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1. 서론2. 본론◇ 민주주의와 관료제의 부적합 ◇◇ 민주주의와 관료제의 적합성을높이기 위한 방안 ◇3. 결론(사견)1. 서론관료제는 여러 측면에 있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학년 때 배운 「행정학개론」에서는 ‘목표 설정을 위해서는 민주적인 조직이 필요하며 목표수행을 위해서는 능률을 기본으로 하는 조직이 필요하지만, 많은 조직이 목표 설정과 목표 수행의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그로 인한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고 관료제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를 밝히고 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민주주의와 도시정부 관료제가 부적합하고 두 부분의 적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요구되는지 알아보자.2. 본론◇ 민주주의와 관료제의 부적합 ◇베버는 관료제화가 민주화를 초래하고 또한 민주화가 관료제화를 위한 기반이 되었지만, 관료제화는 민주화와 모순을 일으킨다고 주장하였다.또 Hayek와 Burhon은 관료제는 민주주의의 걸림돌이 되고 큰 정부,대기업의 등장은 권력성을 높이는 반면 창의성을 저하시켜 민주성을 낮게 만들고 효율성 달성을 어렵게 한다고 하였다. 세부적으로 보면첫째, 소수권력의 집단화이다. 관료제는 힘을 가진 소수에게 많은 권력을 부여하여 일반 국민의 참여보다는 소수 관료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한다.둘째, 오늘날의 관료제는 입법 및 정책수립의 권한까지 행사한다. 그래서 민중에 대한 자유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와 행정의 지나친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셋째, 명령과 통일을 강조한다. 관료들은 민중의 이익에 관련된 것 보다는 자신들이 세운 원칙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민중은 국가정책에 따를 것만을 요구한다.넷째, 관료들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왜곡하여 심리적 변용을 도모한다.다섯째,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하지만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따른다.여섯째, 관료제를 우선시하면 민중의 요구반영이 어려워 자칫 변화의 요구에 대한 둔감현상이 일어나고 민주주의를 우선시 하면 체계적인 조직과 질서가 흐트러진다.◇ 민주주의와 관료제의 적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 ◇관료제화가 민주화를 초래하고 민주화가 관료제화를 위한 기반이 되어 관료제화는 민주화와 모순된 면이 있고 관료제와 민주주의 모두를 충족시키기에 장애가 있긴 하지만 현실에서 민주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관료제가 필요하다. 어쩔 수 없는 민주주의와 관료제 사이의 딜레마라 할 수 있겠으나 관료제와 민주주의는 갈등적인 측면, 상호공존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앞에서는 갈등적인 측면으로 부적합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조화되기 위한(적합성을 높이는)방안에 대해 보자.첫째, 관료제와 민주주의. 두 집단의 가치 중 공익에 우선시되는 쪽에 비중을 두고 집행한다.둘째, 행정과 정치의 분리를 통해서 중립성을 부여한다.셋째, 두 부분의 상충점에 점증적인 접근방식을 도입한다.넷째, 공직 취임에 있어서 기회를 균등하게 한다.다섯째, 법 앞에서 모든 사람들의 평등을 보장한다.여섯째, 연고성을 배격하고 효율적인 집행체제를 갖춘다.일곱째, 입법활동의 보완기능을 한다.3. 결론(사견)관료제와 민주주의. 둘은 물과 기름 같은 면도 있고 물과 설탕 같은 면도 있는 듯 하다. 둘의 비례를 잘 맞춘다면 더없이 좋은 제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를 너무 우선시 하면 질서가 무너지고 체계적이지 못하며 그렇다고 관료제를 우선시하는 것도 민중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에 있어서 괴리가 올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논의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와 관료제의 부적합성과 적합성의 차이는 종이의 앞뒷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가 관료제를 특권집단이나 병리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면 부적합성이 돋보일 것이고 관료제를 합리화된 체계적인 조직구조라고 이해하면 오히려 둘은 적합한 것 같다. 둘 중 어느 하나를 꼬집을 수 없게 관료제는 장,단점이 있고 민주주의 또한 장,단점이 있다. 민주주의를 배제한 관료제는 백성없는 왕이라고 표현하면 관료제 없는 민주주의는 아마 그 반대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관료제의 장점과 단점을 잘 절충하여 이용한다면 둘 사이의 딜레마도 극복하고 한 층 더 조화관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광장"을 읽고...유사 이래 많은 인간들이 그들의 이상 세계 실현을 위해 애썼지만 오늘날까지 인간에게 만족감을 주는 세계는 건설되지 못했다. 특히 근대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에서 그들의 꿈을 실현시켜 줄 장을 찾고자 했지만, 그들은 장을 찾은 성취감대신 '우리들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라는 절망감만 느꼈을 뿐이다. 광장의 이명준 역시 그런 부류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인간에게 있어 이데올로기란 어떤 의미를 지니며, 가치있는 인간사회는 어디에 있는가 에 대해 묻고 있다.이명준은 대학 철학과 학생으로서 아버지 친구집에서 얹혀 살고 있던 중 개인의 탐욕, 도덕적 탈가, 부정부패로 얼룩진 남한을 탈출하여 북에서 그가 원하던 세계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북에는 당의 명령만 따라 행하는 개성없는 집단만 있을 뿐이었다. 삶에 회의를 느낀 명준은 6.25 전쟁에 공산군으로 참전하게 되고 거기서 소형 사진기로 공산군 시설을 찍다가 붙잡혀 온 옛 은인의 아들 태식과, 그의 부인이 된 옛 애인 윤애를 만나게 된다. 태식을 고문하며 명준은 태식에게 자네가 이런 일을 하다니 뜻밖이야. 자네가 이처럼 고생할 가치가 남조선에 있던가? 라고 묻고, 태식은 명준에게 자네가 그 자리에 앉아 있을만한 가치가 북한에 있었던가 묻고 싶어. 라고 되묻는다. 윤애와 태수를 탈출시켜준 후, 낙동강 전선에 참가한 명준은 거기서 간호병이 될 은혜를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은혜는 전사한다. 전쟁이 끝난 후 명준은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 행을 택한다. 그리고 중립국으로 떠나는 타고르 호 에서 바다에 몸을 던진다.명준이 원했던 사회, 그것은 남한의 개인적 욕망으로 가득찬 밀실 도 아니었고 북한의 개성 이 존중되지 않는 허황한 광장 도 아니었다. 그가 원했던 건 그의 마지막 죽음의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갈매기 로 표상되는 두 여인과의 사랑, 즉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사랑이었다.인간에게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특정 엘리트 집단에게는 고민의 대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대중에게 이데올로기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들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를 따지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보다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데올로기란 소수의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찰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다. 그것에 대한 고민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고, 그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있을 때 조금이나마 나은 삶을 살 수 있을테니까.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이념이 특정인 또는 특정 집단의 이익 추구를 위한 매개체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민족 운동가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념보다는 민족이 우선이다. 이념이 통일을 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면 우리는 그 장애물을 치워야 한다. 어찌 보면 감정에 치우친 극단적 애국심에서 나온 발언이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이 말은 통일의 진정한 장애물이 특정 집단의 이익 추구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