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천하고 싶은책추천하고 싶은 책이라... 무엇으로 할까 몇일을 망설였는지 모르겠다. 몇일간 고민하면서 느낀 점은 정말 나는 책에 담을 쌓고 살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은 물론 좌절되었지만 한때 과학도를 꿈꾸었고, 고등학교 시절을 이과생으로 보낸 내가 읽은 책은 고전들이 아니라, 의학추리소설이라던가, 생명과학쪽의 책들이었다. 작년에도 수업시간에 이런 비슷한 일이 있어서 처음에는 그때 소개한 펄 벅이 지은 ‘ 연인 서태후’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었다. 새로운 관점에서 인물의 이야기를 쓴 점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나에게는 그 당시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 샀을때는 그런 이유도 아니었고, 그저 표지가 예뻐서 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너무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을 해 주어서, 내가 식상해져서 추천을 하고 싶지가 않다.한참 기억을 더듬어 올라간다. 내가 읽은 책은 무엇이 있을까.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소설들이 떠오른다. 무엇이 재미있을까? 개미, 개미혁명, 아버지의 아버지, 타나타노트. 천사들의 제국, 뇌, 나무...나는 한 작가가 좋아지면, 그의 작품을 모조리 읽어버리는 습관이 있다. 개미혁명을 읽고 난 이후에 그냥 호감이 가서, 읽게 된 타나타 노트라는 작품. 죽음이라는 음울한 주제를 가지고 그렇게도 흥미롭게 글을 쓸 수 있는지... 개미에 이어서 그의 독창성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이것을 추천을 할까하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 그가 갑자기 떠올랐다. 아마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그 두 작가를 좋아하게 되어서 생각이 떠오른 것 같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때쯤으로 기억이 된다. ‘좀머씨의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서였는데, 그때 당시에는 아마 그 책을 읽고 분명 ‘ 이게 뭐야!’ 라고 했을 법하다. 그 이후로 읽은 적이 없어서, 지금 무척 내용이 가물가물한데, 그다지 초등학생의 흥미를 끌만한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들어와서, 엄마와 함께 서점에 갔다가 ‘어느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에 혹해서 ‘향수’라는 책을 샀었다. 처음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충격에 휩싸였던 걸로 기억이 된다. 냄새가 없는 그르누이라는 존재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정상적인 내용은 없었다. 중학생의 눈 높이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책을 좋아해서, 그 이후로도, 너무 충격적인 내용(?)은 뛰어넘어 가면서 여러번 읽었다. 그 후에 대학에 와서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인물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 콘드라베이스’를 읽었다.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소개하고 싶은 글은 바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라는 소설이다. 그 책이 집에 있는 관계로 대학에 온 이후로는 한번도 보지 못해서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전체적인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18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생선장수의 사생아로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 버려져 죽을 운명으로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삶을 구한다. 그 이후 아이는 그르누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지만,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기분나쁜 눈빛과, 남들보다 왕성한 식욕과, 기형적인 모습... 남들이 맡을 수 없는 세세한 냄새까지도 맡는 그르누이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가장 매혹적인 향수를 만들기 위해 25명의 여자를 살해한다. 결국 가장 매혹적인 향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신과 같은 존재로 보이게 되지만, 그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져 먹히고 만다. 그르누이라는 인물은 흔히 소설에서 보는 완벽한 인간은 물론 아닐뿐더러, 하루키의 소설에서 보는 불완전한 인간 조차도 아니다. 그는 정말 ‘비’정상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결말 부분도 해피엔딩이다, 아니다로 결론 지을 수 없는 정도로 ‘비’ 정상적이다. 사람이 사람을 먹다니 말이다. 온통 불편한 내용인 이 글을 왜 계속 읽게 되는 것일까. 아마 그것이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냄새’ 라는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불편한 내용을 계속 읽고 싶게 만드는 건, 책에 빠져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편한 큰 줄거리 중간중간, 묘사되는 그 당시의 파리의 모습이라던가, 사람들의 특성, 상태, 심리 묘사라던가, 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사람들 간의 미묘한 관계라던가, 정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향수제조법등은 흥미를 끌기 충분하다. 그리고 ‘냄새’라는 소재가 단순하긴 하지만, 우리가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우리의 몸의 냄새, 그리고 몸에 냄새가 없다라는 것은 생소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르누이가 자신의 몸의 냄새를 맡아보는 장면에서 한번쯤은 자신의 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게 될 것이다.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면 우리는 병이나 장애를 가졌다고 말을 한다. 그러면 냄새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사람들이란 멍청하기 이를 데 없어서 코는 숨쉬는 데에만 이용할 뿐 모든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들이 그녀에게 굴복하는 것은 단지 그녀의 아름다움과 우아함, 그리고 품위 때문이라고 말하겠지. 그리곤 자신들의 한계 속에서 그녀의 균형잡힌 아름다움을 칭찬하겠지. 그러면서도 그녀에게 반한 진짜 이유는 바로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향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무도 깨닫지 못하겠지!” 파트리크 쥐스킨트저, 강명순 역. 열린책들. “향수” - p.226"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개인적인 분위기, 한사람 한사람을 구분해주는 바꿀 수 없는 암호인 이 체취를 냄새 맡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독특한 냄새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은 물론, 유행하는 인공적인 냄새로 자신만의 고유한 냄새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같은 책 - p.227"그러나 옷에 그의 냄새는 없었다. 그 위 체취가 옷에 배어 있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돌, 모래, 이끼, 송진, 까마귀의 피 냄새, 심지어 수년 전 그가 쉴리 근방에서 샀던 소시지 냄새까지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옷은 지난 7,8년간의 모든 냄새가 기록된 일기장 같았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그 세월 동안 언제나 그걸 걸치고 있던 사람, 그 자신의 냄새만 거기에 없었다." 같은 책 - p.209
대학국어내가 추천하는 책‘연인 서태후(원제: Imperial Woman)- 펄.S 벅지음 이종길 옮김-길산 2003인문계1 2004-10104신아영나는 ‘대지’로 유명한 작가인 펄.S 벅의 ‘연인 서태후 (원제 : Imperial Woman )’을 추천하고 싶다. 작가의 명성에 비해서 유달리 침묵하고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선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무엇보다 내가 ‘여성’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였다. 여성은 역사적으로 정치에는 관여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었으나 서태후는 그런 일반적인 여성과 달랐고, 그래서 나의 주의를 끌었다. 서태후에 대한 여태까지의 평가는 철저히 역사적이었다. 우선 서태후의 행적을 살펴보도록 하자.함풍제의 사후 동치제가 6세에 즉위하자, 공친왕(恭親王)과 공모하여 쿠데타로 반대파를 일소하고 모후(母后)로서 동태후(東太后: 함풍제의 황후로 安皇太后라고도 한다)와 함께 섭정이 되었다. 1875년 동치제가 죽자, 누이동생의 3세의 아들을 옹립, 광서제(光緖帝)로 즉위시켜 자신은 섭정이 되었다. 광서제가 16세가 되자 친정이 시작되었으나, 국정의 실권은 서태후가 쥐고 있었다. 1898년 광서제가 이를 싫어하여 입헌파 캉유웨이[康有爲]에 접근, 신정을 실시[戊戌變法]하여 입헌군주제를 위한 전환을 꾀하자, 서태후는 보수파 관료를 부추겨 쿠데타를 감행, 신정을 100일로 종식시키고 광서제를 유폐하는 무술정변(戊戌政變)을 일으켰다. 의화단(義和團)의 반(反)제국주의 투쟁이 고조되자, 이를 이용하여 열강에 대해 선전을 포고하였으나,8개국 연합군의 침입을 받아 시안[西安: 陝西省]으로 피신하였다. 모든 진보적 개혁에 반대하던 서태후도 베이징[北京] 귀환 후에는 입헌 준비, 실업(實業), 교육의 진흥 등 신정을 실시하였으나 대외적으로는 배외정책에서 굴욕적 외교로 전락하여, 중국의 반식민지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청왕조의 권위 실추와 함께 혁명운동 ·입헌운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광서제가 죽은 하루 뒤에 죽었다.이런 표면적인 사례로 그녀는 중국 역사상 둘도 없는 악녀이고 중국을 외세의 침약에 버틸 수 없게 만들었던 장본인으로 우리에게 인식되어왔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가 가졌었던 그런 역사적인 서태후의 모습이 아니라,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서태후의 인간적 형상, 즉 보편적으로 알려진 그녀의 결점들을 넘어 그녀가 그렇게 행해야 했던 필연적인 이유들을 자금성의 풍부한 정취와 섞어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다.서태후 그녀는 ‘예흐나라’라는 아름다운 아명처럼 뛰어난 통찰력과 총명함, 반면 비견할 데 없는 악독함으로도 칭송을 받았었다. 한 남자를 끊임없이 사랑했으나 역사의 물줄기와 통치 권력이라는 거대담론 속에서 이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의 주인공이자, 밀려오는 외세에 강력하게 대처해야만 했던 잔혹한 통치자였다. 펄벅이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전자인 그녀의 권력이나 화려한 주변 상황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상실감, 견딜 수 없이 불행한 상황들은 바로 서태후의 ‘영록’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적 고증보다는 소설적 관점이 더욱 부각되어있다.비록 작가가 서양인이긴 하지만 그녀는 중국에서의 생활을 더듬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서태후를 비판적 심지어는 악의적으로 표현하기도 한 다른 서구 작가들과는 다른 영웅적인 서태후를 쓰고 있다. 작가의 서문에서 서태후가 세상을 떠난지 수십년이 지났을 무렵 작가는 중국 내륙에 아직도 서태후가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한다. 서태후의 죽음을 알리자 그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이렇게 말했다 한다.“이제 우리를 누가 돌봐 줄 것인가?”이런 것으로 보아서 서태후는 아마도 소수의 권력을 가진 자가 말하듯이 그런 악녀는 아니었음에 분명하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나는 우선 서태후라는 인물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서태후에 대해 전혀 무지했었다. 그리고 그녀가 악녀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느 한 쪽의 면만 부각시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지 알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