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책 제목을 보면 그 내용을 예측하게 된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게 될지 어떤 성격의 글일지.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옛 선비들의 삶을 떠올렸다. 시를 짓고 문장을 쓰면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 당연히 남자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책을 보고 그때서야 이 제목이 ‘운영전’임을 깨달았다.‘운영전’은 이미 많이 읽은 소설이다. 수능을 준비하면서, 국어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원문도 읽고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쓴 책도 읽어보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어렵거나 쉬웠다. 그러나 이 책은 고등학생이나 일반인들이 읽기에 알맞게 풀어 쓰여 있었다. 너무 유치하지도, 어렵지도 않고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좋은 그림을 함께 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운영전’의 일부를 읽으면서 그 내용이 궁금했던 학습자들은 요약된 줄거리가 아니라 쉽게 풀어 쓴 ‘운영전’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다.운영과 김진사의 사랑 이야기는 당시 사회 상황을 고려해볼 때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자유연애가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 사회에서 그들의 만남은 신분을 뛰어 넘게 만드는 그 힘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열정을 일깨워주었다.또 책 속에서 작은 코너를 빌어 안평대군과의 인터뷰나 한시의 특성, 조선시대 궁녀의 삶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 소설에 대한 이해를 더욱 쉽게 하였다.이 이야기가 다른 고소설에 비해 특별한 점은 이곳저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이 이야기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어 이야기에 사실성을 더해준다. 작자 미상의 소설이지만 외화와 내화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유영'이라는 관찰자를 통하여 이야기에 더욱 사실성을 부여한다.그리고 김진사의 관점보다는 운영의 눈으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당시에는 홀대하였던 여성의 사랑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여성 화자 특유의 섬세함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므로 그들이 주고받은 한시를 읽으면서도 비단결 같은 운영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이 작품이 그들의 영원한 사랑을 더욱 더 부각시켜 주는 이유는 결말의 비극성에 있다. 그들은 결혼을 해서 결국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 아니라 운영의 자결, 그리고 김진사의 죽음으로 마치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는 듯 하다. 결국 그들은 천상에서 함께 하지만 인간 세계에서의 뼈저린 아픔을 느낀 후라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국어 교과서에 등장하는 고전 ‘운영전’은 소설의 전체가 아닌 그 일부만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에 실린 작품은 일부만이 아니라 문학 작품 전체를 읽어야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는 어려운 원문이나 너무 쉽게 풀어 쓴 동화 형식의 글이 아니라 이 책과 같은 적정 수준의 글이 필요하다. 따라서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은 감히 필독서라 말할 수 있다.아무리 우리에게 필요한 고전이라고 하더라도 몇 백 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흥미진진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고전을 소개하는 책에서는 그 시대 상황을 비롯하여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작품 외의 자료들이 많이 필요한데, 이 책에서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지금의 연애편지나 메신저 대화 혹은 문자에 해당하던 운영과 김진사의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시의 이해에 대한 글을 싣고 있다. 그리고 그 시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본문의 삽화를 구성하여 좀 더 시에 대한 느낌과 운영과 김진사의 애틋한 비극적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독자들을 돕고 있다.또 당시 궁녀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녀의 삶에 대해서도 조명해보고 운영을 궁녀로 데리고 있던 대군, 즉 안평대군이 어떠한 사람인지, 그의 예술적 감각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문학 작품 외에도 추가 자료를 통하여 작품을 좀 더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한 흔적이 엿보인다.책의 말미에서는 ‘운영전 깊이 읽기’라는 코너를 통하여 금지가 만들어 낸 사랑의 비극에 대해서도 자세히 싣고 있다. 운영전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와 함께 이 소설이 더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낼 수 있었던 이유인 비극적 결말에 대해서도 해피 엔딩(Happy Ending)과 비교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춘향전과의 비교를 통하여 ‘금지’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고 중세 신분 질서와 윤리 규범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한다.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모든 말채인선, 김은정의 ‘아름다운 가치 사전’은 아름다운 가치를 담은 24가지의 단어를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생활 속 예시를 통해 설명, 풀이하고 있다.사실 아이들이 ‘감사’가 뭐에요?라고 물어왔을 때, 감사는 명사로서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 또는 고맙게 여기거나 그러한 마음을 말한다고 설명하는 것은 그야말로 ‘감사’에 대한 이론일 따름이다. 단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 대신 감사라는 것은 소풍가는 날, 엄마가 일찍 일어나 김밥을 싸 주실 때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덜 논리적이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는 각각의 낱말을 머리로 외우기보다 가슴으로 느끼길 바라는 나의 작은 바람이 담겨있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이러한 실생활의 예시를 통해 설명하듯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기억했다.또한 책에서는 각각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아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겸손’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면 주위의 겸손한 것들을 찾아보는 활동을 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어른들이 바라보는 눈높이에서의 단어의 정의와 아이들이 생각하는 단어 사이에는 작은 차이가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그저 관념적이라고 생각했던 말들이 각각 일상의 사건들을 만나 그 때의 느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또한 내가 어렸을 때는 아름답다고 배우고 느끼지 않았던 유머와 자신감에 대해서도 이 책은 말하고 있다.으레 유머라는 말은 실없는 농담 따먹기나 개그맨들에게나 필요한 말로 인식되었지만 조선 후기 그림에 등장한 해학적인 호랑이를 통해 우리 아이들은 유머에 대한 개념을 재정비하게 된다.자신감 역시 자칫 잘못하면 자만심이나 오만함이 되어 ‘버릇없다’는 이미지를 주는 말이 아니라 ‘실수로 얻어지는 것,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즉,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게 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단어인 것이다.
사랑의 기술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기술’이라는 제목을 보고 흔히들 이 책을 사랑의 기술에 대한 편리한 안내서 쯤으로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실용서가 아니다. 사랑에 대한 정신분석학의 이론을 빌린, 그러나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가치 있는 책이다.저자는 사랑은 감미로운 감정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것, 그 사랑 속에서는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사랑하거나 사랑받는 느낌을 분석하여 지식으로 내세움으로서 사랑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저자는 사랑에 대한 중요한 몇 가지 오류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사랑은 배워야 할 대상으로 ‘사랑하는’ 능력과 ‘사랑 받는’ 능력의 차이, 사랑의 ‘능력’과 사랑의 ‘대상’의 차이, 그리고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을 ‘하고 있는, 즉 머물러 있는 상태’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 차이를 인지하게 되는 순간, 사랑의 오류에서 벗어나 사랑이란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필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본문에서는 사랑의 이론에 대해 서술한다. 인간 실존의 문제와 해답으로서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사랑의 대상-형제애, 모성애, 성애,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에 따른 사랑에 대하여 설명한다. 감정이라는 개념의 ‘사랑’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또한 서양 사회에 있어서의 사랑의 붕괴를 설명하고 후반부에서는 사랑의 실천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던 부분에서도 사랑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이것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게끔 도와준다.에리히 프롬은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할 수 있으며 당신을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즉 당신을 사랑한다는 짧은 말 한 마디 속에도 그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즉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수히 많은 성질들에 대해 이해에 앞서 생각할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해 준다.
서평 과제-다수와 소수의 행복이 공존하는 사회를 위하여마서즈 비니어드 섬의 청각 장애마서즈 비니어드 섬은 ‘섬’이라는 폐쇄적이고, 단절된 사회 구조와 반복된 친족 결혼의 결과로 다른 도시에 비해 월등히 높은 청각 장애 발생률을 지녔다. 우리 가족 중에도, 옆집 가족 중에도, 친척 중에도, 친구들 중에도 언제나 청각 장애인이 있었기 때문에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청각 장애를 특별한 장애로 생각하지 않았다. 청각 장애인들을 따로 분류하여 구분하거나 동정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행동은 마서즈 비니어드 섬의 인구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장애’의 환경성손이 세 개인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는 손이 두 개인 사람이 특수하다는 말처럼, 장애도 우성이나 열성의 요소로 배척되기 이전에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대부분의 인간은 환경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고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힘을 가지고, ‘일반’으로 분류되는 것은 ‘다수’ 이다.주위 사람들 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청각 장애인이라면, 그들은 청각 장애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섬의 청각 장애인들은 사회로부터 분리되거나 배척되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사회에의 융합이 힘들지 않았다. 쌍꺼풀이 있거나 없는 사람들처럼,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들처럼 청각 장애는 그들의 특징의 하나에 불과했다. 그것은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잘 드러난다. 그들에게 청각 장애인 몇 명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에 관한 설명을 요구하면, 그가 능력 있는 어부였다든가, 키가 컸다든가, 일을 잘 했다는 설명을 한다. 각 개인에 관한 내용이다. 그 후, 그들이 모두 청각 장애인이 아니었는가를 다시 질문하면, 인터뷰이는 조금의 생각 끝에 ‘그들은 모두 청각 장애인이었군요!’ 라는 사실을 떠올리곤 했다.하지만 청각 장애인이 거의 없는 곳에서 그들의 이름을 몇 명 거론한 후, 이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는다면, 대답은 뻔하지 않은가.‘그들은 모두 청각 장애인이었어요!’소수의 문제, 소수의 인권이 섬의 이야기는 장애라는 것 역시 불편하기는 하더라도 결국은 사회적 소수의 문제이기 때문에 등한시되고, 그림자에 갇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소수의 문제이고, 소수의 인권이기 때문에 다수는 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 사실 관심을 가질 기회조차 쉽게 부여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 불편한 문제로 치부된다. 필요에 의하면 누구나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주위에는 장애를 돕는 것이 필요한 경우는 많지 않다. 나를 포함한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장애를 만나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수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마서즈 비니어드 섬에서 수화를 생각하는 인식과 오늘날 수화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 또한 존재한다. 마서즈 비니어드 섬에서 청각 장애인이 거의 사라져가는 시기에 수화를 구사하는 사람을 보면 수화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제 2 외국어, 예를 들면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보듯 부러워했다. 하지만 오늘날에 수화를 구사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복지관에서일하는 사람이든가, 가족 중 청각장애인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겠구나, 라고 생각해 버리곤 한다. 그리고 수화를 사용하는 일은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되면 화제를 낳게 되기도 한다.유명 개그맨 ‘신동엽’은 MBC 일요일 예능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TV 프로그램 중 ‘신장개업’)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다. 그 프로그램은 경제적 재생 능력이 없는 가게에 가서 대박집 사장님과 연계를 시켜주고 가게를 재오픈 하게 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에 청각 장애인이 등장한 적이 있다. 진행자였던 신동엽은 청각 장애인들과 익숙하게 수화를 구사하여 - 대화의 내용은 자막으로 보여졌다. - 세간의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신동엽이 수화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은 그가 그의 친형과 수화로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었다. 신동엽은 친형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수화를 배웠을 것이다.하지만 그 이전까지 수화는 TV 뉴스 한켠에 잘 보이지도 않는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 전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놀라워했고, ‘신동엽’이라는 유명인사의 행동으로 수화는 한동안 이슈가 되었다.그리고 나는 그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우리 반 친구들과 학교 축제에서 반 공연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 하던 중이었다. 나와 우리 반 친구들은 신동엽을 통해 수화를 공연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수화로 ‘하나 되어’ 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수화를 배우기 위해 수화 선생님을 초청하고, 기본적인 수화 동작들을 익히며 손에 쥐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많은 양에 지치고 하기 싫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배우는 손의 언어로 앞으로 만나게 될 누군가와 -제한적이지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하던 기억이 난다.또 얼마 전 KBS의 ‘남자의 자격’이라는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인기 배우 ‘이정진’이 자격증 도전에서 ‘수화 자격증’을 도전해 다시 한 번의 바람이 일었다. 신동엽, 이정진, 김제동 등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수화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그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수화 학원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며, 미디어 매체에서 수화 등 장애인과의 소통을 위한 긍정적인 방법의 노출을 통해 오늘날 우리들에게 인식의 전환을 심어주는 것은 큰 성과라고 생각했다.다수와 소수의 공존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처럼 오늘날의 우리들이 장애인과 더불어 익숙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그 섬에서의 생활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다. 아침에 빵집 아저씨를 만나듯이, 학교에 가면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듯이 자연스럽게 사회 속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통합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사회에서의 만남, 그 시발점에 학교를 통한 통합 교육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학을 갔다. 전학 간 학교에서 두근거리며 처음 만난 짝은 눈빛이 이상했다는 기억이다. 그 아이는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저 뒤편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아이는 이름이 양수였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처음 만난 조금 다른 친구를 보며 잔뜩 긴장해서 양수가 수업 시간에 선생님도 못 본체 하고 칠판에 그림을 그리거나, 신문지를 가지고 복도를 뛰어다니는 것을 보느라 수업에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반 친구들은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랐고, 양수의 행동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나는 양수를 비롯해 여자 아이인 설희 등 다른 장애를 가진 친구들 몇몇과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그 사이 나 역시 그 친구들이 울거나, 떼를 쓰거나, 내 머리를 툭툭치는 것은 나와 놀고 싶어 하기 때문이고, 설희에게서 냄새가 나면 같이 화장실에 다녀와야 하고, 떼를 쓰면 대부분은 배가 고프기 때문이라는 등의 사실들에 익숙해졌다. 그 이후로 나는 양수와 설희에게 익숙해져서인지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거리에서 만나더라도 무섭거나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만난 한 친구가 자신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소아마비인 친구를 보고 무서워서 울면서 도망갔다는 얘기를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이후, 대학교에 들어오고 난 후 나는 한 친구와 매우 친해졌다. 그 친구는 누구에게 화내는 법도 없고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착하고 마음이 따뜻한 친구였다. 어느 날 그 친구와 연극을 보러 대학로에 나갔다가 우리는 양수처럼 몸이 불편한 친구를 만났다. 몸이 불편한 그 친구는 왼손으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자 내 친구는 그 모습을 보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틀렸다’라고 말했다. 나는 놀라서 ‘왜?’라고 물어봤는데, 사려 깊은 내 친구였기 때문에 나는 더 놀랐다. 평소에 사람들을 잘 무시하고 건방진 아이였다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항상 남을 배려하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친구는 그 친구가 틀렸다고 말했다. 왼손으로 물을 마시는 것도 틀렸고, 걷는 방법도 틀렸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게 왜 틀렸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당연한 것을 왜 되묻느냐’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