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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사] 충청지방의 위정척사운동과 의병투쟁
    충청지역의 衛正斥邪運動과 義兵鬪爭{1. 머리말2. 衛正斥邪運動1) 위정척사사상의 대두와 전개2) 위정척사운동의 확대3) 위정척사운동의 성격3. 韓末義兵戰爭1) 의병의 개념2) 의병전쟁의 시기별 특징3) 의병전쟁의 의의4. 충청지역의 위정척사운동가5. 淵齋 宋秉璿의 위정척사사상과 그 활동1) 가계2) 학문3) 위정척사사상의 형성4) 위정척사사상의 전개5) 송병선의 위정척사운동과 그 의의6. 맺음말1. 머리말19세기 중엽부터 1910년까지의 조선사회는 커다란 역사적 변동기였다. 흔히 이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일방적으로 조선사회가 식민지화되어 갔다고 서술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이 중국중심의 세계질서로부터 이탈하여 근대적 국제질서로 변모하는 동시에 서구열강과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처하고 또 국내적인 모순을 해결하면서 근대민족국가를 수립하고자 노력했던 시기였다.이 글에서는 이러한 서세동점의 시대속에서 제국주의를 배척하고 민족정신을 수호하고자 했던 구한말의 움직임을 위정척사운동과 의병전쟁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더불어 우리지역에서 정척사운동을 펼쳤던 연재 송병선의 학문정신과 활동을 통해 위정척사운동 전개의 구체적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2. 衛正斥邪運動1) 위정척사운동의 대두와 전개18세기 후반 조선사회에서 주로 서학의 종교적 측면에 대한 배척을 위하여 형성되었던 위정척사론은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종교적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 침탈에 대한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끼면서 구체적인 운동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러한 위정척사 운동은 크게 세시기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이항로와 기정진에 의해 위정척사운동의 이념이 정립된 1기와 1876년 개항을 전후하여 최익현이 「持斧伏闕疏」를 올린 2기, 그리고 김홍집이 가지고 온 『朝鮮策略』의 내용을 놓고 이듬해 벌어진 위정척사운동까지 하여 3기로 나누어진다.위정척사사상의 기본논리는 성리학의 2분법적 가치관인 理氣論에 근거하여 正을 지키고 邪를 배격한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의 위정척사사상은 청의 아편전쟁, 영·불연합군 일본과 서양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한다는 차원에서 지역과 사상적 논리의 차이를 초월하여 연대투쟁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정척사운동은 안기영 사건 이후 점차 소강상태로 들어갔으며 척사론도 동도서기론에 따르는 자강양무책으로 변화되어 갔다. 신사척사운동의 분위기에 고무된 남인 등 대원군의 추종세력이 재집권을 꾀하여 이재선을 추대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은 이풍래의 밀고로 수포로 돌아가게 되고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대원군의 추종세력은 물론 위정척사운동까지도 함께 탄압하였다.이와같이 초기의 위정척사운동은 전통적 사회체제와 유교문화를 수호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반외세·반제국주의 운동을 전개하고, 안으로 민씨척족의 개화정부가 추진하는 근대화 개혁정책을 공격하였다. 이후 1890년대에 들어서면 위정척사사상은 의병운동의 사상적 기저로 작용하고 위정척사운동에 참여했던 일부 인사들이 의병으로 변신함으로써 위정척사운동은 의병운동이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3) 위정척사운동의 성격위정척사운동에는 역사발전에 역기능을 한 보수적 성향이 강하게 내재해 있었다. 이 운동의 이면에는 신분제를 철저히 고수하고 화이론과 인수론에 얽매여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측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성리학의 이론도 다분히 복고적이고 관념론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던 점이 있을 것이다. 또한 참여계층도 사족층 인사들로 구성됨으로써 민중의 참여를 유도해내지 못한 한계도 지니고 있다.그렇지만 위정척사운동은 일본과 서양의 이질문화에 대응하여 전통적인 문화, 즉 주자학적인 유교사상을 수호하기 위한 위기의식에서 발생하였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19세기 조선의 역사적 상황은 민족적 모순과 계급적 모순이 중첩된 위기에 놓여 있었는데, 위정척사운동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하다가 후일 의병운동과 그 이후에 전개되는 민족해방운동으로 전환됨으로서 근대민족운동의 중요한 사상적 주류를 형성하였다. 이렇듯 조선후기 서구와 일본세력의 침입에 항거하여 일어나 의병전쟁의 사 강릉의병에서 보이듯이 고종의 해산조칙을 거부하고 만주로 들어가 재기의 항전을 준비하기까지 하였다.2 중기의병(乙巳義兵)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일제에 의해 한일의정서·한일협약 등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조선은 일제의 준식민지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처럼 일제의 침략야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남으로서 반일의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190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조약으로 반일감정은 극도에 이르게 되었으며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을사의병이라고 한다.이 무렵 중단하고 있었던 의병운동은 농민대중을 그 기본으로 하여 다시 봉기하게 되었으며, 그 지도층은 변함없이 양반유생이었다. 그렇지만 양반유생이라 하더라도 위정척사적 명분론을 내세우기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구하려는 의지가 강하였다. 양반유생출신의 경우에도 이른바 화적이나 활빈당으로 내몰린 농민층과 연대하려고 노력하였는데, 이는 국가와 민족의 위급한 상황을 직시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전기의병과 달리 주목되는 점은 평민의병장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는 점인데, 이로서 더욱 많은 민중을 동원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결과 후기 의병을 전국적 규모의 항쟁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게되었다.3 후기의병(丁未義兵)1907년 7월 이후에 일제가 헤이그 밀사 사건을 구실로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丁未七條約{) 1907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위해 강행한 7개항의 조약으로 韓日新協約이라고도 한다. 을사조약으로 이미 식민지화를 추진한 일제는 헤이그 밀사사건을 트집잡아 고종을 강제 퇴위 시키고 허울만 남은 대한제국을 말살하기 위하여 법령제정권·관리임명권·행정권 및 일본관 리의 임명 등에 관한 7개항의 조약을 제시, 하루만에 李完用과 이토히로부미 사이에 조인되었 다. 이로써 일제는 행정실권을 장악, 한국인 대신 밑에 일본인 차관을 임명하고, 경찰권을 위 임받아 군대를 해산시키고, 언론을 탄압하여 10년 마침내 대한제국의 국체를 말소하고 한일합 병을 성사시켰다. 그 내용을 살는 것은 불가하고, 황종손 황질이라 일컫는 것은 사계 김장생의 예학과 정주학에 요지가 있음을 근거로 하여 김장생의 설을 쫓아 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1852년(철종3)에는 경연관, 지평, 장령을 역임하였으며, 이어서 부호군을 거쳐 1855년 승지가 되었고, 이조참의에 이르렀다. 학문에 힘써 예학과 성리학에 밝았다. 성리학에 있어서는 주로 이이의 설을 따랐으며, 인물동이론에서는 인물동성을 주장하는 낙론을 지지하였다. 문집으로는 『수종재집』이 전한다.2 송근수(宋近洙)1818(순조 18) 1903(광무 7).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근술(近述), 호는 입재(立齋)·남곡(南谷)이다. 송시열(宋時烈)의 8대손이며 송흠학(宋欽學)의 아들로 송흠락(宋欽樂)에게 입양되었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헌종 14년(184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대사헌·공조판서·병조판서·이조판서·좌찬성·우의정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좌의정이 된 뒤 고종 19년(1882) 정부의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교섭에 반대하여 사직소를 올렸다. 이 상소에는 양교(洋敎), 즉 기독교의 폐해를 지적하고 일본 이외의 외국과의 조약체결을 반대하는 한편 청국에 파견된 영선사(領選使)의 철환(撤還)도 주장하였다. 퇴직 후에는 봉조하(奉朝賀)가 되었으며 저서로는 《송자대전수차(宋子大全隨箚)》가 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3 최익현(崔益鉉)본관은 경주(慶州), 자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庵)이다. 경기도 포천(抱川)에서 출생하였다. 김기현(金琦鉉)·이항로(李恒老) 등의 문인(門人). 1855년(철종 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 전적(典籍)·사헌부 지평(持平)·사간원 정언(正言)·이조정랑(吏曹正郞) 등을 역임하였다. 수봉관·지방관·언관 등을 역임하며 강직성을 드러내 불의·부정을 척결하여, 관명을 날리고, 1868년(고종 5) 경복궁 중건의 중지, 당백전(當百錢) 발행에 따르는 재정의 파탄 등을 들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실정(失政)을 상소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했다.1873년명승지를 돌아보고 견문을 넓혀나가며, 이를 학문수련의 한 방법으로 삼았다.1861년(26세) 2월 그는 槐山鄕試에 참여하였는데, 과장에서 문에 금줄을 쳐놓고 書吏가 호명하면 선비들이 이에 대답하고 몸을 굽혀 들어가는 것 등 과거제도의 폐단을 목격하고 이후 응시하지 않았으며, 선비들의 위상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 세태를 비판하였다. 이렇듯 30세 이전의 송병선은 부모를 여윈 어려운 환경에서 숙부들과 외숙에 의지하여 수학하고 학문을 연마하여 점차 자신의 학문적·사상적 세계의 기반을 다져나갔다.30세 이후 그의 생애는 크게 두 단계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이는 1865년(30세)부터 1880년(45세)까지의 위정척사사상 형성기와 1881년(46세)부터 1905년(70세)까지의 위정척사운동기로 구분된다.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만동묘철폐에 대한 사상적 대응과 辛巳斥邪運動의 참여라는 현실대응양상에 의한 것으로, 그의 생애에 있어서 전환점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위정척사사상 형성기(1865∼1880)는 송병선이 기존에 익힌 학문체계를 바탕으로 사상을 형성하고 이를 확고히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학문을 연마하면서 동시에 가학을 계승하여, 正學·正道를 수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저술과 상소를 통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즉, 지켜야 할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상황에 맞추어 물리쳐야 할 것을 파악하여 비판·배척하였던 시기이다. 그는 1865년(30세) 만동묘가 훼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탄하여 다음해인 1866년(31세) 沃川 梧山으로 이거하였다. 그에게 있어 만동묘 훼철은 기존의 사상체계에 큰 혼란을 가져오는 사건으로서 도통연원의 명맥을 잇는 장소가 왕명에 의해 철폐되었다는 사실은 도맥의 단절과 동시에 송병선 자신이 설 수 있는 사상적 토대를 상실하는 의미였다. 이후 「闢邪說」과 『近思續錄』을 저술하여 위정척사사상을 체계화시켰으며, 그 뒤 1874년(39세) 만동묘에 다시 송시열을 배향하라는 복향의 명이 있자, 義理가 조금 펴졌다 고 하여 회덕 54권
    인문/어학| 2004.04.04| 16페이지| 5,000원| 조회(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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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문화] 우리가 사는 풍경과 문화를 읽고
    나는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운동화, 가방, 옷 등의 물질적인 것에서부터 새로운 학기, 영화, 게임 등 무형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나는 새로운 것들에 흥미를 가진다.- 단 친구와 애인을 제외하고- 이러한 이유로 나는 새로운 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프랑스 문화 강의를 수강하게 되었다. 이번 과제도 비슷한 기분으로 임했다. 이래저래 바쁜 일이 많아 책을 읽고 레포트를 쓴다는 것이 귀찮기도 하지만 새로운 책을 사서 새 문화를 배운다는 기쁜 마음으로 한 권의 책을 선정했다. 내가 선택한 책은 “우리가 사는 풍경과 언어” 라는 책이다. 이 책은 내 기대에 어긋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내 기대를 충족해 주었다. 프랑스의 문화, 언어 등의 프랑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리란 내 기대와 달리 우리학교 불문어학과 교수님이 썼다는 것과 프랑스 박물관의 내용이 좀 담긴 것을 제외하면 프랑스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내 기대를 져버렸지만 익숙한 것을 전혀 새롭게 보는 눈을 제시해 주었다. 이 책은 작가의 사견(개인적 생각)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나쁘게 말하면 조금은 청승맞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청승”을 즐긴다. 요즘처럼 삭막한 때에 청승맞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여유가 내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현대를 속도와 정보의 사회라 일컫는다. 그만큼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고 있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조차 없이 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바쁜 일상 속에서 틈틈이 하늘과 꽃과 바람과 그리고 사람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고 글을 썼다. 그냥 스쳐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길가에 질서 없이 피어있는 꽃과 나무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할머니의 작은 정성과 사랑에 따뜻함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서술해 주고 있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때로 “와!” 하는 감탄이 나왔다.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눈으로 어떠한 사물과 단어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작가의 눈이 그다지 특별한 시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임에도 현대의 우리는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란 의심이 생긴 것이다. 자신의 견해를 밝히라는 주제의 레포트 마저 인터넷에 의존하는 무신경한 현대인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 작가처럼 아름다움을 표현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문득 서글퍼졌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기계처럼 잘 해내고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집을 얻고 잘 재단된 옷을 입는 것이 행복한 걸까? 현대인들은 혹시 부는 곧 행복이라는 잘못된 논리의 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행복이란 공식이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주위의 작은 것들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가끔은 뒤를 바라볼 줄 알며 주어진 삶을 나름대로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의 작가는 그 짧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 이렇게 장황하게 한 편의 글을 쓴 것이 아닐까?이 책은 크게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봄, 두 번째는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 마지막으로 대학과 언어이다. 그럼 지금부터 이 책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생각나는 대로 간략하게 적어보도록 하겠다. 5개의 장들이 그 제목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각 장을 기준으로 대강의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보고 계절과 책에 관한 나의 견해를 밝혀 보고자 한다.봄은 시작의 계절이며 희망의 계절이다. 겨울의 긴 장벽을 뛰어넘은 식물과 동물들은 기지개를 펴고 봄의 햇살아래 평화의 시간을 보낸다. 봄이라는 첫 장의 내용은 봄의 아름다움과 우리가 생각해야 할 몇 가지 교훈들이다. 진달래와, 개나리, 목련 등의 꽃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마음을 그러한 사물에 이입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작은 일상을 책에 담아 놓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우리학교의 기숙사 길에 벚나무가 작고 초라한 것이 사람들이 아스콘 포장을 했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벚꽃이 잘 자라지 못한다는 내용이나 퇴색해 가고 의미를 잃어 가는 스승의 날 등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때로 매우 중요한 것의 소중함을 잃고 사는 경우가 있다. 공기의 소중함이나 물의 소중함, 그리고 가까이 있는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 부모님이나 형제의 소중함 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 그 예이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진다면 이러한 소중한 것들을 느끼고 보답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라는 것은 항상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이고 그러한 잘못들은 언젠가 시간이 지나며 고쳐나가면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희망을 가지느냐의 여부이다. 희망을 가지고 직면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우리의 미래도, 우리의 생각도 암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여름은 방학, 캠프, 장미 그리고 잊지 못할 2002월드컵의 붉은 열기가 살아있는 계절이다. 작가는 봄과 여름 등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그 때의 느낌을 토대로 책을 엮었기에 여름이라는 장의 제목과 그 내용이 상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여름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아련히 들려오는 듯한 “대한민국” 이라는 함성을 떠올리며 우리는 한 번쯤 감상에 잠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솔직히 여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피부를 태울 듯한 햇볕과 습도 높은 날씨로 인해 불쾌지수가 높아져 서로 부딪히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덥고 짜증나는 여름도 끝이 나게 마련이고 그 안에도 수많은 아름다움과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추억들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가을은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을 주는 계절이고 홀로 남은 자들에게는 더 없이 외로운 계절이다. 이 책의 저자도 가을에는 주로 사색적이거나 감상적인 내용의 글이 많다. 그렇다. 문학을 하지 않는 나조차 가을이 되면 글을 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때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또는 가끔 외로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생산적이고 중요한 것은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는 점이다. 봄에 씨를 뿌리고 뜨거운 여름 공을 들여 키운 것들에게서 열매를 얻게 된다. 그것이 식물이든 자신의 일이든, 사랑이든 말이다. 무언가에 매진하고 또 그 결과물을 얻어내는 것은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 열매가 잘 익고 빛깔 좋은 열매이든 보잘것없는 열매이든.. 열매는 열매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우리는 떨어지는 낙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도 많은 생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계절의 마지막인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다. 추위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배고픔에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더욱 부각된다. 혹자는 겨울을 시련의 계절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겨울은 그리 혹독한 계절만은 아니다. 내년을 대비하는 신입생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빨리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계절이며, 다음해 맛있게 먹을 김장을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어떤 일이든 끝은 없다. 헤어짐을 또 다른 시작이라 표현하는 몇 명의 시인들의 말처럼 혹독한 겨울은 다시 밝아올 봄을 위한 준비기간이며 가슴 떨리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독후감/창작| 2004.03.14| 3페이지| 1,000원| 조회(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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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책기조] 역대대통령 정책기조 분석
    목 차1. 각 정부의 개괄적인 정책기조와 정책별 정책기조노무현의 참여정부의 정책기조-정치개혁 기조-대북 정책 기조-경제정책 기조-지방 분권 기조-노동, 복지 정책기조김대중의 국민의 정부의 정책기조-경제관련정책기조-대북 정책기조-노동관련정책기조-여성관련정책기조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선 당시 정책공약-정치개혁부문-경제분야-대북 정책-지방정책-노동 복지분야-교육 여성2. 각 정부의 정책기조 차이이회창-노무현 정책비교-정치개혁분야-경제분야-대북정책-지방정책-노동복지분야-교육?여성3.정책기조가 상황문제인식에 반영되는 실태-이회창-김대중*느낀 점, 후기*참고문헌1. 각 정부의 개괄적인 정책기조와 정책별 정책기조노무현의 참여정부의 정책기조노무현 정부의 정책기조는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로 요약될 수 있다.먼저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살펴보면국민의 국정에 대한 참여의 형태에 따라 민주주의의 형태가 결정되므로 동원되는 국민이 아닌 참여하는 국민, 국민으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국민이 성숙한 민주주의, 참된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다는 인식이 그 바탕을 이룬다.‘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는 우리나라가 새로운 도약의 과제와 함께 통합되고 균형잡힌 성숙한 사회로 발전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는 인식아래 특권과 차별, 배제의 갈등구조를 없애야만 국민이 하나되고 더불어 잘사는 균형발전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마지막으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라는 기조는 남북 화해협력과 한반도 평화를 동북아 지역으로 시야를 넓혀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인식아래 평와와 번영의 동북아시대의 주도적인 역할을 우리가 담당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노무현대통령의 참여정부의 각 영역별 정책기조를 살펴보면1. 정치개혁 기조는 ‘통합과 원칙의 정치’ 와 '특권과 부패의 청산'으로 요약할 수 있다.통합과 원칙의 정치로는 우선 국민통합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인재 등용에서 '을 개최하기로 했다. 이러한 열린 통일 포럼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힘있는 대북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이를 통해 전문가 및 국민과 통일 당국간 의견 정례교환이 기대되고 있다. 또한 여?야당과의 초당적 협조도 적극 추진될 예정이다.이러한 대북 정책은 현재 이라크전이라는 대외적 상황으로 인하여 그 동안 검토해온 ‘포괄적 접근’의 구체적 추진방안이 통일부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 동안 대북 정책 기조는 대화를 통한 해결, 상호신뢰 우선과 호혜주의, 당사자 원칙에 기초한 국제협력, 국민과 함께 하는 정책 등 4원칙으로 정리됐으나 이라크전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따라 좀더 치밀한 접근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대북 정책기조의 하위개념으로서 대북 정책 목표로는 화해-협력에서 평화 번영으로의 확대, 발전을 꼽을 수 있다.노 후보가 내놓은 평화 구상의 가장 큰 특징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제창했던 남북 화해협력 정책을 계승하면서 이를 ?동북아 평화와 번영?으로 확대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또 안보의 개념을 군사문제에 국한시키지 않고 경제문제까지 포괄함으로써 북한 지역 안정화를 위한 대북 지원의 논리적 근거를 마련했고, 이를 통일비용의 분담과 장기투자의 관점으로 연결시켰다.노 대통령은?남북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한반도’에서 ‘동북아?로 확장하면서,?화해와 협력’을?평화와 공동번영?으로 한 차원 격상시키는 것이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발전시키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퍼주기 논란?등을 감안, 대북 5원칙에 국민과 함께 하는 정책을 포함시켰다. 대북 정책을 과감히 공개하고, 이를 야당과 공유함으로써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미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구상은 대선당시 한나라당 이 후보가 제시한 평화구축 방안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우선 이 후보가 상호주의와 투명성 검증을 앞세워?조건부 대북 지원 및 선(先)관계 변화?를 상정하고 있는 데 반해 노 후보는 북한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류를 독자적으로 진척시키면서 이를 연계시키지 않는 을 중앙공직에 반드시 일정비율 할당▲ 현재 5조원 규모인 연구개발(R&D) 예산을 이들 지방대를 포함해 각 지역정부에 거의 전액 지원▲ 세원 확보를 통한 '지방재정형평기금'을 조성, 지방재정에 투입▲ 16개 시.도별로 전문가 각 5명씩 80명의 위원으로 가칭 '국가균형원'을 설치, 지역갈등을 유발할 소지가 큰 국가적 사업에 대해 시행 여부를 판단5. 노무현 정부의 노동, 복지 정책기조는 "완전고용 달성과 공공서비스 강화 및 차별 시정"이다.- 주택정책▲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 투기를 방지하고 부당이익에 대해 엄중 과세조치▲ 보유세의 실거래 가격 반영,▲ 거래세의 점진적 축소▲ 10년간 주택 100만 호를 건설하기 위한 예산 및 택지확보, 불법, 불량주택의 환경개선작업- 노동정책▲ 주5일 근무제는 시행 여건을 구비한 업종과 기업 등은 먼저 시행하되 기업규모와 업종 등에 따라 보완책을 강구- 의료부문▲ 정부재정의 의료비 지출 확대▲ 국가적 차원의 질병, 재난관리 시스템을 통한 평생건강관리체계 확립▲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 식약청의 기능 강화- 차별 없는 사회실현▲ 학벌,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외국인을 5대 차별시정 대상으로 설정▲ '사회적 차별금지 및 적극시정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 대통령 산하 '국가차별시정위원회' 설치6.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의 기조는 "학벌주의와 학교 서열 타파"로 요약될 수 있다. 교육정책 3대 목표는 평생교육체제 확립, 교육자치 확대, 취약층 교육복지 확충이다.- 평생교육체제확립을 위해서는▲ 학교의 입, 퇴학 장벽 제거와 유급학습휴가제도 도입을 검토▲ 기존 방송통신고교와 방송대 운영을 내실화▲ 통신, 사이버공간을 활용한 교육기회를 대폭 확대- 학벌주의 문화 타파▲ 서울대는 순수학문 위주의 세계적 대학으로 발전▲ 지방분권화 차원도 겸해 분야별로 서울대와 대등한 수준의 지방대학을 20개 가량 육성▲ 중앙 공직에 지방대 출신을 일정 비율 의무 채용하는 방안 검토- 취약층 교육복지 확충▲ 5세 아동에 대한 전면 무상교육, 4세 이화정착을 위한 갖가지 노력들은 결코 과소평가 되어져서는 안 된다.이러한 성과는 모두 국민의 정부의 ‘화해?협력?평화정착’이라는 대북 정책기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본다.당시 국민의 정부는 이러한 정책기조를 추진하기 위한 추진기조로서 안보와 협력의 병행추진이라는 방안을 제시하였으며, 평화공존과 평화교류의 우선 실현, 남북당사자 해결 원칙하에 국제적지지 확보,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대북정책 등의 방안을 제시하였다.또한 추진과제로는 남북간 교역이나 경제협력에 ‘정경분리’원칙 적용, 정부간 협력에 ‘상호주의’원칙적용, 북한식량난 해결을 위한 조건 없는 대북 지원, 남북간 대화를 통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실천,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 한?미?일 공조에 기반 하여 냉전구조의 해체를 위한 포괄적 접근 등을 제시하였다.3. 김대중 정부의 노동관련정책기조는 “생산적 노사협력체제 구축”과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및 근로조건 개선”으로 설명될 수 있다. 생산적 노사협력 체제의 핵심으로는 ▲법과 질서의 준수 원칙을 확립한 바탕 위에서 참여와 협력의 신 노사문화 정착 ▲경영성과에 대한 합리적 배분원칙 정착 지원 ▲불법행위에 대한 합리적 배분원칙 지원 ▲불법행위에 대한 노사를 막론한 엄정대처 등을 꼽을 수 있다.4. 김대중 정부의 여성관련정책기조는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남녀공동의 참여사회 구축”이다. 이러한 기조를 직접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추진기조로는 먼저 여성의 사회참여를 확대하는 방안과 여성인력의 경제참여 활성화가 제시되었으며 모성보호비용의 사회적 분담, 아동양육의 사회적 책임강화와 학교급식 확대, 여성복지정책의 강화가 뒤이어 제시되었다.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선 당시 정책공약1. 정치개혁부문이 후보의 정치개혁안은 ▲권력분산 ▲정경유착 및 부패 청산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보장 등으로 요약된다.권력분산과 관련, 이 후보는 집권시 대통령은 국정의 감독자 또는 후견자의 지위에 서고 총리는 국정 전반을 직접 챙기는 실질적 권한을 갖도록 역할을 분담하며, 이를 위한 상징적 조치로언'을 준수해 핵개발을 중단하고 국제지구 사찰을 수용토록 유도키로 했었다.금강산 관광에 대해 이 후보는 "북측이 합의한 관광특구 지정과 육로관광이 이뤄져야 계속할 수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4. 지방정책핵심은 `지방분권특별법(가칭)'과 `지역균형발전법(가칭)' 제정이다.이를 통해 국가와 지방의 역할과 재정을 재조정하는가 하면, 지역균형개발 관련각종 기금과 특별회계를 통합하고 `지방발전기금'을 조성하는 등 지역기반시설의 확충에 필요한 정책, 사업시행, 재원확보 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또 `지역발전협약제도'를 도입,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상호계약을 맺어 주요사업집행을 보장하고 부산 신발산업, 대구 섬유산업, 광주 광(光)산업, 경남 기계사업 등 광역권 별로 핵심전략산업을 선정, 육성할 것을 약속하였다.자치단체장의 권한남용으로 인한 폐단을 막기 위해 주민소환제를 도입하고 주민이 주요 자치사무를 스스로 결정하는 주민투표법의제정을 주장하였다.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선 40조원 이상 소요되고 차기정부 재정지출의 우선 순위 등을 고려해야 하며 통일에 대비해 검토해야 한다는 점 등을 들어 신중한 입장이었다.대신 대전을 `과학기술수도'로, 충남은 `교육 특구'로 지정하는 등 기능별로 특성을 살려 지역별로 개발해 나가는 게 현실적이라는 입장이다.또 정부기관의 이전을 적극 이전하고 법인세 등 세제혜택을 통해 대기업의 본사와 은행 등 민간 중추관리기관의 지방이전을 위한 강력히 촉진하겠다고 했었다.5. 노동 복지분야`상생의 원칙' `사람중심의 관점'이라는 원칙 하에 신노사문화를 주장하면서 법과 원칙, 정부의 공정한 잣대를 중요시하는 입장이다.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법, 제도를 개선해야 하며, 전체 노동자의88%에 이르는 비노조 근로자의 권익도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직장여성 차별 철폐를 위해 ▲보육시설에 대한 정부지원 확대 ▲한시적인 여성우대조치 ▲친양자제도의 도입과 호주승계순위의 개정 등을 추진하였다.그러나 주5일제에 대해서는 노
    사회과학| 2004.03.14| 15페이지| 1,000원| 조회(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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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학] 신화속의 여성, 여성속의 신화를 읽고..
    “신화 속의 여성, 여성 속의 신화”을 읽고..처음 교수님께서 “신화 속의 여성, 여성 속의 신화”와 “참된 페미니즘을 위한 성찰” 이라는 두 권의 책을 과제로 정해 주셨을 때 “참된 페미니즘을 위한 성찰” 이라는 책을 선택하고 싶었다. 두 번째 책이 쉬워 보여서가 아니라 원래 스스로가 신화나 역사적 사실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과감하게 “신화 속의 여성, 여성 속의 신화”라는 책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적어도 현대에 닥쳐진 여성의 문제를 고찰하기 위하여 아주 오래 전 당연시 여겨져 왔던 사건과 사고들을 지금까지 보아온 관점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흥미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나의 호기심을 잘 충족시켜주었다.이 책의 저자는 무엇보다 기존의 역사적 진리를 뒤집으려는 노력을 시도하였다. 남성 위주로 이루어진 역사, 즉 여성을 경박하게 또는 폄하하여 묘사함으로써 남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과거 이야기들을 뒤집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 가장 걱정했던 점은 기존 “그리스 신화” 에 대한 지식이 없는 채로 이 책을 읽고 이해하며 나의 생각을 적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내가 그리스 신화의 내용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거기에 속하는 것도 있었고 또 모르는 내용은 조금씩 배워나가면서 제법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또 생각해 볼 수 있었다.책을 읽어나가면서 느낀 점은 이 책이 지나치게 여성적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물론 과거의 남성주의적 관점을 뒤집은 것은 새로웠고 또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만 저자가 신화와 비극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조금 편향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예는 엘렉트라와 카이니스의 이야기에서 잘 나타나 있는데 작가는 이 부분이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관점을 나름대로 피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이 소설이 여성적 관점에 치우쳐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가지기는 했지만 나는 이 소설의 내용이 매우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당연히 작가의 관점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 소설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독자에게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독자로서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생각과 가치를 생각하여 수용?비판하면 되는 것이고, 작가는 작가로서 자신의 생각을 써 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이 글이 흥미가 있기도 했고, 또 남성들이 알아야 할 의미 있는 내용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책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책의 시작은 남성의 신들의 이야기가 판을 쳤던 그리스 신화와 달리 여신들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가 적혀있다. 열녀를 치켜세웠던 과거의 가치관과 그 속에 있었던 여성, 개성이나 자기생각이 분명한 여성, 즉 기존의 가치에 부합되지 않는 여성은 악녀로서 사회에서 매장되어야 했던 현실, 그리고 여성의 물화로 미인을 중요시하는 미인전 등 과거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판단되고 평가되었던 여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이 비판적인 시각에서 잘 나타나 있다.이 책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하기만 한다면 내 레포트는 서평이 아니라 책의 요약이 될 것이므로 지금부터는 내가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을 위주로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 내 생각을 적어나가도록 하겠다. 내가 가장 흥미 있게 읽은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설에 관한 내용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럼 먼저 질료형상설에 대해 논의 해 보도록 하자. 질료형상설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으로 우선 재생산즉 출산의 과정에서 남성이 형상인의 역할을 하고 여성이 질료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성의 난자 혹은 생리혈은 태아의 성장과 영양 공급을 돕는 재료만을 제공할 뿐이다. 반면에 남성의 정자는 태아를 인간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형상을 제공하며, 그것은 태아를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 충분히 발달하도록 작용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이 형상인의 역할뿐만 아니라 운동인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이 재생산의 과정에서 여성보다 더욱 더 가치 있는 존재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남성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해 여성의 가치를 무시하는 지극히 유치한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단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하 여러 가지 이론을 고안해 낸 훌륭한 인물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조금은 큰 충격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미 우리는 남성적 세계관에 길들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살 짜리 꼬마아이에게 물어보아도 아이를 낳는 활동에 있어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쪽, 즉 고통을 수반하며 더 많은 가치를 가지는 쪽이 어머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가 “하늘은 푸르다”라는 진리처럼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어쩌면 과거부터 쌓아온 남성적 세계관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두 번째로 내가 흥미 있게 읽은 부분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관한 부분이었다. 내가 이 부분을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정신건강이라는 수업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와 배경을 배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남근기인 3~5세경 남자아이들이 아버지를 경쟁자로서 인식하게 되고, 또 결국에는 “죽이고 싶다”라는 욕망을 가지는 것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내용인데 이러한 욕망은 다시 아버지가 만약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거세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작용하게 되어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오이디푸스콤플렉스라고 배운 사실이 기억났다. 이 글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부장적 성차별의 편견으로 재해석한다.이 책은 주로 남성적 가치관을 뒤집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신화 속에서 읽고 습득했던 가치관의 오류를 지적하고, 숨겨져 있던 내용을 더욱 부각시킴으로써 신화 속에서 감춰지고 왜곡되었던 여성에 대하여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그러면 지금부터 교수님께서 지적 하셨듯 지금까지 미약하나마 배웠던 페미니즘적 시각, 즉 현대의 관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여성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몇 차례 교양수업으로 나는 작으나마 과거에 알지 못했던 여성의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키울 수 있었고 특히 이번에 들은 교양수업인 여성과 사회는 거기에 더욱 큰 몫을 했다. 그럼 모자란 생각이나마 지금부터 여성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보기로 하겠다.과거부터 여성은 무조건 참아야 하고, 이겨내야 하고, 포기해야 했다. 그것이 여성으로서 지고 있는 사명이며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훌륭한 여성상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여성에 대한 몇 가지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과거와, 그리고 현대의 여성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 자체도 나에게는 조금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여성의 문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어머니가 그리 사셨으리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아직도 마음 한켠에 구식의 마음을 가진 이 시대의 남자들이, 그리고 내가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한편으로 남자로서 지어야 하는 짐도 그에 못지 않게 무겁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의 피신처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그렇다. 이 시대의 남자들은 참 힘들다. 사회에서 주어지는 무거운 짐도 많고 그에 따라 바쁘게 뛰어다니고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로 여러 성인병에 시달리고, 그 아픈 몸을 이끌고도 일자리로 달려나가야 하며, 직장에서는 고개 숙여야 하고 가정에서는 담배 냄새 풍기는 아버지 대접을 이겨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더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서 자식들 뒷바라지에 살림살이에 바삐 뛰어다니면서도 가족 모두가 떠난 집을 지키며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는 듯 또는 “나는 아무 가치 없는 존재” 라는 자괴감에 빠져 살아야 한다. 또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도 결국은 가족들에게 다 쓰고 나서 버린 건전지처럼 버려지는 것이 우리의 어머니이다. 일자리에 나가서 일하는 여성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가부장제라는 고전적 관습에 의해, 또 자본주의라는 장벽에 의해 수없이 무너지고 좌절감을 맛보았다. 특히 자본주의는 남성과 손을 잡고, 여성을 싼값에 그리고 요긴하게 이용해 왔다. 우리의 여성들은 그렇게 남성적 가치관이 팽배한 사회를 인내와 끈기로 버티어 내 온 것이다.
    사회과학| 2004.03.14| 4페이지| 1,000원| 조회(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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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로문화] 어로문화논문
    서 론흔히들 알고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업을 주 생계수단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그 옛날 이전의 옛날을 생각해보면 농업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옛날이라는 말이 비 전문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쉽게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흔히 생각하는 옛날이란 멀지않게는 조선시대 즈음이겠다. 농업으로의 전환이 정확히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먼 조상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하여 생활해온 오랜 역사 안에서 살펴보면 극히 일부분의 시기에 불과하다. 그 전시기의 생계수단으로는 수렵?채집?어로 등이 행해지고 있었다. 세분하자면 수렵?채집이 선행하고 나중에 어로가 출현한다고 한다.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사계절을 통하여 계절별로 각종 어류가 어장을 형성하므로 그 식량으로서 가치는 높았고 지금도 역시 식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어로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을뿐 그 실태는 불확실하다고 한다.농업으로의 전환 이유에 대한 논쟁이 분분한 가운데 수렵?채집?어로 생활이 농업에 비해 비 효율적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농경이 택해졌을 것이다. 그 이유들을 여기서는 다루지는 않겠다. 따라서 여기서는 농업이전의 생계수단 방법들 중 지금까지도 그 비중이 크다 할 수 있는 어로문화에 대해 좀더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자 패총에서 나오는 인공유물로서 도구를 살펴보고, 이들 도구에 의해서 포획?채집되었던 대상물을 살펴보고자 한다.본 론1. 패총의 연구패총은 사람들이 해안가나 강가에서 식료로 채집해서 먹은 후에 불필요하게 된 조개껍데기를 한 장소에 폐기한 결과로 형성된 것이다. 패총안에는 조개뿐 아니라 수류(水流)와 어류의 뼈, 탄화식물 등의 자연유물을 포함해서 생활에 필요한 토기, 석기, 골각기 등의 인공유물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또한 주거지와 묘지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도 있어 어로문화의 집약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겠다.이런 어로문화의 집약적 유적이라 할 수 있는 패총을 살펴봄으로써 당시의 그 당시의 식생활의 복원, 수렵?채집?어로와 관계를 가진 경제활동을 어느정도 복원할 수도 있으며 정확한 층위발굴조사가 이루어진다면 편년 연구에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가. 유형에 의한 패총의 분류여기서는 패총에 보이는 양상을 검토하여 외양성패총, 외양성패총+내만성패총, 내만성패총으로 분류한다. 그 기준은 기술적인 면에서 패총에서 출토된 어구의 종류, 또 생태학적인 면에서 패류, 해수류(海獸類), 어류유체등을 중심으로 하겠다. 하지만 이미 보고된 패총과 지표조사만으로 보고된 것들 중에는 성격이 명확하지 않은 패총이 많으므로 분류에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외양성패총외양성 성질을 가진 패류, 해수류, 어류유체 등과 함께 회전식이두섬(回轉式離頭?), 결합식낚시, 골제단식낚시가 출토되는 패총이다. 외양성패총+내만성패총패류는 내만성 성질을 갖는 종이 주체이지만, 이에 반해서 외양성의 해수류, 어류유체등이 출토되는 패총이다. 또 어구도 어망추와 찌르개, 회전식리두섬, 철제낚시가 출토된다. 내만성 패총내만성 성질을 갖는 패류, 해수류, 어류유체 등과 함께 어망추와 찌르개가 출토되는 패총이다.나. 패총 유형의 분포상태이렇게 상정한 유형의 분포상태는 지리적?시기적인 특징이 현저하게 보인다. 동북지방에서는 지리적으로 제1유형?제2유형?제3유형이 각 2개소이고, 시기적으로는 제 1유형은 신석기 시대에 속하고 제2유형과 제 3유형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에 각 1개소 분포한다.지리적으로는 서북지방-제1유형은 없고 제2유형 1개소, 제3유형 2개소이고, 시기적으로는 신석기시대는 제3유형, 원삼국시대는 제2유형과 제3유형이 각 1개소씩 분포한다.서해안 중부지방- 지리적으로 제 1유형이 9개소, 제 2유형이 12개소, 제 3유형이 7개소이고, 시기적으로는 제1유형이 신석기시대5개소, 원삼국시대1개소이고, 제 2유형은 신석기 시대 2개소, 원삼국시대 1개소이다. 제 3유형은 신석기시대와 원삼국시대 각 3개소씩이다.제1유형은 신석기시대 서해안지방에서는 보이지 않고 동북지방과 남해안지하고 있다. 이로부터 신석기시대의 외양성 어업은 동북지방과 남해안 지방에서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제2유형은 지리적으로 전국적인 분포를 띠고 시기적으로는 산벌적으로 나타난다. 남해안 지방에 있어서는 원삼국시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제3유형은 지리적?시기적으로도 집중하지 않고 산재하는 경향이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보편적인 형태의 패총이다.다. 패총의 공간 구조한반도에서 실시된 발굴조사에 의해서 주거지, 묘지, 요지, 야철지가 발견된 것을 시기별로 나타내면, 신석기 시대의 패총은 26개소가 발굴조사되어 주거지 5개소, 묘지8개소, 주거지와 묘지가 함께 발견된 곳은 2개소이다. 지역적으로는 주거지와 묘지가 발견된 곳은 동북지방에 한정되고, 주거지나 묘지는 전국적으로 발견된다. 이처럼 전체의 절반인 13개소에서 주거지 혹은 묘지가 발견되고 있다.청도기 시대의 패총에서는 동북지방의 초도패총에서 주거지와 묘지가 발견되고, 서해안 중부지방의 고남리패총에서도 주거지와 묘지가 발견되었다.원삼국시대의 패총에서는 15개소의 발굴조사에서 주거지 4개소, 묘지 5개소, 요지(窯址) 1개소 야철지(冶鐵址) 2개소가 발견되었다.지리적?시기적으로 보아 패층만 존재하는 패총과 패층과 다른 유구가 있는 패총이 절반정도이다. 그러나 발굴조사 면적이 확대된다면 후자의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패총의 발굴조사에 있어서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2. 어구의 연구한반도에서 출토된 어구는 빗창, 어망추, 낚시, 자돌구(刺突具)로 구별된다. 여기서는 이것들을 각 종류별로 지리적?시기적인 변화와 특징을 살펴보기로 한다. 어망추, 낚시, 자돌구는 일정의 목적하에서 제작된 것이므로 그 분류는 명확히 가능하나 조개 채집 도구의 경우는 불명확하여 특정할 수 없다. 단 암초에 부착하여 서식하는 전복과 굴류의 채집에는 도구가 필요한데 현재 해녀들이 사용하고 있으므로 민족지적인 채용으로 이 도구를 빗창이라 부르겠다.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어로방법과 어구살펴보겠다.a.맨손어법.(더듬질)어떠한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바위밑이나 강안을 후벼서 잡는 어법으로 주로 하천유역에서 행해진다. 도구가 사용되지 않으므로 고고유물은 남지 않는다.b. 타격어법돌이나 몽둥이로 직접?간접으로 어류를 타격하여 잡는 방법이다. 이 어법은 주로 하천에서 어류의 생태습관을 숙지하였을 때 사용된다. 즉 어류가 낮에는 돌 밑에 있는 것을 알고 돌에 타격을 가하여 충격으로 떠오르는 것을 잡는 것이다. 몽둥이 어법의 경우는 연어나 송어처럼 산란계절에 바다에서 강으로 무리를 짓고 올라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직접 어류에 타격을 가하여 잡는 방법이다. 도구를 사용하지만 일정하게 이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고고유물로 취급되기 어렵다.c. 방축어법(防築漁法)수심이 얕은 하천이나 간만의 차가 심한 바다에서 사용되는 방법이다. 하천의 경우는 적당한 크기로 둑을 쌓아 물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고 바가지나 물동이를 사용하여 물을 퍼내어 어류를 잡는 것이다. 바다의 경우는 적당한 크기로 돌을 쌓아 놓고 만조시 들어왔던 어류가 간조시 둑 안에 남는 어류를 잡는 방법이다. 하천의 경우는 일상용구가 전용되므로 고고유물로 출토될 가능성도 있다.d. 전어법(筌漁法)하천에서 물의 흐름을 이용하여 잡는 방법과 통발안에 미끼를 넣어 어류를 유혹하여 잡는 방법이 있다. 전자의 경우는 물의 흐름에 역류하여 올라가는 어류를 잡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주로 바다에서 게를 잡는 데 사용된다. 이것은 대나무나 싸리나무 줄기가 이용되는데 장래 습지유적에서 출토될 가능성이 있다.e. 어전어법(漁箭漁法)하천이나 해안에 울타리를 쳐서 잡거나, 하천에 둑을 쌓는 물쌀에 떠밀려 내려오는 여류를 잡는 어법으로 때로는 어군을 여러사람이 어살안으로 몰아 넣기도 한다. 이것은 대나무나 싸리나무 줄기가 이용되는데 장래 습지 유적에서 출토될 가능성이 있다.f. 자돌구법작살이나 찌르개를 사용하여 잡는 어법으로 재료는 철, 나무, 골각, 돌을 가공하여 병에 연결시켜 사용하였다. 하천과 바다에서 사용되고, 이유물로 남는 경우가 많다.g. 궁시법활로 쏘아 잡는 어법으로 수렵의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주로 하천에서 사용된다. 일본의 아이누족의 경우는 촉(鏃)부분에 도리가프트의 독을 묻혀서 사용한 예도 있다. 촉 부분이 고고유물로 많이 남는다.h. 조어법(釣漁法)가장 보편적인 어법인 낚시로 낚는 방법으로 주낚업과 외줄낚시업으로 구별된다. 하천, 바다에 한정되지 않고 어류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사용된다. 낚시바늘은 돌, 골각, 철 등이 사용되었으며 고고유물로 남는 경우가 많다.I. 망어법(網漁法)그물을 사용하여 잡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여러종류로 구별되는데 어장의 구별은 없다. 어망은 부자(浮子), 망, 심자(沈子-어망추)로 구성되는데 고고유물로 남는 것은 어망추이고, 간접자료로 토기편에 어망이 찍혀 있는 예가 있다.위에서 과거에 쓰였을지도 모르는 어로의 방법을 현재 민속을 통해 알아보았다. 아래에서는 발굴을 통해 얻어진 어구에 대해 알아보겠다.가. 빗창갯펄에서 반지락과 백합 등을 채집할 때는 갯펄을 파는 도구가 필요하지만 특정의 도구가 없어도 가능하다 따라서 이것들을 채집하기 위한 도구는 추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전복, 굴류등은 암초에 부착하여 서식하므로 뜯어내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 전복류는 외만의 천해(淺海)에 서식하는데 이것들의 채취에는 잠수기술이 필요하다. 한반도 연안에는 전복, 말전복, 오분자기 등 3종이 분포한다. 서식심도는 말전복이 수심2~15m, 전복은 수심 15~30m, 오분자기는 5~20m 인데 어느 종이 되던지 채취에는 잠수기술이 필요하다. 또한 굴류를 채취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도구가 필요한데 암초에 부착하여 서식하므로 맨손으로 채취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1)빗창의 형태분류빗창의 재질은 사슴의 뿔과 수류(獸類)의 관상골(管狀骨)을 이용한 것으로 구별된다.I류- 수류의 중수골과 중족골 등의 관상골을 종으로 이등분한 것을 한쪽을 U자 혹은 W자 형으로 조정하여 그 부분을 연마하여 인부를 만들고 반대쪽은 맨손으로 쥐기 쉽게 제작되어 있다.II류- 사슴의)로 ‘
    인문/어학| 2004.03.14| 15페이지| 1,000원| 조회(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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