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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방송]문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우리는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피에르 부르디외와 수잔 손택의 대화1.피에르 부르디외 ‘티내기’상류층이 되고 싶어 하는 중류층과 하류층은 자신들의 모습이 서민적으로 보이는 걸 싫어 한다. 이들은 가급적 자신들의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사람들의 그런 노력을 가리켜 부르디외)는 ‘티내기’라고 불렀다. 티내기란 행위자들이 사회적인 구별을 확실히 하고 서로 구분되는 인지 양식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을 가리킨다. 여기서 티내기란 어떤 태도나 기색으로써 ‘티’보다는 중상류층 사람들이 서민들과 구별되고 싶어 하는 상향적인 것을 말한다. 오늘날 사회에서 이런 티내기는 티를 내는 사람에게 상징적인 힘을 부여하며 하나의 계급을 부여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을 중하류층과 구분 지어줄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 사람들은 많은 기간 축적된 지배논리를 교육받는다. 오늘날 10대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들으며 ‘티’내려는 사람은 없다. 상류층 티를 내기 위해서 우리가 교육 받은 것은 고급스럽다는 클래식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화를 볼 때 문화 그 자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교육 받은 인식의 체계 속에서 그것을 이해하게 된다. 부르디외는 우리가 예술작품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미학적 느낌의 자발적 결과가 아니라, 교육과정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즉, 자신의 선택을 결정하는 기호, 취향은 교육과정의 산물이며 이는 그 사람의 ‘계급’을 확인 시켜준다. 부르디외는 미적으로 편협하다는 것은 가공할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기호는 혐오와 분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다른 삶의 양식에 대한 혐오는 계급사이의 가장 두터운 장벽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지적 과시를 위하여 다른 취향을 배척하고 용납하지 않는다.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가 예술의 전당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있어 문화란 고상하고 엄숙한 것을 말한다. 대중문화의 상대적 의미로 고급문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2.수잔 손택 ‘캠프’, ‘해석에 반대 한다’캠프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기상천외의 것이나 케케묵은 것 또는 속된 것의 좋은 점을 인정하기, 그러한 태도, 행동, 예술표현’이다. 캠프라는 것은 촌스러움 그 자체를 강조하며 고상한척하기를 거부한다. 촌스러움의 연출을 통해 고상하고 엄숙함에 대한 조롱을 퍼 붇는다. 이런 ‘하위문화’를 추구하면서 그것을 그 자체로써 이해한다고 할 수 있다.그녀는 ‘해석에 반대 한다’라는 책)을 통해 의미를 찾는 문학, 에술 비평의 종용을 요구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예술은 우리를 초조하게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예술작품을 그 내용에만 집착해 그것을 해석하는 건 예술작품을 길들이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비평, 해석이 오히려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이들을 차단시킨다는 것이다. 손택은 예술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느낄 것인가를 이야기 하면서 우리 스스로 이성으로부터 감각이 해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취향과 감수성, 일종의 익숙한 감정의 부정을 통해 새로움의 낯설음 속에서 새로운 쾌락,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그녀는 예술에 대한 모든 비평의 목적은 예술작품을 우리에게 더욱 실질적인 것으로 다가서게 만드는 것이어야 하며, 비평의 기능은 어떤 예술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그것이 존재하는 그대로 보여 줄 것인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3.대중문화와 고급문화.. 그 기준은..?어쩌면 손택의 말처럼 비평을 통해 예술에 대한 길들이기가 자행되는 동안 신화)에 기초해 예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고정시켰는가를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태내기’를 통해 상징적인 힘을 얻은 사람들이 그 힘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급문화, 대중문화의 신화를 만들어 내면서 우리의 자생적 판단을 가로 막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중문화, 고급문화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우리가 만들어 낸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를 가르는 기준을 보자. 대중문화는 서태지쯤으로 이해하고, 고급문화는 베토벤쯤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둘을 갈라놓은 것은 무엇인가? 서태지는 길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지만 베토벤은 그러질 못한다. 서태지는 지식 없이 들어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베토벤은 교육을 통한 지식이 있어야 더욱 잘 들을 수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 못하므로 생략한다. 사실 오늘날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바라보는 인식은 매우 강해졌으며, 우리 인식 속에서 그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하나하나 따져 봤을 때 모두 반박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서태지보다 베토벤을 더 좋아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대중문화, 고급문화를 구분 짓게 만드는 것은 이 둘의 차이보다는 이 둘의 차이를 과장해 재생산해내며 그 속에서 특별한 가치를 얻고자 한 사람들의 역할이 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베토벤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울려나오며, 1악장과 2악장의 형식이 어떻게 다른지를 아는 사람들이 서로 와인을 들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음악이고, 서태지는 버스에서 워크맨을 통해 듣는 음악이라는 인식. 이런 만들어진 인식을 통해 우리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분하지는 않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사회과학| 2005.11.06| 3페이지| 1,000원| 조회(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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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방송]언론을 바라보는 수용자의 관점에 대하여
    언론을 바라보는 수용자의 관점은 어떠해야 하는가?1.서론사회가 민주화의 물살을 타고 열린사회로의 지향을 꾀하는 동안 언론은 그 뒤에서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자유주의 언론관)이 우리 사회에서 큰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면서 언론이라는 공간은 쉽게 범할 수 없는 신성공간쯤으로 취급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규범적 수준에서만 강조될 뿐 현실세계에서는 상업주의의 압력과 정부의 통제력으로 인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이에 언론의 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 또한 점점 힘을 얻어가며,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변화하는 언론환경에 적응하는 새로운 언론관 정립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었다. 매체의 발달 등의 영향으로 정보에의 접근이 수월해지고 그로 인해 정보의 양이 너무 방대해지자 수용자들이 정보에 지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기도 한다. 이에 지금 우리 언론 환경에 대한 실증적 사례들의 분석을 통하여 언론을 대하는 수용자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2.본론2-1.정보의 선택에 있어서의 언론인터넷 등의 보급으로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당장이라도 알 수 가 있다. 정보 전달의 속도 또한 매우 빨라져 지금 일어난 사건, 사고들에 대한 소식도 그때그때 알 수 있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보들의 전달 속도 또한 빨라져 우리는 정보의 바다 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고 묘사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수용자들은 매체가 제공하는 걸러진 정보들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매체는 정보들을 다 실을 수 없는 한계가 있으므로 정보들 중 중요도가 높은 것을 선별해서 수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보가 선택되고 유통되는 과정을 움직이는 것은 정보 자체의 원동력이 아니라 게이트키퍼의 결정이라고 이야기하는 게이트키핑이론)을 통해 정보의 선택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해 볼 수 있다.게이트키퍼이론에 따르면 정보의 선택 및 처리과정에서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언론인의 개인적 신념, 기질, 언론사의 이해관계 등이 작용한다고 본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이러한 요인들에 의해 정보가 선택되어지고 우리에게 전해진다는 것이다.이를 언론한경에 대한 문제점과 결부시켜 볼 수 있다. 언론의 자유는 이뤄졌다고 하지만, 사실 언론은 소유주의 이해관계, 지배계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론의 활동공간이 제약 받는 게 사실이다. 기자들 역시 자신의 개인적 이해 때문에 정보를 선택하는데 있어 공정성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며, 언론소유주 등에 의해 조직적으로 기자들을 재생산하게 됨으로써 사회의 지배이념들을 전파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즉, 언론환경이 열려 있다고만은 볼 수 없는 것이다.2-2.사례분석-여중생 사망사건 보도지난 여중생 사망사건의 경우를 보면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목숨을 잃은 날은 6월13일 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월드컵의 열기로 이 사건은 사람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 월드컵이 끝난 뒤로 인터넷 등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이 사건에 대한 사실이 많이 퍼지면서 미군에 대한 비난 여론이 퍼지고 있을 때도 메이저급 언론에서는 이를 축소 보도한 측면이 없지 않다. 대중들의 감정적 민족주의로 인해 외교적 마찰이 생기지는 않을까를 걱정한 지배계층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한 언론사들의 행동 때문이었다. 인터넷 등의 보급으로 인해 정보시장이 개방되어 있지 않았다면 게이트키퍼들로 의해 이는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한 칠레 FTA관련 보도또 다른 사례로 지난 한 칠레 무역협정 국회 비준안 통과 때를 보자. 국회는 비준안 통과를 미루고 미뤄가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근 한달에 걸친 이 사태를 보도 했던 언론의 태도를 보면 우리 언론의 큰 문제점이 드러난다. 그 사안의 본질에 대한 보도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사안이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협정 관련보도는 국회 앞에서의 농민들의 강경투쟁 모습 보도, 국회의사당내에서의 농촌 출신의원들의 회의 진행 방해하는 모습을 보도 하는게 주를 이뤘다. 이런 뉴스와 무역협정 처리가 늦어져 우리 수출품이 팔리지 않는다는 기사를 함께 내보내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는 사람이 보면 농민들이 자신들만의 이익 때문에 국익에 해를 입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비준안 처리가 오래 진행되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때서야 FTA처리 전후의 상황에 대한 각계각층의 얘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FTA관련 언론의 태도를 보면-농민들을 집단이기주의적인 모습으로 부각시킨 점 등을 보면-언론이 어느 한쪽의 입장에 유리하도록 보도를 했다고 의심할 부분이 많다.-탄핵관련 보도언론사의 정보선택, 보도 관점을 보면 같은 사안이라도 다르게 보도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올해 초 탄핵사태 때를 보면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이 정반대로 탄핵관련 보도를 내보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탄핵관련 보도에서 탄핵안이 처리되고 이후 국무총리 권한대행으로 국정이 운영되는 모습 등을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 그 자체로 보도 했으나 한겨레신문 같은 경우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릴레이 기고를 1면에 지속적으로 내보내며 이후에도 탄핵에 대해서 부정적인 관점의 보도를 많이 내보냈다. 탄핵을 부정적으로 보는 언론사의 경우 탄핵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 정보를 자사의 이해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다. 각 언론사마다 사안을 보도 하는 태도에 있어 게이트키퍼이론이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2-3.수용자의 태도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언론소유주들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 그 정보의 내용이 달라지는 그런 환경에 수용자들은 노출되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정보를 습득하는 수용자들의 언론을 대하는 태도의 정립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원칙아래 수용자들은 자신이 접하는 언론이 어떠한 이해관계에서 기사를 선택, 배포하는가, 매체가 이야기하는 사안들 속에 왜곡, 축소는 없는가 등의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사회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함께 대두 되었으며 그 속에서 언론에 대한 감시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 또한 높아졌다. 그런 취지로 언론 노조라든지, 언론관련 시민단체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정보의 분배에 있어 보다 진지한 접근을 표방하며 출연한 TV방송들 역시 언론을 감시하고, 시청자들에게 정보의 홍수에서 해방시켜줌)을 표방하고 나섰다. 이들 프로그램들의 특징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몇 가지 사안에 대해 그 보도의 배경과 현상 뒤에 있는 본질까지 알려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이들 프로그램은 사회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제작된 경향이 높다고 하겠다. 기존 메이저 언론의 정보 전달에 회의를 갖게 시작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대안적인 언론의 등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방송의 등장까지는 언론에 대한 감시를 지속적으로 하며 기존 언론 보도의 잘못을 공개하며 수용자들 사이의 공감대를 형성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고 언론을 대했던 수용자들의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사회의 민주화와 마찬가지로 언론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언론외적으로는 수용자들의 지속적인 감시가, 언론내적으로는 매체제작자들 스스로의 감시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수용자입장에서 볼 때 기존 보도를 무비판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봐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언론의 자유는 이뤄진 듯이 보이나 그 겉모습 뒤에 숨겨진 현실은 상업주의와 지배계층의 통제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언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경우 알게 모르게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앞서 게이트키핑이론에서도 봤듯이 수용자들의 감시가 없을 경우 언론이라는 것이 제작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될 소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수용자들은 언론을 대해야 할 것이다.
    사회과학| 2005.11.06| 4페이지| 1,000원| 조회(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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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방송, 사회학]스튜어트 홀에 대하여 평가A좋아요
    about 스튜어트 홀스튜어트 홀은 영국의 학자로 문화 연구를 학문세계의 주요한 이론적 흐름으로, 연구분야로 정착되고 성공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스튜어트 홀은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으로서 영국에서 공부한 후 현재 영국 개방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로 있으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통해 문화연구에서는 고전이 된 글을 많이 남겼다. 그는 ‘버밍엄 학파’의 본산인 버밍엄 대학교 현대 문화 연구소의 제2대 소장으로서 연구소의 연구활동을 조직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이론가이면서 동시에 실천가로서의 모습으로 연구를 이끌어왔는데 그의 이론적 시각, 나아가 작업 양식, 발표 채널 등 사소해 보이는 것도 그의 이론적, 정치적 입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그의 성장 과정과 지적, 정치적 편력은 그의 이론이 갖는 정치적, 이론적 의미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스튜어트 홀의 지적 성장 배경스튜어트 홀은 자메이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기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모두 혼혈이었지만 아버지는 흑인에 가까웠고 어머니는 백인에 가까웠다. 그의 어머니는 스스로를 백인과 동일시했고 식민지 지배국인 영국을 모국으로 생각하려 했으며 인종적 지위 상승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그녀는 자메이카의 독립에 부정적이었으며 독립 이후에도 식민지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기도 했다. 이러한 가족사의 영향으로 홀은 인종적 정체성 문제를 아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이러한 어린시절의 체험을 통해 그는 주관적, 개인적인 모순이 동시에 구조적인 모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홀은 이 후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갔다. 식민지 자메이카에서 영국식 교육을 받고 영국 문학작품에 심취했던 홀에게 옥스퍼드는 낯설면서도 친숙한 것으로 다가왔다. 그가 영국으로 왔을 무렵 자메이카는 진정한 흑인 정체성을 가진 국가가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자메이카 역시 그에게 낯선 존재로 다가오게 했다. 홀은 이와 같이 어느 곳에도 ‘고향’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을 ‘친숙한 이방인’, 혹은 고향을 읽고 전 세계로 흩어져야 했던 유대인들에 비유해 ‘디아스포라’의 체험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디아스포라적인 체험으로 인해 홀은 인종 문제를 연구하면서도 단순히 ‘탈 식민지’ 사회의 상황과 연관짓는 데 그치지 않고 ‘흑인’이라는 인종적 범주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그는 영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이후에 양국의 좌파인사들과 새로 교류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나 스탈린주의에 반대했기 때문에 당에 가입하지는 않았고 이 때 만난 찰스 테일러 등 ‘독립적 좌파’ 인사들과 사회주의 협회를 결성한다.1956년 영국의 수에즈 침공과 소련의 헝가리 침공이라는 역사적인 두 사건이 터졌다. 특히. 소련의 침공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어, 기존의 사회주의 이론과 체제를 거부하고 새로운 노선을 모색하는 뉴 레프트가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반교조주의를 유지해왔던 독립적 좌파인사들이 자연스럽게 부상하게 되었다. 그는 새로운 이념을 개발해 내고 기존 제도권 밖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영국의 좌파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면서도 그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완전히 ‘영국화’될 수 없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같이 디아스포라적인 체험으로 인해 홀은 문화적 정체성 혹은 ‘자리매김’을 정치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핵심적인 과제로 설정하게 되었다.이 무렵 영국의 독립적 좌파는 와 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이 둘은 노선이 아주 비슷했을 뿐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유지가 어려웠다. 따라서 이 둘이 합쳐진 가 1960년에 창간되었다. 홀은 이 저널의 초대 편집인으로 2년 동안 활동했다.이 후, 첼시어 대학 등에서 강의 등을 하다가 그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문화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호가트에 이어 2대 버밍엄 연구소 소장이 된 홀은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며 연구소를 상당한 수준에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점차 연구소 내에서 보이지 않는 갈등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홀은 개방대학교로 자리를 옮기기로 결심했다. 버밍엄 연구소의 대학원 생들은 유기적 지식인으로서 폭 넓은 대중운동과 접목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지만, 이들 자신들은 사실상 영국의 교육 체제에서 선발된 소수 엘리트 계층에 속했다. 반면 개방 대학교에서는 좀더 학제적인 연구나 대중적 교육, 즉, 문화 연구의 대중화가 가능할 것으로 그는 판단했다. 홀은 지금가지 그 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이러한 성장 과정과 지적, 정치적 편력에 따른 그의 이론적 입장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경제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과 비환원론적 마르크스주의의 모색이다. 둘째는 현대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론의 정립이다. 셋째는 새로운 ‘이론적 실천’ 양식의 개발이다.비환원론적 마르크스주의의 모색정치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이러한 입장은 그의 이론에서 기본적인 전제가 된다. 그러나 그는 종래의 정통적 마르크스주의가 현실문제의 파악과 실천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재해석이나 재구성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다.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보면서 그러한 문제의식 내에서 그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새롭게 재구성하려 하면서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의 단서를 문화, 언어 등 정통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는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영역에서 찾는다.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경제주의를 거부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그것은 현실에서 가장 주요한 ‘본질적인’ 모순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체계적인 청사진에 따라 현실의 모순을 교과서적으로 진단하고, 미래에 대한 방향을 체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대신 그는 현실에서 모순이란 구체적 상황에 따라 아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잇고 미래 역시 열려진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고 본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이론 자체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개방성, 혹은 상대적 비결정성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주어진 해답을 거부하기 때문에, 계급 역시 본질적인 모순이나 관계에 의해 사전에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다양한 요인들의 복합적인 결합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계급뿐 아니라 언어와 문화, 성, 인종, 지역성, 하위 문화 등 종래에는 ‘종속적인’것으로 치부되던 영역들이 새롭게 중요성을 갖게 된다.홀은 이론으로도 구체성을 강조하고 있고 특히 실천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반화된 추상적 이론보다는 특히 현대 사회의 문화적, 정치적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선호한다. 이론적으로도 홀의 입장은 어떤 계열에 속하는지 꼭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홀의 이론은 현실적인 실천 전략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파고 들어가 볼 만한 가치가 있다.이데올로기와 문화의 이론화이론적으로 그는 알튀세르의 견해를 따라 자본주의 사회를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심급들이 접합된 ‘복합적이면서 통일을 이룬 구조’라고 보았다. 그는 또한 구조주의와 언어 이론의 영향을 받아 모든 사회적 실천은 담론처럼, 즉 언어처럼 작동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언어적, 이데올로기적 매커니즘은 사회 구성체의 ‘한부분’에 그치지 않고 구성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말하자면 ‘주관성’의 차원은 이전의 마르크스주의에서 부여했던 것 같은 지엽적, 부수적 위치에서 벗어나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새롭게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즉, 이데올로기의 장은 그 자체의 매커니즘을 갖고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
    사회과학| 2005.11.06| 3페이지| 1,000원| 조회(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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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장르]스크루볼코미디에서 로맨틱코미디로
    스크루볼 코미디에서 로맨틱 코미디로 장르의 진화...1.스크루볼 코미디1930년대 헐리우드를 장악했던 스크루볼 코미디. 스크루볼 코미디는 서로 다른 성격, 계급의 남녀가 등장해 티격태격 싸우다가 화해하는 내용으로 위트 넘치는 대사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부잣집 외동딸과 건달기가 다분한 기자가 결합하는 처럼 스크루 볼 코미디는 계급대신 남녀의 성 차이에 대한 다툼과 화해, 그리고 재치 있는 대사와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웃음과 속도감 더하여 결국에는 사회적인 대통합, 즉 계급간의 화해를 이끌어 내는 장르이기도 했다. (이의 뒷배경에는 제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도시에 진출한 직업여성들의 등장과 성 평등의 관념이 도사리고 있었다.)스크루볼 코미디에서의 플롯과 주제는 성적, 사회 경제적 차이 때문에 다투는 연인들이라는 캐릭터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후기로 갈수록 특정한 사회 경제적 차별성을 확대하고, 특히 노동과 유희의 대립, 도시와 농촌의 대립 등에 내러티브의 강조점을 둠으로써 성적인 갈등을 증폭시킨다. 이런 점에서 스크루볼 코미디는 갱스터 장르와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 두 장르 모두 도시화, 산업화에 침식당한 전통적, 농촌적 가치들을 다루고 있다. 전통적, 정신적 가치에 비해 돈과 물질의 가치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가를 한 사람 혹은 둘 다 인식할 때, 주인공 커플의 성적 갈등의 토대와는 무관하게 비로소 문제들이 해결된다. 스크루볼 코미디가 진화하게 됨에 따라 농촌/도시의 대립은 노동 계급/유한 계급의 대립과 맞짝을 이루게 된다.스크루볼 장르의 더욱 매력적인 성격 중의 하나는 중도적 결말이 아니라, 문화에 내재한 모순들을 제거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한편으론 그 모순들을 찬미하는 상반된 두 가지 결말을 이끌어 내는 능력에 있다. 주인공 커플의 최종적 화해는 그들이 공동체 내로 통합되어 감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괴팍한 행동과 예의범절에 대한 경멸은 둘이 결혼한다고 해도 관습에 얽매인 보통의 시민이 될 가능성이 없음을 예견케 한다.2.스크루볼 코미디에서 로맨틱 코미디로...1950년대서부터 7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는 급속도로 쇠퇴하였으며, 그 정통성도 약화 되어 갔다. 계급간의 갈등과 화해 같은 문제가 더 이상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변형된 코미디 장르가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이다. 로맨틱 코미디는 귀엽고 사랑스런 여주인공과 따뜻하고 어리숙한 남자주인공이 사랑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내용이다. 스크루볼 코미디에서 대중들이 외면했던 부분들이 빠지게 된 것이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로맨틱 코미디는 여성작가와 여성감독들의 대거 진출을 가져왔다. 헐리우드는 수전 세이들먼, 노라 에프런 등의 자작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드는 재능있는 여성감독들을 끌어 들인다. 이후 로맨틱 코미디는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큰 전제하에 다양한 변화들을 시도하면서 장르의 진화를 가져오고 있다. 1980년대 이후의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예체능| 2005.11.06| 1페이지| 1,000원| 조회(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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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문화] 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
    들어가며중학교 1학년 때 극장에서 ‘라이온 킹’을 본 기억이 난다.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스로 어른이 된 것 마냥 우쭐되는 것에 눈을 뜨기 시작하던 그 시기, 친구와 함께 디즈니의 만화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디즈니 만화는 아이에서 어른까지 모두가 볼 수 있는 수준의 만화였다. 너무 유치하지도 않았고 너무 불량하지도 않았다. 디즈니를 만들어 왔던 지금까지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디즈니라는 그 이름에 막연한 신뢰를 갖게 해주었다. 그 캐릭터들은 우리에게 선과 악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했으며, 이야기의 행복한 결말은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따뜻한 눈을 가지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디즈니를 보는 사이 우리는 이미 디즈니화가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저자는 이야기를 한다.디즈니의 위치디즈니의 만화는 오랜 시간동안 순수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왔다. 현실 세계의 폭력들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세상으로 묘사되어 왔고 그런 이미지 덕분에 지금 시기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소년기를 함께 했었고 모두에게 ‘공공의 추억’이 될 수 있었다. 그러한 디즈니의 순수함, 즐거움, 깨끗함이라는 이미지는 때로는 아이들의 교육자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디즈니사는 엄청난 규모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다. 그만큼 디즈니가 전 세계인들의 삶에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말은 그만큼 디즈니가 자신들의 의도대로 사람들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디즈니는 이미 오락독점기업으로서 교육부분에서 그 권력을 쓰고 있다. 자신들의 상업적인 목적을 교묘하게 감추어 내며 새로운 교육자로서 자신들의 입지를 다졌다. 그들은 교육은 즐거워야 한다며 기존의 교육의 역할마저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디즈니사의 전직이사는 디즈니가 소유하고 있는 힘을 언급하며 이야기 한다. “디즈니는 기업이라기보다는 생각과 태도를 지닌 하나의 국가이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디즈니는 분명 전 세계 사람들에게 유쾌한 즐거움을 주는 기업임에는 틀림이 없고 많은 이들의 어린 시절의 소망과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 기업임에도 틀림이 없다. 또한 정치, 경제적인 권력을 가졌으며 나름대로의 교육 모델을 개발해가는 힘을 지닌 기업이기도 하다.디즈니에 대한 문제제기한 이윤추구 목적 기업의 권력 비대화는 분명 우려할만한 일일 것이다. 이윤추구 기업의 교육자적, 정치적 권력의 형성은 그 기업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의식을 조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나 어린시절부터 무비판적으로 사회 전반에 흐르는 이데올로기를 수용했을 경우 자라면서 그것은 하나의 가치관이 되고 그것은 주류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강자가 되는 것이다. 공공자가 아닌 이윤추구 기업의 권력화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재조정하고 있다. 거대 다국적 기업인 디즈니사 역시 문화 권력자로서 군림하는 사이 과연 그들은 어떠한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는가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한다.디즈니에 대한 비판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지금까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 성격 덕분에 다른 성인 영화들이 비평가나 대중들로부터 받는 비판적 분석을 거치지 않을 수 있었다. 디즈니는 현실의 어두움이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올바른 곳으로 치부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디즈니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유보되는 사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진 않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 따라서 중요한 문화영역의 일부로써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이행하는지에 대한 담론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디즈니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검토하는 자세를 취한다.여성에 대한 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방식은 디즈니의 큰 문제 중의 하나이다. 나 에서는 여성의 역할을 축소시키며 구성한다. 이러한 영화에 나오는 모든 여성 인물은 궁극적으로 남성들에게 복종하고 자신의 힘이나 희망을 전적으로 지배적인 남성들의 이야기 안으로 국한시킨다. 의 주인공 벨 또한 영화의 중심이라기보다는 “야수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수단 내지는 단서”에 불과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속의 이러한 캐릭터들의 모습은 어른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어린이에게 성에 대한 유해한 편견을 심어준다.인종차별의 문제는 디즈니 영화의 또 다른 주요 논쟁거리이다. 에서 악역으로 나온 캐릭터는 모두가 턱수염을 길렀고 악의에 찬 눈매와 사투리를 쓰고 큰 코를 가졌다. 이 영화에서 아랍 문화와 함께 연상되는 지역적 이미지는 걸프전 당시 인식된 대중의 편견을 확대시켜놓은 것이다. 에서도 인종적인 의미를 실은 표현과 언어가 명백히 드러난다. 악의 상징인 스카는 선한 사자들보다 털이 검다. 왕족에 속하는 등장인물들은 영국의 귀족적인 말투를 사용한다.디즈니의 최근 애니메이션에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비민주적인 사회관계에 대한 찬양이다. 남성이 통치하고 엄격한 규율이 사회 계급을 통해 지켜지고 지도력은 사회 지위에 따라 결정되는 식의 18세기 영국 군주 시대로의 회귀를 갈망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관점의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에게 인종차별, 성차별, 민주주의의 위기와 같은 사회문제들이 자연의 법칙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그릇되게 주입하는 것이다.디즈니의 이러한 애니메이션 말고도 아이들이 대상이 아닌 영화들 속에서도 보수적인 디즈니의 관점이 많이 녹아 있다.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의 경우 영화 속에서 베트남 여성들을 성적인 상품으로 매도하기도 하고 은연중에 베트남인들이 미국인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의 경우 매춘부인 비비안이 남성기업가와 사랑을 나누면서 결혼을 하게 되는 현대판 신데렐라의 이야기로 꾸며진다. 영화 속에서 비비안이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은 매춘부였던 그녀가 남성기업가덕분에 값비싼 옷들을 소비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영화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꿈을 실현시켜 준다는 디즈니랜드에서는 철저히 아이들을 주타깃으로 하는 엄청난 상행위가 만연하고, 주택건설에도 참여해 돈 있고 기득권을 지닌 백인들에게 물건을 제공한다. 매 영화가 나올 때마다 그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캐릭터 상품들은 철저히 디즈니의 기업전략에 부응하는 소수의 기업들이 판매할 권리를 갖게 되고 그 상품들은 또 다시 아이들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하나의 보물로써 이익에 눈이 먼 상행위를 미화하게 된다.위에서 간략하게나마 살펴본 디즈니 영화의 모습들은 순수함을 가장한 채 편협한 사상과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비만한 자본 기업의 모습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진보적인 담론을 무시하고 은연중에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을 가로막는 정치적 역할을 자행했던 것이다. 이는 현 미국사회에서 지배적인 이념들을 정착시키고 아이들을 소비대상으로 바라보는 디즈니라는 한 기업의 야욕을 보여주는 것이다.디즈니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또한 디즈니가 우리들에게 제공한 기쁨 또한 무시 할 수 없다. 디즈니는 철저하게 이런 우리의 감성을 자극했고 스스로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하나의 교육매체로써 그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움직임이 지금에 있어서 거대기업의 상술에 지나지 않음을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3.12.20| 5페이지| 1,000원| 조회(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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