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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린 쿼터는 유효한가
    서론 : 스크린쿼터 개요- 한국영화의무상영제도- 영화진흥법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2006.7.1 시행)연간상영일수의 2/5이상(146일 이상) -> 연간상영일수의 1/5 이상(73일 이상)한미FTA 협상 개시 이전에 73일로 축소 ‘현행유보’(유지할 수는 있으나 늘릴 수는 없다)본론: 2. 스크린쿼터는 왜 필요한가? (1) 스크린쿼터의 산업적 측면-일방향 흐름 모델1) 미국영화의 흥행수입, 관객 수, 제작편수, 스크린 수, 평균 제작비 규모출처 : 영화진흥위원회2)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 관객 수, 스크린 수, 개봉편수, 매출액 규모연도별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 (단위:억 원)출처 : 2006 한국영화연감관객 수 (단위 : 만 명)구분199819*************2200320042005총관람객 수5,0175,8116,1698,93610,51411,94813,51614,151한국영화 관람객수1,2592,0982,1894,4815,0836,3918,0188,363출처 : 문화관광부 영화산업현황자료스크린 수2000년2001년2002년2003년2004년상영관수376상영관수354상영관수310상영관수280상영관수302스크린수720스크린수829스크린수977스크린수1,132스크린수1,451출처 : 문화관광부 영화산업현황자료연도별 한국/외국영화 개봉영화 편수출처 : 2006 한국영화연감매출액구분199819*************2200320042005극장매출액(억원)2,5843,0413,2955,2376,3287,1718,4978,897한국영화 매출액(억원)6291,0891,1632,6103,0683,8235,0485,200수출액(만불)3075977051,1251,5013,0985,8297,599출처 : 문화관광부 영화산업현황자료3) 미국 vs 한국 2006년 박스오피스 비교- 미국출처 :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순위영 화 명개봉일배급사스크린수전국관객수1괴물2006/07/27쇼박스㈜미디어플렉스16713,019,7402왕의 남자2005/12/29시네마서비스9412,302,8313타짜2006/09/28CJ엔터테인먼트1476,847,7774미션 임파서블 32006/05/03UIP코리아1345,740,7895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2006/07/06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1294,628,9036투사부일체2006/01/19CJ엔터테인먼트936,105,4317다빈치 코드2006/05/18소니픽쳐스릴리징코리아1393,339,0828한반도2006/07/13CJ엔터테인먼트1263,880,3089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09/14프라임엔터테인먼트1183,132,32010미녀는 괴로워2006/12/14쇼박스㈜미디어플렉스933,561,866출처 : 영화진흥위원회4) 미국과 한국의 영화산업 시장규모 차이 -> 영상물 교류의 일방향 흐름 모델(one-way flow model): 시장규모가 큰 국가로부터 작은 국가로 유입▶흥행수익미국 9조원 규모 vs 8천억원 규모(한국영화수익 5천억원) 한국 -11~12배▶스크린 수미국 3만5천여개 vs 1천4백여개 한국 -25배▶관객 수미국 14억명 vs 1억4천명(외화관객포함) 한국 -10배▶제작 편수미국 500~600편 vs 70~80편 한국 -6~8배▶평균제작비(총제작비)미국 1000억원 vs 40억원 한국 -25배=>상대적 시장규모의 차이가 크고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도 큰 미국과 한국의 영상물 교류는 절대적 일방향 흐름.스크린쿼터라는 의무상영제도로 미국의 영화가 일방적으로 한국의 영화산업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함.*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 : 언어, 문화, 생활방식 등이 다른 문화권이나 나라에서 문화 상품의 흥미와 상품적 가치가 감소하는 것.본론 : 1. 스크린쿼터, 없어도 되지 않을까?- 한국영화 점유율출처 : 문화관광부 영화산업현황자료출처 : 2006 한국영화연감- 국내 영화 배급사 및 직배사 시장점유율=>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2003년 이후 절반을 넘어섬.자국영화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과 인도를 제외하고는 자국영화 비율이 높은 편.게다가 국내 배급사의 시장점유율 70%, 오히려 국내메이저배급사들의 횡포를 우려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 스크린쿼터라는 보호 제도의 필요성 논란.본론2 : 스크린쿼터는 왜 필요한가? (2) 불안정한 한국영화시장 : 스크린쿼터 축소, 그 이후- 2006년 하반기, 2007년 1/4분기(또는 5월 현재까지) 한국영화 상황- 스크린쿼터가 73일로 축소된 2006년 하반기(7월~12월)한국영화 점유율 64.8%, 외화 점유율 35.2%(2006년 영화산업통계_영화진흥위원회)의 천만돌파, , 의 선전.- 2007년 1~4월한국영화 점유율 48%, 외화 점유율 52%(2007년 1~4월 영화산업통계_영화진흥위원회)집계 상 스크린쿼터 축소로 인한 뚜렷한 산업 전체의 부정적 징후를 집어내기는 어려움.출처 : 영화진흥위원회-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개봉한 한국영화 30편 중 극장에서 웬만한 규모의 수익을 올린 영화는 와 뿐이며, 적게나마 수익을 기록한 영화는 ,, 등에 불과하다. 현재 상영중인 영화 중에는 정도가 수익을 낼 것으로 예측된다.…(중략)…특히 3월까지의 한국영화 점유율은 48.9%로, 5월 초부터 시작되는 여름시장에서 할리우드영화가 지배력을 갖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씨네21 601호_5.1~5.8 특집-한국영화 무너지나 : 악순환의 고리, 끊을 곳이 안 보인다)- 올해 최고 흥행작 324만, 200만- (5.1개봉) 보름 만에 410만, 스크린 수 810개까지 차지.한국영화 점유율이 30%를 넘어선 것도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음. 안정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언제든 위험에 봉착할 가능성 충분“지금의 위기는 지난 2005년 말부터 영화 제작편수가 갑작스럽게 증가했던 것에서 출발했다고 입을 모은다. 산업의 급팽창이 투자를 요구했고 여기에 순응했던 업체들이 급격한 제작 감소가 불러온 간극의 수렁에 빠져든 것이다. 한국영화의 급격한 비만 혹은 거품이 부른 후유증이다.”(씨네21 601호_5.1~5.8 특집-한국영화 무너지나 : 잔인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장비용역업체 도산 속출영화수익성 측면출처 : 씨네21 601호(5.1~5.8)- “지난해 100편 넘게 개봉한 영화 중에서 10억원 이상의 상업영화 80여편을 따로 추려보면 총제작비가 거의 52억 수준이다. 관객 150만명을 모아도 손익분기점에 한참 모자란다. 대개 100만명 넘으면 요즘 잘했다고 하는데 심리적 자위일 뿐이다.” CJ엔터네인먼트 제작투자사업부장 최준환 (씨네21 604호_5.22~29 투자자에게 묻다-투심, 어디에 있습니까)=>스크린쿼터 축소의 명분이 된 한국영화산업의 급성장과 높은 시장점유율이 사실 거품일 수도 있다는 얘기.모든 위기의 원인이 스크린쿼터 축소에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스크린쿼터가 없다면 앞으로 닥칠 위기 상황에서도 한국영화가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결론 : 스크린쿼터, 그래도 있어야 한다
    사회과학| 2007.08.23| 9페이지| 1,500원| 조회(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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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행문]남한산성탐방기
    Ⅰ. 서 설문화재란 인류 역사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문화재를 통해 과거 조상들이 살아온 삶과 그들의 지혜를 배우게 되며 민족적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문화재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없으리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과제를 제시 받은 후, 어느 역사 유적지를 탐방할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유적지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협의의 개념인가 광의의 개념인가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환경자체도 역사의 한부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의 신분인 본인이 현재의 문화와 환경을 역사로 정의하고 그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이라 판단하였고, 이에 따라 협의의 역사유적지의 개념에 의하여 남한산성을 선택하였다. 언뜻 역사유적하면 경주의 불국사나 합천의 해인사 등 멀리 있는 곳이 떠오르지만 서울이야 말로 우리나라 역사의 주된 무대이며 이 주변에는 우리가 평소에 그냥 지나치고 등한시하는 역사유적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남한산성이란 곳이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또 그 곳을 직접가보고 어떠한 것을 느끼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본 보고서를 작성해 나가도록 하겠다. 또한 남한산성에는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는데 본인은 서문으로부터 시작해서 남문을 지나 동문을 거쳐서 벌봉에 이르는 길을 따라 등반을 하였으므로 그 등반길에서 접할 수 있었던 문화재를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Ⅱ. 남한산성의 역사적의의 및 관련문화재1. 남한산성의 역사적 배경남한산성은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은 동경 127도 11분, 북위 37도 28분 지점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으로는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으며 성 내부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속해 있다. 남한산성이 위치한 광주시는 약 80%가 산이며 나머지 20%가 평야부에 속하는 경작지이다. 높고 낮은 산이 많으며 좁고 긴 하천이 한강을 향하여 북 또는 북동쪽36년(1603) 2월이며 광해군 때인 광해군 13년(1621)일부 수축이 이루어졌다. 또한 남한산성이 대대적으로 수축된 것은 인조 2년(1624)부터 인조 4년(1626)사이였다. 인조는 총융사 이서에게 축성할 것을 명하여, 2년 뒤에 둘레 6,297보, 여장 1,897개, 옹성 3개, 성량 115개, 문 4개, 암문 16개, 우물 80개, 샘 45개 등을 만들고 광주읍의 치소를 산성 내로 옮겼다.처음 축성의 목적을 대변해 주듯이 유사시 임금이 거처할 행궁이 73칸 반의 규모이고, 하궐이 154칸이나 되었다. 1798년(정조 22년) 한남루를 세우고 1642년에 세운 객관인 인화관을 1829년(순조 29년)에 수리하였다. 관해로는 좌승당, 일장각, 수어청, 제승헌을 비롯하여, 비장청, 교련관청, 기패관청 등의 군사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2. 문화재1). 수어장대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이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는 대를 말한다.수어장대는 산성 안에서 최고봉인 일장산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어서 성 내부와 인근 주변까지 바라볼 수 있다. 이곳은 병자호란(1636) 때 인조(재위 1623∼1649)가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45일간 대항하여 싸운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1층 누각으로 짓고 서장대라 불렀으나, 영조 27년(1751)에 이기진이 왕의 명령으로 서장대 위에 2층 누각을 지었다.건물의 바깥쪽 앞면에는 ‘수어장대’라는 현판이, 안쪽에는 ‘무망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무망루’란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아들 효종이 청나라에 대한 복수로 북쪽 땅을 빼앗으려다 실패하고 죽은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2). 숭렬전조선 인조 16년(1638)에 지은 사당으로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을 모시고 있다. 뒷날 남한산성을 쌓을 당시 총책임자였고 병자호란(1636) 때 싸우다 죽은 이서의 위패를 함께 모셨다. 원래 건물 이름은 ‘온조왕사’였으사를 마치지 못하게 되자 공사비를 탕진하고 공사에도 힘쓰지 않아 기일 내에 끝내지 못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 그의 부인도 남편의 성 쌓는 일을 돕기 위해 자금을 마련하여 오던 중에 남편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강에 빠져 자살하였다.그 뒤에 이회가 쌓은 남쪽 성벽이 다른 성벽보다도 더 튼튼하고 완벽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의 무죄가 밝혀지자 그의 넋을 달래기 위해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4). 현절사병자호란(1636) 때 3학사 윤집·홍익한·오달제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3학사는 적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청나라에 끌려가 갖은 곤욕을 치르고 참형을 당하였다.조선 숙종 14년(1688)에 그들이 끝까지 척화의 의리를 내세우던 곳인 남한산성 기슭에 지었으며, 숙종 19년(1693)에는 나라에서 ‘현절사’라 이름을 지어 현판을 내렸다. 우국충절을 장려할 목적으로 지었으므로 모든 경비를 나라에서 지원하였다. 숙종 37년(1711)에 김상헌과 정온을 함께 모시게 되면서 현 장소로 옮겨지었다.고종 8년(1871) 전국의 서원 및 사우에 대한 대대적인 철폐 때에도 제외되어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다.5). 침괘정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조선 영조 27년(1751) 광주유수 이기진이 다시 지은 후에 침괘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이 일대는 예로부터 백제 온조왕의 궁궐터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며, 침괘정의 오른쪽에는 무기를 보관하던 무기고나 무기를 만들던 무기제작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6). 연무관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처음에는 연무당으로 부르던 것을 숙종(재위 1674∼1720) 때 ‘연병관’이라 쓴 현판을 하사하여 통칭 연병관 또는 연무관이라 부르고 있다. 이곳에서 무술을 닦은 무사들 중 무예가 뛰어난 사람은 선발되어 한양으로 진출하였다고 한다.현재 군 입대를 해서 처음 훈련을 받는 논산의 육군훈련소의해 궁의 격을 갖추어 지은 건물을 말한다.남한산성 행궁은 광해군 13년(1621) 후금의 침입에 대비하여 만든 건물로, 백제 및 신라 때 토성을 식성으로 고쳐 지은 것이다.『남한지』에 따르면 남한산성을 고쳐 쌓을 때 행궁과 관아, 창고를 세웠으며, 총무사 이서가 주관하고 목사 유림이 감독하였다 한다.인조 4년(1626)에 완성한 행궁은 내행전인 상궐궁과 외행전인 하궐, 의정문, 내삼문을 갖추고 있으며, 행궁 동편에는 손님이 머무는 건물인 인화관이 있다. 행궁지는 산성호텔 뒷편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었다. 건물터는 상중하 3단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상단은 상궐터, 중단과 하단은 하궐터로 추정된다. 현재 남한산성행궁지(상궐터)에는 상궐, 남행각, 북행각, 재덕당, 좌승당 등이 복원되었다.남한산성 행궁은 북한산성 행궁, 화성 행궁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행궁 중 하나로, 기록으로 볼 때 북한산성 행궁보다 규모도 크고 왕이 실제로 머물렀다 한다.9). 장경사남한산성 안에 있는 절이다.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더불어 도성(서울)을 지키던 산성으로 장경사는 남한산성을 지을 당시인 조선 인조 16년(1638)에 세웠다. 전국8도의 승려들을 모집하여 산성 짓는 것을 도왔는데, 이때 승군들이 훈련을 받으며 머무르던 9개의 절 중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절이다. 조선시대 승병들이 나라를 위해 활동한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10). 망월사지산성의 동문에서 북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산 중턱보다 높은 곳에 넓게 펼쳐진 망월사 터를 만나게 된다.망월사는 남한산성내에 있는 9개의 사찰 중 가장 먼저 지어진 사찰로,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한양의 장의사를 허물고 불상, 금자화엄경, 금정 1구를 이곳으로 옮겨와 지었다고 한다. 망월사는 모두 불타버리고 90년부터 점차적으로 새로 짓고 있다. 현재의 자리가 망월사의 주요건물이 있던 자리이고 그 외의 터는 모두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남아있는 망되었다. 선효화상이 신도들과 함께 10여년에 걸쳐 대각전, 요사 건물을 새로이 지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현재 여러 건물터에서 초석과 돌계단들이 남아있어 옛 개원사의 규모와 건물배치를 짐작하게 한다. 유물로는 남한산성 축성시 승군들이 사용했던 유분, 석장, 옹기, 함지들이 남아있다.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 개원사에 관련된 설화가 눈에 띠어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남문 근처에는 1986년 말에 복원된 개원사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은 옛날부터 불경을 많이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한 번에 아주 많은 양의 밥을 지을 수 있는 무게가 200근이 넘는 큰 놋동 4개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 절에서는 귀중한 불경 궤짝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매우 신기하다. 조선 인조 때의 일이다. 한 척의 배가 서울 삼개 나루에 닿았다. 그런데 그 배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다만 불경을 담는 궤짝만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궤짝 위에는 '중원개원사간'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었다. 이를 발견한 삼개 사람들은 이상한 일이라고 여기고, 그 궤짝을 관가로 보냈다. 그리고 관가에서는 이를 다시 왕에게 올렸다. 삼개에서 보내온 궤짝과 그 사연을 들은 인조는 "사람도 하나 없는 배가 삼개에 이른 것만 해도 정말 기이하고 신령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불경 궤짝이 중원의 개원사에서 판각하고 찍은 것이라니, 이는 반드시 인연이 있어 우리나라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혹시 우리나라에 개원사라 불리는 절이 있는 지를 알아보도록 하라. 내가 보기에는 불경 궤짝 위에 쓰여진 글로 보아, 그 불경 궤짝을 우리나라의 개원사에 보내 길이 보관하라는 뜻인 것 같다. 서둘러 개원사라는 절을 찾아보시오."라고 분부하였다. 이에 개원사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절을 찾아보니, 광주 남한산성 안에 있었다. 그래서 인조는 그 불경 궤짝을 귀중하게 잘 싸서 남한산성의 개원사로 보냈다. 불경 궤짝은 한동안 별 탈 없이 잘 보관되었다. 그런데 불경 궤짝을 보관하고 있던 개원사에 불이 나게 한다.
    생활/환경| 2006.06.15| 7페이지| 1,000원| 조회(1,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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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이슬람
    2004019215 신문방송학과 이윤서‘이슬람’‘이슬람’#들어가며‘제 3세계’. 그 얼마나 멀게 느껴지는 말인가? 제 3이라는 말은 철저한 타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실제로 바다 건너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 사건 이후에야 우리는 이슬람에 대하여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편견이 그들과 관련한 자극적인 어떠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단편적으로 심어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서구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그들을 이해했다. 그렇다면 우리와 이슬람권 국가들은 그렇게 먼 나라들이었을까? 대답을 먼저 하자면 ‘No’이다. 세계 55개국의 13억의 인구, 국내 원유 수입의 70%를 의존하고 있는 지역, 그리고 지난 70년대의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이러한 지역에 대해 우리는 그 동안 너무도 무지했으며 그들을 이해하는데 조금도 투자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2명의 전문가들이 서구의 시각이 아닌 이슬람의 시각으로 펼쳐낸 ‘이슬람’이란 책은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책을 통해 나는, ‘내가 얼마나 미국적인 사고와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 보았나’ 하고 반성해 보게 되었다. 내가 보았던 영상이, 내가 알고 있던 정보가 그들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렇게 이슬람의 참모습을 알면 알수록, 그들이 별난 외계인이 아니라 함께 숨쉬고 있는 사람들이란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책은 점점 더 흥미로워졌다.#이슬람은 ‘이상하다?’수업을 통해 많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이슬람 국가들은 아직도 조금 ‘이상하다’. 그것은 아무래도 그들의 지독한 종교적 믿음 때문인 것 같다. 제 5장 ‘무슬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이방인의 눈에 이상하게 비치는 이슬람 고유의 대표적인 생활 관습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슬람 생활 곳곳에도 종교적 요소가 숨어져 있었다. 예를 들어, 이미 많이 알고 있지만, 무슬림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예상대로 ‘알라께서 금하셨기 때문에’였다. 아무런 근거 없는 종교적을 읽으면서 나의 그러한 궁금증들이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여 삶의 구체적 지침으로 삼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이슬람은 이제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 삶의 존재가치이며 삶에 완전히 녹아든 문화적 총체라고까지 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생활양식이요, 문화였다. 나는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 국가들의 집합을 이름붙일 때 ‘이슬람’이라는 단어가 가장 알맞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도 조금은 다르지만 유사한 상황을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길을 가는 사람을 붙잡고 “당신의 종교는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 “유교이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겠지만 우리의 생활양식에는 유교의 모습이 상당히 베어있다.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들을 ‘유교권 국가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이슬람에 대한 ‘지적 충족’이 책은 이슬람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이 이슬람에 관련한 ‘미니 백과사전’으로 불릴 만한 자격이 있음을 여러 장에서 확인했다. 먼저, 제 1장 ‘인류의 문명이 살아 숨쉬는 곳’은 오랜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리포트이다. 그 대장정의 첫발을 이집트에 내딛었다는 점이 자못 시사적인데, 이집트가 이슬람 국가라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고 보면 저자의 의도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피라밋과 스핑크스로 대표되는 저 거대하고 찬란한 고대 인류의 문명이 오늘날 대표적인 무슬림 사회로 이어졌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미 수업시간에 이슬람 국가에 대해 사진 자료를 보며 한번 훑어 본 후여서인지 책을 수월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북아프리카 대륙에서 출발한 이슬람 문명 여행기는 중동과 아시아 각국을 종횡무진하며 지나간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해 준다. 덧붙여진 사진 자료와 이해하기 쉬운 설명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지만 자세한 내막을 몰랐던 인류 문명의 보고에 대한 이해를 넓혀데, 철저한 남자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 풍습에서 그네들의 생활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출생의 순간부터 여아가 받는 차별, 이슬람법에서 강제하고 있는 ‘마흐르’와 같은 결혼 후 첫날밤의 순결성 확인 작업 등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고, 전근대적인 요소 중 일부라고 생각되었다. 근대라는 개념 자체가 서구의 역사발전에 기반한 개념이며 이슬람교의 교리와 들어맞지 않는다고 반박할 수도 있으나, 적어도 인간사회의 진보라는 측면에서 근대라는 개념이 이슬람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부분은 있다고 생각된다.이 외에도 제 11장 ‘성직자 없는 이슬람’에서는 이슬람교만의 독특한 교리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잘 풀어서 설명해 준다. 또한 제 10장 ‘이슬람을 움직이는 10인’ 역시 낯익은 인물들이 등장해 또 다른 차원에서 이슬람 세계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거대한 이슬람 공동체를 실질적으로 지도해 가는 이들 10인의 색깔이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전달해 준다.그밖에 커피를 인류에게 선물한 것이 아랍인들이었으며, 이슬람 문화의 중요한 코드로서 커피가 기능하고 있다는 얘기는 매우 참신했다. 두 개의 커다란 축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슬람 경제 얘기도 매우 흥미진진했다. 최민수?이영애 주연의 영화 제목이기도 했던 ‘인샬라’에 얽힌 일화들도 재미있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종교적 얘기로 잠시 진지해졌던 나는 가벼운 얘기로 머리를 다시 이완시켰다. 강약의 리듬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저자의 독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로 판단된다.#이슬람에 대한 ‘감성 충족’지적인 정보 습득으로 이슬람과 가까워 졌다면, 다음 여러 장에서는 감성적으로 이슬람에게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제 2장 ‘이국의 향기를 느낀다’에서는 많지는 않지만 이슬람권을 대표하는 문학, 영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의 필독 동화로 너무나도 친숙한 ‘아라비안 나이트’, 즉 천 하룻밤에 걸친 이야기가 실상은 천 하룻밤에 걸쳐 풀어놓은 야한 이야기보따리라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제대로 된 천일야화를 읽어보고 싶겠다. 이슬람 문화권이 서구로부터 지탄받는 여러 요인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여성의 인권 탄압이고, 나 역시도 이런 여성들을 조금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고 있어서인지 3, 4장은 가장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베일을 벗는 이슬람 여성들’과 ‘이슬람을 빛낸 여성들’이라는 제목부터가 무척 흥미로웠다.책은 일부다처제가 현대사회에서 가장 미개한 제도라며 여성에 대한 억압이 당연시되는 문화를 비난하는 서구의 입장과, 그러한 제도야말로 여성을 가장 잘 존중하고 보호해 줄 수 있는 제도라고 반박하는 이슬람의 입장을 함께 언급해 주어서, 그 실체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또 그러한 여성 차별의 기원과 근거가 종교적, 문화적 소산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좋았다. 한편으로, 태어날 때부터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자라나 당연히 그런 줄로만 알고 서구의 여성들에 비해 훨씬 낮은 대우를 받는 현대의 이슬람 여성들에 대한 측은한 마음은 더 증폭 되었다.그런데,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여태껏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먼저, 책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이슬람 여성의 지위가 역사적으로 전근대 사회에서의 일반적인 여성 지위보다는 높은 수준이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 이슬람 여성의 상속권 제도가 우리나라보다 1400여년이나 앞섰다는 점도 뜻밖이었다. 무엇보다 내 예상과 빗나갔던 것은 아랍세계에서 이슬람교가 성립되면서부터 크게 신장된 여성의 지위,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의무, 여성의 재산 소유권, 여성을 보호한다는 의미의 히잡 착용 등의 이야기였다. 즉, 저자에 의하면 이슬람교는 여성 인권 신장에 오히려 긍정적 효과를 나타낸 점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오해하고 있던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저자는 여성 인권에 대한 서구의 비난이 이슬람 고유의 특성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사고의 소산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여태껏 서구식 사고방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고, 이슬람 세계의 입장에서 고려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이어는 매우 부러울 따름이었다.결국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았을 때 이슬람권은 여성을 억압하는 체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여성할례, 근친상간, 일부다처, 약탈과 침략이라는 것은 유목적인 아랍사회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특징에 불구한 것이다. 유목사회라는 것은 목축, 사냥을 주 생산 활동으로 하기 때문에 여성이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사회구조이다. 그런 이유로 부계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가 될 수밖에 없었고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코란은 여성의 지위와 권리에 대해 규정하고 있었고, 그렇게 여성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서구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최근에야 겨우 자리를 잡아간다는 사실을 본다면 벌써 몇 백 년 전 여성의 경제적 평등을 인정한 이슬람은 오히려 여성의 지위를 보장해주는데 있어서 앞선 종교였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슬람의 여성들은 불행하거나 억압받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문화 안에서 그들 나름의 입지와 지위를 갖고 남성들과 때로는 경쟁하며, 그리고 공생하며 살아가고 있었다.#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풀다 - ②이슬람과 경제부끄럽게도 나는 그동안 제 3세계에 대해 우리가 더욱 발달된 문명을 갖고 있다는 약간의 우월감을 갖고 있었고, 그런 생각의 밑바탕에는 우리나라가 그들보다 더욱 경제력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이미 수업시간에 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사우디의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와서 천만 원을 호가하는 시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쇼핑했다는 것 등등-를 통해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책을 통해서 더 확실해 졌다. 7장 ‘이슬람의 독특한 경제이야기’는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흥미를 유발한다. 이자 없는 은행, 오르지 않는 임대료 등 자본주의 사회의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슬람 사회에서는 실제로 일어나고 또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아직도 상당부분 전통적 생활방식과 경제논리에 기대고 있는 이슬람 사회가 공산주의도 아닌 어했다.
    독후감/창작| 2006.06.15| 7페이지| 1,000원| 조회(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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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한국인의 충효사상
    들어가며근래에 와서 충효 사상에 대해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인을 공경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한다."라는 뜻인 효친에 대해서도 자주 일컬어진다. 모두가 우리의 전통 사상, 우리의 미풍양속을 되살리려는 노력의 표현이기도 하고, 현대 사회에 있어서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려는 노력의 일단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충효 사상은, 조선 시대의 흐름을 주도해 왔던 유교사상과 더불어 발전되어 왔다. 다만 , 충효 사상이 유학 사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충효 사상은 유학의 중요한 덕목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사랑의 덕목으로 仁이 있는 것이다. 충이나 효는 사랑을 실천하는 덕목이며, 충은 국가 사회 윤리이고 효는 가정 윤리라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사람의 도리라고 말할 수 있다.일반적 의미로서의 '충'은 '中'과 '心'의 합성어로 마음의 중심을 뜻한다. 자기 자신 및 타인 그리고 국가에 대해서, 조금의 속임이나 꾸밈없이 자신의 온 정성을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로서의 ‘충’은 "자신의 정성을 다하는 것"으로, 내면의 참된 마음을 다한다는 적극적인 측면을 의미한다.한국인의 충효사상忠은 인간이면 누구든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당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충은 하위계층이 상위계층에게, 피지도자 계층이 지도자계층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고 희생한다는 뜻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위계층이 하위계층에게, 지도자계층이 피지도자 계층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주어야 한다는, 즉 그들 위치에서의 최선이 성실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충의 진의는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충의 참뜻이 이렇게 나타나기 시작함으로써 하위계층과 피지도자 계층도 그들 스스로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역량이 길러지는 것이고, 이렇게 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위와 아래가, 지도자와 피지도자가 그들의 위치에서 각기 충의 진의를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忠은 中이라는 글자와 心이라는 글자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글자다. 가운데[中]는 하나밖에 없다. 만약 가운데가 둘이라면, 中자의 두 글자와 心자가 합해져서 근심과 걱정이 쌓이는 患자가 되어 결국 어려운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까 忠은 하나[中]의 마음[心], 즉 한 마음이라는 뜻을 지닌다. 한 마음은 어떤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마음, 진실 되게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마음, 그래서 그 마음의 표현을 겉으로 보아 최상의 아름다움으로 느껴지는, 속 모습의 진솔함이 저절로 나타나는 그러한 의미로 풀이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하여 조선조의 많은 학자들은 당시 최고 통치자인 왕에게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忠의 내용이 담긴 상소문을 올리어 善治가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 하였던 것이다.이와 같은 충의 의미가 인간관계에서 실현될 때, 그 인간관계는 원만함을 유지하게 되어 사회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충의 실천이 연장자에게 나타났을 경우 이는 敬으로 지칭되고, 연소자에게 베풀어졌을 때에는 사랑으로 표현된다. 그런가 하면 자녀가 부모에게 실천하는 충은 바로 孝가 되는 것이고, 부모가 자녀에게 베풀어지는 충은 부모의 사랑, 즉 慈의 의미로 설명된다. 그리고 나라에 충성을 한다는 설명에서 나라는 곧 자기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주변사람들이나, 어떤 직위에서 책임을 져야하는 범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나라에 충성한다는 의미는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忠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다.한편 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忠이 사회적으로 실현된다는 것은 인간주체성의 發顯이라는 의미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의 주체성이 自己同一性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은 충의 실현에 의해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구축되는 자기동일성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주체는 他者로부터 어떠한 침해도 받을 수 없고, 동시에 타자의 주체도 내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침해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주체의 의미와, 오히려 나의 주체는 타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하고, 동시에 타자의 주체도 나에게 그렇게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주체의 의미가 忠의 내용이 지니는 의미와 상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은 곧 인간주체성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충의 의미가 한국 사회에서는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 하는 것이다.신라시대 圓光이 화랑들에게 지켜야 할 계율로 주었던 世俗五戒의 첫 번째 내용이 事君以忠이다. 임금을 충으로써 섬기라는 뜻이다. 여기서 君, 즉 임금은 임금 개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신라의 정치를 이끌어가는 책임자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을 충으로써 섬긴다는 뜻은 신라의 정치가 善政으로 베풀어지도록 최대한의 힘이 되겠다는 화랑들의 계율이었고 약속이었다. 그리고 事君以忠에는 화랑들이 수행하여야 할 책임만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을 뿐, 당시 신라의 조정이나 왕의 책임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점이다. 이는 당연히 화랑들이 지켜야 할 계율이기 때문에 다른 시람들이 지켜야 할 어떤 책임의 소재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 내용에는 당시 신라의 조정이나 왕이 그들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화랑들은 그들 스스로가 신라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의가 숨겨져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즉 그들은 신라의 발전에 책임을 지고 어떠한 경우에도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세속오계의 참뜻과 함께 다짐하였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는 삼국이 서로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에서 유독 신라가 삼국을 통일로 이끌 수 있었던 유능한 정치인과 군인이 바로 이 화랑의 무리에서 배출되었기 때문이다.한편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은 원광이 세속오계에서 충을 인간행위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였던 그의 주체의식이다. 그는 당시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화랑의 대표자인 귀산과 취항에게 세속오계를 창작하여 그들의 계율로 전해 주었다. 이 계율은 중국에서 忠보다 孝를 강조하였던 당시의 사상적 경향과 다르다는데 원광의 사상에서 주체적 요인이 발견되는 것이다. 맹자의 五倫은 부모가 자녀에 대한 사랑[慈]과 자녀가 부모에 대한 효도가 父子有親이라고 하는 내용으로 하여 다른 인간관계의 내용보다 중시되고 있다. 물론 인간관계에서 어떤 인간관계보다 부모와 자녀간의 인간관계가 진하고 소중한 것이 사실이고, 또한 그러한 인간관계가 정상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문제로 지적되어야 할 것은 원광이 충의 의미를 인간관계의 핵심으로 하여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 그의 思惟체계가 합리적이고, 따라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앞에서 자세한 설명으로 충의 의미를 탐색한 바와 같이 인간 내면의 진솔한 자아가 자발적으로 인간관계에 구김 없이 발현되어 가장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내용으로,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어야 할 핵심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충의 의미가 확인되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고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慈와 孝는 그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원광의 충에 관한 이해는 바로 주체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와 같은 충효사상의 내용이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서는 어떻게 전개되었고, 사회적으로는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점이다.신라시대의 國學과 고려시대의 國子監은 조선조의 成均館과 마찬가지로 당시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된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이었다. 그런데 이들 교육기관에서 가르쳤던 교육내용은 ?論語?와 ?孝經?, 그리고 ?禮記?등 주로 유교경전이 그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들 경전은 충효사상을 기초로 한 일반교양에 주안점을 두고 저술된 것으로 당시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의 양성에 그러한 교양교육을 중요시하여 교과내용이 편성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충효사상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교양교육의 내용은 당시 인재를 뽑기 위한 시험 과목과 직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선발된 인재는 그 당시 관리에 임명되어 사회와 국가를 위하여 충효사상의 진의가 실천되도록 최선을 다하였고,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인물로 평가되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최상의 명예였고 목표였다. 한편 이러한 인재양성을 담당하였던 고려의 국자감이 여러 가지 주변상황에 의하여 충실한 인재의 배출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면서 당시 필요로 했던 인재의 양성은 사립의 교육기관에서 맡기도 하였다. 이 사립교육기관이 崔沖에 의해서 비롯되어 그 후 다른 많은 사학에서 국가에 필요한 인물들이 또한 배출되기도 하였다.
    인문/어학| 2006.06.15| 4페이지| 1,000원| 조회(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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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 광고]IMC의 모든 것
    목 차1. IMC의 정의2. 새로운 패러다임의 IMC1) 마케팅은 커뮤니케이션2) 소비자 힘이 세진 환경3) 통합하여 인식하는 상표4) 상호작용과 커뮤니케이션5) 4P가 아니라 4C의 시각3. IMC의 주요개념들1) 고객 모으기2) 획득과 유지3) 밖에서 안으로의 접근4) 상표접촉점의 원리5) 소비자 통찰력6) 커뮤니케이션 컨셉트7) 투자 수익률8) 폐쇄된 순환 체계4. IMC의 5단계 과정1) 데이터베이스에서 출발한다.2) 고객을 평가한다.3) 메시지를 전달한다.4) 효과를 측정한다.5) 데이터베이스에 재배치5. IMC의 4단계 수준6. 인터넷 시대의 IMC7. IMC에 적합한 TV광고 크리에이티브1) IMC를 하기위한 TV광고의 목표2) 행동반응을 만드는 TV광고 사례3) 행동반응과 관계된 심리학 이론4) IMC를 위한 TV광고 전략 체크포인트5) IMC를 위한 TV광고 전략방향 모델(DACOR Model)8. IMC 사례조사9. 결론1. IMC의 정의커뮤니케이션 메시지가 판촉의 수단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이 아니고 모든 마케팅 믹스 요소를 통해 하나로 통합된 메시지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 개인수준에서의 고객과의 상호적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고객에 대한 최선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면서 일관성 있는 브랜드 메시지의 전달과 이를 전달할 미디어의 장점들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활동을 의미한다.”라고 제시하고 있다.미국 광고업 협회는 “통합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광고, DM, SP 와 PR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의 전략적인 역할을 비교, 검토하고, 명료성과 일관성을 높여 최대의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제공하기 위하여 다양한 수단을 통합하여 총괄적 계획의 추가적 가치를 인식시키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계획”이라고 정의하고 있다.2. 새로운 패러다임의 IMC1) 마케팅은 커뮤니케이션광고목표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훌륭한 사고의 틀은 다그마(DAGMAR Defining Advertising Goals for Measured Advertisin 판매제안을 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 타깃을 고를 때에 새로운 소비자들을 포함시키게 되는 경우를 획득(Acquisition)이라고 한다.이러한 유지와 획득을 위하여 고객 데이터베이스가 기반이 된다. 고객 데이터베이스는 고객리스트와 근본적으로 다른데, 가장 다른 점은 구매와 관련된 정보가 담겨져 있다는 점이다.이런 구매정보에는 그 동안 구매한 상품의 종류나, 구입금액, 그리고 구입기일 등이 포함돼어 있으며, 특히 판촉제안이나 어떤 서비스 제안에 대한 반응도 포함된다. 물론 반응이 없었다고 할 경우에는 반응이 없었다는 반응으로 분류하게 된다.IMC를 하는 데 있어 소비자를 모으는 Aggregation은잠재고객을 신규고객으로 만드는 획득(Acquisition)과기존고객을 단골고객으로 만드는 유지(Retention)로 분류된다.3) 밖에서 안으로의 접근 (Outside In Approach)대부분의 기업들은 ‘안에서 밖으로(Inside-Out)'의 접근 방식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즉 현 재의 기업 상황을 기초로 하여 기획을 하고 판매, 마케팅, 심지어 이윤목표까지도 내부관점에 서 세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제조한 것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설정한 판매목표와 수익목표가 여기에 있다. 이제 나가서 우리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게끔 고객들을 찾아보자’하는 접근방식을 말하는 것이다.그러나 IMC에서는 그 반대의 방법으로 사고방식을 전환한다. 그래서 ‘밖에서 안으로 (Outside-In)’ 접근방식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마케팅 계획을 실시하는 출발점 자체가 기업외부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인데, 특히 소비자로부터 시작하여 그들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정의하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자의 필요와 욕구에 맞추는 사고방식이다.IMC가 Outside in 인 이유는?IMC의 특성 때문에 Outside In 한다.IMC는 소비자의 행동반응을 목표로 하는 것이므로,IMC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목표가 우선시 되므로,IMC는 실체가 확실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대상이므로4) 상표 에 초점을 맞추고③소비자의 생각을 바꾸는 것을 중시하고④전체를 조망하며⑤원점에서 보아야 한다.7)투자 수익률(Return On Investment)광고효과는 브랜드 인지도나 상기도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IMC에서는 투자수익률(ROI: Return on Investment)로 그 결과를 측정한다. 통합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결과의 큰 관심은 가장 확실한 수익이다.IMC의 결과를 ROI로 측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IMC에서 소비자의 행동반응은 주로 거래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며, 거래가 아니더라도 어떤 가치의 변화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떤 가치의 변화란 주로 고객의 평생가치를 말한다. 실제의 거래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과거의 구매기록이나 경험 등을 바탕으로 그 소비자의 가치를 계산하여 두고 그 가치의 변화를 측정한다면 그것도 금액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래서 IMC에서의 효과 측정은 모두 투자수익률로 측정될 수 있다(Schultz & Walters, 1998).IMC에서는 그 효과분석의 기준이소비자가 기억하는 커뮤니케이션 인식률이 아니라소비자에게서 실질적으로 벌어들인 돈, 투자수익률이다.8)폐쇄된 순환 체계(Closed Loop System)IMC의 경우 더구나 데이터베이스에 나타난 현재고객들만을 상대할 경우에는 추적하기가 어렵다. 설령 일부 정보를 파악했다고 할지언정 어느 집단을 겨냥한 메시지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또한 접촉점 관리를 통하여 접촉점과 경로를 선택하기 때문에 메시지의 흐름을 간파하기가 매우 힘들다. 설령 정보의 일부분을 탐지하여 경쟁사가 자사의 움직임을 파악했다고하더라도 그것은 전체 IMC 과정에서의 일부분일 뿐이지 전반적인 내용은 추적할 수가 없는것이다. 그래서 IMC는 폐쇄적(Closed)이라고 할 수 있다.또한 IMC는 순환적(Loop)인 속성이 있다. 물론 광고나 여타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수단들도 순환성이 있다고 하지만 IMC의 순환성과 다른 점은 IMC는 순환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에 순환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기존고객을 잃었는가를 판단한다.②프로파일 분석 : 이상적 고객들은 어떤 모습이고, 타깃으로 정한 고객들의 모습은 djEJs지 프로파일을 분석한다. 또한, 여러 타깃그룹끼리의 프로파일을 비교한다.③반응 분석 :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이나 판촉 프로그램이 효과적이었는지 고객들의 반응을 분석하고, 고객들을 새롭게 끌어들이기 위한 비용(Acquisition Cost)등을 분석한다.④구미패턴 분석 : 소비자그룹별로 구매패턴이나 구매의 계절, 가격에 대한 탄력성,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상에서 구입하는 기회,구입시 지불방법 등에 대해 분석한다.⑤구매경로 분석 : 어디서 구입했는지, 어떤 경로가 중요하고 결정적이었는지 분석한다.⑥상표접촉 분석 : 어디서 상표접촉을 하였는지, 구입하는 데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되었는지, 구입정보나 상품정보의 원천은 어디인지 분석한다.⑦우선순위 분석 : 우선적으로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것인가,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가 우선적으로 구입될 것인가 등을 판단한다.⑧소비자 관심 분석 : 소비자그룹마다 관심사항은 무엇인지, 구매동기가 무엇인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관심은 어떤지 등을 분석한다.상표충성도 분석.Decile 분석.REM분석. 평생가치 분석을통하여 고객을 통계적으로 정확히 평가하고 구분함으로써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타깃 고객을 모을 수 있다.3) 메시지를 전달한다.IMC의 세 번째 단계는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를 찾아보고 결정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의 핵심은 바로 상표접촉점 관리(Brand Contact Management)이다.상표접촉점 관리는 크게 두 부분, ①상표접촉점을 찾아내는 부분(Brand Contact Audits)과②소비자가 갖는 구매의사 결정과정에서 상표접촉점들이 어떤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파악하는 부분(Brand Communication Audits)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상표접촉점 관리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매체선정의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접촉점은 TV광고도 될 수 있고, 신문에me Flow to Brand)? 공제해야 할 촉진 외 비용(Less:Non Communication Cost)? 순수 기여액(Net Contribution)? 추가된 수입(Incremental Gain/ Loss vs No Investment Scenario)? 투자수익(Incremental ROI)IMC활동의 효과는 ROI라는 돈 가치로 측정할 수 있는데,이는 돈을 썼을 경우와 안 썼을 경우에 나오는 수입의 차액을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투자비용으로 나눔으로써 계산될 수 있다.5) 데이터베이스에 재배치시킨다.IMC에서는 측정 가능한 소비자의 행동반응이 데이터베이스로 되돌아 와야 한다. 되돌아 올수도 안돌아 올 수도 있는 게 아니라 반드시 되돌아 와야 한다. 어떤 소비자한테는 하나도반응이 없었다는 결과마저도 되돌아와야 한다.IMC에서 고객의 행동반응 정보가 되돌아오는 피드백은 그만큼 중요하다. 피드백이 없으면IMC가 아니다. 피드백이 되더라도 두툼한 조사 보고서로만 되돌아오는 것은 IMC가 아니다. 반드시 데이터베이스로 되돌아 와야 IMC이다. 이렇게 데이터베이스로 되돌아온 소비자행동반응의 결과는 새로운 IMC를 기획하는데 이용되는 것이다.측정 가능한 소비자 행동IMC는 자기 스스로 조절하는 힘이 있으며, 밖에서 안으로의 접근방식은 소비자의 반응에 대한 명확한 파악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만일 소비자 반응에 대한 파악이 명확치 않다면 출발점 자체가 오류인 셈이다. 그래서 마케터들은 소비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명확하게 파악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무엇을 원하고 원치 않는지, 어떤 것을 어떤 형태로 원하는지 자세히 알아야 한다.①행동=거래이 경우는 매우 명확하다.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얼마의 가격으로 언제 구입했는가를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하게 된다. 이것은 향후 REM분석의 기초 자료가 되며 동시에 상표접촉점을 기록하게 된다. 어떤 상표접촉점이 있었는지와 함께 가장 영향을 많이 끼쳤을 상표 접촉점을 파악하여 향후 IMC계획에 참조하는 것이다.②개입=부분거래IMC에서 이다.
    경영/경제| 2006.06.14| 23페이지| 1,500원| 조회(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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