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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돌 기획서
    인사돌의 Leadership 강화를 위한 IMC 전략 Proposal우리나라 사람의 다발생 질병으로는 입원은 ①치질 ②폐렴 ③백내장 ④급성충수염 ⑤위장염 순 이고, 외래는 ①감기 ②치과질환 ③결막염 ④위십이지장염 ⑤피부염 순으로 나타났다. 치과질환의 양대 산맥은 충치와 더불어 잇몸질환이다.-국민건강보험공단,2002 건강보험통계연보-잇몸질환은 풍치라 불리며 나이가 들면 자연히 생기는 증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이 보편화되면서 치아 뿐만 아니라 잇몸관리에도 신경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머니투데이 2005.02.03-분업 최대수혜자?..제약사 평균 77% 성장 국내 36개사, 분업전-후 5년 동안 평균 76% 매출 늘어-데일리팜,2005,06,03-약제비 적정화 방안 실시와 한미 FTA 의약품 협상 등 정책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의약품 시장의 고성장세가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 –LG경제연구원,2007년 제약산업 이슈와 전망-환경분석잇몸질환 질병의 증가와 함께 잇몸 질환에 대한 많은 관심이 생겨나는 추세입니다. 그와 더불어 한미FTA와 약제비 적정화 같은 악재 속에서도 내년 제약시장은 계속 성장할것이라는 전망 입니다.잇몸 질환 치료제의 시장은 30여종이 넘는 제품과 함께 성장의 길로 접어들어 올해 500억 원에 도달할 전망 지난해는 450억 원 수준으로 매년 10%내외의 성장이 예상된다 .-KPANEWS 2004.09.16-2005년 OTC 제약시장에서 인사돌은 매출액(97억원)으로 5위 이가탄은 매출액(48억원)으로 20위 파라돈탁스는 매출액(15억원)으로 94위-2005년 OTC 100대 제품 시장점유율 보고서, 디지털보사-잇몸치료제 시장의 규모을 500억이라고 추정하였을 때 2005년 생산실적 기준으로 인사돌은 270억원으로 58%의 시장점유율 이가탄은 170억원으로 34%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2005년 생산실적 100대 품목 원개발사 현황 보고서, 디지털보사-시장분석인구 노령화 추세와 함께 점점 성장해 가는 제약 효능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보임 TPO의 적절성 치약과 혼란 의약제품으로서의 이미지 약함 치약과 혼란생약성분 (옥수수 불검화 검출물) 유사제품 중 낮은 가격대의 제품 낮은 인지도 싸다는 것이 비지떡이라는 인식이 강함가그린(동아제약) 가글액 시장에서의 카테고리브랜드가 되어가고 있음 입냄새제거라는 확실한 효능애 대한 인지 잇몸질환에 대한 효능은 거의 없음가글액 시장페이스트형 치료재 시장경쟁분석경구형 치료제파라돈탁스도 우리와 같이 생약성분의 잇몸치료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치약이라는 덫에 걸려 치료제이기보다는 치약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그린은 구강청결과 입냄새제거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사돌과는 얼굴 붉힐 일은 없을 듯 합니다. 우리와 같이 경구형 치료제 시장에서는 덴큐는 우리 인사돌과 성분과 수입국이 같은 제품입니다. 아직까지는 조용하고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단계라 아직까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가탄은 3대매체를 통한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공격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가 탄탄 이가탄'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메시지로 광고에서도 강력한 힘이 있는 듯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신경쓰이는 경쟁자 입니다. 결국, 우리 인사돌이 더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시장의 Reading Brand로서 효능,효과에 대한 신뢰감 형성과 生藥성분의 옥수수 검화 추출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장기복용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으며 다른약과 함께 복용 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인사돌잇몸볍엔 인사돌 시리고 붓고 피날 때 인사돌 인사돌 권할 만 하죠? 써보면 다알아요신뢰감을 주는 중년 모델들을 기용하여 인사돌이 필요한 상황을 이미 인사돌을 사용하여 해결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인사돌 사용에 대한 만족감으로 인해 인사돌을 권유하는 모습을 통해 인사돌만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이순재, 선우용녀,박인환, 견미리, 한진희천하잇몸, 무적잇몸 잇몸 탄탄 , 이가탄메시지송대관과 태진아를 모델을 기용하여 이가탄을 선택한 이유?N=60이러한 결과가 발생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 일 수 도 있습니다. 올해 2006년 상반기 광고비를 보면 우리 인사돌은 63억 이가탄은 111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광고비를 올려야 할 까요? 아닙니다! 시장의 Reading Brand로서 2위 업체의 광고비의 절반만 투자해도 1위의 자리를 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같이 큰 소리 치다가는 신규업체들의 시장진입에 대한 도움을 주는 꼴이 됩니다.그리고 우리는 계속 잇몸병 질환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통계에 따르면 20세 이상 성인의 과반수 이상이 다양한 잇몸질환 초기상태에 있으며, 35세가 지나면 4명중 3명은 잇몸질환에 걸린다고 알려졌다 40세 이상의 장노년층에 이르면 80~90%가 잇몸질환을 앓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따라서 중년 이후에 치아를 뽑게 되는 주 원인이 잇몸질환 때문이다.-대한치과의사협회 2003 구강보건주간 홍보자료-6,70년대 한국사회의 산업화를 이끌어 왔던 세대로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보이며 노년기의 건강에 관심이 많은 세대 남자는 신문접촉률이 높으며 여자는 드라마를 선호하고 건강관련 의약품에 대한 광고에 관심이 많은 편소비자분석그동안 우리는 5064세대 분들의 잇몸통 해소를 위해 노력 해 왔습니다.직장이나 가사일에서 은퇴를 시작하는 세대로서 보수적, 전통적 사고방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건강에 관심이 높은 세대 남자는 TV시청을 즐기며 여자는 드라마를 선호하고 남녀 모두 건강 관련 의약품 광고에 관심이 많음5059세대의 특징6064세대의 특징-한국방송공사,2006년 소비자 행태조사-하지만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는 영원한 10대 20대가 있지만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영원한 10대 20대는 없습니다. 10대가 되면 20대, 20대가 되면 30대, 30대가 되면 40대가 되듯이 우리의 소비자들도 시간이 흐르면 없어질 수도 있고 다시 생겨 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집중하고 있는 5064세대들은 현재의 소비자들입니다될 수 있게 우리는 노력해야 합니다.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생약성분의 치료제로 강조할 수 있다. 생약성분의 치료제로 감기약과 같이 다른 치료약과 함께 복용하는 것 이 가능하다. 틀니를 할 경우에도 절대적으로 유용하다. (특히 국부의치의 경우 틀니의 지주치를 튼튼하게 유지하여 줌으로써 훌륭한 의치가 되도록 도와준다.) 이를 뺀 자리가 아무는 기간을 단축시켜 준다. ( 또한 이를 뺀 자리의 잇몸이 훌륭하게 각질화(角質化)되도록 도와 준다.) 치조골의 정부(頂部)의 모양을 보기 좋게 해 준다.경구용으로 부작용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있다. 제품의 가격이 비싸다. 잇몸을 치료하는데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잇몸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으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국민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음 잇몸질환에 대한 관심 증가 잇몸질환치료제의 선점적 브랜드로서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인지도가 높다. (2005년,2006년 브랜드 대상) 타제품들이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잇몸질환치료의 중요성을 알리는 광고 를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선두 브랜드로서의 효과) 잇몸치료제의 시장의 대형화와 두꺼운 소비자층 (2080세대 가능) 일반 약 방송광고 허용 등 각종 규제 완화로 제약 분야 광고 경기의 호전 빠른 인구의 노령화 주세로 제약 시장의 꾸준한 성장치과 협회와의 불협화음 치과의사 72%, 잇몸약 권할 생각 없다 주된 이유로는 과장적인 광고로 인하여 소비자들의 약물 오납용에 대한 우려StrengthWeaknessOpportunityThreatenSWOT우리는 이가탄에 맞서는 광고전략은 피하며 광고비 지출액은 지금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생약성분의 효능을 제시하여 먹는약에 대한 부작용의 우려를 해소해야 합니다.잠재 고객층까지 호의적으로 다가서기 위한 PR전략에 집중해야 합니다.치과의사협회와 불협화음을 해소 할 수 있는 관계 개선에 대한 전략이 필요합니다.생약성분으로 인한 효능제시 구강관련 질병 치료 후 이용하는 모습 의학관련 단체에서 제안하는잇몸약은 일시적으로 세균의 활동성을 떨어뜨릴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치아 및 잇몸 질병은 외과적인 치료가 근본적인 치료방법이다 근본적인 처방이 어렵기 때문에 치과에서 시술 후 의사 처방전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 인사돌의 효능을 볼려면 장기잔의 복용이 필요하므로 과다 섭취는 환자에게 좋지 않다고 주장 2)인사돌의 의견 인사돌은 생약성분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거의 없어 장기간 투여해도 안전하다. 인사돌의 효능은잇몸의 기반인 치조골이 허물어지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무너진 치조골을 다시 쌓아준다 파괴된 치주인대를 재생시켜서 치아의 비정상적인 흔들림을 막아주며 잇몸을 강화시켜 주는 효능을 갖는다 그러므로 의사의 처방 없이도 소비자들이 직접 구매, 복용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갈등 극복을 위한 PR전략2.목표 1)인사돌은 생약성분으로 인해 의사의 처방 없이도 복용하는데 안전하다는 메시지 전달 2)인사돌의 생약성분의 효능과 안전성을 잡지와 신문에 기사 3)Callaboration(통합적협상전략)을 위한 서로 相生의 길을 모색 3.전략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우리는 단지 사기치는 약장사다. 우리가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해도 아마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위기까지 오게 된 우리들의 잘못도 크지만 너무 우리 잘 났다고 해도 안 될 것이다. 일단 식약청 및 유명 연구기관의 연구 결과를 통해 우리 인사돌의 생약성분은 절대 안정적이며 잇몸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임을 알린다. 여러 학술지와 외국 학술지에다가 인사돌의 생약성분이 잇몸 질환에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린다. 분명히 효과가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치협회에서 이 문제를 부각시키면 언론에 자료를 유포하여 여론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만든다. 만약에 우리가 언론을 통하여 유리한 여론이 되면 분배적/제로섬/경성 협상전략을 실행 할 수도 있다. 인사돌에게 관심을 가지는 소비자층들에게 가장 많이 접촉되는 신문과 잡지에다가 생약성분의 효능을 기재시키고 설득시킴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의사들의how}
    경영/경제| 2007.01.04| 11페이지| 3,000원| 조회(1,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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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여 답사기
    한국 전통 문화의 이해 -찬란했던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시작하면서장소-충남 부여 일정-2006년 4월 14일 부소산- 부여국립박물관- 정림사지 답사목적- 1)잃어버린 백제의 발자취를 따라서 2)과제에 의한 보고서 제출부여에 대한 소개(역사관점)부여라 하면 한국민의 80% 이상이 백제의 수도였던 곳임을 알고 있다. 중학교 이상을 졸업한 사람이면 부여는 금강의 하류에 있는 충남의 군 소재지로 알고 있을 정도로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다. 우리 나라의 250여개가 넘는 시ㆍ군 중 100여 년 이상 한 나라의 수도였던 곳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이다. 전국의 관광객이 부여를 찾아와 낙화암을 보고, 국립부여박물관을 보고 간 사람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이처럼 잘 알려진 백제의 마지막 수도가 당나라 군대에 의하여 멸망되었다는 사실도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부여는 백제시대로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명칭이 바뀌지 않은 오랜 군으로서의 역사를 또한 가지고 있다. 신라의 수도 계림은 신라가 멸망한 후 경주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지만 부여의 명칭은 백제시대 이래 그대로 지금까지 군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부여라는 나라는 우리 나라에서 고조선 다음으로 가장 오래 전에 세워져 4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이다. 결국 고구려에 통합되어 그 역사를 잃어버린 나라의 하나이다. 이 부여에서 금와왕이 동쪽으로 옮겨와 지금 길림성 연길 지방에 동부여가 되었고, 그 일부가 다시 내려와 졸본성에서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그리고 그 지배층 일부가 다시 한강 남쪽으로 내려와 백제를 건국하였고, 백제는 한강유역의 위례성에서 고구려의 팽창정책에 밀려 공주로 천도하였다. 무령왕이 중흥을 이룩하기 위하여 천도의 계획을 하였고, 그 아들 성왕대에 수도를 부여로 옮겼다부여에 대한 소개(역사관점)부여는 공주와 함께 백제문화의 흔적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좋은 의미에서 부여는 완성된 백제의 문화모습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백제 패망의 아픔도 고스란히 전해 준다. 부여에는서 다시 오르니 생각만큼이나 넓지는 않고 많이 가파르지도 않아서 거의 두 시간 정도에, 대충 산성 전체를 돌아다녀 볼 수 있었다. 산성 안에는 여러 사적지를 볼 수 있었다. 사비문을 거쳐 들어 가서 맨 처음 마주쳤던 곳은 삼충사였다. 삼충사라는 이름 그대로 세 명의 충신이 모셔져 있는 사당이다. 이 세 충신은 성충, 흥수, 계백으로 이 곳에는 이들의 위패와 영정이 이 곳에 모셔져 있다. 외삼문, 내삼문, 사우로 구성된 삼충사는 1957년에 처음 세워졌고, 1981년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 세 충신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면, 성충은 좌평으로 있으면서 의자왕이 주색에 빠져 국운이 위태로워지자 국왕의 자만과 주색이 국운을 위태롭게 하니 삼가라고 국왕에게 건의하였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투옥되었다. 그는 옥중에서도 왕의 잘못을 시정하기 위하여 단식을 하고, 죽을 때 글을 올려 왕에게 간곡히 부탁하였다. 흥수도 성충이 의자왕에게 바른 말을 하다가 투옥된 후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자왕에게 주색을 삼가고 국가 기강을 바로 잡으라고 충언을 하였다가 유배를 당하였다. 계백은 기울어 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결사대 5천명을 뽑아 거느리고, 자기의 처자들을 손수 칼을 뽑아 죽여 나라를 위해 굳게 목숨 바칠 것을 굳게 맹세하고 황산벌 싸움터로 나갔다. 그의 결사대는 김유신의 5만 군사와 4차례나 용감히 싸워 이겼으나, 신라의 나이 어린 화랑 관창의 전사에 흥분되어 노도처럼 밀려드는 신라군에게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그의 5천 결사대와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다.부여 둘러보기(부소산)이 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영일루가 있다. 영일루는 해를 맞는 곳이란 뜻으로, 사비성의 동대가 되는 영일대가 있던 자리이다. 지금 건물은 1964년에 홍산에 있던 홍산문루를 옮겨 지은 것이다. 동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해가 뜨는 것을 보기에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바로 근처에는 군대의 곡식을 보관했던 창고인 군창지가 있다. 1981년, 82년의 발굴조사 결과 불에모습이 아름다웠다. 백화정은 1929년 궁녀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낙화암의 원래 이름은 타사암이었는데, 궁녀를 꽃에 비유하여 후에 낙화암이라고 미화한 듯 하다. 고란사는 절 후면의 암벽에서 자라고 있는 고란초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절은 고려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낙화암과 인접해 있고 고란초와 약수로 유명한데 특히 이 약수는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즐겨 마셔 어용수라고 불리웠다. 특히 고란사의 종소리는 부여 8경 중의 하나이다.부여 둘러보기(부여 국립 박물관)아까도 언급했지만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내가 부여에 살고 있을 당시였다. 그 어린 나이에 박물관이 이사를 간다고 하여 정말로 신기해 했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다시 와 보니 금성산 기슭에 넓게 자리한 박물관은 93년에 새로 옮긴 것이다. 현 나이 26세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 때를 떠올리니 세월의 무상함마저 느끼게 되었다. 국립 부여 박물관의 뿌리는 백제 문화와 유적을 보존하려고 1929년에 부여 지방 사람들이 만든 부여 고적 보존회에 있다. 이런 민간 차원의 노력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1939년에 '조선 총독부 박물관 부여 분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옛 뿌리로서의 백제에 관한 일본 사람들의 관심이 깊었기 때문이다. 1970년에 부소산 기슭에 새 건물을 지었다가 이후 새로운 발굴과 연구 성과에 따라 금성간 남쪽 넓은 터로 옮긴 것이다. 현 박물관은 무척이나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고 박물관 주위의 조경도 깔끔하게 잘 조성되어 있었다. 옛 것을 보고자 온 곳이 너무나 새로운 것이라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은 박물관을 들어간 순간 사라져버렸다. 박물관 안의 수 많은 유물들에 매혹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처음 우리 일행을 반겨준 것은 앞마당에 당당하게 서있는 비석받침인 거북이였다.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이 거북은 등에 지고 있던 비석이 없어진 줄도 모르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누구의 비문이 적힌 비석이었는지 몸들이 있는가 하면 능산리 무덤에서 발견된 금동제 관장식, 금 귀고리 등의 금속 공예품들, 부소산 근처 왕궁터에서 발견된 사람 얼굴무늬가 새겨진 토기 조각 들이 전시되어 있다. 더욱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로 다름아닌 백제 금동 대향로였다. 그 정교함과 세밀함은 같이 답사에 참가했던 모두를 놀라게 했다. 과연 이런 대단한 작품을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 없는 대단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대 향로는 능산리 고분군과 나성사이의 백제 때 집터를 발굴하던 중 집터 바닥 진흙 구덩이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키가 64cm나 되는 이 거대한 향로는 머리를 들어 올린 용을 받침으로 삼아 피어나는 연꽃 위에 봉래산이 솟아나고 그 꼭대기에 봉황이 한 마리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향로에는 각종 동물과 사람들이 연꽃 주위에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7세기 초의 것으로 여겨지는 이 향로는 백제 사람들의 사상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그 사상을 이처럼 섬세하고도 자신있게 조형적으로 형상화해 낼 수 있었던 백제 문화와 자신감을 일깨워준다. 많은 역사 유물에 관한 것 중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곳은 바로 박물관이다. 만져서 망가뜨리자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 시대의 손 때와 삶이 숨쉬어 있는 유물들을 유리 진열관에 넣어 보관 하는 것은 정말 나로 하여금 숨을 멎게 하는 것만 같아서 주로 박물관 답사는 잘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그 때의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자 갔었지만 새롭게 단장한 현대식의 모습은 이런 나로 하여금 다시 한번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아쉬운점이 있다면 거북이만 빼고 나머진 다 낯설다는 인상을 받은 것.부여 둘러보기(정림사지석탑)부여 박물관 옆에 자리잡은 정림사지. 부여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어린이들의 그림그리기의 경연장이 되어 주고 있는 것 같다. 정림사지 앞에는 내가 다녔던 백제 초등하교도 있다. 정림사지는 말 그대로 정림사의 터이며, 이 곳에는 국보급 문화재가 3개 있다. 정림사지 석탑, 석불, 연지가 그백제에서 10일 넘게 불길이 치솟았다고 한다. 탑의 세세한 부분 역시 세월의 풍파를 견뎌오느라 마모되고 어긋나 있었다.부여 둘러보기(정림사지석탑)정림사지 5층 석탑은 현재 국보 제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데, 한 때는 1층 탑신에 새겨진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신라 연합군과 함께 백제를 점령한 후에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해 남긴 비문으로 인하여 소정방이 세운 탑으로 오해되어 평제탑(平濟塔: 백제를 평정한 탑)이라 불렸다. 그러나 그간의 학술 조사와 연구 결과에 의하여 그 오명을 벗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이름만 들어오던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백제의 우수한 석조 축조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는 점, 그리고 당과 연합한 신라에 의해 멸망한 백제의 유물이라는 데에서 패망한 국가의 문화가 얼마나 말살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 마지막으로 일제에 의한 식민지 강점 시기 동안 사리함이 도굴되어지고 이것이 시멘트로 메꾸어져 식민지 문화재의 시련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찬란했을 연못터와 절. 이제는 덩그러니 불에 탄 탑만 남아 있어 모진 시련 속을 견뎌 온 한반도의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마치면서16년 전 부여를 떠나오고 나서 계속 가고 싶었던 부여였다. 일개 대학생이 얼마나 바쁘면 바쁘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늘 가지 못 하고 있었다. 사실 과제 때문에 갔다 오기는 했지만 시험이라는 강한 압박감에 이끌려 내가 살던 흔적 조차 돌아보지도 못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궁남지 조차도 돌아보지 못하고 다시 청주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의 개인적인 견해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삼국의 역사 중 우리가 흔히 배우게 되는 교과서 내용에는 백제의 관한 내용이 많이 부족 한 것 같다. 내가 듣기로는 이것도 식민사관의 영향이라고 한다.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 일제의 교육아래 교육되었던 사람들에 의한 후손들의 재교육. 이러다 보니 우리의 역사 중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부분들이 사라지고 }
    인문/어학| 2006.12.02| 11페이지| 1,000원| 조회(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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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택동의 비사를 읽고 나서
    중국 공산당 시대를 연 중국의 국부 모택동. 과연 모택동은 어떻게 중국을 공산당으로 통일시켰을까?이 책에서는 공산당이 어떻게 자신들보다 강한 장개석의 국민당을 무력으로 누를 수 있었는지는 단순히 게릴라 전법에 의했음을 간단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결하고, 공산당의 중국 통일 이후 모택동이 중국을 어떻게 석권했는 지와 최고 권력부의 암투에 대해 다루고 있다.이 책의 시작은 모택동의 공산당의 정신무장에 의한 근대화에 실패이후, 개방정책을 실시하려는 유서기와 등소평에 의해 탄핵되면서 시작된다. 탄핵된 모택동은 산동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재기를 기도한다.그 첫번째 시작은 군부의 실질적 지휘자인 양평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칼과 총이야말로 자신의 실질적 세력이 될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서둘지 않았다. 상대가 방심하기를 기다리며 차근차근 준비하였다.이와 동시에 준비한 것이 사회적 명분이었다. 이를 위해 마련한 것이 아내 강청과 언론계의 실력자인 장춘교를 통한 홍위병 조성이었다. 이 모든 것이 철저히 게릴라식이었다. 상대에 대해 긴장감을 풀게 만들고 점 조직을 통한 전체적 혁명!! 홍위병은 그 역할을 간단히 했다. '옛것을 모두 깨어버리자'라는 구호 아래 학생들에게 파고들어 마침내는 거칠 것이 없는 세력이 되었으며 결국 유소기가 심어놓은 조직들을 철저히 깨부수었다.이때 군부와 함께 당당히 복귀한 모택동, 그는 준비와 마찬가지로 서서히 정적들을 숙청하고 공산당을 장악한다.20세의 혈기 왕성한 그 때 날 사로 잡았던 모택동에 관한 나의 견해 중 큰 틀은 다음과 같다.첫째, 모택동이라는 한시대의 영웅이라 불리우는 작은 거인의 치밀함이다. 12억 당시 중국 인민을 벌벌 떨게 만든 홍위병의 3년 시기동안 모택동의 인기는 식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홍위병을 통해 정적들을 숙청하면서 중국 공산당 시기의 암흑기를 만들면서도 국부로서 모든 인민들에게 추앙받는 그에게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치밀함이 있었다. 홍위병의 조직에 관하여도 결코 직접적인 명령은 하달하지 않고, 여건을 조성함으로서 부정적 결과가 발생했을 경우에 그 책임을 벗어났다. 결코 조급하게 서둘지 않음도 그의 강점 중에 하나였다. 서서히 일을 추진함으로서 사회적 진통을 완화시켜 결국 우민들을 속인 것이다. 먼 미래를 바라보며 서서히 치밀하게 준비하여 카리스마로 정적을 축출하고 때론 진정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루만져 줌으로서 실패한 정책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책마저도 다시 정계의 거두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둘째, 인간의 권력욕에 대한 재발견이다. 연극배우 출신의 모택동의 부인인 강청이 홍위병의 거사와 언론조작을 통해 정치의 맛을 알게 되고, 남편의 후계자가 되어 중국 최고의 권력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스스로 중국 최고의 여황제였던 측천무후를 자처했다. 그 만큼 그녀는 거만해졌고, 인민을 우습게 앎으로서 결국 버림받았다. 모택동과 당중앙부와 인민으로 부터....세 번째, 등소평의 처세술이다. 철저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당조직과 군부에 실력자들과 진솔한 교제를 하였던 그는 개방정책을 택하면서도 홍위병 사태를 벗어날수 있었고, 숙청의 거센 피바람도 피할수 있었다. 등소평은 실력자이면서도 자신이 서야 할 곳과 피해야 할 자리를 확실히 알았다. 무리한 욕심도 버렸다. 모택동 비사는 결코 중국 공산당 내지 한 인물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모든 정치의 보이지 않는 내력이고, 이를 구성하는 군상들을 그려 놓은 것이다.이 책을 읽으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각인되는 건... 아마도 권력을 둘러싼 암투의 비정함과 그 권력 암투에 이용되고 치이는 인민들의 처지일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정치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것이 정치의 진정한 목표인지를 알게 만드는 책이 바로 모택동 비사이다. 진보와 보수를 이야기할 때, 자주 회자되는 문장이 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에 망한다` 이 말을 잠시 인용해 보면, 공산주의는 너무나 관념화 이론화된 이념에 망하고 자본주의는 이상을 잃고 너무나 현실중심적인 이념에 무너진다고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본주의는 지나친 물질 중심의 사고로 인해서 인간성 망각 등 물질 만능의 부조리를 양산해 냈다면, 공산주의는 지나친 이념중심으로 또한 자율적 인간성을 억제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극과 극의 통한다고... 극좌와 극우는 이런 면에서 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관념적인 인민대중은 이미 황제의 천한 백성들로 전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모택동은 과연 인민대중을 어떻게 생각했을까?문화혁명과 대약진 운동에 대한 일말의 궁금증과 호기심은 충분히 만족되는 내용이다. 그의 지도력과 카리스마 밀어붙이는 추진력은 높이 평가하고 사실대로 말해 그 같은 지도자는 한세기에 한두명 정도 나올까 말까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의 철권통치는 많은 인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었으며, 어찌 보면 중국의 가능성을 후퇴시키기도 했다. 특히 문화 혁명의 경우는 설익은 젊은이들을 광기로 휘어잡아 마구잡이로 행해진 뒤틀린 혁명이었던 것같다. 그들 자신의 전통문화를 경시하고 그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한낯 쓰레기 취급하며 규격화 공장화한 그 혁명이 오늘날 중국에 남겨준게 과연 무엇인가? 중국 문화의 자존심에 생채기만 남긴 혁명을 오늘날 역사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살펴보면 충분히 알수 있을 것이다.비록 순간이지만, 문화대혁명을 희망의 칼날로 여긴 적이 있었다. 68혁명을 이끈 프랑스의 지성들은 북경행 비행기에 올랐고 핑퐁외교와 함께 모택동 어록이 하버드를 비롯하여 북중미의 대학가를 휩쓸었다. 문화와 교육을 통한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는 자본주의적 인간소외의 대안으로 비쳤다.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어느 순간부터 중국 인민이 되어 모택동에게 빠져들면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그들과 같은 감정을 느껴본 듯 하다. 그렇게 외적인 면의 모택동만을 이해해 가다가 인간적인 면의 모택동의 변심을 보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중국 인민들이 따랐던 지도자라고 하지만 모택동 그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인민들 앞에서는 손을 흔들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 있는 모습만을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치열한 정치 무대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끊임없는 고뇌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고뇌들 후에 모택동은 대단히 교묘한 방법으로 주위 정치인들을 숙청하고 또 등용한다. 대약진운동의 실패 후에 1인자의 자리를 유소기에게 넘기고 2인자의 자리로 물러나는 듯 이때부터 모택동의 진정한 정치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의 권력에 대한 욕심은 이때부터 더욱 잘 드러난다.모택동은 그 이후 문화대혁명을 일으킨다. 이는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수천만 명의 인민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이로 말미암아 권력의 중심에서조차 밀려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내린 최후의 수단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모택동의 정치적 노선에 큰 오점이 발견된다.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고 정치적 입지 확보를 위해 무고한 인민들을 희생시켰다. 이상적인 정치인이란 단 하나의 희생 없이 모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국가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이상적인 생각이고 현실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라 하겠지만 모택동은 무고한 인민들을 너무도 많이 희생시켰다. 대중동원이란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해 홍위병이라는 이름의 군대를 일으켜 자신의 정치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들을 표적으로 해서 하나 둘씩 제거해 나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모택동은 절대 1인자의 위치에 나서지 않고 관조하는 입장에 서 있다. 여기서 또 한번 그의 능력에 놀란다. 자신은 절대 나서지 않으면서 대중을 일으키고 움직이는 것... 이러한 그의 교묘하고 치밀한 능력이 오랜 기간 그를 중국 최고의 통치자의 위치에 올려놓은 듯 보인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지적하는 정치인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고 모택동의 과오를 지적하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고 혁명 노선을 수정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모습의 중국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한 권력자의 꺾일 수 없는 자존심이 너무도 큰 희생의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희생자들 중 상당수가 중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지식인들이라는 점이다. 한 사회가 안정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계 각층의 지식인들이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모택동의 가장 큰 과오는 바로 이 점이 아닐까? 모택동은 역시 독재자였다. 급기야 홍위병들은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사태는 너무도 심각해진다. 무고한 희생을 통해 권력을 지켜야 할 만큼 권력이란 위대한 것일까?
    독후감/창작| 2006.12.02| 4페이지| 1,000원| 조회(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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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에이지에 관하여
    뉴에이지음악과 크로스오버에 대하여먼저 뉴에이즈라는 음악을 알기 전에 뉴에지에 관한 용어부터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크로스오버는 뉴에이지음악의 장르에 일부 포함되기에 뉴에이지 음악의 분류에서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뉴에이지란?무신론과 물질주의가 만연한 20세기 말엽, 사람들은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기존의 사회 ·문화 ·종교에서 더 이상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여 영적 공허를 느낀 사람들이 이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이것이 뉴에이지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운동이다. 현대사회에 새로운 신문화운동으로 대두되는 이 운동은 종교적 영역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운동이 개개인의 영성적 변화, 즉 인간의 내적 능력을 개발시켜 우주의 차원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의식을 확장시켜 신비적인 것에 도달하는 것에 주된 관심을 보이는 이 운동은 의식확장을 위해서 여러 종교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요소와 과학 ·심리 ·기술 ·정신분석 등을 혼합시킨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영성적인 면에서는 방랑자적 성격을 가지며,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작은 그룹을 이루고 있으므로 정확하게 정의하기가 어렵다.뉴에이지라는 개념의 어원은 점성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운동을 창시한 이들에 의하면, 현대는 새로운 세대(New Age)로서 물병자리[水甁座]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새 시대, 뉴에이지를 물병자리 시대, 즉 아쿠아리우스(Aquarius) 시대라고도 부른다. 점성학에서는 태양과 여러 행성에서 일어나는 회전순환운동이 한 궤도를 완전히 마치려면 약 2만 6,000년의 시간이 걸리며 이 궤도를 황도(黃道)라고 한다. 이것은 다시 12좌로 나뉘는데 서양의 별자리인 사자 ·게 ·쌍둥이 ·황소 ·양 ·물고기 ·물병 ·염소 ·궁수 ·전갈 ·천칭 ·처녀로 황도12궁이라 한다. 이 한 좌(座)에서 다른 좌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2,100년이 걸리는데 이것을 에이지(age), 즉 한 세대나 황도라고 한다. 현대는그러나 이 운동의 주된 관심사는 종교의 진리추구가 아니다. 그들은 인간 안에 있는 무한한 잠재력과 신적 능력을 개발시켜 자기의 무지에서 해방되고, 치유받으며, 결과적으로 종교를 인간의 필요와 상황에 따른 치료방법으로 변하게 하였다. 이러한 뉴에이지의 운동의 흐름은 현대인의 생활 속에도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확산되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클래식과 팝뮤직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뉴에이지음악은 심리치료, 스트레스해소, 명상음악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인간 의식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장개발함으로써 신격화된 비신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배꼽》《히말라야 성자들》 등의 뉴에이지 계열의 책들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뉴에이지음악이란?Tv나 CF, 영화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일 정도로 우리 가까이에 있는New Age Music 에 대해서 한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하지만 그 성격과 정의를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도록 명료하게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음악전문가나 평론가들 조자도 섣부르게 단언지어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모든 역사에서도 알수 있듯이 사람이 살아가는 일들은A면 A, B면 B라는 식으로 단정지어질 수 없다. New Age Music 은 눈에 보이는 규범이나 특별한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마디로 정의하여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이런 New Age Music 을 두고 음악적인면 을 강조한 이가 있는 반면 종교적인 면 을 강조한 이도 많다. 보면 좀 예민한 부분도 없지 않다.단지 듣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에 그 정의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것이다. 거의 정설로 굳혀진 뉴에이지 음악의 계보는 프로그레시브 음악에서 부터 시작한다. 단어의 원래 의미인 '진보' 라는 말만 기억하자. 이 뉴에이지 음악은 여태까지 흐르던 음악사조와는 약간 다르게 '진보'했다.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대중음악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감각적인 락(rock)계열의 음악에 반감을 느낀 음악인들이 자신의 음악세계를 새롭게 열고자 하는 의도 속에서동한 호소력,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경지를 추구:인간의 내면적 정서를 작곡 )의 음악이 이에 해당된다.3)World Music팝에서는 "월드뮤직" 이라는 말이 "제3세계의 음악" 즉 비영어권의 음악들을 일컫는다. 뉴에이지음악에서 말하는 "월드뮤직"이란 어떤 나라의 민족 또는 민속의 음악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그래서, 음악의 느낌은 음악에 사용되는 악기 뿐만 아니라 멜로디로 인해 이국적 이다. 대표적인 음악가 또는 앨범은 바로 쿠스코의 아퓨리맥(Apurimac). 그룹의 가장 유명하고 또한 가장 대표적인 앨범이 아퓨리맥인데, 잉카제국이나 남미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또한, newage music의 한 장르로써 빼놓을 수 없는 음악장르가 있는데, Enya(Eithne Ni Bhraon-ain) 등이 속해 있는 celtic(켈틱) music 이다. 북서유럽쪽의 민속 음악을 통칭해서 일컫는다. 현대적인 사운드로 재구성된 celtic music으로 가장 유명한 음악가는 riverdance의 존휠른 (John Whalen)이 있다. 아메리카의 인디언 음악같은 분위기의 음악들(native America)도 있다. 대표음악가로는 카를로스 나카이가 있다.4)Environmental Music환경음악을 일컫는다. 이 음악적인 특성은 자연의 소리(음향) 등을 샘플링해서 음악으로 만든 것들이다. 맑은 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시냇물 소리, 파도소리, 바람 소리 등을 융합하여 하나의 음악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Samuel Reid의 Sanctuary 시리즈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5)Meditation명상음악 또는 치유음악(마음) 도 뉴에이지 음악에 속한다. 뉴에이지음악이 처음 만들어진 이유가 바로 "명상"을 위해 "동양사상"을 결합을 시도해서 태어났다고 한다. 명상을 위한 음악들도 뉴에이지음악에 속한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국내에선 "김도향" 이라는 음악가가 속한다. 유럽의 몇몇 음악레이블(Fonix, Kuckuck)도 이런 명상음악등을 발표하고 있다.6)Crossov음악 관계자들이 공유했던 이러한 느낌에는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 새롭고 신비한 음악은 또 하나의 장르가 탄생할 수 있는 기운을 싹트게 했으며 70년대 중반 이후의 그러한 음악적운동은 결국 여러 아티스트들을 자극, 뉴에이지 뮤직을 낳게 했다.이후 조엘 안드레스,스티븐 핼펀을 비롯, kitaro,andreas vollenweider, micheal hedges,george winston,david arkenstone 등과 같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뉴에이지 뮤직은 크게 발전되었다. 또한 76년 윌리엄 애커맨에 의해 소규모 레이블로 출발했던 윈댐 힐 레코드사가 이후 계속해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자 를 비롯해서 , 등 신생 레이블들이 속속 생겨났고, 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음악 시장에도 새로운 장르인 뉴에이지 뮤직의 열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이러한 뉴에이지 뮤직에 대한 미국 음악 팬들의 관심도는 새로운 소프트웨어인 CD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후 더욱 더 커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미국 전역에서는 뉴에이지 전문 라디오 방송국 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 중 특히 KTWV The Wave(94.7 FM)의 경우는 로스 앤젤레스를 중심으로 남부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들은 24시간 뉴에이지 뮤직을 비록, 관련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폭넓게 소개했는데 지성파 음악 팬들을 위한 지성적인 음악을 소개한다는 이들의 방송 취지가 성인 음악 팬들에게 크게 어필, 미 서해안 지역의 방송가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기도 했다.한편 80년대 중반 이후 뉴에이지 뮤직계에는 새로운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뉴에이지 뮤직의 초창기부터 활약했던 기존의 아티스트들 외에 70년대 록계에서 크게 활약했던 뮤지션들이 일련의 뉴에이지 앨범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뮤지션들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yes 출신의 키보디스트 릭 웨이크먼 (Rick wakeman)을 비롯해서 록시 뮤직 출신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프랑크 자파(Frank zap우가 빈번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이러한 초기 뉴에이지 앨범 들은 일반 레코드 점보다는 요가 용구나 명상용 기구를 전문으로 파는 상점에서 팔리 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비록 대중적으로 큰 반응을 얻지 못했으나 이러한 부류의 음악들은 당시 새롭게 만들 어진 신서사이저와 같은 악기의 출현으로 좀 더 새로운 스타일로 변모 해 발전하기도 하였고 또한 초기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오면서 재즈나 록 그리고 클래식, 팝은 다른 장르의 음악과 크로스오(Crossover)되면서 발전을 계속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지금은 뉴에이지음악으로 불리는 음악들이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뉴에이지라는 독립된 장르에 포함되기보다는 컨템퍼러리 재즈, 프로그래시브 록, 클래식 팝, 영화 음악등으 로 특새에 따라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즉 뉴에이지는 그 특성을 팬들에게 제대 로 부각시키지 못해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었다.이처럼 뉴에이지 음악이 독립된 장르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것을 하나의 장르로 승화시킨 뮤지션이 바로 죠지 윈스턴 이다. 자연에서 받은 인상을 담담하게 피아노의 선율로 옮겨놓은 그의 음악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자 그의 음악이 출반된 윈드햄 힐 레코드사의 음악딜이 주목받게 되었고 죠지 윈스턴 이외의 윌리엄 애커만, 새도우 팩스 등 다른 윈드햄 힐 소속의 아티스트의 음악도 일반인들에게 쉽게 표출 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윈드햄 힐처럼 가장 기본적으고 전통적인 악기를 정형적으로 사용해오던 여러 뉴에이지 아티스트뿐 아니라 전자 악기와 같은 새로운 악기로 뉴에이지 음악 을 시도해온 장메쉴 자르, 클라우스 슐츠, 반젤리스와 같은 아티스트를 이제는 뉴에이지 카테고리에 자연스럽게 포함시케게 되었다.그리고 마침네 19887년 그래미 상에서 일렉트릭 하프의 청아한 음색으로 인간적인 약동감과 투명한 자연 세계를 훈훈한 유머니티로 묘사한 스위스 출신의 안드레아스 폴렌 바이더(Andreas Vollenweiger)가 초대 최우수 뉴에이지 연주상을 수상하면서 뉴에이지 는 있다.
    예체능| 2006.12.02| 10페이지| 1,000원| 조회(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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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지셔닝을 읽고 평가A+최고예요
    들어가면서마케팅을 하는 사람이나 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포지셔닝이라는 것에 대해서 익히 들어왔을 것이다. 나는 관련과에 몸담고 있는지라 어느정도의 숲은 볼 수 있었다. 늘 수업시간에 들어왔던 이 포지셔닝. 나는 과히 이 포시셔닝을 이렇게 정의 하고 싶다. ’포지셔닝은 소비자의 마인드에서 자사의 이익창출에 있어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 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마케팅 노력이다’이것이 비록 확실한 정의는 되지 않을 테지만 작은 예비 마케터로서 내 나름대로의 해석이다.이 책에서는 과거의 이론과 실제의 적용사례등을 함께 제시함으로서 더욱더 나의 흥미를 자극 시킨 것 같다. 20년이 지났지만 이 책에 살아 숨쉬고 있는 마케팅의 원리는 아직도 빛이 바래지 았았다.커뮤니케이션과 포지셔닝. 그리고 시점에 맞는 마케팅 포지셔닝의 기법은 마케팅의 기본 원리이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일 것이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포지 셔닝이라는 것이 이렇게 상품이나 광고에만 해당하는 개념은 아 니라는 것이다. 포지셔닝은 우리 자신, 우리 회사 그리고 크게는 국가로 까지 그 개념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이 책에서 포지셔닝의 새로운 접근 방식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광고를 기본 맥락으로 삼고 있다.1장부터 정리를 해 나가면 1장에서는 포지셔닝의 정의와 요즘시대의 정보의 홍수로 인한 포지셔닝의 필요성에 대하여 서술되어 있다.2장에서는 ‘마인드에 대한 공격’에 관한 것이었다.과학자들은 사람들의 ‘감각 과하증’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람은 개인마다 한정된 양의 감각밖에는 수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따라서 일정 한계를 넘으면 두뇌가 백지 상태가 되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런 과잉사회에선는 최대한 메시지를 단순화 시켜서 소비자의 마음을 끌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3장에서는 ‘마인드에 대한 진입’에 관한 것으로 사람들의 마인드에 가장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첫 번째가 되는 것이다.달의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인류 최초의 사람은 닐 기업은 마케팅 리더에 대항할 수 있는 대체 포지션을 찾아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성공하든 못하든 열세가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모두 허츠나 코카콜라와 같은 리더가 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 많은 기업 가운데서 최초가 되는 것이다.역사적으로 볼 때, 대게 마인드에 가장 빨리 침투한 브랜드는 2위에 비해 두 배, 3위에 비해 네 배나 많은 장기적 시장 점유율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마케팅 리더라 해도 결코 최초가 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에 신제품을 내놓은다면 그 신제품은 일반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한다. 마음을 바꿀 그 어떤 강력한 이유가 생기지 않는 한 소비자는 가장 최근에 구입한 브랜드를 또다시 선택하기 마련이다.7장에서는 ‘추격자의 포지셔닝’으로서 리더에게 효과적인 전략이 반드시 추격자에게도 효과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추격자들은 대응 전략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리더를 모방하는 것도 결코 대응책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추격자에게도 기회는 주어진다. 다음과 같이,“Chercher le Creneau" 빈틈을 찾아, 그 자리를 메워라.빈틈을 찾기 위해서는 뒤집어 생각하고 흐름에 역행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럼 빈틈을 찾는 몇 가지 전략에는 ①크기의 빈틈 ②고가의 빈틈 ③저가의 빈틈 ④기타(성별, 타이밍, 연령, 시간, 유통, 대량 이용자) 등이 있다. 이와 함게 빈틈을 찾을 때 저지르기 쉬운 일반적인 오류는 소비자 마인드가 아닌 공장의 빈틈을 메우려 하는 것이다. 또, 연구소나 실험실에서 위대한 기술 혁신이 성취 된다 해도 마인드에서 받아들일 빈틈이 없으면 실패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마케팅 전문가들 가운데서는 “빈틈을 찾아라”라는 컨셉을 거부하고 모두에게 호소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브랜드의 수가 얼마 되지 않던 예전에는 의미가 있었지만, 오늘날에A는 라디오 이외의 많은 사업 부분에 진출 함에 따라 이니셜 기업명의 필요를 느낀 경우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머신즈(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는 사업적으로 성공하고 유명해져(원인), 그 이니셜만으로도 모든 사람이 어느 회사를 이야기하는지 바로 알 수 있게 되었다(결과). 그러나 이 과정을 거꾸로 밟으면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다. 별로 성공하지 있지 않은 회사(원인)가 이니셜을 써서 돈을 벌고 유명해지기(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IBM같은 성공사례만 보고 이니셜을 사용하는 것이 상당히 효과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잘못을 하고 있다.11장에서는‘무임승차의 함정’이라는 것을 다루고 있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면 거의 언제나 기존의 잘 알려진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많은 실패를 불러 일으킨다. 잘 알려진 이름은 그것이 뭔가를 상징했기 때문에 잘 알려진 것이다. 그 이름이 이미 잠재 고객의 마인드에 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널리 잘 알려진 이름은 분명하게 정의된 특정 사다리의 맨 위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제품을 성공시키려면 새로운 사다리는 새로운 이름을 필요로 한다. 매우 간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진 이름을 사용하자는 압력은 늘 거세게 몰아친다. “소비자는 잘 알려진 이름을 잘 받아들인다. 우리의 소비자와 잠재 고객들은 우리의 상품과 회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다라서 신제품에 우리의 이름을 붙인다면 그들이 보다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이런 식의 라인 확장 논리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지난 역사는 이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입증한 바 있다. 여기에는 시소의 원리가 적용된다. 하나의 이름을 서로 다른 두 상품에 사용할 수는 없다. 한족이 맞으면 다른 한쪽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12장에서는‘라인확장의 함정’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라인확장은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분명하고 완고한 자기 합리적 사고의 결과이기에 잠재고객의 관점에서, 라인 확장은 일반품은 암을 유발한다”는 나쁜소식에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몬산토는 화학산업의 리더로 인정받기 위해서 리더가 해야 할 일인 화학산업을 대변하고 나섰다. 일반 대중에게 화학 제품의 위험성은 물론 혜택에 대해서도 말하는 화학제품의 실상을 바로 알리는 데 노력했다. 몬산토는 매년 450만$ 이상 씩 투자 해, 1979년 지로부터 “화학적 이미지 씻어내기”라는 제목의 칭찬기사까지 나왔다. 대중들의 화학산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도 36%에서 2년만에 42%로 상승시켰다.기업 포지셔닝을 효과적으로 실행해 선도자의 인식을 심는 데 성공하면, 그것은 곧 현금으로 직결된다. 화학제품이든 업체든 은행이든 자동차 제조업체든, 고객으로부터 리더라는 인식만 얻어내면 항상 경쟁자보다 더 나은 성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15장은‘국가의 포지셔닝’으로 벨기에의 예를 들었다.벨기에가 펼친 ‘별 세 개 등급의 도시’전략에는 세 가지 중요한 사항이 담겨 있다.첫째, 이미 여행객의 마이드에 자리잡고 있던 암스테르담이라는 목적지에 벨기에를 연결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포지셔닝 프로그램에서든 강력히 구축된 기존 인식을 이 용할수록 그만큼 자기의 포지션 학립이 유리하다.둘째, 관광객의 마이드에 자리잡은 또 하나의 실체인 (미술렝 가이드)를 이용함으로써 주장의 신뢰도를 높였다는 점이다.셋째, 방문할 만한 다섯 개 도시를 부각시킴으로써 벨기에를 진정한 목적지로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비록 결과는 책임자간의 커뮤니케이션 혼란으로인해, 프로그램을 완전히 구현하지 못해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였지만 이 것은 포지셔닝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교훈이 될 것이다.16장은 ‘제품의 포지셔닝’에서 밀크 더스(Milk Duds)의 예를 들었다.밀크 더스는 영화관에서 즐겨 먹는 캔디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 브랜드를 비트리스 푸드 사는 어린이층 전반으로 확대하고 싶어했다.모든 포지셔닝 프로그램의 첫 번째 단게는 잠재 고객의 마인드를 들여다 보는 것인데, 밀크 더스의 잠재 고객은 캔디 가게를온은 두 가지의 전략을 놓고 고민 중이었다.1. “메일그램 : 전보와 같은 효괄르 그 몇 분의 1 값으로!”2. “메일그램 : 중요한 메시지를 위한 새롭고 빠른 우편 서비tm!”이 두가지중 어느 한 가지를 판단과 추정만으로 결정할 수만은 없었다. 웨스톤 유니온에 있어 메일그램은 미래의 성패가 달려 있는 중요한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대적으로 실험한 결과 첫 번째 전략이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메일그램의 수익은 매년 증가되 8년 후에 메일그램의 수익은 연간 300만$에서 8000만$로 뛰어 올라 있었다.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서비스 뒤의 포지셔닝 전략이었다. 인쇄물이든, 라디오든, 텔레비전이든, 모든 메일그램의 광고는 한 가지 핵심 컨셉을 토대로 만들어졌다.“전보와 똑같은 효과를 그 몇 분의 1 값으로!”많은 점유율을 가질 수록 더욱더 일관된 자세를 유지하여야 한다. 메일그램의 경우처럼...18장에서는‘롱아일래드 은행의 포지셔닝’에 관한 내용이다.롱아일랜드 신탁 은행은 오랜 기간 동안 롱아일랜드 지역 내에서 선두 자리를 지켜왔다. 가장 많은 지점을 보유한 가장 큰 은행이며 가장 많은 돈을 거래하는 은행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롱아일랜드 은행시장은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뉴욕 주에서 마련한 새로운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은행들이 지역에 제한 없이 지점을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자 뉴욕 시의 대형 은행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롱아일랜드 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롱아일랜드에서 뉴욕시로 출근하는 많은 주민들이 사실상 이들 은행들과 일정 부분 거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대형 은행들의 롱아일랜드 지역 침범은 문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중요한 의미의 지역은 은행 고객들의 마인드에 있는 것인데 조사결과, 롱아일랜드 신탁은행에게 불리한 내용들이 많이 나타났다.롱아일랜드 신탁은행은 포지셔닝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소비자의 마인드를 도표화하는 작업을 ‘의미 차별화’라고 하는 이미지 측정 기법을 통해 개발했다.
    사회과학| 2006.12.02| 12페이지| 1,000원| 조회(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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