. 일단 한국은 중립적 입장을 가집니다. 현대에서는 지리적인 요소가 과거보다는 많이 축소된 것이 사실이지만, 변하지 않는 기본중에 기본은, 가까이 있는 국가가 너무 팽창을 하게된다면 자국에 불이익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이 독일의 급속한 팽창을 두려워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차피 미국이 지게된다고 하면 결국 우리나라는 중국의 손에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힘을 키워 중국을 먹어버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 않겠습니까? 만약 중국이 패망한 후에는 만주를 먹은 한국이 미국의 새로운 잠정적 적국이 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통일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군주의 덕목은 냉철함, 때로는 냉혈함에서 와야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자신에게 딸린 머릿수를 항상 생각 사실을 우리 청년들은 얼마나 알고있을까요.. 이 이론에 따르면 중국은 조만간 분열할 것입니다. 지금 세계경제를 중국이라는 키워드로 풀어 가야하는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국의 경제발전을 돕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정부는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비를 항상 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주를 줄 가능성에 대한 근거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미국이 승리한다면 만주를 주는 대신 한반도내의 미군 주둔, 또는 중국 내의 미군 주둔을 통해, 성장할 우리나라를 견제할 가능성에 중점을 맞출 수가 있겠습니다. 현재 동북아 경제블록이 구체화되어 가는 시점에 와있습니다. 사실상 중국의 주도로 세계경제가 활력을 얻고있습니다. 전쟁 후라도 만주를 영유한 동북아권의 한국은 이머징마켓으로써의 가치는 예전보다 급상승할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영세중립국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저는 사실상 불가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영세중립국의 스위스 같은 경우에는, 지형지물에 있어서 상당히 유리한 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EU가 생기면서 유럽은 하나의 유럽이라는 새 모토를 가지고 힘차게 움직이려고 하는 유럽대통합의 시대가 도래하였기 때문에 1,2차 세계대전의 상황과는 판이한 상황입니다. 허나 한국의 지리적 위치, 중국과 일본의 야욕. 중국은 이번 동북공정에서 한반도에 대한 탐욕을 은근슬쩍 내비쳤습니다. 일본같은 경우에는, 국적 도요토미가 일으킨 임진왜란이후 지금까지, 일본이 염원하는 대륙진출. 그의 발판은 분명 한반도라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세중립국을 선언하는 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 국민이라면,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도 한반도가 세계 초강대국이 되고파한다는 그런 꿈도 무시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상당히 많이 당하면서 참아오거나, 미온적인 정부의 행태에 분개하며 한번쯤 우리가 미국처럼 초강대국이었다면, 이란 생각을 한번쯤은 가져보셨을 겁니다. 이런 국민의 염원과도 부합되는 대국적 정책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리오
끝없는 도전과 용기잭 월치는 GE라는 거대한 회사를 세계일류의 기업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이 책을 접하게 되면서 그의 도전, 용기, 사업 방식 그리고 사소한 버릇 하나하나까지 경영학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어떠한 것도 놓칠수 없는 중요한 지침서가 되었고 CEO라는 자리에 대해서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자리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이 책은 전세계 경영인들의 교과서같은 역할을 할 것이며 경영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야 하는 좋은 책으로 생각한다.'잭 웰치' 그는 누구인가?1935년 그는 메사추세츠 피바디에서 태어났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GE에 입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만큼 탁월한 경영능력을 가지고 있었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발전되지 않은 도시에서 자라났으며 운동을 좋아했고 어렸을 때부터 가정환경의 영향 특히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라서 후에는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화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60년 GE에 입사해 그때부터 그의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잭 웰치는 1935년 기차 차장이었던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매사추세츠의 살렘에서 성장했다. 1960년 일리노이 대학에서 화공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GE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그리고 1981년 최연소로 GE의 제8대 회장으로 선임되었고, 이후 그의 신화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잭 웰치는 회장으로 임명되자마자 한 일은 GE를 완전히 새로운 조직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었다. 특히 GE에 입사한 첫해에 그를 실망하게 만들었던 관료주의의 척결은 회장이 되면서 가장 먼저 취해졌던 조치였다.또한 5년간 11만 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하는 철저한 감량 경영을 실시했는데, 이로 인해 그는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그러나 우리에게고 결코 낯설지 않은 품질 혁신 운동인 6시그마품질운동, 가장 훌륭거물이었다. 관료주의가 팽배했던 것이다.여기에다 그는 돌을 던졌다. 형식적이고 전통적인 것을 반대하고 실용적인 수익성을 강조했다.그가 항상 강조했던 '1등 또는 2등 전략'도 큰 반란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가 81년 CEO로 취임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1.2등이 아닌 사업은 모두 집어치워라'라고 말이다.그 말을 들은 주위 사람들은 당황했다. GE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대기업이었고 거의 모든 사업체들이 시장에서 1,2위를 다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잭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미래를 내다보았고 10년 내지 20년 후에 1,2등을 할 수 있는 고수익, 고성장 분야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그는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다 우연히 생각해낸 것과 어느 곳이든 지간에 갑자기 착안한 것을 메모하기를 좋아하였다.세 가지 원을 그리고 그 안에 글자를 써넣는 것을 좋아했다.그 안에는 핵심산업, 서비스 산업, 하이테크 산업의 세 가지가 들어갔다. 이 개게의 원 안에 들어간 사업은 여러 가지인데 이것은 잭이 10년 후에 확실히 성장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업이었다.서비스 부분에서는 금융서비스, 정보서비스, 건설 및 엔지니어링, 원자력이 있었다.기술 부분에서는 의료기기,신소재,산업설비,항공우주,항공기엔진이 있었다. 그리고 핵심부분에서는 가전,조명기기,터빈,운송설비,모터,컨트랙터 장비가 있었다.이런 사업들을 중심으로 앞으로 가망이 없고 저 부가가치의 사업들을 잭은 과감히 잘라내었다.그리하여 150여가지에 달하던 GE의 사업부들은 이 세 가지 원안에 집중되었다.이렇게 사업을 개편하는데 있어서 잭의 단연한 생각은 오로지 수익성이었다. 87년 수익성이 좋았던 소형가전사업을 톰슨사의 의료기기 사업과 바꾼 적이 있었다. 이는 아주 큰 이슈였다.그 당시만 해도 소형가전 사업은 시장점유율이 아주 높은 GE의 간판사업부였다.그러나 잭은 그 당시의 수익성에 만족하지 않았다. 의료기기 같은 고부가가치의 산업에 눈을 맞춘 것이다.사실 내가 경영자라면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는 모으로 기회들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다.그리고 경쟁에서 1,2위가 될 것을 강조했다. 회사의 저 성장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그 속에서 성장가능성이 있는 사업을 찾아내 투자를 하였다.이것은 잭이 어떠한 사업을 두고 1위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아닌 잭이 사업에 1위를 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수 있고 또 얼마나 노력을 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시기에 적절하게 조직의 규모를 조정한 것이다. 쓸데없이 조직의 인원만 많다고 회사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각 분야에 꼭 필요로한 인재들만 등용하여 거대한 GE가 민첩하게 움직여 살아남을 수 있게 했던 것이다.기업의 개혁과 변화에 끊임없는 노력을 하였다. 개선하거나 폐쇄시키고 아니면 팔아치운다는 정신으로 GE의 거품을 없앴으며 유망있는 고부가가치의 산업에 적극 투자함으로서 그의 경영전략을 과시했다.잭은 GE안에서 새로운 기업문화가 만들어지기를 원했다. 그는 GE의 오랜 관료주의에 반대하였고 그가 자신의 생애 중 가장 중요시 여겼었던 솔직함을 중시하였다.어렸을적부터 어머니에게서 받은 영향이 그가 CEO로서의 면모를 갖추는데 많은 도움을 하였던 것이다. 사업을 하면서 사람을 가늠하는 능력과 경쟁상대 그리고 모든 파트너들을 접할 때에는 그는 솔직하였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사실만을 말하였다.기업문화에 이바지하는 것으로서 그는 자유스러운 팀웨을 중요시했다. 그가 입사초기 지방에서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아무런 부담감 없이 직장 상사와 동료들을 대하면서 자유스럽게 의견을 교환하고 상하계층의 딱딱한 거리가 없는 가족스러운 사내의 분위기를 원했던 것이다.그래서 잭은 이것을 강조하였고 또 그렇게 만들었으며 이제 GE는 겉모양은 고래같은 큰 기업이지만 그 안에서는 구멍가게처럼 조직 구성원들의 의사소통, 의견교환이 언제든지 자유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잭은 CEO로 취임한 이후 회사나 직원들을 단순히 관리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고 많이 얽혀있는 일에만 치중하여 무언가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보이려는 사람, 그래서 모든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회사를 그르치는 사람으로 생각하였다.결론적으로 잭은 CEO로서 가장 바람직한 사람이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신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의 계층을 단순화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군살을 제거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그로 인해 한번 결재를 받으려면 그 기업의 총수에게까지 가는 과정이 14-15단계였던 것을 반 이상 줄여 시간. 인력의 낭비를 줄였던 것이다.그리고 마땅히 하는 일없이 결제서류에 도장만 찍어주고 결재만 해주던 사장단들을 과감히 없애버렸으며 나중에는 그가 CEO로 취임하기 전보다 사장을 포함한 고급간부의 수가 3분의 1정도로 줄어들게 되었다.훌륭한 경영자는 비전을 제시하고 기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이해시켜 그들 역시 그 비전을 자신의 것으로 삼게 만든다.진정한 비즈니스 지도자라면 자신이 맡고 있는 기업과 사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렇게 하려면 자신과 다투고 있는 경쟁자들을 항상 견재하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사소한 것이라도 생산에 내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간섭 없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열심히 일하게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그것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단순하게 바라본다면 사업은 지금보다 더 많이 발전할 것이라고 그는 말하였다.GE는 엄청난 규모의 기업이다. 150여가지 하부사업체가 있으며 수익성 또한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다.그러나 그 내부는 구멍가게처럼 쉽게 연결될수 있고 또 가까운 친구처럼 만날 수 있는 것이다.겉모습만 번지르한 대기업처럼 으시대는 것이 아닌 조그만 구멍가게처럼 언제나 상의하고 하고싶은 말이 있을 땐 아무런 부담 없이 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어느 정도의 성장세를 계속 유지하면서 작은 소규모의 기업들이 제공하는 미덕을 놓치지 않고 본보기로 삼았으며 GE보다 더 큰 기업이 자신 하였다.말단 직원부터 CEO까지 의견을 모두 공유할 수 있었으며 사소한 의견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생각이 GE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인 것 같다.잭은 조직의 구성원들 앞에서 가능한 모든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썼다. 잭은 조직 내부의 사정에 대해 하나하나 알려고 노력했으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그리하여 잭은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 내부의 사정을 잘 파악했으며 항상 새로운 것이 있으면 남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보았다.잭은 이처럼 많은 신화같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뒤로 남겨둔 채 GE를 떠나갔다. 떠나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사람은 아름답다고 말하였다.이처럼 잭은 자신이 모든 걸 바쳐 GE를 초일류 성장기업으로 만들어 놓고 그 총수의 자리를 떠났던 것이다.그가 CEO가 되고 또 은퇴를 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셀 수 없을 정도의 고난과 시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잭은 그것들을 꿋꿋하게 이겨내었다.그의 어렸을적 부터 가졌었던 마음들을 GE에 입사하고 나서 그리고 최고의 CEO로서 은퇴하기까지 소신을 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갔었던 것이다.그로 인해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물론 세계 여러 경쟁상대와의 싸움에서도 이겨냈으며 예전의 GE와는 180도 다른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나도 이번 교양과정을 통해서 경영학을 공부하게된 학생이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이러한 경영기법이라든가 사회물정에 그리 밝지 못하다.하지만 이번에 잭 웰치가 쓴 책을 읽고 나서 나에게 경영이라는 분야에 대한 어느정도의 확신이 서게 되었으며 지금 당장 사업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잭 웰치의 방식대로 한다면 잘 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될 만큼 많은 교훈을 얻게 되었다.요즘 언론에서는 모 대학교 경상대학에서 '정주영학' 이라는 과목이 새로 생겨나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외국에 잭 웰치라는 대 경영인이 있다면 우리 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내 짧은 소견으로는 형식적이고 정형화 되어있는 교과서적인 수업을 배우기 전에 이러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