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목 : 언어와 문학담당교수 : 조 우 호발표자 : 20020179문 다 정에 드러난 플로베르의 문체1. 문체의 개념원래 라틴어 stilus에서 유래한 말로써 글씨를 쓰는 도구를 뜻하는 말이었다. 문체란 문장에 나타난 작자의 개성(style), 즉 문장의 개성적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다른 문장과의 단순한 차이점이나 특이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완성된 품격으로서의 개성적 특성을 의미한다.2. 문체의 요소소설은 화자가 말하는 지문과 등장 인물이 말하는 대화로 이루어진다. 소설의 문체는 이 양자를 통하여 구체화하는데, 그 구체적인 요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서술가. 인물, 배경 등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이다.가. 서술은 해설적이고 추상적이며 요약적인 표현으로서 소설을 출발시키고 그 템포를 빨리 진행시킨다.2) 묘사가. 작가가 객관적인 위치에서 인물·배경·장면 등을 구체적으로 그려내어 구체적인 이미지를 생생하게 재현시켜준다.가. 고대 소설이 서술 중심이라면, 근대 소설은 묘사 수법을 본격적으로 사용하였다.3) 대화가. 등장 인물의 말을 뜻한다.가. 사건을 전개시키고 인물의 행동 및 심리를 그려낸다.>>대화의 요건*줄거리의 전개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말하는 사람의 성격과 일치해야 한다.*말하는 상황과 처지에 알맞아야 한다.*자연스럽고 참신하며 압축적으로 구사되어야 한다.3. 문체에 대한 정의1) 문체란 문법학이나 수사학의 유형이 아니라 작가 특유의 감정, 사상 또는 그러한 체계를 정확하게 전하는 언어의 한 특질이다 2) 문체는 곧 주제다.(Style is subject.) 3) 문체는 사람이다.뷔퐁4. 문체의 구분1) 작가의 특이성으로서의 문체2) 표현 기교로서의 문체3) 보편적 의미 내용이 작가의 개성적인 표현을 통하여 결실되고 구현된 경우의 문체세 번째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소설의 문체이다.J.M.Murry 에서5. 문체적 다양함과 구성번역본으로 읽어서 뚜렷하게 감별할 수는 없었지만 세르지오 시가다의 노동을 돌봐 주지 않았던 여러분, 여러분의 미덕을 보상받으러 와 주시기 바랍니다. 국가가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관심을 갖고 격려하고 보호해 줄 것을 믿어 주십시오. 여러분들의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이고 될 수 있는 대로 괴로운 희생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도록 하는 일에 노력할 것을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중략)"비료상!""그리고 저는 이대로 오늘밤도 내일도, 그리고 다른 날에도, 아니 한평생이라도 당신 곁에 머물러 있을 작정입니다.""아르괴유 마을의 카롱 씨에게 금메달 한 개!""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지금까지 어떠한 사람과 함께 있었어도 이처럼 완전한 기쁨을 느낀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후략) (161쪽-172쪽)특징적인 병렬적 교차기법은 그 구조적 대비와 함께(공진회는 1층 바닥-낮은 곳-에서 열리고, 엠마와 로돌프는 시청의 2층-높은 곳-에 있다.) 문체적 대립으로도 나타난다. 시가다에 기대자면, 한편에는 현실의 문체(허풍스러운 정치적 문체, 군중을 사로잡는 정치적 문체, 속악한 수사, 다듬어지지 않은 은유, 현실의 실증적인 금전적 척도들)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낭만적 문체(수사학적으로 상투적이긴 하지만 유장함을 띠고 있는 문체)가 있다. 한쪽은 부르주아적 공리주의와 실증주의에 기댄 허구적인 정치적 발언들이며, 한쪽은 로돌프가 그저 엠마를 유혹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허구적인 애정의 발언들이다. 이 두 담화 모두 "공허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관념적 세계의 거품일 뿐"이다. 플로베르는 여기서도 역시 낭만주의와 부르주아적 현실에 대한 환멸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그 외에도 독특하게 여겨졌던 점들은 (아마도 그의 몰개성의 의식적인 노력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정황 묘사에 있어서 서술 주체는 빠져 있고, 객체들의 대화나 행동을 통해서만 그것을 드러내는 기법이다. 124쪽에서 127쪽에까지 걸쳐있는 엠마와 신부와의 대화에서 엠마는 불륜에 대한 자신의 욕망과 환멸,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끌려 들어가는 레옹에의 사랑에 대해 고해하려는 듯 보이지만하는 레옹의 심리를 독자가 동시에 체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288쪽에서 292쪽에 걸쳐있는 시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듣는 오메와 엠마의 방해받는 대화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227쪽에서 228쪽에까지 걸쳐있는 샤를르와 엠마의 동상이몽은 그러한 구성의 미학을 더욱 잘 드러내 준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샤를르는 딸을 생각하며 현실적인 미래의 청사진을 흐뭇하게 그리지만(이것은 미래형 문장들이다.), 엠마는 그 곁에서 로돌프와 도망하여 살고 있을 모습을 생생하게 몽상하고 있다(이것은 현재형 문장들이다.) 이러한 대비는 무대 속의 인물들을 직접 대립시키고 그들 스스로 정황을 진행시켜 나가도록 함으로써 작가가 직접 개입하지 않고도 현실성을 담보해내는(정밀한 객관적 묘사보다도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장치가 되고 있다.6. 플로베르플로베르는 자신의 작품이 리얼리즘으로 분류되는 것을 계속적으로 거부하였다. 그는 아마도 일체의 '유파'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던 듯 하고, 오히려 '예술지상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작품의 미적인 측면을 중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발자크나 스탕달과 같은 여타의 프랑스 리얼리스트들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로서 그를 위치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7월 왕조의 부르주아 계급이 지녔던 자신감이나 건설적이고 야심찬 분위기가 사그라지고 자기네 예술의 사명에 대한 신념을 잃기 시작한 시대에 그가 속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우저는 이와 관련해 플로베르가 취한 낭만적 인생관을 '이를 이용하여 부르주아 지성이 삶을 통어하고 예술을 삶의 도구로 만들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단계의 낭만적 인생관'이라 지적하고 있다. 그는 발자크 소설의 토대가 되었던 사실주의적 작업 태도를 극단화시켜 '외과 의사의 미세한 칼놀림과 같은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 거기에는 발자크의 소설에서 보이던 극적인 상황과 그 상황에 맞서는 주인공의 운명적 대결 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파편화된 일상의 삶만이 편재할 뿐이다. 전통적인 플롯 단계는 없으며 조각난 의 계열로 분류되기도 한다.라마르틴, 위고, 괴테 등의 위대한 낭만주의 작가들로부터 강렬한 독서 체험을 가졌던 그는 초고가 혹평을 받자, 자신의 어쩔 수 없는 낭만주의적 기질을 거스르며 철저하게 감정의 분출을 통제하고 주관적 개입을 배제하는 방법으로 를 쓰게 된다. 그리고 의 창작 과정 중에 그는 서서히 자신의 예술관을 정립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우주 속의 신과 같이 어디에나 있으면서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라는 비개성, 몰개성의 원칙이었다. 그에게 예술은 현실의 삶으로부터의 도피의 방법이었으며, 이다.>>루앙 출생. 시립병원 외과부 의사의 아들로 중학시절부터 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 《11월》 등을 습작하였다. 파리대학 법학부에 재학 중 간질(癎疾)과 유사한 신경증이 발작한 것을 계기로 문학에 전념하여, 《감정교육(感情敎育)》의 초고와 《성(聖)앙투안의 유혹》의 초고를 썼다. 그 뒤 낭만파의 영향에 중독된 공상(空想)의 과잉이나 산만한 작풍을 극복하고 확고한 문체와 긴밀한 구성을 가진 《보바리 부인》(1857)을 발표함으로써, 프랑스 당대의 최고 작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는 루앙 근교 센 강변에 있는 크로와세라는 곳에서 살았는데, 독신의 연금생활자(年金生活者)로서 어머니와, 일찍 죽은 누이동생의 딸, 그리고 늙은 하녀와 함께 조용히 칩거생활을 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그를 은둔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그러나 그가 가끔 파리로 나가서 E.D.공쿠르, A.도데, E.졸라, I.S.투르게네프 등과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할 때에는 좌담의 명수이기도 하였다. 《보바리 부인》의 극명한 현대 풍속의 묘사에서 일전하여 고대 카르타고의 서사시를 환기시키는 역사소설 《살람보》(1862), 그리고 다시 자전적 요소가 짙은 현대소설 《감정교육》(1869), 또다시 일전하여 고대 이집트 수도사의 환상을 그린 대화형식의 《성(聖)앙투안의 유혹》(1874) 등, 플로베르의 대작은 수없이 많은데 모두가 사상으로 플로베르가 본격적 사실주의 소설의 창시자였다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사실 그는 면밀한 자료수집과 현지조사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작자의 주관이나 선입견을 작품 속에 반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작가는 몰개성적 태도로써 객관에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문학관이었다. 그러나 고백이 금지된 작가의 자아(自我)는 오히려 더욱 깊이 침잠된 진실한 모습을 작품 속에 나타내는 결과가 되는 것이므로, “보바리 부인은 나였다”고 전해지는 그 자신의 말에는 거짓이 없을 것이다.플로베르는 결코 단순히 겉으로 보는 풍속의 갖가지 양상을 그려내는 작가가 아니었다. 그의 내부에는 꿈 많은 로마네스크한 자기 자신, 또는 무언가를 천착하기를 좋아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관조하는 소설가의 눈이 항상 번득이고 있어서, 그렇게 관찰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편적인 인간상으로서 보바리 부인이나 부바르나 페퀴셰의 모습으로 그려 내지 않고서는 견디지를 못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작가와 작품 사이의 ‘단절(斷絶)’이 바로 ‘관련’이라는 미묘한 존재양식을 밝히는 귀중한 문헌이 그가 죽은 후에 간행된 《서간집》(9권:1926∼1933) 및 그 보충 4권(1954)이다.엄격하게 문체를 다듬는 작가로서의 플로베르상(像)은 이미 정착된 지 오래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신비평파의 비평가들은 높은 관점에서, 문학을 결연히 언어의 문제로 환원시킨 최초의 작가로서 플로베르를 누보 로망(nouveau roman:新小說)의 원류(源流)라는 위치에 두었다.7. 플로베르의 가르침모파상은 플로베르의 정신적인 양자로서 플로베르에게서 예술의 존엄성, 예술가의 의무 그리고 부르주아에 대한 묘사 등에 관하여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며, 사물을 관찰하는 방법과 작품의 문체에 관해서도 배운 바가 많았다. 플로베르는 언제나 애제자에게 "생각하는 것"보다도 "보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관찰이야말로 자연주의 문학의 가장 큰 무기였다. 이 관찰은 인간 세계의 밖으로도 안으로도 돌릴 수 있는 것인데,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