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끼요에 - 인상파의 교과서1. 들어가기──────────────────────────────────────────이 고장의 풍경은 맑은 대기와 선명한 자연의 색채가 태양 아래 빛납니다. 물은에메랄드 색깔로 빛나는데 역시 우끼요에 판화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빈세트 반 고흐, 아를에서 지인에게 보낸 편지 중.Why, Japan??현대 유럽 미디어 아트 작가인 Dominique Gonzolez - Foerster의 대표작인 「RIYO」는 일본의 한 도시가 배경이다. 전형적인 일본의 소도시에서 전형적인 일본의 한 남녀가 통화를 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영상이지만 이 작품은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들은 이 작품에서 알 수 없는 신비감과 향수를 느꼈던 것 같다. 비단 도미니크뿐만이 아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고흐, 모네, 마네, 고갱, 로트레크 등 인상파 화가들도 일본의 미술에 심취하였고 그들의 작품에 일본 미술적 요소를 넣으려 노력했다. 클림트는 집 안에 일본 미술품뿐 아니라 기모노까지 소장했으며 자신이 직접 기모노를 디자인하여 작업복 같이 입기도 하였다. 미술은 전 세계적으로 존재했으며 서양의 미술에서 시각을 돌려 바라볼 수 있던 동방 미술의 종류는 다양했다. 그런데 왜, 유독 일본일까. 어째서 유럽의 수 많은 예술가들은 아직까지도 일본에 탐닉하는 것일까.주제 선정 & 전개할 내용서양의 미술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일본 미술의 장르는 바로 일본의 민속 판화격인 “우끼요에”이다. 그리고 그 우끼요에의 대들보역인 사람이 바로 우타가와 히로시게이다. 지난 4월 23일부터 문화일보과 금호미술관, 니키컬렉션의 공동 주최로 「일본 미술의 두 거장. 히로시게 & 아와즈 : 우끼요에와 일본현대디자인 展」이 개최되었다. 우타가와 히로시게 작품 세계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진품들이 전시되었고 여기에는 고흐가 따라 그렸던 ‘카메이도 자두 과수원’과 ‘오하시 다리위의 소나기’도 포함되어있었다. 또, 일본 현대디자인의 거장인 인한 껄끄러운 감정 때문에 거의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우끼요에를 새롭게 알아가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우끼요에 - 인상파의 교과서2. 우끼요에 - 인상파를 매료시키다──────────────────────────────────────────덧없는 세상의 그림우끼요에는 17세기 에도시대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안정된 정치 상황이 경제나 문화의 발달을 가져왔고, 상공업의 발달은 새로운 유형의 시민 계급을 탄생시킬 정도로 사회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 때 유럽 미술의 유입으로 일본인들은 합리적이고 사실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사회상이 우끼요에에 그대로 반영되어 가부키 배우를 비롯하여 미인과 명소 풍경 등 일상의 모습들이 판화의 주제로 표현되었고 신흥 시민 계급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우끼요에’라는 말은 ‘우끼요’와 ‘우끼에’의 합성어로 해석된다. 우끼에란 ‘표면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게 그린 그림’, 다시 말해 서양화의 원근법을 이용한 그림이라는 뜻이다. 우끼요의 우는 ‘우울하다’의 憂 , 또는 ‘부박하다’의 浮 자를 쓰고 요는 ‘세상’의 世 자를 쓴다. 즉 우끼요는 덧없는 세상, 뜻대로 안되고 괴롭고 쓰라린 세상, 또는 뜬 세상, 속세를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우끼요에는 그 당시, 에도 시대 당시의 서민 생활을 제재로 그린 그림을 의미한다. 대부분 값싸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다색 목판화에 향락적인 배경을 깔고 있어서 대중들에게 더욱 인기를 얻게 되었다. 아름답기는 하였으나 지나치게 전형적인 인물 묘사와 말초적이고 자극적, 선정적인 표현 때문에 타락하였고 말기를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풍경화가 장식하게 된다.화가의 눈길, 장인의 손길다색목판화에 섬세한 표현까지 담아내기 때문에 우끼요에는 손이 많이 가는 작품이다. 우선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 총 감독의 역할로서 우타가와 히로시게도 이 역할이었다. 완성된 그림은 목판을 파는 사람에게 주어지고 그림을 받은 사람은 나무에 그림을 붙여서 파내게 된다. 이로써 처음의 원화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완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찍힌다. 이렇게 찍힌 의 경우 현재 전 세계에 6 세트의 원본이 존재한다.우끼요에 - 인상파의 교과서2. 우끼요에 - 인상파를 매료시키다──────────────────────────────────────────카메이도 자두 과수원풍속화가에는 원래 서민 출신이 많지만 우타가와 히로시게는 무사 가문 출신이었다.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아 소방관이 된 히로시게는 36세에 아들에게 관직을 물려주고 본격적인 풍경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62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 2년간의 작업을 통해 완성한 것이 바로 이다. 119점에 달하는 이 판화 시리즈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순서에 따라 작품을 배열하였으며 에도의 풍경뿐만 아니라 당시의 풍속과 생활상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봄의 매화나무를 그린 ‘카메이도 자두 과수원’, 격렬한 여름 소나기를 그린 ‘오하시 다리위의 소나기’, 보름달이 뜬 가을 밤의 시바이쪼의 활기찬 모습을 그린 ‘사루와카쵸 밤풍경’, 겨울의 아사쿠사, 카미나리문을 아름다운 설경 속에 묘사한 ‘아사쿠사 킴류산’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카메이도 자두 과수원’과 ‘오하시 다리위의 소나기’는 고흐가 감명받아 모사한 작품으로 더욱 유명하다.봄의 풍경 중 일본을 대표할 만한 매화나무를 그린 ‘카메이도 자두 과수원’은 우끼요에의 아름다움을 종합하여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어떤 이유로 인상파화가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는지도 담고 있는 작품이다.그 이전의 동양화는 많은 여백을 남기고 대상을 작게 표현하거나 색감은 거의 없는 수묵화가 대부분이었다. 정적인 구도와 느낌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생동감은 느끼기 힘들었다. 반면 서양화의 경우, 지나치게 디테일한 묘사를 중요시하였으며 원근법도 엄격하고 절제되어서 사실적인 묘사가 되어야만 했다. 구도 역시 정형화 되어 있었다. ‘카메이도 자두 과수원’의 경우는 그 둘 중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독창적인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푸른 잔디밭, 길게 늘어선 사람 차지하고 있는 매화나무는 바로 눈 앞에 부딪힐 듯이 커다랗게 그린 반면 그 외의 다른 나무들과 사람 등 모든 것은 아주 작게 표현해서 보고 싶고, 그리고 싶은 것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런 표현 방법으로 인해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주제 - ‘자두 과수원’의 나무는 보다 더 확실하고 강하게 표현되었다.극적인 원근법만큼이나 극적으로 쓰인 것이 단순화이다. 작품 중 어느 것도 디테일하게 묘사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나무는 단지 갈색의 색면들로 이루어 진 듯 하고, 꽃은 동그란우끼요에 - 인상파의 교과서2. 우끼요에 - 인상파를 매료시키다──────────────────────────────────────────선 안에 대충 수술만 표현하였다. 사람은 거의 형체만 거의 알아볼 수 있게 대충 그려놓았다. 목판화이기 때문에 세세한 표현이 힘들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작품들을 볼 때 세세한 표현은 목판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마치 일부러 대충 그려놓은 듯한 이런 방식들은 인상파 화가들에게서도 자주 발견 되는데, 관객들로 하여금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세부적인 요소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풍경과 느낌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카메이도 자두 과수원’은 과수원을 산책하다가 눈에 보인 짧디 짧은 한 순간의 컷을 순간적으로 담아낸 듯한 모습이다. 이런 방법이 오히려 풍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게 하였고, 그림을 보면서 사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풍경을 보면서 받는 느낌들을 느낄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인상파 화가들의 교과서기존의 서양화가 어두운 실내에서 정형화된 데생, 원근법, 채색법을 이용하여 작품을 그리는 것에 반대했던 인상파 화가들은 야외로 나가 밝은 빛 아래에서 작품을 그렸다. 그들은 빛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모습과 순간적인 인상들을 신속하게 화폭에 담고 싶어 했다. 그런 그들에게 원색의 화려한 우끼요에 풍경화는 교과서 같은 역할을 했을게 구도도 자유롭다. 수평으로 뻗은 잔디와 수직으로 곧게 선 나무로 인해 크림 틀이 절단되고, 좌우나 상하의 대칭이 맞지 않는다. 히로시게의 화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인데, 대부분이 비대칭적이며 창문, 다리, 나무에서부터 사람의 다리나 잉어, 거북이 등 까지 이용해서 전면을 가른다. 사물도 전체가 틀 안에 들어오지 않고 절단 되어 있는 경우도 흔하다. 보이는 사물은 모두 그림 틀안에 속해 있어야 하고 안정적인 구도가 맞춰져야 했던 서양화만 보던 인상파 화가들에게 이런 구도는 매우 신선하고 자유로워 보였을 것이다.이전의 서양화였다면 자두과수원은 설화의 배경이었거나, 인물들의 배경이었을 것이다. 나무 하나가 전면을 차지하고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후면에 그린 듯 만 듯 하게 표현되는 식의 그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서양화의 주제는 한정되어 있었고 시각도 국소적이었다. 하지만 히로시게는 다양한 풍경은 물론이고 같은 장소를 계절이나 기상 변화에 따라우끼요에 - 인상파의 교과서2. 우끼요에 - 인상파를 매료시키다──────────────────────────────────────────달리 그려내기도 했다. 때로는 사람이 주제가 되는가 하면 때로는 꽃이, 비나 눈이 주제가 되기도 했다. 주제에 따른 구성이나 표현 방식도 달랐다. 빛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어 했던 인상파 화가들에게 호응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갱의 그림을 보면 굵고 진한 윤곽선으로 평편하게 대상을 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확실히 히로시게 우끼요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화집 속이 모든 물체는 윤곽으로 형태를 표현한다. 고흐는 ‘나는 모든 사물이 제자리를 찾은 듯한 일본 화가들의 선명한 이미지가 부럽다. 그네들의 그림은 결코 지루하지 않고 결코 황급히 그려졌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들의 작품은 숨쉬는 것처럼 단순하며, 자기 옷의 단추를 채우는 것 만큼이나 간단한 일인 양 아주 쉽게 선명한 윤곽선으로 대상을 표현한다“고 하였다.목판화의 특성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