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
검색어 입력폼
  • [조경사] 조경사(삼국시대조경) 평가A+최고예요
    第 4 部 三國時代1. 공간문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한 시대(1) 사회적 배경 → 三才思想陰陽思想礎石思想風水(圖讖-도참)思想神仙思想神禪思想■ 三才思想天 = 陽 = ○地 = 陰 = ? 우주의 근원을 파악하는 사상人 = 中庸 = △이 같은 사상은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는 존재로 인식하여住居空間 造營 時 적용되는 기본사상이 되었음뜰(마당) 조영 기본형태 = 圓?方?角이 응용됨樹石의 植栽 및 着座 기본형태 = 主?從?添의 원리적용(歲寒三友 : 梅?蘭?竹)(여기에 菊이 더하면 四君子)四君子는 명나라 진계유의 梅菊竹蘭譜에서 나온 것으로修心養成의 儒家思想의 기본이 되다시피 함■ 神禪思想o 이 說은 조선조시대의 別墅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이 이외에도? 慶州 안압지,? 夫餘 궁남지,? 창덕궁 애련지,들이 이 설에 영향을 받았음.禪思想과 관계가 깊은 조경구조물 : 庭園石우리나라 정원에서 불교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 : 石蓮池즉 花崗岩을 이용하여 어항과 같이 만든 것으로그 속에 연꽃을 심어 정원용 點景物로 사용하였음■ 陰陽(五行)思想o 定意 :고대 중국의 세계관의 하나.陰陽說과 五行說은 발생을 달리하는 다른 사상이었으나,戰國時代말기 이후 융합되어 음양오행설이 되었고,특히 漢나라때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침.즉① 우주나 인간의 모든 현상을 음·양 두 원리의 소장으로 설명하는 음양설과,② 이 영향을 받아 만물의 생성소멸을 木·火·土·金·水의 變轉으로 설명하는 오행설을 함께 묶어 이르는 말.o 起源 :陰陽二氣의 消長에 의해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하는중국 古代哲學思想은주 시대부터 음양학설이 생겨나기 시작해서춘추전국 시대에 이르러 크게 발전, 완전성을 띰이것으로 자연계의 모든 현상을 해석하며 의학의 영역에까지 깊이 응용하게 됨.음양은 본래 산의 음지와 물의 양지를 가리켰음. 그리고,곧 易(日+月)이라고 하는 하나의 思想을 탄생시켰음易學은 본래 剛과 柔의 원리로 生成變化를 설명했으나, 후에剛柔 대신에 음양을 받아들였고, 여기에 循環思想이 추가.이것은 천체의 운행과 사계(四季)의 추이에서 석하였으며, 또 음양이 太極에서 분리되었다고 하여 二元論을 一元論에 환원시키는 것과, 天地·上下·圓과 方(사각형)·홀수와 짝수 등 쌍을 이루는 여러 가지 사물과 개념을 각각 양과 음으로 나누고, 같은 쪽에 속하는 것끼리 서로 대응시키는 사고방식 등도 각각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과 피타고라스학파의 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서양의 대립개념은 서로 용납하지 않는 엄격한 대립인 데 반하여, 음양의 경우는 서로 相補的·상대적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고대그리스의 四元素說에서의 원소는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물질로서의 경향이 짙고, 또 근대적 원소설과 原子論도 그와 같은 구체적인 기본물질 추구에서 생겼던 것과는 달리 오행의 경우는 오히려 성질과 기능의 면을 중시하게 되어 추상적·형이상학적 논쟁 밖에 할 수 없었던 점이 근대적 물질관이 생기지 못했던 하나의 원인일는지도 모른다. 서양의학에는 사원소설에서 암시를 얻은 것으로 보이는 四體液說이 있었으나, 중국에서는 음양설에 이어서 만물의 생성·소멸을 설명하는 오행설이 의학과 생리학직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입되어, 일반 사상에 대한 오행설의 침투를 촉진시킨 것으로 보인다.o 오행학설은 의학에 응용 되어 인체의 생리와 병리뿐만 아니라외계 환경과의 상호 관계 등을 설명하며 진단과 치료에있어서 중요한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현대에 이르러 주택, 건설, 조경 및 인테리어 등에 적극 이용■ 神仙思想o 정의 : 불로장생의 신선의 존재를 믿고 그 경지에 달하기를 바라는 사상.o 내력 :한국에서는 이 사상이 무속과 함께 원시 고유신앙의 바탕.건국신화의 원형인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설화 및 신화가 이 신선사상과 밀접한 관련 있음.동학 이후 신종교들에서도 핵심적인 구성요소가 되어 있음.이 사상이 생활문화화되고 대중까지 보급된것은 신라시대이후o 사상적 내용 :- 우리나라 고유의 선도(仙道)와 신라시대 유당학인(留唐學人)들이 도입한 수련(修練) 도교로 구분.- 우리나라의 선도는 산악숭배를 기초로 하여 지역공동체성이강한 국조신앙(國祖信仰)과 직을 축성.도시주변에 성곽이 있으면 도시의 한쪽에 도성과연결하여 산성을 축성 = 이것을 위성이라고 함(3) 山城의 型式■ 종류 : 데뫼식과 包谷式- 데뫼식 = 산 頂上部를 중심으로 머리띠형으로성벽을 두른 것(예 : 백제의 부소산성)- 포곡식 = 계곡을 안은 산봉우리를 산꼭대기로부터골자리에 걸쳐 고리모양으로 성벽을 쌓고가장 낮은 쪽 근처에 성문과 수구를 설치하며가장 높은 곳에 망루를 세운 형식.(예 : 고구려 국내의 위나암산성, 초기평양의대성산성)※ 이 형식이 우리나라에서 많았다.(4) 高句麗의 산성■ 흘승골성(五女山城)- 졸본(중국 요령성 환인)에 위치- 반달형 산성으로 험준한 절벽으로 구성- 이 산성 내에는 집자리와 苑池인 천지가 있음.- 이 못은 식수원이며 동시에 조원적 기능을 했음■ 國內城(王宮)과 丸都山城(위성)특징: 城內에 장대, 망대, 행궁터, 큰 池들 있음■ 安鶴宮城과 大聖山城△ 안학궁을 포위한 內城△ 대성산성 - 안학궁의 위성(포곡식 산성)이곳에서 전쟁에 필요한 일련의 건축물이발견됨170여개의 우물 발견■ 平壤城(長安城)-안학궁의 아래로 천도한 성(滅亡할때까지의 都邑)-4개의 성으로 구성 :♥北城-內城을 방비하기 위한 山城(은밀대, 모란봉)♥內城-王城임. 일부 城內外에 二重 垓字造成♥中城-주거지역임♥外城-농경지로 구성노비,수공업자, 상인들의 주거지)(5) 百濟의 산성■ 風納土城- 반달토성- 초기백제방어시설 : 둘레 4km, 남북간 3km동서간 1km■ 夢村土城- 한성시대의 중요한 도성- 백제초기의 도읍지(올림픽공원 조성)■ 二聖山城- 몽촌토성의 위성- 남쪽산록에 2개소의 못자리발견이것은 食水와 軍士用水로 이용■ 公山城(熊津城)- 개로왕시대에 한산성에서 공주로 천도- 백제시대는 토성이었음(조선시대 돌로 축조)■ 泗?城- 공주에서 부여로 천도- 능선에 토성을 쌓아 건설- 반달같아 半月城이라고도 함■ 扶蘇山城- 사비성 내부에 있음- 테뫼식 산성(6) 新羅의 산성徐羅伐에 도읍을 정한 뒤 한반도 천도를 하지 않음.∵ 산들이 포위동 - 명활산,동남 - 낭산남 BC 37년(혁거세 21년)에 축성. 이 안에 축궁위치는 분황서터 북쪽 벌천유역 또는 조선시대의경주읍성지로 추정- 평지에 만든 토성, 동서남북에 4개의 문■ 月城 - 흔적만 남아 있음- AD 101년(파사왕 22년) 금성의 동남쪽에 축성금성에서 이곳으로 천도- 원래는 금성에서 이 月城으로 遷都- 형태가 半月이어서 半月城이라고도 함- 이 성의 북쪽에는 계림이 있고주위에 큰 건물터가 발굴되었음- 궁궐의 배치는 알지 못함(10) 寺刹景觀의 구분①塔中心型, ②塔金堂中心型 ③金堂中心型(11) 高句麗 寺刹造景 傳來來歷- AD 372(소수림왕 2년) 秦나라 왕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한반도에 보내 최초의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 AD 375 肖門寺 및 伊佛蘭寺 建立(흔적 없음)- AD 498 이름난 금강사 건립(청암리 절터만 남아있음)(12) 高句麗의 寺刹의 위치- 대부분 도시에 위치平地寺刹(평탄한 지형에 건축)平面配置方式- 塔中心型 : 고구려의 전형적 평면배치형임- 탑과 금당 주위에는 回廊(13) 高句麗 寺刹의 特性塔을 중심으로 - 북쪽 강당(北金堂), 동쪽 東金堂서쪽 西金堂 남쪽 門즉, 1塔3金堂式 寺刹임- 他國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空間構成 型式- 塔은 8角塔(佛家에서 四聖弟가 있고 그 밑에 8정도가있음. 이것이 8角形의 시초임)이러한 형식의 대표적인 寺刹 : 금강사, 정릉사金剛寺址(청암리 절터) - 평양의 안학궁 서남쪽 토성안에세워진 절터.정릉사 - 동명왕릉 앞에 위치남북길이 132.8m, 동서길이 223m총 3만m25개 구역으로 구분(p.38 그림참조)(14) 百濟寺刹의 일반적 개황가. AD384년(침류왕 원년)에 中國 東秦에서 傳來나. 주로 熊津, 사비에 집중적으로 分布공주-대통사터,규모가 크지 않고 대부분 산지에 건립부여-군수리, 가탑리, 동남리, 현북리 및 호암리등의 절터, 정림사터, 금강사터, 왕흥사터.대규모의 사찰이 평지와 도시내부에 건립(백제의 국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익산-미륵사터(15) 百濟寺刹의 特徵o 배후에 산이 있거나o 큰 돌벼랑과 최대의 절터(솔거의 소나무 그림 유명)- 경주 구황동에 분황사 남쪽에 위치- 553년(진흥왕 14년)에 착공, 30년 만에 완성- 목탑 = 643년에 착공되어 2년 만에 완성9층높이, 약 66m- 형식 : 1탑3금당 병립식 사찰: 고구려의 청암리 금강사지와는 달리 3개의 금당이 나란히 배치▲ 芬皇寺- 황룡사의 북쪽에 위치- 643년(선덕여왕 3년)에 창건- 임진왜란때 소실- 배치형식 : 금당이 品字형식의 1탑3금당식, 남향.: 남북축선상에 남으로부터 중문, 탑, 금당,강당 순서로 배치.: 금당과 강당의 양 옆에 건물배치.(20) 삼국시대의 墓地景觀의 일반적 특성o 묘지를 호화스럽게 축조한 이유-권위의 상징으로서의 묘지-현세에서의 부귀영화와 권세가 내세에서도이어지기를 소망하는 繼世思想의 팽배o 매장형식- 화려하게 축조- 안에는 본인이 쓰던 물건도 함께 넣음- 여기서 발굴되는 유물들은 고대의 문화를 추정할 수 있는 연구자료 제공(21) 고구려 墓地景觀의 일반적 특성o 種類積石무덤(石塚)과 封土石室무덤(墳)o 내용(1) 적석무덤- 고유의 묘제임- 기원전 3C,- 지상에 돌더미를 쌓아 올리고 그 중간에 시체를넣어두는 간단한 형식(이 형식은 시베리아 일대에 퍼져 있는 돌무덤의 통에속하는 것)- 처음에는 강가, 나중에는 산기슭(2) 봉토석실무덤- 주위의 지면에 냇돌을 깔아서 묘역을 표시- 괴석 또는 다듬은 長大石으로 석실구축, 그 위에 封土를 덮은 것- 형식 : 평면이 원형인 것이 대다수- 축조연대 : 4C에 출현하여 차차 고구려 고분의 주류가 됨- 벽화고분은 모두 봉토석실무덤 형식에서 나타남.(22) 백제墓地景觀의 일반적 특성o 종류- 적석무덤, 적석목과무덤, 봉토석실무덤, 벽돌무덤(1) 적석무덤(서울 석촌동에서 발굴)- 고구려의 장군총이나 태왕릉과 비슷(2) 적석목과 무덤(서울 석촌동에서 발굴)- 주로 평지에 자리잡고 있음(3) 봉토석실무덤(광주지방, 공주 및 부여지방)- 고구려와 비슷. 다만 구릉지대의 경절터에서 발견- 광주지방 : 다만 깬 돌로 네 벽을 쌓아 석실연못,
    자연과학| 2005.06.07| 35페이지| 2,000원| 조회(810)
    미리보기
  • [사찰조경] 사찰조경과 민가조경 평가A+최고예요
    사찰 조경경관의 특성조사▣ 사찰 : 경북 김천시 직지사▣ 위치 : 직지사(直指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로 김천시 대항면 운수동 216번지 황악산(黃嶽山, 1,111m) 동남쪽에 자리하고 있다.직지사는 오랜 역사와 황악산의 절경 등으로 인해 사시사철 참배객들의 발길 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 지역의 대표적 명찰이다. 사찰 경내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탑과 석불좌상 등의 오래된 성보 유산을 쉽게 만날 수 있으며, 비로전에서는 1,000위에 달하는 다양한 현세불의 상호를 접할 수 있다. 아울러 성보전시관에 전시된 다양한 유물과 만덕전(萬德殿)의 웅장한 모습을 통해 한국불교의 전통과 생동감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도량이기도 하다.▣ 사찰조경이란 무엇인가?사찰조경이함은 불교적 경관을 만드는 일이라고 볼수 있다. 사찰 조경은 사 찰이라는 특별한 장소에 불교적 이상향적 세계를 장엄하고 불교적 상징성을 구체 적으로 표상 할 수 있는 특수한 경관을 만드는 일이 된다. 따라서 사찰조경에서는 불교사상과 교리를 펼치는데 적합한 입지를 선정하는 일에서부터 그 입지에 적합하도록 건물을 배치하고 외부공간을 엮어 나가는 공간구성에 관한 일 그리고 불교의 상징적 의미를 구현하게 되는 경관요소들을 경관상에 적절하게 도입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이 관여하게 된다. 이렇게 사찰조경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게 되는 사찰의 경관은 여타의 장소에서 일반적인 조경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경관과는 차별화 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사찰조경이 일반적인 조경과는 성립배경부터 다르고 설계원리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찰조경은 종교적 공간에 불교의 우주관 및 세계관을 가식적인 경관으로 표현해야 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조경과는 다른 독특한 접근방법이 있을수밖에 없다.우리나라 사찰조경의 역사는 불교가 전래되었던 삼국시대부터 시작된다. 당시의 사찰조경문화가 우리나라의 조경문화형성에 미친 영향은 심대한 것이었다. 사찰들에서 나타나는 석축기법이나 연못의 조영기법 등을 보나라의 경우 불교전래 초기부터 탑?금당중심형에 이르기까지 사찰은 주로 만다라 도형의 구현을 위한 설꼐원리가 바탕이 되어 형식화되었고 고려 및 조선시대의 산지사찰의 경우에는 수미산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설계원리가 기초가 되었다. 만다라 도형은 일정한 점을 기준으로 하여 일정한 비율을 가지고 외부로 확산하고 내부로 수렴하는 원형과 사각형의 중첩된 형식으로서 이는 주로 평지형 사찰의 공간구성을 위한 설계원리로 적용되기 용이한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편 수미산 구조는 욕계(欲界) 6天의 세계, 색계(色界) 18天의 세계 그리고 무색계(無色界) 4天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이는 대부분 산지사찰의 공간구성과 계층적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설계 원리로 적용되었다.한편, 한국 사찰의 공간구성에는 자연환경과의 조화, 계층적 질서, 공간 상호간의 연계성, 인간척도라고 하는 몇가지 중요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자연환경과의 조화는 사찰이 입지한 터의 조건에 맞도록 공간의 규모와 생김새를 결정하고 축선을 조절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계층적 질서는 지형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공간의 폐쇄도를 조정하고, 건물의 크기와 치장도를 달리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간 상호간의 연계성은 진입과정에서 시각적 계기성을 부여하고, 소단위 공간 상호간의 분절과 중첩효과를 통해서 추구할 수 있었으며, 인간척도는 사찰 각 단위공간 사이의 거리와 공간의 규모를 조절하거나 여러 시점에서 앙각과 시폭각을 인간이 지각하는데 적합하도록 구성함으로써 확보할수 있었다.▣ 경관구성 요소- 지형경관요소한국사찰 특히 산지에 조영된 산지사찰의 경우에는 원래의 지형을 처리한는 것이 사찰조경의 중요한 과정이었다. 지형처리는 주로 석단과 화계 그리고 계단의 형식을 통해서 처리할수 있었는데, 이러한 몇가지 지형처리를 위한 요소들은 한국 사찰의 경관적 정체성을 살피게 만드는 중요한 인자가 되고 있다.(대웅전 앞 계단)- 수경관요소한국의 사찰은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까닭에 수경관 조성서 간략하게 살펴본 바와 같다. 이 시기의 직지사는 신라불교 초전지(初傳地)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갖추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더 이상의 내용은 확인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고려시대 이전까지의 직지사 역사로는 자장 율사(645년)· 천묵 화상(930년)의 중창 기록만 전하고 있을 뿐 인데, 이들 기록 역시 조선시대 사적기에만 실려 있어 역사적 사실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현재 직지사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조물들이 다수 남아있으므로, 직지사는 고려시대 이전까지 꾸준하게 사세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직지사는 고려가 건국되면서 제2의 중흥기를 맞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조 왕건과 능여대사(能如大師)와의 깊은 관계 때문인데, 사적기 자료에 의하면 태조의 지원에 의한 대규모의 직지사 중창이 936년에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태조와 능여 스님의 관계는 일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능여 스님은 역사상 실존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특히 능여암이라는 산내 암자가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능여 스님이 직지사 중창주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지니고 있었다는 사례로 보아야할 것이다. 사적기에는 태조와 능여 스님의 관계가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태조 왕건은 927년 11월 팔공산 동화사 전투에서 견훤에게 대패하고 말았다. 이후 인동(仁同) 지역까지 밀려난 전투에서도 전세가 불리하게 전개되자, 휘하의 두 신하가,“이 근처의 도를 얻은 고승을 만나 적을 이길 수 있는 방책을 묻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하였다. 태조는 신하들의 권유를 받아들였고 근처의 수행자를 물색하던 중 직지사의 능여 조사를 만나게 되었다. 스님은 태조의 청을 받아들여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짚신 2,000여 켤레를 만들어 보내고, 또한 큰 신을 많이 만들어 사방의 중요한 길목에 흩어두었다. 아울러 적을 이길만한 시기를 미리 알려주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도록 하자, 태있었다. 1596년 왜적의 방화로 사찰 대부분이 소실된 것은 직지사 역사에서 가장 시련을 겪었던 시기로 보인다. 하지만 직지사 대중들은 1602년부터 중창 불사를 시작하여 이후 60여 년 간 사찰의 면모를 회복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 나갔으며, 1662년 마침내 중창불사를 회향하게 되었다. 이 때의 중창불사에는 사명 대사의 음덕이 크게 작용하였다. 직지사는 사명 대사의 출가 사찰이었고 스님이 입적하자 1610년 스님의 유골을 이곳에 모셔와 석종형 부도를 조성하여 봉안하기도 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국난극복에 큰 공적을 남긴 서산·사명 대사와 관계된 사찰에 적지 않은 지원을 하고 있었는데, 직지사 역시 이때 조정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7세기 후반 경의 직지사 모습은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의 『산중일기(山中日記)』에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그가 남긴 일기 가운데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직지사에 도착한 다음 문루(門樓)에 올라가 바라보니, 산세가 빙둘러 있어 지형이 낮고 평평하였으나 느슨하고 막힌 듯한 형상은 없었다…(다음날)아침에 국청(國淸) 스님과 함께 사찰을 둘러보니, 규모가 장엄하고 화려하였다. 그곳에 거처하는 승려도 많았다. 그러나 팔상전(八相殿) 이층 누각을 짓느라고 산내의 승도들이 분주하게 역사를 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서전(西殿)의 팔부도(八浮屠)를 보았다. 부도암에 올라가 학조(學祖)의 부도를 보고 명적암에 이르렀다. 또 능여암에 도착하여 덕륜(德倫) 스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운수암에 이르러 수영대사(首映大師)를 만났는데 수영은 곧 도영(道映)을 개호(改號)한 것이다. 만나서 매우 반가웠으며 다과를 준비하여 대접해 주었다…(다음날)…점심을 먹은 뒤에 수영 대사를 작별하고 호계암에 들렀다가 본사에 도착하니, 한참 나무를 끌어서 운반하느라고 많은 사람을 동원하였고 거기에는 깃대가 펄럭이고 북소리도 소란스러웠다. 향로전에서 잠을 잤다.…이 일기는 정시한이 1686년 3월 27일부터 29일 사로전 / 직지사비로전(毘盧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7칸, 옆면 3칸의 규모로, 조선시대 중기에 지어졌으며 1990년대에 중수되었다. 천불전(千佛殿)이라고도 한다.안에는 비로자나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석가여래와 노사나여래가 봉안된 삼신불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삼신불 둘레로 경주 옥석으로 조성한 천불상과 석조 동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응진전 / 직지사응진전(應眞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 의 규모로 1656년(효종 7) 관음전으로 지었다가 뒤에 응진전으로 바뀌었다.안에는 석가여래 삼존좌상을 중심으로 16나한상, 동자상을 봉안하였다.▣ 명부전 / 직지사명부전(冥府殿)은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규모를 하고 있다.안에는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고, 그 주위로 시왕과판관·녹사·사자·인왕 각 2위가 봉안되어 있다.▣ 관음전 / 직지사관음전(觀音殿)은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3칸씩의 규모를 하고 있다.안에는 금동 관음보살좌상을 봉안하였다.▣ 극락전 / 직지사극락전(極樂殿)은 팔작지붕에 앞면 7칸, 옆면 3칸의 규모를 하고 있다.안에는 최근에 조성한 금동 아미타여래 삼존좌상과 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극락전은 지금은 일반인은 못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가보지는 못했지만 극락전을 갈려면은 다리 하나를 건너야 하는데 이는 여기있는 물이 현세와 내세를 구분하는 것으로 다리를 건너가면 극락에 가서 더 이상 현실에 못오는 것을 뜻하고 있다고 한다.▣ 사명각 / 직지사사명각(四溟閣)은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를 하고 있다.안에는 직지사에서 출가하여 30세에 직지사 주지가 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승군을 지휘하여 호국에 앞장섰던 사명 대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대웅전 영산회상탱 / 직지사대웅전에 봉안된 3폭의 후불탱 가운데 중앙에 위치한 영산회상탱으로, 보물 제670-1호로 지정되었다.석가여래가 영축산에서 여러 불·보살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화면 중앙에 석가여래가 앉아 있고 그 양옆으로 팔대보살다.
    자연과학| 2005.06.07| 20페이지| 2,000원| 조회(1,090)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3
3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3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5일 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2:48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