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발명사례20(특허권을 받은 발명품을 중심으로)1. 와토스코리아(주)의 절수형 양변기 부속 발명2. 청풍(주)의 음이온 공기청정기3. 쓰리세븐(주)의 손톱깎이4. 페인타 부부의 왕관 모양의 병뚜껑5. 안철수연구소의 V3(컴퓨터 바이러스 백신)6. 루드의 코카콜라병7. 드라이스의 자전거(대기 오염 없는 교통 수단)8. 파커의 만년필9. (주)다다실업의 스포츠 모자10. 워터맨의 펜촉11. 듀란드의 캔 통조림12. 아서 프라이어의 포스트잇13. 휴그 무어의 종이컵14. (주)HJC의 오토바이 헬멧15. 노벨의 다이너마이트16. (주)게비스코리아의 포도 부산물을 이용한 화장품 '로뎀'17. 윌리스 캐리어의 에어컨18. 하나코비(주)의 LOCK&LOCK19. Cecil Booth의 진공청소기20. Ralph Bear의 비디오 게임 발명1. 와토스코리아(주)의 절수형 양변기 부속 발명i) 발명 동기: 와토스 코리아의 히트 상품인 절수형 양변기 부속 발명은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이 회사 송공석 사장은 96년 한 가정에 애프터서비스를 나갔다가 양변기 물탱크 속에 벽돌을 넣어 물의 사용량을 줄이는 것을 보고 양변기가 필요로 하는 물 사용량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ii) 진행 부분: 조사결과 시중의 양변기가 소변이나 대변을 충분히 수세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물을 많이 낭비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송 사장은 이때부터 쉽게 수위조절이 가능한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연구를 거듭해 나온 제품이 '무소음 필밸브'이다. 이후 부품과 작동에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실험실 외부의 환경에 대해 불순물에 의한 누수나 수압차이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러한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된 '무소음 필밸브'는 설치하기 쉽고 절수 뿐만 아니라 급수시 소리가 적은 제품으로 기존 제품보다 생산가는 30%이상 낮았으나 판매가는 오히려 20%이상 더 받을 수 있는 효자상품이 되었다. '무소음 필밸브'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당껑을 만들어야지.'하고 결심했고 결국 내용물이 변질되어 앓게 된 복통이 그의 발명동기가 된 셈이다.ii) 진행 부분: 그 날 이후부터 그는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시내에 나가 온갖 병뚜껑을 모았다. 남편의 마음을 안 부인도 이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기를 5년. 페인타의 집에는 자그마치 600여 종 3000여 개가 넘는 병뚜껑이 모아졌다. 그는 이 병뚜껑을 분석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사처럼 병 안으로 뚜껑을 돌려 넣어서 막는 나사식 병마개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 나사식 병마개는 소다수나 맥주를 담았을 때 가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페인타는 화가 났다. 그러자 부인이 위로하며 말했다."당신의 나사식 병마개는 훌륭해요. 그렇지만 그것에 문제가 있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면 되잖아요.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것 아니겠어요? 병뚜껑을 병에 모자처럼 씌운 다음 그 둘레를 왕관 모양으로 꽉 찍으면 되잖아요."페인타는 부인이 말한 대로 실험을 해 보았다. 동그랗게 자른 쇠붙이를 병 주둥이에 올려 놓고 그 둘레에 힘을 주어 눌러 보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왕관 모양의 병뚜껑이었다.iii) 결과 부분: 기존의 병뚜껑의 단점을 극복한 이 발명품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5. 안철수연구소의 V3(컴퓨터 바이러스 백신)i) 발명 동기: 의학박사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안철수 사장이 'V3'를 처음 개발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서울대학교 의학대학 박사과정 재학 중 자신의 디스켓이 '브레인'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자 밤을 새우며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 것이 계기가 되었다.ii) 진행 부분: 처음에 브레인 바이러스만을 퇴치할 수 있었던 백신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업그레이드를 거듭해 91년 초 'V3'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V3'는 95년 'V3프로'로 발전했으며 96년 윈도를 지원하는 'V3프로95' 를 거쳐 수차례 업그레이드를 거쳐 현재 'V3프로2002디럭스'로 진보했다. 현재점점 그 매력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자전거는 최첨단 놀이 기구로 다시 자리 잡았을 뿐 아니라, 적어도 단거리에서만은 대기 오염을 전혀 일으키지 않는 무공해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8. 파커의 만년필i) 발명 동기: 파커가 만년필 가게에 취업한 것은 14세 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채 철이 들기도 전에 생활전선에 뛰어든 그는 열심히 일해 4년 뒤에는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이 방면에서 돋보이는 숙련 기술자로 발돋움했다. 당연히 월급도 많이 받게 되었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도 대단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 친구의 말 한마디가 도화선이 돼 파커는 깊은 회의에 빠진다."네가 아무리 만년필 수리를 잘해도 높은 사람이나 부자가 될 수는 없을 거야."파커는 이날부터 출근조차 하지 않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파커의 결근으로 가장 큰 손해를 본 사람은 만년필 가게주인. 몸이 바싹 달아오른 그는 즉시 파커를 찾아가 워터맨의 펜촉발명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순간 소금에 절인 듯 풀이 죽어있던 파커의 얼굴에 활기가 넘쳤다. 주인을 따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출근한 그의 하루하루는 또 다시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때 파커의 머릿속은 이미 '유선형 만년필대' 라는 아이디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무렵은 자동차도 비행기도 모두 유선형이었고 각종 생활용품도 유선형으로 바뀌는 '유선형의 전성시대' 였다. 그는 '만년필대도 유선형으로 만들면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을거야.' 라고 생각하고 곧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ii) 진행 부분: 서둘러 의장출원을 마친 그는 밤마다 날렵한 유선형 만년필대를 만들었다. 판매처는 자신이 일하는 만년필 가게였다. 파커의 생각은 적중했다. 이에 따라 파커는 이내 만년필가게를 그만두고 독립해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오로지 유선형이라는 한 가지 특징 밖에 없었으나 파커의 만년필은 대기업의 제품들을 체치고 그해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iii) 결과 부분: 대개 훌륭한 발명은 양과 질에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불편함을 없애기 위한 한 사람의 단순한 했다. 병조림 대신 캔을 이용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캔통조림을 하면 깨질 염려도 없고 병조림법의 뚜껑 양초가 안으로 흘러들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추운 날에는 그대로 난로에 얹어 데워 먹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ii) 진행 부분: 압연에 의하여 만들어진 얇은 강판을 도금한 주석판을 최초로 만든 것은 영국에서였다. 이것은 가위로 잘라 만든 것 같았는데, 초기에 기능공 한사람이 주석판을 잘라 땜질하여 원통의 캔을 가공하는 것은 하루에 기껏 60개 정도였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쌌다. 기계로 캔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847년부터이다.1860년대 전반에는 더욱 얇은 강판(鋼板)으로 만들게 되었다. 초기의 통조림 발명자는 내용물을 넣어 보존하는 방법만 생각했지 실상 내용물을 끄집어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집 아무데나 있는 함마와 정을 사용하여 캔의 상부를 잘라서 사용했는데, 미국의 윌리암 W 라이만이 1870년에 캔오프너를 발명함으로써 캔이 정상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의 영국에서는, 특히 빅토리아 여왕시대(1819~1901)에는 주석캔(Tinned Can)이 중요한 무역상품으로 성장산업이 되었다. 이 캔에 아름다운 그림을 인쇄한 과자 용기나 해외에 캔으로 보낼 수 있는 신선한 음식물이 많이 나왔다.영국의 통조림 기술은 19세기 전반 무렵 미국으로 전파되었는데 1817년에 영국에서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한 윌리암 언더우드(William Underwood)는 1820년 미국 최초의 통조림산업을 기업화 시켰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식품을 캔으로 보존하는 형태는 영국이민자 Thomas A. Kennsett와 1819년 뉴욕에서 파트너십을 이룬 그의 양아버지인 영국이민자 Ezra Daggett에 의해서였다. 미국의 통조림산업은 남북전쟁(1861~1865)을 계기로 크게 발전했다.iii) 결과 부분: 캔 통조림은 인류 식생활 개선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고 지금도 우리의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제품이 되었다.12. 처음에는 호기심 많은 소수의 소비자층에게만 팔렸지만 점차 소비자층도 확대되었다. 그러던 가운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는 말처럼, 휴그 무어에게 뜻밖의 엄청난 행운까지 겹쳤다. 민간보건연구소에서 연구에만 전념하던 사무엘 크럼빈 박사가 휴그 무어의 종이컵을 다시 위대한 발명으로 못박는 연구를 발표했던 것이다. 그는 '인간을 바이러스로부터 구하는 길은 오직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라고 강조하였고 그 뒤 엄청난 호응을 얻으며 종이컵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휴그 무어의 종이컵은 광고 한번 없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iii) 결과 부분: 종이컵으로 큰돈을 모으게 된 휴그 무어는 다시 1920년 아이스크림을 담을 수 있는 일회용 종이그릇을 발명했다. 그리하여 휴그 무어는 종이 그릇 발명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14. (주)HJC의 오토바이 헬멧i) 발명 동기: 오토바이 헬멧은 화려한 색상과 날렵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는 오토바이의 스피디한 감각을 더욱 높여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HJC의 홍 회장은 튼튼하면서도 뚜렷한 이미지의 차별화한 헬멧 제조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그 결과 원색을 사용한 화려한 색상은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더욱 강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또한 야마하, 혼다, 스즈키, 할리데이비슨 등 세계 주요 오토바이 색상에 맞춰 다양한 색상의 제품을 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ii) 진행 과정: HJC는 헬멧의 디자인을 유체 역학적으로 만들어 공기 저항을 덜 받으면서도 날렵한 이미지를 갖도록 상품기획을 끝냈다. 또한 다른 헬멧보다 시야도 훨씬 넓고 사용자의 안전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헬멧 내부의 탁한 공기가 빨리 배출될 수 있도록 특수 설계에 들어갔다. 여기에다 세계 각국 인종의 표준 머리모양과 크기를 분석해 다양한 모양의 제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iii) 결과 부분: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해외 여러 곳의 까다롭기로 유명한 규격심사를 통과하는 등의 선진 각국의 산업 공인 규격을 획득할.
영화 를 보고-행정 전자화 사회와 인권에 대하여흔히들 정보화 사회라고 하면 편하고, 빠르고, 기술적인 측면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쉴 틈 없이 국가 전반에 걸쳐서 정보화를 추진해 왔으며 특히나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행정 은 선두를 달려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화를 통한 발빠른 행정업무는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시간적, 경제적 이득으로 이어졌고 이에 개인은 기꺼이 자신의 정보를 행정에 노출시켜 왔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추세 속에서 국가 기관이 국가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정보를 마음대로 수집하고, 심지어 사생활 감시까지 정당화되는 시기가 올 것인가? 이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는 그러한 의문점에 대하여 그 가능성을 예견한다.이 영화는 변호사 딘(윌 스미스)이 자신이 맡은 노조 관련 사건의 의뢰인을 위해 마피아 보스와의 위험한 협상을 하는 도중 우연히 안보국의 레이놀즈의 음모가 수록된 비디오 테잎을 얻게 된 대학 동창 다니엘과 마주치면서 시작된다. 국가안전보장국NSA나 여타 국가의 비밀 정보 기구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는 다니엘의 테이프를 떠밀리듯 갖게 되고 이 시점으로부터 그는 안보국으로부터 각종 감시를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변호과정에 도움을 주어왔던 정보제공자인 브릴을 알게 되고 테잎에서 NSA의 감청 및 도청 행위를 법적으로 승인하자는 법안에 강력하게 반대해 온 필을 살해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는 딘과 국가 공권력을 이용하여 개인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안보국간의 쫓고 쫓기는 장면이 계속 된다.결국은 마피아와 안보국 음모론자들을 소탕하고 해피엔딩으로 결말지어지지만 자신을 지켜내는 과정에서 한 때 사랑했던 여자를 잃고 마는 줄거리는 이 정보화 시대 속에서 생존을 위해 개인이 감당해야만 하는 아픔을 보여준다.이 영화가 수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현실가능성이다. 과대망상에 가까운 허구적인 도구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GPS시스템, CCTV, 휴대폰 도청 등의 설정만으로 정보화 사회의 공포를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 점이 주목할 만하다. 영화 중간 중간 정보화 매체인 컴퓨터를 이용한 추적과정은 믿기 힘들 정도로 정확하고 세밀한데 위성의 실시간 감시 시스템으로 주인공의 모습 뿐 아니라 그가 접촉하는 모든 주변인의 신상정보(직장, 신용카드거래, 통화내역)는 안보국의 컴퓨터만으로 조회뿐만 아니라 악용이 가능하다. 이러한 모든 일련의 일들이 지금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속에서만 있는 일인가? 그 대답은 'NO'이다. 행정이 공권력을 무기로 개인의 정보를 캐내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마치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우리 사회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요소가 되어 있다. 개인의 정보는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고 마치 행정정보화의 필연적 현상으로 치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정보 브로커 브릴은 어떻게 보면 딘의 구세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딘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타인의 정보를 캐내어 팔아온 정보화 시대에 있어서는 안 될 악인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러한 사회의 약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의 덫 서평책 세계화의 덫 은 주요골자인 20 대 80의 사회 를 비롯하여 총 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화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과 앞으로 세계화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유럽식 사고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저자인 한스 피터 마르틴과 하랄드 슈만은 세계화가 진정 경제적으로 모든 국가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길인지,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 이 책을 통해 날카로운 의문을 던진다. 범지구적인 세계화에 동참하는 것은 이미 어느 국가도 피할 수 없는 의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고 세계화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는 마치 후진국처럼 여겨지는 가운데, 사회적 압력 속에서 단지 거대한 세계 시장 속에 뛰어들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발상에 대하여 그들은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실제로 세계화가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거나 다양한 문화를 창출해 낸다거나, 혹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어 국가를 복지가 충만한 선진사회로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과거 유토피아적인 생각은 현실적으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세계화에의 동참 속에서 일자리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세계화 선도주의자들의 말과는 달리 기술발전으로 노동인구가 필요 없어져 노동시장은 점점 축소되고 있고, 천편일률적인 스크리치(skrietsch) 문화 속에서 우리는 문화 제국주의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시장자유주의의 논리는 기업으로 하여금 자본이익에만 신경 쓰게 만들었으며 성장에도 기여하였지만 빈부의 폭을 넓혀 놓기도 하였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기에도 바쁜 그들에게 사회적 형평과 복지를 위해 힘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이런 사회 현실 속에서 감당하지도 못할 복지 문제는 굳이 들먹일 필요가 없어졌다. 즉, 이 책은 세계화가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윈윈게임적 허상을 버리게 만든다.세계화로 인해 경제가 정치를 집어삼켜 버린다는 주장 또한 상당히 신빙성이 있었다. 세계시장의 상품과 자본의 흐름은 범지구적으로 자유로운데 그 조절과 통제는 개별 민족국가 차원에 국한되어 있는 소위 무정부상태이기 때문에 각국 정부나 국가 기구들은 자기 나라의 경제, 사회, 문화적 차원을 넘어서 정치적 힘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의 국제화 를 위한 원만한 국제적 협력관계를 주창하지만 실제 협력은 조직 범죄나 자본주의 기업 사이에서나 이루어지고 있을 뿐 정치적 영역에서 그 성과는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결국 범지구화된 경제적 관련성은 국가 없는 시장 만을 남겨두었다. 시장과 국가 사이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온 것이다. 세계화를 통해 각국의 기업이익을 높여서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다 보면 세계화에의 적응 속의 또 다른 경쟁 만을 야기시켜 결국은 민주주의적 사회구조마저 파괴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진정 세계화 를 무턱대고 추진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과연 시장자유주의(소수가 부를 장악하는 사회)의 논리와 민주주의(국민의 정치에의 참여 확대 차원)가 양립할 수는 있는 것일까? 만일 자유시장과 민주주의가 함께 발전한다면 부유한 계층과 빈곤한 계층 사이의 의견충돌은 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엄청난 갈등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어느 한쪽만의 발달도 서로에게 해가 되기는 마찬가지이다.오늘날 우리는 경쟁적 세계화로 인해 공동체가 되기보다는 제각기 경쟁하는 집단들만 팽배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급속한 세계화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과 빠른 템포의 터보-자본주의 의 등장이 20 대 80의 사회를 부추기고 있으며 오늘날의 이러한 역동적인 구조전환은 사람들에게 너무 과도한 짐을 지우고 있다. 매우 다양하게 진행되면서도 결코 동일한 속도로 진행되지 않는 세계의 변화과정이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들고 있어 결국에는 긴장과 갈등상태의 야기와 함께 민주주의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10가지의 유럽적 대안(민주적이고 행동력 있는 새로운 유럽연합의 건설, 시민사회의 강화 및 범유럽적 확대, 유럽 화폐의 통일적 완성, 유럽연합 차원의 세금관계 입법화, 외환거래 및 비유럽계 은행 대출에 대한 영업세(토빈세)징수,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세계무역의 최소 표준 설정, 유럽 차원의 생태계 보전을 위한 세제 개혁, 유럽 차원의 사치세 도입, 유럽 차원의 노동조합 건설과 활동, 시민과 노동자의 안정된 생활을 위협하는 탈규제 정책의 금지)을 제시하고 있는데 실상 몇몇 대안들이 우리와는 좀 멀게 느껴지기 때문에 책에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것을 유럽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판단해 놓았기 때문에 유럽 외 타 국가와의 협력방안을 좀 더 추가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한다. 세계화를 함께 겪고 바라보는 과정에서 아시아를 포함 다른 국가와의 협력방안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면 세계화로 인한 경제문제나 환경문제에 대하여 각국에게 좀 더 보편적인 문제의식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 정치학의 이해정치적 현실의 구축 또는 해체- 노무현 탄핵사태에 관하여1. 사건의 개요2004년 1월 5일 새천년민주당의 조순형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면서 본격화된 탄핵은, 같은 해 3월 5일 대통령이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측근비리 등에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하지 않을 경우, 새천년민주당은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는 특별기자회견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대통령이 사과를 거부하자, 3월 9일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공동으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3월 11일 오후 탄핵소추안이 처음으로 국회에 상정되었으나, 열린우리당의 물리적 저지로 무산되었다. 3월 12일 새벽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진입해 여야 의원들의 대치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박관용 국회의장이 국회 경위들과 함께 본회의장에 들어와 경호권을 발동하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물리적 저지를 막았다. 이어 곧바로 탄핵소추안을 상정해 제안 설명도 유인물로 대체한 채 무기명 투표에 들어갔다.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등 투표에 참석한 195명의 야당 의원들 가운데 193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기습적으로 가결된 뒤, 헌법재판소에 소추의결서가 접수되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동시에 야당에 대한 전 국민적인 질타가 쏟아졌고, 전국 각지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잇따랐다. 각종 시민단체들은 탄핵소추안 가결을 야 3당의 쿠데타, 3 12쿠데타로 규정하고 탄핵안 철회운동에 돌입하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 단체들도 탄핵철회 촉구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전국이 탄핵사태로 들끓었다. 탄핵안 가결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는 4월 15일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총선거에까지 이어져 열린우리당이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하고, 한나라당은 121석밖에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새천년민주당은 9석, 자유민주연합은 4석을 얻었다. 탄핵의결서가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뒤, 평균 주 2회씩 7번의 공개변론과 10회에 가까운 평의를 개최하는 등 집중적인 심리가 진행되었다. 대통령에 대한 증인신문은 기각되었고, 4월 30일 최후 변론이 종결된 뒤 헌법재판소는 2주일 동안의 집중 평의를 거쳐 결정문 작성에 들어갔다. 5월 14일 마침내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두 달 동안 계속된 대통령의 권한정지는 자동적으로 해소되고, 탄핵사태는 종결되었다.2. 사건의 주요 행위자와 대상사건의 주요 행위자는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등의 정당이라 할 수 있고 대상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다만,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언론(신문, 시사프로)과 시민단체, 노사모, 변호사 단체, 그리고 국민 등이 개입되었다.3. 표면상 드러난 정치적 목적대통령 탄핵 사건의 표면상 드러난 목적은 한마디로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지켜야 할 원칙을 지키지 않았음은 물론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져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물러나라는 것이었다.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탄핵 사유에 대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 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대통령 지위 및 헌법상 보장된 재직 중에는 형사소추 제한의 취지를 고려할 때 헌법의 기본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를 하는 등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행위를 하였을 때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헌데 한민련이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던 이유는 위에 언급한 헌법의 내용과는 부합되지 않는 다음 세 가지였다. 민생(경제)파탄, 측근비리, 선거중립위반이 그것이다. 국민경제를 파탄시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힘들고, 대통령 측근들의 권력형 부정부패는 대통령의 직무집행 과의 관련성이 모호하다. 선거중립위반이 인정이 될 수 있지만 대통령이 기자회견 중 질문에 수동적으로 답변하는 과정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을 가리켜 탄핵 사유에 해당할 정도의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반한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기자회견 발언과 관련하여 선관위 권고문을 멋대로 왜곡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말이 되건 안 되건 지난 일들까지 총 동원해서 과대 포장하여 탄핵을 강행한 것은 사실상 트집 잡을 기회만 엿보았다 뿐이지 실질적인 탄핵의 사유는 될 수 없었다. 이렇게 보면 위 야당들이 주장했던 대통령 탄핵 사유는 법리적으로 근거가 부족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4. 사건의 실질적 목적그렇다면 왜 한민련은 무리하게 대통령 탄핵 사태를 추진하였을까? 이 사건에는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민련의 정치적 목적이 숨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새천년민주당의 경우 노무현을 따르는 열린우리당이 분당해 나간 뒤 당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탄핵에 모든 것을 거는 위험을 감수했다고 볼 수 있다. 한 정치인 개인에 의해 지배되는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새천년민주당은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수단을 사용한 것 같다. 특히 수도권의 젊은 유권자들이 탄핵 전에 이미 새천년민주당을 버렸기 때문에 한나라당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탄핵의결에 앞장섰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당시 다가오는 제17대 국회의원총선거에서는 돈 선거, 조직 선거가 거의 불가능하여(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신고 시 신고자에게 지급되는 포상제도가 어마어마하였다고 한다.) 그들에게 치명타가 되었기 때문에 탄핵에 대한 결심을 확고히 했던 것 같다. 이미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이 제도를 내놓고 반대할 수 없고, 그대로 따르자니 정치 활동을 완전히 박탈당하게 생겼으니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진행되고 있는 총선을 향한 일정을 중단시키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정을 바꾸어서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상황을 바꾸는 길이 시급했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 그동안은 정국에서 국회가 다수라서 대통령을 멋대로 흔들 수 있었지만, 아무리 국회가 다수라고 해도 그들은 이미 임기가 끝나다시피 한 말년이고 또 총선에 대한 전반적인 행정적, 사법적 권한은 온전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에게 있었기 때문에 공명선거에 대한 국민적 의식이 전에 없이 높은 상황과, 지난 한 해 대선 자금 수사에서 자신의 수족까지 과감하게 잘라내는 노대통령의 의지가 확연히 확인된 만큼 총선을 자신들의 계획대로 이끌어 갈 자신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행정부의 기능을 꺾어 버리고 자신들의 통제권 하에 둘 수 있도록 행정부의 전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을 기능 정지시킬 방도를 생각해 낸 것이다. 탄핵소추의 주요 사유로 거론된 선거법 위반 운운 하는 선관위 권고문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나라 경제가 어렵다는 둥, 이미 발족한 특검의 수사 만료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측근비리 문제를 들먹이면서 이런 저런 말도 안 되는 문제까지 다 포함해 탄핵을 거론했던 것은 사안을 복잡다양하게 얽어놓고 헌재의 심리 기간을 최대한 길게 가도록 만들겠다는 술수를 바탕에 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5. 목적달성을 위한 주요 행위자의 수단목적달성을 위해 한민련이 최후로 꺼낸 카드는 지금까지 거론해 온 대통령 탄핵 강행이다. 한민련은 탄핵 의결을 강행하여 대통령이라는 구심점을 권부 밖으로 일시 밀어내버리면 자신들의 정치를 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대통령 탄핵 건이 헌재에서 어떤 식으로 결정이 날 것인가 하는 부분은 애초부터 관심 밖의 대상이었으며 헌재와 관련하여 그들이 유일하게 눈여겨 본 부분은 어떻게 그것을 헌법에 보장된 최장 6개월까지 끌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6개월이라는 권력의 공백기를 구축하기 위해 대통령 탄핵을 그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더 구체적인 수단은 한민련이라는 수구세력의 결집, 혹은 거대야당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6. 나의 의견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 선고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이것이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보다 먼저 어떻게 정당이 감히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자기들 이익을 위해 탄핵의결 할 수 있었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무시한 여론에 의해 탄핵이 실패했다는 것에서 그들도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다.
주제: 금으로 빚어진 동상 만들기학과:학번:이름:* 박물관에 안치된 금으로 빚어진 듯한 동상을 만들어 보자!#1. 우선 포토샵을 열고 인터넷에서 찾은 동상의 이미지 파일이나 직접 찍은 동상의 사진을 불러옵니다. 저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이용하겠습니다. 불러온 후에는 사진을 포토샵 창 크기에 맞추기 위해 손바닥 툴을 더블 클릭해 줍니다.#2. 사진에서 동상을 바치고 있는 회색 받침대가 비뚤어져 있는데다 비석의 색과 글씨마저 흐리므로 이를 보정하겠습니다. 다각형 올가미 툴로 보기와 같이 선택영역을 만들어준 후 Ctrl+c를 누른 후 Ctrl+v를 눌러줍니다. 새로운 레이어가 생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을 받침대로 고쳐줍니다. (이름을 고치려면 layer 1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을 더블클릭해 주면 됩니다.){#3. 우선 받침대의 크기를 보정하기 위해 Ctrl을 누르고 받침대 레이어를 클릭합니다. 받침대가 선택영역으로 나타납니다. 이 때 Edit의 Free Transform (Ctrl+t)을 클릭해 줍니다. 그리고 조절점을 움직이며 크기를 좀 크게 합니다. Ctrl을 누른 채 조절점을 드래그 해 주면 비뚤어진 면도 보기와 같이 똑바로 세워 줄 수가 있습니다. Enter를 쳐서 보정한 부분을 확인합니다.{#4. 이제 색깔을 보정해 보겠습니다. 선택영역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이 상태에서 Image-Adjustment-Curve로 사진처럼 곡선을 움직여 가며 글씨를 선명하게 해 줍니다. 글씨와 받침대가 적당히 선명해지면 OK를 누릅니다. 그리고 Select-Deselect 를 하여 받침대 선택영역을 해제합니다.{#5. 받침대의 크기와 글씨는 보정이 됐는데 받침대의 중간에 가로로 그어진 줄이 보기 흉합니다. 다각형 올가미 툴로 잡티 줄 부분을 선택영역으로 합니다. 선택영역이 나타나면 패치툴을 클릭하고 그 선택한 영역을 줄이 없는 돌의 아랫부분으로 드래그 하여 옮겨 줍니다. 줄이 있던 부분이 옮긴 부분(돌의 아랫부분)과 똑같은 모양으로 채워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6. 다음 Background 레이어를 클릭하고 crate a new layer 로 드래그 하여 Background copy 레이어를 만듭니다.(동상영역만을 선택해 복사해 두기 위함입니다.) Background copy레이어가 선택된 상태에서 자석 올가미 툴로 동상을 선택영역으로 만들어 줍니다. 세밀하게 하기 위해 돋보기 툴을 사용해 사진을 확대한 후 자석 올가미 툴을 사용해도 좋습니다.{#7. 이제 이 선택된 영역만이 그려진 레이어를 만들겠습니다. Ctrl+c를 누른 후 다시 Ctrl+v를 누르면 새로운 동상만이 그려진 레이어가 나타납니다. 이 레이어의 이름을 동상으로 고쳐 줍니다.#8. 이제 이 동상을 금빛으로 해 줄 차례입니다. 동상만을 선택하기 위해 컨트롤을 누르고 동상 레이어를 클릭 해 줍니다. (그냥 레이어만을 선택하면 컬러레인지 툴에서 동상만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럼 동상만이 선택영역으로 나타납니다. 이 상태에서 Select-Color Range를 엽니다. 금의 빛나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흰 색을 넣어주기 위함입니다. 상태창이 나타나면 Fuziness를 96으로 해주고 원본사진에서 마우스로 동상의 가장 밝은 부분(팔뚝부분)을 클릭해 줍니다. 그러면 상태창에 비슷한 색깔부분이 하얗게 나타납니다. OK를 눌러 실행하면 그 밝은 부분만이 선택영역으로 나타납니다.#9. 이제 배경색을 흰색으로 바꾼 후 Ctrl+Delete를 눌러 선택부분이 하얗게 채워지도록 합니다. 그 다음 Select-Deselect를 눌러 선택영역을 해제합니다. 선택한 밝은 부분은 모두 흰색으로 채워졌습니다.{#10. 다시 Ctrl을 누른 채 동상레이어를 클릭하여 동상을 선택영역으로 만듭니다. Image-Adjustment-Hue/Saturation를 클릭해 주고 상태창이 나타나면 Colorize에 체크를 하고 Hue 61 Saturation 80 Lightness15 정도로 맞춰줍니다. 동상이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금빛을 띱니다. OK를 눌러 실행합니다.{#11. 더 실감나는 금동상을 위해 동상영역이 선택된 채로 Image - Adjustment - Curves를 클릭하여 굴곡을 주면서 이미지를 더 선명하게 만듭니다. OK를 눌러 실행합니다. 그리고 Image-Adjustment-Levels를 클릭하여 삼각형 슬라이드를 움직여가며 밝기를 조절해 줍니다. OK를 눌러 실행합니다. (또한 Image-Adjustment-Variations로도 노란색을 부각시켜 금의 이미지를 더욱 실감나게 해줄 수 있습니다.){{#12. 금동상이기 때문에 빛나는 느낌을 주어 보겠습니다. 금동상 영역을 선택한 채 Layer-Layer Style-Outer Glow 항목을 선택하여 Spread 와 Size로 빛나는 양을 조절해 준 후 OK를 눌러 실행해 줍니다. 동상에 빛이 나면서 경계가 부드러워 집니다. Select-Deselect를 하여 선택 동상 영역을 해제합니다.{#13. 다음 Background copy레이어를 선택한 채 레이어 창 가장 밑부분에 나열되어 있는 아이콘 중 Create new fill or adjustment layer 아이콘( 레이어창 아랫줄 끝에서 세 번째 아이콘)을 클릭하고 Gradient를 클릭합니다. Gradient 레이어는 동상과 받침대 아래 생기므로 동상과 받침대에는 Gradient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Gradient Fill창이 나타나면 Gradient 색상 부분을 클릭합니다. Gradient Editor 대화상자가 나타나면 Brown 계열의 Copper를 선택한 후 슬라이드를 옮겨 알맞게 색을 선택한 후 OK를 누릅니다. (자신이 색을 추가하고 싶을 경우 삼각 슬라이더의 네모난 부분을 더블 클릭하여 Color Picker 대화상자에서 색을 선택해주면 됩니다.) Gradient Fill 대화상자도 OK를 눌러 실행합니다.{#14. 이제 배경을 박물관처럼 바꿔 보겠습니다. 새로운 레이어를 만들어(새로운 레이어 만들기는 레이어 상태 창의 맨 밑의 아이콘들 중 끝에서 두 번째에 있습니다.) 이름을 타일로 바꿉니다. 전경색을 검은 색으로 바꾸고 Alt+Delete를 눌러 레이어를 검은색으로 채웁니다. 타일 레이어는 역시 동상과 받침대 레이어 아래 생성되어 있습니다.#15. Filter-Texture-Texturizer항목을 선택합니다. Texture 부분을 Burlap 으로 변경한 뒤 Scaling-130 Relief-5 Light Direction-Top으로 설정한 후 OK를 눌러줍니다. 이번에는 Filter-Texure-Mosaic Tiles 항목을 선택하고 보기와 같이 설정합니다. OK를 눌러 실행합니다.{#16. 이제 레이어 창으로 돌아와서 레이어 모드를 Screen으로 고쳐주고 Opacity 50 Fill 70정도로 수정해줍니다. 배경색과 타일들이 함께 조화를 이룹니다.#17. 이번에는 배경에 렌즈 플레어를 설치해 보겠습니다. 박물관의 조명과 같은 효과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 새로 레이어를 추가한 뒤 이름을 렌즈라고 넣습니다. 전경색이 검정색으로 되어 있는지 확인한 후 Alt+Delete 로 레이어를 검정색으로 채운 뒤 Filter-Render-Lens Flare 항목을 선택하여 설정창이 나타나면 라이트니스 131정도로 하고 마우스로 Flare의 위치를 정해줍니다. 적당히 정해주고 OK를 클릭합니다. (참고그림)#18. 렌즈 레이어로 돌아와서 레이어 모드를 Screen으로 변경해 주면 원래 배경과 조명이 합쳐집니다. 더 실감나는 조명효과를 내기 위해 Filter-Render-Lightning effet로 빛의 양과 방향을 조절합니다. (참고그림)#19.. 이제 그림자를 만들겠습니다. 그림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상과 받침대 레이어가 합쳐져 있어야 합니다. (동상과 받침대의 그림자를 동시에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림처럼 동상에 클립표시로 링크를 걸고 받침대 레이어를 클릭해 놓은채 옵션버튼(그림의 동그라미 친 부분)을 눌러 Merge Linked를 실행하여 두 레이어를 합칩니다. 합쳐진 레이어의 이름을 사물로 고칩니다. Ctrl을 누른 채 사물 레이어를 클릭하여 동상 전체를 선택영역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