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운명성과 우연성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와 논의들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사랑을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에 의해 필연적, 운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한 신화에 따르며 태초의 인간은 날 때부터 자신의 짝이 정해져 있고 그 둘의 몸은 서로 붙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들의 힘이 점점 강해지면서 그 힘을 이용해 신에게 도전하려 했다. 이 때문에 신들은 분노했고 인간의 힘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붙어있던 몸을 둘로 나누어 버린다. 이것이 현재 인간의 모습이다. 그때부터 인간은 잃어버린 짝을 그리워하며 일생동안 그를 찾아 헤맨다고 한다. 이 신화에서 이야기 하듯 사랑은 운명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우연에 의한 것일까?사전에서 운명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힘, 또는 그 힘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길흉화복이라고 정의된다. 반면 우연은 뜻밖에 저절로 됨, 또는 그 일이라고 정의된다. 이 둘은 대립적 개념으로 인식되기 쉬우나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해 보면 연결된 고리를 가진다. 한 예로 수학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자. 어떠한 대상을 짧은 시간동안 미시적으로 관찰하면 그 결과의 대부분은 우연적 현상이며 필연적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시간대와 공간대를 넓힐수록 우연과 필연은 연결고리를 가지게 되고 그것은 점점 단단해 진다. 하나하나로는 비록 우연적일지라도 그 집합은 합리적 확률주의가 지배하는 필연적인 것이 된다. 대수의 법칙이라 불리는 이것은 수학적으로 우연과 필연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러한 예들을 통하여 우리는 우연과 운명은 서로 상충된 개념이라고 말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우연과 운명의 개념을 바탕으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자.첨밀밀에서 주인공 이교와 여소군의 만남은 지극히 우연적이다. 약속을 정하지 않았음에도 계속되는 만남들이 없었다면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론자들은 사랑이 우연의 반복에 의해 생성되는 감정의 하나이며 운명은 수많은 우연들 중에 자신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한 사랑이 운명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개인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게 되고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하지만 우리가 어떤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만남을 우연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첨밀밀의 엔딩장면은 기차 안에서 머리를 맞대고 잠든 두 사람을 보여주며 사랑의 운명성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을 통해 우리는 우연처럼 보였던 그들의 만남이 우연이 아닌 운명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운명이라고 해서 모든 만남과 그 밖의 상황 전체가 시간표처럼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운명에는 개인의 의지와 같은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 한 예로 과거의 남자와의 로맨스를 그린 ‘케이트&레오폴드’를 들 수 있다. 이 영화의 엔딩에서 여주인공은 1700년 전의 사진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사진은 그녀의 운명이 남자와 함께 과거로 돌아가 사랑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보여준다. 그녀는 고민 끝에 과거로 가기로 한다. 이 영화처럼 사랑에는 운명이 존재하지만 당사자의 의지와 선택이 반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