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과 구속을 끊는 글쓰기20세기 세계대전 이후 서부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는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서로 다른 상황에서 또 다른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노암 촘스키가 말하는 ‘불량국가’ 미국의 힘의 논리에 따른 사회, 문화적 식민지화와 서부제국주의의 영향으로 인한 아프리카 원주민의 전통문화의 붕괴에 따른 정체성 상실, 자본주의 문명에 따른 계급주의를 기반하는 인도 내의 심각한 빈부격차 등 여러 상황에서 이를 생각해볼 수 있다.이러한 문제들의 가장 근본적인 공통점은 모두 힘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 식민주의가 끝난 지금까지도 초일류기업을 통해서 새로운 식민주의를 이끌어 가듯 강자의 물질적인 힘에 의한 사회, 문화적 침략은 계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힘의 논리는 성격상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절대적인 것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피지배계급은 엄청난 파괴력의 이데올로기 아래 단순한 이해관계를 넘어 희생을 강요받는 것이며 그것은 단지 자본주의의 원리만이 아닌 포스트 식민주의의 대중매체 등을 통한 문화적 침략까지 이어져가는 것이다.여기서는 이러한 서로 상반된 부류 간의 이해의 가능성을 글쓰기 문제를 통해 찾아볼 것이다. 20세기 이후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 사회, 문화적 충돌을 단지 사회 현상의 이해와 화해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 아닌 텍스트에서 나타난 글쓰기를 통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생각해봄으로써 작가가 사회 문제에 대해 가져야하는 태도와 책임의 문제를 생각해볼 것이다.먼저 다니엘 디포의 'Foe'를 통해 소설에서 드러난 지배적인 글쓰기를 찾아봄으로써 그러한 글쓰기가 사회 전반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아보자.존 쿳시는 'Foe'를 통해서 세 명의 작가를 보여준다. 수잔의 모험기를 쓰는 작가 포와 오랜 세월 남성에 의해 그려진 문학을 거부하며 여성으로서의 글쓰기를 주장하는 수잔 그리고 크루소와 프라이데이의 제국주의적 관계를 통해 프라이데이의 글쓰기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는 제국주의와 프라이데이의 관계를 통해 지배계급으로서의 크루소의 모습과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기 하기 위한 포의 글쓰기를 살펴보자.'Foe'에서 수잔은 크루소를 ‘자신의 왕국에서 늙어 가며 시야가 좁아져, 자신이 세상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고 믿게 된 노인’으로 묘사한다. 그는 섬에서 탈출하고자 욕망도, 살려는 의지도 없는데 그러한 자신만의 왕국 속에 사는 노인에게는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그에 충성하는 혀가 없는 노예 프라이데이가 있다. 혀가 없는 프라이데이는 상징적으로 제국주의관계 속에서 식민지에는 어떠한 생각과 표현도 거부되는 상황을 나타낸다. 심지어는 탈출의 욕망이 크루소에게 없듯이 관계를 뒤집어보려는 프라이데이의 욕망 또한 드러나지 않으며 인간의 관계를 벗어난 계급적인 모습은 나태하고 위선적인 지배 계급 아래 얼마나 피지배계급이 고통 받는 지 전해준다.작가 포 선생님은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기 위한 대중문화의 조작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탈식민주의에서 말하는 대중문화의 침략을 말하는 것으로 지배계급의 이념을 위해 진실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말하고 있다. 수잔의 무인도 체험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포는 그들이 겪은 그대로의 현실은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며 과장, 상상과 허구적 사건을 도입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진실을 만들어 대중문화에 깊숙이 심어 놓는 것이다.이렇듯 소설 ‘Foe'에서 드러난 작품 속 제국주의의 양상은 실제 인도의 상황에서도 계급주의 관점으로 적용된다. 2개의 인도에서 드러난 지배계급의 모습은 발전 이후의 분배를 주장하는 지배계급의 생각과 카스트제도에서 기인하는 원초적인 극단으로 치닫는 빈부의 문제를 말할 수 있는데, 생각해 볼 문제는 프라이데이의 혀가 잘려 있듯이 인도의 상황 또한 상하의수직적인 관점으로 이어져 빈곤층의 참혹한 현실과 사회변화에 대한 주장은 지배계급에 의해 철저히 무시된다는 것이다.과거 영국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한 인도는 카스트제도의 에 또 다른 식민주의의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데, 이러한 생각에 관해 그들은 2%의 상층을 위해 인도 대다수의 빈곤층이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며 그들의 생활에 관해서는 그 이후에 개선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단지 물질적인 면에서만 한정되어지지 않고 다른 부분으로 파생되어 지는데 사회, 문화, 정치, 복지, 여성 등 여러 문제에서 소수의 상층을 위한 국가의 정책을 보여주고 있으며 정부의 언론 통제는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마찬가지로 9.11 사건 이후 드러난 미국의 정책은 지나친 억압에 의한 소수 민족과 20세기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들의 저항이 부를 가진 계급에 의해 얼마나 변질되어 지는지 알아 볼 수 있는 예이다. 미국은 과거 이라크의 전례에서 보듯이 무기와 석유를 점하기 위해 어떻게든 한 국가를 이용할 수 있으며 필요에 의해 버려질 수도 있는지 보여주었다. 세계를 단지 힘의 논리에 국한에 미국과 그 이외의 나라, 두 갈래로 구분함으로써 그에 반하는 이들에게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보여주듯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철저한 파괴, 이라크에 대한 처참한 응징으로 보복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전쟁을 위해 희생되는 자국의 국민 또한 사실상 자의가 아닌 참전으로 여러 소수민족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어떻게 그들이 살아남아야하는지 보여준 또 다른 예이며 전쟁의 목적을 떠나 약소국의 국민이 얼마나 살상되는지 보여준 사건이다.지금까지 바라본 작품 'Foe'와 인도, 미국의 상황에서의 공통점은 서로 상반된 부류가 이해관계를 통해 상충되는 것이 아닌 단지 위아래 수직관계에 의해 약자가 무너지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서 파악해야할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도의 상황에서 보듯이 식민지의 전례가 있는 국가가 자국 내에 2개의 인도를 만들어 또 다른 식민지의 형태를 취했으며 이러한 구속과 억압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계속된 억압과 구속의 연장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에 관해서 ‘글쓰기’가 어떠한 해결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생각해보아야할 문제는 이러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영향의 억압과 구속의 연장이 멈춰질 수 있는가이다. 위에서 밝힌 바처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강화는 필연적으로 대중문화의 조작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사회, 문화적 현상에 관해 일반 대중이 바라본 진실은 결코 정당성을 갖는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백인과 흑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듯 ‘흉내내기’를 통해 일상적인 삶 속에 뿌리 깊이 다른 문화가 이식되었다는 것은 문화적 침투의 위험성을 깨닫게 만든다.이러한 매체를 통한 대중문화 조작의 위험성의 문제는 작가가 진실을 전하려는 모습처럼 역사적 사실이나 현상의 객관적, 보편적 역사의 서술은 가능한가에 관한 문제와 귀결된다. 살아남은 자가 전하는 전쟁의 모습을 진실이라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그 이상의 복합적인 문제에 관해 권력에 의한 이익집단의 역사서술의 위험성은 간과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힘에 의한 역사적 사실이나 현상의 서술은 해결하기 힘든 문제라 하더라도 다양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집단 간의 정상적인 의견충돌은 일방적인 힘의 논리에 의한 기득권의 권력연장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역사적, 보편적 역사의 서술의 근본적 해결의 접근을 가능케 하는 것은 로이가 말하는 것처럼 작가, 시인, 예술가 등이 사회현실에 관해 책임의식을 가지고 진실을 전할 수 있을 때 사건들의 연관성을 밝히고 상식적 이해의 가능성을 찾아줄 것이다.로이는 좋은 작가나 위대한 작가라면 사회가 강요하는 책임감이나 도덕상을 거부할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예술이나 글쓰는 행위 자체가 작가에게 부과하는 도덕성과 엄격성과 책임감이라는 그물이 존재하며 최상의 경우 예술과 매체 사이의 절묘한 결속을 낳아 문제의 해결 가능성의 폭을 넓혀준다. 로이는 이러한 작가의 책임에 대해 외면적인 규칙은 없지만 작가라는 존재가 사회문제를 바라보며 보지 않은 것으로 하거나 침묵을 지키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발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정치적 행동이 된다여기에 작가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이러한 책임감 아래 보이지 않는 존재를 현실적인 존재로 만들어 이를 감추려 하는 이들로부터 진실을 지켜내야 하며 그러한 파장이 매체와의 결속과 함께 약자의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으로 이어질 때 그들의 옆에서 힘이 되어 주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글쓰기의 힘을 통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로이가 말하는 작가의 글쓰기는 'Foe'에서 포의 작가로서의 태도를 통해 제시된다. 포는 작가가 이야기를 위해 현실을 왜곡하고, 이야기가 오히려 현실을 만들어가게끔 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이제껏 생각해온 바와 같이 현실의 반영이 말이 아니라, 말이 현실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말은 'Foe'가 갖는 ‘적’이라는 의미처럼 작가 자신이 텍스트를 성립시키는 과정에서 진실에 적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작가로서의 힘에 대해 얼마나 큰 도덕적 책임감이 존재해야만 하는지 말하고 있다.억압과 구속을 끊는 글쓰기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식인으로 노암 촘스키를 들 수 있다. 그는 언어학자이며 정치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60~70년대 미국의 베트남 침공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혀왔으며 특히 그의 저서 ‘불량국가’에서 볼 수 있듯이 약소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비판하며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야만성과 실상을 폭로하는데 주력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지식인의 의무를 다할 뿐이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참여의 태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진실을 전할 수 있는가는 글쓰기를 통한 문제해결의 열쇠가 된다. 그는 단지 진실을 밝히는데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불량국가’에서 드러나듯 미국에 대해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어도 저질러진 일들에 대해 인식하고 살아남은 사람을 구하며 그들에게 충분한 배상을 제공해야하는 도덕적 책무를 촉구한다. 이러한 자세는 지식인의 현실참여가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가를 보여주는
늦봄의 발자취를 잊기 위하여..‘문익환 평전’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해본 것은 지난 수업시간 동안 내내 말해온 ‘기독교와 자기확립’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정리하려던 내 생각은 잠시 후에 다 무너져 버렸고, 그 분의 발걸음을 쫓아가보며 그 분을 이해하고 또어떠한 방향으로 자신의 소망을 이루셨는지 따라가보게 되었다.지난 강의 내내 많은 학우들이 느꼈겠지만 가장 부끄럽고 힘들었던 것이 앞으로 기독교인으로서의 앞으로의 장래를 풀어 놓는 것이었다. 과연 얼마나 진지하게 이것에 대해 기도해봤는가. 얼마나 준비를 해왔는가. 그러한 준비를 위해 또 나는 자기확립을 해오고 있었던가. 나는 이 책을 한 사람의 위인전처럼 보지는 않았다. 그 분의 생의 흔적을 쫓아 기록한 작은 책 한권이지만 이 작은 것만으로도 다시 한 번 성숙한 자세로 나를 뒤돌아보며 반성할 기회가 된 것은 분명하다. 신앙인으로서의 준비와 사명감, 깨달음, 실천자세. 모든 것들로 하여금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목사님에 있어서 신앙은 일제 치하의 삶 속에서 북간도에 살아가는 소년에게 있어서 하나의 피난처였으며 구원의 길이었다. 어린 나이 속에서 신학의 길을 찾아냈으며 일본으로 유학을 통해 공부하는 기회를 얻지만 일제가 범하는 만행 앞에서의 참혹한 나라 현실은 그가 교회의 문을 남설 때마다 세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 시대를 바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는 새로운 기독교신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 김재준 목사님을 잇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텍스트 안에서만 존재할 뿐 실제 현장에서는 유보된다는 점에서 마흔살의 목사님은 한계가 있었다. 당시 교육받은 지식인들이 현실에 무너지는 모습은 너무나도 처참한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어두운 곳에서 세상을 등져버렸으며 그간 배운 것들이 현실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상처였다.목사님은 성서를 번역함으로 생애 큰 기쁨을 맞게 되며 전태일의 분신사건을 통해 사회현실의 처참함을 느끼게 되고 또 장준하 선생님의 죽음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신다. 목사님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민족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등불이었으며 믿음과 자유가 함께하는 사회를 꿈꾸게 하는 소망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믿음 아래 전태일의 분신은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비인간적이 처우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직시하게 됬으며 그들을 위해 노조에 뛰어들게 된다.사람들이 너무나도 옳다고 생각하는 믿음은 당시 분단되어 암울한 민주화의 시기를 맞는 당시로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었다. 박정희 유신정권 속에서 3.1 민주구국선언을 시작으로 그는 고난의 과정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신앙의 믿음과 성품은 지장받지 않았으며 더욱 미래를 개선하기 위하여 유신독재에 맞설 소양을 기르고 계셨다. 유신정권이 묵사발이 된 첫 장소는 법정이었다. 민주주의를 말하는 이 땅에서 그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는 말은 참으로 안타까운 표현이었다. 당시 법정에 참가한 인들은 거듭 이 땅의 올바른 민주주의를 세워야 하며 유신체제에 대해 서슴치 않고 비판을 가했다. 당시 일에 대해 장준하 목사님은 마치 성령이 대신 한 것 같았다고 하셨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여 이 비뚤어진 나라를 대신에 성토하시는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많은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버리지 않고 견딘 것처럼 그 당시 많은 사회적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 이끄시는 길을 끝까지 놓지 않으며 세상의 빛으로서 따르는 모습은 충분히 감동할만 했다. 그러한 현실에의 참여는 목사님이 말씀하신 예언자의 모습이었다. 현실 세계의 과오들이 미래를 이끈다는 점. 그러므로 미래를 예언할 때 마침표로서 맺음을 짖는다는 것은 그 만큼 현실에 대한 목사님의 의식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에의 참여 없이는 세상의 변혁 또한 없는 것이며 인생에의 자기실현 또한 없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전태일의 분신의 모습을 보면서, 숱한 노동자들의 자살을 보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떠올렸으며 그러한 현실에의 노력이야 말로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더 큰 것을 이루셨듯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세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누리게 함으로 다시금 부활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비록 적지 않은 나이로 현실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지난시절의 많은 노력들이 투쟁의 원천이 되어 이 땅의 진실을 위해 싸워온 목사님의 모습은 결코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자들의 광신적으로 용인되는 폭력은 아니었다. 평화를 추구하셨으며 여성과 같이 부드러운 모습이셨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의 투사로서 임하실 때는 성령이 임한 주님의 투사가 됬으며 진실로 상대를 대하며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것을 항상 지켜내왔다. 이러한 믿음에 근거한 삶의 자세를 그간 까맣게 잊고 지내온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졌다. 민주화를 위한 단체들이 단지 이루어질 수 없는 허상을 쫓는 한없이 약한 존재로서만 생각해 온 나로서는 냉소와 비관의 일제의 지식인의 도피모습만을 쫓고 있는 것이었다. 왜 현실에의 바른 참여가 이 땅에서 내가 이뤄낼 자아실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사회와 현실은 믿음과 다른 것이라고 느껴왔던 것인가. 그러한 삶은 단지 목사님과 같이 주님의 종으로서의 길을 택한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여겨왔던 생각은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인생을 통해 올바른 신앙으로 무장하여 문익환 목사님이 감옥에서 받은 고난의 과정을 이겨낼 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게 아닐까. 목사님은 그러한 험난한 과정에서 결코 상대를 비난하거나 거짓을 일삼거나 하지 않으셨다. 상대의 진실한 모습을 알고자 애썼으며 자신을 낮춤으로 상대를 높이신 것이다. 모두가 아는 흔한 진실이지만 그러한 모습을 한결같이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것을 몸소 보여주시며 부당한 현실 앞에서는 주님의 종으로서의 모습을 강하게 드러내시는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당황해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며 쫓아야할 이상적 모습일 것이다.그가 한 가장 큰 업적은 바로 북한을 방문한 것이다. 남한 사회의 덕망 있는 재야인사가방북함으로서 서로간의 믿음의 폭을 더 넓게 해주고 대중의 의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제 3국을 통해 북한으로 입국했으며 그곳에서 목사님으로서의 모습으로 대함으로 그들의 믿음을 이끌어냈다. 상대 체제를 인정했으며 그들의 생각을 물었고 진정한 주체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민중이며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분할된 이 현실은 앞으로의 미래 사회에서 큰 장해가 되는 요소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그간 서로 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며 비방하고 견제해온 모습을 버리고 한민족으로서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루어 내는 것이 진정한 양 국가의 목적이라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문익환 목사님은 예배당 강단에 서서 우리 단순히 어려운 난관을 이겨내기 위해 기도하고 복을 바라며 천국을 가려함이 기독교신앙의 모습이 아니라 이 땅의 현실을 이겨냄으로 주님의 부활의 모습을 비추는 것이 바로 그것임을 깨우친 것이다. 그는 김일성 주석에 믿음을 이끌어 냈으며 북한 또한 상대 체재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만들어 냈다. UN 동시가입과 이산가족 상봉 등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오히려 남한에서는 방북사건을 우려했으며 크게 혼란스러워했다. 개인이 이루어낸 업적을 정부는 결코 용납하지 않았고 결국은 다시금 그를 수감하게 만들었다.이러한 방북 사건은 우리 교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지를 분명히 말해준다. 많은 교파로 나뉘어서 서로간 다른 이념을 내세워 분리되는 모습이 아니라 크게 하나되어 주님의 종들이 현실이라는 고난에 맞서 싸움으로 이 시대를 평화의 공존의 길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신 것처럼 나와 다른 그들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들을 높임으로 우리가 낮아지는 관계가 되야 한다. 더불어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단한 노력을 통해 통일되기 위한 주축이 되어야 한다. 선교사업과 각종 의료, 교육 지원을 통해서 한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하며 정부주도로는 옳고 그름을 따질 수 밖에 없는 일들을 교회가 앞장서서 감당해 내야 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정의를 내리면..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에서 비롯되어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페미니즘의 시초는 자유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에 의하면 여성의 사회진출과 성공을 가로막는 관습적, 법적 제한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의 원인이다. 따라서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기회와 시민권이 주어진다면 여성의 종속은 사라진다고 한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 사적 소유가 존재하는 한 참된 기회균등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다.F.엥겔스는 여성억압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자본주의가 바로 여성억압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급진적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에 기초한 법적 ?정치적 구조와 사회 ?문화적 제도가 여성억압을 가능하게 하는 것 외에 생물학적인 성(性)이 여성의 정체감과 억압의 주된 원인이며, 여성해방은 출산 ?양육 등의 여성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사회주의적 페미니즘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성별 특성을 간과했다고 지적하고, 여성억압은 노동자 억압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며 따라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한 가지 개념을 사용하여 분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급진적 페미니즘가부장제에 기초한 법적·정치적 구조와 사회·문화적 제도가 여성 억압의 한 원인일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인 성(性)이 여성의 정체감과 억압의 주된 원인이므로, 여성해방은 출산·양육 등의 여성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여성운동 또는 그 이론을 가리킨다.여성의 권리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사회운동으로 시작된 여성운동은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하여 남녀의 성별(性別)에서 오는 모든 차별을 철폐하려는 여성해방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급진적 페미니즘의 실천자로는 앨리스 에콜스(Alice Echols), 앤 코트(Anne Koedt), 엘렌 윌리스(Ellen Willis),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성과 똑같이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인간평등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여성의 지위와 상태를 진전시키고자 한다. 18세기 말의 월스톤크래프트( Wollstonecraft), 19세기의 밀(Mill), 20세기의 프리단(Friedan)이 이 조류의 대표적인 이론가이다.문학연구에서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실천적 행동은, 주로 백인남성 작가들과 작품 위주로 형성된 표준 정전(canon)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외된 위대한 여성작가들과 작품이 포함되도록 요구하고, 학계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도록 사회 여러 분야에 촉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기성의 정치적·사회적 구조를 완전히 무시하거나 혁파하기보다는 기존의 틀 안에 여성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구조를 개량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이들의 수정주의적 태도는 혁명적 철학을 지지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미온적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시몬 드 보브아르 - ‘제 2의 성’* '타자성'이 인간의 사고를 조직하는 필수적인 개념. '나'에 대한 의식이 '내가 아닌 것', 다시 말해 타자와의 대립관계 속에서만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종 집단이나 사회 집단 들은 스스로를 이질적인 '타자'와 반대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집단 정체성을 획득한다. '여자' 역시 남자들이 남성이라는 긍정적인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타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여자에 대한 부정적 자질 선택으로 남성성은 긍정적 자질을 부여받는다.* 남성은 자신이 욕망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 또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동시에 여성에게 투사한다. 여성의 신비화는 공포와 기대를 만들어낸다.* 여성들은 '아직도 남성의 꿈을 통해 꿈을 꾸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만약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성의 잘못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른바 새로운 여성성과 손을 맞잡고 가고 있다. 즉 자연과의 조화, 모성 본능, 육체적인 것 등의 지위 상승과 나란히 가고 있다. 이것은 여성을 전통적 역당연히 남성이며 읽거나 쓰는 행위는 여성에게 이질적인 것일 뿐 아니라 해로운 것이라고 인식하던 ‘문학의 부권’)기가 오랜동안 당연시되었기 때문이다.우리가 속한 현실세계와 학문연구의 모든 영역에서 한쪽은 ‘지배자, 억압자, 가해자’이며 ‘중심’으로, 또 한 편은 ‘피해자, 희생자, 피억압자’이며 ‘주변’으로 위치되어 왔다. 지배자의 진리만이 늘 유일한 진리가 되어 온 지금까지의 전통을 깨뜨리고 중심과 주변이 경계를 해체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랬을 때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중심에 서지 못했던 자들의 목소리이다. 최근 페미니즘 비평이 황금의 목소리로 다가오는 것도 기성의 비평 방법이 무시해버린 내용을 들춰내 비평계의 커다란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기존 문학작품과 비평에 대해 거세게 저항하고 반발하는 철저한 여성 시각을 요구하면서 시작한 이 비평은 주로 이미지 비평을 통해 실천되었는데 케이트 밀레트, 시몬느드 보봐르, 배러트가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사회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어 폭로하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종속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태어나며 일생동안 그것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들을 강조해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상황을 인식하고 투쟁하도록 유도하였다. 왜곡되어 온 여성상의 제시가 결코 진실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한 것이다.여성 이미지 비평을 통해 왜곡되어 온 여성상의 해방을 추구하던 단계를 거쳐 페미니즘 비평은 점차 여성을 중심에 놓는 여성중심비평으로 옮겨져 온다. 여성중심비평은 그간 소외되고 상대화되어 온 여성을 남성의 대상물이 아닌 주체이며 중심에 놓으려는 입장을 강조하고 지금까지 폄하되어 오던 여성의 특성과 경험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여성작가연구를 통해 여성문학의 전통을 발견하고 정립하려고 한다. 문학사에서 소외된 여성작가를 발굴해 위치를 복원시키고 그들에게 덧씌워져 온 오해를 벗기는 점에 있어서는 남성문학의 전통을 수정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Ⅱ. 정치적 페미이미 ‘성 정치’라고 규정짓는 것은 성정치적 힘 개념으로 사회적 지위를 논하고, 그 지위상의 문제를 생물학적, 사회학적 분석으로 이끌어 내려는 전략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밀레트는 생물학적 또는 심리적 분석에서 역시 인간이 가지는 사회적 정체성의 형성과정을 주요한 측면으로 다룬다. 문학작품의 이름으로 드러나는 남성의 성 정치의 의도는 바로 그들의 작품 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캐릭터에서 잘 나타난다. 또한 사회적 상황은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남성지배자와 남성피지배자의 관계를 잘 나타내 준다. 바로 이러한 권력관계, 상?하 수직관계를 이루는 계층의 관계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또한 드러나는 정치적 관계인 것이다. 이처럼 여성과 남성 사이에 나타나는 힘과 권력의 관계를 정치적 관계라고 규정한 뒤 밀레트는 양성간의 관계를 현재와 역사를 통한 제도적 고찰로 이해하려 한다.밀레트는 역사적으로 성립되어 온 사회적 제도는 인간사회의 ‘내부 식민지화’의 과정이 가장 교묘히 성립되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어떠한 인종차별이나 계급차별보다 더 완강하고 엄격하며, 획일적이고 영속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음을 밝히면서, 성 지배는 우리 문화의 가장 기본적인 권력개념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밀레트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남성사회의 이기성을 고발하고 여성에게의 기회의 불균등성을 비판했다. 법적, 제도적 평등은 ‘기회의 균등’으로부터 사회적, 심리적, 의식적 측면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밀레트는 남성 중심적인 정치와 문화를 고발하여 여성해방을 주장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여성이 어떻게 억압당하고 있으며 여성의 해방을 위해서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어떤 보완이 필요하며 또한 여성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관한 언급은 미미하다.2.2. 미셸 배러트미셸 배러트는 ‘가부장제’의 개념이 역사적 근원도 변형도 없는 보편적인 지배를 암시한다고 주장해 왔다. 배러트는 성 표현의 마르크스적 페미니즘을 제시한다. 첫째, 남자와 여자가 문학을 산출하는 조건은 실질적으로 다주장한다. 급직적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 자신이 여성에게 억압적인 성 역할을 강요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가부장제의 성차이에 근거한 가치관에 대한 대안으로서 양성동체적 문화의 창조와 동성연애, 독신 등을 인정하는 가치관을 내세운다.여기에서 살펴보아야 할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일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 문학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로서 뛰어난 작품 세계를 일궈 놓은 페미니스트 비평의 중요한 선구자이다. 울프는 그 동안 남성 작가들이 전통적으로 구사해 온 소설작법에서 벗어나 특유의 기법으로 남성과 여성의 이분된 질서를 뛰어넘어 단순히 여성 해방의 차원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인간 해방의 깊은 문학을 지향한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감수성에 기반하는 방법으로 작품 창작에 임했으며 소설 속에서 외적 세계를 고의적으로 흩뜨려놓음으로써 독자들에게 그것의 진정한 실체를 경험하도록 했다. 그는 전통을 부정하고 현대성이라는 개념을 일관되게 추구했다. 일생 동안 정신병을 앓았던 그는 가장 개인적인 시선에서 실존적 고통을 작품에 담아 내였다.울프는 여성 비평의 측면에서 양성론을 주장하였다. 울프는 위대한 정신은 순전히 여성적인 정신만으로 창조할 수 없으며 또한 순전히 남성적인 정신만으로도 창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남성 작가들은 두뇌의 여성적인 부분에 의존하며 마찬가지로 여성은 그녀 내부의 남성과 관계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한다. 또한 울프는 여성의 무의식은 믿지 않았으나, 여자들이 다르게 작품을 끄는 것은 남자와 심리적으로 달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경험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들의 경험에 대해 쓰려는 그의 시도는 의식적인 것이었으며 여자들의 제한된 삶을 묘사하는 언어적 방법을 찾아내려고 목표를 삼았다. 울프는 여자들이 마침내 남자들과의 사회적?경제적 평등을 성취했을 때에는 여자들의 예술적인 재능을 자유롭게 발달시키는 데 방해될 것은 없으리라고 믿었다.Ⅳ. 프랑스 페미니즘프랑스 여성해방비평은 현대 여성해방비평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행한 흐름이다. 프랑스 흐.
프로타고라스소크라테스가 그의 친구에게 프로타고라스가 아테네에 왔음을 이야기하며 그와 주고 받았던 이야기들을 말하기 시작한다.프로타고라스가 아테네에 머무는 소식을 들은 힙포크라테스는 자신에 대해 잘 이야기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른 새벽 소크라테스를 방문한다. 소크라테스는 다소 흥분한 힙포크라테스에게 그가 무엇을 배우려고 찾아가는지, 어떤 인물로 알기에 돈을 지불하는지, 무엇이 되기 위해 프로타고라스를 찾아가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가 대답하기를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이며 그것은 말재주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가 하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며 그의 행동은 행복과 불행을 도맡고 있는 영혼이 좋아지느냐 나빠지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를 소홀히 하는 것이라 지적한다. 영혼의 상품을 지닌 소피스트들은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때에 따라 수요자들에게 파는 사람들이며 그것을 분별할 수 없다면 돈을 지불하고 배우는 순간 학문은 영혼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기 때문에 음식물을 사들일 경우보다 그 위험이 훨씬 큰일이라 말한다.1. 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 (314c~328d)칼리아스의 집을 찾아간 소크라테스와 힙포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를 만나 대화를 청하고 먼저 가르침을 받으면 어떠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이에 다른 소피스트들이 이것저것 마구 전문적인 학문세계로 몰아넣는 것에 반해 자신은 배우고 싶어 하는 것만을 배우게 하는데 이는 자기 집안을 올바로 다스리는 일이며 공공 사무를 처리하거나 논하는 데 유능하고 실력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는 국가나 사회를 위한 정치 능력을 기르는 것이며 훌륭한 시민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319-b) 소크라테스는 덕은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그리스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아테네 사람들은 슬기로운 백성이다. 그들은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할 경우, 전문가를지만 나라의 일반적인 일의 처리에서는 누구나 저마다의 의견을 제출하는데, 이는 아마도 덕은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하여 페리클레스의 경우,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가르쳐주었으나 그 자신이 지혜로운 분야는 스스로 가르칠 수도 없으며 맡길 수도 없는 것이라 한다. 즉, 비상한 인물도 다른 사람을 뛰어난 인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320-b)프로타고라스는 이에 신화를 인용하여 논증한다.(320-d) 신들만이 있던 시기에 종족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어느 종족도 멸망되는 일이 없도록 능력을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인간에게는 줄 능력이 없자 프로메테우스는 헤파이스토스의 불과 아테네의 지혜(기술적)를 훔쳐내어 사람에게 가져다주었다. 이들은 신의 성품을 나누어받았지만 한 곳에 모이자 시민으로서의 기술이 없기 때문에 싸움이 되풀이 되어 멸종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본 제우스는 ‘정의’와 ‘수치심’의 지혜를 나누어주는데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어 국가가 성립할 수 있도록 하였고 지닐 만한 능력이 없는 이들은 국가의 화근으로 간주, 처단하라 명한다.(322-d)이를 통해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덕성에 관계되고 정의와 절제의 의해 견제되어야 할 경우에는 어떤 사람의 의견도 받아들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하며(323-a) 정의로운 척이라도 안하는 사람을 미친 사람이라 하는 것은 누구나 덕을 지니기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프로타고라스는 덕은 가르침을 받아 갖추는 것이고 이것이 천부적임은 의식적인 관심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323-c) 사람의 허물이 타고난 것이라면 가엾다고 생각할 뿐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노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의 경우는 허물만을 가지고 있다면 화를 내거나 징계를 하거나 훈계를 하는데 그와 같은 덕성이 마음가짐과 배움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323-e~) 저지른 과실의 징계 목적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아테네사람들은 덕은 사람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며 뛰어난 사람들에 관한 문제를 제시한다.(324-d) 뛰어난 사람들이 스승들에게 배울 수 있는 지식은 자식에게 가르쳐 인재로 키워 가면서도 자기 자신을 뛰어난 인물로 만들어준 가장 근본이 되는 덕성에 관하여는 가르치지 못하는 것과 자녀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는가.만약 자기 자녀에게 덕을 배우고 덕을 지니도록 양육하지 못한다면, 자녀들은 사형이나 추방의 징벌을 받을 뿐 아니라 재산마저 몰수를 당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매우 어렸을 때부터 시작하여 살아 있는 내내 가르치고 훈계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325c) 자녀를 스승에게 맡기는 것은 품행이 단정하도록 당부하는 것이며, 학교에서는 뛰어난 시인의 작품 속의 위대한 이물을 묘사하고 찬양하고 찬미한 말들을 통해 덕을 배우고 훌륭한 인물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좋은 선율과 화음을 몸에 익혀 말이나 행실이나 모든 면에 뛰어난 존재가 되도록 하는 것이며 체육을 통해 건강한 육체를 지녀 어떠한 장소에서도 육체가 허약하여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스승 곁을 떠난 이후는 국가가 법률을 따라 살 것을 요구한다.훌륭한 아버지에게서 저능한 자식들이 태어나는 까닭은(326e), 나라가 유지되기 위해 모든 사람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피리를 부는 기술을 배워한다는 가정으로 설명한다. 피리를 잘 부는 것은(327a) 누구의 자식에 상관없이 타고난 소질의 풍부함에 따르는 것이며 피리를 불 줄 안다는 점에서 전혀 불 줄 모르는 사람에 비하면 유능한 피리꾼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의 자식도 보잘것없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보잘것없는 사람의 자식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연소하기에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2. 덕과 그것을 구성하는 것과의 관계 (329a~338e)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에게 덕과 그것을 구성하는 것과의 관계를 질문한다. 이에 프로타고라스는 그것은 마치 얼굴의 여러 부분과 얼굴 전체와의 관계와 같아서(329-e) 용기가 있으면서도 옳지 못한 사람이 있듯이 그 부분과 통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은 경건한 것은 정의로운 것이 아니며, 정의도 경건한 것이 아니므로 경건은 정의롭지 못한 성질을 가지게 되며 또 같은 논리로 정의는 불경건하다는 것을 포함한다고 소크라테스는 지적한다. 프로타고라스는 이것에 부인하여, 정의는 경건과 비슷하기는 하나, 같은 것은 아니며 흰색과 검은색, 또는 단단한 것과 무른 것이 서로 반대되지만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하면서 조금이라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해서 바로 유사하다고 하거나 조금이라도 비슷하지 않은 점이 있다고 해서 유사하지 않다고, 주장한 얼굴의 여러 부분에 관하여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따라서 올바른 것과 경건한 것 사이에는 조그마한 유사점밖에 없는 상호 관계임을 묻는 소크라테스에 긍정한다.이에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과 추, 좋음과 나쁨의 관계 등을 통해 서로 반대되는 것은 각기 대응하는 것이 하나뿐이며 많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무분별의 반대는 분별도 되므로 지혜와 분별은 같은 것 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어서 부정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분별이 있음을 프로타고라스가 시인하게 만들며 분별은 신중하게 잘 생각 하는 것이고 이것은 행위가 잘됨을 뜻한다고 말한다. 프로타고라스도 이에 동의하자 소크라테스는 사람에게 유용한 것이 좋음이냐고 묻는다. 프로타고라스는 음식이나 약이나 그 밖의 많은 것들이 어떤 것은 사람에게 해롭고 어떤 것은 사람에게 유익하다 말하며 좋음이란 복잡하고도 다양한 것이라고 대답한다.(334-b)토론이란 서로 말을 주고받음으로 나누는 것이지 연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소크라테스는 짧고 간결한 대답을 위해, 당신은 끝이 없이 얘기할 수도 있고 누구보다 간결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었음으로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더 훌륭한 사람인 그가 양보하여 주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이에 거부당하고 히피아스의 중용의 길을 따르라는 바램에 따라 먼저 소크라테스가 짧게 대답하고 후에 그가 따르기를 약속한다.3. 시모니데스의 시 (339a~349a)프로타소중한 것이 시를 잘 이해하는 것이라며 ‘시모니데스의 시’를 통해 생각을 견주고자 한다. 시모니데스가 시구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있기란 어렵다’고 말한 피타코스를 비난하며 자신의 말을 잊고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렵다고 했다며 모순에 빠졌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프로디코스의 도움을 통해 ‘된다’는 것과 ‘있다’는 것이 동일하지 않기에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프로디코스 주장) 또한 덕의 소유가 쉽다는 해석에 대해 그 스스로 ‘어렵다’는 말을 나쁜 것이 아니라 쉽지 않은 것이라 답하게 만든다. 이것은 ‘오직 신만이 그것을 갖고 계시리’에서 분명히 밝혀진다.소크라테스는 시모니데스의 시에 의도를 밝히고자 한다.(342-a) 철학은 스파르타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이 땅에도 소피스트들이 존재했는데 프로타고라스가 말한 같은 의도를 지녔기 때문에 이 사실을 부인하고 무식한 듯 가장했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 마음에 새길 만한 짤막한 말을 잘했는데 짧은 글귀로 지혜있는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시모니데스는 이 시를 통해 피타코스의 글귀를 과녁으로 삼아 가치를 떨어뜨리고 지자의 명성을 얻고자 함이었다.‘되기란’이라는 말을 쓴 이유도 이것이며 ‘실로’라 말은 처지를 바꾸어 피타코스의 격언을 앞에 놓고 해석하도록 실마리를 준 것이다. ‘막을 길 없는 재앙’은 앞을 헤쳐나가는 기술을 지닌자를 쓰러뜨린다. 좋은 사람은 때로는 나쁘고 때로는 훌륭하기에 계속 뛰어난 사람으로 있기란 불가능하다. 그는 자진하여 악을 행하지 않으려는 자를 찬미하는 것은 아니라 했는데 이것은 자기 자신과 관련 자진해서가 아니라 억지로 독재자나 폭군들을 칭찬하고 찬양하기도 했던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완전무결한 인간을 찾는다면 어느 누구도 칭찬할 수 없으며 중간단계에 있는 사람을 비난없이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이다.작자에게 질문할 수도 없는 시를 화제로 삼고 토론한다는 것을 저속한 이들의 술자리같이 여긴 소크라테스는 서로 직접 말을 주고받으면서 진리와 그들 자신을 검토하기를 권유한다.4. 지혜와 용기)
제임스 조이스는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서구를 풍미하였던 모더니즘 문학을 주도한 대표적 소설가이다. 'epiphany', 'stream of consciousness' 등의 용어를 문학 사전에 처음 편입시키며 현대 문학에 커다란 변혁을 초래한 그의 작품에서는 현실과 환상, 추억과 욕망이 서로 뒤엉킨 현대인의 정신적 갈등과 방황을 목격하게 된다.조이스 문학의 특성은 무엇보다 그의 독창적인 실험성에 있다 첫 작품에서부터 마지막 작품에 이르기까지 구사된 신화적 상징, 몽타주와 패러디, 시간 의 현대적 개념구사, 환상과 무의식의 세계, 다양한 문체, 다원적 세계관, 서술 기법의 끊임없는 변화, 독창적인 어휘 창조 등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실험 정신을 잘 반영한다. 그것은 단순히 일시적인 전위적 유행을 반영하기 보다는 삶과 그 삶에서 추출되는 문학 세계의 본질을 밑바닥까지 헤쳐 보려는 작가의 투철한 장인정신을 의미한다. 더블린 사람들의 매 단편마다 고착되어 있는 마비된 현대인의 모습을 작가는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이는 안주하지 않는 영원한 모색이 삶에 대한 조이스의 전반적인 관점이며 그의 형식상에 있어서의 무한한 실험성을 뒷받침해 주는 기본 정신이 되고 있다.조이스는 정치적으로 한창 혼란해지기 시작한 역사적 현실을 등지고 조국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항상 더블린을 되새기는 작업이었고, 아일랜드의 현실과 역사는 점점이 그의 작품마다 스며 있다. 그는 실제적인 정치적 활동에서 늘 거리를 두었지만, 그가 언어의 실험을 통해 시도한 예술적 작업은 충분히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당시 서구 사회를 지배하던 제국주의적 문화 전통을 뿌리부터 뒤엎는 일로써, 고착된 제국주의적 의미 생산 과정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의미 생성의 관계를 새롭게 부각시키는 것이었다.‘더블린 사람들’의 작품에서는 작품의 효과를 철저하게 점검하는 작가의 섬세한 기법과 실험성을 엿볼 수 있다. 14편의 짤막한 단편과 1편의 중편을 모아 놓은 이 단편집은 작가 조이스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위대한 작가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독자들이 추적해 갈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즉 ‘더블린 사람들’과 조이스의 다른 작품을 비교해 볼대, 작가의 상상력으로 끝없는 창조적 실험의 날을 어떻게 벼리어 가는지가 선명히 부각된다.초기 단편들은 작가의 첫 창작임에도 불구하고 각 단편마다 삶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미적 완성도로 독자를 경이롭게 만든다. 특히나 ‘에러비’, ‘이블린’, ‘하숙집’, ‘위원실의 담쟁이날’, ‘참혹한 사건’, ‘죽은 사람들’은 세계 단편집에 자주 수록될 만큼 영국 단편 소설의 수준과 영역을 한 단계 높은 작품들로 평가되며 다른 작가들에 대한 영향 또한 대단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치말한 사실적 묘사, 깊이있는 함축적 상징, 일순간의 극적 효과, 의미의 다양한 공명을 울리는 언어 사용을 작가의 대표작에 앞서 이미 단편마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1907년 8월 오스트리아의 트리에스테에 머물면서 중편 ‘죽은 사람들’을 탈고함으로써 이 중편과 14개의 단편이 합쳐진 ‘더블린 사람들’이 완성되었다. 이것이 출판된지 4일이 지나 그의 두 번째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이고이스트 라는 영국의 전위잡지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사자들-죽은 사람들- 을 개작한 작품이다. ‘더블린 사람들’을 쓴 작가의 의도와 목적은 이 단편집을 출판한 그랜트 리처드 에게 보낸 1906년 5월 5일자 편지에서 보인다.“저의 의도는 내 조국 도덕사의 한 부분을 쓰려는 것이었으며, 그 배경으로 더블린을 선택한 이유는 이 도시가 마비의 중심지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마비를 유년기, 청년기, 성년기, 대중의 공중생활과 같이 4단계로 구분하여 무관심한 대중에게 제시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 순서에 따라 단편들도 배열되어있습니다. 나는 대부분 꼼꼼 하도록 비천한 문체로 그 마비를 표현하였으며, 작가는 이런 묘사를 통해 이제까지 목격하고 들어온 바를 과감히 변형하고 한 편으로는 더욱 훼손시키는 담대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이 편지는 작품의 핵심적 사항을 잘 지적하고 있다. 첫째로, 작가는 더블린 시민들의 생활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생활상은 ‘마비’의 모습으로 추출된다는 점이다. 작가의 관심은 각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주변 환경과의 갈등에 맞추고 있다.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권위적 사회의 권력을 고발하며, 또한 이에 굴복하여 무감각하게 일상적 생활을 영위해 가는 개인의 마비된 의식을 비판한다. 더군다나 일상성에 매몰된 현대인은 자신의 의식이 마비되어 있다는 사실자체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몸은 살아있지만 정신을 죽어 있는 ‘삶 속의 죽음’이란 부식 상태이다. 마비, 부식, 죽음의 덮개를 떨쳐 내고 자유, 출발, 생명의 가능성을 조이스는 각 단편마다 각인시켜 준다. 둘째로, 작품들을 ‘유년기, 청년기, 성년기, 대중의 공중생활’이란 4단계로 구분하여 더블린 시민들의 생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작품의 일관된 구조를 말해준다. 한편의 성장소설을 꾸며놓은 듯한 인상까지 줄 정도로 각 단편간에 유기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어 일관된 주제의식을 더욱 부각시킨다.언어와 서술 기법의 잠재력에 대한 조이스의 세심한 관심은 자연히 그로 하여금 사실주의적 또는 자연주의적 재현의 차원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이끈다. 조이스의 epiphany 수법은 상당히 미묘하고 다양하며 미적이다. 카톨릭의 성찬식에서 유래된 epiphany를 조이스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갑작스런 현현으로 천박한 말이나 행동 속에서, 또는 마음 속의 기억될 만한 단계에서, 일순간 발생한다. 즉 우리가 지각하는 대상의 본질이 드러나는 현상이 epiphany 로서 사물의 본질은 일상적 생활 속에 묻혀 가리워져 있지만 어느 순간 일상성의 외피를 뚫고 사물의 본질이 지각되고 인식될 때, 그 사물은 epiphany 를 성취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조이스가 창조한 epiphany 가 각 단편에서 성취하는 예술적 효과로 나타나게 되는데 마비를 주제로 한 조이스의 각 단편에서 epiphany 를 통해 삶의 숨겨진 진실을 최종적으로 깨닫게 만드는 각성으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