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요서 진출의 고찰< 목 차 >Ⅰ. 머 리 말Ⅱ. 백제 요서 진출의 기원1. 부여 백제설2. 4세기 근초고왕 진출설Ⅲ. 백제 요서 진출을 다룬 관련 사료 검토1. 사료 선정 기준 및 근거2. 중국 남조 측 사료3. 백제 요서진출의 가능성Ⅳ. 4 ~ 5세기 동아시아 정세로 본 요서진출1. 4~5세기 백제의 국내적 상황변화2. 근초고왕 대 영역팽창3. 5호 16국시기의 요서지역의 정세로 알아본 요서 진출4. 남·북조시기의 요서지역의 정세로 알아본 요서 진출Ⅵ. 백제와 왜 관계로 본 요서 진출의 형태1. 대화 왜의 기원으로 보는 백제의 지위와 고대국가들의 속성2. 백제의 대화 왜 진출과 그로 본 식민시 경영3. 백강전투로 본 백제와 왜의 관계와 이를 토대로 한 식민시와의 관계4. 백제의 왜에 대한 불교정책5. 백제의 야마토 왜 진출과 이로 본 요서경영Ⅶ. 4~ 5세기 백제의 정황으로 살펴 본 요서 진출1. 4 ~ 5세기 백제의 군사력2. 4 ~ 5세기 백제의 사회, 경제적 상황3. 4 ~ 5세기 백제의 요서진출 방식Ⅷ. 맺 음 말Ⅰ. 머 리 말백제 멸망 후, 백제에 관련된 사료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연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의 치하에 제국주의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식민사관이 강조되고, 이에 대항해 민족주의 사관이 나타났다. 광복 후에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대한 반대와 열등감 극복을 위해 민족주의 사관이 강조되기도 하여 민족 우월성을 주장하고 그 일환으로 영역 팽창적 측면을 강조하는 논리가 대두되었다. 이른바 영역 팽창주의이다. 이러한 논리가 지금까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했다. 21세기 사회에서 한 국가 영역의 팽창만을 강조하는 논리는 구시대적 발상이 되어버렸기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입이 필요하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강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현 시대의 흐름과 맞게 동아시아 세계 속에서 각 국가들의 상호 공존하는 측면에서 백제를 살펴봐야 한다.동아시아 고대 사회는 중국의 선진문물을 많이 수용함으로써 정치적, 사 근거로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북조 측 사료가 백제의 요서진출을 다루지 않은 까닭은 4세기 후반의 북조와 한반도의 백제의 관계에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4세기 후반 백제의 근초고왕 시기의 백제는 동진과 외교관계를 맺고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 후에도 중국 남조에 등장하는 여러 나라들과 백제는 지속적인 외교관계를 맺었던 것과는 달리 중국 북조와 백제 사이에는 일반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다. 한차례 백제의 사료에서 북조에게 출병 지원을 부탁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지만 이에 북조는 출병을 거절했다는 것을 보아도 양쪽의 사이가 친밀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조는 자신들의 영역인 요서지방에 두 개의 군까지 설치해서 세력을 떨친 백제의 요서 진출 사실을 굳이 자신들의 역사서에 실어 부각시킬 필요성이 없었을 것이다. 중국 측의 북조가 백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점은 그들의 역사서에 고구려와 백제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상정한 면에서 알 수 있는데 백제 요서 진출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면을 근거삼아 북조가 백제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영역에 군을 설치했다는 기록을 싣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식으로만 설명한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북조는 자신들의 입장에서 굳이 실을 필요성을 찾지 못해서 싣지 않았다는 식의 관점으로 시작하여 북조와 백제와의 외교 관계가 원활하게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점을 같이 생각해 본다면 북조 측 사서에서 백제 요서 진출을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로 요서 진출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특정 역사적 사실이 여러 계통의 역사서에 실려야만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남조 측 사서에만 존재하고 북조 측 사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이 아니라는 식의 역사적 설명은 가장 역사적이지 못하다는 자기 모순을 갖게 되는 것이다.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의 역사서에는 다루고 있지 않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 고찰해 볼 필요성이 있다. 삼국의 역사를 파악하고 그주력은 기마병이었다. 그들은 기동력이 좋은 말 위에서 하는 빠른 전투가 주력이었기 때문에 물을 건널 수 없는 기마병을 주체로 한 전연부대가 말을 타고 고구려를 뚫고 백제를 쳤을 가능성은 없기에 백제가 전연이 있는 쪽으로 간 경우가 더 타당함을 갖는다. 백제는 또한 해상 활동이 이전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항해술이 뛰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을 토대로 하여 백제 부대가 전연의 근처에 도달했고 때문에 거기서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백제가 모용씨의 본거지였던 요서 방면으로 출병했을 것이라고 보고, 그 요서 방면으로 백제가 진출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표의 세 번째 줄에 제시되어 있는『자치통감』)은 사마광이 1065~1084년 사이에 편찬한 사서로 관련 내용을 부분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한반도 중부의 백제가 바다를 건너 요하 유역을 거쳐 부여가 있었던 곳까지 진출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다.앞서 ㉠부여는 鹿山(록산)에 자리잡고 있다가, ㉡백제의 침략을 받아 부락이 쇠산해졌다. 그래서 서쪽으로 燕(전연)에 가까운 곳으로 근거지를 옮겼는데, 연에 대해서 전혀 방비를 하지 않았다. 이에 연왕 모용황이 세자 모용준으로 하여금 모용군, 모용각, 모여근 세 장군과 함께 1만 7천 기병을 이끌고 부여를 습격하도록 하였다.…드디어 부여를 멸망시키고 그 왕玄과 부락 5만여 구를 포로로 하여 귀환하였다.이는 345년 이전의 어느 때에 ㉡백제가 부여를 공격하여 쇠약해진 부여가 서쪽의 燕에 가까운 곳으로 근거지를 옮긴 사실을 알 수 있고 이러한 사실들을 토대로 해보면 백제가 이 시기에 요서 지역의 전연의 군대와의 싸움이 존재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녹산에 자리잡은 부여가 백제의 침략을 받아 쇠잔해졌다고 한 시기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전쟁의 시기와 비슷하고, 당시의 부여 위치가 현도군 및 고구려의 북방에 있었으므로 녹산 또한 중국 동북부의 어느 지역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이처럼『송서』나『양서』등의 기록처럼 백제의 요서 진출영토를 더욱 넓히고 장악력을 더욱 굳건히 하였다. 요동 지역에서는 333년 모용인의 반란이 일어나서 모용부의 세력이 잠시 혼란을 겪게 되었다. 고구려는 이 틈을 노려 요동으로 진출을 하려고 시도를 하였다. 모용부의 세력은 빠르게 재정비를 하고 반란이 일어 난지 3년이 지난 336년에 모용인 반란을 진압하면서 고구려의 요동진출을 저지 하였다.단부가 지배하고 있던 영토가 탐이 났던 煎燕과 後趙는 서로의 목적을 가지고 연합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이 연합전선은 자신들의 목적인 단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338년 전쟁을 일으키고 연합전선은 승리하게 된다. 후조군은 단부의 거점인 영지를 함락 시켰고 전연도 단부의 여러 성을 점령하게 된다. 그리고 연합전선은 단부의 영토를 분할 점령을 하게 되는데 연합전선은 서로 조금 더 자신이 많은 영토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연합전선은 해체가 되고 서로의 관계는 적대 관계로 돌아서게 되었다. 338년 후조는 전연을 공격하였지만 실패하자 고구려와 함께 전연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전연도 이에 가만히 있지 않고 후조가 점령하고 있던 영토로 진격을 하고 고구려에게도 강력한 대응 자세를 펼쳐서 342년에는 환도성을 함락시키기까지 했다. 이렇게 후조와 전연은 단부를 점령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연합전선을 만들었지만 단부를 점령하고 나서는 서로의 이익을 좀 더 챙기기 위해서 싸우기 시작했는데 이런 싸움은 349년경 팽팽하게 지속되었다.후조는 石虎의 강력한 통치하에 전연과 맞서 싸우고 있었지만 석호가 죽음 맞이하게 되자 후조에서는 내분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전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후조의 공격을 강화 하였고 결국 350년경 전연은 화북일대를 석권 하게 되었다. 전연의 지배는 이후 한동안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었다. 前秦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하고 369년에는 전연의 세력들이 전진으로 망명을 해오기 시작하였다. 이에 전진은 전연을 정벌하기 시작했고 370년 11월에는 전연의 수도를 함락 했다. 전진은 짧은 시간 만에 전연을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요서에서 사망한 가능성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진서』모용수재기의 기록이 흥미롭다. 여암의 반란사건 이후 여암은 바로 사형을 당했는데 그때 여암의 형제 또한 함께 사형을 시켰다는 기사이다. 처음에는 여암의 형제에 대한 기록이 없다가 나중에 생기는 점과 같은 餘씨 성인 점을 생각해볼 때 침류왕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침류왕이 가능성이 높지만 만약 침류왕이 아니더라도 여암과 함께 죽은 형제는 백제의 왕족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요서에서 왕과 많은 군사와 장수를 잃은 후에 국내에서 예전에는 고구려와의 상황이 팽팽하거나 약간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백제는 동진에게 동진을 위해 자신들은 많은 피를 흘리고 왕까지 죽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동진은 백제의 요서 진출에 대해 분명하게 기억하고 동진이후에 들어선 송나라 또한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조의 사료는 이를 기억 하여 백제가 요서로 진출을 했다는 기록을 지속적으로 남겨왔던 것으로 보인다.Ⅵ. 백제와 왜 관계로 본 요서 진출의 형태현재 요서 진출의 근거를 제시하는 자료는 많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이나 발전 과정을 드러내는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다. 백제의 해외 진출을 가장 잘 말해주는 자료로 야마토 왜 진출을 들 수 있다. 현재 전해지는 『日本書紀』등의 자료로 백제의 야마토 왜 진출이 어느 정도 연구가 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비슷한 시기에 진출한 다른 지역과 백제의 관계 및 그곳의 경영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백제의 진출은 군사적인 방면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와 중계무역의 거점 마련을 위해 이루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왜와 요서진출은 비슷한 맥락이다. 왜와 한반도, 중국을 잇는 삼각무역의 정점에 섰던 백제가 어떤 방식으로 진출하였고, 비군사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속국과 식민시)들을 관리하였는지 알아보자.1. 대화 왜의 기원으로 보는 백제의 지위와 고대국가들의 속성3세기 전반까지 중국의 대 동방정책은 개별 군
외교의 달인 ‘충숙공’ 이예Ⅰ. 머리말냉전의 종식 후, 세계는 빠른 속도로 재편성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라는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벗어나 자국의 이익을 위한 집단의 편성에 앞장서고 있으며 그로 인해 세계 질서는 빠른 속도로 분화되고 있다. 아시아의 신흥경제국으로 발돋움한 한국 또한 예외는 아니다. 빠른 사회적 변화 물살에 맞서서 재빠르고 기민한 외교적 움직임으로 어느덧 아시아를 넘어 세계 속의 한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과 일본, 대만과의 관계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동북아시아의 발전을 위한 공모의 필요성이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해 아직도 골이 메워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일본과 한국과의 관계는 독도 영유권 문제 및 일본 교과서 문제로 치열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는 동북아의 평화 공존을 저해하며, 나아가 서반구와 환태평양 지역 거점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한국의 이상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예로부터 일본은 한국과 문화적, 외교적인 교류가 있어왔으며, 조선시대에는 사대교린이라는 외교질서에 부합해 잦은 교류가 있어왔다. 일본과의 잦은 교류속에서 외교적 마찰도 있었고, 특히 왜구라 불리는 해적들의 문제로 외교관이라 불릴 만한 통신사들이 파견되기도 하였다. 그들 중에 충숙공 이예 선생은 당시 외교 질서 속에서 실리를 추구한 전문적 외교관다운 분이였다. 당대엔 적지 않은 나이인 고희의 연세에도 쓰시마섬에 건너가 일본 관리들을 감동시키고, 많은 문화적 교류까지 이룩한 이예 선생의 업적은 자손들인 학성이씨 뿐만 아니라 그를 아는 많은 한국인 사이에서 귀감이 되고 있다.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하였다. 이예 선생의 업적과 그의 외교술을 통해 현재의 외교 문제에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Ⅱ. 이예의 외교 업적과 외교술세종실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등장한다. ‘왜구의 괴수 상전어중 등이 그의 도당을 거느리고, 울주포로 들어온 것을 지주사 이은이 식량을 주고, 후히 접대하였더니, 상전 등은 도리어 꾀어서 함몰하려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하더니 이은과 반인 박청, 기관 이예 등을 잡아가지고 도망해 돌아갔다.’ 여기서 말하는 울주포는 지금의 울산을 말한다. 1396년에 왜구들이 울산에 쳐들어와 군수를 사로잡아간 일이 있었다. 당시 24살이던 이예는 해적선에 숨어들어군수를 모실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였고, 해적들은 그런 이예의 인품에 감동하여 두 사람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당시 조정은 이예의 충성심을 높이 사서 벼슬을 주고, 사대부 양반으로 승격시켰다. 당시 이예는 중인 계급의 아전이었다. 당시로선 신분 상승의 기회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예의 양반으로의 신분 상승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일기도 파견에서 윤명이 대마도주에 억류되자 그를 대신해 포로 석방 교섭을 단행하고, 일기도 관리들의 조처 요구를 받아낸다. 대일 교섭에 재능을 보인 그는 이후 종2품 동지중추원사까지 오르며, 대일 외교관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울산에 본관을 둔 학성 이씨의 시조가 된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한 인간의 성공 스토리만이 아니다. 조선 초 신분 이동이 제한되었던 것에 기인할 때, 이예의 신분 상승은 가히 획기적이다 볼 수 있다. 당시 중인이었던 이예가 양반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결국 이예의 인품 또한 한 몫을 했겠지만, 당시 대마도에 거주하던 왜인과의 가능한 통역능력과 언변에 크게 주목한 것도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이후 이예는 독보적인 대일 전문 외교관이 되어 수많은 사행을 나서게 된다. 이는 왕조 실록에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71세 마지막으로 사행을 나서기까지 32년동안 40여차례 넘게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또한 당시 이예의 외교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잘 대변해주고 있다. 1438년에 세종대왕이 중신들을 불러 "대마도 왜인들이 교역을 빌미삼아 너무 많이 몰려든다."며 이들의 체류를 제한할 방법을 물었는데 중신들이 일본에 사행 간 이예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다시 의논하길 건의했다는 기록 또한 그런 것이다. 당시 조선에선 대마도를 거점으로 하는 왜구들에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별다른 대책을 찾지 못했고, 또한 그들에게 개방 보다는 왜인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끊고, 문을 닫은 채 오랑캐 취급을 하는 편이 많았다.물론 통신사나 정부 차원의 사신이 파견된 사실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조선사 전체적으로 볼 때, 또는 백제 이후 역사를 살펴봐도 일본과의 적극적인 교류보단 민간 차원의 사적인 교류가 더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당시 해상 교통이 활발하지 않으므로 중국의 선진 문물에 대한 욕구를 한반도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고, 교류가 활발하지 않자 교역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졌다. 따라서 민간 교역이 활발했고, 이를 통해 당시 중인이었던 이예는 그런 점에서 이미 당시 양반들보다 외교술에서 앞설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왜인들에 대해 잘 알고, 처세술을 알았을 것이라고 말이다.그러나 이것에 만족하지 못한 왜인들은 흉년으로 인한 쌀 부족을 기점으로 노략질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로 인해 많은 조선인이 왜인들의 포로로 잡혀갔는데, 이예의 전문성과 업적은 여기서 빛을 발하게 된다. 40여년 동안 667명의 조선인 포로를 협상을 통해 구출한 점이다. 사실 71세에 한 그의 마지막 임무도 대마도에 붙잡혀간 포로의 귀환 문제였다. 그는 건강을 걱정하는 세종에게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대마도에 출입한 신이 가는데 누가 감히 사실을 숨기겠습니까?"라며 대마도행을 자청해 포로 7명을 데려왔다고 한다. 양반의 지위에 안락한 생활이 보장됨에도 불구하고, 늙은 나이에까지 직접 국민보호에 헌신했다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충숙공 이예의 업적이 더욱 높게 평가받는 것이다.
타일러 목표중심 교육과정타일러의 목표중심 교육과정 모형은 크게 보아 교육 목표의 설정, 학습경험의 선정, 학습경험의 조직, 학습성과의 평가라는 네 가지의 구성요소를 갖는다. 네 가지 구성요소는 교육과정의 개발과 실행에서 순차적인 과업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타일러는 교육목표의 원천, 즉 가르칠 내용의 원천으로서 학습자에 관한 사실, 사회에 관한 사실, 교과전문가의 견해 세 가지를 들고 있다. 학습자에 관해서는 학습자의 필요와 흥미를 알아보고, 사회생활에 관해서는 성인들의 사회에서의 활동과 생활조건, 가치관등을 알아보고, 교과전문가들이 각각의 교과목에 대해서 제시하는 의견을 살펴봄으로써 교육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교육목표를 도출하는 첫 번째 원천으로 제시된 학습자의 필요와 흥미는 진보주의 교육철학에서 강조하는 아동중심의 교육이 내세우는 제일의 슬로건이다. 교육목표의 두 번째 원천인 사회생활은 학교교육의 실용성 내지는 실효성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교육목표 도출의 세 번째 원천인 교과교육에서는 개별 교과의 일반적인 기능과 특수한 기능을 고려한다. 그런데 교육목표를 설정하는 문제는 가르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결정하는 가치판단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치판단의 문제를 해결하는 장치로 교육철학을 상정하고 있다. 또한 설정된 교육목표가 실제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장치로서 타일러는 교육심리학 내지는 학습심리학을 제시한다. 타일러에 의하면, 이렇게 해서 설정된 최종적인 교육목표는 실제로 수업과 평가에서 의미 있는 지침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명료한 문장의 형태로 진술되어야만 한다. 교육목표는 어떤 내용에 관한 어떤 행동이라는 식으로 내용과 행동을 이원적으로 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목표의 진술에서 행동을 강조한 타일러의 모형에서의 교육목표는 평가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다. 이러한 목표와 평가 사이의 관련성은 타일러의 뒤를 이은 블룸에서 취급되었고, 교육목표의 영역을 크게 인지적 영역, 정의적 영역, 운동기능적 영역으로 체계화하였다.타일러의 목표모형이 지니는 가장 중요한 특성은 목푤을 내용보다 우위에 두고, 내용은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간주하는 목표-수단 접근방식이다.타일러는 교육목표에 상응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 되는 교육내용을 마련하는 문제를 학습경험의 선정과 조직이라는 공학적 절차의 문제로 바꾸어서 다룬다. 타일러에 따르면, 학습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학습자와 그를 둘러싼 외부의 학습환경사이의 상호작용을 총체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학습경험을 선정하는 문제는 교사가 학생들로 하여금 갖게 되기를 바라는 학습경험을 최대한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을 마련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타일러는 학습경험을 선정할 때, 고려해야 하는 일반적인 원칙으로서 다음의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학생이 실지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내포된 경험이어야 한다. 둘째로 학생이 교육목표가 가리키는 학습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로 바라는 학생의 반응이 학생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넷째로 하나의 교육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학습경험이 사용 될 수 있다. 다섯째로 한 가지의 학습경험은 반드시 한 가지의 목표 달성에 유용하거나 한 가지의 학습 성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가지 목표를 달성하게 하거나 여러 가지 학습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타일러가 제시한 학습경험에는 크게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학습경험,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학습경험, 사회적 태도를 함양하기 위한 학습경험, 흥미를 개발하기 위한 학습경험의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학습경험은 지식 자체를 독립적으로 다루기보다는 그것을 문제해결의 과정과 관련시켜서 다루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의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학습경험은 문제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사고의 과정인 귀납적 사고, 연역적 사고, 논리적 사고, 비판적 사고등의 다양한 사고 유형이 해당된다. 세 번째의 사회적 태도를 함양하기 위한 학습경험은 학습자의 정의적 태도와 인성을 형성시켜 주는 것으로서 교육환경이 학습자에게 제공하는 정서적, 정의적 영향력을 의미한다. 네 번째의 흥미를 개발하기 위한 학습경험은 학습을 지속적으로 유발하는 학습동기를 제공하려는 것이다.학습경험을 조직하는 이유는 학습경험의 제공을 통한 학습자의 학습이 단정되거나 파편화되지 않고,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학습경험을 조직할 때에는 반드시 여러 학습경험들 상호간의 순서와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순서에 관련된 수직적 조직과 범위에 관련된 수평적 조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타일러는 학습경험을 조직할 때 따라야 할 준거로서, 각각 수직적 조직에서는 계속성과 계열성의 준거를 그리고 수평적 조직에서는 통합성의 준거를 제시하고 있다. 계속성의 준거는 학습경험들의 종적인 배열에서 동일한 학습경험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계열성의 준거는 동일한 경험요인이 단순히 반복되는 수준을 넘어서서 계속적인 줄기는 있으되 동시에 그 줄기에 좀더 넓고 깊은 의미가 붙어갈 수 있게 조직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통합성의 준거는 여러 가지 학습경험들을 그 횡적인 관계에서 서로 보충과 강화가 이루어지도록 관련지음으로써 학생들이 여러 영역에서의 학습경험을 통하여 모순이나 단절 없이 통합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행동에도 통일성을 이루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요컨대, 계속성은 특별한 학습 요소들에 대한 학습자의 경험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이고, 계열성은 학습자의 발달을 점점 더 넓히고 심화시키는 것이며, 통합성은 관련 요소들에 연관시켜서 학습자의 행동의 통일성을 증가시키는 것을 말한다.
미래형 교육과정과 7차교육과정역사교육과2004527043천상협제출일: 4월 26일미래형 교육과정은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도 불린다. 이 교육과정은 학교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 목표를 두고 있으며, 7차교육과정이 학생중심, 선택중심으로써 학생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나 이가 학생이 아닌 학교 관점에서 보인다는 점에서 7차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덮었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7차에서의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조정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며, 이밖에 학습부담의 적정화를 통한 의미있는 학습활동 전개와 창의적 체험활동 강화,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혁신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재량시간의 확대나 신설, 고등학교 2,3 학년의 선택 교육과정과 일맥상통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학기당 이수과목을 최대 5과목으로 줄이고, 교과 집중 이수제를 도입해 예, 체능의 과목을 특정학기에 몰아서 수업하며, 학교 자율에 따라 교육과정을 20%범위내에서 증감, 운영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학교에 권한을 몰아주고, 학생중심의 교육과정에서 멀어지는 차이를 보이며, 이를 통해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교육과는 거리가 멀게 주요 과목중심, 입시위주의 교육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미래형 교육과정의 주요 내용을 7차 교육과정과 좀 더 자세히 비교해보면 대략 이렇다. 일단 목적은 학교현장 자율화로 교원인사권한을 학교장에 부여하고, 교육 수요자 중심의 학교교육 다양화, 특성화된 교육과정과 학교간 경쟁 통해 경쟁력 제고, 자율학교 확대를 표방하였는데, 이를 통해 수요자 만족도 증가와 교장의 책임경영, 사교육 부담 경가를 꾀하였다. 7차교육과정에서 학습자중심의 자율화와 창의성 있는 교육에 엇나가지 않고, 교육 수요자 중심을 표방하며, 일선 학교에 권한 부여로 좀 더 독창적이고, 지역색과 학습자 특색을 고려하였다는 것은 좋으나 이는 7차에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문제를 가중하여 오히려 더 후퇴하고 있는 교육과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첫 번째로 20%범위내에서 교육과정 증감 편성권 및 자율화 실제, 0교시, 우열반, 심야보충수업 승인등은 실제로는 학습자가 아닌 학부모의 요구 중심으로 돌아가고, 이는 국영수등의 입시위주 과목들의 몰입교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입시위주 교육이 더 가중되고, 다른 학교들도 이 분위기에 동참하면서 입시가 치열해지면 사교육 열기도 가라않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한 일반선택과목과 심화선택과목 구분없이 학생의 선택과 확대는 대입 위주의 과목 선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았고, 학교장 권한 강화는 최근도 불거지며, 문제를 확인했지만, 학교장의 전횡과 교원, 교사 통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할 수 있다. 자율권이 아닌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기간제 교원 임용 활성화는 교사의 비정규직화와 교사간의 반목을 초래할 수 있고, 자율학교 확대는 학교간 경쟁으로 입시체제 강화와 교육 수요자로부터 선택 배제, 학교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학교정보공시제 또한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의도는 좋으나 준비없이 시행된다면, 재정낭비로 이어질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밖에 교과별, 학년, 학기 단위 집중이수제와 재량활동과 특별활동 통합또한 비효율적이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종합적으로 본다면, 교장의 인사권 강화로 교원이 통제되고, 교과내용의 자율화는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7차에 비해 경쟁을 강화함으로써 학교 자율화를 표방하였음에도 오히려 통제위주의 교육위주의 될 수 있다. 교육재정 축소는 수요자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가고, 빈익빈부익부 현상어질 수에 묻어나며, 이를 통해 교육재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교육을 학생중심으로 다양하게 마련하고, 양과 수준을 적정화하여 심도있는 학습을 꾀게 마련하 비해 미래형 교육과정은 오히려 학교중심의 교육과정으로 입시위주의 과목 편성으로 양과 수준을 통제하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인재가 아닌 수동적이고, 입시위주의 교육에 맞혀진 인재를 양성할 뿐이다. 다양한 선택교과 또한 입시위주의 과목으로 바뀌며, 적성이나 흥미를 고려하지 않음으로 학생들이 따분해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오히려 후퇴할 수 있다고 본다. 제일 중요한 것은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가중시켜 사회의 문제를 교육내 투영시킬 수 있다는데 7차와 비교하여 가장 큰 문제라 볼 수 있다.
안녕하십니까?교육에 관한 주제로 조사를 하던 중에 이번 3월에 일어난 김길태 사건이 싸이코패스로 인한 사건인가 아닌가에 주목하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일어났던 강호순 사건이나 유영철 사건을 통해 아시겠지만 요즘 일어나는 강력범죄 중 싸이코패스 범죄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전에 싸이코패스를 가려내는 심리테스트까지 인터넷에서 유행해서 화제였는데요. 그만큼 강력범죄가 급증하였고, 싸이코패스라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위협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혹시 싸이코패스가 무엇인가 궁금해하시는 분을 위해서 조사를 해왔는데요 싸이코패스는 가장 큰 특징이 양심이 없는 것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놀랄 만큼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며,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무관심하다고 합니다.한국 연쇄살인범의 특징을 정리하기를 "2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의 남성으로 일정한 직업 없이 미혼이거나 혹은 결혼에 실패한 독신. 어린 시절 학대 등 충격적 경험을 당한 불우한 가정환경. 내성적 성격으로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잘 보여주려 하지 않는 외톨이 성향. 이성에 지나치게 집착. 순간적인 폭력성이 드러나거나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성격"으로 정리했는데요. 연쇄범죄자중 많은 수가 어릴 때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거나 소외된 계층으로 알려져 있어 더 주목되는 사실입니다.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김길태 또한 중 1때 까지는 남자답고, 활발했으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중1이후부터 내성적이고, 거짓말을 잘하는 성격으로 바뀌어 갔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그가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번 사건이 안 일어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의견을 내기도 하였는데요. 이런 점에서 볼 때, 강력범죄나 싸이코패스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예방차원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역시 교육에서 있지 않을 까 생각하는데요. 교육적인 부문에서 방법을 살펴보았습니다.늑대와 같이 자라면, 울음소리도 늑대를 닮고, 절름발이와 같이 살면, 절름거리는 것을 배운다라는 말은 교육 환경의 중요성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가정에선 부모의 과잉보호, 대화 부족, 과외, 컴퓨터 열풍으로 집단 생활 결여, 학교에선 과밀 학급 및 업무과중으로 인한 문제, 이기주의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아동의 증가, 입시위주의 교육문제 등으로 아동에 대한 관심 부족과 인성교육이 결여되고 있습니다.또한 범죄가 점점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이 사는 곳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와 관련한 계층에 대한 관심과 균등한 교육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지역의 아동들은 그렇지 않은 아동들에 비해 학습적인 기회를 더 못받고, 그로인해 뒤떨어져 사회적으로 소외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성적지상주의 교육이 아닌 인성교육을 좀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학교의 인성교육이 땅에 떨어진 사례가 보고 되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종례시간이 길다고 중학생이 여교사에게 폭력을 휘드른 사례등이 있는데요. 교육의 목적이 학생의 전인적 발달을 도모하는데 의의가 있는 만큼 학생 개개인의 원만한 발달을 위해 균형있는 정서의 형성과 발달을 지원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정서지능을 높일 수 있는 교육과 교육 여건 제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동적인 교육이 아닌 학생들의 특기와 적성을 살려주는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고 하며, 이는 이후 학생들의 창의성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창의력 향상은 정서지능과 마찬가지로 미성숙한 학생들의 인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또한 선생 한명 당 학생 수를 최소화 해 선생이 학생과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건이 조성되면, 선생은 학생에 대한 좀 더 많은 기회의 대화를 통해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는게 중요하고 적성이나 진로지도 이외에도 가정문제나 성격 등에 대해 상담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전문 상담가를 학교에 두어 자율적으로 학생들이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그밖에도 인성관련 열린수업 전개, 일기 쓰기, 사랑의대화 편지쓰기, 방과후 특별활동, 현장체험학습등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열린수업은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과 협동심, 인격존중등을 키울 수 있고, 일기쓰기는 주제에 따른 인식과 느낌을 기록함으로써 공동체 의식 함양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사랑의 대화 편지쓰기는 부모와 자녀간의 편지쓰기 활동인데, 이로 인해 긴밀한 대화를 상호간에 나누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장 체험활동은 부모직장 체험이 있는데, 이로인해 부모에 대한 존경심과 고마움,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현상에 대한 경험의 기회가 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