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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전도와 설교
    1. 서론설교는 설교자와 설교의 내용(Text)과 설교는 듣는 청중으로 세 가지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의 메시지를 듣는 청중은 크게 둘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믿은 성도들이고 둘째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전도설교의 대상이 불신자라면 그 중요성은 교회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역할은 끊임없이 불신자를 초청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제시하는 것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 빚을 지고 있다.2. 본론전도설교에는 전도설교의 대상과 전도자, 전도설교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알아본 뒤 전도설교의 목적과 주의점을 제시하고자 한다.(1) 전도설교의 대상전도설교의 대상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만이 전도설교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 안에는 전도설교를 들어야 되는 사람들이 또 있는데, 곧 명목상의 교인들이다. 명목상의 교인들이란 교회는 다니지만 중생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로 이러한 교인들은 전도설교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1) 불신자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불신자들의 영원과 영혼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그런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기 떄문에 정신적으로 방황하면서 살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타락한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들의 문제 해결을 그리스도인들을 너무나 잘 안다.만일 교회가 복음적이라면 성도들은 그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할 것이며, 설교자는 그들을 위하여 전도설교를 할 것이다. 또한 교회성장의 지름길은 바로 불신자들에 대한 관심인데,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중생의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2) 명목상의 교인교회에는 이름뿐인 교인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제법 교회예배에 충실하게 출석할 뿐 아니라, 봉사도 열심히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교정받는 일꾼일지라도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만일 거듭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들도 전도설교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3) 신자전도설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신자들에게도 필요한데, 그 이유는 시시떄때로 전도설교를 들으면서 그들이 어떻게 구워을 받았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때때로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에 젖어들어야 하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 더욱 감사하며 사랑하게 된다.전도설교를 들으면서 신자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이게 되는데, 첫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더욱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 분을 위해서 살기를 원하게 되는데 자연적으로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되며, 희생적인 봉사를 하고자 하는 열정을 갖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다른 신자들을 섬기기를 원하게 된다. 둘째로는 다른 사람들, 즉 불신자들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처절한 고난을감수하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신자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게 된다. 그 뿐 아니라 시시떄때로 전도설교가 이루어지는 교회로 그들을 초청하게 되는데 이런 이유로 신자들도 전도설교를 정기적으로 들어야 한다.(2) 전도자전도설교를 해야 할 전도자는 설교자들이다. 전도설교를 하는 이유는 청중의 필요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제자들이 전도설교를 강조하였기에 설교자들은 전도설교를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1) 예수 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최초로 설교하신 내용은 바로 ‘복음’이다. 설교를 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시는 전도설교였던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공생애 사역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전도설교이며, 둘째는 기적을 행하시며 질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이며,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 들었다. 셋째로는 가르침 만나 회심한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행9, 22, 26장 참조).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만난 후 제일 먼저 한 것도 역시 전도설교였다. 그 이후 그는 바울이라고 불리면서 그 당시의 세계에 복음을 전파한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졌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전도설교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였으며, 그 전도설교를 확증하기 위하여 때로는 가르침과 기적도 수반하였다.3) 목회자들신약성경에서 전도자란 용어는 세 번 나온다. 첫째, 에베소에 나오는 복음 전하는 자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중요한 지도자로 소개되는데, 이는 성도를 훈련시키는 역할임을 알려준다.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전도자는 평신도 순회 전도자인 빌립을 가리킨다. 빌립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각처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마지막으로 바울이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전도인의 일을 하라고 엄히 명령한다(딛후 4:5). 이상의 성경 말씀에 의하면, 전도 설교를 하는 사람은 순회 전도자와 목회자이다. 순회전도자는 탁월한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으로서 어디든지 성령이 인도하시는대로 가서 전도설교를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또한 목회자는 많은 사역들 중에서 전도설교도 해야 하며, 동시에 개인 전도를 하면서 평신도에게 전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결국 목회자는 복음의 전달자이어야 한다.3. 전도설교의 내용이제 전도설교를 들어야 하는 청중에게 전해야 되는 내용을 알아보고자 한다. 전도설교의 내용은 성경에 근거하여 본문을 강해하면서 체계적으로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1) 인간의 모습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은 인생의 분명한 목적을 깨닫지 못한채 허무한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늘 마음속 깊이에서 울어나오는 외로움을 가지고 산다. 그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온갖 방법을 사용해 보지만, 그 결과는 보다 깊은 구렁텅이에 빠질 뿐이다. 어떤 인간의 방법으로도 허무와 외로움이 해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외로움에 탈출하고자 쾌락이나 범죄를 추의 심판은 반드시 모든 사람을 찾아올 것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둘째 사망은 지옥을 의미하는데, 성경은 다음과 같은 죄를 범한 사람들이 받을 영원한 지옥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 21:8). 불신자들이 맛볼 이처럼 처절한 내세를 전도설교에 포함시켜야 온전한 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3) 소망의 주님인간의 죄된 모습과 영원한 심판을 깨닫고 울부짖는 사람들에게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 소망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 분은 하나님이자 동시에 인간이시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서 인류의 죄와 심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 분의 죽음은 전적으로 죄인들의 죽음과 심판을 대신 짊어진 대속적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비록 사단이 죄를 들여왔고, 그 죄로 인하여 사망이 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분의 죽음으로 그 죄를 정복하셨고 그 분의 부활로 죽음을 정복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유일무이의 방법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바울 사도는 이런 역사적 사건을 복음이라고 정의했다(고전 15:1~4).4. 전도설교의 목적전도설교의 목적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죄를 용서받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을 회심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설교를 하는 전도자는 성령의 임재와 능력으로 설교할 수 있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준비하고 설교해야 할 것이다 (고전 2:2 참조).1) 초청전도설교를 들은 청중에게 전도자가 가장 큰 은총을 베풀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실제로 전도설교를 들은 직후가 청중이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동시에 사용하기도 하며, 또한 어느 한쪽만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회개만을 말할 때 (행 2:38, 3:19, 5:31) 믿음도 포함된 것이며, 동시에 믿음만을 말할 때 회개도 이미 포함된 것이다 (요 3:15, 36).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일까? 회개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시인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죄의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결국 진정한 회개는 인격적이어야 한다. 지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시인하고, 감정적으로 죄된 사실에 대하여 안타까워야하며, 의지적으로 그 죄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리할 때만이 그는 진정으로 회개를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초청에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한 발 더 나아가 믿음을 구사해야 한다. 물론 믿음은 그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믿을 때에도 역시 믿음은 인격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지적으로 예수님이 그를 위한 구속적 사역-죽음과 부활-을 수용해야 한다. 그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감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구원의 유일한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맡겨야 한다.3) 회심전도설교의 궁극적 목적은 불신자의 회심이다. 지금까지 복음을 설교하고 초청한 것은 회심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 불신자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순간 그는 회심을 경험한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않고, 위로 하나님의 영광과 아래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살기 시작할 것이다. 그는 회심의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많은 은총을 받기 시작하는데, 그 가운데 다음의 세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첫째, 재판관이신 하나님은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 지금까지 범한 죄를 너무나 완전히 깨끗하게 하신 나머지, 그가 지금까지 한 번 죄를 생각하거나 지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여겨 주신다. 둘쨰, 하나님은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다. 그 때부터
    인문/어학| 2012.05.29| 7페이지| 1,000원| 조회(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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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족 선교 개론
    길림성 선교1. 선교의 개념성서에 따르면 인간의 처음 모습은 피조물로서의 모습이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제외한 만물들을 다 지으신 후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생기를 코로 불어넣음으로써 창조를 하셨다고 말한다 (창2:7).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함으로 인해 처음 창조된 인간의 완전한 모습은 스스로 회복할 수 없게 되었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주시는 은총에 의해서 일뿐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값없는 은총으로 오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만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오셔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하셨고, 또한 그 복음을 제자된 우리로 하여금 선포하도록 명령하셨다. 그래서 우리 또한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모든 민족과 백성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한마디로 선교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전하여 그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선교는 이렇게 복음을 통하여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교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는 중국인의 영혼들의 개인구원을 위한 복음 전도를 선교이유로 삼는다.2. 선교의 동기선교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명확하게 자신을 계시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요구사항들에 대한 교회의 임무중에 하나이다.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위임은 성서에서 찾아야 하며, 따라서 선교의 성서적 기초를 밝히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기독교 선교는 성서에 뿌리박고 있다. 그리고 선택을 하시며 우리는 의지를 사용한다. 성령의 의해 택함을 받은 자들은 그 뜻 안에서 능력을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중국의 선교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상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세계 구원의 약속을 주신다 (창12:1-3). 그리고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로 계속 성취되어 간다.3. 선교의 목적우선 선교의 목표가 잃어버린 영혼의 구원이라고 할때, 선교는 지금까지 말하여왔던 것처럼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하기 위하여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의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될 것이다. 즉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 문화, 언어, 지리적인 장벽을 넘어 이방 지역에 가서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하고 이방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그들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선교의 목적인 것이다. 이것을 정리하여 말한다면,1)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한다.2) 그들로 교회를 세우고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3) 그리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그것이 바로 우리와 교회의 목표라고 한다면 이제 교회는 더 이상 안으로만 성장하고 만족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의 근본 목적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면서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된 자들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교는 앞에서 이미 여러번 언급하였듯이 복음화가 아닌 그 어떤 입장도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전통적이고 성서적인 선교이해는 오직 한가지 복음화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우리에게 중국 선교의 목적은 중국의 복음화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대륙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한다면 하늘 나라에서 아버지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가 단기선교를 떠날 중국, 그 중에서도 길림성을 포함한 만주를 중심으로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이 글에서는 중국과 관련된 도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어 등의 일반적인가 3000000명, 관련치소 예배인 수가 9000000명, 가정교회 교인수는 33,000,000명 정도 된다.2) 중국은 1950년대부터 당의 공식적인 종교정책을 따르는데 궁극적 목표를 두기에 모든 종교단체, 특히 기독교활동에 대한 통제 또는 억압을 가해왔다. 그러자 1958년 이후 3자 애국교회 운동이 일어나 개신교와 가톨릭 애국회 등이 발족되었다. 1966년 문화혁명 당시에는 모든 종교활동이 정지되었는데 이 때 기독교 선교단체는 110여개였다. 신자들은 180만 정도 되었고, 834,000명 정도의 성도들은 세례 대상자들이였다. 13,000여명의 중국인들과 함께 6,000명의 선교사들이 19,500개의 교회에서 사역하였다. 270개의 기독교 학교와 262개의 병원이 설립되었다. 교회는 토착적 성격이 강했으며, 나중에는 정부의 지도 방침에 따라야 했다.5. 중국의 선교실정1) 지난 40년간 각 지방에서 기독교는 부활했다. 특히 해남도는 주민의 20% 정도가 기독교인이며 제양, 안휘, 복주 등은 여전히 극소수의 기독교인 분포를 나타낸다.2) 3자 애국교회는 정부 주관하에 가정교회에 빼앗긴 기득권 회복을 위해 노력 중이다.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은 정치적 의도에서 일하고, 복음전파 보다는 정부의 종교정책을 시달하는데 그친다. 4000곳 이상의 예배장소가 새로 문을 열었고, 30,000개의 처소가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리에 서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관방교회에서는 힘을 얻지 못하나 가정교회에서는 가능하다.6. 중국교회 (3자 애국교회)의 신학노선3자 애국교회 신학이 복음주의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상반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1) 3자 애국교회의 허락없이 중국의 복음화가 방해될 수 없다.2) 3자 애국교회의 허락없이 복음전파나 세례받을 수 없다.3) 18세 이하에게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4) 기독교인은 안수기도나 광신적인 행위를 금지한다.5) 중국 밖에서 성서나 기독교 문서를 중국에 반입할 수 없다.6) 3자 애국교회는 종 Kirin, Harbin 등에 흩어져 산다. 중국에는 한인 자치구가 2개 있다. Yanbian 한인자치구에 한인이 약 백만명 정도 살고 있는데, 이 인구는 중국내 전체 한인의 85%에 해당한다. 한인의 자녀중 90%이상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 자치구 안에는 90개의 고등학교와 5개의 단과 대학이 있다. 대학은 농과대, 미대, 음대, 인문대, 사대 등이 있다. 이 지역에는 임업이 발달해 있으며, 철도를 통해 Kirin이나 Heilongjiang으로 통나무를 수출하기도 한다. 이 지역의 경작은 주로 쌀, 콩, 수수 등으로 집중되어 있다. 이 지역의 북쪽에는 구리 광산이 있어 지역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기도 한다. 또한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 인구는 1995년을 기준으로 약 120개의 교회와 50,000여명의 신자들이 있는 것으로 통계되어진다.8. 조선족의 형성중국에서의 조선족의 이주 역사는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보면 훨씬 최근의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과거 고구려의 영토가 길림과 요녕까지 그 판도로 삼고 있었지만, 중국과 조선이 압록강과 두만강의 경계로 삼은 것은 오래된 일이었다. 조선조의 북방정책으로 17-18세기에 중국 동북 지방으로 이주시킨 적도 있었지만 그 수는 적었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이르러 이민의 숫자가 증가하고 본격적으로 중국내에서 조선족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 원인은 다름과 같다.1) 경제적인 이유: 한민족이 이주하게 된 중요 동기는 경제적이었으며 농업 이민이 대중을 이루었다. 초기 이주는 주로 두만강 쪽에 거주하는 함경도 농민들로서 재해나 흉작으로 생계가 어려워지자 1845년부터 간도 지방으로 월강하 여 미개지를 개척하였다. 조선정부는 이에 대해 처음에는 강압적인 금지 정책을 썼으나, 후에는 이를 방관하였으며, 오히려 이주민의 수가 급증 하자 적극적으로 이주민 보호를 나서기 시작하였다.2) 정치적인 이유: 1910년 이후 3.1운동을 전후하여 국내에서의 항일 독립투쟁에 제약과 한계를 느낀 민족주의자들은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을 추진하 기독교인 이종식 장로, 이권수 장로, 이경수 집 사는 20여 가구를 인솔하여 자유를 찾아 화룡현삼도가에 집단 이주하였 다. 정착지 이름은 구세동이라 칭하고 교회당, 가옥, 학교를 세웠다. 또 한 1911년에 성률인 양진섭 장로, 양형색 장로는 가족을 인솔하여 성율 학증면 달리동으로부터 화룡현 이도강에 이주하여 장은평이라 이름짓고 교회와 학교를 지어 개척부락을 건설하였다. 이와 같은 기독교 촌락 집 단은 간도 노회록에 의하면 북간도 전역에 50개처 이상으로 확인된다.9. 조선족에 대한 선교의 역사조선족은 기독교에 접촉할 때도 중국에 빚을 졌고 믿음을 시작하는데도 중국에 빚을 졌으며 교회를 창립하고 성서를 번역하는 일을 할 때도 중국에 빚을 졌다. 이 빚을 갚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일찍부터 중국에 복음을 전해왔다. 장로교회는 1910년 만주에 김신근 목사를 파송하였고, 신천읍교회 여전도회는 1911년에 김덕선 목사를 봉천에 파송하였다. 1912년 평북노회는 최성주 목사를 서간동 파송한바 있다. 특히 장로교는 1912년 총회를 조직한 것을 기념하여 만주지역 선교를 결의하고 1912년 김내범 목사를 북간도에 파송하였다. 1918년 서간도 선교를 위해 이지은, 한경희, 최봉석, 김강선 등 4명의 목사를 파송하였다. 이어서 백봉수, 양준식, 김병용, 조덕환, 이병하 목사를 여러 지방에 파송하였다. 만주선교도 큰 성과를 거두었고, 그 결과 1920년에 남만노회가, 1921년에는 북만노회가 조직되었다.감리교회도 만주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양주삼 목사로 하여금 이 지역을 시찰케 하였다. 양목사의 답사보고에 따라 1920년 만주선교를 결정하고 1921년에 정재덕, 최수영, 배형식 목사를 초대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1924년에는 최성모, 손정노, 동석기, 김응태 목사를 추가로 파송하여 만주지역 선교를 확장하였다.조선의 선교사들은 식민지 열강의 선교사들에게는 찾아 볼 수 없는 일들을 하였다. 목사임명 증서를 중국 교회에 제출하고 중국 목사가 된 것이다. 중국 옷을 입고 중국 음식을 였다.
    인문/어학| 2010.09.18| 6페이지| 1,000원| 조회(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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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선지서에 나타난 선교학 평가A+최고예요
    소선지에서 나타난 선교 신학적 사상이 자료는 지난 수년간 발표된 약 20 여 편의 필자의 선교전략 관련 논문을 성경적 차원에서 평가해 보기 위한 목적으로 씌어졌다. 이 글은 국제신학대학원의 장세훈교수(선지서), 아세아 연합신학대학원의 이한영교수(모세오경), 전주대학교의 박경철교수(소선지서의 단일체적 해석), 그리고 필자를 파악할 수 없었던 모교수(선지자와 선교사)의 강의 및 선행 연구에 큰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대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이경실 교수에 의해 논문 전체의 맥락에 큰 조언과 지도를 받았다.이와 같은 분들 덕분에 필자는 “성경에 나타난 선교 신학의 탐구”라는 내재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특히 소선지서의 선교 신학적 해석을 위한 기본적인 틀은 필자가 대단히 고심하여 나름대로 구축한 분석적 틀이다.감히 남에게 내놓을 수 없는 졸작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한번 읽어 보아주시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선교사와 선교현장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한 필자의 치열한 고민에 공감하는 분들이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특히 아프카니스탄 사태 이전에 씌어진 이 논문을 그 후에 다시 읽으며, 이 논문의 선교적 통찰력이 선교 현장의 동역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도한다.소선지에서 나타난 선교 신학적 사상목 차I. 연구의 목적과 방법Ⅱ. 소선지서의 단일체적 해석과 구성방식1. 소선지서의 단일체적 이해2. 단일체적 해석에 의한 소선지서의 중심 메세지Ⅲ. 선지자와 선교사1. 예언과 선지자2. 선교와 선교사3. 선지자와 선교사와의 관계성Ⅳ. 소선지서의 해석을 위한 접근 방법1. 구약 선교 사상의 기초2. 소선지서 해석을 위한 기본 틀V. 소선지서의 선교신학과 사상1. 기본 틀에 의한 소선지서의 요약2. 선지자의 신탁과 선지자적 선교사3. 선교지로서의 열방의 이해4. 증거되어야 할 여호와의 유일성5. 메시지의 신학적 구조로서의 죄ㆍ심판ㆍ은혜6. 하나님의 비전: 새 예루살렘으로서의 열방Ⅵ. 결 론1. 요약2. 제언I. 연구의 목적과 방법1. 문제의 제기한국세계선교협의회(라도 계시 양식에서의 이탈은 계시를 종교로 격하시켜 버린다.이스라엘 주변의 민족들은 종교적이었다. 그들도 역시 “신적” 인도를 구하였다. 그들도 평화롭게 살고 번영을 누리기를 원하였다. 이런 목적들을 이루기 위하여 그들은 전문적인 점쟁이, 마법사, 요술사, 해몽가들을 통해 신들의 의견을 알려고 애썼다.) 계시의 부족은 그들로 하여금 신들이 원하는 바를 규명하기 위해 직업적인 사제나 점쟁이들에게 의존하게 하였다.계시가 종교를 반대하듯이 하나님의 백성도 대응문화를 발전시킴으로 열국들의 문화에서 스스로를 구별하여야 했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자극되고 동원된 하나님의 백성은 대응문화로써 지구상에 그의 왕국을 건설하도록 요청되었다.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를 분별하기 위해 계시된 기준이 분명할지라도 이스라엘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거짓 선지자들은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용납되는 “직업적” 선지자 단체에 속하였다. 그들은 그 시대의 필요에 응답하였고, 동 시대인들의 제한된 시각 안에서 활동하였다.거짓 선지자들은 위기 시에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그들이 이해한 것을 근거로 백성들을 위안함으로써 그들을 격려하였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에게 위협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기 위한 다음의 일곱가지 기준은 포로 전기, 포로기, 포로 후기 선지자들과 우리 주님과 그의 사도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첫째, 거짓선지자들은 계시와 종교를 결합하였다. 이 혼합주의적 태도는 그들이 대중적 인정을 받는 것을 도왔다. 이와 반대로 참 선지자들은 오로지 계시의 틀을 근거로만 활동하였다.둘째,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계시에서 백성들에게 위안을 주는 주제들만을 선택하였다. 반면 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의견 전부를 수용하였다.셋째, 거짓 선지자들은 현실 정책을 옹호함으로써 사람들을 착각하게 하였다. 그들은 사회적이든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당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복음 전파는 소홀히 하게 된다.3) 통전적 해석이 견해는 선교에 대한 위의 두 입장을 조화시킨 것이다. 이 해석은 선교란 단순한 복음 전파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교육, 문화, 사회 봉사 등을 모두 선교 활동에 포함시킨다.이 입장은 사람의 영혼의 구원보다는 영혼과 육체 전체의 구원 즉 전인적 구원과 사회 전체의 구원에 대해서 모두 관심을 가진다. 결국 선교란 복음과 문화, 복음 전파와 사회 봉사, 개인 구원과 사회적 책임 등을 모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에야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 만물과의 온전한 질서와 조화가 회복되고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이러한 '선교'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선교사'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내심을 받고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을 얻게 할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구원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를 변화시키도록 힘쓰게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3. 선지자와 선교사와의 관계성위의 선지자와 선교사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선교사의 정의에 반영된 선지자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1) 하나님의 부르심아모스는 남 유다의 드고아에서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사람이었으나, '여호와께서 아모스를 데려다가' 북 이스라엘에 가서 예언하게 하셨다.(암 1:1; 7:14-15) 호세아는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호 1:1)을 받고 하나님의 사자로 부르심을 받은 후 이스라엘에서 예언하였다.미가도 호세아처럼 '여호와의 말씀'이 미가에게 임하여서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미 1:1).하나님이 선지자를 부르시는 전형적인 모습을 하나님이 이사야를 부르시고 이사야가 그 부르심에 응답한 곳에서 볼 수 있다.(사 6:8) 하나님이 먼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가 아닌 '내가 누구를 보낼까?'라고 물으심에는 이사야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거의 300회 정도 사용된다.「나비」라는 말의 어원은 아카드어 "나부"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말의 뜻은 "부르다" "선포하다"라는 뜻이다. 「나비」는 히브리어 동사「나바」에서 왔으나 칼(Kal) 동사는 없고 Nifal(수동태)로 "부름을 받은자", 다시 말하면 "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신에 의해서 부름 받은 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미래를 점치는 주술적 선지자(점장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위탁한 말씀만 공중 앞에서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선지자는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담아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던 것이다.(렘 1:9)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사상은 선지자가 받은 부르심과 말씀에 잘 나타나 있어서 이러한 선지자의 신탁은 소선지서의 분석을 위한 기본적 틀에 우선적으로 반영되었다.2) 구약의 유기적 주제로서의 죄?심판?은혜기본 틀에 두 번째로 포함이 된 것은 통일성 있는 구약의 유기적 주제로서의 죄?심판?은혜이다. 12선지자들이 선지자로서 오경을 해석하여 말씀을 선포하는 자라면, 필경 그들의 예언가운데는 오경의 유기적 주제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구약 특히 오경의 유기적 주제를 잘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러한 신학의 통일성과 관련하여 본 연구에서 택한 오경의 유기적 주제는 죄?심판?은혜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경에서 반영된 고유한 신학의 틀이 결국 죄?심판?은혜라는 3부적 신학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즉 창세기부터 오경의 나머지 주요 이야기들을 다음과 같은 7가지 주제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모든 주제들 가운데 죄?심판?은혜라는 3부적 신학구조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7가지 이야기 가운데 나타난 3부적 신학구조는 다음의 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결국 오경에 반영된 죄?심판?은혜라는 신학적 틀은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된 말씀 가운데, 유기적 주제로써 소선지서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틀 가운데 나타난 각 신학적 주제는 다음과 같은 요약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옵 1:15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왔나니 너의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미 5:8 야곱의 남은 자는 열국 중과 여러 백성 중에 있으리니슥 1:18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 뿔이 보이기로19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니라20 때에 여호와께서 공장 네 명을 내게 보이시기로21 내가 가로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매 대답하여 가라사대 그 뿔들이 유다를 헤쳐서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매 이 공장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에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헤친 열국의 뿔을 떨어치려 하느니라 하시더라욜 2:19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20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암 9:12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습 3: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 8:22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위의 표에서 이스라엘과 열방 외에 이스라엘-열방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죄와 심판 및 은혜가 이스라엘과 열방과의 관계에서 드러난 것을 의미한다.2. 선지자의 신탁과 선지자적 선교사1) 계시의 수신자로서의 선지자위의 표에서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선지자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계시의 수신자로 확시한다.
    인문/어학| 2010.09.18| 46페이지| 2,000원| 조회(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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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다원주의와 만인구원론
    종교다원주의와 만인구원론목차1. 종교다원주의가 등장하게 된 경위2. 종교다원주의 신학의 문제점3. 종교다원주의는 자유주의의 귀결점4. 기독교교리와 교리사에 왜곡된 이해5. 타종교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직한 자세6. 맺음말서론1960년대 이후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토착화신학을 비롯하여 세속화신학, 해방신학, 정치신학, 민중신학 등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의 신학을 소개하며 모색해 왔다. 종교다원주의는 민중신학 이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부쩍 관심을 가지는 또 하나의 색다른 주제이다. 보수적인 대다수의 한국교회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부분적으로 긍정할만한 측면을 인정하기도 하였으나 종교다원주의에 이르러서는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공통적인 근거가 완전히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른 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해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1. 종교다원주의가 등장하게 된 경위종교의 다원화 혹은 종교다원주의라는 말은 서양에서 1960년대 중반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 1970년대에는 많은 글들을 쓰고 책을 내기 시작하였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여러 타종교를 그들의 사회 속에서 실제로 부딪히게 되고 타종교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미국의 경우는 1960년대 이후 아시아인들이 대거 이민하면서부터, 서유럽의 경우는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 등 국가에 아시아와 이슬람권 국가들의 노동자들이 대거 취업하면서부터 미국과 유럽의 사회는 종교다원화 사회로 변모한다. 게다가 에큐메니칼 신학과 운동이 종교다원주의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는데 이는 기독교 교파간의 연합을 꾀하며 세계의 평화와 질서 등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타종교와의 대화와 공존을 주장하기 때문이다.2. 종교다원주의 신학의 문제점종교다원주의는 타종교와의 대화를 의식하며, 기독교의 유일성을 주장하지 않고 타종교를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즉 타종교도 종교로서 기독교와 동등한 가치 다루는 신학의 주제는 기독론인데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으며 구원이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과 억측으로 기독교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희석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들의 목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므로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기독론을 새로운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기독론을 중심으로 하여 글을 전개하도록 하겠다.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신학자 가운데서 니터(Paul Knitter)는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지 않고 전통적인 신앙고백을 고수한다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정의한다. 최초의 예수 전승 안에는 예수의 신성에 대해서와 신의 아들임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는 견해를 수용하면서 예수에 대한 신약 성경의 모든 증거를 절대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니터는 교회가 지켜 온 그리스도에 대한 전통적인 신앙고백을 폐기하면서도 예수의 유일성에 대하여 언급하며 유일성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한다. 예수의 유일성은 종교적인 언어인 사랑의 언어요 애무의 언어, 고백의 언어로 객관적이지 않은 비이성적인 언어로 쓰였을 뿐이라 주장한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고 믿지만 객관적인 사실로 봤을 때 ‘그리스도는 예수다’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수는 ‘최고의 이름: 모든 이름 위의 이름(빌 2:9)’인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역사적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라 칭하며 ‘모든 이름 위에 이름’이라고 하는 것처럼 모든 종교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지칭할 수 있으며 굳이 그리스고라는 단어 외에도 ‘라마, 크리슈나, 이스바라, 푸루샤’ 등으로도 쓰일 수 있다고 한다.3. 종교다원주의는 자유주의의 귀결점기독교의 유일성, 즉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거나 희석화하는 작업은 그렇게 놀랄 일들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종교다원주의가 대두되기까지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17,18세기에 제믈러(Semler, 1791), 라이마루스(Reimarus, 1694)등 계몽주의 신학자들에 의하여 자유주는 자연신학을 지지하면서 기독교는 허구에 근거하여 출발하게 되었다는 극단론을 폈다. 즉 예수의 부활을 설명하면서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 놓고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는 정치적인 메시아였으나 그가 허무하게 죽자 제자들이 그를 비정치적인 메시아로 선전했다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부정하는 그의 방법은 현대 신학자들에 비하면 고전적이고 직설적이다. 그 이후 합리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들은, 교회가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받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라’라는 신앙 고백을 폐기하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새롭게 해석하는 일을 신학의 과제로 삼았다.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준 대표적인 신학사상은 칸트(Kant, 1804)와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 1834)의 기독론이었다. 칸트는 그리스도를 인간의 체험 속에 보편적으로 내재하는 이성의 현현으로 이해하여 관념화하고 이상화함으로써 역사적 예수가 필연적인 것이 아님을 말하였다. 이에 반하여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절대의존 감정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고 그리스도를 남달리 절대의존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봄으로써 그리스도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칸트는 이성을 통하여, 슐라이어마허는 절대의존 감정을 통하여 기독교를 인간의 보편적인 것들에 근거하는 것으로 봄으로써 종교적 상대주의로 향하는 문을 열었던 것이다.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리츨은 첫째로 사변적인 합리주의를 배격하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신’은 종교에서 말하는 인격적인 ‘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정통신학에서 종교적인 개념으로서 말하는 절대자의 개념을 부인한다. 또한 정통주의, 특히 루터교 정통주의의 견해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과 사죄 등을 법적인 범주 안에서 이해한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비판적인 견해로 ‘예수전’을 써서 유명한 슈트라우스(Straus, 1874)는 기독교 신앙의신다는 충분한 확신은 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교리나 성경을 의존하는 일뿐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에 단순히 의존하는 것은 율법주의의 한 형태이므로 루터가 율법에서의 자유를 위하여 끊임없이 씨름하였듯이 우리도 거기서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라고 한다.19세기 말에서 20세기로 접어드는 기간에 문화에 대한 의식과 비평, 자연 종교에 대한 새로운 관심 등이 독일 관념론과 접합이 되면서 신학은 신앙의 생활과의 관계 및 생활과의 일치에 관하여 관심을 갖는가 하면 기독교 신앙의 자연 종교와의 관계를 묻고 역사와 철학에 어떤 비중을 가지는가를 물었다. 이러한 관심에서 종교사학적인 신학 운동과 종교심리학과 종교철학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교회사 부분 뿐만 아니고 성경 신학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라가르드(Lagarde, 1891)와 오버백(Overback, 1905)은 비판적인 입장에서 역사 연구에 새로운 연구와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오버백은 양식 비평에 길을 열었으며 라가르드는 신학을 종교사로 환원시킴으로써 성경 연구에 종교사학적인 연구방법을 도입하였다. 라가르드는 복음서를 고차원의 종교로 평가하며 하나님의 독생자란 교의는 인간은 곧 창조주의 생각이라는 사실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일 뿐이라고 하였다.종교사학적인 연구의 바람을 먼저 탄 것은 성경학이었다. 종교사적인 연구는 허더에서 시작한 것이 라가르드에 의하여 새롭게 기초가 다져진 것인데, 새로운 것은 이제는 신약 연구를 위하여 희랍이나 헬레니즘적인 배경은 물론 후기 유대교의 배경도 농도있게 연구하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발덴스페르거와 같은 학자는 종말론적인 상의 예수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피력하였다. 또한 종교사학파의 종교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자료에 충실하기보다는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해석하며 창작하는 것이었으며, 성경 연구에도 본문에 충실하지 않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슈바이처는 예수의 전 생애는 단 하나의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계획된 것으로 해석하였고, 예수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자유주의 신학은 계몽사조 이후 기독교의 본질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교리를 와해시킨 토대 위에서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타종교와의 대화 및 공존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당면하여 종교다원주의를 출범시킨 것이다. 종교다원주의는 신학적인 자유주의가 도달하게 마련인 종착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교다원주의는 다른 종교도 적극적인 의미에서 동등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이제 그것은 기독교 신학의 틀을 벗어나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 아닌 다른 새로운 신을 찾아 방황하는 길로 들어선 것이다.4. 기독교 교리와 교리사에 왜곡된 이해하르낙을 위시한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기독교의 교리는 역사의 과정을 따라 이교적인 사상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것이라고 하나 교리의 역사는 여러 다른 사상의 혼합을 통하여 발전한 것이 아니고 여러 이교적인 사상의 공략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진리를 점점 더 밝히 발견하는 과정으로서의 발전이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이를 테면, 삼위일체에 신앙고백이나 기독론의 신앙고백이 많은 논의와 논쟁을 거쳐 전통적인 신앙고백으로 확정되었으나, 이러한 교리들은 주변의 다른 종교 사상에서는 전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없는 교리이다. 즉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대교적 에비온주의나 시리아 등 동방 종교 사상과 헬라철학 사상의 혼합에서 나온 영지주의와 같은 사상에 반하여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리를 따라 신앙고백으로 형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리는 역사의 흐름과 함께 점진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라기 보다는 전 시대의 교리적인 지식을 거점으로 하여 성경의 진리를 보다 새롭고 풍부하게 발견하여 체계화함으로써 발전하게 된 것이라고 말해야 옳다. 종교의 발전을 진화론적으로 이해하는 종교사학파에서는 구약의 종교가 저급한 하등종교에서 고급종교로 발전하고, 드디어는 여호와를 믿는 유일신 종교로 발전한 것이라고 말하나 유일하고 독특한 성경의 종교나 윤리 사상이 어떻게 주변의 저급한 종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단정적으로 설명할 수
    인문/어학| 2010.09.18| 5페이지| 1,000원| 조회(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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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다원주의와 예수님의 유일성
    종교다원주의와예수님의 유일성서론 ………………………………………………………………………… 3본론 ………………………………………………………………………… 3아시아 고등종교들의 세계관 ……………………………………………… 3그리스도 개념의 혼돈 ……………………………………………………… 3신과 영의 개념 혼돈 ……………………………………………………… 6종교 다원주의가 서론에 미친 영향과 결여 …………………………… 9결론 ………………………………………………………………………… 9서론현대 사회의 특성중 하나는 가치체계와 문화 전반에 다원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이래로 끊임없이 제기되는 종교다원주의 문제는 여러 종교들이 현실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상황을 지칭하는 단순히 가치중립적 개념으로 머물지 않고, 개별종교가 배타적으로 보편적 진리체계를 독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입장으로서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그리스도교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를 종교학적인 입장에서 공평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각각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결국 그리스도교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성과 절대성을 희석시킨다.우리는 타종교의 세계관과 기독교 복음을 비교해 보고, 범신론적 보편주의와 다원주의적인신학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지켜져야 할 예수그리스도의 유일하심을 밝힌다.본론1. 아시아 고등종교들의 세계관1) 유교의 세계관과 상제만물이 비인격적 근원자의 진화와 조화에 의해 생성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유교의 세계관은 초원자도 없고 인격적인 창조자도 없다는 범신론이다. 유교에서는 주역적인 세계관에 근거하여 상제를 귀신과 동일시하거나 상제를 음양조화로 인해 발생된 존재로 보고 있다.2) 도교의 세계관과 신역경의 유출설과 범신론적 사상의 범주에서 발전되어 노자에 의해 무명이라는 감추어진 근원자이며 만물을 생성한 어머니로 새롭게 구상되어 묘사가 된다. 도교에서는 도가 절대자이고, 신은 진화 과정에서 유출된 도의 종속자이고, 인간이 조상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한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이 시기는 뿌리부터 다른 더 철저한 다원주의와 극단적인 모순의 통일을 추구하는 종합 주의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것은 파울 틸리히의 신개념과도 같다. 그의 “신을 초월한 신”개념은 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유일신적 신을 초월한 신인 궁극자이며 그저 “the True" 또는 ”the Real"이라고 칭할 뿐이다.ⓐ J. Hick한국 교회의 기독론에 혼돈을 일으키는 “신중심주의 신학”은 J. Hick에 의하면 모든 종교의 배후에 하나의 신적 실재가 있고, 모든 종교적인 표현을 상대적으로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 이라고 부르는 유신론적인 해석은 거부하고 불교 같은 종교에 적합한 “실재하는 것”(the Real)또는 참된 것“(the True)으로 규정하자고 제시한다.고로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니며 “신의 아들”이란 다만 유대교의 예수라는 이미지를 과장한 신화와 은유라는 것이다. 또한 “신의 이미지”는 그에게 있어서 “야훼, 알라, 크리슈나, 파람, 성육신, 브라만, 니르바나”이며 세계종교들이 다 하나의 신적 실재에 대한 응답들 이라는 것이다. 고로 Hick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육신을 다 부정하고, 성경적이고 전통적인 기독론을 배척한다.ⓑ 변선환 박사“기독교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회는 신학적인 토리미의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전 감리교신학대학 학장이었던 변선환 박사는 구원은,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선행하여 그리스도가 섬기고 있으며 기독교 선교사가 하나님 나라를 비기독교 세계에 가지고 가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 나라는 거기 역사하고 있다” 고 주장한다. 타종교 속에서 섬기고 있는 그리스도란 “야훼의 종”, 이상적인 인간상인 부다“ 또는 ”그의 비슷한 보살들“이라고 한다.변 박사는 위아 같은 의미에서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제시한다. “우주적 그리스도론”이란 구세주가 우주적이고 전 인류를 위한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전인류를 위한 유일한 구세주가 아닌 “그리스도”가 전 인류의를 치웠고 또한 기독교와 타종교 사이의 무의미한 장벽을 부순 것” 이라고 하며, “하나님은 우리들을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다같이 자녀로 불러 주신다”고 하였다.이러한 유박사의 ‘만인 구원관’은 세계 종교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은총과 관계되어 있다”는 성육신 신학을 기초로 한 그리스도의 편재성을 주장한 것이며, 이를 체계화하여 그는 ‘범신론적 기독론’을 세운 것이다.ⓓM. GandhiM. Gandhi는 모든 종교들의 근본은 같고 진실하며 가치가 동등하다고 보았다. 그는 힌두교 경전인 Bhagavad-Gita와 성경사이에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으며 오히려 성경에 있는 것은 Bhagavad-Gita에 다 들어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훌륭한 힌두교인이란 훌륭한 Christian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하게 된 것이다. Gandhi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스승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보았지만 하나님의 독생자는 아니라고 하였으며 Mohammed, Krishna, Zarathustra등도 예수와 동일시 할 수 있고 동일하게 경외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Raymondo Panikkar힌두교 안에 “무명의 그리스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이방종교 속에도 역사하시는 동일한 하나님이며, 사람들이 인정하던 안하던 상관없이 하나님은 어디에나 존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불신자의 하나님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도 역시 마찬가지로 힌두가 비록 알지 못해도 힌두교 안에서 현재하고 계시다는 사상이다. 또한 예수는 유일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서 유일한 것은 아니며 그리스도란 완전한 자아를 실현한 한명으로서, 힌두교에서 혼합된 기독교로 인해 무수한 ‘그리스도’들이 출현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이단2000년 전에 소아시아 지역에 나타난 이단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을 말했지만 오늘의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똑같은 육체적인 인간이지만 다만 그 내재한 신성(본성)을 실현한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려 하고 대지가 갈라지며 산들이 산산조각 되려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 자손이 있다고 불결한 말을 했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자손을 가질 필요가 없으시매 천지의 모든 것이 종으로서 하나님께로 오기 때문이다”하나님에게는 아들이 없으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 때문에 천지가 파멸될 뻔했다는 것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종일 뿐이라는 말이다. 이 외의 Sura 9:31, 10:68, 5: 119-120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격을 철저히 부정한 다음 한 피조물일 뿐인 그리스도의 기적 행위에 관하여 설명한다.또한 최영길은 꾸란을 번역하면서 온세계가 다 아는 “알라”를 구태여 “하나님”으로 대치하고 “꾸란”을 “성서”라고 하며 그 내용을 “복음”이라고 칭함으로 앞으로 기독교와의 개념적인 혼돈을 예비하였다.3. 신과 영의 개념 혼돈성령이라는 단어의 혼돈복음이 한국의 전파후 두드러지게 나타난 성령이라는 용어는 번역할때에 靈(영)과 神(신)이 번갈아 가면서 사용되어 성령 혹은 성신이라고 사용하게 되었다.단순히 신이라는 단어만을 놓고 봤을 때 각 나라마다의 귀신, 혼령, 저승사자, 조상신등 으로 인식되있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과의 큰 차이 혹은 위와같은 단순히 영과 동일시 하는 혼돈이 올수 있다. 영어적인 표현으로 God은 신 즉 우리의 하나님이지만 god는 앞의 g가 소문자로 오게 되면 잡신 즉 여러종류의 신이 된다. 이와 같이 Sprit또한 성령(엄밀히 말하자면 Holy라는 단어가 앞에 온다)을 뜻하나 sprit은 단순한 영 혹은 여러(잡)영을 뜻하게 된다(우리보다 앞선 세대에선 Sprit대신에 Ghost라는 단어를 쓰며 요즘에는 Sprit또한 쓰나 Holy Ghost 로 많이 쓴다.)한 예로 약간 미화되어 방송은 되지만 그래도 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헤라클레스나 타이탄등과 동양에는 봉신방, 서유기등은 신이 나오게 된다.(우리가 보았던 날아라 슈퍼보드의 관념을 깨야 한다.) 그러한 신이 방송되며 요즘에는 엑소시스트라는 방송까지 나오게 되면서 점점더 영 우주영이 혼돈되어 우주적 보편성이 강조되어 세계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목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2) 1971년 포괄적인 성령론산 신앙인들과의 대화 프로그램의 초대 책임자 스탠리 사마르타는 성령이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한다는 것은 믿으나 1973년 세계선교와 복음화 위원회 총회 시에 제 1분과 위원회를 통해 기독교만이 진리를 독점할 수 없기 때문에 타종교, 타이념들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민감해져야 한다고 했다.이미 이 프로그램이 설립 당시 1970년 wcc안에 Dialogue-Program이 공식적으로 작성되기전 Ajaltoun, Beirut에서 먼저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지도자들과 함께 대화와 예배를 가졌는데, 인도 Osmania 대학의 H.Askari 박사는 그때의 상황을 묘사하여 “대화”는 우리를 하나의 “새로운 영성” 으로 이끌었다고 하였다. 그때에 타종교인과의 기도시간에서 강력하고 새로운 영성을 느꼈다고 한다.3) 1973년 방콕 제2차 세계선교와 복음화 대회(CWME=제8차 IMC)WCC의 Dialouge - Program의 영적 혼합주의는 이때에 더욱 분명하게 되는데 개회연설에서 세계불교연합회 회장 Diskul Poon Pismai 여사는 기독교와 타종교는 겉모양은 다르나 다 같은 목표에 도달한다고 하는 입장을지지 하고 불경과 성경은 같은 영에 의해 서로 다른 용어로 씌어졌다고 주장하며, 영혼이 건강하지 못한자들은 불교나 기독교와 같은 약을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한다. 이 건강은 열반 영생 신과의 일치 라고 말하며 종교가 없는 사람은 동물과 같다는 그러한 혼합주의 영성이 1990년대에 한국신학계에 전수되었다.4) 불교계성철은 1966년 11월 1일 조선일보에 실린 고 서남동 박사의 “성부가 죽고 성자로 나타났고 다시 성자는 죽고 성령으로 나타났다”, 와 “역사적 예수가 또 형태변화를 해서 만인의 얼굴과 눈으로 분신 화신하는 성령이 되었다”는 기독교 무신론 즉 양태론적 진술을 인용하고 자신의 범신론까지 혼합해 삼위일체와 창조신앙을 파괴하려 했다.다.
    인문/어학| 2010.09.18| 10페이지| 1,000원| 조회(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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