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원 가는 길.법원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할지는 따로 확인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강남을 오갈 때마다 지나치는 역 중의 하나가 교대역이다. 지하철 노선도에, ‘교대’라는 글자 밑에는 ‘법원, 검찰청’이라는 글자가 함께 적혀 있다. 안내 방송도 ‘법원, 검찰청’임을 강조하며 교대역을 안내한다. 이렇듯, 눈과 귀에는 익숙했지만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는 그곳을 드디어 방문하게 되었다.교대역에서 내려, 11번 출구를 통해 지하철역을 빠져 나왔다. 11번 출구에서 법원까지는 걸어서 5분이면 충분했다. 법원을 향해 펼쳐진 길 양 옆으로 변호사, 법무사 사무실로 꽉 채워진 건물들이 놓여 있었다. 여성 변호사임을 강조하며 자신을 알리고 있는 간판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공증, 감정’에 관한 문구로 채워진 광고 전단들도 이 길만이 지닌 독특한 풍경이었다. 이 길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풍경도 있었다. 노점상들이었다. 11번 출구부터 구두약, 호떡, 과일, 중국산 계산기 등으로 드문드문 이어진 노점들은, 법원 정문 바로 앞에서 휴대폰 배터리를 파는 노점까지 이어져있었다. ‘법원에는 검찰들도 많이 드나들 텐데, 이렇게 대 놓고 장사해도 안 잡혀가나.’ 조금 의아해하며 정문으로 들어섰다.2. 법원에 들어서서정문을 지나 곧장 안내 표지판으로 향하였다. 내가 방청할 재판은 고등 법원에서 열리는 형사 재판이었다. 고등 법원은 ‘가동’에 위치해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나동’을 오른쪽에 끼고, 100미터를 더 들어가야 했다.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는 잔디들과, 푸른색을 띄고 곧게 뻗어 있는 나무들이 법원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동’의 건물이 눈에 들어올 쯤, 나는 건물의 중앙쯤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서 법원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단단하고 묵직해 보이는 건물은 빈틈이 없어 보였다. 좌우 대칭형의 건물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건물 밑으로 많은 계단들이 있었다. 신문과 TV를 통해 사람들에게 낯익은 계단들이었다. 재판을 받고 나오는 유명 정치인이 바바리코트를 입고 계단을 내려오면 많은 기자들이 사진을 찍고, 질문을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 계단이었다. 그 낯익은 계단을 뒤로 하고 목적지인 ‘가동’으로 향하였다.‘가동’ 건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갔다. ‘형사 법정재판안내’라는 게시판이 눈에 들어 왔다. 사건명과 피고인 이름을 보며 방청할 사건을 선택하였다. 내가 선택한 재판은 “재판부 형사 18단독, 가동 425호 법정, 법관 양범석, 오전 10시” 라고 적힌 재판이었다. 10시 재판에만 각기 다른 6명의 피고인 이름이 있었고, 뒤에 곧바로 이어지는 10시 30분 재판에도 7명이 넘는 피고인 이름이 있었다. 10시 재판은 선고 재판이었고, 10시 30분 재판은 속행 재판이었다. ‘선고 재판과 속행 재판을 모두 방청해야겠다.’ 는 생각을 하며 425호 법정으로 향하였다.3. 법정 풍경425호 법정 문 옆에 ‘개정중’이라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법정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판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재판이 시작하지 않았구나.’ 생각할 때 쯤, “자리에서 일어서 주십시오.”를 외치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섰다. 판사가 법정에 들어오고 있었다. 판사가 앉은 뒤, 방청객도 뒤따라 앉았다. 판사는 중앙에서 남들보다 높은 곳에 앉아 권위와 위엄을 과시하고 있었고, 그 왼쪽 뒤로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왼쪽에는 검사가 두텁게 쌓인 A4용지를 들쳐보며 재판을 준비하고 있었고, 검사석과 대칭되는 오른쪽에는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판사석 아래에는 재판 내용을 기록하고, 증거 서류들을 검사와 변호사에게서 받아 판사에게 건네주는 직원 둘이 앉아 있었다. 검사 옆에는 ‘재판 안내’라고 적힌 책상에 사람이 서 있었고, 모자를 쓰고 방청하는 사람에게 ‘모자를 벗어 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4. 선고 재판을 바라보며판사가 피고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름이 불리자 내 옆에 앉아 있던 방청객 중의 한 사람이 피고인석으로 걸어갔다. TV에서 죄수복을 입고 재판받는 피고인의 모습만 보아서인지, 평상복을 입고 걸어가는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불구속 재판을 받는 사람이었다.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적용해 보면, ‘범죄가 경미하고,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는 자’일 것이다. 검사의 구형, 변호사의 최종 변론, 피고인의 최후 진술이 이어졌고, 이를 다 들은 판사는 선고를 시작하였다. 피고인은 선고 도중 서있어야 했다. 재판관은 선고 이유를 설명한 후 ‘주문’을 읽어나갔다. ‘사건 번호, 피고인 이름, 사건명’을 밝힌 후 ‘형량’을 말했다. 그리고 ‘재판에 이의가 있으면 항소할 수 있다는 점’과 ‘판결문은 신청하면 받아볼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고인에게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항소하라’는 답변을 하고, 다음 피고인의 이름을 호명하였다. ‘재판 안내석’ 뒤 쪽으로 나 있는 문을 통해 피고인이 경찰관의 호송을 받으며 들어왔다. 피고인은 옅은 귤색의 죄수복을 입고 흰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TV를 통해 쉽게 접하던 그 모습이었지만, 손이 묶여 있지는 않았다. 피고인이 피고인석에 서자, 판사는 종전과 같이 ‘주민등록 번호, 주소, 본적, 직업’ 등을 물어 신분을 확인하였다. 피고인은 특수 절도죄로 재판을 받는 중이었다. 검사는 2년을 구형해 놓은 상태였다. 변호사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물건을 돌려준 점, 초범인 점, 생계가 곤란하여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선처를 호소하였다. 피고인은 최후 진술에서 ‘죄를 모두 인정하며,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그 후 판사의 선고가 내려졌다. “사건 번호 2004고단 2196, 특수 절도, 피고인 최인덕. 징역 8개월을 선고한다. 선고일 전의 구금일수는 위 형량에 산입한다. 집행을 2년간 유예한다. 이의가 있으면 일정한 절차를 거쳐 항소할 수 있다. 판결문은 신청하면 받아볼 수 있다.” 이것이 판사가 읽은 ‘주문’의 내용이었다. 피고인은 집행 유예를 선고 받았다.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적용해 피고인의 형량에 대해 생각해보면, ‘피고인은 8개월을 실형을 살아야 하지만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2년을 보내면 8개월 동안 실형을 살았던 것으로 인정해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피고인은 경찰관에 의해 다시 호송되어 나갔고, 동일한 절차를 거쳐 나머지 피고인들도 선고를 받았다. 30분이 채 안돼, 선고 공판은 모두 끝이 났다.
세계 각국에서 관용되고 있는 무역 조건은 그 해석이나 적용이 다양하여 무역업자간에 오해나 분쟁을 일으켜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국제무역의 확대 및 발전에 많은 혼란과 지장을 초래하여 큰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였다. 이런 문제점을 막아보고자 I.C.C(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가 1920년에 창립된 후 첫 사업으로 시작한 것이, 거래조건을 국제적으로 통일시키려는 작업이었다. 그 노력의 결과로 1936년 처음으로 “정형거래조건 해석에 관한 국제규칙(INTERNATIONAL RULES FOR THE INTERPRETATION OF TRADE TERMS: INCOTERMS ) 이 제정되었다.그러나 인코텀즈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하여 왔다. 1953년, 1976년, 1980년, 1990년, 2000년의 개정을 통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으며, 지금의 개정안 또한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개정의 요구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날 인코텀즈가 개정되었던 배경과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의 변화에 맞추어 바람직한 개정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1. 개정 배경 및 개정 내용1970년대 이후 국제운송시장에는 신속, 편리하고 안전한 컨테이너를 이용하여 이른바 door to door 의 운송을 위한 육, 해, 공을 일관하는 복합운송방식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복합운송체제에는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해상운송관습만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많은 문제점이 제기됨에 따라, 운송에 관한 국제 규칙과 협약 등이 이를 수용할 수 있도록 제정되거나 개정되었다.(1)기존 인코텀즈상에서 내륙운송에만 사용하도록 정의된 "Freight or Carriage Paid to... named point of destination"(DCP: 지정목적지점 운송비지급필)조건을 컨테이너, 트레일러, 또는 페리 등에 의한 “ROLL ON ROLL OFF" 방식의 복합 운송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수정하였다.(2)운송 환경의 변화에 대응)(5) FAS: Free Alongside Ship...(named port of shipment)(6) FOB: Free on Board...(named port of shipment)(7) CFR: Cost and Freight...(named port of destination)(8) CIF: Cost, Insurance and Freight... (named port of destination)(9) DCP: Freight or Carriage Paid to...(named point of destination)(10) CIP: Freight or Carriage and Insurance Paid to... (named point of destination)(11) DAF: Delivered at Frontier...(named place of delivery at frontier)(12) EXS: Ex Ship...(named port of destination)(13) EXQ: Ex Quay...(duty paid... named port)(14) DDP: Delivered Duty Paid...(named place of destination in the country of importation)1. 개정 배경 및 내용(1) 인코텀즈, 1990년 개정의 주된 이유는 전자문서교환(EDI)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각 무역거래조건에서 채택하였다. 1990년 인코텀즈에서는, 당사자들이 다양한 서류들(상업 송장, 통관에 필요한 서류 또는 운송서류뿐만 아니라 물품인도증명서류 등)을 제공하여야 할 경우 전자문서 교환이 가능하다. 매도인이 물품이 운송되고 있는 중에 흔히 그 물품을 매도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유통운송서류 및 선화증권을 제공해야 할 경우에는 특별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와 같은 경우에 EDI 방식을 사용할 경우, EDI 통신문은 매수인이 매도인으로부터 선화증권을 받았다면 EDI 통신문을 취득하였을 것과 동일한 법적 지위에 있음을 보증하는 대단히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운송기법은 비단 해상컨테이너 운송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도로/해상 또는 철도/해상 등과 같은 연계 일관 운송의 경우 유닛로드시스템에 의해 다양한 운송도구에 실려 나중에 선박에 적재되는 경우에도 선측을 위험 및 비용 등의 분기점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철도 무지개화차, 화물운반트럭 등에 팔레트화 또는 컨테이너화 형태로 단위화물이 적재되는 경우와 같은 ROLL ON/ROLL OFF 방식의 운송기법에서 특히 그러하다. 따라서 이러한 운송기법 등 인도방법의 변화를 수용하게 되었다.(3) 국제상업회의소 작업부회의의 개정작업과 관련하여 보다 쉽게 읽고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무역용어를 기존의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제시하자는 제안이 제시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명칭을 일부 변경하여(FRC->FCA, DCP->CPT, EXS->DES, EXQ->DEQ) 거래조건들은 근본적으로 상이한 네 개의 범주로 묶였다. 즉 매도인 자신의 구내에서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물품을 인도하는 유일한 조건(E조건: EXS)으로부터 시작하여, 두 번째 그룹으로 매도인이 매수인이 지명한 운송인에게 물품을 인도하도록 요구되는 조건(F조건: FCA, FAS, FOB), 세 번째 그룹으로 매도인이 운송계약을 체결해야 하지만 선적 및 발송된 이후의 발생사건에 기인된 화물의 멸실 또는 손상의 위험 또는 추가 비용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는 조건 (C조건: CFR, CIF, CPT, CIP) 그리고 끝으로 매도인이 목적국 까지 물품을 운반하는데 소요되는 모든 비용과 위험을 부담하여야 하는 조건(D조건: DAF, DES, DEQ, DDU, DDP)이 있다.(4) 모든 거래 조건에서 당사자들의 각 의무는 매도인 측의 각 표제가 동일한 주제에 대한 매수인의 입장을 반영하는 10개의 표제로 분류하였다. 따라서 만약 예컨대 매도인의 의무 A.3 항의 규정에 따라 매도인이 운송계약을 체결하고 운임을 지급해야 한다면 매수인의 입장을 규정한 매수인의 의무 B.3항다. 이와 반대로 “D"조건의 거래조건들은 매도인이 합의된 목적지점까지 줄곧 물품을 운반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매수인이 부담하지 않는다.(5) DDP(관세지급 인도조건)을 분리하여 DDU(관세미지급 인도조건)을 신설하였다.1. 개정 배경인코텀즈의 목적이 국제 무역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무역 조건의 해석에 관한 일련의 국제 규칙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 볼 때, 인코텀즈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여 적용된다면, 오히려 계약자들 간의 갈등과 분쟁을 조장하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관세자유지대의 확대, 무역 거래에서 전자통신문의 사용증가, 운송 관습의 변화 등으로 인하여 그 개정의 필요성이 더하여 왔다. 따라서, 시의적인 무역 관습을 보다 명료하고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하여 인코텀즈를 개정하였다.2. 개정의 주요 내용(1) 통관 및 관세지급 의무에 관한 변화(ㄱ) FAS 조건: 매수인이 수출통관절차를 이행하고 수출시에 부과될 수도 있는 관세 및 제세 공적인 경비를 부담하도록 한 것을 매도인의 의무로 규정하여 상거래 현실에 부합하도록 하였다.(ㄴ) DEQ 조건: 매도인이 수입통관절차를 이행하고 물품의 수입시에 부과되는 관세 및 제세 공적인 경비를 매도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DUTY PAID를 규정하고 있던 것을 매수인의 의무로 규정하여 현행 상관습에 부합하도록 개정하였다.(2) 운송형태에 대한 제한의 현실화인코텀즈 1990의 규정에서는 정형거래조건 중에서 FAS, FOB, CFR, CIF, DES, DEQ 조건에 대해서 해상운송이나 내수로 운송에 한정하여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 인코텀즈 2000에서는 이 여섯 가지의 정형거래조건에 제한을 두고 있는 것 같으나 DES, DEQ 의 규정에서는 해상운송이나 내수로 운송 또는 목적 항에서 선박으로부터 부두 상으로 양륙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 복합운송에 의하여 물품이 인도되는 때에 한정하여 채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추가로 규정하고 있다.(3) 용어 해설의 추가(ㄱ) 송화인이란 용어는 운송을 위하여 물품을 교부하는 자와 운“지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고, 특히 이것이 매도인의 장소인 경우 “매도인의 영업소구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ㅁ) 점검과 검사는 동의어지만, 매도인의 인도의무에 관련해서는 전자를, 선적전 검사에 관련해서는 후자를 사용하였다.(4) 위험과 비용의 조기 이전물품의 위험과 비용부담의 의무는 매도인의 인도의무가 완전히 완수된 때에 매수인에게 이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인코텀즈상의 모든 정형거래조건에서 매수인의 인도수열의무의 불이행이나 매도인의 인도를 위한 지시를 부당하게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물품은 계약에 정히 충당되어 있는 것을 조건으로 인도가 있기 전에도 위험과 비용이 이전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5) “의무 없음”의 의미“의무가 없음”에 관련하여 인코텀즈에서는 각 당사자의 상대방에 대하여 부담하는 의무만을 규정하고, 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할 때에는 “의무가 없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지만 그러나 이것은 당사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도 당해 업무를 이행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6) 일부 정형 거래 조건의 경우 물품의 인도 장소가 어느 구역이나 광범한 장소로 명시되어 있을 때 매수인이 구 정확한 지점을 지정할 권리나 의무를 갖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매수인이 정해진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이로 인한 위험과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하여야 하며 또 이러한 경우 매도인에게 그 지점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7) 인코텀즈에서 통관에 관한 의무는 관세와 기타 경비의 지급 세관을 거치는 모든 행정적인 의무의 이행과 지급 및 당국의 정보도 포함하는 것으로 범위를 정하였으며, 또 통관절차가 요구되지 아니하는 지역에서도 이 규정을 애매함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적용 가능한 경우”라는 문언을 추가해 두었다. 또, 통관 절차는 그 이행 국가의 거주자가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수출통관은 EWX조건을 제외하고 모두 매도인이 이행하도록 하고 수입통관은 DDP 조건을 제외하고 모두 매수인이 이행하도록 규졍하고 있다.(8) 물품
1.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친구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청각 장애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 청각장애인이 나에게 건넨 것은 싸인 용지였다. 손짓을 하면서 나에게 무엇인가에 대해 서명하기를 요구하였고, 나는 늘 있는 싸인중의 하나인 줄 알고, 아무 의심없이 싸인을 해 주었다. 그런데, 싸인의 내용을 재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나는 곧 낭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싸인의 내용은 자신이 처해있는 어려운 사정에 충분히 공감하며, 그러한 공감의 표시로써 돈을 기부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만약에 싸인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나는 늘상 그렇듯이 그의 요구를 거부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싸인을 한 뒤이기 때문에 나는 쉽게 그녀의 요구를 거절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뭔가를 요구하는 거듭되는 시선에 나는 할 수 없이 나의 지갑을 열어 그녀에게 천원을 건네 줄 수 밖에 없었다.천원을 주고 난뒤 나는 나의 행동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나의 태도를 이렇게 변화하도록 만들었을까? 나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심리학을 전공하는 내 친구는 살며시 웃으며, 나에게 책 한권을 소개시켜주었다.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의 책이었고, 이 책을 소개해 준 내 친구는 그 책을 읽고 나면, 많은 기업들과 개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우리들을 이용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여 주었다. 나는 나의 지갑에서 나의 존을 꺼내게 만든 그녀가 유유히 식다을 벗어나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그 일이 있은후 나는 여러 신문들을에 영업사원들의 성공담을 담은 기사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많은 영업 사원들이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식당에서의 그 일이 있은 후 책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던 중에 접한 이러한 기사들은 나에게 이 책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갖게 만들었다. 사회 생활을 해 나가면서, 나는 앞으로 은 박제 족제비에게 녹음기를 내장하여 새끼 칠면조의 ‘칩칩’소리를 내자 어미 칠면조는 놀랍게도 박제 족제비를 우호적으로 대할 뿐만 아니라 품에 안기까지 아는 것이었다. 그러나 녹음기를 끄자마자 어미 칠면조는 박제 족제비를 다시 물어뜯기 사작하였다. 어미 칠면조는 정말 어리석어 보인다. 오직 ‘칩칩’소리에 의해서 자신의 행동을 급변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그러나 이러한 자동화된 행동은 결코 어미 칠면조에 국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동물생태학자들은 이러한 규칙적이고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행동 양식은 생물의 다양한 종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인간에게 있어서도 그런 자동화된 행동양식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자동화된 행동양식을 갖게끔 하는 어떤 기재가 인간에게도 존재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다음의 여섯 가지 원칙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 원칙들은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사회적 증거의 원칙’, ‘호감의 법칙’, ‘권위의 범칙’, ‘희귀성의 법칙’등이다. 인간이 어떤 자동화된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성 내지는 괸심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주 내용인 각각의 원칙에 대한 내용과 그와 같은 원칙들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1) 상호성의 법칙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베푼 호의를 그애로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의 생일을 기억하여 생일 선물을 보내면 당신도 그의 생일나 선물을 보내야 하며 또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면 언젠가는 당신도 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호성의 법칙은 이와 같이 남의 호의, 선물, 초대 등등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 분명히 미래에 당신이 갚아야 할 빚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즉,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인간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도움을 얻기 위해서 우리에다른 사람이 원하지 않던 원하던 일단, 그 사람이 나의 호의를 받아들이게끔만 만들면 그 다음은 상대방을 이용하기가 매우 쉬어진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베푼 것 보다 훨씬 큰 수확을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반대의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일단 우리가 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빚을 졌다는 느낌을 갖게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받은 것 보다 더 많은 것들을 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는 사실이다.여기서 주의 할 것은 상호성의 원칙이 가지는 사적 의미이다. 원래 상호의 원칙은 사람들간의 협조를 촉진하기 위해서 생성되었다. 내가 상대방을 위해 선심을 쓰면 언젠가는 상대방도 나에게 선심을 쓸 것이라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상대방을 돕게 하였다. 그리하여 상호성의 법칙은 궁극적으로 오늘날의 성숙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다란커 공헌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으 호의를 원치 않는다고 해서 쉽사리 거절 할 수 없는 것이다. 상대방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기초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이러한 상호성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로 인하여 우리는 상대방이 제공하는 호의에 대하여 갈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이러한 거절은 우리 사회를 유지시켜나가는 근간을 위협하는 행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의 호의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상호성의 사회적인 의미를 받아들이게 되지만 우리느 그 호의에 대한 보상을 베풀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비푸는 호의가 선의에 의한 것인지 악의에 의한 것인지를 살피는 일이 중요해 진다. 악의에 의한 호의, 즉 자신의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한 상대방의 호의에 넘어간다면 우리는 상호성이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도 달성할 수가 없고, 오히려 인간에 대한 배신감만을 키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대방의 악의에 기반한 호의는 단호히 거절 할 줄 알아야 한다.(2) 일관성의 법칙일관써서 제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단 영업사원들이 글로 자신의 목표치를 남기게 되면, 영업 사원들은 일관성의 원칙에 의해서 그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이다. 회사와의 약속이던 자신과의 약속이던 각각의 영업사원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 더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관성의 원칙은, 판매량을 글로 적어 상사에 제출하지 않았던 때와 판매량을 비교해보면 그 판매량이 30%나 증가한 한 회사의 경우에서 쉽게 그 유용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이러한 일관성의 원칙은 많은 시민 사회단체들에게도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갯벌을 막는 간척 사업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는 한 환경 단체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들을 벌이지만 최근 가장 효과적인 방법중의 하나로 입중되고 있는 것이 법률을 제정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국회의으???들은 직접 찾아가서 그들의 서명을 받는 것이다. 일다 서명을 한 국회의원은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입장을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를 번복한다면 그 정치인은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을 것이고, 사람들이 정치인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일관성에 심한 의심을 받게 되어, 다음 선거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환경 단체들의 이러한 행동은 입법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는 각종 사업들의 반대 성명서에도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있는 증거를 정부에게 보여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이유로 서명전을 받는 것도 그들이 노리는 한 목적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장에 서명하게끔 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 사업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일단 그 서명용지에 서명을 하게 되면 일관성의 원칙에 따라서 그 사람은 환경 단체가 원하는 데로 행동할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내가 식당에서 경험했던 한 청각장애인들의 사례도 일관성의 원칙이 적용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에 그 자리에 내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일아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많은 광고 카피들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많능 광고의 문구들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가장 대중적인’, ‘가장 많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등등과 같은 문구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습성에 따라서 이러한 광고문구들을 적용하는 것이다.이러한 사회적 증거의 원칙은 어떠한 이유 때문에 생겨나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흔히 모든 사항들을 일일이 따져가며 결정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매 결정의 순간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수단을 통해서 모든 기회비용들을 고려해가며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다른 판단 근거들을 찾게 되는데, 그러한 판단 근거들 중에서 가장 쉽게 믿게 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다.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벌이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편리하기도 하고 나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사회적 증거의 원칙을 이용하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비단 회사가 자신들의 광고 문구에 여러 가지 내용들을 넣는 것 뿐만 아니라, 방송국에서 벌이는 여러 가지 모금 사업에도 이러한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 적용된다. 우리가 수재민 돕기 모금 방송을 보면 왼쪽의 구석에 지r금까지의 모금 액수가 줄기차게 올라가는 것을 보는 경우가 많다. 방송국이 이러한 자막을 추가하는 것은 방송을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아라.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하고 있다. 뭐하고 있냐? 당신도 빨리 이 대열에 합류하여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방송을 지켜 보며 기부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은 올라가는 액수를 보면서 쉽게 동참하게 된다. 방송에서 수재 의연금이나 각종 기부금 낸 자들을 사진과 함께 그 액수를 공개하는 이유도 이 원칙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 할 수 있다.이 원칙은 미국에서 일어난 아주 끔찍한 살인문이다.
1. 이 책을 선택한 이유얼마전 언론사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스터디를 했다. ‘세계의 경제’ 가 주제였다. 현재 세계가 겪고 있는 경기 침체, 미국의 경기 회복, 일본의 장기 불황, 유럽의 디플레이션 우려 등, 폭넓은 이야기들이 오갔었다.그런데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단연 ‘중국 경제’ 와 관련된 기사들이었다. 2050년이 되면 세계 총생산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게 되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 1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많았다. 현재도, 화폐 가치를 배제하고 세계 총생산 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중국이 단연 으뜸이라고 한다. 후진국으로만 여겨졌던 중국이 세계 초강국이 될 것이라는 기사들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국 사회가 세계에서 뒤쳐진 기간은, 그들의 오랜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아주 짧은 기간뿐이다. 영국과의 아편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을 헤아려 보면 불과 150년이 조금 넘는다. 좀더 길게 잡아 열강의 식민 자본이 본격적으로 중국으로 밀려 들어가기 시작한 18세기부터 헤아려 본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은 불과 200년을 조금 넘을 뿐이다. 그 이전까지 중국은 세계 다른 문명국에 비해 결코 뒤쳐지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시장 개척을 위하여 바닷길 탐험을 막 시작했을 당시, 중국은 이미 이베리아반도(포르투칼)까지 도착할 수 있는 항해술을 갖추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나침반을 가장 먼저 발명하여 항해에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화약을 가장 먼저 발명하여 전쟁에 이용한 것도 중국인 들이었다. 중국은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그리고 서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문명 국가로서의 높은 우위를 점해왔다.이런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하여, 중국은 200여년의 시행 착오를 딛고 다시 세계 역사의 중심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런 야망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높은 경제 성장이다. 최근 10여 년간 중국은 7%가 넘는 고속 성장을 이루어 왔다. 본격적인 개혁 개방에 들어서면서 유입된 외국 예상을 쉽게 할 수 있다.중국에 대한 이런 밝은 전망들 속에서,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현재 중국인들이 겪고 있는 변화의 모습들이었다. 신문 기사의 대부분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은 딱딱한 경제 용어로 설명된 것들 뿐이었다. 경제는 생활이라는 말을 빌리면, 중국이 겪고 있는 급격한 경제 성장은 반드시 중국인들의 생활의 변화를 수반할 수 밖에 없다. 계획 경제체제에서 시장 경제체제로 전환은 중국인들에게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그런 혼란을 추스릴 여유도 주지 않은채 성장을 위해서만 내닫고 있는 중국 지도부의 정책들은 중국인들에게 또다른 혼란과 갈등을 야기햐였을 것이다. 나는 현재 중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제 변화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알고 싶었다. 그러한 구체적인 변화의 모습을 중국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고, 어떻게 적응해 나가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이런 나의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책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정운영의 중국 경제 산책’ 이라는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두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자본주의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는 정운영씨에 대한 믿음때문이었다. 그의 경제학에는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많은 모순들에 대한 지적이 있다. 건국부터 자본주의를 채택한 우리 나라도 수많은 모순과 갈등을 안고 있는데, 오랫동안 공산주의를 채택해온 중국은 우리가 경험했던 것 보다 훨씬 더한 모순과 갈등이 존재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정운영씨라면 그러한 모순에 대한 문제 제기를 반드시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또다른 이유는 기행문이라는 점이다. 책상에 앉아, 경제 이론과 수치들을 대입해 가면서 쓴 책이 아니라, 정운영씨가 실제로 중국을 돌면서 만난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것들을 책 속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중국 변화의 구체적인 모습들과 그에 대한 감상이 칼라 사진과 함께 잘 제시되어 있었다.2. 정운영의 중국 경제 산책책의 몇몇 부분에 대한 내용과 나의 감상을 몇자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몇몇 장면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나의 의견을 덧붙이는 식으로 몇자 적어 보겠다.작가(정운영씨)는, 사고에 대한 위험도 아랑곳 하지 않고 비포장도로의 좁은 농촌길을 시속 100킬로 이상으로 곡예 운전을 하는 택시 운전사와,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는 농민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무엇이 운전 기사를 그처럼 미친 듯이 달리게 했을까? 그 동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아마도 그 답은 노력에 따른 보상이었으리라. 그러나 미구에 그는 소득이 노력에 비례하지 않고 자본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죽을 둥 살 둥 달려봐야 더는 소용이 없다고 느낄 때, 그의 좌절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여기 중국 경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또 좌절이라도 좋으니 미친 듯이 한번 달려보고 싶다는 농민의 간절한 열망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한쪽의 과속, 그럴수록 심해지는 다른 한쪽의 무력감과 좌절! 거기 대격변의 명암이 교차되고 있었다.”)이 대목에,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인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잘 드러나 있다. 계획 경제 체제하에서 중국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곡예 운전을 하지 않을 것이다. 손님을 도착지까지 빨리 모시든 그렇지 않든 정부로부터 배급받는 자신의 몫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노력에 따른 보상’. 이것이 중국 정부가 시장 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하면서 사람들을 설득시킨 문구이다. 하지만 노력에 따른 보상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중국보다 먼저 산업화를 겪은 많은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사실이다. 노력을 많이 한 만큼, 보상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상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상은 자본에 더 많이 비례한다. 노력하는 사람보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밖에 없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 원리가 가지고 있는 또다른 면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런 이면으로 발생하는 중국인민들의 좌절과 불만을 두려워한다. 이런 불만과 좌절들이 쌓여 중국의 진했던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은 가격 경쟁력이었다. 가격을 낮추는 길만이 세계 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이었다. 가장 먼저 피해를 본 계층은 노동자들이었다. 저임금 정책이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선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저임금 정책을 뒷받침 해준 것은 농민들의 희생이었다.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농산물 가격이 안정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노력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농작물들을 시장에 내 놓아야 했고, 그것은 농가의 부채로 고스란히 이어졌다.중국의 농민들도 이러한 과정을 겪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중국 역시 저가의 상품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때문이다. 중국 농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중국 농민들이 도시 노동자들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그동안 경제 성장으로 커져버린 ‘떡’에 대한 혜택이 자신에게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일 것이다. 도농간의 소득 격차가 날로 벌어지고 있다는 통계학적 사실을 꼭 들이대지 않더라도 직감적으로 그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발전하는 도시는 계속 지원하고 정체하는 농촌은 그대로 방치하는 근대화의 역설")은 중국에서도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그에 따른 농민의 좌절과 무기력은 공산당을 잉태한 자신들의 노력에 더해, 우리의 농민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크게 그들에게 다가설 것이다.중국의 부정 부패 문제는 심각하다. 경제 개혁을 가로 막아 경제 발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중국의 부정 부패 문제이다. 중국 최대 밀수 사건으로 알려진 ‘홍루’)라는 사건이 있다. 원래 홍루는 7층 짜리의 홍색 건물을 의미하지만. 이 건물이 밀수 사건의 온상 구실을 했기 때문에 이 밀수 스캔들을 ‘홍루사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홍루’스캔들은 유류와 자동차등 530억 위안 규모의 초대형 밀수 사건으로서 관세 포탈만 300억 위안이 넘었다. 1996년부터 범죄가 저질러졌고, 9 주룽지 총리의 결단으로 그 전모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이 사건에 연류된 자들 중에서 8명은 사형을 17명은 무기징역을 언도 받으면서 이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중국 과학원과 칭화 대학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한해 부패로 인한 손실이 8000억-1조 2000억 위안으로 국내총생산의 13-18퍼센트에 이른다고 한다. 또, 사정의 주체일 검사 492명과 판사 1291명이 오히려 사정 대상으로 처벌될 만큼 부정이 고황에 들어있는 상태이다.) 이렇듯 중국의 부패는 정치,경제,사법분야를 비롯해서 행정력이 미치는 모든 곳에 침투해 있다.그러나 중국 지도부의 부패 척결 의지는 단호하다. 경제 개혁을 가로막는 부패와의 전쟁에 나서며 주룽치 총리는 ‘내것을 포함해서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는 비장한 결의를 토했다. 그리고 이런 비장한 결의는 ‘홍루’사건에 반영되어 부정 부패 사범에게 사형이나 무기 징역을 선고하는 등의 강력한 처벌로 이어졌다. 또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을 마무리 한 후에 ‘홍루’를 부정 부패의 교육관으로 만들었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한 뒤 같은 잘못을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그 치부를 공개한 것이다.부정 부패가 발생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제도가 인간의 활동을 불필요하게 규제하는등 인간 생활을 잘못 규정 짓고 있는 것도 부정 부패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중국이 겪고 있는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를 중국의 제도가 적절히 담아 내지 못하고 있거나, 제도가 변화에 지나치게 앞서 갈 때에 부정 부패가 창궐하기가 쉽다. 중국은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놓여 있다. 부정 부패의 해결을 위해서 집권층의 단호한 부패 척결 의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중국인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정확히 제시해 주고, 예측 가능한 상황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는 것, 이것이 중국 정부가 해야할 과제이다.얼마전 사법 시험 발표가 있었다. 우리 학교는 4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2위권 대학으로 나아가자’ 라는 .
1. 재건과 개혁 시대의 영화(1978-1984)(1)새로운 정치 노선과 중국의 영화1976년 1월과 9월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적 운명을 실질적으로 좌우했던 두 인물인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이 베이징에서 사망하였다. 그 뒤를 이어 화궈펑이 정권을 계승하였지만, 그는 새로운 정치 노선을 펼치지 못했고, 중국 사회의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지 못했다. 이런 화궈펑을 대신한 이는 덩샤오핑이었다. 뎡샤오핑은 경제적 자유화와 개혁, 개방 정책을 내세우며 계급투쟁노선을 대신해 실용적 현대화 정책을 펴기 시작하였다. 한편으로는 진정한 새출발을 도모하고 참혹한 사건들이 되풀이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과거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였다.하지만, 덩샤오핑이 인정한 자유는 경제 분야에 국한된 것이었다. 따라서, 공식 정치 노선이 예술과 영화를 지배하고 있었다. 정부는 물론 정부의 노선을 따르는 많은 예술가들과 일반 대중들은 예술이나 영화를 여전히 국가 이데올로기적 예술로 간주하여, 영화제작자들에게 공식 규정을 하달하거나 제작된 영화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였다. 검열을 통과할 수 있었던 영화는 마오쩌둥시대와의 차별을 강조하는 영화나 뎡샤오핑의 개혁, 개방정책을 지지하는 내용의 영화들이었다.대표적인 영화로는 '법정 안팎'과 '피는 언제나 뜨겁다' 라는 영화가 있다. '법정 안팎'은 특권을 누리는 간부 아들에 대한 법정소송을 다루고 있다. 간부 아들은 교통사고를 냈으나 책임을 회피하고 매수, 협박, 특권을 이용하여 처벌을 면하려 한다. 이 영화는 점차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특권층의 부패를 질타함으로써,덩샤오핑의 중국은 '매수 되지 않는' 법치 국가 라는 것을 강조하고 과거의 부패한 특권체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른 영화인 '피는 언제나 뜨겁다' 라는 영화는 한 공장장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공장장은 개혁을 추진하려다가 관료주의의 벽에 부딪치지만 오랜 설득작업 끝에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는다. 노동자들은 공산주의 정책의 슬로건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한 생산지표가 하향 곡선을 그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마오쩌둥의 도그마에 얽매이지 않고 전향적인 자세로 현대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2)중국 정부의 영화 정책에 대한 저항덩샤오핑의 정치노선은 사회 각 분야에 많은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1970년대 후반 민주화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은 폭넓은 전선을 형성하였고, 공업,농업,국방,과학기술 등 4개 현대화 이외에 민주주의를 요구하였다. 이 운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몇몇 용기있는 예술가들은 당 노선을 반대하고 개인적인 예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 부분에서 이루어진 광범위한 노력도 민주화운동과 그 궤를 같이 하였다. 영화인들은 더 이상 당의 노선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였고, 영화가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 대신 영화를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중국 정부에 의하여 철저히 탄압당하였고 몇몇 영화만이 제작될수 있었다.대표적인 영화로는‘짝사랑’을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차별이나 편견없이 진솔하게 과거를 논하기 위해서 조국애와 당에 대한 사랑을 분리 시켰으며, 마오쩌둥과 공산당이 자행한 일들이 과연 정당한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관객이 공산당 정권과 국민당 정권을 비교하게끔 하였다. 다시 말해서 공산다의 권력 장악, 곧 해방이 인민에게-예전이나 지금이나 당의 지시대로 움직인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어떤 이득을 주었는가 그리고 무엇이 정말로 변했는가를 재고하게 하였다. ‘짝사랑’은 1949년 이후 문화 혁명을 비롯한 모든 정치 선전운동의 배경에 의문을 제기한다.2. 상업 영화의 발달(1984-1989)예술에 대한 교조적 기능의 강화는 중국의 정치, 문화 전반에 걸친 창의성의 결핍이라는 문제를 발생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창의성의 결핍은 문화적인면에서나 경제적인면에서 국가를 새로운 시대로 이끌어가는데에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덩샤오핑은 1985년 9월 23일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자회의에서‘예술은 이제부터 국가나 이데올로기보다 사회에 먼저 기여해야 한다’고 제창하였다. 이러한 예술정책상의 변화는 곧바로 영화 부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같은 해 이이즈성 라디오,영화,텔레비젼 총 국장은 각 촬영소와 방송국에 새로운 노선에 관한 회람 문건을 배포했다. 이 문건에서 그는 영화의 경제적 성과를 강조하면서 제작과 배급에 당이 관여하지 않는다는것과 작품에 대해 교조적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명시하였다.하지만, 이러한 예술 정책상의 변화가 영화인들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영화는 제작될 수 없었으며, 특히 당의 노선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영화들은 철저히 탄압을 받았다. 반면에 교조적이지는 않더라도 정치적인 주제를 띄지 않는 영화들은 제작될 수 있었는데 이것이 이전 시대와 다른점이었다.‘짝사랑’이 받았던 탄압을 기억하는 많은 영화인들은 그와 같은 시도에 당이 어떤식으로 대응할지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화인들은 당의 지침에 거스르지 않는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러한 과정속에서 발달한 것이 상업적인 오락 영화였다. 이러한 오락 영화들은 수입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30%를 넘지 못하도록 한 중국 정부의 보호 규정과 미국 영화가 지불해야하는 비싼 상영허가료로 인하여 영화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또, 이시기에 제작된 오락 영화들의 소재는 대부분 범죄 영화나 전쟁 영화 또는 모험 영화등이었는데, 이러한 소재들은 철저히 비정치적인 것들이어서 대중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현실의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도 수행하였기 때문에 당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