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 (性) SEX :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cf) 섹슈얼리티 강의-저자: 한국 성폭력 상담소 中“ 섹스란 생물학적 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질론 적 관점에서 보는 성을 말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성적 욕망 이란 자연적으로 내재된 본능을 말하며 성의 개념은 남녀의 성기 결합과 같은 신체에 한정된다. 생물학적 인 성의 관점에서는 생물학적인 성차가 남성과 여성의 성차를 만들어 내고 그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성이 다르게 결정된다고 한다. 남녀의 성기 구조나 생식 능력의 차이에 따라 남성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며 주도권적인 특성을 갖게 되며, 여성은 수동적이며 유약한 특성을 갖게 된다. 이러한 성별 정체성은 다시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능력이나 기능에도 차이가 생기게 하여 남성은 공격적이고 주도적인 성행위를 하게하고 여성은 수동적이며 남성의 성적인 대상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즉 생물학적 성이 성별, 섹슈얼리티를 결정하여 sex - gender - sexuality 가 정합성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여성 - 여성성 - 여성적인 성의 연결 고리는 자연적인 섭리에 따라 결정된 것이므로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에 도전하는 어떠한 일체의 노력도 자연에 거스르는 것으로 간주한다. 결국 이러한 입장은 기존의 성기 중심적이고 이성애 중심적이며 남성 중심적인 성문화를 지속시킨다.“2. 성별 Gender : 사회 문화적으로 학습된 성cf) 섹슈얼리티 강의-저자: 한국 성폭력 상담소 中“ 성별이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남녀의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젠더란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다. 즉 생물학적인 성과 사회적인 성별은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성별을 생물학적 차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애서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사회적으로 부과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이러한 입장은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별은 관계가 없을지라도 g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구도로 분석하는 데서 나아가 다양한 성적 억압과 여성의 성을 연계시켜 분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페미니즘은 섹슈얼리티의 관점을 여성 억압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페미니즘에 유용한 것을 수용하여 새로운 이론과 정치학을 생산해야 할 것이다. 이제 향후 페미니즘의 성 연구는 여성들의 성적 억압의 차이를 드러내야 하고 여성들의 성적 쾌락을 다루어 성적 주체성 (agency)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4. 여성학 이론의 흐름a. 페미니즘 (1)('여성'이라는 뜻의 라틴어 femina에서 유래)남녀는 평등하며 본질적으로 가치가 동등하다는 이념생물학적인 성(性)으로 인한 모든 차별을 부정하며 남녀평등을 지지하는 믿음에 근거를 두고,불평등하게 부여된 여성의 지위·역할에 변화를 일으키려는 여성운동이다.페미니즘은 여성들의 권리 회복을 위한 운동을 가리키는 말로 189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사회현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이나 관점, 세계관이나 이념이기도 하다.여성 억압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고 여성 해방을 위한 전략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페미니즘은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급진주의· 사회주의 등여러 사상이나 이론에 의해 뒷받침되거나 더불어 발전했다.1960년대부터 현대의 페미니즘을 지칭해 '여성 해방 운동'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어 쓰이기 시작했다.페미니즘이 권리와 평등의 개념을 사용하여 사회를 정적으로 보는 관점이었다면,여성 해방 운동은 억압과 해방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사회를 더욱 역동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Feminism이라는 편파적인 용어에서 오는 저항감을 없애기 위해영어권에서는 이 용어의 대안적 입장으로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사회적인 성을 나타내는 gender라는 단어를 사용하여gender studies (성 연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b. 페미니즘 (2)여성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 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여성든 간에 여성에게도 모든 가능성을 갖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하나의 고립된 사상이었던 페미니즘은 20세기에 들어 대중적이고 실천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1960-1970년대는 페미니즘이 확산되면서, 특히 서구에서 여성의 지위에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여성의 행복이나 진정한 해방에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유명한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에서 그녀는 여성들에게 슈퍼우면이 되기를 요구하였다.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부르주아 백인여성을 대상으로 하여 국한되었다는 점과 성적 차이를 전적으로 환경적인 것으로 돌리고 동시에 남성적인 가치에 대해 우월성을 부였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또한 성별을 구별하는 페미니즘보다 성별에 중립적인 인본주의를 도모한 것이었다.하지만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제도적이고 법적인 성차별을 점진적으로 폐지해 나감으로써여성의 법적 지위를 높이는데 기여하였고 의식개혁운동을 대중적으로 확산하는데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e.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Maxist feminism)자본주의 사회 구조가 여성 억압의 기본계급: 여성 억압과 종속을 설명하는 변수여성 종속의 기원 --> 사유 재산제의 도입 - Engels " 국가. 사유재산. 가족의 기원 ““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 ” - k.max여성의 일이 여성의 사고, 여성의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믿음.또한 사회주의 혁명이 이루어지면 전체 사회의 계급 갈등은 해소, 여성 억압도 사라질 것이라고 봄.* 가족 제도와 자본주의 연관성기존의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는 남성이 가족을 통제하기 때문에 여성은 아내로서 남편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음.--> 가사 노동의 사회화, 여성의 공적 노동의 참여* 비판점자본에 의한 여성 억압과 여성 종속만을 설명함으로써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이라는, 성차에 의한 억압은 간과하고 있음.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여전히 가부장적 가족과 성별 불평등이 존재함을 설명하지 못함.여성의 공적 노동 투입이 여성의 행복권 추구의 관점이라기보다는 사회주의 혁명의 수단으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 ”여성의 타자 성 ( the other ) 주목가장 최근에 등장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여성억압의 요인을 단일한 요소로 설명하려고 하거나 구조화된 것으로 설명하는 접근을 비판하고여성이라는 범주가 남성과 대비되는 이원화된 구조를 상정하고 있다고 하면서 '해체'를 강조한다.여성의 보편적 특성은 없으며, 지위 경제조건, 정치상황, 문화 이데올로기 등의 맥락에서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이론 자체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대중화가 어렵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으며,여성성, 여성범주의 해체 전략이 종국에 가서는 여성 집단을 부정하게 될 때여성문제 해결의 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하는 딜레마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i. 정신 분석학적 페미니즘이리가라이 ( irigaray ) 식수 (cixous)여성성 탐구, 성정체성, 여성 문화“차이”(다양성) 에 주목.성 차 여성들 간의 차이.정신분석학이 페미니즘에 도입되면서 여성해방에 관한 논의는 더욱 차원이 높아지게 되었다.이들은 여성억압의 요인을 구조적 접근보다는 개인의 심리상태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해서 찾으려 하였다. 즉, 여성성이 어떠한 심리 기제에 의해서 형성되어 왔으며어떤 과정을 거쳐 내면화 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치중한 것이다.대표적인 연구자로 초 드로우와 디너슈타인을 들 수 있는데이들은 여성과 남성이 다른 심성을 갖는 근원은 여성의 체험(삶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이에 따른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으로 양육의 부모 공동부담을 주장하면서남성과 여성이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다름에서 시작해서 여성문제에 접근하였다.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의 요인을 개인의 심리구조에서 찾으려 함으로써문제의 원인을 남성과 여성간의 인성차이에 돌려 버렸다는데 비판을 받는다. 그러한 차이를 가져오는 성별 분업에 기초한 가족구조, 사회제도 등에서의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파악되는 것이다.하지만 이들은 여성문제를 보는 영역과 실천적 전략의 범위를 넓혀 보려는 발상의 전환을 보내는 역할. 여성 노동력이 배제되는 현상)cf) 가족 임금 (家族 賃金 / family wage)한 개인의 개별 노동력에 대한 임금 + 가족의 최저생계비를 위한 지불여성 노동자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최저 생계비를 지불한다.그러나 여성들은 자신의 몫으로 임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가족 임금 (家族 賃金 / family wage)남성을 생계 부양자로 가정하고남성에게 가족 전체의 생계를 위한 임금을 지불하는(또는 지불해야 한다는) 제도나 의식.흔히 남성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족 임금을 벌어야 하는 생계 부양자로 여겨지고,여성은 가사와 육아의 일차적 책임을 지는 가사 담당자로 여겨진다.그러나 남성의 가족 임금만으로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가구가 많은 현실과다수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음을 볼 때,가족 임금제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가족 임금제는 여성에게 일차적 가사 담당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하는 사회에서여성의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다.보호 노동법- 여성의 철야 근무 금지. 힘든 일 금지 등 여성 고용을 기피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오늘 날 서구에서는 가족 임금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즉 개별 임금으로 가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 임금제가 아직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아직까지도 기업은 여성 고용에 대한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생리 휴가. 출산 휴가, 육아 휴직, 산전 휴가 등ex) 남녀 불평등 현황 - OECD 국 中 남녀 임금 평등 71 위. 남자를 100으로 볼 때 여자는 61. 7%직 업 임 금 근로시간여자(A) 남자(B) 남녀 임금 비 여자 남자전직종 1,245 1,969 63.2 198.3 207.9< 1987년 남녀고용 평등법 >* 모집과 채용 (제 6조)여성에게 남성과 평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임금 (제 6조의 2)동일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남녀 간의 임금 격차가 크다.동일 노동 가치에
비교요소 :동양의 정신수양/ 예- (정서적 의미) VS 서양의 휴식/ 사교- (실용적 의미)1. 다도의 정의 (동양: 예- 일본)사람이 물을 마시는 것은 단순히 목마름을 달래려는 생리적인 욕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즐기는 대개의 음식이 다 그렇듯이 물을 마시는 것도 단순히 목을 축이는 데 그치지 않고 더욱 맛있는 음료를 추구하며 그것을 즐기는 특별한 방법을 만들어 내었던 것을, 어느 정도 수준의 문화를 꽃피운 모든 나라들의 습성에서 공통되게 볼 수 있다. 동양의 차문화 중의 한 예로 일본인들은 차를 마심에 있어서 단지 그 맛을 음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사람이 모여 차를 마시는 순서와 차를 접대하는 방식, 다도구의 제작 양식 등을 일정하게 정하고 각 단계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와 같이 다실을 꾸미고 다도구를 준비하여 차를 마시면서 다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전체 과정의 양식을 통틀어 '다도'라 한다. 우리나라에도 차를 마시는 예법이 없지 않으며 중국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일본 사람들만큼 그것에 세세한 규칙을 정하고 집착하지는 않으니 다도라 하면 일본식의 문화를 떠올리게 된다.일본의 다도는 크게 세 가지의 요소들로 이루어진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다실과 다도구들의 물질적인 요소, 차를 마시는 방법에 관한 행위적인 요소, 다도에 관련된 미의식과 종교성들의 정신적인 요소가 그것이다. 곧 다도란 이런 요소들을 배워 익히며, 손님에게 접대하는 과정을 즐기는 일종의 유희 활동이자, 그런 가운데 세련된 의례로 전승된 전통 예능의 한 가지이며, 그것에 온 마음을 다 써서 몰입하다 보니 구도의 경지에까지 닿게 된 정신 활동인 것이다.2. 다도의 역사▣ 일본 다도의 교조 리큐(利休)일본 다도의 시조는 무라타 슈코(村田珠光), 중흥조는 다케노 쇼오(武野紹?)지만 교조라고 할 때는 센리큐(千利休)를 뜻한다.리큐는 노아미(能阿?)의 흐름을 계승한 다인(茶人) 기타무키 도친(北向道陳)으로부터 다도를 배우고 후에 도친의 소개로 슈코류(珠光流)의 다인으로 널리 알려진 성하였던 것이다.다도의 예법은, 주인이 감상 가치가 있는 찻잔에 좋은 차를 끓여 대접하는 방법과 이를 받아 마시는 손님의 마음가짐으로 이루어진다. 주인은 다다미 4장 반이 기준인 다실, 다실의 정원인 로지(露地), 차를 마실 때 나오는 간단한 요리인 가이세키(?石)요리, 차도구의 준비 등에 세세한 주의를 기울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를 비우고 손님을 접대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손님 또한 다도의 예법에 어울리는 복장과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복장은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의에 어긋나는 복장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가지고 올 준비물(모치모노(持ち物))은 오차카이(お茶かい)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차를 마시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은 준비되어 있다. 오차카이의 경우는 센스(扇子―다도용의 작은 부채), 카이시(?紙- 접어서 품에 지니는 종이로 다도 때는 과자를 놓거나, 차종을 닦는데 쓰인다), 요지(楊枝―과자를 먹을 때 사용하는 이쑤시게), 코부쿠사(こぶくさ차 도구를 닦기도 하고, 차 도구 앞에 깔기도 하는 작은 수건) , 그리고 이들을 넣는 후쿠사바사미(ふくさばさみ이상의 물건을 넣는 가방) 등이 필요하다. 이 이외의 물건, 즉 차를 대접받는데 필요 없는 물건은 가지고 가지 않는 편이 좋다. 인사는 차가 앞에 나오면 우선 가져 다 준 사람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다. 또한 차를 내어 주는 사람에게, 차에게,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차를 내어 준 사람에게, 다 마신 후 차를 물리는 사람에게 목례 등 여러 번 인사를 해야 한다. 오카시(과자)는 반드시 차보다 먼저 나오는데, 차를 마시기 전에 먹는 것이 기본이다. 남으면 가지고 가도 되지만, 차를 마시면서 먹어서는 안 된다. 마시는 방법은 오른손으로 잡고 아래에 왼손을 바친다. 찻잔을 조금씩 돌리면서 차의 색깔과 거품의 정도 등을 감상한다. 한 모금 마신 후 맛과 향을 음미한다. 나머지를 한 입 반 정도에 다 마신다. 그래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역시 주인의 접대하는 마음 씀씀이에 상응하는 마다. 주인은 안쪽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문으로 먼저 다실에 들어가서 손님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손님들은 '니지리구치'라는 작은 문을 통해 몸을 움츠리고 고개를 낮추어 기어 들어가듯이 다실로 들어간다. 이 문은 일본 다도의 독특한 양식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니지리구치는 몸을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도록 작게 만드는데 그 크기는 가로 육십 센티미터 세로 육십 센티미터 정도이다. 문을 이렇게 작게 만드는 데는 까닭이 있다. 다실에 들어가면 누구나가 다 속세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 같은 자격으로 만나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문을 작게 만든 것이다. 다실에서는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으며 인간 본연의 겸손한 자세로 돌아가서, 모두가 평등한 관계에서 다회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도를 그렇듯 작은 문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문을 이처럼 작게 만드는 까닭을 다르게 보는 이도 있다. 누구나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문은 어머니의 자궁을 상징하고 있으니 이 공간 안에서는 모두가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겸허한 마음으로 차를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이다.5. 다도의 예법문화1) 먹고 쉬고 마시고 대화한다.다실 안으로 들어와 앉은 손님과 주인이 인사를 나눈 뒤, 손님들은 차례대로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주인은 먼저 '이로리'라고 부르는 실내용 붙박이 화덕에 숯불을 피우고 손님들은 숯불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감상한다. 이때 주인은 향을 피워 정취를 돋운다. 이어서 준비해 두었던 '회석 요리'를 내어 손님들을 대접한다.회석이란 본래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선방에서 수행하는 젊은 승려들이 긴긴 겨울밤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참을 수 없어서 돌을 따뜻하게 데워서 품속에 넣어 허기를 잊으려 했다는 옛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회석 요리는 잘 차려 풍성한 잔치 요리와 달리, 잠시 시장기나 속여 둘 정도의 간단한 식사를 가리킨다. 그러니 흔히 밥 한 주먹, 반찬 한두 가지, 국 한 그릇으로 차린 조촐한 상차림이 회석 요리의 대표되는 것이다으로써 참된 자유로움을 얻어, 청정무구한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는 경지를 말한다. 이 청은 정신세계의 청정을 말할 뿐만 아니라 다실과 다도구를 청결하게 다루는 일과도 통하는 정신이다.' 적'은 조용한 상태, 곧 다실에서는 정적을 유지하라는 뜻이지만, 다도에서는 공간적인 정적을 뛰어넘어 주위 환경에 동요되지 않는 정신적 정적 상태의 심경을 말한다. 이는 나아가, 불교적인 의미의 '원적', 곧 '열반' 또는 '대조화'의 경지와도 통한다.이와 같은 다도의 사규, 곧 '화', '경', '청', '적'은 주인과 손님이 다실에 모여 진행하는 다회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이상적인 경지이다. 다도는 다실과 다도구라는 예술품으로서의 물질세계와 더불어 구도의 잣대라 할 '화', '경', '청', '적'이라는 정신세계를 지닌다. 이 두 가지의 세계가 많은 일본 사람들을 다도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의 근원이다.6. 한일 다도 비교1) 한국 다문화의 특징인류는 차를 애초에 식용할 수 있는 식물이자 병을 낫게 하는 약으로 썼다. 그러나 싫증나지 않는 좋은 맛과 각성효과, 생산의 용이함 등으로 기호 음료로 발전하면서 음다(?茶)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음다 문화"는 차나무와 물과 다구와 사람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물질적 정신적 성과이다. 따라서 한 지역에 사는 민족의 오랜 음다문화는 그 민족의 생활관습과 민족적 특성, 실미적 능력, 정신적 가치체계 등 크게 변하지 않는 내면적 바탕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문화의 외적 현상은 인접문화나 정치적 상황, 경제와 사회현상 등의 지배를 받아, 포용. 전이. 창조를 거쳐 변하게 되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1400년 이상 이어져온 한국의 다문화는 부분적으로는 변화하면서 나무의 뿌리나 줄기와 같은 민족문화적 특성과 철학을 지녔으므로 다가올 시대에는 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한국 다문화는 다례. 다도철학. 음다풍속. 다구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의식다례의 발달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의식다례가 발달하였다. 평상다례와구를 올려놓고 차를 끓이고 있다. 때로는 다조가 다과상을 겸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조 위에서는 물을 다루는 일을 하므로 천을 깔아 일하기 편하게 하며, 상보를 덮어둔 오늘날의 다조상보는 고려의 전통에 따라 역시 삿된 액을 쫓아내는 붉은 색을 쓴다.▣ 석지조와 다구함신라의 네 화랑 선인인 사선이 경포대와 한송경에서 석지조라는 돌못화덕을 사용하여 천신께 차를 끓여 바쳤다. 석지조는 큰 돌덩이 하나에 바람구멍이 있는 풍로와 물을 담는 작은 못이 함께 파져서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한국만의 독특한 다구이다.또한 승려화랑인 충담은 남산의 부처에게 차를 끓여 올렸는데, 이때 다구를 담아 짊어졌던 앵통이 있었다. 충담은 육우와 동시대인이나 다구는 사뭇 다르다고 할수 있다.▣ 찻그릇한국은 의식다례용 찻잔이 발달하였는데, 그 용량이 매우 크거나 굽이 무척 높은 찻잔이 많이 쓰여졌다. 그리고 "茶"字를 써 놓은 신라. 고려. 조선의 오래된 다기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데 제사에 쓰는 다병이나 신이나 부처에게 올리는 찻잔에 "茶"字를 새긴 것은 일반 그릇과 구별하여 예의바르고 귀중하게 다루어야 했기 때문이다.일반 음다용 잔은 1인용 잔과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마시는 큰 잔이 있다. 문사다도가 성했던 고려 말렵에는 1인용 찻잔의 안쪽에 학이나 그름 모양의 백색상감이 새겨져 있는 잔들이 많았는데, 이는 탁한 유차보다 맑은 탕차를 선호함으로 인해, 다탕을 담았을 때 그 형상이 비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귓대다완이 있어 말차를 솔로 점다할 때나 탕차를 삼베에 걸러 각잔에 따를 때 썼다. 오늘날의 한국다기는 실용성과 손바닥의 촉감을 중시하는 편이다.▣ 다술과 공대와 다선고려시대에는 말차를 끓일 때 거품을 일으키기 위해 여러 가지 모양의 고리다술을 써서 휘저었다. 또한 단차를 잘게 부수기 위하여 대나무 막대로 된 공대를 썼으며 17세기에는 말차를 휘젓는 대나무 다선을 세계 최초로 독창적으로 만들었다.▣ 세밀하고 자연스러운 행다례한국 다례의 특징은 세밀함과 자연스러움에 있다.차를 끓이는 주인은.
1.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Kabinett des Dr. Caligali로베르트 비네 Robert Wiene, 1919년, 흑백, 67분 독일감독 : 로베르트 비네 Robert Wiene각본: 한스 야노비치 Hans Janowitz, 칼 마이어 Carl Mayer촬영 : 빌리 하메이스터 Willy Hameister제작디자인 : 헤르만 바름 Herman Warm, 발터 뢰리히 Walter Rohrig, 발터 라이만 Walter Reimann출연 : 베르너 크라우스 Werner Krauss, 콘라드 바이트 Konard Veidt, 프리드리히 훼어 Friedrich Feher, 릴 다고버 Lil Dagover◆ 감독에 대하여1881년 독일의 드레스덴 Dresden 태생. 1912년 코미디 영화 감독으로 데뷔. 베를린의 『레싱 극장』에서 배우, 작가, 연출가로 활동. ('16)를 발표하면서 제작자들에게 인정받게 되지만 이후 ('20)와 ('23) 등의 작품을 만드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함. 주제의 독창성과 배우들에 대한 독특한 연기지도에도 불구하고 종종 상업적이란 평가를 받음. 자신의 성향을 드러낼 수 있었던 독일 영화 전성기에 살다간 풍운아적 인물. 1938년 7월 17일 유작 을 남기고 빠리에서 사망.◆ 작품 해설은 최초의 표현주의영화 Expressionism, 최초의 호러 영화 Horror Film 내지는 최초의 싸이코 드릴러 영화 Psycho Thriller 로 간주될 수 있다. 회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화면 구도와 꽉 짜여진 셋팅은 거칠 게 왜곡되어 있으며, 연기는 과장되어 있으며, 조명은 어둡고 우울하다. 왜곡된 곡선의 장치와 그로테스크하게 각진 조명은 주인공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 효과적으로 작용한다.영화, 연극, 미술, 문학 등 전 예술 분야의 스타일상의 운동을 이끄는 표현주의는 인간 내면의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비사실적이고, 초현실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독일 무성 영화에 있어서 표현주의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미국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D.W. 그리피스의 으로 이어지며 어느 나라보다 오락적이고 스펙타클한 면모를 띄게 된다.1914년에서 1918년까지 진행된 제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유럽의 영화들이 진통을 겪을 때,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미국의 영화는 급성장 가도를 달리게 된다. 이 당시 미국의 영화는 다분히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스튜디오 시스템의 등장이다. 이 때 독일의 영화는 세계대전 당시 만들어내던 군국주의적 홍보영화를 벗어나 다양한 영화적인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런 시도 중에서 1920년대 독일 영화의 상징이 되는 것은 UFA가 이끄는 대규모 상업영화가 아닌, 마이너리티에서 참신한 감각으로 시도한 표현주의 영화였다.표현주의 영화란 20세기 초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미술사조인 표현주의를 영화로 차용해온 것이다. 미술사적인 의미에서 표현주의는 '형태가 객관적인 현실로부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반응으로부터 나타난다고 보는 미술 운동'을 의미한다.표현주의는 영화로 건너오면서 다분히 미술적인 경향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는 무엇보다 미장센에 크게 의존하였다. 에서 등장하는 아이리스(Iris : 연극용 조명기에 쓰이는 빛 조절 장치) 샷에서 보여지듯이 이러한 미장센과 표현양식은 표현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은 표현주의 연극의 무대 디자인을 그대로 영화로 옮겨온 것이다. 감정적인 면을 중요시하고, 과장, 전도의 효과를 중요시하는 표현주의 연극의 특징은 영화로 다시 옮겨지게 된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은 현실적인 공간이 아니라 주인공의 의식에 의해 왜곡되고 과장되어지며, 그러한 요소들이 개별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한 편의 독특한 그림을 연상시키듯이 상호 작용한다.또한 연극을 영상물로 옮길 때처럼 단순히 3자적 시각을 견지하던 카메라도 인물의 심리와 관점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카메라의 시각은 인물의 불안한 심리와 회의적인 마음을 표현해내심리상태가 작가개인의 취향에 치우쳐져 있어서 대중의 의미와 관심과 정확하게 일치하기는 힘들었다. 또한 표현주의는 부조화와 분열에 초점을 맞추었고 우리 내부 세계에 있는 모순과 폭력을 발견하고자 했으며, 반 자연주의적 경향을 띄고 있었다.실제로 표현주의란 용어가 특수예술 유파나 양식을 지칭하는 호칭으로 사용 된 기원은 불명확하며, 그러한 명칭의 예술운동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표현주의 미술의 원리는 '비이성'을 추구함으로서 '반서구' 적인 태도와 '반전통' 적인 이념을 갖게 되는 것이었으며 그림의 내용을 완성된 형태보다 중요시하면서 감성과 이념을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것이 목표였다. 따라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나 작가의 내면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더욱 중요시한다. 20세기뿐만 아니라 역사상으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에는 항상 표현주의적인 예술양식이 나타났으며, 따라서 표현주의는 인류 미술역사에서 항구적인 한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1)영화도 역시 예술계의 경향에 따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1920년 로베르트 비네 감독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 영화에서 표현주의의 신조를 가장 순수하고 완전하게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2)Ⅱ.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한 shot에서 나타난 표현주의 요소들ⅰ) 조명이 영화는 공포영화로 미지의 존재에 의한 연쇄살인과 무차별적인 살인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두려움과 불안감의 표현은 대체로 어두운 조명을 사용하고 있는 가운데 더욱 강하게 표현되는데, 위의 shot은 높은 contrast, low-key 조명을 이용하여 밝음과 어두움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암울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기법을 Chiaroscuro 기법3)이라고 이야기한다. 위의 shot에서는 조명을 건물 뒤쪽에 둠으로써 건물의 아래쪽과 위쪽의 명암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으며, 역광을 사용하여 살인자의 모습 테두리에 하얀빛으로 띠가 형성됨으로서 신비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Chiaroscu어져 기하학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딱딱한 느낌의 사선은 관객들을 긴장시키며 특히 케사르의 동선인 흰색의 길 역시 사선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인물의 불안정함과 도망치는 상황의 긴장감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울어진 건물들로 인해 인물들이 불안정한 공간에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고 이후의 상황전개에 불안을 가중한다. 이런 공간의 강박적 이미지는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후- 독일의 위축된 분위기와 초현실적인 영화 형식과 결합하여 영화 자체에 혼란을 담아낸다.Ⅲ.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과 표현주의 기법들이 영화에 사용된 표현주의 기법들은 당시의 시대적 불안감으로 인해 일반 대중이 느끼는 공포심과 같은 인간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둔 영화이다. 그리고 표현주의 기법들을 이용하여 어떤 권위, 혹은 고정된 틀에의 반발하는 영화이다. 이는 공포의 대상인 칼리가리와 케사르만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공포감의 주체인 관객과 시선을 맞추고, 첫 번째 살해되었던 인물이 권위적인 마을 서기였음을 예로 들 수 있다. 권위에 대한 지극한 경외심은 우상화와 동일시의 기원이 되기도 하지만 그 권위에 대한 두려움은 때로는 전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칼리가리 박사에게 서커스 원숭이처럼 사육되던 케사르가 칼리가리의 명령에 불복하여 제인을 죽이지 않고, 정신병원의 직원들이 칼리가리 박사를 결박하는 장면들은 권위에 대한 전복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프랜시스가 원래 정신병자였거나, 아니면 칼리가리 박사가 비밀을 알아버린 프랜시스를 정신병자로 만들어버린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열린 결말 또한 영화 플롯상의 절대적인 틀에 반발하며 내면을 표현하는 표현주의 신조를 그대로 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도서 및 참고 영화독일 표현주의 미술, 일지사, 정미희 지음, 1990년세계영화사, 이론과 실천, 잭 C.앨리스 지음, 변재란 옮김, 1998년영화예술, 데이비드 보드웰·크리스틴 톰슨 지음, 주진숙·이용관 옮김, 1997년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로베기로 급성장했던 독일 영화계는 값 싼 노동력과 고급 인력을 토대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1919년 한 해 동안 200여 개의 제작사에서 50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되어 3,000여 개의 극장에서 상영되었고, UFA는 평균 1,500석 규모의 극장 11개를 포함해서 모두 2,500명의 직원을 거느린 초대형 영화사가 되어 할리우드의 스튜디오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물론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는 뭐니 뭐니 해도 세계 영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표현주의 영화이다. 하지만 표현주의 영화가 이 시대 영화의 전부인 것은 아니었고, 다양한 장르 영화들과 실험적 영화들 또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표현주의란 세기말 독일에서 음악과 회화, 문학, 연극 등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서 일어난 진보적 예술 운동이었다. 이는 기존의 모든 예술적 수단들을 거부하고 현대 사회의 복잡하고 분열적인 인간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진정으로 새로운 표현방식을 탐구하였다. 이를 위해 대상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것을 인지하고 느끼는 인간의 내면을 “표현”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들을 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표현주의는 애초의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색깔이 바랜 상태에서 당시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문화적 유행으로서 대중적인 향유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이 표현주의 영화의 탄생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즉 영화계는 한편으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던 영화의 예술적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표현주의의 대중적 파급력을 영화를 통해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서 이를 영화에 도입한 것이다. 최초의, 또 심지어는 유일한 표현주의 영화로도 일컬어지는 로베르트 비네의 (1919/20)은 이렇게 현실적인 동기에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영화적 표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위대한 공로를 세웠다.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키는 굵고 단순한 윤곽선으로 과장되고 왜곡되게 묘사된 무대배경은 이를 담당했던 바름의 “영화 영상은 조형적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말처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