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FECTIVE A marketing assistant position in marketing, Communications and administrative support under supervision of the Marketing manager.WORK HISTORY ABC Language Club (English school for children), Seoul, KoreaInstructor 1234-1235- Manage 9 classes in 3 branches- Taught English to 3-14 year-old children- Provided students’ evaluations and gave advices to parentsABC Corporation (cram school), Busan, KoreaTeacher 1236-1237- Taught English and science to 4th-9th grad students middle school- Contacted students’ parents- Acquire new customers through telephone sales
5일분 unit plan (폴더 1, 2, 3, 4, 5로 구성)그 외에 이미지 자료contents sheetover view (overall unit plan file) -----------------------------------------------------------------------OverviewLevel: High beginner (Intermediate)Students: 10Time: 60 minutes per dayAims: - To practice and develop reading, speaking, listening, and writing skills through a variety of activities about jobs- To learn and practice phonology, lexis, grammar, function, and discourse through a variety of activities about jobs- To elicit students’ creative ideas- To make the classroom atmosphere comfortable through group activities- To think students about their dream job and future by themselvesSkills:- Reading; reading articles, scanning worksheets, finding specific form, reading and correcting other’s writing (feed back), reading to write- Writing; worksheets, writing during discussion, free writing, writing for specific purpose- Speaking; discussion, presentation, pair-work, brainstorming, response to teacher, group-work- Listening; discussion, presentation, pair-work, group-work, teacher’s speaking, dialogsSystem:- Phonology; /l/ and /r/- Lexis; vocabulary for resume and interview, name of jobs- Grammar; participle and adjective, preference (prefer, rather) and present perfect- Function; interview, discussion- Discourse; interviewing, writing resume, discussingAssumption;- Students consist of 10 Koreans- Students are familiar with the class- Students are familiar with group work- Students have their own dream job- Students are enthusiastic to learn something newAnticipated errors;- Students may not participate the activities -> Talk to students to do not- Students may feel boring -> Do ice breaker or spontaneous teacher talk- Students may not be able to understand what they doing -> Explain and give more simple instructions and examples- Class time may be too short or long -> Prepare the S.O.S. plan and do
서론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선정 이유본론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 - 건축 양식적 내용을 중심으로포스트모더니즘 - 예술사적 내용을 중심으로결론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나의 성찰몇 백, 몇 천 년 동안 인간의 생활은 변화되어 왔고, 그에 따른 인간의 삶의 질과 함께 그들의 생각 또한 많은 변화를 거쳐서 왔다. 인간은 한때는 핍박을 받기도, 핍박을 하기도 하면서, 혹은 모두에게 힘든 시련이 닥쳐오면서 그들의 사고방식과 사상을 조금씩 표현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하나의 신념과 사상으로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고수했다면, 21세기의 현재는 다원, 다변화 구조에 부합하는 어떠한 사상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이제껏 대를 이어 살아오면서, 인간 본연의 삶의 본질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뇌해 왔던 철학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인간의 사고뿐만 아니라 그것의 행동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제껏 인간에게 나타났던 철학들은 내가 다 알기조차 힘들 만큼 많은 것 들이었다.그 많은 철학사상 중 나는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보고자 한다. 가장 단순한 이유로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라는 단어가 내 일상에 많은 부분에 닿아 왔고, 들어왔고, 보아왔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구조주의’ 또한 예외는 아니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만큼의 친숙함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내가 알고 있는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정의는 내가 읽었던 서적과 내가 찾아보았던 인터넷의 자료들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그저 눈을 가린 채 코끼리의 ‘다리’나 ‘코’정도만 만져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가 정말 코끼리의 ‘본질’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이 두 가지 사상에 대한 이야기들은 흥미로운 만큼 꽤나 복잡한 내용들이었다.나는 미대에 재학하고 있는 졸업반 학생이다. 지난 4년 동안 수업을 통해서, 혹은 나의 개인적인 흥미와 관심을 통해서 접했던 수많은 예술작품이나 예술사에는 심심치 않으리 만큼 ‘구조주고 참신한 또 어찌 보면 기묘하기 까지 한 건축물들을 남겼다. 그들의 건축물은 기존의 그저 사람들이 생활을 하기만 하는 돌 상자를 몽환적이고 상상속 에서나 펼쳐질법한 건축물로 승화시킴으로써 하나의 예술품으로 만들었다.이 ‘구조주의’ 보다도 더 내가 친숙하게 느꼈던 사상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언급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적 측면에서 마르셸 뒤샹을 빼 놓을 수 없다. 뒤샹의 작품은 완전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산물은 아니지만 그 것에 영향을 주고, 목적성을 만들어준 작품이다. 사실 뒤샹의 예술 스타일은 아방가르드 양식의 작품의 하나였는데, 아방가르드 양식은 기교와 양식을 역사적으로 승계하는 것 대신에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도록 노력하였다. 또한 아방가르드 예술작품을 접하는 수용자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 예술적 의도의 주도적 원천이 되었다. 아방가르드 운동은 우연의 역할을 강조하고, 개인의 영역을 제한하는 경험에서 착안하였다. 그들은 제도로서의 예술을 비판하였지만, 실패하였다. 제도로서의 예술은 계속해서 살아남지만, 아방가르드의 반 예술적 의도에서 고안한 절차들은 ‘포스트모더니즘’양식을 지향하는 이들에 의해 예술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앞으로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정리로 글을 풀어나가고자 한다. 첫 째 장에서는 구조주의 중 후기구조주의의 생성원인, 정의와 함께 건축사적인 일면에 대해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둘째 장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생성원인, 정의와 함께 예술사적인 면에 대해 정리를 하여 풀어나가고자 한다. 그 다음에는, 내가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얻었던 새로운 지식들과 기존에 있던 지식-혹은 잘못되었던 지식들에 대한 생각으로 결론을 내려보고자 한다.구조주의는 1960년대에 들어와서 K.마르크스, M,하이데거, S.프로이트 등의 견해에 대립하여 프랑스에서 새로이 형성된 사상적 조류이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구조주의가 어떤 창시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언어학, 인류학, 정지는 현상을 중력과 가속도의 법칙을 이용하여 서술할 뿐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구조주의와 실증주의는 보편논쟁과도 같다. 구조주의는 실재론으로 보편자가 있어서 인간이란 형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증주의는 유명론과 가까워, 인간이란 보편적 개념은 편의상 붙인 도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된다. 그러나 구조주의는 현상을 나열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현상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다. 현상을 보고, 듣고 만지나 아무 의미가 없다.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따르자면, 전 세계에는 다양한 식사법이 있는데, 그냥 보면 그 종류가 많고 복잡하여 혼란스럽다. 허나 밥 먹는 것을 지배하는 법칙으로 볼 때, 이러한 구조를 갖고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구조주의는 변증법과도 구별될 수 있다. 둘다 거시적 담론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형질은 유사할지 모르나, 변증법은 특정한 틀 속에 개별적인 것을 집어넣는 반면 구조주의는 개별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 성과물들이 얽혀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게 된다.후기 구조주의로 오면 거대한 틀은 쪼개져 공간, 시간적으로 다원화된 구조로 바뀌지만 구조주의적 시각이 변한 것은 아니다. 다만 후기 구조주의는 구조주의가 지녔던 과학적인 부풀림과 과장을 떨쳐내려고 한 의도가 내비친다. 인공적 기호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이해하고 터득하려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영웅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구조주의라면, 후기 구조주의는 그 같은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반 영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후기 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 뿌리는 같지만 점점 그 가지가 같은 방향으로 나기만 한다고는 볼 수 없다. 구조주의는 개개인의 가치와 특성을 무시한 채 전체의 구조를 중시한 반면, 후기 구조주의는 전체적 구조 보다는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하였다. 비역사적인 태도를 보이는 구조주의와는 다르게 역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보이며 과거를 향수가 아닌 탐색의 대상으로 취급한 것이 후기 구조주의이다. 또한 구조주의는 보편적 ‘획일화(즉, 기존의 건축물들의 형태가 거의 대부분이 직육면체를 이루고 있음)와 모더니즘의 기능적 기능주의에 대한 대립적인 철학(쟈크 데리다)를 바탕으로 시작이 된다. 쟈크 데리다의 철학적 배경으로, 반 모더니즘의 성격을 가지며 사물의 근본 원리를 재해석 하고 소외되어있는 형태에 대하여 자유로운 형태를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때문에 기존의 직육면체의 건물들, 혹은 안과 밖의 구문이 명확한 문과 창문이 달린 건축물을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안과 밖의 형태가 모호한, 예를 들자면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작품인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같이 건물이 은박지로 만들어 진 것과 같은 형태를 지니거나, 혹은 건물의 지붕과 바닥이 뒤바뀐 형태, 혹은 벽면이 모두 유리로 만들어져 실내와 실외의 경계선이 없는 양식, 건물 전체가 물결에 출렁이는 듯한 곡선을 자랑하는 양식 등의 말 그대로 자유로운 형태의 건축양식을 추구하였다. 현재 한국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아이파크 타워’또한 이러한 양식의 건축물 중 하나이다. 그 밖에도 스위스 출신의 대표적인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 또한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떠한가. 포스트모더니즘은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 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그리고 해체(Deconstruction)혹은 후기 구조주의 사상으로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 점검과 반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모더니즘은 이성중심,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인해 20세기 무렵부터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도전받기 시작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뉴욕의 예술가와 비평가들 사이에서 태동하였고, 1970년대에 유럽의 이론가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후, -탈’ 라는 뜻의 Post와 현대적 이라는 뜻의modernism의 합성어이다. 이 용어는 새로운 출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면 긍정적 의미지만, 모더니즘을 전연 다른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다. 라우센 버그와 같은 예술가는 캔버스 위에 길에서 주운 물건, 휴지, 신문, 흙 등을붙이고, 타이어 자국마저도 캔버스위에 망설임 없이 새기는 과거의 예술 사조를 거부하는 작품들이 대중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현대 미술의 거장인 앤디워홀은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한 복제인쇄를 그의 작품에 접목시켰다. 그저 보기에는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내용이 캔버스 위에 낙인찍혀져 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어찌보면 약간은 기묘한 작품들이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의 대표적인 성향이라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당신은 한번쯤은 여러 색상이 사용되어 실크스크린 인쇄가 된 마릴린 먼로의 포스터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앤디워홀의 대표적인 작품 ‘마릴린 먼로’이다. 그의 그림은 피카소의 그림의 가치와 맞먹을 정도로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남겼는데, 그의 패스티쉬(혼성모방) 기법은 결코 부정적 이미지가 아닌, 현재의 틀에 박힌 사회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이렇듯, 포스트모더니즘은 작가의 섬세한 기교를 중시하는 것이 아닌, 패러디나 패스티쉬를 주로 사용한다. 이러한 기법들은 부정적인 것이 아닌 긍정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졌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행위와 참여를 중시한다. 독자나 관객이 예술가의 예술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 정신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때문에 예술은 일회성의 해프닝으로 남지만, 그를 행한 신체는 무엇보다도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의 절대적 질서에 반한 해체된 무질서한 디자인을 추구하고, 사회적 약자인 흑인 혹은 여성, 소수민족에 대한 관심을 갖으며 여성적인 여성스러운 미학에 대한 개념을 탈피하고자 한다. 또한, 개개인 보다는 대중적인 관심사에 대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대중 주의적 성질을 포함하고 있다.때문에 패션에서도 고급스럽고 정형화 된 스타일 보다는 히피(Hippi), 펑크(Punk), 힙합(Hip pop)등의 역사성을 무시한 절충주의의 패션이 등장하게
이번 과제를 위하여 인터넷과 학교 도서관의 여러 서적들을 살펴보았다. 그에 따른 대략적인 교육사는 고구려 즈음의 고대의 시기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한국 교육사의 흐름들을 요약 할 수 있을 정도의 여러 권들의 책들과 인터넷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늘쌍 같아 보이는 것만 같은 교육에도 시기마다 교육의 방법이 조금씩 달랐다. 의외로 흥미가 동하여 다루고 싶은 부분이 여러 파트가 나왔다. 그러나 나는 한 파트만을 선택해야 했고, 그에 따라 가장 흥미가 동했던 ‘과거제도’ 에 대하여 설명하고, 우리나라의 현 교육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하여 나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그에 앞서 먼저 한국 교육사의 고구려~조선시대까지의 내용들을 요약한 후에 그 생각들을 서술하도록 하겠다.한국의 교육사의 시작은 삼국시대에서부터 출발한다. 삼국 시대 중 인터넷이나, 서적에 가장 많이 수록 되어 있는 부분은 고구려이다. 일찍이 많은 발전을 이룩한 고구려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고급관리를 양성하는 고등교육 기관인 태학과, ‘문무일치’라는 교육 목적을 위하여 평민과 서민 자제들이 입학할 수 있는 경당 이라는 교육 기관을 두었다. 이는 후에 서당의 기원이 된다.그리고 고구려만큼 이나 커다란 발전을 이루었던 신라에서도 여러 교육기관이 있었다. 현대에도 잘 알려져 있는 세속오계와 삼덕을 지향하는 ‘화랑도’를 비롯하여 관리양성을 위한 유학을 다루는 ‘국학’, 그리고 ‘독서삼품과’ 등이 있다.고려가 건국 된 이래로는 관학과 사학으로 교육기관이 뚜렷이 나뉘어 졌다. 관학은 ‘국자감’과 ‘학당’, ‘향교’ 등의 시설로 분류되어 있었다. 사학은 최충이 건립한 ‘십이도(과거준비의 목적)’, ‘서당’등이 있었다. 사학은 보통 과거를 치르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교육내용은 국자감과 마찬가지로 유학(9경,3사, 시부, 사장) 이었다.조선시대 또한 관학이 존재 하였는데, 그 기관의 이름은 이전의 나라와 달랐다. 조선 시대에는 조선 최고의 유교 교육기관인 ‘성균관’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데, ‘성균관’은 입학자격이 까다로운데, 그것은 그만큼 고급 관리를 양성하는 중요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외에도 ‘종학’, ‘사부학당’, ‘향교’, ‘잡과교육(기술교육)’ 등의 관학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사학에는 역시 고구려나 신라,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과거준비를 목적으로 하는 형태의 ‘서원’이라는 곳이 존재했고, 그 외에도 ‘서당(지금의 초등교육)’또한 존재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과거제도’가 존재하였는데, 이것은 3년에 한번 씩 보는 정기 시험으로 문과, 무과, 잡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시험에 합격한 자는 관직에 올라 벼슬을 얻었고, 이에 따라 ‘과거제도’는 ‘인격’을 얼마나 수양 하였는지를 시험하는 시험의 의미 보다 ‘과거’ 즉, 관직을 얻기 위한 목적성만을 간직한 시험 준비장 으로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그것보다 더 심각하였던 문제는 지인과 재력으로 둘러싸인 부정과 협잡이 자행되어 사풍의 타락과 당쟁의 요인으로까지 파급되는 사태에 이르렀다.나는 이제까지 한국의 교육사 중 가장 기원적인 부분에서 대한민국 이전의 시대까지의 교육사에 대하여 간략하게 요약하여 보았다. 요약의 말미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각 시대에서부터 현재로까지 이어져 오는 공통적인 문제점은 ‘과거제도 본 의미의 변질’ 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점은 현대에 와서도 그다지 큰 차이점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후의 논설문의 핵심을 ‘과거와 현재의 입시제도(과거제도)의 목적의 변질’에 대하여 논의해 보고 싶다.‘과거’의 글 뜻은 과목(科目)에 의한 선거(選擧)를 말하며, ‘선거’란 관리 등용법 을 뜻한다. 중국의 경우는 한(漢)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한국은 신라 때인 788년(신라 원성왕 4)에 실시한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가 시초이다. ‘과거제도’라는 것의 목적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관료 등용’이라는 것 이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을 두기 이전에,첫째,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시험해 보는 까닭은 단지 많은 지식을 갖춘 사람만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을 보는 사람의 ‘인격’을 가려내는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둘째, 학벌이나 집안의 상하를 두지 않고 누구나 과거시험을 보게 함으로써 ‘능력위주’의 인재 등용이라는 목적도 있는 것이다.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변하기 마련이다. 취지가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한 것이라 하더라도,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취지는 조금씩 변질된다.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변질되던, 나쁜 방향으로 변질되던 말이다. ‘과거제도’도 그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변질되고 말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과거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취지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인격도야를 위한 공부가 아닌 단지 ‘과거 등용’만을 위한 기계적인 학문을 실천해 가게 된 것이다. 그에따라 사설교육이 팽배해 지고 사적 교육비용까지 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보다 더 심했던 것은, 기계적인 학문 조차도 습득해 내지 못하는 인물들 중 자신의 재력이나 자신의 든든한 뒷배경을 업고서 관직에 오르는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개인의 든든한 삶을 위한 부정이었겠지만, 그러한 개인적인 생각. 특히나 부정으로 인한 개인 이득 취득은 결국 나라를 좀먹게 하고 속부터 썩어 들어가게 하는 원인이 된다. 멸망 직전의 나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의 이득에만 눈이 멀어 관료의 본분은 잊고 당파싸움이나 일삼으며 과거제도조차도 세력을 업은 당파들이 자신의 당파 쪽의 사상을 품고 있는 이들만을 선출하는 ‘편 끌어들이기’로까지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지연, 학연, 재력’ 등으로 둘러싸여 썩어갔던 ‘과거시험제도’는 지금에까지 이름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시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시험제도의 연장선상 위에 존재하는 현재의 ‘과거제도’들을 제시해 보고 싶다. 그 첫째는 ‘입시제도’이고 그 둘째는 ‘행정고시 제도’ 이다. 이밖에도 세부적으로 들어가자면 입학이든 취업이든 이 ‘과거제도’가 속하지 않을 부분이 없으므로 위 두 가지 내용을 과거의 그것과 비교해 봄으로써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첫째, 과거의 ‘과거제도’의 연장선상에 남아있는 대표제도 중 하나인 ‘입시제도’ 이것은 학교 교육, 옛 시대로 따지자면 ‘관학’기관에서 교육을 받다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지금 속해있는 학교에서 국가에서 내는 특정한 시험(수능)을 통해 보다 한단계 높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교육기관(대학교)으로 진학)해 나가는 것이다.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대부분의 학생들은 ‘4년제 명문대학’이란 타이틀을 위하여 서로 경쟁하며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나도 입시시절을 겪어본 바로써 경험담을 조금 섞자면,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에는 대한민국의 교육법1조에 제시되어있는 사항이 담겨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고등학교의 입시에는 ‘인격완성’ 이라는 항목은 무시할 수밖에 없는 요소이다. 다른 어떠한 자료들을 찾아보아도, 사람들의 현재 교육에 대한 시선은 차가울 따름이다. ‘인격’과 ‘입시’는 두 마리 토끼라고들 비유할 정도이다. 결국 ‘대학입학’을 위해서는 인격 정도는 나중에 키워도 된다는 식으로 공부만을 강요할 뿐이다. 물론 공부 강요의 목적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순수한 목적의식이라면 좋겠지만, 그 뒤에는 그 학교의 명예 등을 실추시키지 않기 위한 심술궂은 발버둥도 포함되어 있는 것 이다. 결국 이러한 ‘공부’만을 위한 질주가 쾌거를 이룩할만한 성과를 거두는 것인가? 수능 때마다 낮은 점수를 비관해 자살하는 몇몇의 희생자쯤은 커다란 성과에 대한 감수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직 꽃피우지도 못한 아이들이 숫자 몇 개에 연연하면서 목숨을 거는 일은 정말 마음아픈 현실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또한 이 변종제도를 더 곪아 들어가게 하는 것은 현재 고등교육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입시생들의 어머님들의 치맛바람은 사교육비의 엄청난 증강을 불러왔다. ‘사학’기관이 현재의 ‘쪽집게 과외교사’라는 식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과 같은 예이다. 이것은 돈 있는 집과 없는 집안에 대한 커다란 갭을 가져온다. 요즈음 종종 뉴스에 실리는 ‘교사의 시험문제 유출 사건’ 같은 경우도 이와같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돈으로 교사를 매수하여 자신의 자식을 보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더러운 수작이기 때문이다. 돈이나 지연으로 입시를 피해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기부입학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대학교 운동장에 잔디를 깔아주는 댓가로 입학을 허가하는 등의 제도는 정당하게 입학한 정말 실력있는 학생들에게 자존심과 그 능력에 대해 커다란 모욕을 주는 것이다.
국가와 교육통제우리나라에서 교육과 국가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국가의 교육 통제라 함은 국가가 교육에 대한 직, 간접적인 간섭과 통제의 형태로 이루어진 관계이다. 이를 우리는 국가의 교육개입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과거 과 같은 사건들과 현재 주입식 입시제도의 문제도 국가의 교육개입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그러나 국가의 교육개입이 단점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우선 국가의 교육개입의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 50~80년대 국가의 교육개입이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이루어 졌으며,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또 50~80년대 국가 개입의 장단점을 알아보고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국가의 교육개입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1. 국가의 교육개입 배경① 50년대50년대에의 개입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우선 그 시대의 정치적 흐름을 살펴보아야 한다. 광복 후부터 50년대 외세(미국)에 의한 독립으로 자본주의 제도, 민주주의 제도 등이 밀려들어 와서 사회적 변화가 극심하였고 분단이라는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분단국가에서 세어진 이승만 정부는 정부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기 위해 강력한 반공이데올로기가 필요하였다. 이러한 반공이데올로기 교육을 빠르게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정부 즉 국가이었기에 국가(정부)의 강력한 교육개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일인일기(一人一技) 교육을 주장하고 일반계를 3. 실업계를 7로 하는 학교비율을 원칙으로 천명하였다. 이는 정부가 한국 사회에서는 조선사회의 유학중심 교육이 국가가 패망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독립국가로 발족하면서 국가를 발전시키고 개인들을 빈곤에서 탈피시키기 위하여 생산 교육을 강조를 주장하여 교육에 개입하였다.② 60~70년대당시 교육의 목표 가운데 최,60년대 우선적인 것은 민족중흥, 국가재건 등이며 국민들은 이 ‘역사적 과제’를 충실히 수행해야만 하였다. 국민교육 헌장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자연으로 태어나지 않고 ‘민족중흥’이라는 역사적올 정도로 못 먹고 헐벗었지만, 배워야 힘이 되고, 배워야 나라의 일군이 될 수 있다는 순박한 국민교육정서는 기회균등 교육 분위기에 발을 맞춰 너도나도 학교로 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국가 개입은 의무교육 10개년 수립이라는 명목아래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교육의 대중화를 이루었다.② 경제 발전일인일기, 실업교육 진흥 5개년 계획 등으로 경제 발전기반인력을 창출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개입은 효과적인 주입식교육으로 이루어졌으며 이것은 단기간에 엄청난 결과를 나타내어 급진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다.③ 교육계의 성장어려움을 겪는 1960년대에도 제2차 교육과정 개편(1963), 의무교육 교부금법 개정안(1966), 중등교육 5개년 계획(1967), 국민교육헌장 선포(1968)등 굵직굵직한 교육정책이 빛을 봄으로써 1970년대에는 가일층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었다. 그 결과 1978년에는 가일층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었다. 그 결과 1978년에는 초등학생 560만, 중학생230만, 고등학생150만, 대학생45만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방송통신대학, 방송통신고교가 개교되고 국비유학생제도 실시, 중고교 교복?교모의 자율화 등의 시책이 국가의 개입으로 시행되게 되었다.④ 문맹의 퇴치1949년에는 교육이념을 홍익인간으로 하는 교육법이 최초로 제정되었지만 77%나 되는 문맹률은 민주국가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정부는 1950년에 문맹퇴치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진행한 결과 1958년에는 문맹률4.1%로 끌어내렸다.⑤ 생활의 질적 향상하나의 특기할 사항은 국민의식과 생활개선 및 생산성 향상을 위한 새마을 운동이 학교 교육과정에 도입됨으로써 초?중?고교에는 새마을 주임교사제로 확대된 점이라는 것이다.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교육된 내용은 근검?절약?자조라는 로고아래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내용을 가르쳤다.⑥ 교사의 직업화이전의 교사들은 직업으로 인식되지 못하였으나 국가가 교사를 공무원으로 인정하여 일정 급여를 제공하므로 직업이 되었다. 이로 인하여 교사라는 직업이 안정화되었우선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고 넘어가자.1)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표-학교 교육 단계]표와 같이 실시되고 있는 현재의 학교 교육은 운영과정에서 학교?정부?학생?학부모 등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정부가 학교에, 학교가 정부에 서로 영향을 주면서 상호관계를 맺게되는 이 관계에서 정부가 제정한 교육 정책에 의해 학교 교육이 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 관계는 매우 종속적이다. 이러한 예로는 적정 주당 수업 시간 수, 교과목 신설 및 폐지, 교육과정, 입학 시험문제 출제 및 채점 등의 교육정책 등을 들 수 있는데, 정부가 내세운 이러한 정책들은 현행 학교에서 그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 이와 같은 교육시스템 전반에 관한 관리와 정책을 제정, 실현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으로는 교육인적자원부를 들 수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그 명칭이 여러 번 바뀌기는 했으나 정부가 교육에 개입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교육인적 자원부는 그동안 교육현실과는 동떨어진 정책들을 내세우면서 우리의 교육전반에 걸친 교육시스템이 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고교평준화, 입시주의 등과 같이 교육제도 도입의 초반에 문제시되었던 것들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분명히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교육정책당국은 바로 자신들이 개혁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교육시스템에 대한 인식과 접근방법부터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때이다.2) 중앙집권 교육과정의 장단점1. 장점① 통일되고 표준화된 교육체제를 지향할 수 있다.② 중앙정부에서는 전문가들을 집중 활용하여 질 높은 자료를 양산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학교와 교사와 학생은 전문성 있는 질 높은 자료를 제공받기 위한 시간과 노력을 절약 할 수 있다.③ 중앙집권 교육과정에서의 학교의 재정은 정부가 상당부분 보조를 해 줌으로써 학교가 감당해야 할 재정적인 부분을 절약 할 수 있고 이는 학생이나 학부모에게도 재정적인 짐을 덜 수 있게 한다.④ 지역과 학교의 교육활동을 통제하거나 책무성을 줄공교육(公敎育)제도를 성립시켰다.2) 국가주의 교육 통제국가주의 교육체제에서는 국가가 교육 분야에서도 모든 것을 다 알아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국가가 교육정책을 결정하고 국가가 세운 학교는 그것을 집행하고, 피교육자인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가 하는 일에 무조건 따르기만 하는 식이 되었다. 말하자면 국가가 결정하는 정책은 다 옳으니 국민은 무조건 따르라는 식이다.이러한 국가주의 교육체제 속에서는 학부모나 교사도 현실적으로 학교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교사 또한 전문적인 교육권이 크게 위축되어 있다. 국가주의적 통제의 단적인 예로 국정교과서 제도의 운영을 들 수 있다. 국가가 교과서를 철저하게 통제하여 정치성이 강한 과목에 대해서는 국정교과서를 쓰게 하고 그것이 약한 과목에 대해서는 검정 또는 인정의 교과서를 쓰게 하고 있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교육과정도 국가가 철저히 통제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할 것인가를 결정할 자유가 학교에 허용되어 있지 않는다. 모두가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가지고 가르치고 평가에서도 획일적으로 제한된 문제들의 주어진 정답만을 가르쳐 왔다.3) 국가주의 교육정책과 문제점① 교육과정정책한국은 중앙집권적이고 상대적으로 학교 및 교사의 권한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국가(중앙정부)와 학교 그리고 교사간의 관계는 교직의 전문성과 자율성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국가에서 의도한 대로 교사가 전문성과 자율성을 최대로 발휘하여 잘 가르치고, 그것에 의하여 학습자는 완전학습을 이루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에서 의도한 것과 교사가 의도하는 것이 서로 다를 경우에는 그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개재될 것이고, 국가는 이에 대하여 통제와 감독을 강화할 것이다. 이로 인하여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은 위축되는 것이다.한국은 해방 이후 제6공화국까지 다섯 번의 교육과정을 개정하였다.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마다, 주로 국가의 강력한 통제 아래 이루어졌다. 다시 말하면 등교육을 시켜 초등교사로 양성한다는 '중초교사 임용' 계획이다. 중등교사 자격증이 부여되는 사범대 졸업생은 매년 2만 여 명이지만 4,000여 명만 교사로 임용돼 적체현상이 심각하다는 점에서'일석이조'라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이에 대해 전교조와 교육대생들은 "교육과정과 교육문화의 차이 등 전문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수의 논리만을 강조한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며 "초등교원이 모자라면 중등교원으로 충원하고, 중등교원이 부족하면 초등교원으로 메우는 식으로 교원 수급구조를 유연화 해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② 자립형 사립고현재 '교육 평등주의'논란이 가장 뜨겁게 맞붙고 있는 정책이 자립형 사립고다. 고교 평준화에 따른 획일적 교육시스템을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를 통해 보완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으로 95년 교육개혁이 시작되면서 줄곧 거론돼왔던 사안이다. 등록금은 일반고의 3배정도 비싸지만 학생선발권과 교육과정 운영권 등을 건실한 사학에 넘겨 자율성을 확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추진과정에서의 반발에 부딪쳐 2002년부터 30개교 이내로 선정하려고 했던 계획이 변경돼 결국 5개교만 최종 선정됐다. 전교조 이순철(李順哲)정책기획국장은 "입시명문 '귀족학교'로 변질되고 새로운 명문학맥을 형성할 것이 뻔하다"면서 "경제적 격차에 따른 진입장벽을 만들어 교육기회의 균등성을 박탈하고, 사학에 시장논리에 따른 '교육 장사'를 허용하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③ 교원성과상여금이 제도는 교원들에게 경쟁체제를 도입해 질적인 변화를 꾀하는 방안의 하나로 도입됐다. 그러나 독립공간에서 양심에 따라 학생을 가르치는 수업을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데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교육부는 "다른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제도를 교직사회에서만 예외로 할 수 없고, 업무를 평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다른 공무원 조직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입장이지만 전교조 등 교원단체는 "교사들을 교육활동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