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바꿀 읽고 쓰기의 미래- 김성우의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 쓰기를 어떻게 바꿀까』를 읽고1. 인공지능의 등장과 사회현상, 작가소개2022년 12월 오픈AI 사가 챗GPT를 공개한 후 그야말로 인공지능 광풍이 불었다. 인간 이외의 존재가 인간처럼 읽고 쓴다는 사실은 충격이었고, 관련 학문과 사업 분야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충격을 던졌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능력에 열광하고 있다. 그 열광의 중심에는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열쇳말이 자리하고 있고, 인공지능이 나 대신 돈을 벌어줄 거라는, 그것도 빠르게 많이 벌어줄 거라는 환상이 작동하고 있다. 인공지능 관련 책도 수없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이 기술적인 내용의 활용법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 쓰기를 어떻게 바꿀까』는 귀한 책이다. 이 책은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자리에 개인과 사회, 기술과 리터러시라는 열쇳말로 논지를 대체하고, 인공지능이 바꿀 미래의 읽기 쓰기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이 책의 저자 김성우는 응용언어학자이다. 2000년 전후 웹 기반 교육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컴퓨터를 활용한 언어 학습에 대한 논문을 썼고, 이후 현업에서 테크니컬 라이팅·이러닝 기획 및 프로젝트 매니저·학습 게임 콘텐츠 개발자로 일했다. 응용언어학자라는 직함에 맞게 언어와 교육, 문해력과 권력, 사회현상 전반을 주제로 책과 논문을 집필하고 있으며 기술과 리터러시가 엮이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2. 책의 요약이 책을 여섯 단락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장에서는 ‘인공지능 시대’라는 표현에 담긴 의미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생성형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살핀다. 더불어 ‘리터러시’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정의하고 그 의미를 파악한다. 인공지능 확산이 바꿀 읽기와 쓰기의 풍경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인공지능의 저자성의 변화와 윤리적 논점에 대해 살핀다.4장에서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과도한 집중이 가져오는 폐해를 말하고, ‘질문만 잘 던지면 글을 뽑아낼 수 있다’라는 주장의 허황됨을 밝히고 그 대안으로 ‘비판적 프롬프트 리터러시’라는 개념을 제시한다.5장에서는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각도로 살핀다. 수동적인 도구가 아닌 주체성을 가진 행위자로서의 기술 이해를 기반으로 저자의 쓰기 인생에서 만난 다양한 도구들을 살피고, 인간의 몸과 기술이 맺는 관계의 변화를 추적한다. 이후 기술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으로 결정론적 견해·도구적 관점·비판적 접근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확장하는 개념으로 중재에 대해 논의한다. 아울러 특정한 기술적 중재가 제공하는 기회와 제약을 여러 층위에서 고찰하고 생성형 인공지능이 가진 가능성과 위협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6장에서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부상과 읽기-쓰기의 변화 논의라는 긴 여정을 마무리하며,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이고 심층적인 사유로 인간과 인공지능이 함께 읽고 쓰는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인공지능과의 협업에 필요한 구체적인 실천 원리를 나열하고 나아가 읽고 쓰는 우리 곁에 변함없이 남아있을 아름다움과 가치를 설명한다. 이를 통해 홀로 고요히, 인공지능과 함께, 다른 이들에 기대어 읽고 쓰는 일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엮이며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을지 상상하는 자리로 모두를 초대한다.3. 문해력과 리터러시의 개념본격적인 전개에 앞서 우선 문해력이라고 번역하는 리터러시의 개념에 대해 짚어보자.“문해력이 글 읽기 역량에 집중하는 개념이라면 리터러시는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미디어와 주제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역량과 조건까지를 포괄합니다.” (45쪽)“인공지능 리터러시는 인공지능이 사회와 문화·제도와 정치·일상과 교육·환경과 생태계 등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에 대한 지식과 관점, 이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행동과 연대를 포함하는 비판적 리터러리터러시라는 확장된 개념이 적합하다고 지적한다.4. 인간의 읽고 쓰기, 인공지능의 읽고 쓰기결과물이 같거나 비슷하다고 그 과정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인간의 읽고 쓰기와 인공지능의 읽고 쓰기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다. 책에 제시된 단락을 인용해 전개해 보자.“기계학습의 핵심이 ‘묘사와 예측’이라면, 인간은 이를 훌쩍 뛰어넘어 도덕적 사고를 하고 인과관계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107쪽)“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차이는 학습 과정에서 감정을 경험하는지의 여부입니다.” (123쪽)“인공지능이 거대한 텍스트 더미를 기반으로 계산해 낸 확률적 언어분포 및 그에 따른 의미는 서로 다른 마음과 몸·경험과 지식·관점과 태도를 지닌 개개인이 만들어 내는 언어의 형식 및 의미와 같을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129쪽)“거대언어모델은 분명 언어를 생성하지만, 그 뒤에 존재하는 것은 수학적이고 통계적인 연산뿐입니다.” (131쪽)“결국 텍스트와 사고가 변증법적으로 엮이는 과정을 수반하는가 아닌가는 인간과 기계의 쓰기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136쪽)인간과 인공지능의 읽고 쓰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선 글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갖는 감정과 경험이 자리할 자리에 수학적인 통계와 확률이라는 알고리즘이 자리하고 있다. 변증법으로 발전하는 인간의 사고와는 달리 알고리즘이 인공지능의 읽고 쓰기에 대치하고 있다는 말이다. 빙산의 모양으로 비유하면, 물 위로 나타난 두 빙산의 모양이 비슷할지라도 물 아래 잠긴 거대한 빙산의 나머지 모습은 같을 수 없다는 이치이다.5. 인공지능에 열광하는 이유, 생산성과 효율인간과 인공지능의 읽고 쓰기가 근본적으로 다른데,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논의의 중심에는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열쇳말이 있다.“우리가 소화하는 미디어가 삶의 속도와 점점 더 유리될 때, 심장의 울림·마음의 떨림과 텍스트를 읽는 일이 공명할 수 없을 때, 필자가 펼쳐 놓은 복잡다단한 감정의 지원과 미묘한 반응을 살피며 자주 접한 키워드는 당연 ‘생산성’입니다.” (203쪽)“인공지능이 언어 생산을 비약적으로 가속화하지만 언어의 이해를 가속화하진 못한다는 점은 물적이고 기술적인 조건이 인간의 몸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숙고해야 할 결정적 이유입니다. (…) 리터러시 교육이 텍스트 생산의 속도와 텍스트 이해의 속도를 맞출 수 있다는 환상을 좇는 경향을 비판합니다. 기술의 가속을 리터러시 교육장에 그대로 이식하려 할 때 읽고 쓰는 몸이 만들어 내는 내면의 풍경은 더욱 삭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206쪽)사람들이 인공지능에 열광하는 이유는 생산성과 효율이다. 내가 만들어 내는 텍스트를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자동적으로 생산해줄 거라 기대한다. 이런 효율이 자본이 으뜸 가치인 사회와 결합하면 인공지능은 나 대신 돈을 벌어주는 그것도 빠르게 많이 벌어주는 기계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욕망에 매몰되면 개인을 넘어 그 사회의 구성원 모두의 읽고 쓰는 능력, 즉 저자가 말하는 리터러시 능력은 퇴화하고 말 것이다.6.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질문이 모든 것이라는 환상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과 함께 생겨난 분야가 있다. 바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다. 여기엔 맹신과 함께 환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질문이 모든 것’이라는 착각이 바로 그것이다. 과연 그럴까?“프롬프팅 과정에서 필자의 배경지식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입니다. (…)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뿐 아니라 학술적 글쓰기에 대한 수사적 지식을 가지고 있을 때 좋은 프롬프트가 나올 수 있다는 방증입니다.” (239쪽)“‘다양한 프롬프트를 원칙에 맞추어 지혜롭게 쓰면 원하는 글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젠 답하는 능력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중요한 시대다’라고 선언하는 것도 의미가 없고요. 프롬프트는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의도와 목적·단락의 흐름·이전의 결과물에 대한 비판적 독해·필자의 세계관 등등이 모두 엮여 하나의 프롬프트로 ‘응축’되기 때문입니다.” (256쪽로 논의할 점은 기술의 변화가 가져올 인간의 변화이다.“도구의 생태계가 변화하면 앞으로 우리가 쓰기를 대하는 태도·읽기와 맺는 관계·사람과 사회와 맺는 관계·필자로서의 정체성이 달라질 거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281쪽)“더불어 읽기와 쓰기의 관정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이 미미한 영역이 있으니, 바로 ‘체화’입니다. 인공지능을 사용해 빠르게 글을 생성한다고 해서 해당 글의 내용을 우리가 체화하진 않습니다. (…) 생성된 텍스트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해당 텍스트와 독자, 무엇보다 자신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갖는다면 글이 우리 몸과 마음에 스미도록 하는 정성과 노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341쪽)기술의 변화는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의 변화를 수반한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의 읽기와 쓰기의 지형도는 달라지겠지만, 인공지능이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영역으로 ‘체화’를 예로 든다. ‘체화’는 인공지능으로 달라질 읽기와 쓰기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 영역이다. 이런 발견을 위해 넓은 차원의 담론이 필요하다. 그 담론을 시작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8. 결과가 아니라 과정인공지능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만을 놓고, 그 가능성을 논할 때 간과되는 것이 ‘과정성’이다.“하지만 왜 우리에겐 ‘과정성’이라는 말이 없는 것일까요. 과정이 사라진 결과는 어떤 가치를 가질까요? 존스와 해프너가 제사한 특정 기술의 가치와 제약을 떠올린다면 지금이야말로 과정에서 길러지는 인지적·정서적·사회적·관계적·윤리적 역량이 탈각될 때 ‘생산성’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논의하고,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할 때 그런 탈각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가치를 어떻게 만들지 논의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449쪽)“저는 인공지능의 광범위한 부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결과가 과정을 삭제하는 경향 나아가 과정을 귀히 여기는 관점을 무시하는 습속의 강화라고 생각합니다.” (453쪽)“생산성은 산출물이 나오고 나서의 외부를 향하지만, ‘과정성’은 배우는 동안 변형되)
예술은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는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고한 줄 평가아름다움에 홀려 자신이 선 세계의 기반마저 부숴버리는 예술가, 광기 어린 예술가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다. 현실을 초월한 예술의 세계를 달에 비유하고, 욕망에 물든 세속을 6펜스에 비유한다. 소설은 대립하는 두 세계의 이야기다. 소설의 결말에서 알 수 있듯 달은 도달할 수 없는 세계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예술을 완성하지만 죽는다. 달은 우리가 품어야 할 이상향이다. 우리가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길을 비추는 빛이다.일곱 문장으로 요약되는 줄거리안정적인 현실을 살아가는 스트릭랜드, 직업은 증권 중개인이다. 어느 날 안정된 기반을 버리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한다. 파리에서 홀로 작업에 매진하며 온갖 고초를 겪는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태평양의 섬 타히티로 떠난다. 그곳에서 원주민 여인과 동거하며 깊은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결국 문둥병에 걸려 실명하게 되고, 그는 예술을 완성한다. 완성의 대가는 죽음이다.소설의 배경이 소설은 1919년에 발표됐다. 1차 대전이 끝난 이듬해이다. 종전 후 전쟁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이 소설에 매료된다. 소설에는 문명을 대표하는 파리와 영국이란 공간과 원시를 대표하는 타히티란 공간으로 대립한다. 그리고 예술과 이상향을 의미하는 달이란 세계와 속물적인 욕망과 세상의 구속을 의미하는 6펜스란 세계로 대립한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바탕은 현실이다.스트릭랜드와 고갱알다시피 소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이 모델이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고갱이 아니다. 소설은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에 허구를 보태어 쓴다. 개연성이다. 고갱의 이력을 몇 가지 짚어보자. 소설에서 스트릭랜드는 증권 중개 일을 그만두고 가족들까지 버리고 그림을 시작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고갱은 증권 중개 일을 하며 그림을 시작했다. 1874년 26세에 고갱은 일요일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1883년 35세에야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매일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한다. 이때부터 생활고가 시작되었고 주위와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현실의 고갱과 소설의 스트릭랜드 둘 다 가난에 시달렸다. 그리고 고갱은 50세에 살충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은 실패였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고 1903년 5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리고 스트릭랜드가 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초연한 모습을 보이지만 고갱은 매독을 오랫동안 앓았다.그럼 스트릭랜드는 누구이고 고갱은 누구인가? 스트릭랜드는 예술을 완성하고 꿈을 이루지만, 고갱은 현실을 살아야 했다. 현실에서 돈을 벌고 밥을 구해야 했다. 소설에서 스트릭랜드의 고통은 아름답게 묘사되지만, 고갱의 현실도 그랬을까? 현실은 고통의 바다이다. 스트릭랜드는 허구이고 고갱은 현실이다. 그럼 허구는 무용한 것인가? 아니다. 허구는 꿈이다. 꿈이 없는 현실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꿈은 목적지다. 목적지가 없는 현실은 방향을 잃은 삶이다.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 일지라도 꿈이 있기에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그것이 예술의 역할이다.작품으로 들어가서“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69쪽)예술을 향한 열망은 맹목적이다. 생명을 걸 예술을 이 문장으로 암시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욕망에 목숨을 건다면 스트릭랜드는 예술에 목숨을 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속적인 욕망을 따른다고 해서 그 선택이 현명하다고 할 수는 없다. 세상에는 어리석은 사람이 대부분이고 현명한 사람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향한 열정은 세상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인다.“그를 홀린 귀신은 선악이 존재하기 이전에 있었던 원시적인 힘이었을 테니까.” (139쪽)예술은 선과 악을 초월한 세계이다. 선과 악이 둘로 나뉘기 전의 세상, 인간이 에덴에 살았던 때, 스트릭랜드를 홀린 귀신은 어쩌면 창세의 신이다.“창세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꼈다고 할까.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것, 그러면서 또한 공포스러운 어떤 것, 그를 두렵게 만드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감추어진 자연의 심연을 파고 들어가, 아름답고도 무서운 비밀을 보고 만 사람의 작품이었다. 그것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신성한 것을 알아버린 이의 작품이었다. 거기에는 원시적인 무엇, 무서운 어떤 것이 있었다. 인간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악마의 마법이 어렴풋이 연상되었다. 그것은 아름답고도 음란했다.” (293쪽)스트릭랜드가 완성한 예술이다. 고갱의 그림을 보며 나는 이 문장들을 읽고, 또 읽었다.“그는 마침내 거기에서 평온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을 사로잡은 악마를 마침내 몰아내고, 평생을 고통스럽게 준비해 왔던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외로움과 괴로움에 지쳐 있던 그의 영혼은 휴식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목적을 이루었으므로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이 아닐까.” (295쪽)예술이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스트릭랜드의 예술이 이렇다면 고갱의 예술은 어땠을까? 그도 죽음 앞에 당당했을까?소설의 역할, 예술의 역할대부분의 사람들은 6펜스의 삶을 산다. 삶에서 방향을 잃었을 때 달을 보라. 달이 방향을 알려 줄 것이다. 예술은 지상에서 건져 올렸지만 닿을 수 없는 천상을 향한 노래다. 소설이 현실을 질료로 썼지만, 현실이 아닌 이유다.‘그대들은 달을 품고 살아가라. 발은 현실을 딛고 시선은 하늘을 향하라. 그리하여 고귀한 삶을 살아라’, 소설은 이렇게 말한다.예술은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는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고
말하기와 쓰기로 슬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가바사와 시온의 『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를 읽고말로 표현하면 슬픔이 사라질까? 글로 쓰면 슬픔이 사라질까? 가능하다면 슬픈 이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소식이다. 말로 표현하면 슬픔이 사라진다는 제목에 끌려 책을 펼쳤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문장은 쉽고 간결했다. 잘 읽히는 글이었다. 저자는 쉬운 표현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핵심부터 말하자면 슬픔을 치유하는 방법은 ‘언어화’에 있다. ‘언어화’는 심리상담의 첫 번째 목표로 꼽을 만큼 중요한 개념이다.『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의 저자 가바사와 시온은 심리학과 뇌과학을 근거로 책을 썼다. 그의 이력은 이렇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고, 41권의 책을 쓴 작가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로 소통하는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심리상담과 정신건강에 관한 정보로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책을 요약하면 이렇다. 1장에서는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고민의 속성에 대해 설명한다. 2장에서는 통제, 시간, 지신을 축으로 고민을 분석하는 3가지 방법을 설명한다. 3장에서는 앞서 설명한 내용을 바탕으로 고민을 해소하는 간략한 팁을 3가지 제시한다.4장부터 8장까지는 이 책의 핵심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우선 4장과 5장에서는 관점 전환에 관한 설명이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거나, 미래에 성장한 나를 믿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관점을 바꿔보길 권한다.6장과 7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언어화에 대한 개념을 설명한다. 6장에서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힘과 언어로 표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통찰을 설명한다. 그리고 언어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리에 대한 설명도 덧붙인다. 7장에서는 언어화하기 위한 지침들과 요령을 설명한다. 쓰기만 잘해도 고통이 줄어드는 원리를 상세히 밝힌다.8장은 행동화에 관한 설명이다. 언어화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고민이 해결된다는 논지이다. 구체적으로 수면, 운동, 아침 산책과 같은 행동으로 몸을 돌보기를 권하며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지침도 설명한다.9장에서는 고민이 사라지는 궁극적인 방법으로 포기하고, 그만두기를 제안한다. 특히 아들러의 심리학을 근거로 친절과 감사와 공헌이 고민을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이라고 제안한다.요약에 이어 책에서 주목할 만한 문장과 필자의 해석을 덧붙여보겠다.“만약 고민이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면 반드시 ‘자기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성장을 하게 되면 문제 해결력이 생기기 때문에 그 이후에 생긴 고민은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13쪽)저자는 고민이 자기 성장의 다른 말이라고 한다. 고민은 시련과 역경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이 있다. 시련의 한 가운데서는 그 시련을 바로 보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그곳에서 한발 물러섰을 때 바로 볼 수 있다. 필자는 그런 나이가 마흔쯤이라 생각한다. 시련이란 말이 20대, 30대와는 달리 느껴지는 나이이다. 당시에는 분명 시련이라 생각했는데 마흔이 넘어 보니 사실은 성장의 기회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시련은 저자의 말처럼 성장의 기회가 될 뿐이다.“심리상담의 첫 번째 목표가 바로 ‘언어화’입니다. 말로 표현하기만 해도 ‘무의식’이 ‘의식’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중략) 언어화란 이렇게 무의식 깊은 곳, 예를 들어 바닷속 깊은 곳에 잠겨 있는 침몰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과 같습니다. 육지로 끌어와 안을 들여다보면 뭐가 문제였는지를 상세히 조사할 수 있습니다.” (207쪽)이 문단이 ‘언어화’에 대한 설명이고,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말하기와 쓰기로 어떻게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지 그 원리에 대한 설명이다. 무의식을 의식으로 바꾸는 방법이 바로 언어화이다. 치유는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이렇듯 일기를 매일 쓰면 자기 통찰력이 생깁니다. 글을 한 줄도 못 쓰던 그녀가 퇴원할 즈음에는 매일 한 페이지 이상 일기를 쓰는 걸 보고 저도 놀랐습니다. (중략) 10년 이상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약물 남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녀가 일기 쓰는 행위를 통해 드디어 약물 중독을 극복하게 된 것입니다.” (279쪽)일기 쓰기로 약물 중독을 극복한 저자의 내담자를 소개했다. 매일 심리상담을 하며 내담자에게 일기 쓰기를 권했는데 ‘쓰기 언어화’로 자신이 약물 남용 상태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런 자신의 과거를 마주할 수 있게 된 경우이다. 언어화로 치유된 구체적인 사례이다.“물론 인풋(검색, 조사, 독서)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책을 100권 읽어도 아웃풋이나 행동이 없으면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아웃풋과 행동이 함께 일어나야 나의 현실에 변화가 생깁니다.” (288쪽)현실을 바꾸려면 행동해야 한다. 인풋만으론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인 ‘언어화’도 행동하기 위한 준비과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려 고민이 해소됐다면 그 결과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자는 “행동하지 않으니 고민이 사라지지 않는다. 행동하면 고민은 사라진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라고 당부한다.“아들러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타인에게 공헌하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아들러 심리학에서 제시하는 최고의 고민 해결법은 ‘타인에게 공헌하는 것’입니다.” (344쪽)이 문장을 보라. 심리학과 종교에서 말하는 궁극은 같다. 아들러가 말한 타인에게 공헌하는 삶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그리스도교의 ‘황금률’과 같고, ‘남도 이롭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이롭게 하라’는 불교도의 ‘자리이타’의 삶과 같은 의미이다. 궁극에서는 모든 이치가 통한다.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필자는 책을 먼저 찾아보는 습관이 있다. 물론 독서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책도 한계가 있다. 책은 간접 체험이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책을 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귀납과 연역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모아 이론으로 추렸으니 귀적인 방법으로 책을 썼지만, 독자는 책 속의 지침을 삶에 적용하며 이론을 살려야 하니 연역적인 방법으로 읽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럼에도 책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는 여전히 많다. 저자들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통찰력이 뛰어나거나, 경험이 탁월한 저자들이 많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이런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책뿐이다.‘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라는 제목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과연 슬픔이 사라질까’라는 의심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서평을 남길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이다. 말로 표현하면 슬픔은 사라진다. 이 말에 확신을 얻었다. 가바사와 시온은 슬픔을 극복하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이런 지침까지 말하고 있으니 슬픈 독자에게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확신을 얻었다. 말하기와 쓰기로 우리는 슬픔을 치유할 수 있다.
미술 감상의 끝은 글쓰기정민영의 『미술 글쓰기 레시피』를 읽고일반적인 글쓰기와 미술 글쓰기는 뭐가 다를까? 미술 글쓰기만의 특별한 작법이 있다면 그 내용은 무엇일까? 두 가지 물음에 답해줄 책을 찾다 발견한 책이 『미술 글쓰기 레시피』이다. 2021년, 아트북스 출판사에서 출간했고 정민영이 썼다. 딱딱하고 전문적인 글이 아니라 미술 글쓰기 이론을 쉽게 풀어 쓴 대중서이다. 쉽지만 알차다. 필자 역시 작가가 알려준 레시피대로 미술 글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추상적인 이론만 늘어놓은 게 아니라 레시피처럼 실용적인 지침으로 미술 글쓰기를 안내한다. 레시피가 있으니 요리는 독자의 몫이다. 일단 써보자.정민영의 이력은 이렇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정신세계사, 문학동네, 세계사에서 편집일을 했고, 『미술세계』에서 편집장을 지냈다. 네 권의 책을 썼는데 이 책은 앞서 집필한 『원 포인트 그림감상』의 이론편이라 할 수 있다. 『원 포인트 그림감상』에서 정민영은 서양 회화, 우리 옛 그림과 근현대미술, 동시대미술을 대상으로 포인트 감상법을 제안했고, 그 실천에 따르는 이론이 이 책 『미술 글쓰기 레시피』이다. 지금도 미술 출판일을 이어가고 있는 정민영의 이력은 미술책 애호가, 미술 애호가로 요약할 수도 있겠다.책은 크게 5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쓰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들을 짚어본다. 주체적인 감상, 머리보다 가슴으로 감상하기, 작품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들을 설명한다. 미술 글쓰기는 공간예술(미술)을 시간예술(글)로 옮기는 작업이며, 미술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음을 밝힌다. 작가는 특히 주관적인 감상을 강조하며 감상의 완성으로 미술 글쓰기를 제안한다.2장에서는 글의 구성에 관해 알아야 할 것들을 설명한다. 서론 · 본론 · 결론의 삼단 구성, 키워드로 본문을 구성하는 방법, 첫 문장과 첫 단락 쓰기, 글을 닫는 법, 수미상관과 대화 형식으로 글 쓰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 장은 글쓰기에 통용되는 일반적인 지침이다. 미술 글쓰기도 쓰기의 범주에 속하므로 글쓰기의 일반론을 다시 복기한다는 마음으로 읽기를 제안하고 싶다.3장에서는 쓰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설명한다. 작품 묘사, 작가 정보, 시대 배경, 에피소드와 작품명에 관해 설명한다. 이 장은 미술 글쓰기에 담을 내용에 관한 설명이다. 그 내용은 일반적인 글쓰기와 차별되는 미술 글쓰기만의 특별한 지침이다. 미술 글쓰기에서 표현론적인 관점(작가)과 반영론적인 관점(시대 배경)이 글 내용의 큰 틀이 되고 에피소드, 작품명, 인용은 글의 양념이 된다.4장에서는 무엇으로 쓸 것인지, 글감에 관한 설명이다. 이 장은 앞서 다룬 이론들을 적용한 예시글로 이루어져 있다. 예시글에 앞서 적용한 이론을 짧게 설명하고 본론이 이어지는 구성이다. 에피소드, 키워드, 비교, 자기 계발 스타일로 쓴 글들을 예로 들었다.5장에서는 쓰면서 알아야 할 항목들을 설명한다. 제목 짓기, 미술 용어, 캡션, 독자 정하기, 분량 맞추기, 퇴고에 관한 설명이다. 이 장은 미술 글쓰기의 실전 팁이라 할 수 있다.책을 이해하는데 먼저 알아야 할 개념이 있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두 가지 태도인 내재적 관점과 외재적 관점이 그것이다. 내재적 관점은 형식주의 이론과 통하고, 외재적 관점은 다시 표현론적 관점, 반영론적 관점, 수용론적 관점으로 나뉜다. 본문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예술계에는 작품을 감상할 때 사용하는 관점이 있습니다. ‘내재적 관점’과 ‘외재적 관점’이 그것입니다. 내재적 관점은 작품의 형식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외재적 관점은 작품 외적인 요소로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을 말합니다.”(34쪽)“내재적 관점은 작품의 형식을 보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나 사회적 · 시대적 맥락 같은 비형식적인 요소를 배제합니다. (중략) 표현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제시하는 방식(형식)에 주목하는 것이죠. 일상이나 삶은 도외시한 채 선이나 색채, 구조 등 작품의 형식적인 요소와 효과만 중시하는 형식주의 이론이 여기에 해당합니다.”(35쪽)“반면에 외재적 관점은 작품 바깥의 요소를 통해서 작품을 들여다봅니다. 여기에는 작품 외적인 요소에 따라 세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작가가 중심인 ‘표현론적 관점’과 현실이 중심인 ‘반영론적 관점’, 그리고 독자가 중심인 ‘수용론적 관점’입니다. 수용론적 관점은 ‘효용론적 과점’이라고도 합니다.”(35쪽)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에서 특히 외재적 관점의 세 개념, 즉 표현론적 관점, 반영론적 관점, 수용론적 관점을 이해해야 책에서 전개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책에서 작가는 일관적으로 주관적인 감상을 강조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감상 태도는 수용론적인 관점이다. 관람자 중심의 수용론적 관점을 주로 하여 표현론적 관점과 반영론적 관점을 끌어안길 강조한다. 철저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개인과 감상자가 중심이 되는 감상 태도이다. 그 바탕에는 미술품 감상에 정답은 없다는 관점이 깔려있다. 본문 글을 인용해보겠다.“미술 감상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향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머리에서 가슴으로 끊임없이 하산하고 있습니다. 작품감상과 글쓰기로 자신의 경험과 감정과 생각, 취향 따위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33쪽)“오랫동안 외재적 관점의 말석을 차지했던 수용론적 관점을 상석에 올리고, 표현론적 관점과 반영론적 관점을 감상 자료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순서 하나 바꾸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감상 주체인 감상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우선하고, 여기에 작가의 의도와 시대적인 배경 등을 플러스해서 감상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입니다. 또 이는 ‘아는 만큼 보인다’에서 ‘느끼는 만큼 보인다’로 관점을 전환하는 전략이기도 합니다.”(39, 40쪽)또 작가는 2020년 6월 26일, 『대구신문』에 실린 황인옥의 글을 인용한다.“내 작품에 대해 나도 궁금하다. (중략) 나의 매력을 내가 모르듯이 내 작품을 내가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작품이 만들어지는 근원을 말할 뿐이다. 작품의 매력은 관람자가 찾아야 한다.”(50쪽)수많은 작가들이 글쓰기의 어려움을 고백한다. 미술 글쓰기도 쓰기의 한 범주이니 역시 어렵다. 그런데 여타 글쓰기 장르와 달리 미술 글쓰기가 갖는 특별한 어려움이 있다. 미술 글쓰기는 미술품에 관해 쓴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공간예술과 시간예술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본문 글을 인용해보겠다.“예술 장르의 분류법 중에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회화 · 조각 · 건축을 공간예술로, 문학 · 음악 · 연극을 시간예술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분은 극작가이자 비평가인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이 제시하였습니다. (중략) 즉 미술은 공간에 기반을 둔 예술이고, 문학은 시간에 기반을 둔 예술이라며, 문학과 미술을 명확히 구분한 것입니다. (중략) 미술 글쓰기는 이러한 공간적인 이미지와 자신의 느낌을 시간적으로 옮깁니다.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52, 53쪽)“그림은 공간적인 세계이고, 글은 시간적인 세계입니다. 그림은 문자언어나 음성언어 같은 언어 이전의 세계이고, 글은 문자언어의 세계입니다. 문자언어의 유기적 조직체인 문장은 순서대로 전개됩니다. 따라서 공간예술과 시간예술의 차이와, 시간의 효과적인 사용을 바탕으로 하는 쓰기의 스킬을 알면 미술 글쓰기에도 힘이 붙습니다.”(58쪽)요약하면 미술 글쓰기는 언어 이전의 세계를 언어로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어렵다.미술 글쓰기와 다른 장르의 글쓰기는 겹치는 부분이 있다. 작가는 미술 글쓰기만의 특별한 지침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글쓰기와 공유하는 쓰기의 일반적인 지침까지 함께 설명했다. 여기서 필자는 책의 내용 중 쓰기의 일반적인 지침들은 과감히 빼고 미술 글쓰기만의 독특한 작법에 관해서만 언급했다. 글쓰기에 관한 책들은 많이 출간돼 있으니,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중언부언하고 싶지 않았다.맺음말에서 작가는 출판을 전제한 미술 글쓰기를 시도해보라 권한다. 덧붙여 미술 감상의 궁극은 쓰기라는 주장으로 글을 닫는다. 미술 감상을 미술 글쓰기로 마무리하고, 쓰기로 미술책 출판에 도전해 보라는 논지이다. 출판을 전제한 글은 더 정제되고 세련될 수밖에 없다. 인정한다. 4권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작가에게는 가벼울 수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사실 부담스러운 제안이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있기 때문이다. 출판이 아니라도 글을 공개할 곳은 많다. 필자도 대부분의 글을 출판보다는 블로그에 공개할 목적으로 쓰고 있다. 사실 출판보다 SNS 같은 매체로 소비되는 글이 더 많다. 또 SNS에 공개한 글이 인기를 얻어 출판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이 봤다. 그러니 부담은 내려놓자. 우선은 작가가 일러준 레시피를 숙지하고 요리를 시작하자. 글 맛나는 글을 써보자.
※일러두기- 우선 1장부터 6장까지의 목차를 세부적으로 밝힙니다. 책에 나온 6장까지의 목차가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세부적인 목차만으로도 책의 구조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6장까지가 이론적인 내용이고, 7장과 8장은 실기에 관한 내용이므로 7장, 8장의 목차는 따로 밝히지 않습니다. 세부목차 다음에는 책의 내용을 자세하게 요약합니다. 분량이 많은 이론서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 요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덧붙였습니다.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도 포함했습니다.1. 세부목차1장. 카메라 이야기1) 카메라의 역사가 사진의 역사다① 사진의 시작② 카메라의 원리③ 기술과 표현④ 카메라의 세 가지 속성2) 다게레오타입에서 디지털카메라까지① 어둠과 속도의 문제② 실재와 사실성의 문제③ 화질과 해상력의 문제④ 눈과 마음의 문제⑤ 사진의 세가지 원리㉠ 시각의 원리㉡ 감광의 원리㉢ 현상의 원리㉣ 인화의 원리3) 명기의 출현과 종말① 명기는 누구에게 필요한가2장.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준비1) 좋은 카메라는 어떤 카메라인가① 가장 좋은 카메라② 좋은 카메라의 네 가지 요건2) 좋은 눈은 어떤 눈인가① 관찰의 눈② 존재의 눈③ 시간의 눈④ 소통의 눈3) 좋은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① 디테일을 향한 눈② 시선과 마음의 눈③ 깊이와 성찰④ 운명, 단 한 번의 순간3장. 좋은 사진을 위한 세 가지 기초1) 좋은 사진을 위한 구도2) 좋은 사진을 위한 포즈3) 좋은 사진을 위한 디자인① 점과 선② 형태와 패턴③ 강조와 균형4장. 좋은 사진을 찎기 위한 심화요소1) 좋은 사진을 위한 노출① 노출 프로세스와 메커니즘② 측광 방식과 노출 모드2) 좋은 노출의 실전 사례3) 좋은 사진을 위한 초점① 선택과 판단② 형상과 시선4) 좋은 사진을 위한 심도① 세상의 깊이② 호흡의 깊이5) 좋은 사진을 위한 원근법① 원근법의 실제② 심도에 따른 원근 효과5장. 좋은 사진을 위한 물리적 LCDF1) 좋은 사진을 위한 빛 (light)2) 좋은 사진을 위한 컬러 인가? 2장에서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준비 단계인 좋은 카메라와 사진가가 갖추어야 할 좋은 눈과 좋은 마음이 어떤 것인지 설명한다. 사진은 카메라로 찍은 것이니, 우선 좋은 카메라가 필요하다. 저자는 좋은 카메라를 손에 익은 카메라라고 정의하고 더불어 사진가의 눈과 마음, 몸이 함께하는 카메라라 말한다. 그리고 좋은 사진은 좋은 눈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하고, 좋은 눈은 물리적으로 좋은 눈일 뿐 아니라 올바른 이성과 풍부한 감성으로 소통하는 눈이라 정의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관찰의 눈, 존재의 눈, 시간의 눈, 소통의 눈이란 개념을 설명한다. 그럼 좋은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작은 것들을 내치지 않는 디테일 향한 마음, 자아를 드러내는 ‘나를 향한 마음’, 소소한 시간의 의미를 바라보는 마음, 대상과의 운명적 만남을 바라보는 마음이라 정의한다. 좋은 사진은 결국 좋은 카메라, 좋은 눈, 좋은 마음의 결과물임을 강조한다.3장에서는 좋은 사진을 위한 세 가지 기초를 설명한다. 구도, 포즈, 디자인이 그것이다. 우선 좋은 사진을 위한 구도는 사물의 질서를 제대로 보는 구도이고 그것들의 관계망을 소홀히 하지 않는 구도이다. 포즈의 의미는 결국 존재감이다. 사진 안에서 포즈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사진의 본질을 안다는 것이다. 포즈는 구도 속에 있다. 포즈의 총합이 구도이다. 사진 디자인은 사진적 구성과 표현의 총체이다. 좋은 디자인은 보기 좋고, 의미 파악이 쉽고, 기분 좋은 배치를 통해 교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구체적 내용으로 점과 선, 형태와 패턴, 강조와 균형을 구분하여 설명한다.4장에서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심화 요소인 노출, 초점, 심도, 원근감에 대해 설명한다. 우선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노출은 두 가지 영역에서 생각해야 한다. 물리적 노출과 존재의 노출이 그것이다. 적정 노출은 빛의 물리적인 양과 메커니즘의 작동을 넘어서서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표현의 영역과 창조의 개념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기술적으로 적정 노출은 가능하지만 적정 노출이 과연 간 자체다. 존재의 덧없음이다. 사라짐까지 바라보게 하는 빛이 좋은 빛이다.컬러사진에서 문제가 되어온 것은 기술적, 화학적, 광학적 프로세스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색의 본질과 개념, 감각과 정신의 문제였다. 사진은 삶의 색을 표준화하지 못한다. 사진이 삶의 색을 결정할 수는 없다. 사진 기술서에서는 대체로 사진의 색채 개념을 발색법, 색온도, 현상과 인화법, 컬러 밸런스의 네 가지 관점으로 본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고부터는 네 가지 색채 개념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통 기술서에서 말하는 색의 본질만큼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색채는 정신의 연상 작용이며, 깊이의 환영이고, 장조적 실험이라는 말이 색의 감각이다. 기술은 변해도 정신은 영원하듯이 사진의 컬러는 결국 눈이고, 마음이고, 정신이다. 좋은 사진을 위한 색은 빛과 색이 어떻게 수용되고, 또 색이 인간과 사물, 세상 속에서 어떻게 서로 관계 맺는지를 표현한 것이다.좋은 사진을 위한 조형에서는 조형심리와 사진표현, 사진디자인으로서 관념조형, 장식적 조형, 추상적 조형, 예술적 조형의 개념을 설명한다. 사진의 조형은 존재한 현실을 재구축하고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폭넓은 개념이다. 좋은 사진을 위한 조형은 인간이 대상을 보고, 형태를 보고, 색깔을 보고, 대비를 보고, 균형을 보고, 움직임을 보고, 침묵을 보는 다양한 심리적인 요소들을 포괄하는 형태심리, 지각심리, 인지심리 등 조형심리학의 영역이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 영상의 본질인 영감, 관조, 성찰이 예술심리학의 영역으로서 내재되어 있다. 사진의 참된 리얼리티는 사실과 현실을 묘사한 시각적 리얼리티라기 보다는 사물 그 자체를 바라보는 존재론적 리얼리티이다. 즉 피사체 이면에 감춰진 어떤 질서를 심리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들을 바라보고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예술사진의 조형성이고 예술심리학의 목표이다. 사진은 형상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술심리학에서는 이를 최적화하는 방법으로 시각적 조직화, 셈이다. 사진이 어려운 이유는 이렇듯 철학과 미학의 영역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좋은 사진을 위한 프레임에서는 프레임의 우연성과 필연성, 게슈탈트 프레임, 숄더샷 프레임, 엣지샷 프레임의 개념을 설명한다. 사진의 힘은 프레임에서 나온다. 프레임은 사진의 절대적인 조형미학이다. 사진은 프레임에서 시작하여 프레임에서 끝난다. 사진은 사진가의 프레임이다. 프레임에는 물리적인 프레임과 심리적인 프레임이 있다. 물리적 빛, 색, 조형의 실체는 물리적 프레임이 판결하고 정신적 관념과 관조는 정신적 프레임이 판결한다. 그 무엇도 프레임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다. 프레임이 모든 것을 쥐고 있다.우연을 필연이 되게 하는 것이 사진의 프레임이다. 사진의 프레임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고 우연을 감춘 필연이다. 프레임이 곧 사진가의 빛깔이고 음색이고 사진가 자체다. 프레임은 사진가의 관념이 조직화 된 것이다. 프레임은 사진가의 마음을 반영한다. 사진가가 보고 반응한 어떤 것의 반사이다. 그래서 프레임은 관념의 자극이다. 일차적으로 프레임의 형태는 단순할수록 좋다고 말한다. 프레임워크가 업그레이드되면 조직화 되어 나타난다. 프레임의 조직화는 단순성에서 은은한 복잡성으로 연결된다.눈은 단순한 구조일수록 영상 자극을 강하게 받아들이고 뇌는 이러한 감각을 일관된 이미지로 정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이 발견이 게슈탈트 이론의 시초이다. 인간의 심리는 대상을 바라볼 때 편하게 보고 효과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특정 형과 형태의 시지각 형태 이론이 게슈탈트 이론의 요체다. 게슈탈트 프레임은 유사성, 근접성, 연속성, 폐쇄성의 특징으로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최적의 프레임 구축방법의 하나이다.숄더샷은 말 그대로 어깨에 의지한, 어깨에 기댄 심리적 촬영기술이다. 주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즐겨 구사하는 프레임워크이다. 그 방법은 프레임 전경에 특정 피사체를 살짝 삽입시키는 것이다. 숄더샷 프레임은 게슈탈트 프레임과 정반대이다. 게슈탈트 법칙이 시지각적으로 사진은 무수한 선택으로부터 태어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선택이다. 선택은 사진의 의식과 무의식의 결과물이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가는 순간의 선택이 이미지의 삶과 죽음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선택 속에 있는 사진의 숙명을 헤아리지 못하면 회화나 문학, 음악과 사진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할 수 없다.예술은 자기 안의 세계를 통해서 주위의 세계를 재창조하는 일이다. 특별히 사진은 ‘복사’라는 재인식의 눈을 갖고 있다. 그 점에서 사진의 형식은 기본적으로 ‘구도’와 ‘구축’으로 구분된다. ‘구도’는 화면 안에서 재조립, 재배치로 이미지를 최적화하기 위해 파인더에서 이루어지는 시각적 배열이다. ‘구축’은 카메라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체의 시각적 구축으로서 연출이 여기에 속한다. 사진은 구성과 구축 모두를 허락한다. 물론 좋은 사진을 위한 연출은 부정적 의미의 현실 왜곡이나 조작과는 다르다. 사진가가 적극적으로 주제, 소재, 대상을 이끌고 통제하고 예견하고 구성하고 최적화하는 영화의 연출과 같은 고차원적인 행위다.사진의 프레임에는 두 가지가 있다. 렌즈를 들여다보는 파인더라는 프레임과 마음을 주고 담는 인식의 프레임이다. 전자가 눈으로 보는 물리적인 프레임이라면 후자는 정신적 프레임이다. 사진은 결국 마음이다. 누군가의 마음이 사진이고, 누군가의 생각이 사진이고, 누군가의 깨달음이 사진으로 나타난다. 사진은 보이는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보았던 것을 찍는 것이다. 이것이 사진가의 ‘인식’이다. 좋은 사진을 위한 인식틀도 그와 같다. 좋은 사진을 위한 인식의 틀 역시 앎과 깨달음이다. 눈이 이끄는 마음의 프레임이다. 눈으로 사진을 보지만 그 틀을 결정하는 것은 마음이다. 사진에서 인식틀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사진은 결국 포즈로 말해진다고 했다. 이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포즈를 바라보는 것도 인식틀이다. 좋은 사진을 위한 인식틀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진적인 틀이며, 사진적인 눈과 마음이다. 사진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7장에서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