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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문학] 김삿갓 그는 누구인가
    김삿갓 그는 누구인가{Ⅰ. 들어가며Ⅱ. 본문{ 이창기(2002), 김삿갓이라 불리는 사내, 하늘아래. 목차 참고함1)시대배경-19세기 조선은 선비문화의 쇠퇴기였다2)성장-집안의 운명을 뒤바꾼 홍경래의 난3)방랑-입신을 꿈꾸던 서울에서 도진 마음의병4)방랑-과객과 함께 세상을 떠돌다5)희작-한문 문화에서 한글문화로 이끈 부정의 시학Ⅲ. 나가며Ⅰ. 들어가며김삿갓. 이름은 참으로 많이 들어왔다. 그렇지만 그동안은 막연히 실존 인물이 아닌 허구의 인물일 것이라고 여겨오고 조선시대의 상징적인 유랑지식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전공수업인 한문학사 시간에 이조 말 지식인의 분화와 희작화 경향 이라는 논문을 주제로 발표 토론 수업을 하게 되면서 나의 생각은 정저지와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삿갓 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전문학 작가론의 리포트 주제로 적당하다고 생각한 점은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 때문이다. 여러 문헌의 기록들을 보면 김삿갓은 김병연이라는 실존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본명은 잊혀지고 삿갓 이라는 상징물이 그의 이름을 대신하였다는 점, 그리고 대중적으로 매우 인기 있었던 그의 희작들은 그의 삶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는 예라 하겠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는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바탕으로 그의 입장이 되어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잠시 떠나보려 한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렇게도 대중들에게 상징화 될 수 있었을지, 그의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겠다.Ⅱ. 본문1)시대배경 - 19세기 조선은 선비문화의 쇠퇴기였다.김삿갓은 조선 봉건사회의 질서가 무너져가는 시대를 살다 간 시인이다. 대체로 18세기 전후부터 시작해서 19세기 말에 이르는 조선 후기 사회는 지배적이고 규범적인 가치관과 현실에서의 실제적인 가치관 사이에 괴리가 서서히 싹트고 내면의 갈등이 점점 심각해져감에 따라 사회의 기강이 크게 흔들리고 신분사회의 변혁이 진행되고 있었다. 본? 이 문제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니요, 하지 않은 것이다. 혼란과 부정은 왜 생겨나며 누구에게 유리한가를 생각해보자. 부문·쟁접 매문매필 은 재력과 권세의 밑받침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요컨대 부귀가에서 실력 없는 자제들을 억지로 급제시키기 위해 저지르는 짓이며, 자기네에게 필요하고 유리하기 때문에 아무리 불합리하고 아무리 나라를 병들게 해도 끝내 바로잡지 않은 것이다.{ 임형택논문. 이조말 지식인의 분화와 문학의 희작화 경향 271p매문매필하는 부정이 난무하는 당시의 과거시험은 정기시험 외에도 여러 가지 명목의 과거시험이 많았고, 정조 말년의 경시(慶試)에는 15만 명에 달하는 과거 응시자가 서울에 몰려드는 기현상을 빚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과거시험은 문란이 극에 달하였고, 그 요식행위로서의 성격만이 일층 강화되었을 뿐이었다. 당시 일생을 거의 과거시험으로 허송하는 시골 선비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정석종(1972), 홍경래란. 창작과 비평 p672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수험생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시험을 통한 입신출세하는 것 이외에 지식을 써 먹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1800년 정조가 죽고 어린 왕 순조가 등극하면서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에 의한 세도정치로 인해 부정부패가 극심해졌다.이러한 당시의 조선시대에서 시대적 혼란과 과거제도의 부정부패는, 권문세가의 자제가 아니면 과거에 급제할 길이 없었고 현실적으로 과거급제가 불가능했던 몰락양반계층은 오로지 독서로 얻은 지식만을 유일한 재산으로 유랑의 길을 걷게 된다. 김삿갓은 이러한 어두운 세상, 거센 와중에서 한평생을 살다간 불우한 지식인이었다.2)성장 - 집안의 운명을 뒤바꾼 홍경래의 난외척들에 의한 세도 정치로 인해 민심은 정부에 등을 돌렸고, 정부를 비방하거나 저주하는 벽보가 시중에 나붙는 사건이 종종 일어났으며, 토지를 잃은 농민들 중에 일부는 도적의 무리에 합류하여 민심을 더 어지럽혔다.{ 이창기(2002), 김삿갓이라 불리는 사내, 하늘아래 p55그리고이명(而鳴), 호를 지상(芷常)으로 바꾼다. 신석우는 자신의 문집인 『해장집』에 「기김대립사(記金 笠事)」라는 글을 남겨 놓았다.이명은 김란의 자이고 그는 복경의 문객이었다. 우리 형제는 젊어서 그와 교유한 적이 있다. 그 때 이명은 과체시에 힘쓰고 있었는데, 범위가 탁 트이고 대담하여 훌륭한 솜씨에 크게 기대되었다. 어찌 과시에서만 그러하겠는가. 문장가로서의 법칙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겼으며, 매일 글 읽는 소리가 낭랑히 그치지 않으며, 제자백가를 베끼는 붓도 쉬지 않았다. 필법이 고아하고 깨끗하여 참 좋았다. 일찍이 광주 유씨가 지은 문통(文通)이란 책을 보여주었는데 그 책은 경전과 역사를 고증한 것으로 그 공부의 넒음이 이와 같았다. { 이창기(2002), 김삿갓이라 불리는 사내, 하늘아래 p80위와 같이 회고한 것으로 보아, 신석우도 김병연과 만나는 순간 자기와 더불어 이야기할 만한 상대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김병연의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마도 김병연은 상경하여 권문자제와 교유하면서 그래도 어떤 출세의 길을 모색해 보려고 애쓴 것이리라.다음은 역시 『해장집』에 있는 기록으로 낙봉 이상우가 40대의 김병연을 만나 그에게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젊은 시절에 시문에 힘쓰며 서울에 가서 진취를 꾀했지요. 당시 서울의 시인 명사들과 서로 아끼며 지냈는데 안응수와 신석희가 이름이 더 높았고 나와의 사귐도 두터워 많이 이끌어 주었지요. 나 역시 그들을 참 좋아했는데, 나중에 내가 광주 향품임을 알고 박대를 하는 바람에 나도 이 두 사람에게 더 이상 식객 노릇을 할 수 없었고 빌붙어 이름을 날려볼 수도 없다고 판단되어 우울했어요. 즐거울 수가 없었지요. 마침내 미칠 지경이더군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불우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의 병이 복경, 사수 등으로 해서 더 악화된 것이지요. 이들은 오늘날 공주 반자, 집현젼 교리로 모두 귀인이 되었으니 만나기도 어렵군요. { 이창기(2002), 김삿갓이라 불리는 사내,시작한다. 32세 때 부인 황씨가 죽고, 아홉 살의 익균이 홀로 남자, 집으로 돌아와 경주 최씨와 재혼한다. 그 뒤 다시 집을 떠나 전국을 유랑한다. 30대 중반에 들면서 황해도 일대의 구월산, 개성 등지를 떠돌다 39세 때 서울에 있는 우전 정현덕 집에 머물다. 40대에 들면서 경기, 강원 지방을 전전하다 중반 이후에는 홍성, 금산, 익산, 김천, 영동 등 삼남 일대를 거쳐 제주도까지 들어갔다. 50세가 넘어서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를 떠돌다 외가가 있는 충남 홍성을 거쳐 전라도로 들어간다. 그리고 전남 동복면 구암리에서 삶을 마친다. 그의 나이 57세였다.{ 이창기(2002), 김삿갓이라 불리는 사내, 하늘아래 p124김병연이 삿갓을 쓰고 방랑을 시작하여 김삿갓 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마도 그의 시문과 일화 때문일 것이다. 다음은 이응수{ 1930년대에 처음으로 김병연에 관한 조사를 시작했음.의 글이다.21세경에 집을 떠난 것이 23세경에 한 번 잠시 집에 들어왔다가 24세에 다시 집을 나가 57세까지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다. 그동안 어디로 돌아다녔으며 어디서 자고 어디서 먹었을까 오직 조선 팔도를 방방곡곡으로 서당방이 대다수 그 다음에 머슴방, 그 다음에 문교(文交)가 있는 학자들의 집 그리고 노숙이었으니(중략) 팔도 각 읍촌을 어떻게나 다녔던지 금일에도 각처에 김립이 지나치던 집 · 길 · 누각을 대어주는 사람이 있다. 필자의 고향에도 지금 92세나 된 김좌수 영감이란 이가 김립을 보았다 하며 그 집이 바로 향교 근방의 경성행의 직로변에 있는 서당방이여서 김립이 여러 번 지나칠 때 들려 자고 갔다 말한다. 이리하여 온 곳을 또 가고 또 오고해서 중년 말년에는 벌써 김립이만 왔다는 소문을 들으면 문객 서당방이 그를 접대하기에 들끓었다고 한다."{ 정대구(1990), 김삿갓 연구, 문학아카데미 p48~49비록 가진 것 없는 방랑객이던 김삿갓은 이미 서민층에게 거의 신화적 존재와 같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신석우의 『해장집』에서는 좀 지로 그에게는 덧없지 않았을까 싶다.5)희작 - 한문 문화에서 한글문화로 이끈 부정의 시학김삿갓은 평생을 방랑하며 수많은 시문을 짓는다. 그에게 시는 추스르지 못할 만큼 구차한 생활의 기록이며, 울분과 탄식의 일기였으며, 그가 버린 세상에 대한 끝나지 않는 연애 편지였다.{ 이창기(2002), 김삿갓이라 불리는 사내, 하늘아래 p133당시 사대부들은 한시를 지으며 그들의 교양적, 문학적 측면을 드러냈다. 김삿갓역시 전통적 유학적인 교육을 받았고, 뛰어난 소양을 지녔으며, 무엇보다도 젊었을 때는 이러한 자신의 재능을 통해 입신양명에 뜻을 두기도 했다. 그런 김삿갓이 세상을 등지고 방랑하며 지은 시는 한문이라는 형식에 바탕을 두었지만 그 내용은 풍자와 해학 그 자체였다. 세상에 대한 비웃음, 조소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한시를 희작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의 많은 희작들은 구차한 생활의 기록이며, 울분과 탄식의 일기였으며, 그가 버린 세상에 대한 끝나지 않는 연애편지가 된 것이다. 김삿갓의 희작들은 한시라는 형식에 기생하거나 형식을 파격화하여, 풍자와 해학적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대중들에게 그 토록이나 인기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다음은 지명에서 비롯된 이중자의나 동음이의어를 자유로이 구사한 시들이다.『吉州 明川』吉州吉州不吉州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한 곳이 아니고許可許可不許可 허가 허가 하지만 허가한 것은 없네明川明川人不明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漁佃漁佃食無魚 어전 어전 하지만 식탁에 고기는 없네『樂民樓』樂民樓下樂民淚 낙민루 아래서 백성들이 눈물 흘리니宣化堂上先禍堂 선화당 위에 먼저 화가 미치리라咸鏡道民咸驚逃 함경도 백성들 모두 놀라 달아나니趙基塋家祚豈永 조기영의 집안이 어찌 오래 가겠는가길주, 명천 어전은 함경도 지명이고, 허가는 허씨 성을 말한다. 또 『樂民樓』는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의 학정을 풍자한 것으로 선화당은 관찰하의 집무실이고, 낙민루는 그 공관 안에 있는 누각이다.{ 이창기(2002), 김삿갓이라 불리는 사내, 하늘아래 p138~
    인문/어학| 2004.12.08| 11페이지| 2,000원| 조회(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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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세국어]동국신속삼강행실도 -형제견참- 풀이
    兄弟見斬 풀이쳐녀 냥시 ?뎨? 단셩현 사?이니 션? ??의 ?리라(= 처녀 양씨 형제는 단성현 사람이니 선비 양사의 딸이다.)☆쳐녀 = 처녀 ; 쳐녀>처녀 ※?1933년 이후에 발생함. 주로 다음과 같은 조건에 잘 일어난다.ㅅ, ㅈ, ㅊ+ ㅏ, ㅕ, ㅛ, ㅠ, ㅖ → ㅏ, ㅓ, ㅗ, ㅜ, ㅔ예) 샤공>사공, 셤>섬, ?셩>백성, 쇼>소, 져비>졔비>제비?넓은 의미로 이중모음이 단모음으로 된 경우면 단모음화로 보는 견해가 있다.☆냥시 = 양씨 ; 냥시>양씨 ; 냥>양, 시>씨 ※?말의 첫머리에 오는 자음이 본래의 음가를 잃고 다른 음으로 발음되는 현상이다.?주로 유음(流音) ?ㄹ?이 어두(語頭)에 올 수 없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ㆍ중세 국어에서도 단어의 첫머리에 ?ㄹ,ㅇ, ㅿ, ㅸ? 등이 오는 것을 꺼렸으나, ?ㄴ?은 ?ㅣ, ㅑ, ㅕ, ㅛ, ㅠ? 앞에서 아무 불편 없이 발음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에는 ?니, 냐, 녜? 등의 두음(頭音, 말 첫소리)이 사라지기 시작하여 현대어에 이어지고 있다. 이러 한 현상도 동화(同化)와 함께 소리를 편하고 쉽게 발음하려는 간이화(簡易化)의 하나로 볼 수 있다.예) 니쏘리>잇소리, 녜>예, 님금>임금, 닛다>잇다, 니르다>이르다※?예사소리인 ?ㄱ?ㄷ?ㅂ?ㅅ?ㅈ?이 안울림소리나 울림소리인 ?ㄴ?ㄹ? ㅁ?의 뒤에서 된소리(ㄲ?ㄸ?ㅃ?ㅆ?ㅉ)로 발음되는 현상이다.예) 입고→입꼬, 앞길→압낄, 갈대→갈때, 손가락→손까락, 담다→담따☆?뎨? = 형제는 ; ?뎨+? ; ?뎨>형졔>형제 ?>는 ※?보조사는 체언에 일정한 격을 규정하지 않고, 여러 격으로 두루 쓰여 그 체언에 어떤뜻을 더해준다.?보조사는 체언의 끝소리와 체언의 모음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조사이다.종 류쓰인 조건보 기ㄴ(원형)모음 밑먹+은+이+ㄴ→머그닌(먹은 이는)?양성 모음 밑나+?→나?(나는)는음성 모음 밑너+는→너는?양성 음절의 받침 밑사?+?→사??(사람은)은음성 음절의 받침 밑구룸+은→구루믄(구름은)※??? 음가는 연구개음 /h/ 이다? 소멸시기는 임진왜며 고려시대 초기 단계현으로 개명하였다. 그후 조선시대 세종 때 단계 ·강성의 두 현을 합해 단성현으로 개칭하였고, 1895년(고종 32)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913년 일제강점기 때 단성군은 폐지되었다.☆사?이니 = 사람이니 ; 사?+이+니 ; 사?= 살+?=사?[人] ※? 체언에 붙어, 그 체언을 문장의 서술어가 되게 하는 조사이다. '이다'를 기본형으로 하는 모든 활용형이 이에 딸린다. 받침 없는 말 뒤에서는 '이'가 생략되기도 한다.? 현대국어 ‘이다’와 쓰임이 같고, 형태와 환경은 중세국어 주격조사와 똑같다. 쓰임은 다음과 같다.① ‘이’ 뒤에 ‘ㄱ’이 오면 ‘ㄱ’은 탈락됨 예예)(책이고)→ 책이오② ‘이’ 뒤에 ‘ㄷ’이 오면 ‘ㄷ → ㄹ’예) (이다) →이라, (이더라) → 이러라 (이도다) →이로라③ ‘이’+선어말 ‘오’ →‘이로-’예) 父와母와 나와 세히 業이 ?가지로? 因??→ 부와 모와 나, 셋이 업보가 한가지 임을 인하여( ?가지+이+옴+?→ ?가지+이+롬+?→ ?가지로? )? 중세국어 이래 근대국어 시기에 이르기까지 서술격조사는 선행체언 말음의 음운론 적 조건에 따라 ‘이라, ㅣ라, ø라’ 등 주격조사와 비슷한 곡용을 하여 왔다.예) 디낸 사?이라 / 디? 사람이라아기? 글시오 / 아기내 글시오※ㆍ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에 접미사가 붙어서 만들어진 명사※① -(?/으)ㅁ: 명사화 접미사예 : 그리(다)+ㅁ→그림살(다)+?→사?[예외] 살+옴→사롬(동사의 명사형)열(다)+음→여름[實]② -?/의: 형용사 어근에 붙어 명사화예: 높(다)+?→노?굽(다)+의→구븨③ -이: 동사 어근에 붙어 명사화, 형용사 어근에 붙어 부사화예: 글짓(다)+이→글지?(명사)높(다)+이→노피(부사)④ ø(영)접사: 명사가 특별한 접사없이 동사로 파생된다(영파생)예: ??→??다, 깃→깃다(깃들이다), ?→?다, 신→신다, 안→안다⑤ 어간형 부사: 형용사 어간이 그대로 부사가 된다.(영파생의 일종)예: 그르[誤], 바?[正], ?[如], 브르[飽], ?브?[飽]체언이 관형어 구실을 하게 하는 조사이다.?중세국어에서의 쓰임은 다음과 같다.형태환 경특 징보 기ㅅ무정명사, 높임명사 뒤에 쓰임?王ㅅ 집(기왕의 집)나랏 말?(나라의 말씀)?양성모음 뒤유정명사 뒤에 쓰임?? 香(말의 향기)의음성모음 뒤崔九의 집(최구의 집)☆?리라= 딸이라 ; ?+이+라 -> ?리라 ; ?>딸 ?- ※(1) 평서형 종결 어미 :-다,-라(2) 의문형 종결 어미① 판정 의문문 :-니여/-녀(현재),-리여/-려(미래)② 설명 의문문 :-니오/-뇨(현재),-리오/-료(미래)③ 2인칭 의문문 :-ㄴ다(과거),- 다/-ㄹ따(미래)④ 간접 의문문 :-ㄴ가/-ㄹ까,-ㄴ고/-ㄹ꼬⑤ 반말체 의문문 : 어미를 생략한 형태(3) 감탄형 종결 어미 :-ㄹ쎠/-ㄴ뎌(4) 명령형 종결 어미 :-쇼셔,-라(5) 청유형 종결 어미 :-져,-사이다(6) 경계형(의구형) 종결 어미 :-ㄹ셰라※?중세국어 음운현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현상이다.?어두(語頭)에 자음군(子音群)이 올 수 있는 현상이다.예)?, ?, ?, ??‘ㅂ’이 실제 음가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현대국어의 ‘좁쌀’, ‘입쌀’, ‘햅쌀’등이 ‘ㅂ’의 잔재로 해석된다.뎡유왜난의 도적이 그 고?줄 보고 자바 가고져 ?거?(= 정유왜란에 도적이 그 고은줄 보고 잡아가고자 하거늘)☆뎡유왜난의= 정유왜란에 ; 뎡유왜난+의 ; 뎡유왜난>졍유왜란>정유왜란※?근세국어의 처소격조사는 다음과 같다.-양성모음 뒤에는 ‘애’가 쓰였다. 예)학교애-음성모음 뒤에는 ‘에’가 쓰였다. 예)학원에-‘ㅣ’모음 뒤에는 ‘예’가 쓰였다. 예)?예-양성모음 뒤에 ‘?’, 음성모음 뒤에 ‘의’가 관형격이나 처소격으로 쓰였다.☆도적이= 도적이; 도적+이 ※?근세국어의 주격조사는 다음과 같다.-자음뒤에는 ‘이’가 쓰였다. 예) 학원+이-‘ㅣ’모음 뒤에는 zero주격조사가 쓰였다. 예) 냥시+zero주격조사-‘ㅣ’모음을 제외한 모음 뒤에는 ‘ㅣ’가 쓰였다. 예)부?+ㅣㆍ참고: 되다, 아니다 앞은 보격조사가 된다.☆그 고? = 그 고은 ; >하거늘 ※?‘이다’또는 용언의 어간에 붙는 연결어미이다.?중세국어와 근세국어 에서는 쓰임이 다음과 같다.자동사타동사거?/거늘아?/어?/어늘예)?+거늘->?거늘,?업+거늘->?업거늘예)놓+아?->노하???+어?->??러?머믈+어늘->머므러늘?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의 구분이 ‘아?/어?/어늘’에서 양성모음 뒤에는 ‘아?, 어?’이 음성모음 뒤에는 ‘어늘’이 주로 쓰였으나 점차 모음조화가 파괴되어 잘 지켜지지 않았다.?참고 : 자동사와 타동사-자동사 : 동작, 작용이 주어 자신에만 그치고, 딴 사물에는 미치지 않는 동사를 말한다.예) 새가 ‘날다’, 바람이 ‘분다’-타동사 : 동작의 작용이 주어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사물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거나 대성이 되는 목적어가 있어야 비로소 움직임을 나타낼 수 있는 말이다.예) 말에 ‘태우다’, 음식을 ‘만들다’※15c 원칙- 에 따라 ‘?거늘’이 된다.※?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려 사용 하는 법칙이다. 중성모음은 양성, 음성 어느 음과도 어울린다.ㆍ15세기 국어에서는 엄격히 지켜졌다.ㆍ모음조화의 일반적인 규칙은 모음이 다음과 같이 나뉘어서 한 형태소 내부나 경계에서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만,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만 연결하는 것이면 중성모음은 원칙적으로 어느 모음과도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모음조화의 규칙은 어느 경우에나 엄격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었으나,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다양한 조사나 활용어미들이 그 규칙에 따라 연결되었다.양성모음:ㆍ,ㅗ,ㅏ (ㅛ,ㅑ,ㆎ,ㅚ,ㅐ)음성모음:ㅡ,ㅜ,ㅓ (ㅠ,ㅕ,ㅢ,ㅟ,ㅔ)중성모음:ㅣㆍ용례① 한 단어 안예: 말?(=말씀), ??(=가루), 서르(=서로), ??치다(=가르치다)② 체언 + 조사예: 나? 손+?너는 눈+을③ 어간+어미예: 막+아 막+?니→마?니ㆍ임진왜란 후 문란해져 현재에는 의성부사, 의태 부사, 연결어미(아/어), 과거 시제 선어말어미(었/았) 등에서만 지켜지고 있다.예: 찰랑찰랑, 몰랑몰랑, 막아, 먹어, 막았다, 먹었다.냥시 버으리왇기? 으로 사용된다.? ‘ㄷ’ 은 ‘ㅅ’ 과 발음이 구별되지 않으므로 ‘ㅅ’으로 통일시켜 적는다.예) 벋>벗 곧>곳 믿고>밋고☆?게= 말에 ; ?+게※ㆍ근세국어의 처소격 조사는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애’, ‘에’, ‘예’, ‘?’, ‘의’등이 쓰였고, 처격조사로 ‘게’도 쓰였다. ‘~에게’로 해석된다.☆?와?= 태우거늘 ; ?+ㅣ+오+아?>?와?; ?오다 = 태우다※?동사가 사동의 기능을 갖게 만드는 어간 형성 접미사 이다.? 중세국어에서 사동접사의 쓰임은 다음과 같다.① -히-계 사동어간ⓐ -히-: 어간말음이 ㅂ, ㄷ, ㅈ일 때. 예) 너피-, 구티-, 느치-, 안치-ⓑ -기-: 어간말음이 ㅁ, ㅅ일 때. 예) 숨기-, 밧기-‘使脫’ⓒ -이-: 어간말음이 ㅿ, ㄹ일 때. 예) ?이-, ?이-, 말이-ⓓ-ㅣ-: 어간말음이 그 밖의 자음이나 모음일 때. 예) 머기-, ?기-, 셰-, 내-참고 : 일부의 ‘ㄱ, ㄺ’ 말음 어간은 16세기 후반에 ‘-히-’를 취함. 예) 닉켜서 (소해 2:41), ?키게(소해 6:41), 澄 ?킬딩(신합 하:42)흘리(흐르-+-이), 올이-(오?-+-이-)② -?/?-계 사동어간(>-오/우)ⓐ ?리?며(월석 18:39), 모도-, 일우-ⓑ 복합접사: 업시우-, ?오-‘滿’, ?오-‘燒’, ?우-; 알외-, ?위-③ -ㅎ-: 낳-(←나-‘出’), 흩-(←흗-‘散’), 짛-(←지-‘負’)④ -?-: 사?-‘목숨을 살리다’(cf. 살이-‘어떤 곳에 살게 하다), 이?-‘집이나 탑을 세우다’(참고 : 일우-‘어떤 일을 성취하다’)☆스스로= 스스로☆?러디기?= 떨어지기를 ; ?어디+기+? ; ?러디다>떨어지다?- ☆두세번= 두세번 ; 두+세+번☆?니= 하니 ; ?+니>?니>하니 도적기 노?여 다 버히니라 금 ?됴의 졍문?시니라(= 도적이 노하여 다 목베었다. 지금 임금 때에 정문을 세우시니라.)☆도적기= 도적이 ; 도적+이 -> 도적기 ☆노?여= 노하여 ; 노?+여/어>노?여>노하여 ※15c 원칙- 모음조화에 따라 ‘노?야’가 됨.☆다= 다,자료
    인문/어학| 2004.11.14| 13페이지| 2,500원| 조회(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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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소설] 유년의 뜰, 중국인거리를 읽고..
    유년의 뜰과 중국인 거리는 한국전쟁 후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의, 전형적인 가난한 가족의 몇 번째 딸이 화자로서 그들의 눈에 비춰진 현실들이 묘사된 소설이다. 두 소설에는 앞서 읽었던 아베의 가족이나 장마와 같이 직접적으로 전쟁 때문에 상처를 받고 그 후유증으로 아픔을 가진 채 살아가는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 평범한 소시민의 가족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전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두 소설의 화자는 나이 어린 여자애로, 집안에서 비중이 있는 큰아들도 귀여움을 받는 막내도 아닌 중간에 끼인 그저 평범한 아이일 뿐이다. 어쩌면 이런 평범한 어린아이의 눈에 비쳐진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는 그 어떤 것보다 사실 감과 생동감을 주는 것 같다. 유년의 뜰 의 노랑눈이는 아이가 많은 집의 셋째로 유난히 식탐이 강하다. 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밥을 훔쳐먹거나 고구마를 훔쳐먹기도 한다. 중국인거리 의 나 역시 첫째가 아닌 몇 번째 딸이다. 유년의 뜰 의 노랑눈이는 밥집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고 들어온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슬그머니 훔치고 나중에는 큰돈을 서슴없이 훔치면서 가책 따위 느끼지 않는다. 중국인 거리 의 나의 가족은 힘들게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거리로 이사를 온다. 나의 가족이 사는 집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집에는 양갈보들이 세 들어 산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 치옥이는 계모 밑에서 구박받으면서 양갈보인 매기언니를 동경하며 꼭 양갈보가 되겠다고 말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애정결핍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비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보호자인 어른들은 어떤 해결도 해줄 여유가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년의 뜰 에서 구체적인 표현은 나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밥집에서 일하면서 종종 외박을 하는 것을 보면 몸을 팔고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서 오빠는 어머니에게 직설적으로 표현을 할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큰언니에게 화풀이하고 툭하면 때려서 코피를 터뜨린다. 중국인 거리 에서 나는 어머니가 계속해서 동생들을 낳는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어머니의 동물적인 삶에 대해서 탄식한다. 아마 좀 살림이 유복했다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러한 모습들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정상적인 형재애를 느끼면서 살 수 없는 그때의 각박한 현실을 대변한다. 유년의 뜰 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는 돌아오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어떤 결정적인 해결을 보여준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까지보다는 다른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꺼라는 희망의 빛은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중국인거리 의 마지막은 지독한 난산 끝에 8번째 아이를 낳는 어머니에 대한 나의 연민의 감정과 초조한 감정의 표현으로 끝이 난다. 이러한 결말에서 역시 지금까지의 힘든 삶이 별반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란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두 소설에 보여주고자 하는 점은 비록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힘든 시절을 안간힘을 써서 어떻게든 개척하려 했던 우리네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야 밥 못 먹고사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 할 만큼 굶주렸던 시절은 지났지만 난리 통에 목숨 부지하는 것조차 힘들던 그 시절에는 삶의 질이란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모습들을 어린아이의 눈이지만 생동감과 기교 있는 묘사로 표현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문/어학| 2004.10.13| 1페이지| 1,000원| 조회(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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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몽주의교육]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 범애주의자의 교육 평가B괜찮아요
    18세기 계몽주의의 특징은 이성주의, 기계주의, 개인주의, 반역사주의, 반국가주의, 반민족주의에 있다. 따라서 이 시기의 교육의 목적은 모든 속박으로부터 이성을 해방시키는데 있다. 또한 교육의 내용은 합리적인 것만으로 구성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배제하였다. 교육의 방법은 냉정한 비판적, 분석적 태도만이 용납되었다.루소가 주장한 자연주의 교육사상에 대해서 살펴보면, 인간내부의 자연성에 따르는 것이 참다운 교육이라고 주장하고, 감각의 훈련, 경험이나 활동에 의한 학습 등을 강조하고 아동의 자연성을 발견해야 한다는 사상이다.루소의 교육사상은 주관적 자연주의로 심리적 근거에 따르는 교육, 아동중심교육, 교육의 3요소인 인간, 자연, 사물에 의한 교육을 강조하였다. 교육의 목적은 도덕적 자유인의 양성이었고 교육의 내용은 지식의 체계에 반하여 생활의 원리를 중시하였다. 또한 교육의 방법은첫 번째, 합자연의 원리로 인간의 발달단계에 맞는 교육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고 두 번째는 서적을 통한 독서와 언어교육인 주지주의 교육방법이 아니라 생활의 원리를 통한 교육과 감각훈련을 통해 느끼고 깨달아 가는 방법 즉, 주정주의 교육을 주장하였다. 세 번째로 실물관찰 교육(직관주의적 교육)를 강조하였는데, 실물을 통한 시청각방법에 의한 직관주의적 교육방법이 그것이다. 네 번째로 학습은 자연발달의 순서에 따라야 한다는 소극적 교육을 주장했다. 다섯 번째로 아동의 자연성 계발을 위해서는 흥미위주의 자발성 존중, 자유교육, 개성존중의 원리를 주장하였다.범애주의 교육은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을 기독교적인 견지에서 독일에서 실천에 옮긴 교육사상이며, 인류애의 실현을 목표로 기독교의 박애주의를 말한다. 바제도우는 범애주의 교육사상의 대표자로 루소 에밀의 영향을 받아, 루소의 자연주의교육사상을 독일에 펼쳤다.사물에 의한 직관교육을 중시하여 「초등교본」이라는 시청각교재를 만들었다.이러한 계몽주의 교육의 교육사적 의의는 선구적인 아동중심, 생활중심, 경험중심교육을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행하기 어려운 교육이상으로 이론과 실제의 괴리에 따른 비판이 따르고, 전체적으로 사상의 통일성이 결여된다. 하지만 진보주의 교육의 기초를 마련하여 아동의 개성존중과 자유로운 활동, 경험통한 교육을 열어주었다. 또한 개인이 국가에 우선되는 교육으로 개인과 자유, 개성의 신장을 존중하였다.그렇다면 이러한 계몽주의 교육이 현대교육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루소의 계몽주의 사상은 개인의 경험에 근거한 학습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관찰, 실험과 검증과정 등 자연과학적 탐구과정을 중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직접 경험 위주의 교육은 현재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현재에는 실험과 관찰 및 경험위주의 교육보다는 단순한 이론의 설명위주의 교육이 주가 되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창의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고등학교 때에도 과학 책에 나와있던 실험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단지 선생님은 실험의 과정과 결과만을 알려주었고, 직접 그 실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몸으로 체험하는 얻음이 아닌 말로 전해 듣는 얻음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억되지 못하고 일회성 지식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전 교과를 실험과 경험위주의 교육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주입식 교육의 대안으로 루소의 계몽주의 교육은 큰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교육학| 2004.10.13| 2페이지| 1,000원| 조회(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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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과정] 잠재적 교육과정의 사례 평가A좋아요
    ·잠재적 교육과정의 개념학생들이 학교에서 경험하는 것에는 국가 및 사회, 학교 또는 교사의 계획과 의도와는 관련이 적거나 없는 경험들이 많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기도 하는데 특히 정의적이고 가치, 도덕적인 측면과 관련된 특성들이 학습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따라서 학교나 교사가 의도한 바와 관련된 경험으로 구체화된 부분이 교육과정의 한 측면이라면, 구체화되지 않은 부분 역시 교육과정의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이 이루어지면서 학교에서 의도한 바와 관련된 경험과 학교에서 의도한 바와 관련되지 않는 경험을 구분할 필요가 생김에 따라 전자를 표면적 교육과정, 후자를 잠재적 교육과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교육과정을 학교에서 가르쳐진 모든 종류의 교육내용으로 정의하면 교육과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하위 교육과정, 즉 두 가지 종류의 하위 교육내용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학교가 의도적으로 가르친 교육내용 과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르쳐진 교육내용 이 그것이다. 학생의 입장을 포함시켜 잠재적 교육과정의 의미를 정의한다면 학교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학생이 배우게 된 교육내용, 즉 학습결과나 경험 으로 표현할 수 있다.·잠재적 교육과정의 사례1중학교 2학년때 부반장을 했었는데, 그 때 생물 선생님이 수업도 재미있게 가르치시고 학생들이 좋아하던 선생님이 있었다. 실기평가로 실험을하고 점수를 매겨서 학생들에게 공지했는데 그때 2점을 깎였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날 교무실로 부르시더니 넌 수업도 열심히 듣고 부반장이고 하니 1점을 높여줄테니 다른 애들한테는 말하지 말아라 앞으로 더 열심히해 라고 하시며 1점을 높여주셨다. 그때는 무턱대고 1점 올려준다니 좋기만했었는데 지금생각해보니, 다른 학생들과는 형평성에 어긋난 상찬(賞讚)이었던 것 같다. 즉 반장, 부반장 임원을 했을 때의 특권이라는 것을 학교라는 집단에서 선생님에 의해 느끼게 된 것이다.2고등학교 1학년때 미술시간이 있었다. 학교가 사립이어서 미술선생님은 딱 두분이었는데 한 분은 여자선생님이고 한 분은 남자선생님이었다. 내가 속한 반은 여자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는데, 그 선생님은 정말 이상했다. 미술시간엔 기본적으로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또 관련된 활동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배웠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분께는 표면적 교육과정보다는 잠재적 교육과정만을 배운 것 같다. 잠재적 교육과정의 권력 의 측면을 톡톡히 배우게 해주신 분이었다. 이를테면 수업시간에 떠든 사람에게 손에 들고있던 매직으로 얼굴에 낙서를 한다던지, 붓을 안 가져온 학생에게 걸레를 물고 서있게 한다던지 등의 과도한 벌에서부터 수업시간내내 수업내용을 가르쳐주지 않고 잔소리만 2시간을 한뒤 실제로 작품은 숙제를 통해서 해오게 하셨다. 실제로 이런 과도한 벌을 받았던 친구들은 마음속에 큰 상처와 함께 심한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 선생님의 수업은 학생들 모두에게 지옥과도 같았고, 어떻게 저런 분이 선생님이 되셨을까 하고 모두들 끔찍해 했다. 이러한 불합리한 수업시간에도 학생이라는 입장에서는 반박을 할 수 없었기에 절대적인 교사의 권위로 학생들은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3고3때 담임선생님은 지구과학 담당 이셨다. 그런데 좀 권위적이셔서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차별하는 성향이 있었다. 대학 수시 모집에서 1등과 2등 학생이 1차에서 붙자 그 친구들을 불러서 면접에 대비해서 연습도 시키고 격려도 해주셨는데 나와 다른 친구들이 수시 모집 1차에 붙었을 때는 면접에 대한 대비도 없었고 격려의 말도 해주지 않으셨다. 이런 선생님의 모습에서 1,2등이 아닌 많은 학생들은 다 그런거지 1,2등만 챙기는건.. 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섭섭함을 느꼈을 것이다.
    교육학| 2004.10.13| 2페이지| 1,000원| 조회(6,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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