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로 보는 역사공부“역린”■ 감상평조선 최고의 군주인 정조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는 것만으로 많은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드라마 이산을 통해서 이서진의 정조와 현빈의 정조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많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 왔기에 과연 현빈이 표현하는 정조의 모습을 어떨ㄲㆍ라는 호기심도 많이 발동하였고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 물론 주인공인 현빈 뿐 아니라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었던 한지민, 정재영, 조정석, 조재현, 김성령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재가 되었던 것도 영화를 보게 한 이유이다.“역린”은 정조가 임금이 된 후 정조 암살모의 사건이 있던 하루를 시간대 별로 다뤘다.정조를 암살하려는 세력과 이를 지키려는 자들의 이야기로 전개 된다.정조는 항상 노론(벽팍) 암살의 위험을 느끼며 무술연마와 학문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침묵하며 아버지 사도세자의 복수를 계획 한다. 한편 광백이 키워온 살수들 중 한명인 갑수는 암살의 목적을 두고 내시가 되어 궁궐에 입궐한다. 하지만 정조를 어린시절 부터 모시면서 심경의 변화를 느끼고 정조의 지키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입궐 이유를 알게된 정조에 의해 궐에서 추방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정조를 지키며 어렸을 적 같이 생활한 형제와도 같은 동생 을수와도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정조의 어머니 혜경궁홍씨는 아들을 지키려고 정순왕후를 독살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오히려 발각되고이에 정순왕후는 정조를 암살을 실행하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역사적인 정조의 업적보다는 왕가 그에 맞서는 최고 권력자 노론과의 음모와 배신 복수와 과거신을 함께 엮으면서 각 인물들에 대한 스토리로 영화가 구성되어 졌다.?영화보고 역사공부영조와 정조에 대해 알아보죠?■ 탕평영조(완론탕편) : 당파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왕이 내세우는 논리에 동의하는 탕평파를 중심으로 정국 운영
전?근대사70만 년 전 구석기 문화1만 년 전 신석기 문화B.C.3500 인류 최초의 청동기 문명B.C.2333 단군 왕검, 고조선 건국B.C.2000∼1500 한반도에 청동기 문화B.C.400년 경 철기의 보급B.C.194 위만 조선성립B.C.108 한 나라 침략으로 고조선 멸망 / 한군현 설치B.C.57 신라 건국B.C.37 고구려 건국B.C.18 백제 건국3 고구려, 국내성으로 천도(유리왕)400 고구려, 신라에 침입한 왜구격퇴(광개토대왕)427 고구려 평양천도(장수왕)433 고구려의 남하에 대비 나ㆍ제 동맹 체결(눌지마립간,비유왕)475 백제 웅진천도(문주왕)512 신라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 정복(지증왕)520 신라 율령반포 백관의 공복제정(법흥왕)527 신라 불교 공인(법흥왕)532 금관가야 멸망(법흥왕)538 백제 사비 천도(성왕)562 대가야 멸망(진흥왕)612 고구려, 살수대첩(을지문덕)624 신라 당으로부터 도교 전래(진평왕)645 고구려 안시성 전투 승리(보장왕)660 백제, 나ㆍ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의자왕)668 고구려, 나ㆍ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보장왕)676 신라, 삼국 통일(문무왕)681 신라, 김흠돌의 난(신문왕)682 신라 국학 설치(신문왕)685 신라, 9주 5소경 설치(신문왕)698 발해 건국(대조영)722 신라 정전 지급(성덕왕)727 혜초 “왕오천축국전” 저술 (성덕왕)732 발해 장군 장문휴가 당나라 산동 지역 공격(무왕)751 불국사와 석굴암 중창 시작(경덕왕~혜공왕)771 신라, 성덕대왕 신종 주조(경덕왕~혜공왕)778 신라, 독서삼품과 실시(원성왕)828 신라, 장보고 청해진 설치(흥덕왕)889 신라, 원종과 애노의 난(진성여왕)900 견훤, 후백제 건국901 궁예, 후고구려 건국918 왕건, 고려 건국926 발해 거란에 의해 멸망935 신라멸망 고려 병합(경순왕)936 후삼국 통일956 광종, 노비안검법 실시958 광종, 과거제 실시976 전시과 실시(경종)983 전국에 12목 설치(성종)992 국자감 설치(성종)993 거란 1차 침입 서희의 담판으로 해결(성종)996 철전(건원중보)주조(성종)1009 강조의 정변(목종 폐위, 현종옹립)1010 거란 2차 침입(현종)1018 거란 3차 침입(현종)1019 강감찬, 거란을 물리침(현종.귀주 대첩)1055 최충, 문헌공도(9재학당)설립(문종)1086 의천, 교정도감을 두고 교장 조판(문종)1087 초조대장경 간행1107 윤관 여진족 토벌(별무반) 동북 9성을 쌓음(예종)1126 이자겸의 난(인종)1135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인종)1145 김부식 “삼국사기 편찬”(인종)1170 무신정변(의종)1173 김보당의 난(이의방,정중부)1174 교종승려(귀법사)의 난(이의방.정중부)1176 망이ㆍ망소이의 난(이의방,정중부)1182 전주 관노의 난(경대승)1193 김사미.효심의 난(이의민)1196 최충헌 집권(이후 60여 년간 최씨 집권)1198 만적의 봉기(최충원)1231 몽골 1차 침입(최우)1232 강화천도(최우)1234 금속활자 “상정고금예문” 간행(최우)1236 팔만대장경 제작(~1251)(최우)1258 원 쌍성총관부 설치1270 개경환도 / 무신 정권 붕괴 몽골에 항복(원종)1314 만권당 설치(충숙왕,충선왕 설치)1351 공민왕, 반원 자주 개혁 정치 추진1356 공민왕, 쌍성총관부 탈환1359 홍건적의 침입(공민왕)1363 문익점, 원에서 목화씨 전래(공민왕)1366 공민왕, 전민변정도감 설치(공민왕)1376 최영, 왜구 정벌(우왕)1377 “직지심체요절” 인쇄(우왕)1388 이성계 위화도 회군(우왕)1391 과전법 제정(공양왕)1392 고려 멸망, 조선 건국(태조)1394 한양 천도(태조)1398 제1차 왕자의 난(태조)1400 제2차 왕자의 난(정종)1403 주자소 설치(태종)1412 시전 설치(태종)1416 4군 설치(태종)1419 이종무, 대마도 정벌(세종)1429 “농사직설”편찬(세종)1434 6진 설치(세종)1436 의정부 서사제 실시(세종)1441 측우기 제작(세종)1443 훈민정음 창제(세종)1446 훈민정음 반포(세종)1466 직전법 실시(세조)1481 “동국여지승람” 편찬(성종)1485 “경국대전 완성”(성종)1498 무오사화(연산군)1504 갑자사화(연산군)1506 중종반정(연산군)1519 기묘사화, 현량과 실시(1519)1543 백운동 서원 설립(중종)1545 을사사화(명종)1555 을묘왜변, 비변사 상설기구화(명종)1560 이황, 도산서원 건립(선조)1589 붕당 정치 시작(선조)1592 임진왜란, 이순신 한산도 대첩(선조)1593 권율, 행주대첩 / 일 명에 휴전 제의(선조)1597 정유재란(선조)1598 왜군의 철수로 왜란 종결(선조)1608 대동법 실시(경기도, 광해군)1610 허준, 동의보감 완성(광해군)1623 서인, 인조반정(광해군)1623 이괄의 난(인조)1627 정묘호란(인조)1636 병자호란(인조)1653 하멜, 제주도 도착(효종)1654 나선 정벌(효종)1678 상평통보 주조(숙종)1708 대동법 시행(전국시행, 숙종)1712 백두산정계비 건립(숙종)1725 탕평책 실시(영조)1750 균역법 실시(영조)1776 규장각 설치(정조)1785 “대전통편” 완성(정조)1796 수원 화성 축조(정조)1801 천주교 탄압(신유박해,황사영 백서 사건, 순조)1805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1863, 순조)1811 홍경래의 난(~1812, 순조)1839 기해박해(헌종)1860 최제우, 동학 창시(철종)1861 김정호, 대동여지도 간행(철종)1862 임술 농민 봉기(철종)근현대사1863 흥선 대원군의 집권 시작1865 경복궁 중건(흥성대원군)1866 병인박해 / 제너럴셔먼호 사건 / 프랑스와의 전쟁(병인양요)1868 오페르트의 도굴 사건1871 신미양요 / 척화비 건립)1873 흥선 대원군 하야(고종 친정 선포)1875 운요호 사건(고종)1876 일본과 강화도 조약 체결 / 1차 수신사(김기수) 파견1880 2차 수신사(김홍집) 파견, 통리기무아문과 12사 설치1881 일본시찰(조사시찰단) / 청에 영선사 파견 / 별기군 창설1882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 임오군란 / 조.청 상민무역장정 체결1883 조일 통상 장정/ 한성순보 발간 / 기기창, 박문국, 전환국 설립 / 원산학사 설립1884 우정국 설치, 갑신정변 / 한성 조약1885 배재 학당 설립, 광혜원(서양식 병원) 설립 / 영국, 거문도 불법 점령 / 톈진 조약 체결1886 육영 공원, 이화 학당 설립1889 함경도, 곡식의 수출 금지(방곡령 선포)1894 동학 농민 운동 / 청ㆍ일 전쟁 / 갑오개혁 추진1895 삼국간섭 / 을미사변, 을미개혁, 을미개혁1896 아관파천 / 독립 신문 발간. 독립 협회 설립1897 대한 제국 수립 / 광무 개혁 추진1898 만민 공동회 개최 / 독립 협회 해체1899 대한국 국제 반포 / 최초의 철도(경인선) 개통 /경복궁에 전등 설치/ 전차개통1902 서울.인천 간 전화개통1904 러ㆍ일 전쟁 발발 / 한ㆍ일 협약 체결 / 대한매일 신보 창간1905 경부선 개통 / 을사늑약, 을사의병 / 화폐정리 사업1907 국채 보상 운동 / 신민회 설립 / 헤이그 특사 파견 / 고종 황제 퇴위 /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 군대 해산1908 의병, 서울 진공작전 / 장인환,전명운 의거(스티븐스 저격) / 동양척식 주식회사 회사 설립1909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일본군, 남한 대토벌 작전 / 간도협약 체결 / 나철, 대종교 창시1910 국권피탈 / 토지 조사 사업 시작 / 회사령 공포1911 조선태형령 시행 / 임병찬, 독립 의군부 조직1914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 / 경원선 개통1916 박중빈, 원불교 창시1919 2.8 독립선언/ 3ㆍ1 운동 / 대한 민국 임시 정부 수립 / 의열단 조직1920 봉오동전투,청산리대첩,간도참변 / 조선 일보ㆍ동아 일보 창간 / 박은식“한국독립운동지혈사” 간행1922 민립 대학 설립 운동 추진 / 어린이날 제정1923 암태도 농민 항쟁 / 조선 물산장려회 조직1924 경성 제국 대학 설립1925 조선 공산당 창립, 치안 유지법 제정1926 6ㆍ10 만세 운동1927 신간회 조직, 근우회 조직1929 원산 노동자 총파업 / 광주 학생 항일 운동 / 조선일보 문자 보급 운동1931 김구 한인애국단 조직 / 동아일보 브나로드 운동1932 이봉창, 윤봉길의 의거1933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1934 진단학회 조직1936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대회 마라톤 우승1937 중ㆍ일 전쟁 발발 / 신사 참배 강요 / 황국신민 서사 제정1940 한국 광복군 창설. 창씨 개명실시. 조선ㆍ동아 일보 폐간1941 태평양 전쟁 /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 강령 발표1942 조선어학회 사건1943 일제, 징병제ㆍ학병제 실시, 한국광복군 미안마 파견1944 여운형, 조선건국 동맹 조직1945 8ㆍ15 광복 / 건국 준비 위원회 발족 / 미ㆍ소 군정 실시 / 모스크바 3상 회의 개최1946 제1차 미ㆍ소 공동 위원회 소집 / 이승만 정읍발언 / 좌우합작 위원회 결성1947 제2차 미ㆍ소 공동 위원회 개최 /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 구성 / 트루먼 독트린 발표 / 여운형 암살1948 제주 4ㆍ3 항쟁 / 유엔 감시하에 5.10 남한 총선거 실시 / 제헌헌법 공포 / 대한 민국 정부 수립/ 반민족 행위 처벌법 제정 /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 / 여수.순천 10.19 사건
우리나라의 선거제도얼마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으로 인해 12월 예정이던 19대 대통령 선거를 5월에 실시하였다. 과연 선거란 무엇이며 우리나라의 현 선거제도에 대해 알아 보겠다.1. 대통령 선거 (5년 임기만료 전 7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직접선거 연임 불가 40세 이상 피선거권 가짐2. 국회의원 선거 (4년 임기만료 전 5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소선거주제+비례대표제 연임가능 25세 이상 피선거권 가짐3. 지방의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 교육의원 선거4년 임기만료 전 3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광역기초 단체장 : 다수대표제ㅡ 25세 이상, 연임 3회 가능-광역의원 : 소선거구제+비례대표제(정당 명부식) - 25세 이상, 가능-기초의원 : 중선거구제+비례대표제(정당 명부식) - 25세 이상, 가능-교육감 : 다수 대표제 - 25세이상, 연임 3회까지 가능-교육(위원회)의원 : 소선거구제+다수대표제 - 25세 이상, 가능소선거구제 : 한 선거구에서 한명의 의원 선출하는 제도비례대표제 : 정당 득표수에 따라 의원 선출다수대표제 : 한 선거구에서 다수의 표를 얻는자가 당선하는 제도기타 선거용어사전투표제 : 사전투표란 선거인이 별도의 신고 없이 사전투표기간 동안에 읍·면·동마다 설치되는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유권자의 투표편의 개선을 통한 투표참여를 높이기 위해 2013년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처음 실시되었고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실시사전투표시스템은 명부단말기, 투표용지발급기, 본인확인기, 무정전전원장치와 통합(참고로, 외국의 경우에도 사전투표를 실시하고는 있으나, 전국 어디에서나 투표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사전투표와는 달리 지정된 투표소에서만 투표를 할 수 있음).부재자 투표 : 선거인 명부에 올라 있는 사람 중 선거일에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사람에게 투표 참여 기회를 주고자 실시하는 제도 선거인 명부에 올라 있는 사람 중 선거일에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사람에게 투표 참여 기회를 주고자 실시하는 제도로, 2014년 6월 실시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이 제도가 폐지되고 사전투표제도가 도입되었다. 다만 해외 거주자의 경우 재외선거라는 이름으로 부재자투표가 계속 시행되고 있다선거인명부선거인명부는 선거가 있을 때마다 구·시·군의 장이 투표구단위로 주민등록표 및 국내거소신고표(지방선거의 경우 외국인등록표를 포함)에 의하여 전산으로 직권 작성하고 있음
이문열 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을 읽고......먼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본 영화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동명의 원작인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1987년에 발간되었고 그 뒤로 재발간 되었다.기본적으로 정치적 상황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는 느끼는 점이 많은 책이었다.물론 시대사항을 전면에 내세워 스토리가 전개되지 않지만 한 학급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등장인물 모두가 시대사항을 표현하고 있었다.소설의 처음은 주인공인 ‘나’ 시골학교 전학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유당 정권이 시절 공무원인 아버지가 된서리를 맞게 되어 '나'는 서울의 명문 초등학교에서 시골 초등학교에 전학을 오게 된다. 그곳에는 학급반장 독재자로 엄석대라는 학생이이 있었고 그는 마치 학급의 담임선생님 아니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런 엄석대와 '나'는, 첫날부터 불편한 관계를 갖는다. 엄석대는 학급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성적, 싸움은 물론 담임선생님 및 학교선생님들의 신임을 얻으며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였고 그 반을 엄석대 반이라고 불리기 까지 했다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원칙적이 아니라 생각한 '나'는 그에게 도전하기 시작했고, 석대를 이기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나'는 엄석대의 폭력, 위압, 비행을 담임에게 고발하지만, 오히려 나에게 돌아온 몫은 '불량한 아이'와 다른 반 학생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외톨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엄석대에게 굴복하여 복종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고 그 것은 학교생활의 편안함을 가져다 주었고 이제 ‘나’는 그것에 적응하게 되었다.하지만 6학년이 되고 새로운 담임 선생님으로 바뀌게 되고, 엄석대의 행동과, 그것을 묵인하는 학교, 같은 반 친구들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한 담임선생님께서 점차 엄석대 반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하고 결국 엄석대의 굳건한 성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게다가 자신의 시험지를 우등생들로 하여금 작성하게 한 조작 사실이 밝혀지고, 마침내 엄석대는 몰락하고 만다. 반 학생들은 엄석대의 그간 잘못된 행동에 대해 고발하기 시작하고 충격을 받은 엄석대는 반에서 뛰쳐나가고 그 뒤로 나타나지 않았다.
모델로 삶고 싶은 인물■ 문국현은 1949년 1월 12일 서울에서 태어나 중동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대학원 졸업 후 유한킴벌리 투자 및 원가관리담당관으로 입사하였다. 그 후 전산실 실장 기획조정실 실장을 거쳐 83년에는 마케팅 부장에 이르렀다. 그 시절 문국현 사장은 환경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캠페인을 창설하였다. 이 밖에도 산림자원조성기금사업 운영회 위원을 맡으며 그 후 환경운동가의 길을 가게 된다.89년 유한킴벌리 마케팅 상무이사를 맡게 되고 95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게 된다.유한킴벌리 사장 취임 후에도 많은 환경운동을 하게 되는데, 환경개발센터 이사, 한국토양환경학회 고문, 환경정위시민연대 이사 천리포수목원 이사장을 맡으며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환경운동가로 평가받고 있다.그 밖에도 마케팅 출신 경영자답게 기업이미지 대상 최고경영자상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또 환경 분야에서는 한일국제환경상을 수여받았고, 모범납세자훈장, 기업윤리 경영자 대상, 최우수경영인상 등을 수여받았다.■ 1984년부터 시작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는 매출액의 0.5%~1% 이상을 투자하며, 지 난 20년간 나무심기에 들인 돈만 벌써 1천억원이다. 그 동안 25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 고, IMF 발생 때는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 이 기금으로 '생명의 숲 가꾸기'운동을 펼칠 것을 제안해 98년 이후 연인원 42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외 매년 수 십 억원의 사회공헌기금을 각종 사회운동에 사용하고 있다. 지난 해에만 70억원의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해 사용했다. 올해에도 50억 원을 나무심기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운동은 국내에 환경운동 개념이 없던 시기에 시작한 운동이다. 기업의 이미지를 위 해서 시작한 운동이라고 폄하하는데, 그 당시 누가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서 환경운동을 시작한단 말인가? 시민들에게 환경기업으로 잘 보이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아니라, 거꾸 로 시민들에게 환경운동의 중요성을 알려준 운동이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기업주도 사회운동의 하나다. 20 년이 넘게 꾸준하게 지속한 운동이다. 국내 어느 기업이 20년 넘게 꾸준하게 기금을 적립 하고 운동을 펴고 있는가.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운동의 놀라운 점은 회사의 흑자나 적자 여부에 상관 없이 꾸준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 운동의 기금은 이익의 1%가 아니라, 매출의 1%를 적립 한다. 유한킴벌리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시장점유율이 18%까지 추락하기도 했고, IMF 시절인 1997년에는 공장가동률이 50%대까지 떨어져 정리해고 위기까지 갔다. 그래도 이 운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어느 기업이 이런 상황에서 이익도 아닌 매출의 1%를 사회운동 기금으로 적립하겠는가?유한킴벌리는 "사회공헌은 이익이 나지 않아도 해야 한다"며 "그래서 다음해 예산을 짤 때 처음부터 사회공헌 비용이 반영된다"고 말한다. 지난해에는 매출의 1%인 70억원, 순이 익 기준으로 8%에 해당하는 돈을 사회공헌비로 사용했다. 두 말할 필요 없이 국내 최고 수준이다. 유한킴벌리를 잘 모르는 사람은 유한킴벌리가 벌목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기업의 이미지 를 줄이기 위해 이 운동을 하는 것이고 말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운동은 일반인들이 그런 환경파괴 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기 훨씬 전에 시작한 운동으로 국민의 이미지를 고려해서 시작한 운동이 아니다. 그리고 유한킴벌리는 벌목회사가 아니다.유한킴벌리는 환경을 고려해 제품의 95%를 종이 재활용으로 만들고 5%만 외국의 펄프를 수입해 사용한다. 즉 유한은 쓰레기로 버려지는 종이를 가장 많이 재활용하는 기업이며, 실제로 환경보호 활동에 가장 앞장 서고 있는 기업이다. 정작 한솔 등의 제지업체나 건설 업체는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도 이런 환경운동에 소홀하다.■ 유한킴벌리의 복지시설 이야기를 하려면 문국현 사장의 복지정책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아야 한다. 문국현 사장은 부사장 시절인 1993년 개설된 제3공장에 3조3교대(주 52시간)로 운영되 던 1,2공장과 달리 4조3교대(주 42시간)를 적용했다. 월급의 10분의 2가 특근수당에서 나 오기에 교대가 늘면 특근이 없어져 월급 감소를 우려한 직원의 반발이 있었지만, 전체 봉 급은 별로 안 줄고 오히려 휴식과 교육의 시간을 가지게 되어 직원이 나중에 더 좋아하게 되었다. 문국현씨가 사장이 된 1995년에는 1. 2 공장에도 4조3교대 근무를 도입하려 했지 만 이번에도 특근 수당 감소를 우려한 노조 반발로 무산되었다. 42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시켜주겠다는데도 오히려 노조가 반대했던 것이고,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1997년 IMF가 닥치고 공장가동률이 50%대까지 떨어졌다. 직원의 절반을 정리해고 해야 하는 위기에 닥친 것이다. 정리해고 위기를 느낀 노조는 이번에는 오히려 문국현 사장에 게 4조3교대보다 더 많이 쉬는 4조2교대를 제안했다. 4조2교대는 근무시간은 42시간으로 같으나 4일만 일하고 4일은 쉬는 파격적인 형태였다. 일년의 절반인 180일만 일하고 절반 인 180일은 노는 근무형태인 것이다. 문국현 사장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1998년부터 1공 장에서, 1999년부터는 전공장에서 시행했다.위기의 순간에 정리해고를 택하지 않고 오히려 혁명적인 4조2교대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오히려 3조가 4조로 늘면서 33%의 고용증대 효과가 생겼다. 또한 파격적인 이 제도를 시 행하고도 유한킴벌리 직원의 월급은 크게 줄지 않았다. 각종 수당과 보완제도로 월급을 보전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야간 수당, 휴일 수당, 교육 근무 등 여러 제도와 수당으로 월 급을 어느 정도 유지시켜주었다. 4조 확대로 급여가 줄 것이라 생각했던 노조와 직원들로 서도 뜻밖의 일인 것이다. 유한킴벌리는 이런 파격적인 근무제도를 수용하고도 어떻게 IMF 위기를 이겨냈을까? 3 조 근무형태에서는 연 260일 가동하던 공장이 4조로 되면서 풀가동되는 바람에 연 350일 가동이 가능해져 생산량이 배로 늘었다. 4일이나 쉬니 충분한 휴식 덕분에 피로에서 벗어 나 제품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불량률이 3%로 떨어졌다. 미국 공장의 불량률 16%와 비교하면 5분의 1도 안 되는 엄청난 성과다. 불량제품 생산과 불량품 반송, 관리에 들어간 비용이 모두 이익이 되었고, 불량품이 없으니 소비자 반응이 좋아 시장점유율이 60%로 향상되었다. 유일한 박사를 알고 유한양행을 안다면 유한 계열사가 국내 최고의 투명경영과 윤리경 영의 모범 기업이라는 점에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유한킴벌리의 임금인상은 6년 째 회사가 알아서 한다. 노조가 회사를 믿고 맡겼기 때문 이다.- 유한킴벌리에는 출근부가 없다. 회사는 직원을 믿고 직원 일정과 개인사정을 존중하고, 개인은 회사에 신뢰로 보답하기 때문이다. 초단위로 직원을 감시하는 회사와 다르다.- 유한킴벌리의 모든 접대비는 실명제로 실시하기 때문에 다른 기업의 불만이 많지만 아 랑곳하지 않고 실명제로 처리한다. 떳떳한 접대라면 이름을 걸고 대접할 수 있고, 대접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