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시즘 광고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 우리는 왜 에로티시즘에 매혹되는가Ⅰ. 서론최근 TV나 신문을 보면 여자의 나체를 연상시키는 광고 한 두 개쯤은 쉽사리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유교사상으로 인해 성에 대해 보수적인 우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성문화 유입과 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로 조금씩 대담한 광고가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자극적일뿐만 아니라 보는 이의 상상을 자극함으로써 좀 더 극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러한 광고들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에만 그칠까? 광고가 의도하지 않았던 다른 영향들로 인해 소비자들에게 불필요한 악영향은 없을까? 본 레포트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조금이나마 해답을 찾고자 에로티시즘 광고가 왜 생겨나게 되었으며 현재 어떤 모습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하고 있으며 남성, 여성 소비자에게 각각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또한 에로티시즘 광고가 단지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시키는데 그치는지 아니면 그 이상의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하 알아보려고 한다.Ⅱ. 본론1. 에로티시즘 광고의 발생 배경광고는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적인 작업을 하게 된다. 특히 소비자의 심리에 호소하며 심리상태를 변화시켜 구매 라는 구체적 행동을 유발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 끊임없이 많은 광고물들 중에서 소비자의 눈에 띌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기억에 남을 수 있어야 한다는 최초의 목적을 갖고 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광고에는 다양한 상징과 기호를 활용한다. 그 중에서도 모두의 공통된 인식 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그러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에로티시즘의 활용은 은밀한 감각을 전달하여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옆의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는 남자가 보드카 병을 보기만 해도 병 속에 여자의 누드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에로티시즘 광고는 기존의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형식의 아이디어를 벗어나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대되어 가고 있다.어떤 제품이 소비자에 의해 선택되기 위해서는 광고가 소비자에게 지각된 이후로 여러 단 계, 곧 상품에 대한 인식, 광고에 대한 태도, 상품에 대한 태도, 구매 의도가 생기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인지적인 영향은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광고를 알고 있는가와 광고를 기억하는가의 여부로 판가름이 난다. 특히 15초짜리의 짧은 광고를 알게 하거나 기억하게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성적 환기는 광고에 대한 주목률을 높여주며 브랜드명을 기억하는데 기여하기는 하지만 카피에서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회상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즉 그만큼 시각적으로 강렬하면 할수록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전달에는 실패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저 에로틱하기만 한 광고는 제품의 특성과 전혀 상관없이 소비자의 눈을 끌기 위한 선정적 광고는 될 수 있지만 소비자에게 상표나 제품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심어줄 수 있다. 선정성이 심한 광고가 약한 광고보다 윤리적인 면에서 부정적으로 느껴지고 상표에 대한 구매의사 역시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일단 형성된 부정적인 태도를 긍정적인 태도로 바꾸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분별없는 에로티시즘 광고는 오히려 역효과 인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로티시즘 광고가 이처럼 넘쳐나게 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광고에 대한 태도는 부정적일지 몰라도 무의식적으로 그 광고에 의해 환기되는 인간의 감정은 금기의 해제에 의한 쾌락의 감정이며 그로 인해 일단은 그 상품에 대하여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는 광고의 첫 번째 목적은 쉽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처럼 성에 대해 점점 개방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에서 지금 당장은 그것이 구매력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나중에 그 광고를 보고 자란 청소년들은 그 광고의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2. 에로티시즘이 에로틱한 이유그렇다면 에로티시즘은 왜 생겨나게 되었으며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가? 에로티시즘이란 그리스어의 에로스(eros)에 어원을 두고 있진 것으로 육체적인 사랑을 묘사하고 그것을 고양시키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결국 에로틱하다는 것은 성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성행위의 이미지를 환기시키거나 암시하는 것이 에로틱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에로티시즘이란 생물로서의 인간 본능적 욕망과 생식 행위와는 무관한 심리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그렇게 인간의 성적인 욕망을 자극시키는 것일까? 고대 사회에도 이러한 성적인 은유에 대한 에로티시즘이 존재하였을까?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성은 쾌락의 원천으로 간주되어서 성행위에 대한 금기는 거의 없었다. 이집트의 성 문화는 이들의 신화를 통해 이해 할 수 있는데 타문화와 달리 이집트 문화에서는 땅이 남신(Geb)이고 하늘이 여신(Nut)이었다. 이는 가장 이상적인 성 체위를 여성상위라고 생각하는 이집트인들의 생각으로부터 유래하였다. 또한 현대사회에서는 금기시 하고 있는 근친상간 또한 고대 이집트사회에서는 또 하나의 관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국토생성신화에서도 일본을 남신과 여신의 성행위로 인해 결과물로 보고 있다. 또한 고대 그리스사회에서는 현재는 금기시 되고 있는 동성애가 허용되었다. 이처럼 현대사회에 비해 성적인 금기가 적었던 고대사회에서는 지금과 같은 에로티시즘이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인간의 육체와 성의 담론이 은닉과 금기의 대상이지만 고대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로티시즘은 결국 문화적인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3. 에로티시즘 광고의 성 양분화 현상광고는 주로 여성과 남성 이렇게 성을 양분화하여 드러내게 되는데 보통 여성의 이미지는 두 가지로 나뉜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는 여성성을 일컫는 아니마(Anima)의 모습이기도 한데 아내, 모성으로서의 이미지와 섹슈얼한 대상, 혹은 악녀적인 위험한 여인이 바로 그것이다. 보통 아내, 모성의 이미지는 주부를 통해 그려진다. 앞치마, 치마, 스웨터 등으로 코드화되어 있는 이 존재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광고에서 보여지는장 많이 나타난 묘사라고 할 수 있는데 주로 배경은 가정이나 부엌이나 거실, 욕실 등 전형적인 여성의 장소이며 여성의 외적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가 내포됨으로써 여성의 아름다움은 다른 가치보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또한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 광고는 섹시한 신체의 노출을 통한 방법, 몸짓이나 표정에서 성적 암시를 나타내는 방법, 남성과의 성적 관계를 나타내는 방법 등이 있다. 주로 제품의 특성과는 관계없이 단순히 주의를 끌기 위해 여성의 육체를 도구로 삼아 장식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최근에는 남성의 누드의 등장도 빈번해졌다. 이제는 이런 남성의 누드가 하나의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경향은 여성을 섹슈얼화하던 과거의 경향에 대항한 반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성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와 여성의 사회적 위치 향상에 대한 반영이기도 하다. 또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고 성적인 주도권을 잡았던 존재로 묘사되었던 남성에 대한 전통적 이미지가 현대에 맞게 변화되어 간다고도 볼 수 있다. 또 가장 최근에는 소주광고에 5명의 남자가 전라인 채로 술집의자에 앉아 웃으면서 소주를 마시고 있고, 그 모습을 종업원인 여성이 바라보는 장면이 등장, 화제를 모았다. 과거에는 사회적 관습에 의해 굳어버린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대한 묘사가 광고 속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으나 최근의 광고를 보면 여성과 남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광고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더 이상 전통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광고 속에서의 여성과 남성의 모습도 다양하게 변화되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4. 에로티시즘 광고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에로티시즘의 사전적 의미가 성적인 이미지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환기하는 일이라고 밝힌바 있듯이, 광고에서의 에로티시즘 역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성적인 이미지를 환기시킴으로써 구매의욕의 유발시키려 노력한다. 에로티시즘 광고는 광고 전체의 분위기를 은밀하고 해방되어 성적 욕망에 노출된 가식 없는 인간의 얼굴로 되돌아가게 된다. 광고에서의 노출, 흐트러짐, 찢어짐, 눈부심, 포옹, 부르짖음 등은 인간의 원초적인 측면을 자극하고 문명의 껍질을 벗을 것을 유혹한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에로티시즘은 위험한 금기를 깨고 싶은 인간의 잠재의식을 대리만족시켜준다. 에로티시즘은 다시 말해서 사회화되고 문명화된 인간의 무의식의 공간을 자극한다고 할 수 있다.향수나 메이크업, 보석, 패션, 술, 담배 등 일련의 상품광고에 있어 에로티시즘은 종종 차용되는 기법이다. 이는 게슈탈트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완결성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 원리는 소비자가 광고를 보고 느끼고 생각할 때, 의도적으로 빈자리를 발견하도록 해서 스스로 그 의미를 완성시켜나가는 기법이다. 다시 말하면 욕망의 충족, 절정의 순간은 언제나 비워져 있고, 그 자리에 소비자를 초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고에서 남겨진 욕망의 충족은 대체로 상품의 구매로 이어지고. 상품의 구매와 그 완결의 단계로 설정되어 있다. 물론 상품을 취하고 나면 욕망은 어느새 다른 결핍을 만들고 만다. 욕망의 구조는 끊임없는 결핍에 의해 발생되며 그러한 인간의 욕망과 그것에 의해 생겨나는 구매력 또한 끝이 없다.인간의 마음에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 무의식이라고 말한 사람은 프로이트였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성 혹은 에로티시즘은 무의식 속에서 나르시즘적 고독, 우발성, 유희성, 도박성 등을 그 활동 근저로 삼고 있다. 지금 소비자인 우리는 성의 홍수에 빠져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광고매체에 의해 우리의 오감은 성적인 이미지에 노출되고 자극되고 있다. 특히 성을 이용해 만든 광고들은 무의식의 신화적인 측면을 우선 조건으로 하고 성적 충동을 일으켜 소비자들로 하여금 그 충동과의 결합을 유도하고 있다. 그들 광고가 가져오는 왜곡된 성 충동들, 이를테면 관음증에의 욕구라든가 성적 도착, 혼교, 자위행위, 동성애, 프리섹스, 변태 행위 등의 사실적인 암시는 있다.
인체생물학 과제- 인간의 지적 호기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우리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언뜻 철학적으로 들릴법한 이 질문에 물리적이고 실존적인 해답을 얻은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 모든 생물체들이 현존할 수 있는 이유를 간단하고도 우아한 자연 법칙을 통하여 증명하였다. 모든 생물체는 증식을 통하여 살아가고 유전을 통해 멸종하지 않고 후손을 만들어 낸다. 이 증식하며 유전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현재 우리는 그들이 밝혀낸 이 사실을 상식으로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있지만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이 해답을 밝혀내지 못하였다. 그것은 바로 DNA이다. DNA의 화학적인 구조는 이미 유기 화학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으나 그 거대분자의 입체적 구조는 알지 못하였다. 이 DNA의 뉴클레오티드가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끊임없는 과학자들의 탐구가 어느 조건에도 모순 없는 DNA의 입체구조를 설명해 낼 수 있게 되었다.1953년 4월 25일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단 한편의 논문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천지개벽이라는 표현은 이런 순간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디옥시리보핵산(DNA) 염의 구조를 제창하고자 한다. 이 구조는 생물학적으로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왓슨과 크릭의 논문은 과거 인류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머리카락에 들어 있는 DNA로 그 머리카락이 누구의 것인지 파악할 수 있으며 해충이 먹지 않는 옥수수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멸종위기에 처한 저 아프리카의 동물조차 구해낼 수가 있다. 더 나아가 내가 어떤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지 까지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 과정을 왓슨이 직접 회고한 것이다. 왓슨은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기까지의 그 시대의 과학자들의 모습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표현했다.멘델이 유전법칙을 발견한 이후, 그리피스 및 에이버리 등의 실험을 통하여 DNA의 중요성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고, 1950년대 초 여러 과학자들이 DNA의 구조를 해명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과학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으로 성취하는 학문이다. 그 사례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누가 DNA 구조를 밝혀내는가이다. 왓슨의 회고에 따르면 DNA의 분자구조를 해명하기 위한 세 과학자들의 그룹이 있었다.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모형을 가지고 이해를 시도했던 왓슨과 크릭을 비롯하여,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X선을 주요 도구로 삼아 데이터를 축적해 가며 연구를 진행한 런던 킹즈대학의 모리스 윌킨즈와 로잘린드 프랭클린, 그리고 칼텍에 있는 세계 최고의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이 바로 그들이다.비타민C를 맹신하여 하루에 비타민C를 세알씩 섭취하였던 생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은 남들의 결과를 스폰지처럼 흡수하며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젊은 왓슨과 크릭에 뒤져 DNA가 삼중나선이라는 큰 모순을 저지르고 만다. 그 사이에 왓슨과 크릭은 실제적인 DNA 구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또한 윌킨스 그룹은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이리저리 DNA에 X선을 쪼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왓슨과 크릭보다 DNA에 대한 배경지식이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해결방법에 너무나 집착해고 그 분자구조가 너무 복잡할 것이라 믿는 바람에 쉽게 구조를 밝혀낼 수 없었다. 반면 왓슨과 크릭은 선입관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기에 마음대로 독창적인 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윌킨스와 프랭클린은 왓슨과 크릭처럼 사이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과학이 머리로 하는 학문이라고는 하지만 감성적인 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연구를 팀으로 진행하는 이상 팀워크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왓슨과 크릭은 그들의 성격이 판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화가 없었다. 이는 이들이 다른 두 그룹을 제치가 DNA를 발견할 수 있도록 공헌하였다.“그와 나는 쉽게 친해졌다. 서로 관심분야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고, 우리 둘 다 천성적으로 너절한 생각을 참지 못하는 냉정함과 성급함, 다시 말해 젊은이다운 오만함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라는 크릭의 말에서 21세기의 생명과학의 운명을 결정지은 두 과학자의 만남은 우연한 듯, 운명적으로 시작되었다. 왓슨은 겉으로 보기에 상냥하고 겸손하며 조용해 보였고, 크릭은 목소리가 크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 책에서 왓슨은 심지어 크릭을 수다쟁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가 얼마나 대화를 좋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대 초반의 풋내기 생물학자 왓슨과 무명에 가까운 수다쟁이 물리학자 크릭이 만나 DNA의 구조를 밝혀낼지 그 누가 알았으랴 만은 그들의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생각한다면 그리 큰 비약은 아닌 것 같다. 물론 그들이 바로 도착지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DNA구조를 발견하기 까지 있었던 수많은 일들과 고난들, 역경은 모든 위대한 위인이 그러하듯이 당연히 겪어야만 했던, 또 이겨내야만 했던 것들이었다. 왓슨과 크릭은 다른 과학자들에게 비웃음을 사기도 하고 연구실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결론을 내린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신념이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게 만들었다.“중요한 것은 눈앞에 펼쳐진 작은 만족과 유혹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 그 보상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는 자세일세. 정해진 날짜, 정해진 장소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성공의 결실이 돌아온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만이 지금 당장의 작은 만족을 큰 성공으로 만들어갈 줄 아는 것이지.”라는 왓슨의 말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끝까지 그들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왓슨의 저 말은 위대한 과학자를 꿈꾸는 사람뿐만 아니라 어지러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해놓은 목표의 절반도 이루기 전에 수많은 유혹과 자기합리화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정해진 목표가 지금 자신의 상황과 너무 소원해 보일 경우에도 쉽게 타성에 젖어 어느새 초심을 잃을 수가 있다. 왓슨 또한 처음부터 DNA 분자 구조를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러한 배경지식에 있어서 거의 초짜인 상황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 무모한 도전이라 비판받으며 그 의지가 쉽게 꺾이기 마련인데, 왓슨의 문제에 대한 집념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또한 왓슨과 크릭은 다른 과학자들에 비해 과감하게 결정하고 생각하였다. 다른 과학자들은 DNA의 분자구조를 밝히기도 전에 미리 그 구조에 압도당해버려 간단한 자연법칙이 숨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왓슨과 크릭은 대담하게 DNA가 나선구조 일 것이라 가정하고 문제를 단순화 시키는 동시에 핵심에 빠르게 접근하였다.이런 그들에게 행운이 따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왓슨의 화학적 지식을 결정적인 곳에서 바로잡아주었던 제리 도나휴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DNA 구조를 밝혀내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가 하필 왓슨의 연구실에 함께 있었던 점은 설명할 수 없는 행운임에 틀림없다. 이로 인하여, 왓슨은 동일한 염기가 마주보고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아데닌과 티민, 구아닌과 시토신이 각각 마주본다는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게 된다. 그러나 누구나 이러한 행운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만약 왓슨이 자신의 고집을 완강히 주장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러한 행운이 찾아와도 DNA 구조를 밝혀내지 못했을 것이다.그들이 밝혀낸 DNA의 이중나선 구조는 유전물질로서 복제의 용이성, 생명체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돌연변이와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점 등의 여러 측면을 모두 한꺼번에 해결해주고 있다. 일단 그들에 의해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제기되고, 모형화에 성공하자, 그때까지 함께 경쟁하던 과학자들 모두는 이 결과의 우아함에 탄복하고 그들의 성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이중나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폴링도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감동된 모양이다. 다른 때 같으면 폴링은 그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구조를 옹호했을 것이지만 우리가 만든 상보적 DNA분자의 구조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생물학적 의의 앞에 그도 미련 없이 깨끗이 물러난 것이다.”
21세기를 위한 소비양식 - 녹색소비에 대하여Ⅰ. 서론환경과 소비자환경문제의 심각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환경오염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의 소비양식에는 그다지 변화가 없다. 자동차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전기와 물을 낭비하고, 일회용품을 이용하고 쓰레기를 대량으로 배출하여 환경문제를 심화시키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소비생활 모습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중요한 사회문제의 하나로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실제 생활 속에서도 이미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체험하고 있지만 에너지와 자원의 대량소비, 자연환경의 파괴는 여전하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것은 여전히 우리가 과거의 환경 파괴적 소비지향 가치관을 버리고 있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며 우리의 소비태도를 바꾸어야만 환경오염이 실질적으로 감소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한편에선 기업의 생산 활동 때문에 환경이 오염되고 자연 생태계가 파괴되며, 자원이 고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것은 얼핏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앞뒤가 바뀐 말이다. 결국 기업이 생산하려고 하는 제품은 다 소비자에게 팔기 위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생산과 소비는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무엇이 앞선 문제라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어렵다. 따라서 환경문제의 심화는 생산과정에서의 오염은 물론이고 소비과정에서 수반되는 오염에 의해서도 가중되고 있는 만큼 특정 부문을 떠나 생산과 소비를 포괄하는 모든 생활영역에서 이루어진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측면에서 소비자의 환경부문에 대한 관여는 당연하며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이 글에서는 소비자(개인)의 측면에서 환경문제를 어떻게 끌어들여 환경위기를 극복하는가 하는 점과 생산자(기업)의 측면에서 환경문제와 소비자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한다.Ⅱ. 본론1. 소비자(개인)의 측면우리가 소비의 내용과 규모를 줄이면 환경오염은 완화되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지많은 어렵다는 자각에서 ‘녹색소비’라는 인식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1) 녹색소비의 정의흔히 바람직한 소비생활을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상품정보를 충분히 알아본 뒤, 주어진 예산의 범위 내에서 계획을 짜서 가장 효용이 높은 제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소비생활을 합리적 소비라고 하는데, 이때의 합리성은 어디까지나 경제적 의미의 합리성일 뿐이다.그러나 오늘날의 같은 환경위기의 시대에는 소비를 할 때 돈의 가치를 제대로 사용하는 일 못지않게,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소비생활이 요구된다. 이처럼 환경을 고려한 소비, 그것이 바로 녹색소비이며, 이렇게 자연을 보전하며 환경오염을 줄이고, 자원을 아껴쓰는 소비생활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소비자를 녹색소비자(Green Consumer)라고 부른다.2) 녹색소비가 필요한 이유ㆍ 미래 세대의 욕구충족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지금과 같은 소비행태라면 인해 자원고갈과 환경파괴가 계속 된다면 우리 세대의 욕구충족을 위해서 미래 세대가 더 이상 소비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도 충분히 올 수가 있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앞선 세대들의 무분별함 때문에 자신의 욕구가 제한되는 불행한 삶을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야만 한다면 그것은 곧 인류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며 우리가 이룩해놓은 그 모든 업적 또한 사라지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소비를 통한 행복의 추구가 다음 세대에서도 지속적으로 실현되려면 녹색소비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녹색소비를 지속가능한(Sustainable) 소비라고 부르기도 한다.ㆍ 녹색소비는 진정한 행복을 추구한다.- 녹색소비는 자신의 욕구가 과연 진정한 필요에서 나온 것인가를 반성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바로 소유 욕구에서 한걸음 물러나,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 고민하는 것으로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의 의미를 새기는 실천행위이다. 그렇다고 해서 녹색소비가 소비행위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의 내용과 그것의 기반이 되는 욕구를 보다 친환경적인모여 서비스가 달라진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행동인 불매 운동을 버텨낼 생산자는 없다. 따라서 소비행위는 정부의 정책보다 더 유연하고 신속하게 생산과 유통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자원과 에너지의 흐름을 바꾸고, 친환경적인 사회와 경제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이 나의 소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ㆍ 더불어 살기 위해 녹색소비는 필요하다.- 녹색소비는 더불어 사는 지혜요, 삶의 방식이다. 자신의 소비행위로 인해 야생동물이 멸종되고, 소비과정에서 버리는 쓰레기로 인해 공기와 물과 땅이 오염되어 자연환경이 다시는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 소비자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나와 우리 가족만이 아닌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 자연생태계의 모든 생물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모색하는 것이 바로 녹색소비이다.3) 녹색소비생활의 실천녹색소비를 실천하는 것이 녹색소비생활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몸에 익은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비의 최대 목표 가운데 하나가 편의성 추구인데, 녹색소비는 환경을 고려하여 소비생활 과정에서 다소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재활용품을 따로 분리하고, 물과 전기를 아껴 쓰고, 자동차보다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들은 습관이 되기 전에는 조금 불편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꼭 필요한 만큼을 제대로 소비한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녹색소비생활을 실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싶다.- 녹색소비생활의 기본방향구매단계ㆍ구매욕구의 재음미ㆍ상품의 환경성 판단⇒사용단계ㆍ자원과 에너지의 절약ㆍ환경오염의 저감⇒폐기단계ㆍ폐기전 재사용ㆍ쓰레기의 감량 및 재활용2. 생산자(기업)의 측면1960년대 이후 정부의 근시안적ㆍ무사 안일한 태도의 개발정책과 더불어 기업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생산, 오염 물질 무단 방출 등의 행동들이 많은 자연환경의 오염과 파손의 원인이 되어 왔다. 그 결과 환경오염 유발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책임 규명은 물론, 그러한 기업에 대한 소비자 단체나 환경보호드(Green round) 등이 그들의 경영 및 마케팅 활동을 크게 제약하고 있는 실정이다.여기서 오늘날의 기업경영자나 마케팅관리자는 인간적 가치와 생활의 질, 그리고 사회의 공익성을 중시하고 소비자 만족과 자연 및 생활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사회시스템적 접근의 필요성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전개되어야 할 새로운 기업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마케팅 컨셉트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 같은 제반 마케팅 현상을 가리켜 그린 마케팅(Green Marketing)이라 한다.1) 그린 마케팅의 정의199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그린 마케팅에 관한 논의가 여러 지면을 통하여 이루어져 왔다. 그린 마케팅은 일반적으로 환경 보존에 관련된 기업의 제반 마케팅 활동을 일컬으나, 아직 그린 마케팅에 대한 용어의 개념이나 영역이 학술적으로 명백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다.따라서 그린 마케팅과 연관 관계가 있는 관련 단체나 학자, 매스컴 등에서 발표되었던 여러 개념들을 토대로 정의를 추적해보면 다음과 같다.마케팅 측면에서는 기업이 소비자를 단순한 제품 구매자가 아닌 하나의 상호공동체(相互共同體)적인 인식 아래 소비자의 욕구에 부합하는 상품, 서비스의 판매뿐만 아니라, 사회 생태학적 밸런스(Social-ecological Balance)와 인간복지의 지향이라는 보다 높은 차원의 콘슈머리즘(Consumerism : 消費者主權)을 수행하고자 하는 마케팅 활동이라 하겠다.2) 그린 마케팅의 국외 사례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그린 마케팅 개념을 도입한 선진 외국들도 아직 그린 마케팅 광고가 널리 보편화된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은 지난 15년간 환경에너지 보존과 공해 방지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지만, 세계 최대의 천연자원소비국이자 지구 환경 파괴자이다. 왜냐하면 그 경제의 규모 때문에 미국은 매년 세계 에너지의 1/4을 소비하고 있으며, 비록 인구는 세계 인구의 5%에 못 미치지만 세계 15%의 아황산가스, 25%의 이산화질소 및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또 미국인 한 명당 매일 되었으며, 소비자나 기업들 모두가 그린 마케팅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이에 미국을 비롯한 유럽, 일본 등 외국 선진 기업들의 그린 마케팅 전략 및 활동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 기업들의 그린 마케팅 광고가 지양해야 될 문제점을 검토하고 앞으로 전개되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야한다.ㆍ듀퐁(Dupont)- 모든 활동에서 궁극적으로 오염의 제로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듀퐁사에서는 1988년 3월 미국우주항공국(NASA)이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이라고 발표하자마자, 세계CFC시장 25%를 차지하면서도 오는 2000년까지만 생산하고 그 이후엔 생산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듀퐁사는 지금 최고 1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 아래 CFC를 대체할 완벽한 무공해 물질의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이 회사는 환경 분야의 비즈니스가 앞으로 유망할 것으로 내다보고 유독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한 안전 부서를 설치하였다. 200년이면 폐기물처리 대행 업무로 연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56년 전인 1938년에 환경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밝힌 바 있는 듀퐁사는 재활용 프로그램, 지역 사회 및 환경 단체와 연계된 환경 보전 활동, 생태계 보호 캠페인 등을 펼치고 있다. 듀퐁사가 주장한 기업 환경 보호주의(Corporate Environmentalism)는 와라드 회장이 ‘오늘날 산업계가 직면한 최대의 과제는 환경 보전'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와라드 회장은 주요 선진국들을 돌며 프레온 가스의 생산 중지 선언, 플라스틱 등의 수지 제품의 회수 비즈니스, 야생 동물의 서식지 보호를 위한 지구 관리 등의 공약을 발표하였으며 그 실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ㆍ 3M- 모범적인 공해 방지 기업인 3M사는 3P(Pollution, Prevention, Pays) 프로그램을 통해 공해 방지는 수익이 된다고 여겨 오염원에서의 사전 방지, 제품 설계시 환경 고려 등의 노력으로 환경 오염도를 절였다.
20세기 현대 음악이란 무엇인가?현대음악이라고 하면 현대의 범위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현대음악의 범위에 대하여 현재로는 별다른 정설이 없다. 현대음악이라는 말이 바로크 음악 등과 같이 음악사적 양식개념을 토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과 지금의 현재가 바로 현대라는 것, 그리고 보는 사람에 따라 큰 차가 생기기 때문에 명확한 정설을 짓기는 어려운 것이다. modern music, contemporary music, music of today 등의 외국어는 근대음악, 현대음악, 20세기 음악 등으로 번역되기는 하나 그것들이 가리키는 내용은 현대음악과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20세기 음악이 명확한 듯하나, 20세기의 모든 작품을 여기에 포함시킨다면 그것은 적당하지 않을 것이다.20세기의 음악을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한가지는 이제까지의 음악과 같은 양식인 조성음악이고 다른 한가지는 현대에 들어서면서 새롭게 생겨난 무조성음악이다.1. 조성음악조성음악 사이에도 작품마다의 차이점이 있지만 혁신적인 무조음악 양식에 비한다면 조성이 존재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20세기 전반부는 음악의 다양성에 발맞추어 민족적 차이는 계속 강조되었다. 19세기의 민족주의와는 달리 민속재료에 관한 연구가 보다 광범위하고 정밀한 과학적 방법으로 수행되었다. 수집된 견본들은 종족음악학이라는 학문분야에서 개발된 기술에 의해 객관적으로 분석되었다. 작곡가들은 다소 전통적인 양식속에 민속재료를 흡수하기 보다는 조성의 범주를 확대시켜 나갔다. 코다이, 바르톡 등의 작곡자가 있다. 이중 유년기에 헝가리에서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바르톡은 헝가리 민요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초기 작품은 주로 헝가리 민요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민속음악에 관한 그의 흥미는 때로는 헝가리 이외의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아라비아, 터어키, 세르보-크로아티아 지방에까지 확대되어, 이들 각 지방의 민요들이 바르톡 초기 작품의 소재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곡가는 드뷔시이다. 바르톡은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들을 연구하여 현대적 감각의 관현악법과 투명한 짜임새를 내는 효과들을 배우게 되었다.그의 음악에 대하여 알아보면, 그의 음악에서 선율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나, 5음 음계, 온음계, 유럽의 민속적 음계 및 3음 음계, 4음 음계, 아라비아 음계 등을 사용하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옥타브권 넘나들기(octave displace)"도 그의 음악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옥타브권 넘나들기(octave displace)"란 바르톡이 자주 사용하던 독특한 선율 양식으로 선율이 몇 개의 옥타브권을 넘나들며 진행되는 것을 가리킨다.) 리듬 또한 불규칙한 리듬패턴과 반복된 사용, 비대칭적인 박자구조와 계속적인 박자의 변화 등으로 민속 춤이나 말의 리듬 등을 반영하여 강한 느낌의 음악을 표현하고 있다. 복합리듬사용을 사용하였다. (복합리듬이란 polyrhythm, 대표적인 리듬이 2성부 이상에 동시에 사용되고 있는 현상을 말하며 크로스 리듬이라고도 한다.) 그의 음악의 짜임새는 대위법적인 짜임새로 되어 있는데, 여러 가지 다른 악기로 각 성부를 연주함으로써 음색적 대비와 풍부함을 얻을 수 있었으며, 실제 연주때의 음색의 조화를 위해 각 악기의 무대배치에도 신경을 썼다고 한다.20세기의 후기낭만의 과장되고 무형식적인 모습에 반대하여 균형잡힌 형식과 명확히 인식될 수 있는 주제를 사용한 작곡자들의 작품양식인 신고전주의적인 경향 역시 현대음악의 또하나의 특징이다. 여기서 신(Neo)이라는 단어는 고전주의적 특질을 패로디하거나 왜곡시키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신고전주의자들은 선조성 혹은 무조성까지도 사용한다. 신고전주의는 전통적인 기법의 부활 등의 개념보다는 당시의 과도함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한 반작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Neoclassicism (신고전주의): 1차 대전 후 전개되었던 운동중의 하나가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 등에 의해 시도된 이른바 신고전주의이다. 신고전주의라는 표현이 과연 적절한 어휘선택이었는가 하는 점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들 작곡가들이 옛음악의 기법, 특히 바로크 시대의 대위법과 고전시대의 분명한 형식적 개념 등에 크게 영향받은 것만은 사실이다. 많은 신고전주의 작품들은 옛 음악의 기법과 형식을 20세기 양식과 접목시켰다. )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스트라빈스키를 들 수 있다. 그는 러시아 태생으로 쇤베르크와 더불어 현대음악의 선구자로서 다양한 음악 양식을 통하여 20세기의 흐름을 주도한 작곡가이다. 20세기 초에 활동하였던 스트라빈스키는 후기 낭만부터 음렬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을 보여주었다. (*Stravinsky, Igor (스트라빈스키) : 러시아 태생으로 쇤베르크와 더불어 현대음악의 선구자로서 다양한 음악 양식을 통하여 20세기의 흐름을 주도한 작곡가. 20세기 초에 활동하였던 스트라빈스키는 후기 낭만부터 음렬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을 보여주었다. 시간 순서적으로 그의 작품경향은 원시주의, 신고전주의, 음렬주의라는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 , 등이 있다.)1920년대 후반에 음악가의 자기만족을 위한 음악과는 달리 즉시 사용할 수 있으며 특정 기능을 갖는 음악이 활발하게 작곡된다. 당시는 12음렬이 정립된 후 난해한 음악과 청중들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 실용음악은 서로 다른 이해력을 가진 다양한 청중들을 대상으로 한 쉬운 음악, 특히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집이나 학교 등에서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을 추구했다.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힌데미트, 바일, 아이슬러 등이 있다. (*Gebrauchsmusik(실용음악) : 가정에서 연주되는 음악, 춤음악, 영화음악, 라디오음악 등과 같이 실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음악을 의미하는 것으로 특히 1920년대 활발하게 작곡되었다. 독일의 음악학자 베쎌러에 의해 이론적으로 형성되었다. 이것은 존재의 의미를 오로지 미학적 독자성에 의존하는 절대음악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실제적인 사용을 그 목적으로 한다. 베쎌거는 삶과 동떨어지지 않고 쉽게 연주될 수 있는 과거(중세나 르네상스)의 음악을 이상적인 실용음악으로 보았다.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힌데미트, 바일, 아이슬러 등이 있다.)앞에서 열거한 음악가들 이외에 사티와 프랑스 6인조,라벨, 브리튼,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등의 음악가들이 있다.2. 무조성음악20세기 초엽에 무조성 양식은 처음에 악곡의 중간에 부분적으로 삽입되는 것이 보통이었고, 점차 무조성적 악장으로 발전하여 결국 작품전체가 무조음악으로 이루어졌다. 당시의 실험적 작곡가들은 무조음악만이 진정 새로운 음악적 표현방법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를 성취하기 위하여 혁신적인 양식(음렬주의)의 작품들을 창작하기 시작하였다. (*Atonality 무조성 : 말그대로 조성이 없는 것을 말함. 쇤베르크는 무조성대신 범조성이라는 용어를 사용. 조성이라고 하면 한 개의 음(으뜸음)이 몇 개의 음들을 거느리고 음악전체를 지배하는 위계질서를 가리키는데, 으뜸음이 한 개가 아닐 경우 이중조성 또는 복조성이라고 불렀다. 더 나아가 모든 음이 으뜸음이 되면 범조성이 되는데, 이럴 경우 전체를 지배하는 음은 결국 없어지게 되므로 범조성의 의미는 무조성과 같아지게 된다.) (*serialism 음렬주의 : 완전한 무조음악을 성취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의 하나로 12음 기법, 즉 순열적인 방법을 사용한 기법이 1923년 탄생한다. 쇤베르크를 비롯한 비엔나 악파의 작곡가들에 의해 시도된 의 기본취지는 반음계의 열 두 음을 똑같이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들 열 두 개의 동등한 자격을 가진 음들은 작곡가가 만들어 놓은 일정한 공식에 의해 체계적인 순서로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이라는 19세기의 작곡이론으로부터 음을 해방시키고자 했던 작곡가들의 노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무조성음악의 대표적인 작곡자로는 쇤베르크를 들 수 있다. (*Schoenberg, Arnold(쇤베르크) : 1874~1951.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초기에는 후기낭만적인 어법으로 작곡. 1910년대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과 함께 제2비엔나 악파 형성하여 무조음악을 작곡. 1920년대 이후 이라는 새로운 작곡기법을 창안하여 제2차 세계대전후의 예술 음악의 전개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후기낭만주의 작품 와 무조의 기법에 의한 명작 , 12음기법에 의한 등이 있다.) 쇤베르크의 음악양식은 20세기의 서양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과거의 음악과는 아주 다른 획기적인 새로움을 보여주었다. 의외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의 음악은 초기에는 조성을 어느정도 갖춘 음악이었다. 그의 음악 중 달에 홀린 삐에로라는 음악은 가장 알려진 곡이다. 표현주의적인 면모와 무조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청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가볍고 풍자적인 악곡이다. 가수는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말하는 것도 아닌 "Sprechstimme"라는 새로운 소리의 표현 수단을 사용하는데, 악곡의 정서를 잘 대변해주는 듯 하다.
『음악미학』요약1. 미학? 음악학· 음악미학 - 음악미학의 개념음악이란 무엇이며 음악적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바로 음악미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그 음악미학은 음악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의 논의이기도 하다. 이러한 음악미학에 대한 생각은 고대부터 20세기까지 많은 변화를 겪으며 다양한 견해가 존재해왔다.이란 단어는 희랍어 ‘감성에 의하여 지각하는’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18세기 중엽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A. Baumgarten)이 저서『미학』(1750)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그는 이 개념을 통하여 감성에 독자적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다. 그는 인간의 감성이 개념적 인식의 불분명한 전단계가 아니라 ‘지각 속에서 다양한 것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다양한 표상들을 하나의 전체로 간추리는 완전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고, 이때 미(美)는 감성의 완전성을 보여주는 근거로서 제시되었다. 미학은 이러한 ‘감성적 지각이론’에서 감각의 완전성을 보여주는 ‘미의 연구’로, 그리고 이러한 ‘미의 연구’는 미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예술의 영역’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어 나갔다.음악학은 음악을 학문으로 보고 음악적 정보를 수집, 분류, 평가하여 이론체계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음악에 관련된 모든 분야를 연구한다. 1885년 아들러(G. Adler)가 처음 이 용어를 사용한 이후, 아들러의 분류에 의해 음악학은 ‘역사음악학’과 ‘체계음악학’으로 구성되었다. 20c에 들어서 음악학의 갈래와 체계는 많이 변화되었지만 아들러의 분류는 아직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음악미학의 관심은 사회적 시대변화에 따른 미학적 변화를 수용하여 독자성을 인식하고, 각 시대의 미학적 특징과 현 시대의 미학적 변화를 파악하는 것으로 옮겨졌다.음악미학은 음악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감상의 과정과 원인을 해석하여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음악미학의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 사상이 나오는데 그리스 사상은 의 출발점이 되며 이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음악작품을 창작함과 동시에 음악의 아름다움이 탄생되고, 이러한 아름다움를 포함한 음악작품은 누구나 그 작품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은 동일한 작품을 들으면서도 서로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두 가지 입장에 따라 다른 연구 방향의 미학이론이 생겼다.음악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경우는 대부분 음악을 청취할 때이다. 이러한 생각을 취향미학 혹은 수용미학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미적 경험은 작품을 만들 때도 가능하다. 이것을 연구하는 미학 이론을 창작미학(시학)이라고 한다.음악미의 구성에 대해서는 과 이라는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은 음악이 어떤 감정적 내용이나 개념·사상 등을 표현하는 예술로 본다. 이에 따라 내용미학은 이라고도 불려 지고, 또한 표현 내용이 감정과 관련될 경우 이라 불린다. 은 음악의 형식 자체만을 미적 대상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미학자 가운데는 이러한 두 가지의 분리를 비판하고 이를 종합하는 경향도 존재한다.3. 음악은 외부 대상의 모방인가? - 모방미학서양의 고대 예술은 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원리는 음악도 적용될 수 있는데, 특히 음악미학의 분야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음악 미학적 개념으로서 모방은 “음악외적인 요소를 어느 정도 유사하게 음악적으로 재현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예술의 본질을 모방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자연을 떠올릴 수 있다. 음악에서는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직접적으로 모방하거나 그 인상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좋은 예로 비발디의 사계를 들 수 있다. 비발디의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개의 소네트를 바탕으로 각각의 음악은 제목에 걸맞게 각 계절을 묘사한다. 이러한 “시각적·청각적 현상이나 자연의 현상 등을 모방에 근거하여 묘사하는 음악”을 이라고 한다.자연모방미학은 외부적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도 관련된다. 인간을 하나의 자연적 존재로 본다면,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도 자연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 있다. 모방미학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와 함께 다른 미학 경향의 출발점을 이루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4. 음악은 감정의 표현인가? - 낭만주의 감정미학음악과 감정과의 연관성은 16세기 이후 비로소 집중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17~18세기 중엽까지 모방이론의 측면에서 발전되었다. 18세기 말 이후 19c 낭만주의 시대에 지배적인 미학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박켄로더는 음악을 “모든 예술은 우리의 가장 깊숙한 감정에 어떤 형태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며, 이 가운데 음악은 가장 뛰어난 예술이다. 음악은 우리의 일상적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월적인 세계이다.”라고 할만큼 음악과 감정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중요시했다. 슈만은 예술의 본질을 시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일상적 삶의 세계에 대립되는 은 모든 예술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경지라고 주장하였다. 음악의 미학적 위치가 이렇게 높아진 것은 무엇보다도 음악을 감정의 예술로서 파악한 낭만주의적 사고관 때문이다.5. 음악 자체를 위한 음악은 존재하는가? - 절대음악의 미학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단지 음악을 즐기기만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오페라를 감상할 때 굳이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음악만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는 음악을 들을 때 어떤 기능이나 목적 없이 듣는다는 것과 언어적 요소가 배제된 음악의 가치도 인정한다는 사고가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은 , 과 연관된다. 서양음악은 종교적 바탕 위에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음악의 자율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 그러나 베토벤 시대에 이르면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는 음악의 자율성이 확립된다. 자율성이 확립된 음악은 언어와의 분리, 음악이 주는 영향에서 벗어나 음악작품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19세기에 들어 음악미학에서는 순수한 기악음악을 높이 평가하게 되는데, 이러한 음악을 이라 불렀다. 절대음악 사상은 19세기 중반 한슬릭의 음악미학 이론에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이러한 음악미학 사고의 변화로 오늘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성악을 더 높게 평가하는 입장 역시 계속되었다. 이러한 논쟁은 궁극적으로 음악과 언어와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람들은 기악음악의 예술성도 높이 평가하며, 기악과 성악의 예술성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7. 창작자의 음악미학 - 음악시학이란 작품의 탄생 과정을 학문적 방법으로 접근하여, 음악 작품과 작곡가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연구를 하는 음악학의 한 분야이다.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poietike techne(숙련성 또는 제작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시의 창작에 관한 이론을 의미한다. 즉, 시학이란 이다.시학은 역사적 흐름에 따라서 강조점이 달라졌고, 연구의 방향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작품의 창작과정을 살펴보면,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양한 개념들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개념들은 포괄적으로 과 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 두 측면의 실제적 작용의 예로 대조적인 두 작곡가를 들 수 있다.피츠너의 경우 음악은 감정의 예술로 이해되고, 음악의 창작은 인간의 끝없는 상상력과 열정, 충동 그리고 영감에 이루어진다고 믿어왔다. 즉, 예술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라는 무의식적인 것, 신적인 것이라는 견해이다. 더 나아가 피츠너는 형식론 또는 작곡론 같은 작품창작의 일반화된 법칙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피츠너의 음악관은 ,,등의 이론으로 음악미학의 한 중심을 이룬다.영감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제시한 은 우선적으로 음악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예술은 이성의 산물인 과학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는 음악을 수 개념으로 설명했고, 중세?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에도 음악이 논리적? 수학적 작업의 결과임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20세기 들어 더 두드러졌다. 을 강조한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시학을 그 예로 살펴보면 스트라빈스키는 작품의 창작과정을 신비로운 어떤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생산 과정으로 이해 음악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나의 문화적 테두리 속에서 행해진다. 에서는 ‘연사나 연주가 언어의 힘 또는 음악의 힘을 통하여 얼마나 효과적으로 청중의 정서를 움직이는가’가 중요시 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연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었다.1800년을 전후로 연주론의 미학적 경향이 에서 으로 바뀌었다. 음악작품은 작곡가로부터 분리되어 그 자체로서 고유한 가치를 갖는 것으로 인정되었고, 이 때문에 작품의 의미를 다양하게 재구성해 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20세기에 이런 상황이 더욱 두드러졌다. 기술적인 면에서 전축, 녹음기의 발명 이후 음반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여, 이로써 실제적인 음악 연주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직접적인 음악 감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일회적인 현상이었던 는 음반의 활성화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존재하게 되었고, 제작된 음반은 고도의 기술 발전에 힘입어 실제 연주와 거의 가까운 생생한 음을 재현하게 되었다.배커는 “음악 연주는 그 근원과 본질을 고찰하여 볼 때 이다. 왜냐하면 음악이란 본래 순간의 울림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음악작품은 음의 순간적인 울림을 통해서만 진정한 존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며 연주자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독자적 권리를 강조한 를 제창했다.파츠너는 연주자를 예술작품의 음악적 요구를 표현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으로 이해하며, 그러므로 연주행위란 해석이 아니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아도르노는 음악연주의 가장 중요한 척도를 에 두고 있는데, 작품을 구성하는 구조, 테크닉 등 세세한 작곡 기법적 이해가 연주의 기본 조건이라고 본다. 따라서, 작품의 구조를 명확하게 아는 철저한 이 연주에 앞서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9. 청취자의 음악미학 - 수용미학음악에서 수용미학 연구는 작곡가나 작품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수용되었는가에 중점을 두게 된다. 음악작품의 예술성이 수용자의 작품 수용 속에 내재해 있으며, 그러한 통찰 하에 작품 이해의 기준을 수용자의 에 두고, 음악 작품의 수용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