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학교사회는 탈학교화가 이루어진 "공환적 사회"를 의미하며, 일리치는 현대 산업사회가 지닌 비인간화, 물량주의, 소외문제, 빈부격차문제들이 원천적으로 학교제도에 기인 한다고 보면서 인간사회가 친화주의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탈학교화"가 필요하다고 1970년대 일리치와 라이머가 주장하였다.나는 여기에서 의미하는 "탈학교사회"란, 단순히 사회에서 "학교"를 없에는 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탈학교화를 지향하는 사회"를 의미한다고 본다.즉,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제거 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벗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지금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신성한 자극은 일리치와 라이머는 학교존재를 정면으로 문제제기 하면서 탈학교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하였고 , 그에 주장은 학교 개혁이 아니라 학교 자체의 폐지를 주장했기에 독창적이였으며, 국가적 차원의 공교육에 대해 철패를 주장 했다는점에서 무정부주의의 깃발을 둔 점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무정부주의적 그의 사상이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탈학교론이 자본주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것을뛰어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받고있는 교육이 문제점이 있지만 그래도 그에 따른장점도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그 장점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탈학교론이 빛 바랜 교육론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서 탈학교론자 주장은 현대사회의 제도권 학교가 가지고 있는 모순점, 불평등성, 비인간적인 측면을 공격함으로써 인간적인 학교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 기여했지만 그들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단적인것이다. 따라서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단순히 탈학교론은 학교를 완전히 폐지하자고하는 주장이라기 보다 학교교육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야한다는 뜻으로 보아야 된다고 생각이 든다나는 이 책이 1970년대 발간되었지만 지금 한국 교육에 문제점을 알려주는 예견서 처럼 보인다. 그 예로, 공교육의 붕괴에 따른 사교육의 발단, 한번의 시험으로 차후 인생을 좌우하는 수능의 모순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같은 반을 쓰고 있지만 동료애 보다 왕따가 대두되는현실을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리치가 탈학교사회를 주장하는 시대적 상황이 당시 미국 교육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지만 미국의 산업 발전에 자극을 받은 전세계가 미국과 같은국민교육제도로써 학교를 도입하여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그와 더불어 산업을 발전 시키는 동력이 됐지만 미래사회에 빛과 그림자를 함께 가져온 교육이다. 더더욱 문제점은 아직도 미국도 이 문제에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