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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장학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우리나라 장학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Ⅰ.서론학교교육의 효과는 수업의 효과 여부에 달려 있다. 한 시간 한 시간의 수업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학교교육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고, 반대로 부실한 학교라는 낙제점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매시간 수업의 성패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에 따라서 그 효율성이 달라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가 어떻게 수업을 이끌어 나가느냐하는 것이며 이것에 따라 그 효율성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수업자의 수업기술은 학습이나 훈련을 통해서 획득되고 발전되는데, 교원양성기관의 프로그램, 교사가 되고 난 후의 현직연수, 자기 자율적 연수 등은 이러한 근거에 기초하여 교사의 수업기술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교사의 수업 기술을 높이려는 제반 활동을 장학이라는 넒은 개념으로 정의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장학 활동의 성패 여부에 따라 교사의 자질이 좌우되고 따라서 이것은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높은 성취를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교사의 자질 개선을 장려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교육청을 중심으로 장학제도가 운영되어 왔다. 하지만 과거의 감독과 시찰 위주의 권위주의적 장학관행으로 야기된 장학에 대한 좋지 못한 인식 때문에 교사들은 장학활동을 기피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장학의 체제와 조직구조가 상부 교육행정기관의 행정 보조수단으로 되어 있어 장학 활동이 시책 사업에 대한 홍보와 수업 자질의 ‘평가’라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장학 활동을 바탕으로 진정한 수업개선을 위해서는 교사와 교육당국의 상호 신뢰와 협조를 바탕으로 하는 장학의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장학의 기본 목적과 장학제도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장학제도의 문제점과 그 개선 방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장학의 목적장학의 기본결과로 학생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수업의 개선이라는 장학의 궁극적인 목적을 위한 하위 목표들로는 아래와 같이 제시될 수 있다.첫째, 장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교수-학습의 질을 높여서 교육의 질적 수월성을 도모하는 것이다. 장학담당자는 교사가 수업 효과성을 높이도록 자극하고, 바람직한 프로그램을 스스로 개발하도록 고무시켜 주며, 교육과정의 개발과 운영의 개선을 유도하고, 교수-학습 환경을 개선해 줌으로써 교수-학습 개선을 통하여 학교 생산성이 재고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다. 장학은 교사들이 학습자에 대한 이해와 교수-학습에 대한 이해를 넓히도록 돕고 교수에 활용되는 기술과 지식을 확장해 나가도록 교사들을 유도한다. 장학담당자는 교사와 직접 상호작용을 통하여 교사를 조력하고, 기술적 심리적 지원을 해 주며 수업의 계획과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수업 효과성을 최대한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 셋째, 장학은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고 동기화 되도록 북돋워 준다. 교사들이 학교조직의 목적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교육의 신념이나 가치를 내면화 하도록 돕는다. 넷째, 학교 효과성을 제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장학은 교수의 질을 관리하고 학습 풍토를 조성하며, 시설과 기자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참여적 의사결정과 양방향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도록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활용한다. 장학은 변화 지향적 지도성을 발휘하여 교사를 지원해 주고 정책들을 개발함으로써 학교교육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Ⅲ. 장학의 발달장학은 기본성격이나 개념, 철학의 변화에 따라 역사를 달리해 왔으며 이는 장학의 방법과 기술의 측면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초기의 장학은 시학이나 감독으로 출발해기 때문에 학교방문과 시찰이 장학의 중요한 방법이었다. 그러다가 객관적인 자료와 데이터에 근거하여 수업개선에 초점을 맞추려는 방향으로 발전해 오고, 이와 동시에 교사개발과 발전, 연수를 통해서 근본적으로 교사의 수업 개선 능력을 기르려는 방향의 장학은 주로 비전문인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학교운영의 전반에 대하여 시학하는 형태였다. 곧 학교시설, 설비, 학생 출석상황 등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통제하는 것으로부터 장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에는 학교와 교육구가 점점 커지면서 시학관을 별도로 임명하여 학교시찰과 검열을 전적으로 담당하게 하고, 또 시설 건축과 교육재정 확보 등의 일을 전문으로 다루게 하여 장학은 어느 정도 전문화의 출발을 보게 되었다. 20세기 초까지는 임명된 시학관이 교육장을 대리하여 교육장의 권위를 등에 업고 시학하게 되었는데, 이때는 권위적 계선으로부터 참모적 전문능력가로 옮겨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나. 그러나 이때까지는 장학을 근본적으로 행정의 연장선으로 보게 된다.나) 과학적 장학20세기 초반의 약 1/3의 시기(1900~1930년)에는 미국교육이 과학적 관리 운동의 영향을 받게 되어 교육에서도 능률과 생산을 강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장학의 실제에서도 과학적 관리의 색채가 강하게 스며들게 되었는데 이 시기의 장학을 과학적 장학이라고 한다.다) 관료적 장학과학적 관리의 경제 시대의 영향은 뿌리를 같이 하고 있는 관료적 장학을 낳게 하였다. 그래서 장학은 먼저 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명세화하고 구체화하는 일부터 하게 되었다. 능률지향성, 경제지향성 대문에 장학에서도 관료제의 특성대로 분업화, 기술적 전문화, 조직 내의 규율, 일의 상황에 따른 구체적이고 특수한 절차, 문서에 의한 의사소통이 강조되었다. 그래서 장학사까지도 과학적 관리의 시간?동작 연구를 하기에 이르고, 장학도 전공교과별로 세분화 되었다.라)협동적 장학그러다가 1930년대 초 미국에서 과학적 관리운동 시대가 지나가고 인간관계론 시대가 도래 하면서 장학에서도 강제와 감독의 역할이 약화하게 되었다. 과학적 관리운동 시대에 당당하고 관료적이던 ‘supervisor’가 교사들의 눈치를 보면서 교실 뒤에서 어슬렁거리고 서성거리는 ‘snoopervisor’의 위치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런 장학협동적으로 일하던 시기였다. 관료적?행정적 장학으로부터 수업장학으로 바뀌는 교육행정의 일대 전환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시대를 흔히 인간관계 장학, 민주적 장학, 협동작 장학 시대라고 부른다.마) 교육과정 개발 장학1957년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이후 미국은 모든 면에서 발칵 뒤집혔고, 이에 따라 미국 교육의 형식과 실체가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룻밤 사이에 옛 프로그램과 교육목적은 도려내지게 되고, 새로운 교육계획과 프로그램이 설계되었다. 새로운 교육과정개발에 모두가 열을 올리게 되어 당시 장학담당자의 역할은 교육과정개발자로 인식되었으며 교육과정개발과 장학은 거의 동의어가 되다시피 하였다.바) 임상(수업)장학1960년대 후반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상황과 이에 따른 1970년대 초의 행정적 대응의 결과로 장학에도 여러 가지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장학이 교육과정의 개발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을 때 한편에서는 학교의 수업에다 장학의 초점을 맞추려는 노력이 일부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의 장학에 관한 문헌을 보면 교수학습의 과정 분석과 임상장학의 개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장학자는 비디오테이프의 사용, 교사?학생 사이의 상호작용 평가, 교수방법의 새로운 가능성 개발을 위한 ‘현장연구’action research) 기법의 사용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즉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는 임상장학, 수업장학을 강조한 시기였다.사) 경영으로서의 장학1970년대 후반에는 교육계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압박이 증대되어 행정가들은 적은 돈으로 교육경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산업계?경영계 지향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래서 교실에서의 수업개선에 대한 연구와 노력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줄어들게 되고 대신 경영적 역할로 관심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장학에 관한 문헌에서 경영과 관련된 행위체제, 조직이론이 많이 다루어지게 되었다.아) 인간자원장학1970년대 후반여 교사의 자아실현을 도와주어 행복하게 해주자는 인간 자원론적 철학에 기반을 둔 인간자원 장학론이 대두되게 되었다. 과거의 인간관계 장학이 교사를 수단시했다는데 대한 반성과 수정으로 발전한 중요한 철학적 변화이다. 이러한 인간자원 장학은 참여를 통해 학교효과성을 증대시키고 그 결과로서 교사의 직무만족을 목표로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장학 개념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가능성을 신봉하며, 인간이 안락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을 통한 자아실현을 추구한다는 기본가정 하에 학교과업의 성취를 통한 직무만족에 초점을 두는 인본주의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Ⅳ.우리나라 장학의 현실현재까지 통용되고 있는 장학의 의미는 일선교육 현장에서 직접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장, 교감, 교사들이 질 높은 교육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 주고 붇돋아 주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일은 주로 중앙이나 지방의 교육행정기관에서 근무하는 장학요원이나 학교에서 근무하는 학교장에 의하여 수행되지만 동료교사나 교사 자신에 의해서도 수행된다. 교육현장에서 이러한 장학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교사들이 교직에 만족감을 가지고 자기의 전문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학생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중앙이나 지방의 교육행정 조직을 통한 지시와 통제 중심의 장학 정책으로 일관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드러낸바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우리나라 장학제도에서 지속적으로 제시되어왔던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고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첫째, 장학의 과정이 주로 학교 외부인사에 이루어지다 보니 학교 실정에 정통하지 못하고 때로는 교육 전문성이 부족 하다는 것이다. 학교 실정에 어두운 상태에서 장학활동은 피상적인 부분에 그치게 되고 이것은 일선학교의 독창성 및 자율성을 무시하고 획일화된 교육을 장조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일선학교가 그 특성이 고려되지 않을 때 학교가 속해 있는 지역사회의 요구나 그 학교의 여건에 문이다.
    교육학| 2009.05.19| 5페이지| 1,000원| 조회(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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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더스 인구론에 대한 현대적 고찰. 평가A+최고예요
    멜더스의 인구론의 현대적 고찰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2008년 4월9일, 지도교수 )요 약‘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식량은 겨우 산술급수) 적으로 증가할 뿐이다.’ 이것은 멜더스의 ‘인구론’의 중요한 테제 이다. 다시 말해서 인구는 필연적으로 식량의 증가를 초월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인류의 미래는 어두운 모습을 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에 대한 대응으로 2가지 억제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전쟁, 기아, 질병 따위의 방법으로 행해지는 양성제어(positive check)와 출산율 조절을 통한 예방성제어(preventive check)가 그것이다. 개개인의 노력이나 정책을 통한 예방성제어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인구는 양성제어를 통해서 조절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인간은 영원히 기아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 인구론의 핵심이다. 그의 이러한 인구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케인즈에 의해 복권 될 때까지 수많은 정치 경제 학자들의 비판을 받았고 그가 관속에 누워 있는 현대 까지 실효성 없는 이론으로 치부되고 있다. 현대 각 국가들은 급격한 인구 증가가 아니라 인구 감소로 인한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멜더스의 인구론은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현대의 자원 고갈에 대한 우려와 지구 반대편 후진국들의 극빈적인 상황을 본다면 거시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인구 문제를 다룸으로써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그의 태도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1. 서 론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전 세계가 식량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맬더스의 인구론이 세계적인 출산율 감소로 빛을 잃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9일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 30년간 세계 각지의 출산율 변화가 인구폭발 현상을 둔화시켜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비관적 전망이 실현되기 어렵다고 전했다.) 현재 인구폭발이 문제되는 나라는 인도와 파키스탄 정도. 유엔은 1968년 인구 전망니라 오히려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 현상이다. 이처럼 인구폭발과 함께 인류의 멸망을 예언 했던 맬더스의 연구는 현대에 와서 강력한 철퇴를 맞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러한 멜더스의 연구가 현대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요즘 들어 일어나고 있는 곡물과 유류 가격 폭등은 우리에게 멜더스의 우려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름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으며 슈퍼마켓의 라면과 과자류 인상은 경제 상황에 무관심한 필자에게도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 온다. 카자흐스탄에서 밀수출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국제 밀가격이 20%나 급등하고, 러시아·중국·아르헨티나 등 주요 곡물 생산국들이 연달아 수출을 제한하는 식량자원주의가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화석연료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끊임없는 국지전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맬더스의 주장은 200년이 지난 지금 예언처럼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본 논문은 멜서스의 연구에 대해 미흡하지만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고 현대의 시사점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2. 멜더스와 인구론)토마스 로버트 밸더스는 1766년 부유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천성적으로 상냥하고 루소 숭배자인 아버지 다니엘 맬더스 2세 덕택에 그는 남부럽지 않은 교육과 보살핌을 받았으며 18세에 케임브리지 지저스 칼리지에 입학하여 양질의 교육을 받음으로써 그의 뛰어난 사상가로서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이렇듯 유복한 환경과 기회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은 인류역사를 진단함에 있어 무시무시한 평가를 내리게 되는것이 참 아이러니라고 할 수가 있겠다. 멜서스는 19세기의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사는 낙관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인구론을 발간하기에 이르는데 1789년에 간행된 인구론은 멜더스의 인구 법칙에 대한 연구와 미래 사회의 예언을 담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인구의 자연증가는 기하급수적인 데 비해 생활에 필요한 물자는 산술급수적으로만 증가하므로 과잉인구로 인.맬서스는 이러한 자연적인 인구 법칙에 대응하는 2가지 억제 방법을 제시하게 되는데 전쟁, 기아, 질병, 따위에서 기인하는 양성 제어(Positive Check)와 정부의 정책과 개인의 노력을 통한 예방성 제어(Preventive Check)가 그것이다. 양성제어란 얼핏 좋은 것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상 사망률을 높여 인구증가를 억제하는 요인들이 모두 이에 속한다. 전쟁, 기아, 질병 따위가 바로 그것들이다. 흑사병)은 지구 곳곳에서 인구폭발을 방지해 왔으며 또한 높은 유아 사망률은 인구문제 해소의 특효약이며 기아는 수시로 인구조절 기능을 수행해 왔는데 이것들이 양성 제어의 두드러진 예라고 할 수가 있겠다. 예방성 제어란 출생률을 낮추는 것을 말하는데, 양성 제어보다 덜 잔혹하지만 그만큼 성공률도 낮다. 이것은 사람들의 노력과 신념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본능인 성욕의 억제에 기대 출산률을 억제한다는 것은 지극히 부정확하고 불투명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구 조절은 불가피하게 양성 억제를 통해 이뤄진다고 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그 대상이란 돈 없고 빽없는 빈민 계급이 일순위 일것은 자명한 일인 것이다.그는 이러한 인구론에 입각해서 구빈법의 시행도 부정)하기에 이르는데 이것은 그가 빈민을 멸시하는 가혹한 이론가여서라기 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실제로 그는 인구론 개정판 『인구의 원리론, 또는 인구증가가 인류의 과거와 현재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전망-인구 증가가 수반하는 갖가지 해악의 경감과 제거에 대한 고찰을 겸하여』라는 장문의 제목의 책에서 빈민구제에 대한 덜 과격한 제안과 함께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결과와 대책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인구론이 너무 비관적이고 실증적인 자료가 부족한 점을 보완한 것이었다. 인구론이 인구 조절에 있어서 양성 제어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비해 개정판은 노동자 계층이 ‘도덕적 자제’를 발휘하여 출산율을 줄일 가능성을 제시함 나중엔 존 스튜어트 밀), 앨프레드 마셜) 등의 경제학자가 모두 『인구론』을 수용했던 것이다.3. 멜더스의 인구론 비판멜더스의 인구론은 그 시대를 뛰어 넘는 실증적인 연구방법과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 했음에도 그의 연구는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는 논쟁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이 장에서는 멜더스의 연구의 한계와 비판점의 유형을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첫째, 맬더스는 인구문제를 실증적 자료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못함으로써 통계학적 실수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 대세를 파악하지 못했다. 맬더스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제공했던 인구조사 자료가 미국 태생과 미국 이민자들을 명확히 구분한 자료인지 그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미국의 인구가 증가하는 이유로는 출산 뿐 아니라 이민자들의 유입도 큰 몫을 차지함에도 맬서스는 인구증가율을 무조건 출생률에서 사망률을 뺀 것으로만 본 것이다. 통계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미국의 인구 증가를 과대 평가한 것이었다.둘째, 멜더스는 인구 조절 방법에 있어 사회의 구조 변화나 인식의 변화 등으로 인한 자발적인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고 이것은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여가 문화의 확산은 자녀를 많이 두어 양육하는데 부담을 느끼기보다는 자녀를 적게 낳고 인생을 안락하게 즐기고 사려는 풍조를 낳았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멜더스 본인의 실책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연구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부정확한 시점에서 미래의 사회 구조 변화 까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 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멜더스로 하여금 실패한 이론가로 생각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음에 틀림없다.셋째, 맬더스는 농업과 공업의 혁명적 발달을 예상 하지 못함으로써 식량의 증가를 산술적인 수준에 묶어두고 마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당시의 농업 생산성은 형편없었으나 품종선택과 개량, 윤작의 도입, 농기구 개량 등으로 식량은 혁신적인 증가를 이루게 된 것 맬더스는 기하급수적 인구 증가의 원인을 인간의 성욕에서 찾았는데 생식과 성적 경험의 분리를 생각하지 못한 것은 크나큰 오류인 것이다. 인구론의 가장 중요한 전제 중의 하나가 인간의 성욕에 관한 것인데 피임기구의 발달과 의식의 변화로 인해 그 전제는 오류를 낳고 말았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피임기구의 발달이 미약했던 시기였으며 가톨릭 이념으로 인해 피임기구 사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근대를 넘어 오면서 각종 피임기구와 약물이 발명되고 실제로 사용되면서 인구증가를 억제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다. 인간은 ‘성욕’이라는 피할 수 없는 본능을 피임기구의 사용을 통해서 슬기롭게 극복 했던 것이다. 이점에서 본다면 피임기구의 발명가는 멜더스에 있어 그의 이론을 무너뜨린 최대의 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4. 멜더스의 인구론의 현대적 시사점멜더스의 이론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파괴적인 이론 이었다. 또한 그의 이론을 허점투성이에 실패한 이론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의 냉철한 분석은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데도 유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이론을 재조명 해 보고자 한다.첫째, 기근과 식량부족현상이 지구 반대편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아프리카의 후진국들이다. 이들 국가들은 인구증가를 늦추지도 생산량을 늘리지도 못하고 있다. 출생증가 속도는 1950년대보다 느리다 하더라도 평균수명이 급속히 늘어남에 따라 이들 국가의 전체 인구증가 소도는 대단히 빠르다. 맬서스의 귀신이 덮친 에티오피아의 경우, 가뭄과 전쟁이 이미 양성 제어의 구실을 수행하고 있다.둘째, 비록 그의 견해와는 어긋나게 농업혁신으로 식량 생산량이 업청나게 증가 하였지만 그에 못지않은 인구 증가 또한 무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인구는 비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하지는 않았지만 해년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그의 이러한 문제 제기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인구가 10억에 도달하기까지 10,000년모른다.
    경영/경제| 2008.09.04| 9페이지| 1,000원| 조회(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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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문화 (일일호프/찻집)에 대한 영어 에세이
    Day Bar/Day Cafe There are so many unique things in the university life such as- school festival, blind date, day bar and day cafe, student demonstration (which is decreasing rapidly), and etc. Above all, I think day bar and the day cafe may be the most unfamiliar thing, even though It is a very common phenomenon in Korean university life. Day bar and day cafe are similar to each other. But it can be categorized into two groups according to the opening hours. The day cafe opens from 11:00 a.m. to 5:00 p.m. The day bar opens from 4:00 p.m. to 12:00 a.m. in the same place, afternoon time is day cafe, evening time is day bar. The sponsors of the day bar and the day cafe is a group of university students. They rent the bar or the cafe for the appointed time, and then they`ll be the owners during that time. In order to rent day bar and day cafe for the appointed time, they must pay the money to the real owner. The number of the guests are limited. The strangers don`t come to the day bar and the day cafe, because it is more expensive than the ordinary bar or cafe. Nobody drinks too much, everybody drinks adequately. In order to be a guest for the day bar and the day cafe, you must have a ticket.
    인문/어학| 2008.09.04| 2페이지| 1,000원| 조회(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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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맬더스와 리카도를 중심으로 고전학파의 과잉 공급 논쟁에 대한 레포트 평가A좋아요
    고전학파의 과잉공급의 가능성 논쟁(T.R 맬서스를 중심으로)035054 임수철대학교 대학 사회교육과(2008년 5월2일, 지도교수 xxx)요약19세기 산업 혁명기 영국의 경제적 위기 상황을 진단하는데 있어서 주도 적인 입장은 세이, 밀, 리카도 중심의 주류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다. 그들은 세이의 법칙에 근거하여 일반적인 공급과잉 현상을 부정 하였으며 경제적인 침체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았다. 맬서스는 이러한 주도적인 흐름을 거부 하였으며 그의 저작 『정치경제학 원리』에서 과소 소비설에 기초하여 필연적 공급과잉을 주장하게 된다. 이것은 경제를 생산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일면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수요와 공급을 포괄하는 일반적인 이론 이었으며 탁월한 현실적 인식에서 기초한 것이었으나 당시의 주도적 흐름과 그 자신의 이론적 편협성으로 인해 빛을 잃게 된다. 이 후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라는 케인즈의 유효 수요 이론의 선구적 이론으로 재평가 받게 된다.목차Ⅰ. 서 론Ⅱ. 19C 초반 영국의 경제적위기와 공황론의 등장 배경Ⅲ. 주류 고전학파의 시각1. 세이의 법칙2. 리카도의 부분적 과잉 생산론Ⅳ. 맬서스의 일반적 생산과잉 이론Ⅴ. 결론Ⅰ. 서 론현재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한 비관적인 지표들이 앞 다투어 경제 위기를 보고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또한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에 대해 ‘비상 사이렌’을 울리고 있다. 보통 정부는 ‘경제심리의 위축’을 우려해 민간에 비해 낙관적으로 상황을 전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 또한 자국의 5대 금융기업인 베어스텐스 은행 위기와, 국제 금융시장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경제 침체로 빠져 들었으며 이러한 미국 발 경제 위기와 높은 원자재 가격, 얼어붙은 소비 심리 속에 1930년 1차 대공황에 이어 2번째 경제 공황이 우려 된다는 보고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현대에 들어와서 200년 전의 맬서스가 재조명 되는 것은 그러한 경제·사회적인 현실에서 기인한 것이다. 비록 현대의 경제적인 위기가 그는데 중점을 기울일 것이다. 이에 오웬(Robert Owen), 시스몽디(Sismondi)의 한 편에 선 맬서스를 불황론자 리카도, 밀, 세이 등의 입장을 불황 부정논자로 분류 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들 이론의 중심에 서 있던 리카도와 맬서스의 입장 차이를 중심으로 논문을 전개해 가고자 한다. 또한 그 안에서 비록 당시에는 철저히 외면당했던 맬서스의 이론을 재조명함으로써 위기의 시대인 현대 경제·사회에 적용 가능한 분석적 틀을 제공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Ⅱ. 19C 초반 영국의 경제적위기와 공황론의 등장 배경최초의 자본주의적 공황이라 부를 수 있는 산업적 공황은 나폴레옹 전쟁 후의 영국이 생산과잉으로부터 직접 받은 공황에 기인하고 있다. 시대적 사정을 약술하면 최초의 공황은 1815년에 나타났는데 다수의 노동자가 길거리에 내던져졌으며 폭동이 빈발해 수많은 생산기계가 파괴되었다. 이것은 전쟁 중에 생산증가를 행한 영국의 제조업이 평화의 도래와 함께 국내 및 대륙으로부터 상품에 대한 수요가 격감하면서 급격한 생산의 축소 또는 정지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1818∽1819년에 이르러 다시 새로운 상업적 공황이 내습하였는데 도처에서 실업과 임금 인하에 항의하는 파업과 시위가 일어나 1819년 8월 맨체스터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는 엄청난 유혈 사태까지 일으켰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압적인 공황이 1825년에 내습했다. 그것은 남미의 신상품 시장에 대하여 극단적인 무절제와 방대한 투자의 결과로서 70개에 이르는 영국의 지방은행이 파탄에 빠져 그 금융공황이 유럽대륙에도 파급된 것이다. 이와 같이 실제적인 경제사회의 현실에 직면하면서 경제학자간에 전반적 생산과잉의 존부에 관한 격렬한 논의가 행해져 왔다. 오웬(Robert Owen), 시스몽디(Sismondi, Jean Charles L'eonard Sismondi de) 등의 존재 가능의 적극이론에 대립하여 리카도, 제임스·밀(Mill, James), 세이(Say, Jean Baptiste) 등은매력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과잉 생산과 과잉 공급은 특정한 시장에서는 발생할 수 있지만, 경제 전체에서의 일반적인 과잉 생산은 일어날 수 없다고 보았다.한 재화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생산 요소에 대한 지불액 모두는 임금·지대·이자가 아닌 것은 이윤으로서 자본가에게 귀속된다. 따라서 한 재화의 가격 전부는 경제 주체의 구매력으로 모두 환원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에는 언제나 생산된 상품을 처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구매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고전학파 학자들은 특정한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특정한 재화의 과잉 생산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한 산업 부문에서 초과 공급은 다른 산업 부문에서 초과 수요가 존재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가격이 유연하고 자원 이동이 자유롭다고 하면 생산 요소는 초과 공급인 산업 부문에서 최다 수요인 산업 부문으로 흘러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모든 자원의 완전 고용이 달성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이론적 약점이 존재하고 있다. 공급이 잠재적 수요를 창출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잠재 수요가 시장에서 유효 수요로서 행사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세이를 비롯한 고전학파 학자들은 이 문제를 모든 잠재적 구매력은 소비재나 생산재에 대한 수요로서 환원된다는 주장으로 간단하게 넘어갔다. 화폐의 퇴장 가능성을 부정한 것이다. 아무도 금을 상자나 벽장 속에 넣어 두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고전학파에게는 화폐가 단지 교환의 매개물에 불과했다. 그래서 경기 침체나 스태그네이션에 대한 화폐적 원인을 부정한 것이다.2. 리카도의 부분적 과잉 생산론리카도는 기본적으로 전반적 과잉공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세이의 법칙’을 수용하여 일시적인 부분과잉생산은 존재할 수 있더라도 전반적인 과잉생산 공황은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리카도는 전후인 1815년에 시작된 불황을 대규모 전쟁의 종결로 인한 무역선의 급작스러운 변경과 자본가의 오산이라는 문이다. 그는 공황의 타개책으로서 한편으로는 곡물법의 철폐와 조세의 경감을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절약에 의한 자본축적의 증진을 제창했다. 전자는 이윤율을 높여 자본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고, 후자는 노동인구에 비하여 부족한 자본량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러한 견해의 바탕에는 자본축적에 비해 유효수요가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즉, 맬서스의 과소 소비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 논거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절약에 의한 자본축적은 당해 연도의 소비를 종래보다도 줄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약에 의한 자본축적은 비생산적 노동자의 고용 및 사치품의 구입을 감소시키는 대신에 생산적 노동자의 고용 및 생산재의 구입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임금, 이윤 및 지대의 합계인 총소득은 사회의 총생산물과 같고, 총생산물은 총소득에 의해 구매되어지기 때문에 자본 축적이 그에 상응한 수요의 증가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리카도의 이러한 논의는 저축은 항상 투자와 같고, 총생산물은 항상 총소득과 같다는 세이의 ‘판로의 법칙’을 수용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물론 리카도의 주장이 수요의 변화가 일시적으로나마 각 생산물의 생산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소비자의 기호 변화 내지는 전쟁에 의한 무역의 급변이라는 수요 변화는 각 생산부문에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파괴시킬 수 있음을 리카도는 인정하고 있다. 즉, 부분적 과잉생산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생산물에서의 과잉생산은 다른 생산물에서의 과소 생산을 의미하므로 모든 상품에 대해 동시에 과잉이 일어나는 전반적 과잉 생산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Ⅳ. 맬서스의 일반적 생산과잉 이론맬서스는 이윤변동의 주요 원인을 자본에 대한 수요 공급의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자본의 축적과 생산물의 증가에 대하여 인구의 증가 즉 생산물에 대한 수요가 동일한 보조로 증대되지 않으면 이윤의 누진적 하락의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윤의 변동 원인을 상품의 수급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맬서스의 견해이다. 그것은 아니다. 가령 비생산 노동이 생산노동으로 전화하더라도 소비자로서의 노동인구 전체에 있어서 소비 또는 수요의 감소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노동인구의 수요 또는 소비력의 불변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맬서스의 견해를 요약하면 단순한 인구증가, 자본의 축적, 토지의 풍요, 노동절약 기계의 발명은 이미 확실하게 생산을 촉진시키는 가장 유력한 원인이라고 간과할 수가 있지만 수요 측과 분리하여 생각해 보면 결코 국부의 계속적인 증진의 원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생산력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을 가지고 그 정도에 비례하는 부의 창조를 얻는데 부족하며 이러한 힘을 충분히 활용하고자 하면 외부의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생산되어지는 모든 것에 대한 유효한 계속적 수요이다. 또한 상품의 영속적이고 균형적인 생산의 최대 자극은 그 상품의 수요 증가에 근거하는 교환 가치의 증대임을 설명하고 있다. 곧 재화의 공급과 이것에 대한 수요와의 사이에 적당한 비율이 유지 되어야만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맬서스의 유효적 분배 내지 유효적 수요의 관념은 소비 측으로부터 생산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며 또 이것은 재화의 소비와 생산 또는 재화의 공급과 수요와의 균형을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실제상 균형이 잡히지 아니하는 경우에 당연히 전반적 과잉의 현상이 발생한다고 맬서스는 믿고 있었다. 맬서스는 재화는 재화로서 구입하고, 생산의 재화의 공급인 동시에 재화의 수요에 지나지 않으며 어떤 재화의 과잉생산은 필연적으로 이것에 대응하는바 다른 재화의 과소생산에 의하여 상극되어지기 때문에 부분적 생산과잉을 인정하면서 전반적 생산과잉을 부정하고자 하는 세이, 리카도, 그리고 밀 등의 주장에 반대 했다.맬서스의 쟁점은 근본적으로 셋으로 나뉜다. 첫째, 그가 반 공급 과잉주의의 옹호자로 분류하고 있는 세이, 밀, 그리고 리카도와 같은 학자들이 는 것이다. 하지만 재화는 소비자 수 및 욕망에 관련하는 바의 소비재의 본질에 있어서것이다.
    경영/경제| 2008.08.22| 10페이지| 1,000원| 조회(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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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 참관기
    법정 참관기법학과xxx법원이나 교도소라 함은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인식이 깔려 있는데 나 또한 그런 생각에서 인지 법원에 드나드는 것이 꺼려 진다. 예전에는 학교 바로 옆에 법원이 있어 그 기억으로 법원에 가려고 했는데 막상 찾으니까 멀리로 이전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탔는데 생각 보다 얼마 안 가서 법원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 지어진 고풍스런 건물과 질서 있게 배열된 각종 시설물들은 법원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리는 사기죄나 불륜 같은 민사소송이 재미있을 것 같아 민사법정을 찾았으나 아쉽게도 시간이 맞지 않아서 형사 법정으로 향했다. 스마트한 검사의 액션과 변호사의 대결이 나름 재밌을 것도 같았다. 첫 번째로 우리가 참관하게 된 사건은 대한 주택공사와 민간 업자와의 분쟁과 그 안에서 발생한 얼마간의 신체 접촉에 의한 피해에 관한 것으로 시간이 어중간해서 개정 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재판 개정 중이었기 때문에 조용히 뒤로 가서 앉았다. 재판장의 분위기는 나름 엄숙했지만 실제 재판 진행 과정은 평상시 TV에서 보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좌중을 압도하는 재판관의 카리스마와 변호사와 검사의 열정적인 언변을 기대하고 갔건만 솔직히 약간 실망이었다. 서로 서로 자기 앞에 놓인 문서 꾸러미를 확인하고 질문하고 답변하고 이런 식이었는데 마치 시험기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토론하는 스터디 그룹 학생 같아서 약간 웃음이 나왔다. 재판 내용은 공소장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고 새로 출석 하게 될 증인을 채택하는 것이 주가 되었다. 검사와 피고 측에서 서로에게 유리할 만한 인물을 증인으로 청구 하였고 판사님께서도 권위적인 모습이 아니라 피고의 사정도 많이 들어주고 다음 법정 개시일 정하는데도 피고 측 사정을 봐 주면서 정하는 게 참 인상적 이었다.우리가 늦게 들어가서 그런지 얼마 안 있었는데 판사님께서 판결을 하셨다. 판결 내용이란 다음 법정 개시 일을 확정하고 그 때 추가로 출석할 증인을 확인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재판이 한 번에 끝나는 줄 알았는데 끊임없는 개정으로 판결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다음 사건은 폭행으로 인한 전치 8주의 상해에 관한 것이었다. 이전 재판이 끝나자마자 바로 시작했다. 아까부터 배심원석에 우리들 말고 한 명이 더 앉아 있었는데 그 사람이 피고였다.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데 무슨 사연으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재판이 바로 시작하였으므로 난 다시 자리에 앉아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아까는 중간에 와서 어수선 했으니까 이번에 제대로 들으려고 노트도 꺼내고 펜도 꺼내서 필기하면서 참관을 했다. 피고는 약간 긴장 한 듯 했는데 어린 나이에 누구나 재판정에 온다면 엄숙한 분위기에 겁을 집어먹고 말 것이다. 더군다나 인생의 오점을 남기게 될 지도 모르는 중요한 순간인데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판사님께서도 피고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간단한 농담도 하셨는데 참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재판이 개시 되었고 피고의 인적을 확인 한 다음 피고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 할 수 있는 권리와 자신이게 이로운 진술을 할 권리를 설명해 주셨다. 재판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선 그 같은 사항의 설명이 꼭 필요해 보였다. 다음으로 공소장 내용을 확인 하는 것이었는데 대략적인 개요는 이렇다. 2007년 9월 6일에 일어났으며 연향동 호반아파트 뒷문 노상에서 일어난 일이며 애인 문제로 인한 다툼으로 상해가 발생했는데 전치 8주의 진단 결과가 나왔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공탁금 300만원을 포함 총 1000만원의 합의금을 요구 했고 피고 측이 이에 불응하여 형사 재판으로 이어 지게 된 것이었다. 사건이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따지고 들어가니까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일 저녁 피고인은 미용실 직원인 이정숙 양을 포함해서 3명과 함께 술을 마셨고 만취한 이정숙 양을 데려다 주는 길에 이정숙 양으로부터 기습적인 키스를 받았고 그 와중에 그녀의 애인으로 추정되는 인물(피해자)에게 가격을 당했다. 이로 인해 큰 싸움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피해자가 전치 8주의 상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법적 소송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피해자가 출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적으로 피고 측 증언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왠지 피고가 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건의 전황으로 봤을 때 전적으로 피고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여자가 먼저 키스를 시도 했고(이에 저항하지 않은 것이 과실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피해자에게 먼저 가격을 당했으니 누구라도 잠자코 있을 수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치 8주의 중상을 입힌 것은 과한 반응이었다고는 하나 자기 보호 측면에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지금 까지 전과가 없는 것으로 보아 우발적인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피고 측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 줄 수 있을 듯 보였다. 또한 피고 측이 애써 마련한 공탁금 300만원을 말도 없이 출금해 간 것과 그 여성의 행실 또한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난 배심원석에 앉아 가슴속으로 판사님께 피고에게 선처를 부탁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판사님께서 판결을 하셨다. 피해자의 나이가 어리고 전과가 전무 한 점, 그리고 우발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참작의 여지가 있으나 그에 비해 피해자의 상해가 심하다는 것을 들어 피고에게 400만원, 합의 시 2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했다. 판사님께서 벌금형의 유죄 판결을 내리셨지만 피고에게 합의를 종용 하시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피고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젊은 나이에 거액 천만 원을 구할 수가 없음을 하소연했다. 한 번의 실수로 인해서 인생에서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될 피고의 입장이 정말 안타까웠다.
    법학| 2008.08.22| 3페이지| 1,000원| 조회(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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