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1. 한국 근대사의 정의 2. 외세 침략과 민족운동 3. 개화와 척사의 갈등 4. 농촌경제의 파탄과 반봉건 반침략운동 5. 대한제국의 성립 6. 일제의 국권침탈과 민족항쟁 7. 일제의 식민통치와 민족항쟁 8. 3.1 운동 및 상하이 임시정부 9. 대한민국 수립과 발전 10. 6.25 전쟁 11. 4.19 혁명 및 5.16 군사정변 12.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0 년 ) 13. 6.29 민주화선언 (1987 년 ) 목록1. 한국 근대사의 정의 및 개념 한국 근대사는 한국사의 한 부분으로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하게 된 이후부터 광복 이전까지 .2. 외세 침략과 민족운동 1) 개항 :1876 년 조선은 개항과 함께 근대사회로 전환이 이루어짐 . 2) 열강과 조약 : 일본과 조약으로 개항정책을 취하게 된 조선은 1880 년대에 접어들면서 개화당의 주장과 청나라의 권유에 따라 구미 각국도 통교하게 됨 . 3) 제국주의 세력의 침투 : 일본은 개항장을 통해 조선의 미곡 및 금을 싼 가격으로 수입해가고 , 영국산 면제품을 비싼 값으로 조선에 수출하는 중개무역으로 경제적인 침투를 시작 .3. 임오군란 , 갑신정변 ( 개화와 척사의 갈등 ) 임오군란 : 미곡이 일본으로 대량유출 되는 가운데 군인들은 1882 년 겨와 모래가 섞인 녹봉미를 받자 흥선대원군의 지원하에 임오군란을 일으킴 . 갑신정변 : 개화당은 청국의 조선에 대한 개화 정책에 대한 탄압에 대하여 단호하게 무장 정변의 방법으로 대항해서 나라의 독립과 자주 근대화를 달성하려 한 것 .4. 농촌경제의 파탄과 반봉건 반침략운동 동학농민전쟁 : 농민들의 항거 동학의 종교조직을 통해 대규모 동학농민전쟁으로 발전 갑오경장 : 입헌군주제 실시 , 평등사회건설등 근대적인 것이 었음 .5. 대한제국의 성립 대한제국 성립 : 1897 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 자주국가임을 내외에 선포함 . 독립협회의 창립과 활동 : 관민 합동으로 근대화 운동으로 출발 했지만 보수정권에 의해 1898 년 강제로 해산 .6. 일제의 국권침탈과 민족항쟁 일제의 국권침탈 을사조약 : 러일전쟁 승리를 계기로 1905 년 제 2 차 협약인 을사협약을 강제 체결함 . 애국계몽운동 전개 - 일제침략에 항거하는 의병 전쟁 발생7. 일제의 식민통치와 민족항쟁 식민지 통치기구 : 조선총독부 설치 헌병경찰제도 : 일본 헌병이 한국민간인에 대한 경찰을 담당 . 토지 조시 사업실시 :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자 토지 약탈을 목적으로 실시8. 3.1 운동 및 상하이 임시정부 3.1 운동 :1919 년 3 월 1 일 민족 대표들은 태화관에서 학생과 시민들은 탑골 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함 . 임시정부의 성립 : 1919 년 9 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 .9.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 1945. 8.15 해방 : 2 차세계 대전에서 일본군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광복함 . 신탁통치 문제 : 모스크바 3 상 ( 미국 , 영국 , 소련 ) 대표들은 한국을 5 년동안 신탁통치를 결의함 . 5.10 총선거 : 유엔에서 권고한 남북한 총선거를 북한에서 받아들이지 않아 남한만 실시 . 대한민국 정부수립 (1948.08.15) : 이승만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정부수립 . 북한 공산정권수립 (1948.9) : 김일성이 이끄는 공산주의정권이 들어섬 .10. 6.25 전쟁 북한의 남침 (1950.6.25) : 전쟁을 준비해오던 북한의 남침 . 남한군의 후퇴 - 유엔군의 파견 - 인천상륙작전 - 중공군의 개입 - 휴전 (1953.7) 결과 : 남한에서 약 200 만명이상의 사상자 발생 . 인적 , 물적 피해 , 이산 가족등이 발생 .11. 4.19 혁명 및 5.16 군사정변 4.19 혁명 -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 : 자유당의 헌법개정등으로 장기집권 /3.15 부정선거 . - 결과 : 이승만 정권의 퇴진 (1960.4.27) 및 장면 내각의 출범 . ( 의원내각제 채택 ) 5.16 군사정변 - 4.19 이후 계속된 정치분열 및 시위로 인한 사회혼란 /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부의 군사정변12.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0 년 ) 장기 집권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10.26 사태 ) 후 다시 정권을 잡으려던 일부 군인들에 게 민주주의를 원하는 국민들의 반감이 고조됨 .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짐 / 대규모 민주화 운동이었으며 많은 시민들이 죽거나 다침 .13. 6.29 민주화선언 (1987 년 ) 배경 : 제 5 공화국의 비도덕성과 비민주성에 대한 비판과 함께 헌법을 대통령직선제로 고치자는 주장을 포함 , 민주적인 헌법에 대한 요구가 강해짐 . 6 월 민주항쟁 : 전국 신민 , 학생 , 노동자가 참여 민주화 요구 운동이 일어남 . 6.29 민주화 선언 : 6 월민주 항쟁결과로 , 정부는 대통령직선제로 개헌요구 승인함 .감사합니다 .{nameOfApplication=Show}
화상 ( 华商)목차 화상 ( 华商) 이란 ? - 정의 화상자본 세계 화상대회 한국화교의 역사 한국 화교의 인구 및 출신 한국 정부의 규제 한국내 인천 차이나타운 결론화상 ( 华商) 의 정의 정의 : 타이완 , 홍콩 , 싱가포르 , 말레이시아등 동남아시아와 미국 , 유럽 , 호주등 세계각지에 흩어져 있는 중국계 , 즉 화교 기업인들을 지칭함 . 세계 화교인구 : 약 6,000 만명 ( 대만 , 홍콩 , 마카오 포함 ) 지역별 : 화교의 83 % 정도가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으며 , 미주 , 유럽 , 대양주 , 아프리카등에 분포 .화상의 자본 전세계 화교 보유 유동자산 :3 조 -4 조달러 ( 약 3,000-4,000 조원 ) 서비스 , 금융업에 두각 , 틈새시장공략 , 부동산중시 동아시아 경제의 70% 장악 : 아시아 상위 1000 개 기업중 517 개가 화상 NAFTA,EU 에 이은 3 대 경제세력 대중국 해외 직접 투자의 50% 이상이 화교자본세계 화상 대회 1991 년 당시 싱가포르 리콴유총리의 제안으로 싱가포르에서 처음 개최됨 . 2 년마다 한번씩 개최되고 있는데 ,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화상들의 최대 모임으로 , 세계 화상계의 대표인물들이 참여해 경제 · 문화 · 사회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룸 . 한국 내 화교의 활성화를 위해 2005 년 서울에서 세계화상대회개최 .한국 화교의 역사 1882 년 임오군란때 산동성 옌타이에서 청나라 군대와 함께 들어온 화상에서 시작 . 1948 년 한국정부의 외국인 입국 불허로 화교의 유입이 어려워짐 . 1961 년 외국인 토지 소유금지로 차별 . 한국 내 화교의 활성화를 위해 2005 년 서울에서 세계화상대회개최한국 화교의 인구 및 출신 한국거주 화교는 1970 년대 13 만명 , 2010 년에는 2 만명으로 줄음 . 대부분의 한국 화교들은 이민 3 세이며 , 산동성 출신이 90% 이상임 . 년도 인구 년도 인구 1883 1,021 1953 21,058 1893 2,530 1960 24,723 1910 10,000 1970 31,918 1927 49,000 1980 29,623 1930 69,000 1990 22,842 1942 82,000 2002 22,699 1945 12,000 2010 22,810한국 정부의 규제 , 차별 및 화교 이주 1961 년 제정된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령 1968 년 외국인토지법 공포 ( 주택용지 200 평 , 영업용지 50 평으로 소유제한 ) 1973 년 중화음식점 쌀밥 판매 금지령 , 중화요리 음식점 가격 규제등 화교의 이동 : 무역업 , 음식업 , 농업 , 잡화점 등 모든 분야에서 힘들어지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서 외국으로 이주하게 됨 .한국내 화교 음식점 ( 중국집 ) 종사자 수 및 비율 년도 음식점수 화교내 음식점 종사자 비율 1958 1,702 58.2% 1964 2,307 66.8% 1972 3,500 77% 2010 1,230 40%한국내 차이나 타운 ( 인천 ) 1970 년대 에서 1980 년대 까지 , 인천항의 여객터미널과 어시장의 이전으로 상권을 잃음 . 1990 년대 중국과의 수교 이후 부흥시작 . 2001 년 문화관광부가 특구로 지정 관광지로 알려짐 .결론 화교자본이 성공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 . 화교 자본이 들어오기에는 규제와 차별이 심함 . 최근 제주도에 부동산 , 관광투자 목적유입되는 화교자본 이외 협력사례가 드묾 . 좀 더 개방적인 태도와 혁신적인 규제로 화교자본의 유치가 필요함 .감사합니다{nameOfApplication=Show}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허삼관은 성안 생사공장에서 누에꼬치를 대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이다. 어느날 그는 피를 팔면 반년동안 일한 만큼 돈을 벌수 있게 된다는 삼촌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이에 허삼관은 피를 팔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중 방씨와 근룡이를 만나게 되고 그들과 함께 피를 팔러간다. 허삼관은 피를 묽게 만들기 위해서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한 방씨와 근룡이말을 듣고 오줌보가 터지기 전까지 물을 마신다. 이들은 피를 파는 곳의 책임자로 있는 이혈두에게 겨우 허락을 얻어 피를 팔고 승리 반점으로 향하게 된다. 승리반점에서 몸보신에 좋다는 돼지간과 데운 황주 두냥을 시켜서 먹는다. 돼지간은 보혈을 ,황주는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것이라 하면서 처음 피를 뽑는 허삼관에게 알려준다. 피를 뽑은 허삼관은 막상 큰돈을 벌게 되지만 쓸 곳을 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결혼자금으로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허삼관이 마음속으로 찍어둔 대상은 허옥란이었다. 허옥란은 동네에서 꽈배기를 튀겼는데 용모가 뛰어나 꽈배기 서시라 불렸다. 허옥란은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하소용이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허삼관의 물량공세로 허옥란과 그의 아버지는 결혼을 허락하게 되고 만다. 그 후 허옥란은 아들 셋을 낳았는데 그중 첫째는 허일락, 둘째는 허이락, 셋째는 허삼락이었다. 시간이흘러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는데 허삼관의 첫째아들 일락이가 허삼관을 닮지 않고 하소용을 닮았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에 수상하게 여긴 허삼락은 허옥란에게 진상을 알아낸 결과 일락이는 허삼관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사실 허삼관이 세 아들중에서 가장 아끼는 일락이가 하소용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 허삼관을 실망을 하고 다른아들과 차별을 하기 시작한다. 또 일락이가 동네아이와 싸워서 아이를 다치게 하자 허삼관은 하소용의 책임으로 돌린다. 하지만 하소용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은 허삼관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피를 팔게 된다. 허삼관은 이러한 상황에 불만족해하고 예전에 사모했던 여인 임분방과 사랑을 나눈다. 남편이 있는 임분방과 사람을 나눈 허삼관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고 피를 팔아 다리가 다친 임분방에게 뼈다귀, 대두를 사다준다. 이것을 본 임분방의 남편은 이를 수상하게 여기고 임분방을 다그쳐 허삼관과의 일을 알아낸다. 이에 허삼관은 크게 망신을 당하고 만다. 이시기에는 중국의 대약진 운동이 일어나고 공동소유 토지와식당과 공동생산체제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대약진운동의 실패와 홍수로 인한 흉년으로 인해 인민들의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했다. 허삼관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도 하루하루를 죽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이에 견디다 못한 허삼관은 피를 팔고 피를 판돈으로 국수를 사먹는다. 하지만 일락이에게 만큼은 자신의 피를 판돈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국수를 사주지 않는다. 일락이는 이에 섭섭함을 느끼고 급기야는 집을 나가 하소용을 찾아가지만 하소용 역시 일락이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이에 불안해진 허삼관은 일락이를 찾아나서고 일락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일락이에게 국수를 사준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문화대혁명 시기가 온다 이시기에는 누군가를 비판하면 그 사람을 낙인이 찍히게 괸는데 허옥란이 그비판의 개상이 되고 만다. 허옥란은 매번 비판대회에나가 비판을 받게되고 허삼관은 자신의 부인 허옥란의 뒷바라지를 한다. 또한 자신의 아내를 가족끼리 비판하기도 한다. 허씨삼형제도 이시기를 피해갈수 없었다. 일락이와 이락이도 농촌으로 가서 재교육을 받으러 가게 되고 삼락이만 집에 남게 된다. 농촌으로 내려가 일락이 는 어느날 초췌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다. 하지만 전혀 힘도 쓰지못하고 누워만 있다가 떠나게 되는데 이를 보다못한 허삼관은 피를 팔아 일락이게 준다. 일락이가 내려간지 얼마지 않아 이락이네 생산대장이 허삼관의 집을 찾았다. 집에 돈이 없었던 허삼관은 또피를 팔게된고 그돈으로 생산대장에게 대접을 한다. 하지만 같이 피를 팔던 근룡이가 피를 팔다가 죽게되고 이를 안 허삼관은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한편 일락이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상해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허옥란과 일락이는 생해로 먼저 내려가고 허삼관은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많은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하자 허삼관은 다시 피를 팔기로 하고 배에 몸을 싣는다. 엄동설한 속에서도 피를 팔기위해 차가운 강물을 마시며 내려가는 중 피를 팔았지만 무리한 탓에 쓰러지고 만다. 쓰러진 허삼관은 오히려 피를 수혈 받는다. 한번 쓰러진 허삼관은 다시 몸을 추스린 후 상해로 내려가던 중 래희와 래순이라는 젊은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들에게도 피를 뽑는 것을 권유한다. 이들 역시 돈에 혹하여 피를 팔게 되고 허삼관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상해로 내려간다. 이제 허삼관은 예순이 되었다. 허삼관은 이제 세 아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더 이상 피를 팔 필요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돼지간볶음과 황주생각에 피를 팔러가지만 망신만당하고 만다. 이제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허삼관은 피조차도 뽑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에 허삼관을 눈물을 흘린다. 이를 알게 된 아내 허옥란은 허삼관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고 그와 함께 승리반점으로 가서 돼지 볶음간과 황주를 시켜 먹는다.
인 생(人生)인생(人生)은 1940 년대부터 시작된 중국의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문화 대혁명등 중국의 과도기의 모습을 부귀라는 인물의 한 가정을 통하여 어떻게 겪어왔는지, 또 어떻게 변해 갈지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는 영화이며, 중국의 사회주의 사회의 과도기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정착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영화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상처라 할 수 있는 문화 대혁명을 영화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때는 1940년대 중국한 지방의 지주의 아들 부귀는 하루 종일 도박에 빠져서 도박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의 부인 가진은 이를 만류하지만 도박에 빠진 부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박을 하다가 남은 집마저 잃고 만다. 이에 부귀아버지는 충격으로 죽게되고, 아내 가진은 딸 봉하를 데리고 부귀를 떠난다. 40년대에는 이렇듯 지주계급이 아직 존재함을 알 수 있으며, 한편으로 도박을 좋아하고 즐겨했던 중국인들을 볼 수 있다. 살기위해 남은 물건을 팔아 근근히 생활하던 부귀는 아내와 딸을 다시 만나게 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도박으로 앗아간 용이 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에 용이는 그림자극 도구를 빌려준다. 그림자극 도구는 훗날 부귀에게 목숨과 생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중국의 전통 문화를 상징한다. 문화 대혁명때 이를 태움으로 이 시기에 중국의 문화와 전통이 소실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자극 도구로 국공내전(장개석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의 내전으로 국민당은 대만으로 도피 하게 되고 공산당은 대륙을 점령함으로써 사회주의의 초석을 다진다.)에서 살아나올 수 있게 된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부귀는 모든 것이 변화했음을 실감한다. 그의 딸 봉하는 발열로 인해 말을 못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집을 앗아간 봉이 또한 반동분자가 되어 사형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에 부귀는 자신이 평범한 인민이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이쯤 1950년대 대약진운동이 일어났다. 대약진 경제 정책으로 인민공사(즉 중국의 근대화, 공업화를 위해서 공동 소유제도 이다)를 실시 하였는데 이 영화에서도 촌장이 철을 거두어 각종 무기재료를 만드는 모습에서도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행복한 날을 살던 부귀는 자신의 마을에 구장이 온다고 하여 아들 유경을 학교에 보냈지만 유경은 큰 변을 당하고 만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극 동료 춘생임을 안 부귀와 가진은 더욱 분개한다. 유경은 사회주의 사회의 과도기의 희생물이 되고만 셈이다. 시간은 흘러 딸 봉하는 홍위병 만이희와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식에서도 당원복을 입고 모택동의 초상화를 그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 사회주의에 물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봉화는 어느덧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으려는 그 때 의사가 없어 제대로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출혈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 시기는 1960년대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시기이다. 문화대혁명은 (1966~1977) 10년간의 사회혁명기간으로 인민들의 신분과 계급이 바뀌었으며 특히 지식인들이 탄압을 받았다. 출혈만 막으면 살 수 있었던 봉화는 혁명으로 인한 지식인들의 퇴출로 또 하나의 희생물이 되고만 것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부귀와 가진은 늙고 그의 손자와 봉하의 무덤을 찾아간다. 그리고 부귀와 가진은 손자와의 대화에서 앞으로 중국의 희망적인 날들을 기약하며 그들의 인생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