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국의 아이들' 감상문1등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알리에게 필요한 것은 3등이다. 만약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라며 씁쓸한 사회현상의 정곡을 찌르는 KBS 개그콘서트의 개그맨 박성광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에이 그런 어리석은 짓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라며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벤쿠버 올림픽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도 포털 사이트에 줄곧 올라오는 소식들은 전부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의 이야기일 뿐 사람들은 은메달과 동메달에 대한 관심은 찾기 힘들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해서인지 사람들은 항상 1등이 되기를 바라고 1등만이 대우받을 수 있는 세상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것은 의아하게도 드라마, 코미디 장르의 영화 ‘천국의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신발이라는 사소한 소재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오빠가 어수룩한 실수로 여동생 자라는 한 켤레 밖에 없는 구두를 잃어버리면서 사건이 발생한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야채가게에 들린 사이에 잠깐 놓아둔 동생 자라의 구두가 없어져버렸다. 허둥지둥 하는 것도 잠시 동생의 소중한 구두를 잃어버린 대가로 아이들의 일상은 조금씩 엉키기 시작한다. 새 신발을 사달라고 가난한 엄마 아빠에게 조를 수도 없어서 눈 앞이 깜깜하기만 하다. 그들은 결국 오빠의 운동화를 같이 신기로 한다. 동생은 오전반 수업, 오빠는 오후반수업. 잠시나마 시간을 지체하는 여유를 보인다면 그대로 오빠는 지각을 해야 한다. 아이들은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게 항상 긴장해야한다. 조금은 큰 듯 한 오빠의 신발을 신고 동생 자라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헐레벌떡 뛰어와야 한다. 그들의 달리기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영화 중간 중간 보이는 부유한 저택가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의 상징으로서 자동차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이들이 다니는 곳은 좁은 골목길 구석구석 직접 발로 뛰어야 하는 곳이다. 복잡하고 어지럽게 꼬아져 있는 길이긴 하지만 아이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들의 상황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는다. 비록 동생의 잃어버린 신발을 찾을 때까지 뛰고 또 뛰어야할 길임에도 그들은 웃음의 얼굴을 버리지 않는다. 그들의 착한 마음씨는 그토록 찾기를 바라던 구두를 찾았을 때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구두를 신은 아이를 목격한 동생 자라.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오빠와 함께 아이의 집을 찾아가 보지만 자신들보다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님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음을 알게 된 순간 발걸음을 더 이상 앞으로 뗄 수가 없었다. 자신들도 궁핍한 생활 속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지만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웃 앞에서는 힘들 생활에 대한 불평도 불만도 다 사라진다.얼마 후 남매에게는 희망의 빛이 나타났다. 전국 어린이 마라톤 대회의 3등 상품이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운동화라는 것이다. 체육선생님의 만류에도 당당하게 테스트를 통해서 학교 대표로 뽑히게 된 알리는 자신만만했다. 1등만을 원하는 경쟁자들 속에서 그에겐 3등은 어렵지 않은 도전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알리는 꼭 3등이 되어서 자라의 손에 운동화를 안겨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아이들과 함께 경쟁을 시작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1등이 아닌 오로지 운동화. 행여나 제일 먼저 결승선에 들어올까 조마조마해 하면서 3등을 유지하려고 온갖 노력을 한 알리지만 결과는 1등. 너무나도 기뻐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1등 메달을 목에 건 알리는 너무나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이 사실을 자라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까 고민하는 모습에서 그의 눈에는 어느 샌가 눈물이 고인다. 뛸 때는 아픈 줄도 몰랐던 발이 물에 들어가는 순간 수많은 상처들이 크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역시 그곳은 천국일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이 마음 고생하는 것을 어떻게 알아챘는지 아니면 그것이 그저 부모와 자식사이에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이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자전거에서 알리와 자라의 새 신발이 고이 놓아져 있었다. 아이들이 신발이 없어서 마음 조리던 순간들이 안타까웠던 초반과는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아옹다옹하는 꼬마 남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결론적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난 이 영화는 남매가 느끼기에 그리고 우리가 느끼기에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 이었다.가난한 이란의 평범한 한 집안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 남매의 우애와 시련을 통해서 표현한 이 영화는 일자리를 찾아 나선 아버지보다도 용감한 모습을 보여주는 알리를 통해서 어린아이가 가진 간절함이 용기로 표현될 수 있음을 느꼈다. 크게 느껴지기만 하는 부잣집들의 기세에 놀라 개소리에도 황급히 도망치는 아버지의 모습은 대물림 되는 가난 속에서 순종적인 자세를 취해야 하는, 어쩌면 우리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사회 속의 시스템일 것이다. 가정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 동시에 기득권이 만든 제도해 안주해 살아야 하는 가족의 모습이지만 알리와 자라의 모습에서 비춰지는 순수함은 우리가 숨 가쁘게 달려오면서 잊혀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하루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뒤처지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조금씩 순수를 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바라는 마음처럼 우리에게 공백이 조금씩 채워질 때마다 마음속의 허전함은 우리도 모르게 커져가고 있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천국에서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이 성장해감에 따라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말로는 행복의 기준은 자신에게 달린 거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정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외치면서 본인 스스로는 나보다 남의 시선을 먼저 신경 쓰고 무조건 좋은 대학, 좋은 직장만이 사람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은 우리를 틀에 박힌 삶 속에 가두었다. 세속적인 삶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풍요로움은 가히 칭찬받아야 마땅하지만 그 뒤에 감쳐진 여유로움의 부족함, 1등만 기억되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가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서러운 삶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이런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우리 조부모님 시절의 아련한 과거 속에서도 이 영화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6.25 전쟁 전후로 하여 우리나라 농민들은 궁핍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질긴 고무신을 신고 다니며 간간히 끼니걱정 때문에 잠 못 이루던 그 시절 행복의 기준은 자신에게 있었다. 배만 따뜻하게 채워질 수 있다면 자연이 학교이자 놀이터였다. 배고픔을 달래려 수돗물로 허기를 채우기도 했지만, 물질적인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영화 속의 신발이 우리의 입장에서는 하찮을 수도 있고 '그까짓 거 하나 사면되지'라고 넘어 갈 수 있을 지라도 그 남매의 세계에서는 신발의 유무가 얼마나 크게 생활에 혼돈을 불러일으키는지 알 수 있다. 지금 그 나이또래 아이들이야 장난감을 원하면 부모님이 쉽게 사주고 놀고 싶으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여유로움을 즐기면 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만큼 아이들의 마음속의 순수함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저녁밥만 먹으면 곧바로 뛰어나가서 친구들과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등과 같은 놀이가 많았지만 요즘은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는 게 쉽지가 않다. 아파트 단지 내에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춘 놀이터가 있어도 어느 누구하나 나와서 노는 아이들이 없다. 아이들은 집에서 편안하게 컴퓨터 게임을 즐기거나 tv시청에 빠져 학교나 학원 갈 시간을 제외하고는 바깥공기를 들이킬 시간조차 없는 것이다. 좋은 음식에 좋은 옷에 좋은 게임기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이 영화 속 주인공 알리와 자라처럼 동심을 가질 여유가 있을까. 한국말도 배우기 전에 영어를 술술 입에 달고 사는 꼬맹이들이 많아지는 요즘 어떤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기도 한다.아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학교에서는 1등만이 최고, 학생의 본분은 공부일 뿐이라고,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 아이들인데 우선 공부부터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1등이 아닌 길들은 배제시키고 그것만을 미화시켜서 아이들에게 각인시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내겠다는 목표의식을 갖기 보다는 '경쟁의 사회 속에서 꼭 선두주자가 되겠어.' 라는 의미 없는 인생의 지표를 갖고 주변인들을 모두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살면서 착하게 사는 것은 어쩌면 바보 같은 짓이라는 모순 적인 정의를 내리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 감상문실제로는 더 끔찍한 일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찾아본 88년 '스가모 어린이 유기 사건'은 영화보다 더 현실성이 없는, 인정하기엔 사회에 대한 원망을 지울 수 없는 그런,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였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 없이 본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점점 나를 섬뜩하게 만들었다. '아무도 모른다'는 도시속의 슬픈 동화를 정말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포근한 미소를 짓던 이웃집 노부부였지만 그들에게 이웃은 그저 조용히 아무 소란 없이 지내기만 한다면 평생 얼굴 마주할 일은 손에 꼽게 될 것이요 이었다. 실제 사건에서도 이웃 주민들은 아이들의 존재를 몰랐다고 하니 지나친 관심이 문제가 되지 못할망정 그들 사이에는 무관심이 예의로 느껴진 듯하다. 포스터 속의 모습처럼 아이들은 언제나 따사로운 햇빛을 느낄 수 있듯이 엄마에 대한 모정도 사회의 관심도 따사롭기를 바랐다. 물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겠지만.넷이나 되는 아이들 때문에 번번이 이사를 다녀야 하는 엄마. 아직은 젊은 엄마는 새로운 집에 이사를 오면서 이웃에게 아이들의 존재를 숨기고 자신은 아키라(첫째)와 둘이 사는 행세를 하면서 숨죽이는 생활을 시작한다. 물론 아이들에게 당부는 필수였다. 베란다에 나가지 말 것. 밖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아키라뿐. 당연히 그들에게 학교는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아직은 어린 시게루와 유키에 반해 아키라와 교코는 학교에 대한 열망이 컸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거절의 말 뿐이었다. 어리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아키라는 그런 엄마를 이해했다. 그녀의 잦은 외박에도, 자신의 동생들과 아버지가 다른 것에도 전혀 자신의 감정표현을 하지 않았다. 분노도 기쁨도. 그저 첫째로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해나갈 뿐이었다. 그러던 중 엄마는 조금의 생활비만 남겨둔 체 4남매에게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서로밖에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대답을 했던 사람은 성을 바꾼 엄마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엄마는 4명의 다른 남자를 만나고 사랑에 버림받으면서도 아빠가 다른 4명의 아이들을 낳았지만 그녀는 아직 삶과 사랑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이것은 아이들이 그녀의 행복을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찌 생각해 보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을 세상에 있게 해준 사람은 엄마였기 때문이다.엄마가 없는 생활에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아슬아슬하게 하루의 평화를 지켜가던 영화가 아키라의 방황으로 집안에 규칙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버린 엄마처럼 아키라에게도 행복의 기준이 욕망으로 인해 처참해졌다. 그것은 바로 집에 나타났다.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돈이 없음은 물론이고 전기와 물도 그들에겐 사치였다. 우리들과 별다름을 느낄 수 없었던 초반의 4남매의 모습과 달리 영화가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희망의 빛이 사라졌다. 마치 교코의 손의 매니큐어가 점점 사라진 것 처럼 말이다. 마음껏 소리 내지 못하여도 초콜릿하나에 장난감 하나에 웃음 짓던 아이들의 모습에서 꿈을 갖는 것마저 허용되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던 유키는 차갑게 죽어갔다. 마지막까지 가족이외에는 아무도 존재조차 몰랐던 유키는 처음 집에 들어왔던 것처럼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집 밖을 나갔다.일본영화의 특성상 크고 작은 에피소드의 나열을 보여주기 보단 잔잔함 속에서 비로소 그것이 진정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실제의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그들에게서 희망을 끈을 빼앗아 가버렸다. 엄마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난 것처럼 아키라도 자신의 행복이 그저 동생들을 돌보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순간, 아니면 자신도 아직은 응석부릴 어린애이기에 식구들을 돌봐야한다는 마음속의 짐들이 어느 순간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져 내려놓는 순간, 많은 것들이 부재(不在)의 상태였던 것이다.영화에서 아키라와 교코의 연령대는 사회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과 능력을 가정에서 배우게 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하지만 외부와 차단되어있고, 부모의 어떠한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환경은 그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정상적인 가정에서 행해지고 있는 가족 구성원과의 원활한 대화, 부모의 사랑과 훈육, 기본적인 예절교육 등은 아동이 또래집단과 어울려 지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사회에 올바르게 적응할 수 있는 기본이 된다. 이러한 것들을 체득하지 못한 아동들은 성인이 되어 사회의 부적응 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또한, 아동들은 부모와 같은 어른과의 대화와 교육을 통해 언어능력, 인지능력, 상황대처 능력 등을 습득하게 되는데, 부모의 부재로 아동들의 언어능력은 향상되지 못하고 아동의 수준에만 머물게 될 것이다. 교코의 경우에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마음과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을 엄마에게 지속적으로 표현했음에도 그것이 왜 불가능한지에 대해 정확한 설명도 듣지 못하고 단순히 그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안 된다.’ 일 뿐이었다. 이 시기에는 아동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부모의 지도나 조언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올바르게 대처하고 해결책을 찾지 못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건전한 친구들을 사귀지 못하고 나쁜 길에 빠진 아키라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과정에서도 누구 하나 무엇이 옳고 그름을 말해주는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아키라는 자신도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학교를 다녀야 할 시기에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막중한 임무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하루살이의 삶이 고되고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유난히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던 아키라에게 기쁨과 슬픔의 표현은 그저 불필요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슬퍼한다 해도 그것을 헤아려 줄 수 있는 엄마와 아빠가 없었을 뿐 더러 동생들 앞에서는 든든한 형이자 오빠의 모습만 보여주어야 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감정표현에 서툴렀다. 이것은 유키가 차가운 시체가 되었을 때에도 슬프지만 냉정한 모습으로 동생을 보내주는 모습에도 나타났다.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시게루와 유키는 매우 어린 나이인데, 이 시기의 아동들은 부모의 애정과 관심, 신체적인 접촉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 시기에 부모와의 유대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따라 아동의 전체적인 성격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는데, 영화에서의 시게루와 유키는 전혀 부모와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없는 만큼 엄마가 사다 준 장난감선물과 하루 종일 놀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집착이 커질 수밖에 없다.이로 인해, 애정결핍은 물론이거니와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부모의 말을 따라 하며 향상되는 언어능력도 뒤떨어지게 된다. 부모와의 신체적 접촉을 통한 운동으로 아동들의 신체도 발달하고 건강해지게 된다.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런 역할을 해줄 부모가 없기 때문에 아동들은 또래에 비해 잘 걷지도 못하고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한다. 유키의 경우에도 다른 아이들보다 왜소한 체격을 갖고 있으며 더구나 이것은 조그만 부상에도 아이가 회복을 하지 못하고 죽음에까지 이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아키라의 친구로 집에 놀러와 4남매와의 인연을 맺은 사키에 대한 애정을 보이면서 사람에 대한 그리움, 정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주었다.영화 속 아동들의 신체 미발달은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환경에서도 기인한다.아키라를 제외하고는 집 밖에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햇빛을 온 몸으로 받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들의 운동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햇빛을 쐬는 것만으로도 생길 수 있는 비타민과 다른 영양소들의 수치도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다.이처럼 영화 속 4남매는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지 못하여 하루하루를 불안감 속에서 외줄타기를 해야만 했고 결과는 유키의 죽음으로 나타났다.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갇혀있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라는 더욱 큰 울타리를 찾아 떠나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를 배우고 사회를 배운다. 수많은 퍼즐 속에서 없어진 한 조각이 완성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낼 수 없듯이 사람이 살면서 사소한 것의 부재라도 정신적인 미완성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아무도 모른다' 속에는 엄마, 아빠도 없고 이웃도 없고 바깥세상도 없다. 이처럼 영화 속 부재였던 것이 만약 나의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떠한 선택을 했을 것이며 어떠한 결과를 만들었을까.어린 시절 나는 엄청난 마마 걸이었다.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쳐다보거나 귀엽다고 달래주는 것조차 무서워서 엄마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으며 낯선 상황속의 나의 모습은 상상마저도 두려움 뿐 이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엄청난 집착을 보였다. 물론 부끄럽게도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가끔씩 사회성 부족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어린 시절 나에게 엄마의 존재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 내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존재였으며 세상을 보는 통로이자 때로는 친구였다. 영화 속의 아키라의 나이에도 앵앵거리며 엄마 옆에만 붙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 믿을 수 없는 실화 속의 주인공이라면 전혀 다른 성격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아키라의 입장이었다면 첫째라는 부담감을 안고 동생들을 돌봤을 것이다.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되었을지는 보장할 수 없지만 동생들에게 나는 바깥세상을 보는 눈이자 기대야만 하는 존재이기에 아키라처럼 묵묵히 나의 일을 수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고 나만 바라보는 동생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또래의 친구들처럼 맘 편히 놀러 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고, 그런 유혹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븐’오늘도 사회에서는 여성의 권위를 위해 여기저기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남성과 여성이 아닌 자신 그 자체로 평가받기위해,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공평한 것이 당연한 것인데 여성의 권위를 위해 싸워야한다는 것조차 씁쓸하게 느껴진다. 성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에 대한 존경이 필요한 시점에 우리는 아직까지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븐’에서는 외로운 여성, 아니 어머니의 싸움이 표현된다. 자신도 남편에게 맞으면서 하루하루 생활을 견뎌 내고 있지만 그것만큼은 견딜 수 있다. 아니 자신의 괴로움쯤은 눈 감고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견디지 못할 분노가 있다. 그것은 바로 딸 셀리나의 괴로움이다. 자신은 힘들게 살아도 자기 자식만큼은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처럼 돌로레스는 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은 자신에게 크나큰 잘못으로 느껴진다. 만약 남편이 그녀에게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폭력을 행사한다 해도 그녀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애써 부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살인’이라는 크나큰 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로지 그녀의 머릿속에는 딸의 생각 뿐 이었다.미국의 어느 섬에서 어부인 남편과 활달하고 예쁜 딸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주부 돌로레스. 술에 취해서 그녀를 구타하는 남편 때문에 무척 힘든 삶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희망인 딸 셀레나를 키우며 부자이자 미망인인 베라 도노번의 집에서 하녀 일을 하며 꿋꿋하게 살고 있었다. 개기일식이 진행되던 어느 날, 돌로레스의 남편인 조지가 우물에서 실족사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돌로레스가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증거가 없어서 무죄로 풀려나게 된다. 하지만, 딸 셀레나는 돌로레스의 죄를 확신하고 그녀를 증오하며 섬을 떠나게 된다. 15년이 흐르고, 뉴욕에서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셀레나는 "어머니가 살인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팩스 한 장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 오게 된다. 돌로레스가 일하던 부잣집의 주인인 베라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곁에 있던 돌로레스가 살해혐의를 받게 된 것이었다. 이사건 역시 돌로레스의 죄가 틀림없다고 셀레나는 확신하고, 돌로레스의 남편이 죽었을 때 그녀를 의심하고 수사했지만 그녀의 죄를 입증하지 못했던 베테랑 형사 맥키 역시도 이번에는 성공하리 라며 끈질기게 수사를 하기 시작했다. 베라의 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더불어 과거의 사건에 대한 사실도 밝혀지기 시작한다. 치매에 걸렸던 베라는 그 동안의 치욕스러운 삶을 마감하기 위해서 잠깐 정신이 돌아왔을 때 계단 추락사로 자살을 선택했던 것이었고, 조지의 죽음은 돌로레스의 단순 살인이 아니라 그의 죽음을 유도했던 것이었다. 즉, 술주정뱅이에다가 폭행을 일삼았던 조지를 묵묵히 감내했던 돌로레스였지만, 밝았던 딸 셀레나가 변하기 시작했고 그 이유가 조지의 추행 때문 이라는 것을 알고 돌로레스는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셀레나의 이름으로 모아두었던 돈으로 셀레나와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조지가 빼돌려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돌로레스는 절망에 빠졌다.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된 베라는 '세상에 모든 사고가 모두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님'을 언질 해주며, '때론 악녀가 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지(Sometimes being a bitch is all a woman has to hang onto)'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남편에 대한 아픔으로 남편을 사고사 시키고 유산을 받은 베라의 조언에 돌로레스는 용기를 내어, 개기일식의 행사가 있던 날 우연히 발견한 깊은 구덩이에 남편을 빠지게끔 유도해서 숨지게 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셀리나는 그 동안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잊고 살았던 과거, 즉 아빠인 조지가 자신에게 했던 추행들을 떠올리게 되고 인정하게 되면서 자신이 사랑하면서도 증오했던 엄마 돌로레스를 이해하고 엄마를 변호하게 된다.정당화된 살인. 말 자체에서 묻어 나오는 모순적 의미에 우리는 깊게 생각해보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존중될 가치가 있으며 생명은 어느 무엇보다도 중요시 되어야 할 것임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동물과 달리 사람은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약한 개체를 함부로 죽이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 따라서는 옳지 않은 결과가 일어나기도 한다. 목적 없는 자신의 사리사욕에 따른 살생과 같은 것이다. 또는 이와는 달리 살인이라는 행위를 통해 특정 상황에 대한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븐’에서의, 자신의 삶보다 딸의 인생을 위해 저지른 살인은 정당방위로 해석될 수 없다. 정당방위의 경우 주관적이자 객관적인 요소의 근거가 모두 충족이 되어야만, 즉 자신을 죽이려 하는 상대에 대한 저항수단으로서의 살인만 해당되므로 이는 정당성이 부여될 수 없는 상황이다.돌로레스가 남편을 죽인 날은 개기일식이 일어난 날이다. 남성을 뜻하는 태양이 여성을 뜻하는 달에 의해 완전히 가려지는 이 순간 그녀는 끝내 남편을 살인한다. 그녀에게 느껴지는 것은 어떠한 불안감도 초조함도 죄의식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분노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개기일식이 과연 살인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조금은 의문점이 든다. 아마 개기일식에 가려지는 해처럼 아마 그녀는 이 모든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뿐만 아니라 햇빛이 가려지는 순간처럼 우리에게 다가온 깜깜한 순간은 그녀가 느끼기에 어떠한 행동도 눈 가려지는 순간이었을것이다.사실 이러한 그녀의 모든 행동은 한 아이의 엄마로서 최선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사실이자 도덕적으로 비판 받아야 마땅한 사실이다. 그러했기에 돌로레스의 선택은 딸 셀리나를 위해서였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자 딸 하나만을 보고 가정부로서 열심히 일하며 가정을 지켜나가려던 그녀는 엄청난 모성을 가진 엄마였다. 비록 가정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은 그녀에게 할애할 수는 없었지만 스스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의 우리 엄마세대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아이를 출산한 이후로는 자신의 이름으로 살기 보단 누구의 엄마, 누구의 부인 등의 수식어를 달고 살아야 하는 요즘 세상에서 엄마가 된 이후 자신 스스로 목표를 잡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일하는 엄마들도 많이 있지만 아직까지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한 여성들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들은 엄마들로 하여금 자신의 자식들만 바라보고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살면서 자식들의 행복을 보는 것만이 스스로의 행복이라 느끼면서 사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자신의 이름을 잃고 살아가는 모습에 아쉬움이 남는다.이런 엄마의 생각을 자식들은 알까. 물론 셀리나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자신에게 보여준 사랑을.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사랑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자신을 성추행 했다는 사실조차 어느 순간 무의식 속에 간직했을 뿐이다. 이러한 그녀의 성격은 프로이드의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한 부분으로 인식된다.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경우 정신분석학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딸이 아버지에게 애정을 품고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하여 반감을 갖는 경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셀리나가 엄마인 돌로레스를 경쟁자로 인식하지는 않지만 아버지 조에 대한 사랑이 지나침을 보이면서 그에 대한 두둔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쩌면 과거의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기억들을 스스로 지워버린 것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버린 셀리나의 입장에서는 어머니의 살인이 고맙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성추행이라는 사실보다 아버지의 부재라는 것이 어린 그녀에게는 더욱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을 것이다. 자라나면서 점점 중요해져야 할 가족의 역할이 셀리나에게는 충족될 수가 없었다. 가정부로 일하는 엄마도 가깝게 지낼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 집은 전부이자 벗어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셀리나에게는 가족의 부재가 엄마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은 결국 엄마의 살인혐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지우고 싶었던 과거이고, 그런 일은 없었다고 부정하며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셀리나였지만, 그녀에게도 아빠의 성폭행에 대한 기억은 계속해서 그녀를 옭아매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이성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신경쇠약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는 그녀를 보면 자신을 엄마보다도 사랑한다고 믿었던 아빠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 두려움은 평생의 상처로 남아있었음에 안타까움마저 든다.
목차Ⅰ. 서론 ------------------------------------- 1Ⅱ. 재일교포들의 형성 -------------------------- 1Ⅲ. 재일교포들이 겪고 있는 문제 ------------------ 21. 정체성문제 ------------------------------- 22. 사회문제 -------------------------------- 31)영주권 --------------------------------- 32)취업차별 -------------------------------- 43)참정권 ---------------------------------- 44)사회보장.복지 ---------------------------- 5Ⅳ. 해결방안 ----------------------------------- 51. 사회적차원 ------------------------------- 52. 개인적차원 ------------------------------- 6Ⅴ. 결론 -------------------------------------- 7참고문헌 -------------------------------------- 8Ⅰ. 서론현재 일본에는 약 61 만 명에 달하는 재일교포들이 생활하고 있다. 일본의 재일교포사회의 형성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라는 과거사에 연유한다. 해방 후 5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은 현지에서 일본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법적으로나 생활적인 면에서 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차별은 계속되고 있다. 이는 식민지지배라는 과거사에 기인한 구조적 갈등에서 비롯된 문제이기에 안타까움은 더하다. 최근 일본에서 대한민국 혹은 북조선이라는 한반도 국가의 국적을 지닌 사람들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단순한 인구의 자연 감소 수준을 넘어서는 수치로, 이는 재일교포 사회에서 일본으로의 귀화가 그 원인이며, 연간 1만 명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조국이 둘로 갈라지고 갈라진 조국의 어느 한 쪽만 택 사람들을 차출하였다. 모집은 반강제적인 것으로 도, 군, 명에 일정량의 사람을 배정하여 그 수를 채워야 했다. 1939~45년의 조선인 강제연행자만도 무려 67만 명이 넘었으며 이들은 주로 위험이 따르는 탄광, 광산 공사장, 군수공업 등에 배치되어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 그들의 생활상태는 비참했으며 일상적으로 박해를 받고 민족 차별에 시달리고 있었다. 해방이 되던 1945년 8월 일본에 약 200만 명의 한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마을마다 귀국을 위한 준비를 서둘고, 자녀 몇 명만 있어도 이들을 모아놓고 한국말과 한국의 역사를 가르치는 운동을 전개하여 갔다. 한국으로의 귀국은 현해탄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선박이 있어야 했다. 한반도에서 일본인을 싫고 간 선박이 되돌아 올 때 한인들을 싫고 오는 것이기에 도항에 한정이 있었다. 1945년 12월 도항운송을 담당한 연합군이 귀국하는 한인들에게 지참금을 1천 앵으로 제한을 하여 많은 사람들이 귀국을 주저하게 하였다. 1946년 12월 귀화수송이 끝났을 때 약 60만 명의 한인이 일본에 잔류하게 된다. 이들이 현재 재일교포를 이루게 된 것이다. 현 재일교포 구성원을 출신지별로 보면 경상남북도 56.5%, 제주도 17%, 전라남북도 9.9% 등으로 남한출신이 전체의 98%를 차지하고 있고 북한 출신은 2%에 불과하다. 재일교포의 30%가 오사카(大阪)에 살고 있으며 도쿄(東京), 효고(兵庫), 교토(京都), 가나가와(神奈川), 후쿠오카(福岡)에 살고 있는 교포수와 합하면 74%에 달한다고 한다.세대별로 보면 2 · 3세대가 해마다 계속 증가해 1988년도에는 전체의 약 90%에 달해 세대교체가 거의 끝난 상태이다. 최근 20년간 일본인과 결혼한 교포 수는 1984년에 처음으로 50%를 넘어, 최근에는 60%에 달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결혼, 사업, 취직을 위해 귀화하는 교포 수가 1988년 이후 꾸준히 증가, 1995년 한 해에만 1만3천명에 달했으며, 1996년에는 약 20만4천 여 명에 이르렀다.Ⅲ. 재일교포들이 %이하, 모국어를 전혀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약 70%, 민족차별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약 40%, 과거에 민족적 열등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약 60%, 일상생활에서 일본식 통명을 사용하는 사람은 약 80%였다. 또 ‘애착’을 느끼는 대상으로 일본을 든 사람이 약 70%, 재일동포 사회를 든 사람이 약 50%, 대한민국은 약 40%, 통일조국이 2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0% 미만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세대를 더해가며 재일교포의 정체성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또한 그들을 부르는 다양한 호칭도 정체성 혼란을 더해준다. 한반도 출신으로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을 부르는 호칭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재일교포 사회에서 그들을 지칭하는 통일된 호칭은 없으며, 그들 자신도 자신들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것은 재일교포들이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이라는 3개의 국가에서 정치적 그리고 역사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반도 분단과 한반도와 일본간의 정치 관계, 그리고 일본 사회 내부의 차별관과도 관련되어 있는 문제일 것이다. 식민지 시대 일본 사회에서는 한반도 출신자들을 주로 ‘조선인’으로 불렀고, 조선인에 대한 차별적인 호칭으로 ‘조선인’의 약어인 ‘鮮人(senjin)’ 으로 부르기도 했다. 해방 후에도 일본사회에서의 조선인 차별은 여전히 존재했고, 거기에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재일 코리안들을 부르는 호칭도 "선인" "반도인"과 더불어 "재일 한국인" "재일 조선인" "한국인" "조선인" 등으로 다양화되었다.1965년 이후 재일 교포들의 일본 사회 정착이 두드러지면서 재일 코리안 사회나 일본 언론계에서는 "在日韓國 ? 朝鮮人" 이라는 호칭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호칭은 현재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음과 동시에 주로 「한국」적을 소유한 사람들만이 사용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현재 「재일 한국 ? 조선인」이라는 호칭은 일본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이지1년에 이르러서야 한국적 재일조선인과 ‘조선’적 재일조선인은 비로서, 역사적인 특수한 경위가 있어 영주권을 부여받은 ‘특별영주권’자로 통일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법적 처우 상 외국인등록증 휴대 의무제도의 개선과 취업상의 제한 폐지, 지방 선거 참정권 획득, 민족교육의 실시, 무연금자 문제 등 여전히 미결의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2)취업차별재일교포 2,3세로서 일본사회에 본격적인 출발을 내딛게 되는 고교 또는 대학졸업예정자들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한국적을 가진 학생들이 매년 8천~9천명의 고교졸업생과 2천명 내외의 대학 졸업생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일류기업에서는 전적으로 입사를 봉쇄하고 있고, 설사 한국적을 묵인한다고 하여도 일본식 통명사용의 조건부채용 등 불유쾌한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래서 재일교포 중 자녀들의 취업문제 때문에 귀화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취직 때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40%, 취직한 사람 중에서 이른바 연고(緣故) 취직이 55.6%, 학교 등의 소개로 취직한 경우는 14.9%에 불과하고, 약 반수는 같은 재일조선인이 경영하는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의 재일교포의 직업 구성을 보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나타난다. 과거에는 하층 노동 계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전문 기술직에는 거의 종사하지 않았으나 기능공?생산 공정 작업자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전문?기술직, 관리직의 비율이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재일교포의 직업 구조가 예전보다 안정적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일본인의 직업 구성과 비교하면 여전히 노무 작업자, 판매업 종사자, 운수 및 통신업 종사자의 비율이 현저히 높으며 전문 기술직이나 사무 종사자의 비율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피고용자의 비율이 낮고 더욱이 대기업에 고용된 피고용자는 매우 적다. 그리하여 자영업의 비율이 높으며 자영의 경우에도 규모가 영세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영업 중에서 제조업 부문을 보면 설비투자가 적기 때문에 단순 조립이나 수공업에 가까운 단순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4) 사회보장.복지재일교포의 사회보장에 대하여는 1965년 법적 지위협정에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됨을 규정하고 있었을 뿐 더 이상의 규정이 없었다. 하지만 공적 사회보장, 복지제도는 국민의 납세를 근거로 한 기금으로 운영되므로 일본사회에서 일본인과 동일한 납세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재일교포를 이로부터 배제한다는 것을 분명 불합리하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이 국제인권규약과 난민조약에 가입함에 따라 사회보장에서의 내외국민 평등대우의무를 지게 됨을 계기로 많은 이 문제의 많은 부분이 해결되었지만, 아직도 일부 재일교포는 이로부터 제도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특히 그들은 연금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고령자와 신체장애자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986년 개정 국민연금법 시행 당시, 60세 이상의 고령이라는 이유로 연금제도의 가입이 배제된 외국인, 1982년 1월 1일 국민연금의 대외국인 문호 개방 시 가입이 거부되었던 당시 20세 이상의 외국인 장애자, 그리고 1982년 1월 1일 기준으로 이미 (준)모자가정을 이루던 외국인, 이들에 대하여 현재까지 연금지불이 배제되고 있다. 이는 제도 시행 초기에 과거 일본인에 대한 것과 동일한 경과조치를 적용시켜 주지 않는 데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이며, 그 피해자가 당장 누구보다도 연금이 필요한 고령자와 장애자라는 점에 결과의 비인도성이 있다.Ⅳ. 해결방안1.사회적차원일본사회는 섬나라라는 지리적 위치로 단일민족의 신화 속에서 그들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들은 자국민이 아니면 외국인이라고 2분하여 생각한다. 이들의 이러한 폐쇄성으로 인한 차별은 재일교포들에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을 주고 있다. 재일교포는 일본의 식민통치 시절의 역사적 희생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식민지 시절이래 근 50년의 세월동안 일본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으며, 일본어를 사용하면서 생활하고 있어 사회구성원으로서 다른 일본인과 다름없다. 그런데 마냥 외국인이라고 외국인관리법제의 틀 속에서 일시체류 외국인들과 같이 처우하려것이다.
코믹 뮤지컬 ‘점프’(JUMP),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내 최초로 코믹 마샬아츠 퍼포먼스(Comic Martial Arts Performance)를 선보인 '점프‘.2005년 TV에서 내로라하는 스타급 배우 하나 없으면서 오로지 태권도, 쿵푸, 우슈 등 갖가지 무술 유단자인 배우들의 무술솜씨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줄거리가 전부라고 하는 ‘점프’가 2005년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 축제인 영국의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Edinburgh Festival Fringe) 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봤다. 많은 관객들과 평단에서 ‘점프’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페스티벌 기간 동안 공연되는 수많은 공연 중에서 높은 예매 성적을 기록하였다.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대사 없이 오로지 배우들의 몸짓과 탄성을 자아내는 고난도 무술동작과 와이어 없이 아크로바틱 기술을 보여주는 ‘점프’가 어떻게 공연예술의 본거지인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성공하게 되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공연을 이제야 보게 되었다.3월 종로에 있는 ‘점프 전용관’에 갔다. 지난 몇 년간의 성공에 힘입어 ‘점프 전용관’을 마련하여 오픈 런 방식으로 점프를 공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용관에서 공연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언제든지 공연을 감상할 수 있고, 여타 공연들처럼 극장 대관료로 인하여 티켓이 비싸지 않다는 것이 관객의 입장에서 좋았다. 또한 ‘점프’가 무술과 아크로바틱을 기본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더 높고 더 멀리 뛰어오를 수 있으려면 극장도 더 높고 깊고 넓어져야 했고, 세트의 안정성과, 배우들을 위한 충격완화를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전용관 극장은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관람한 날이 평일 낮이라서 그런지 나와 같은 학생들 보다는 어린아이들과 중장년층, 무엇보다도 외국인 관객들이 많았고 빈 좌석들도 있었다. ‘난타’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써 세계 공연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인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많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복도에서 앉아서 쉬고 있는데 점프에서 등장하는 배우가 꼬부랑 할아버지로 분장하고 기다리는 관객들과 어린아이들에게 장난을 걸며 관심을 끄는 모습을 보았는데 도대체 무슨 역할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어서 신선했다.하지만, 극장 건물이 원래 ‘점프’ 전용관의 목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쓰였다가 리모델링 공사를 하여 전용관의 모습을 갖추었기 때문인지, 극장 복도가 너무 협소하고 복잡해서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불편함을 느꼈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자 공연장이 크지 않아서 어디에 앉아도 잘 보일 것 같아서 좋았지만, 앞줄 좌석과 뒷줄 좌석 사이의 공간이 좁아서 키가 작은 나에게도 다리가 불편했다. 또한 앞줄 좌석과 뒷줄 좌석간의 계단 높이가 높지 않아서 공연을 보면 앞좌석에 앉은 관객의 머리 때문에 가려서 무대와 공연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의자에 무릎을 꿇고 보는 어린아이들도 많았고, 좌석이 꽤 남았기 때문에 잘 보이는 좌석으로 옮겨 가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영화나 연극 등 공연을 볼 때면 좌석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좌석이 편하고, 공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시야가 확보되어야지 공연을 제대로, 몰입해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점프’ 전용관 좌석은 불편하고 시야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서 몸을 이쪽, 저쪽으로 잘 보이도록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사실 편안하게 공연을 즐길 수 없었다. 또한 음향이 너무 커서 공연 중간에 깜짝 놀라기도 했는데 이런 점은 ‘점프’가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점이다.공연이 시작되고 아까 복도에서 할아버지 분장을 하고 관객들에게 장난을 치던 배우가 등장했다. 그 배우는 허리가 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백발의 할아버지로서 각 에피소드 사이에 등장하여 에피소드의 끝과 시작을 알리며 관객들에게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주며 막간의 재미를 주었다. 또한 공연이 시작할 때 음향 스태프, 조명 스태프 등 곳곳에서 공연을 위해 일하는 스태프들에게 준비 다 되었냐고 물어보며 답을 유도하였다. 또한 할아버지와 함께 소품을 옮기는 스태프들도 자주 등장하여 관객으로써 공연이 배우들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점프’는 총 4가지의 에피소드로 진행 되었는데, 배경은 무술유단자 가족의 집 거실이다. 갖가지 무술을 선보이며 등장하는 아빠, 엄마, 딸, 항상 술에 취해 있는 삼촌과 제대로 무술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엄청난 내공과 무술실력을 갖고 있는 것 같은 할아버지가 “평범하게 살자”라는 가훈아래 살고 있는 가족이다. 또한 할아버지의 소개로 딸과 사랑에 빠지는 손님, 평소에는 굉장히 순수한 샌님이지만 안경을 벗으면 평소와는 정반대로 터프하고, 엄청난 무술실력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무엇보다도 극의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도둑 두 명 또한 공연을 클라이막스로 이끄는 역할이다. 대사가 없는 넌버블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 : 비언어극) 이었지만, 그들의 과장되지만 코믹하고 단순한, 선 굵은 동작을 통해서 이들이 어떤 관계이고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 수 있었다. 또한 극 전개 흐름과 에피소드 내용이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아니고, 누구나 단번에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연령, 국적에 상관없이 모두 재미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극 중간에는 관객들 중 외국인 한 명을 무대로 데리고 나와 배우들이 하는 쉬운 무술 동작들을 따라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찾는 진정한 무술고수라고 치켜세우며 선물까지 증정했다. 그 외국인은 쑥스러워하면서도 특별한 경험에 감사해했다. 뿐만 아니라 관객들을 향해 키스를 연신 날리며 환호성과 박수를 유도하여, 단순히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는 입장이 아닌 공연을 함께 하며 즐길 수 있도록 하여 재미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