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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의 보육시설 현황
    서론어린이가 그 나라의 등불이라는 말이 있다. 아동을 잘 길러내 인재로 양성해 나가는 것이 우리나라의 앞날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다.아동이 올바른 교육과 양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이제 가정에서 벗어나 보육시설로 옮겨가게 되었다.그렇다면 보육시설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어떤 체제로 이루어져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본론1. 보육시설의 의의1) 부모 및 가족복지보육서비스는 일하는 부모의 자녀 보호 및 교육 문제를 지원함으로써 부모의 근로기회를 마련해 줄 뿐 아니라 일하는 동안 전념할 수 있게 해 주며 그 결과 가정의 경제적 안정과 긍정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 있게 된다.2) 아동발달 및 아동복지저소득층가정의 박탈된 환경에 처한 아동, 부모의 근로나 부재로 양육 환경이 적절하지 않은 가정, 그리고 일반가정의 아동을 위해 보육서비스는 아동의 발달 및 성장을 위한 지원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나아가 부모 및 아동의 변화된 욕구 및 기대에 부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아동의 복지에 기여할 수 있다.3) 사회 및 국가 발전에의 기여건강한 아동과 건강한 가족은 사회 및 국가의 안정을 위해 바람직하며 사회 및 국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감소시켜 준다.2. 보육정책의 발전과정1) 우리나라 보육사업은 1921년 서울에서 태화사회관이 처음으로 탁아프로그램을 개설하면서 시작되었고,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영유아보육법의 제정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보육사업의 변화과정은 태동기(1921~1991), 준비기(1991~1994), 전개기(1995~2000), 발전기(2001~현재)로 나뉘어진다.2) 정부의 보육예산 지원이 시작된 것은 1967년이며, 1981년까지 지원아동에 대한 급식보조금 명목으로 지원되다가 시설비, 인건비, 운영비 지원의 양적확충정책이 이루어졌다. 현재는 보육의 질적 측면에 대한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2005년 보육예산은 6,001억원으로 전년대비 48.2%가 증가하였다.3. 보육시설의 종류와 형태1) 국·공립보육시설(1) 국가 시?군?구청장과 협의하여야 한다.-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설치시 지방보육정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4) 배치기준-저소득층 밀집지역 및 농어촌지역 등 취약지역과 보육시설이 부족한 지역에 우선적으로 설치하는 등 지역별로 균형있게 배치하여야 한다.(5)시설의 위탁운영-영유아보육법 제24조제2항?제4항, 동법시행규칙 제24조?제25조-국?공립보육시설을 운영하는 각급기관의 장은 보육시설의 종사자를 공무원 등으로 채용하여 직접 운영하거나, 법인?단체 또는 개인에게 위탁 운영할 수 있다.(6)공립시설의 운영-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보육시설의 관리 및 운영에 관하여는 지방자치법 제135조제2항의 규정에 의거 조례로 정하여야 한다.-보육시설의 위탁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영유아보육법시행규칙 제24조제7항에 의거 조례로 정하여야 한다.(7) 위탁 운영시 유의사항-법인?단체 또는 개인을 수탁기관으로 선정하여야 한다.-시설장과 보육교사 등 종사자는 공개 채용하여야 한다.-법인?단체 또는 개인에게 위탁 운영할 경우에는 명의 대여 등 형식적인 위탁운영을 지양하여야 한다.-신규위탁은 공개경쟁에 의한다.위탁 운영중인 보육시설의 경우 기존 수탁자에게 재위탁할 것인지 여부는 보육정책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결정한다. 기존 수탁자에게 재위탁 결정시에는 별도 공모절차없이 기존 수탁자와 계약 추진이 가능하나, 그러하지 않을 경우에는 공개경쟁의 방법에 의하여야 한다.-민간시설 매입시 부지를 기부채납 받거나 기존 시설 또는 대학 소유 건물ㆍ부지를 무상임대하는 등의 방식으로 국공립 시설을 확충하는 경우에는 운영자 선정시 동 시설의 소유자 또는 운영자나 대학 등에 가점을 부여할 수 있다.-기존에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사회복지관에 국공립보육 시설이 포함된경우에는 사회복지사업법 제34조제5항 규정에 의한 절차에 따라 위탁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영유아 보육법 시행령 제7조제2항제5호에 의한 지방보육정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2). 법인보육시설 및 민간보육시설-법인보육시설이란 『사회복수 없으며, 동일 간판 또는 상하좌우에 붙어 있는 간판에 유치원 명칭 사용 불가(2) 설치절차-관할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사전에 인가를 신청하여야 한다.(3) 배치기준-지역 보육수요와 보육시설의 공급현황 등을 감안하여 지역별로 균형있게 배치되도록 하여야 한다.3).직장보육시설(1) 정 의-사업주가 사업장의 근로자를 위하여 단독 또는 공동으로 사업장내 또는 그에 준하는 인근지역과 사원주택 등 사업장 근로자 밀집거주지역에 설치?운영하는 시설(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소속 공무원을 위하여 설치?운영하는 시설을 포함한다)을 말한다.※ 보육아동 정원의 1/3 이상이 동 사업장 근로자의 자녀이어야 한다.(2)규모 및 명칭-상시 영유아 5인 이상을 보육하여야 하며, 명칭은 “○○어린이집”으로 하여야 한다.(3)설치기준 및 절차-직장보육시설은 영유아보육법상의 설치기준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다만 보육시설을 직장내에 설치하는 경우에 한하여 안전사고 및 재난에 대비한 시설을 갖추어 2층과 3층에 설치할 수 있다.-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고자 하는 자는 관할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사전에 인가를 신청하여야 한다.-상시 영유아 20인 이하를 보육하는 직장보육시설은 가정보육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곳에도 설치할 수 있다.(4)직장보육시설 설치 의무-영유아보육법시행령제20조제1항에 의하여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또는 근로자 500인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여야 한다.-직장보육시설 설치 의무는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및 지자체에도 적용된다.-직장보육시설 설치 의무사업장의 해당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상시 근로자의 수 산정은 전체 기업규모가 아닌 단위사업장을 기준으로 한다. 노동부의 해석에 의하면, 사업장은 ‘사업이 행하여지고 있는 인적·물적 시설이 존재하는 장소적 범위를 중심으로 보는 개념’으로서, 동일 장소에 소재하여야 한다.-의무사업장의 사업주가 직장보육시설을 단독으로 설치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사업주 공동으로 직장보육시설을 설치?운영하거나상 20인 이하를 보육하여야 하며, 명칭은 “○○어린이집”으로 한다.-어린이집 명칭사용에 유치원, 학원 등 유사기관으로 오인할 수 있는 명칭은 사용할 수 없다.(2)설치절차-관할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사전에 인가를 신청하여야 한다.5. 부모협동보육시설1)정 의-보호자 15인 이상이 조합을 결성하여 설치?운영하는 시설을 말한다.2)규모 및 명칭-상시 영유아 11인 이상을 보육하여야 하며, 명칭은 “○○어린이집”으로 하여야 한다.-설치절차-관할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사전에 인가를 신청하여야 한다.3)설치 및 운영방식-보육아동을 둔 보호자 15인 이상이 상호 출자하여 공동으로 보육시설을 설치?운영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발생한다.-출자는 조합원의 약정에 따라 금전 기타 재산 또는 노무로 할 수 있다.-조합원은 아동보육의 필요성이 없게 되거나 기타 조합계약으로 정하는 시기에 탈퇴할 수 있으며, 출자금은 탈퇴 당시 조합의 재산 상태 및 지분에 의한다.-조합의 업무집행자는 조합계약 또는 조합원의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선임한다.-보육시설 운영에 관한 통상사무는 시설장이 전임하며, 주요사항은 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결정한다.-조합원이 최대한 보육과정 및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소기의 설립 목적을 달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영유아보육법령 및 지침 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민법 제703조 내지 제724조를 적용한다.3. 보육시설의 현황1)보육시설의 설립?운영 특성-보육시설은 1990년대에 45.2%, 2000년대에 50.9%가 설립되었으며, 설립유형별로 보면 국?공립의 경우 1980년대와 1990년대, 법인시설은 1990년대, 민간개인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가정(놀이방)시설은 2000년대에 급격히 설립되었다.-실태조사 대상 보육시설의 설립유형은 국?공립 7.0%, 사회복지법인 7.1%, 기타법인 4.1%, 단체 1.1%, 민간개인 46.4%, 직장 0.9%, 가정(놀이방) 33.2%, 공동육아시설 0.2%로 2004년 6월 현재 여성부 보육통계 경우 민간개인시설이 35.8%로 가장 높고, 국?공립시설이 14.8%로 가장 낮았다. 읍면지역의 비율이 대도시나 중소도시보다 높았다.2) 보육시설의 물리적 특성-보육시설이 설치된 건물은 단독건물 35.3%, 아파트가 27.9%, 상가가 17.4%, 주택 6.0%, 종교단체 건물이 5.7%였다. 설립유형별로는 기타법인, 단체, 가정(놀이방)시설을 제외하고 단독건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놀이방)시설의 경우는 아파트인 비율이 73.3%로 가장 높았고, 기타법인과 단체시설은 주로 종교단체 건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기타법인 54.1%, 단체 41.2%). 민간개인시설의 경우는 단독건물(42.9%) 다음으로 상가건물(31.2%)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보육시설의 임대여부를 살펴보면, 52.1%가 자가이고, 자가가 아닌 47.9% 중 건물일부임대(월세)가 18.8%, 건물일부임대(전세) 7.7%로 건물임대가 다수였다. 설립유형별로 국?공립(67.0%)과 사회복지법인시설(88.2%)의 경우 자가비율이 높고, 민간개인시설(39.9%)이 자가비율이 가장 낮았다. 지역별로는 읍면지역이 자가비율이 높았다.-보육시설의 평균 대지면적은 602㎡(약 182평), 건평은 평균 309㎡(약 93평)이었다.-보육실이 있는 층수는 1층 61.7%, 2층 28.4%, 3층 7.1%순이었다. 설립유형별로는 가정(놀이방)시설의 1층 비율이 91.7%인 것이 특징적이었으며, 기타법인(63.6%), 단체시설(61.8%)도 비교적 1층 비율이 높았다. 지역별로는 대도시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1층의 비율이 적었고, 2, 3층이나 지하에 있는 경우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았다.-1층에만 설치된 보육시설의 비율은 전체 시설의 59.2%였다. 설립유형별로 살펴보면, 1층 보육시설의 비율은 가정(놀이방)시설이 91.7%, 2층 이상은 민간개인시설이 32.4%로 각각 가장 높았다. 지역별 현황을 보면, 1층 시설의 비율은 대도시(52.0%)에 비해 중소도시(
    교육학| 2008.12.09| 7페이지| 2,000원| 조회(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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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항공산업의발달
    한국항공산업의 발달서론항공 산업은 여러 산업분야에 걸쳐, 생산 및 기술측면에서의 제반 파급효과가 지대한 최첨단의 종합기술산업이며 국제경쟁력 결정에 있어 중요한 전략산업이다.항공 산업은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산업이다.세계적으로 대형 여객기를 제작하는 국가는 미국과 유럽연합, 캐나다와 브라질 정도만 포함된다. 항공산업의 꽃이라 하는 대형 여객기의 개발에는 10조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자금과 10년정도의 개발기간이 소요되며, 투자 자금의 회수에도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등 투자 위험이 매우 큰 사업이다.하지만 이러한 진입장벽의 문제는 30~40년간의 안정적인 먹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보잉 747기의 경우 개발된 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 셀러 기종을 유지하고 있다.5년 이내로 신차를 시장에 내놓지 않으면 퇴출되는 자동차 산업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항공기의 개발에는 첨단기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대형여객기 기체는 10억 대당 한 대 정도의 파손만을 허용할 정도의 안전도를 가져야 하는데, 이러한 고도의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첨단기술의 보유가 절대적으로 우선 되어야 한다.교육열이 높고 국가의 R&D투자가 많은 우리나라의 현실에 매우 적합한 산업인 것이다.한편 세계 항공산업의 발전에 대해 살펴보면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동력을 이용한 항공기를 세계최초로 만든 후 본격적인 인간의 항공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이후 1909년 프랑스의 블레리오는 근대항공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단엽식 비행기를 개발하여 영불해협을 횡단하는데 성공하였다.하지만 실제로 항공기가 교통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부터였다.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비행기가 군용물자수송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그 가치가 부각되었고 각국은 항공기술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항공 기술은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서방열강등 사이에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세계 항공 산업의 발전에 이어 발전이 필요한 우리나라 항공 산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본론1.항공산업의 특성1) 첨단기술 집약형 산업항공산업은 제조업 중 가장 첨단기술을 요구하는 산업이다기술개발능력이 충분해야만 이뤄 낼 수 있다.사람이 자원인 우리나라는 고급 두뇌를 활용해 여러 분야에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이는 항공산업의 전제 조건인 기술개발 능력의 잠재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항공산업의 발전과 함께 국가 전체의 기술 수준이 고도화 될 것이다.2) 파급효과 및 산업연관효과항공산업을 육성시킴으로써 보다 낮은 기술수준에 있는 산업들을 동반 발전시키는출처-http://mercury.hau.ac.kr/naltl/pdf/12/12-8.pdf효과를 누릴 수 있다.3) 국가경쟁력확보가능사업정보통신산업과 항공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의 양대 축으로 기타 산업들을 연결한다면 최적의 조합이 될 것이다.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는 동시에 기본이 되는 제조업에서 확고한 우위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정보통신에 집중하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 된다.2.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현황1) 일반적인 현황군수위주로 발달되어 온 우리나라의 항공산업은 1970년대 휴즈사의 500MD헬기 조립사업을 시작으로 군용기 기체 및 엔진의 창정비, 그리고 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일부 업체들이 민간항공기용 부품을 하청생산하게 됨에 따라 기본적인 항공 기술은 확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후 몇 년간의 공백기로 인해 지속적인 기술 및 경험 축적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90년대에는 전투기의 조립, 면허생산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그리고 차세대 중형헬기 사업의 대상기종의 면허생산도 개시 되었다.군수분야의 꾸준한 성과와 더불어 국내 업체들은 계속해서 재료의 가공, 조립분야의 기술을 축적해 나갔다.이러한 기초기술과 부품의 국산화를 기반으로 90년대 후반에는 독자적으로 기본 훈련기를 개발해 현재 양산 단계에 와 있다.그리고 현재는 우리의 항공기 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초음속 고등훈련기의 개발 단계에 와 있다.이 훈련기가 개발에 성공한다면 그 다음은 곧바로 전투기 개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전투기 개발에 성공하게 되면 우리도 명실공히 항공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한편 민간 항공 부문은 군수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부가가치의 단순부품조립 내지는 하청생산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앞으로 군용기 시장은 점차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는 반명 민간 상업용 항공기의 수요는 엄청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 되므로 우리 항공 산업도 빨리 이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2) 세계시장에서의 우리 항공산업의 위치우리 항공 산업의 세계시장에 대한 위치는 매우 낮다.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보다 GNP수준이 낮은 인도네시아와 같은 국가들보다도 뒤떨어진다는 점이다.종합적인 기술수준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항공산업은 세계 20위권 수준에 머물러 있다.3. 항공산업의 발달과정우리나라에서 비행기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903년 라이트형제의 동력 비행 성공이후 10년이 지난 1913년 일본 해군 기술 장교가 용산의 연병장에서 공개 비행 행사를 가진 것이 처음이며 우리나라 조종사가 최초의 비행을 한 것은 안창남이 1922년 12월 10일 단발상엽 1인승 비행기인 금강호로 여의도에서 5만 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적인 모국방문 비행 행사를 가진 것이다.다음으로 우리나라 정기 노선의 첫 개설은 1929년 4월1일에 일본-대구-서울-평양-신의주-중국 간의 중간 기착지로서, 서울-울산 간 단독 노선이 동년 6월21일에 처음 개설 되었다.1948년 10월에 민간항공회사 대한국민항공사(KOREA NATIONAL AIRLINES)를 창설하여 1949년 2월1에 서울-강릉, 서울-광주-제주, 서울-옹진강 국내선 노선을 개설하여 운영하였으나 그 후 적자운영을 탈피하지 못하고 1962년 3월에 대한항공공사가 한진 상사에 경영권을 인계하여 오늘의 대한항공을 설립하여 민 항공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더불어 세계적인 항송사로 성장하였다. 1960년대 민항이 출범 한 후 미국 보잉사,707,727,MD 등 계열 등에서 출발 하여 점보 등 대형기가 도입되기 시작하였다.그러나 1978년 미국의 항공 산업 규제완화 이후 국제경쟁이 치열하여지고 전 세계적으로 복수 항공사체제로 가는 추세가 나타나면서 정부에서는 제2민항을 1988년 2월에 아시아나항공의 설립을 면허하면서 본격적인 민항공시대로 돌입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춘 항공운송산업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후 항공시장의 확대와 더불어 현재 여러 군소항공사가 출시 되었다.민항공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1952년 11월에 국제민간항공조약인 시카고 조약에 가입하고 1965년에는 미 극동군 사령부에서 관리하였던 한국공역과 관할권도 교통부 관할로 이관하여 공역체제를 확립 하였다.항공행정의 방향제시와 항공안전 항공시설 항공운송사업의 질서 외국항공사의 추항 규정 등을 목적으로 1961년 3월에 전문 10장143조로 구성된 새로운 항공법을 제정하였고 1963년에는 항공과를 항공 국으로 승격시키고 정부 간 각종 국제회의와 항공협정체결 및 개정 등 국제민간항공발전을 위한 국제항공을 전담하는 국제과를 1979년에 신설 하였다.1980년에는 국제공항업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기 위한 한국공항공단을 설립하고, 국제항공수요의 급증으로 인천국제공항의 건설을 담당하는 수도권 신공항공단을 설립하고 동 공항의 운영을 위한 1999년 2월에 인천국제항공공사를 설립하였다.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는 일부 및 전체부품을 국내 생산하여 조립하는 공동생산 방식에 의해 제공호(F-5)전투기, 500MD, UH-60 헬기와 KF-16 전투기 등이 생산되었으며, 90년대 말부터는 항공기의 부품국산화, 독자 항공기개발, 국제(KT-1,웅비)는 2000년부터 공군 조종사들의 기본비행훈련에 사용 중에 있으며, 2003년도에는 처음으로 인도네시아에 수출하였다.
    경영/경제| 2008.12.09| 6페이지| 2,000원| 조회(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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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최초카메라발명
    세계 최초의 카메라 발명서론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중 하나가 카메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 홈페이지의 발달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기념으로 남겨두기 위함으로 요즘 “디카(디지털카메라)” 하나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 이다.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카메라.그 카메라의 기원과 발명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본론1. 가장 오래 된 기록-아리스토텔레스시대사진기의 원리와 관련된 가장 오래 된 기록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방 안을 어둡게 한 뒤 한쪽 벽면에 바늘 구멍을 뚫어 놓으면, 방 밖에 있는 물체의 영상이 비록 거꾸로 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바늘 구멍을 통해 들어와서 방 안의 벽면에 비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그리고 그는 일식이 있을 때, 이를 관찰하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해 해의 일그러진 모습을 확인하기도 했다.1-1.카메라 오브스쿠라카메라 옵스큐라는 현대 카메라의 효시이다.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바늘 구멍을 통해 들어온 광선이 영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려져 있었다. 10세기에 아라비아의 학자 알하젠이 그 효과에 대해 아주 자세히 설명했고, 바늘 구멍을 밖으로 뚫은 암실인 카메라 옵스큐라('어두운 방')속에서 일식을 보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 했다.2. 발전기르네상스 시기에는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구멍에 렌즈를 끼워 넣게 되었다. 그리고 카메라 옵스큐라는 더 작아져서 가지고 다니기에 더욱 편리해졌다. 그것은 방에서 작은 오두막으로, 거기서 일종의 가마로, 작은 천막으로 결국에는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상자로 축소되었다.16세기에 델라 포르타가 예술가들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만약 당신이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해도 연필로 이 영상의 윤곽선을 따라 그리고, 그 위에 색깔을 칠하면 된다. 화판 위의 종이에 영상을 반사시키면 이 일이 가능해진다." 위의 제안은 매우 열띤 반응을 일으키며 채택되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18세기 경 어떤 예술 전문가가 지적했던 대로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2-2. 웨지우드의 시도그러나 아직 그 당시에는 카메라 옵스큐라의 이미지를 영원히 고정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일정한 은화합물을 빛에 노출시킴으로써 짙은 색을 띠게 된다는 것이 17세기 초반에 관찰되기는 했으나, 해결할 수 없었던 어려운 문제는 이미지가 모두 까맣게 되기 전에 이 작용을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가 였다. 19세기 초에 영국의 웨지우드가 최초로 카메라 옵스큐라의 렌즈로 만들어진 이미지를 기록하는 시도를 했다. 그는 카메라 이미지로는 실패했으나, 질산은으로 감광된 흰 가죽이나 흰 종이 위에 곤충의 날개와 잎사귀를 놓아, 햇빛에 노출시킴으로써 네가티브의 실루엣을 만들어냈다. 빛이 닿은 종이 부분은 어두워졌으나 위에 놓인 물건에 의해 가려진 부분은 변함이 없었다. 웨지우드는 이러한 실루엣을 영구히 정착시키기 위해 많은 방법을 시도해 보았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노광 후에 다시 빛이 닿으면 나머지 부분과 마찬가지로 그 이미지들도 어두워져 버렸다.웨지우드는 비록 그가 연구해낸 은화합물을 이용하여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진정한 의미의 사진이라고 볼 수 있는 최초의 변하지 않는 사진이 되기까지는 그 은화합물은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못했다.3. 진정한 의미의 사진진정한 의미의 사진은 프랑스 중부지방에 살았던 발명가 니엡스에 의해 1826년에 비로소 만들어졌다.처음에는 염화은으로 실험했으나 1820년 경 초에는 빛을 쐬게 되면 굳어지는 일종의 아스팔트인 주데아 비투멘으로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니스 칠에 쓰이는 용제인 라벤더 기름에 비투멘을 녹이고 나서 그 혼합물로 얇은 백랍에 층을 입혔다. 그리고 그 판을 카메라 옵스큐라 속에 넣고 창가로 가서 그의 안뜰을 향해 놓고 8시간 동안 노출하였다. 그 판 위에 이미지를 만드는 빛은 밝은 부분의 비투멘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어두운 부분에 있는 것은 부드럽게 그리고 용해될 수 있도록 남겨두었다. 그 다음에 그 판을 다시 라벤더 기름으로 씻었다. 이 기름은 빛이 닿지 않은 부분의 아직도 부드러운 비투멘을 제거해 버렸다. 그는 빛에 노출되지 않은, 아직 빛에 민감한 부분을 제거하는 방법을 발견해냄으로써 이미지가 계속 남아 있을 수 있게 했던 것이다.니엡스가 헬리오그라프라고 이름 지은 그 결과는 아직 미숙한 것이었다. 한편 그의 작업에 대한 소식이 다른 프랑스인 다게르에게 전해졌다. 다게르는 당시 알프스 산맥과 같은 장관을, 특수조명과 대형의 투명한 그림을 통해서 환상적인 효과로 재현하는 디오라마를 개발해냈다. 다게르는 디오라마로 장관을 묘사하는 데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게르는 1829년에 그의 파트너가 되었다.니엡스는 그 이후로 사진이 사회에 주게 될 큰 충격을 볼 때까지 살지 못했다. 그는 다게르가 다게레오 타입을 세상에 공표할 수 있을 만큼 니엡스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 과정을 완벽하게 성공하기 몇 년 전인 1833년에 사망했다.이후 1550년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카르다노는 구멍 쪽에 볼록렌즈를 대면 종이에 비치는 영상이 훨씬 또렷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볼록렌즈가 빛을 모아서 종이 쪽에 초점을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3. 질산은의 변화 발견유럽에서 질산은이 빛을 받으면 검게 변한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발전의 계기를 맞게 된다. 어떤 한 과학자가 이를 상표가 붙어 있는 약병에 담아 창가에 두었는데, 며칠 후에 보니 다른 부분은 검게 변했지만 빛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표의 뒷부분은 여전히 흰색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질산은이 빛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다.이 사실이 알려지자 빛을 포착하는 방법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즉각 질산은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고, 이의 대표 주자가 프랑스의 인쇄업자인 니에프스였다.그는 아스팔트의 일종인 '비투맨'이라는 물질에 대해 연구했다.이 물질은 빛이 안 닿으면 물렁물렁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빛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딱딱해지는 성질을 갖고 있다.그는 비투맨을 금속판에 바른 뒤 카메라 오브스쿠라의 벽면에 세워 인류 사상 최초의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비투맨이 빛에 반응하는 시간이 매우 느려서 이러한 사진 한 장을 촬영하는데 무려 8시간이나 걸리고 형체도 불분명한 단점이 있었다.4. 다게르의 최초 사진기 발명니에프스의 공동 연구자였던 다게르는 1839년, 요오드 증기를 쐰 은판에 수은 증기를 다시 쐬면 현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 '다게레오타이프'라는 최초의 사진기를 발명했다.그는 요오드 증기를 쐰 은판을 이용, 카메라 오브스쿠라로 분명히 촬영을 했는데도 영상이 나타나지 않아 은판을 서랍 안에 처박아 두었는데, 며칠 후에 다시 보니 영상이 또렷이 나타났던 것이다.그는 그 즉시 서랍 속을 뒤졌고, 여기에서 마개가 열린 수은병을 찾아냈다. 은판이 서랍 속에서 수은 증기의 영향을 받아 현상되었다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즉, 빛을 쐰 은판에는 수은 증기가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빛을 쐬지 못한 은판에는 수은 증기의 입자들이 달라붙어 검게 만듦으로서 오늘날의 흑백사진과 똑같은 포지티브 영상이 나타났던 것이다.5. 영국의 탈보트-필름의 기원
    인문/어학| 2008.07.05| 4페이지| 2,000원| 조회(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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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지역 탕반
    ★서울음식-서울지역 탕반(湯飯)의 특징과 유래 조사(장국밥, 설렁탕, 해장국)1. 양지머리로만 삶은 장국밥맑은 장국에 밥을 말아먹는 일품요리 형태의 음식이다. 이성우는 ‘한국요리문화사’에서 장국밥이 상품화된 시기를 개화기로 잡고, 외식이나 단체급식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복잡한 가정요리법으로는 급한 대로 대응할 수 없어서 요구된 일품요리가 장국밥이라고 했다. 이것이 서울의 향토음식으로 자리하게 된 데에는 장국밥집의 성업도 한몫했다. 장국밥집은 출입구 옆에 하얀 종이술을 만들어 장대 끝 높이 달아 표지로 삼았다. 한말에 유명했던 장국밥집은 수표다리(현재의 장충단공원 입구에 위치) 건너편과 백목다리(현재의 신문로에서 정동으로 통하는 길) 건너편에 있었는데, 수표다리 쪽에는 재상들만 다니고 백목다리 쪽에는 부상(富商)과 오입장이들이 다녔다고 전해진다.박종화는 ‘잠바위설렁탕 기타’에서 장국밥집에 관해 이와 같이 회고 하고 있다.「장국밥은 순전히 양지머리로만 삶기 마련이다. 양지머리국물 같은 쇠고기라 하나 노리지 않고 기름기가 맑고 가벼워 같은 쇠고기로 끓였건만 다른 잡고기 삶은 국이 감히 따라가지 못한다. 서울의 유명한 무교탕반의 전신은 양보 장국밥집이고, 양보는 갑오경장 전후의 사람이다. 이 집의 장국밥은 양지머리만 삶아도 맛이 좋은데, 유통(젖퉁이고기)을 넣어주고 갖가지 양념으로 고명을 한 산적을 뜨끈뜨끈하게 구워서 넣어주니 유통과 산적 맛이 서로 어울려 천하진미가 따로 없다.」장국집 무교탕반은 그 역사가 깊었던 듯, 헌종도 미행으로 무교탕반에 다녔다 하고 남북촌 양반들도 초롱을 든 상노를 앞세우고 무교다리 장국밥집을 찾았다고 한다.2. 친경으로 생긴 설렁탕홍승면은 ‘백미백상 百味百想’에서 장국밥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갖춘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라면 설렁탕은 서민의 음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 밖에서 놀다 시장해져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가면 어머니가 당황하지 않고 설렁탕국물을 사다가 찬밥을 말아 대접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호암 문일평도 “…엄동설한에 뽀얀 설렁탕 육즙을 5전이면 넉넉히 사 먹을 수 있으니, 이것은 양식 스프에 비해 자양은 훨씬 앞서고 그 가격이 저렴한 것이 아닌가. 조선인은 이렇게 훌륭한 평민적 요리를 가지고도 이것을 개량, 확장하여 크게 진출할 방침을 세우지 못하는가.”며 설렁탕을 예찬했다.이러한 설렁탕은 조선시대에 생겨난 음식이다.「세종대왕이 선농단에서 친경할 때 갑자기 심한 비가 내려 촌보를 옮기지 못할 형편에다 배고픔에 못 견디어 친경 때 쓰던 농으를 잡아 맹물에 넣고 끓여 먹으니 이것이 설렁탕이 되었다. - 홍선표 ‘조선요리학 朝鮮料理學’」「조선시대 매년 이월 상신일(上辛日)이면 왕이 지금의 제기동에 있던 선농단으로 거동한다. 생쌀과 생기장, 소와 돼지를 죽이기만 해서는 통째로 놓고 제전에 올린 뒤 적전에서 친경을 한다. 이 행사가 끝나면 미리 준비해둔 큰 가마솥에 쌀과 기장으로 밥을 짓고 소는 갈라 국을 끓이며, 돼지는 삶아 썰어놓고 친경 때 소를 몰던 노농(老農)과 구경꾼 가운데 60세 이상의 노인을 불러 먹였다. 이때 뚝배기를 빌어다 밥을 담고 국도 펴놓았는데, 반찬이 되는 김치가 없어 파를 씻어다놓고 간장도 없어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다. 선농단에서 끓인 국이라 하여 붙여진 선농탕은 이후 와전되어 설렁탕이 되었다.」이러한 유래로 미루어, 설렁탕은 조선시대 왕의 친경과 관련이 깊고 자연 서울의 향토음식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듯하다.다음은 조풍연의 ‘서울설렁탕’이라는 작품이다.「설렁탕은 서울의 대표적인 음식은 아니다. 다만 고유한 음식으로 쇠고기곰국의 일종이다. 고기를 가려낸 것이 아니라 통째고아 우려내는 것이니까 하는 짓이 투박스럽고 거칠지만, 소라는 짐승의 맛을 이보다 더 한꺼번에 느끼는 방법은 달리 없다. 지금은 옛날이지만 한때 이름난 설렁탕집이 서울에 몇 군데 있었으니, 이문옥ㆍ대창옥ㆍ사동옥ㆍ이남옥ㆍ대성관 등을 들 수 있다. 설렁탕집에 들어서면 군데군데 소금그릇, 고춧가루, 후춧가루, 파 그릇이 놓여 있고 손님 앞에서 국을 마는 풍경이 눈에 띈다. 국은 뚝배기에 밥을 담고 뜨거운 국물로 토렴하여 식은 밥을 데운 후 백면(百麵)을 한 사리 얹고 거기에 고기건더기를 얹는 것이다. 혀밑우랑, 우신, 혹살 등을 미리 가려 채반에 놓은 것을 국 마는 자가 입맛대로 손으로 집어 얹는다. 다음에 나무를 파서 만든 큼직한 바가지 모양의 국자로 국을 떠 붓는다.옛날 설렁탕집에서는 소 한 마리에서 우피와 오물만 제거해놓고 한 간들이 큰 가마솥에 넣어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끓인다. 자정부터 1시까지는 바짝 졸은 진국이어서, 단골손님들은 이때 모여들었다. 오늘날의 뜨물국 같은 설렁탕 맛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리하여 뽀얀 국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가마솥 옆에 피가 뻘겋게 묻은 쇠머리가 설렁탕집의 간판구실을 하고 있다.」3. 서울 해장국인 선진국조선후기 단원 김흥도의 그림을 살펴보면, 주모가 부뚜막에 앉아 솥에서 국을 퍼내는 장면이 발견된다. 이 술국을 흔히 해장국이라 부른다. 술로 시달린 속을 풀어준다는 의미일 것인데, 서울에서는 주로 소의 뼈를 푹 고아 끓인 국물에 된장을 풀어 넣고 통나물, 무, 배추, 파 등을 넣어 끓이다 선지를 넣고 다시 한 번 푹 끓여먹는다.서울의 해장국에 대해 권오돈은 ‘메밀과 물쑥나물’에서 이렇게 얘기했다.「해장국하면 서울이 본고장이다. 서울의 해장국은 씁쓸한 것이 별미다. 해장국은 된장국이 원칙인데, 해장국 끓이는 장사꾼이 직접 된장을 담가 쓸 수는 없고 각 집으로 된장을 사러 다닌다. 대개의 가정에서 맛좋은 된장은 잘 팔지 않고 시어서 먹기 힘든 것이라야 팔기 때문에 이것으로 끓인 해장국이 씁쓸한 것은 당연하다. 그 씁쓸한 된장을 풀고 우거지를 숭덩숭덩 썰어 푸짐하게 넣고, 쇠뼈다귀를 두드려 선지를 넣고 끓인 해장국은 특별한 입맛을 므끼게 한다. 요즘의 해장국에는 우거지를 쓰지 않는 것이 많고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나, 역시 서울 해장국은 우거지가 들어가야 제 맛이다.」방기환도 ‘미각의 연륜’에서 서울 해장국의 특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밤을 새워 원고를 쓰고 나면 무엇보다도 생각나는 것이 걸쭉한 해장국이다. 먹을 만한 해장국집이 어디 있는지 모르던 나는, 무턱대고 골목을 누비다가 얼핏 보기에 여염집 같은 집에서 이를 쑤시고 나오는 몇몇 술꾼을 발견하고는 들어가 보았다. 조그만 마루 하나에 방 하나, 그것이 손님을 받는 식당의 전부였고 손님들도 7~8명에 불과한 초라한 느낌의 집이었지만, 막상 해장국 한 그릇을 받자마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런 해장국은 난생 처음 맛본 것이었다. 재료는 다른 해장국과 다를 것이 없는 뼈다귀에 선진에 우거지였다. 그러나 거기에 담겨진 정성이라고나 할까 수고라고 할 어떤 것이 다시없는 일미를 만들어냈다. 우거지는 익다 못해 죽처럼 흐늘흐늘 녹아 있었고, 뼈다귀에 붙은 심줄도 거의 다 국물이 될 지경이었다. 주인에게 물어 보니 스물네 시간 꼬박 곤 것을 손님에게 내놓는다 한다. 그와 반대로 선지는 말랑말랑하면서도 신선한 물기를 품고 있어 좋았다. 그것만은 따로 나중에 넣는 다는 것이다.」오늘날에도 청진동의 해장국은 유명하여, 만은 사람들이 이른 새벽 이 해장국을 즐기기 위해 청진동을 찾고 있다.유애령 - 식문화의 뿌리를 찾아서(교보문고)4. 대표적인 서울음식(구절판,떡찜)1)구절판에 대해서...궁중식과 민간식으로 크게 구분되고, 또 진 구절판과 마른 구절판의 2가지로 나뉜다구절판은 요리를 담는 기명(器皿)을 말하기도 하는데, 둘레에 8개의 칸과 가운데 1개의 칸으로 모두 9가지를 담을 수 있게 되어 있는 목기로, 대개 나전칠기로 만들어져 미술공예품으로도 귀하게 여긴다.?진 구절판미나리·오이·달걀지단(노른자와 흰자)·전복·해삼·새우·삶은 닭고기·쇠고기·표고버섯·석이버섯·느타리버섯·도라지 중에서 계절과 기호에 맞추어 8가지를 선정하여 길이가 같게 가늘게 썰어서 기름에 볶아 빛깔을 맞추어 차례로 담는다.중앙에는 밀가루에 달걀 흰자를 섞어 종이처럼 얇게 부친 전병을 둥글게 오려서 담습니다.뜨거운 전병을 포개어 담으면 서로 붙기 쉬우므로 사이사이에 실백을 조금씩 놓는 것이 좋다.먹을 때는 이 밀전병에 둘레에 담은 볶음요리를 조금씩 놓고 싸서 초간장이나 겨자초장에 찍어 먹는다.?마른 구절판마른 안주만을 담은 것으로 여러 가지 육포·어포·마른 새우 등에서 8가지를 골라 담고 중앙에는 보통 생밤을 담는다.궁중식 구절판은 연한 살코기를 실같이 썰어서 양념하여 볶고, 그 밖에 재료별로 각각 채쳐서 양념하여 볶은 미나리볶음·표고버섯볶음·처녑볶음·양()볶음·달걀지단·숙주나물·무채 등 8가지를 담고, 중앙에 밀전병을 담는다.민간식에서는 전병을 찹쌀가루나 밀가루로 하고, 그 밖의 것은 골저냐·미나리강회·쑥갓·홍당무생채·양배추채·육회·달걀쌈·어회·순무채 등에서 8가지를 선택하여 빛깔을 맞추어 담는다.*재료-쇠고기 160g, 당근 100g, 오이 150, 계란 3개, 불린 표고버섯 70, 호박 200, 숙주 70g, 잣가루 1작은술, 식용유, 소금 조금, 밀전병 반죽(밀가루 1컵, 소금 1/2작은술, 물 1·1/4컵), 표고양념(진간장 2작은술, 설탕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쇠고기 양념 (진간장 1·1/2큰술, 다진파 2작은술, 참기름 2작은술, 설탕 2작은술, 다진마늘 1작은 술, 깨소금 2작은술, 후추가루 조금), 초장(진간장 2큰술, 식초 2큰술, 물 2큰술, 설 탕 2큰술)*만드는 방법?오이는 4,5cm 길이로 잘라 원통모양으로 돌려깍아 씨를 제거 하고 곱게 채썰어 소금에 절여 꼭 짠다.
    생활/환경| 2008.07.05| 5페이지| 1,000원| 조회(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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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식증
    대부분의 여자들이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한다. 남이 보아도 뚱뚱한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없지만 정상이거나 실제 마른 사람들도 자신이 뚱뚱하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지나치게 날씬한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요즘, 비정상적인 살 빼기는 거식증이라는 병을 부르고 있다. 몸의 신진대사를 파괴하는 소비 사회의 병, 거식증을 알아보도록 하자.1. 거식증의 실태1) 거식증거식증의 정신의학적 정신 명칭은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이다. 가장 큰 특징은 극단적으로 음식을 거부하여 정상체중의 15퍼센트 이상이 감소하는 것이다. 이 병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은 체중증가나 비만에 대한 극단적인 두려움을 계속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체중 임에도 불구하고 체중을 끊임 없이 감소시키려고 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적정 체중의 30-40 퍼센트까지 체중이 감소되는데(신장 160센티미터에 체중 30킬로그램), 이쯤 되면 신체적 건강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환자 자신은 신체적 건강의 위험성에 대해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거부한다. 다이어트를 하다가 무월경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이 병을 한 번 쯤 의심해 보아야 한다.2) 거식증의 원인원인을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여러가지 다양한 원인들이 상호 작용하여 섭식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배후의 힘을 소인이라고 한다면 열등감, 완벽주의, 성장에 대한 공포, 무기력감, 우울증, 알콜 중독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것은 개인의 생물학, 심리적 요인, 가족 내 요인, 그리고 사회, 문화적 요인에 의해 일어난다. 섭식장애의 가능성이 높은 소인을 가지고 성장하던 사람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어떤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사건(대개는 다이어트), 즉 유발요인을 접하게 되면 거식, 폭식과 같은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은 이후 섭식장애를 만성화 시키는 지속요인에 의해 장기간에 걸쳐 유지된다.3) 거식진다.? 어지러움을 잘 느끼고 잘 쓰러진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두통이 있다.?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3) 태도의 변화? 기분의 변화가 심하다.? 완벽주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열등감과 불안감이 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 또는 안 먹느냐에 따라 자기 가치감이 좌지우지 된다.? 사람들을 잘 안 만나려 한다.2. 거식증의 문제점1) 거식증 환자의 특징(1) 행동적 특징? 체중이나 체형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관심이 많다.? 체중조절을 위해 심한 다이어트나 과격한 운동을 하려한다.? 체중증가나 비만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이 있다.? 실제로 체중감소가 심한데도,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한다.? 월경이 불규칙하거나 석 달 이상 없다.? 기아상태로 인해 짜증을 잘 내고, 우울증이 동반될 수도 있으며, 판단력의 장애까지 온 다.? 강박적인 양상이 있어 완벽주의적인 행동을 하거나 무엇인가에 집착한다.? 감정표현하기를 힘들어하고, 자발성이 결여되어 있다.? 사고체계가 왜곡되거나 경직되어 있다.(2) 심리적 특징거식증은 단순한 음식과 식행동, 그리고 체중의 문제가 아니다. 식행동 이상이나 체중조절에 대한 집착은 정서적 갈등이나 어려움에 대한 표현의 한 방법이자, 이러한 정서적 문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기능 또한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방어노력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오히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점점 더 큰 고통을 가져오게 된다.? 평범에의 공포이들은 자신이 매우 평범하고 일반적인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이들에게 평범은 바로 부정적인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평범한 자신에 대해 아주 근본적인 불신감, 무력감, 열등감, 자기비하감 등을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극복하기위해 무리한 노력들을 해왔다. 자신의 현실적 기대나 희망보다는 주위의 높은 기대에 부흥하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즉, 진짜 자기(true self)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살아온 것이 아니라 가짜 자기(false self)의 모습에 순응하며우가 많다. 또한 아주 사소한 비판이나 비난에도 견디어 낼 수 없다고 하는 약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기 비하감-낮은 자존감이들은 자신에 대한 기준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그러한 기대에 못 미치게 되면 스스로를 무가치하고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아존중감이 심하게 손상된다.? 성적 정체성(sexual identity)의 혼란거식증 환자들은 자신이 성숙하여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여성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확신이 없기 때문에 성적 정체성의 중대한 혼돈을 경험하기도 한다.? 우울증거식증을 가진 많은 환자들은 무기력감, 슬픔과 우울감 등을 자주 느낀다. 즉 아주 사소한 삶의 스트레스와 직면하게 되었을 때도 이들은 자신은 아무 것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과 열등감에 휩싸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열등한 자신은 사랑 받을 수 없고 결국은 버림을 받을 것이라는 자포자기감에도 빠지게 된다.? 인간관계의 회피자아존중감이나 자신감이 낮은 거식증환자들은 자신의 참모습을 보이기가 두렵고, 또한 자신의 문제에 허덕여서 다른 사람과의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기존의 대인관계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살시도 혹은 자해행위극단적인 무기력감과 자신감의 부족, 우울, 불안 등으로 인해 자살시도를 하거나 자해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인지의 왜곡인지의 왜곡(cognitive distortion)이란 입력(input)된 자극을 비합리적으로, 주관적으로 평가하여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을 의미 하는데, 특히 체형과 체중, 그리고 음식에 대한 특징적인 인지적 왜곡은 식이장애 환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신체상의 왜곡식이장애를 가진 환자들은 자신의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분의 크기와 모양을 과대평가하는 신체상(body image)의 왜곡을 보인다. 예를 들면, 이들은 자신의 배가 다른 사람보다 너무 나와 있다던가, 자신의 다리가 너무 두껍다고 생각한다. 또한 같은 체중이라도 다른 사람은 날씬 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특히 저체중 상태에서 폭식과 구토를 하는 경우는 여러가지 형태로 몸이 망가져 간다.(1) 추운날씨에 대한 내성의 저하피부아래서 절연체 구실을 해주는 피하지방이 적어졌기 때문에 외부의 찬 공기가 곧바로 내 부 장기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또한 손발이 차갑다는 호소를 많이 하는데 이는 영양부족으로 인해 혈액순환이 말초까지 원활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2) 어지럽고 무기력하며 쉽게 피곤을 느낀다지나친 다이어트로 저체중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영양결핍 상태가 되어 기운이 없을 수 밖에 없다. 거식증으로 인한 빈혈, 저혈당, 탈수상태도 기운이 없게 하는 주범이다. 조금만 오래 서 있어도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고 지친다. 그래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3) 머리카락이 뭉텅 빠지고 피부가 거칠어 진다영양부족으로 인해 호르몬의 분비가 감소되고 단백질 결핍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4) 푸석푸석한 얼굴몸은 계속 마르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물만 조금만 마셔도 다음날 아침에 보면 얼굴이 푸석푸석한게 영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거식증 여성 중 30%가 얼굴뿐 아니라 온 몸이 붓는다는 호소를 한다. 이는 영양실조로 인한 콩팥기능의 저하, 또는 혈액 중의 단백질 손실, 전해질의 불균형 때문에 혈관 내에 있던 수분이 세포들 틈으로 빠져나와 일어나는 현상이다.(5) 복부 팽만감조금만 먹어도 속이 꽉 찬 느낌이 들고 메스껍고 답답해지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는 호소를 많이 한다. 이는 두 가지의 원인으로 보이는데 그 중 하나는 위장의 움직임이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먹어야 위도 신나서 운동을 하여 음식물을 십이지장으로 내려 보내는데 장기간에 걸쳐 위로 들어오는 음식물이 적으니 위가 운동을 활발히 하지 않기 때 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위하수"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른 사람은 피하지방이 줄어 들 듯이 내장을 감싸고 있는 지방도 많이 줄어들기 때문에 내장 전체가 복강 안에서 아래로 쳐지식을 규칙적으로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8) 골다공증한참 뼈가 성장해야 할 청소년기에 저체중 상태가 되어 여성 호르몬의 분비가 중단되면 월경이 멈추고 골밀도가 서서히 감소한다. 뼈가 부실해져 가벼워지고 부서지기 쉬워지는 것이다.(9) 무월경대부분의 여성들은 체질량 지수가 18 이하가 될 경우에는 언제든지 월경이 멈출 수 있다. 이 는 영양부족 상태에 있는 신체를 보호하고자 하는 뇌의 자연스러운 생리반응이다. 영양부족 상태에서는 상당량의 출혈이라도 줄이고자 뇌하수체에서 월경과 관련되는 성호르몬의 분비를 중지시키는 것이다. 산부인과에 가서 호르몬 주사를 맞아 억지로 돌아오게 하면 신체적으로 더욱 심한 여양부족 상태에 빠지게 되어 다른 부작용이 심해진다. 그러므로 우선은 월경을 멈추기 이전의 체중으로 회복되어야 한다.(10) 약물남용음식을 좀 많이 먹었다는 생각이 들거나, 뱃 속에 무언가 있다는 생각이 들거나, 얼굴이 부었 다는 느낌이 들거나, 살이 쪘다는 생각이 들면 비만 공포 때문에 하제나 이뇨제를 많이 먹어 체중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하제는 전체 섭취 영 양분의 12% 만을 배설시키고 이뇨제는 신체의 수분만을 배설시키기 때문에 체중 감량과는 별 상관이 없다.(11) 갑상선 기능의 저하갑상선 호르몬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활발히 해 주는 호르몬 인데 거식증 환자의 경우는 많이 감소되어 있다. 변비, 탈모, 피부건조, 저혈압, 추위에 대한 내성의 저하 등과 같은 증상이 이와 관련된다.(12) 집중력, 판단력의 저하한가지 일에 집중할 수 가 없고 멍한 느낌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있게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항상 먹을 것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일상의 일이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한다. 이는 전반적인 영양상태의 부족이 주 원인으로 보인다.(13) 대뇌의 위축체중감량이 급속하게 일어나는 경우 대뇌의 위축이 심하다. 그 원인은 분명하지 않으나 혈액중의 단백질 감소, 뇌혈관의 이상 등이 관련되는 것으로 보인다.(14) 폭식했다.
    의/약학| 2008.07.05| 7페이지| 2,000원| 조회(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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