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나*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3
검색어 입력폼
  • [연극 감상] 용띠 위에 개띠
    용띠 위에 개띠이 수업을 통해 접하게 된 두 번째 작품 『용띠 위에 개띠』는 지난번에 관람하였던 『내 사랑 DMZ』보다 현실성있는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주었다.이 연극의 첫 장면은 어두운 조명아래 한 부부의 애절한 대화로 시작된다. 후두암 말기로, 죽음을 앞둔 아내와 그녀의 남편이 서로가 서로에게 갖는 의미와 그 소중함을 확인하는 이 장면은 언뜻 추후 이 작품이 신파조로 흐를 것 같은 예감도 들게 하지만, 사실 그 내용은 첫 장면의 슬픈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흐른다.이 연극을 보다보면 막과 막 사이에 여러 가지 음악이 흐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남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웨딩 송이 흐르는 데 이것은 두 사람의 결혼을 의미한다. ‘해변으로 가요’는 이 부부가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데, 역시 다음 장면에서는 이 예상이 빗나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중간 중간 흐르는 이 음악들은 단순하게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음 장면을 예고하는 하나의 장치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보았던 여타 다른 작품들과는 또 다른 하나의 특색으로서 참 인상 깊었고, 음악를 통해 다음 장면을 예상하는 일은 이 작품을 관람하는데 있어서 쏠쏠한 재미였다.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깊었던 점이라 함은 단연 배우들의 지방색 깊은 말투와, 과장된 몸짓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남자 주인공 ‘나용두‘역을 맡은 배우 이도경 씨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는 그의 독특한 말투 때문에라도 잊을 수가 없다. 영화 ’친구‘ 이후 몰아친 사투리 열풍에 휩쓸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사투리가 사용됐지만 이 작품에서 만큼 배우의 말투가 인상 깊은 작품은 없을 것이다. 남녀 배우는 극중에서 사투리를 강하게 사용한다. 하지만 이것만이 그의 말투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아니다. 배우의 강한 사투리와 함께 등장인물의 특징을 잘 나타내준 이도경 씨의 딸꾹질 하는 듯한 독특하고 개성있는 억양은 아직도 잊을 수 없을 만큼 뇌리에 깊이 박혔다.그리고 연극에서 사용된 세트 또한 인상 깊었다. 이 세트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침대가 되었다가, 화장실 문이 되기도 하고 책상이 나오기도 하는 아주 실용적인 형태였다. 여기에서도 이번에는 저 뒤에서 어떤 무대가 나올까 하는 궁금증에 더욱 재미있는 관람이 되었다.이번에는 연극 내용과 관련지어 이야기 해보겠다.처음 만난 두 남녀를 결혼이라는 인연으로 엮어준 ‘내기’는 극이 진행되는 내내 이 부부의 중요한 일상을 이루고 있다. 사소한 일들로 내기를 걸고 서로 이겼네 졌네 하면서 토닥토닥 거리는 부부의 모습은 조금은 유치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기’는 이 부부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데 중요한 끈이 되어주는 것 같다. 두 주인공의 경우, 아내는 누워서 빨래를 널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아내의 지저분하고 게으름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며 비난하는 모습 등을 통해 두 사람의 성격에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성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공통 관심사이자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이기도 한 ‘내기’는 이 부부를 엮어주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거실 신에서 남편은 텔레비전을 켜는데 이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내용이 매우 코믹하다. 이렇듯 이 연극에서는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몇 가지 평범한 소품을 활용해 코믹한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다. 큼지막하게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나용두의 빨간 넥타이라던가, 아내의 게으름과 결혼 전후의 변화를 잘 나타내 주는 빨랫감이 그 예이다. 이것은 연극의 주 내용과 관계없이 의도적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기 위한 장치인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04.10.27| 2페이지| 1,000원| 조회(728)
    미리보기
  • [영상예술] 내 사랑 DMZ
    내 사랑 DMZ지난 학기에 ‘영상예술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통해서 몇몇 연극를 관람해 보았다. 그동안 관람한 연극들은 조금은 심오하고 진지한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어린이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이 조금은 어색하고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관객이 수업을 같이 듣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었는데 다들 비슷한 생각으로 공연을 맞이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도중에 다함께 박수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들 처음의 편견은 모두 버린 것 같았다. 배우와 관객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 노래했던 일이 이 공연을 보고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일 만큼 즐거웠다. 또 하나 이 공연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독특한 의상이다. 짚으로 만든 돗자리나 짚신을 연상시키면서 고전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자연과 어우러진 느낌을 받았다. 등장인물들 중에는 무당의 보조 역할로 나왔던 ‘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실제 닭이 그러하듯이 쉴 틈 없이 눈을 껌뻑이던 배우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고 귀여웠던 것 같다.연극을 보면서 몇 가지 의문스러웠던 점이 있다.먼저 파괴된 환경을 견디다 못해 DMZ로 피난 온 새만금의 조개와 그 밖의 몇몇 생물들이 과연 어떻게 DMZ로 올 수 있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벌이나 얕은 바다에 사는 조개가 수 천 킬로미터는 될 거리의 바다를 목숨 걸고 헤엄쳐 온 것인가. 더구나 오염된 곳에서 살면서 심하게 몸이 망가진 조개가 말이다.두 번째 의문은 DMZ의 동물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각종 방언이다. DMZ는 남한의 경기도와 강원도 지방에 맞닿아 있는 곳인데 팔도 사투리가 난무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남쪽에 사는 동물들이 산 넘고 물 건너, 그리고 도심 속을 헤치며 그곳에 정착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거 전쟁터였던 그곳에 다양한 지역의 군인들이 다녀간 때문일 거라고 여겨진다. 오랫동안 군인들의 사투리를 들어온 동물들이 그들의 억양과 말투를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정에는 모순이 있다. 다국적 군인들이 다녀갔을 그곳에서 동물들은 왜 외국어를 익히지 못하였을까 라는 의문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동물들은 그렇게 머리가 좋지 않다’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 있겠다.세 번째는 ‘곰은 쓸개 없이도 살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무당이 죽은 군인들을 불러낼 때, 곰에게서 웅담을 빼내고 일이 성공 한 뒤에 웅담을 다시 곰의 몸속으로 집어넣는 장면이 있다. 조사해본 결과, 일단 사람의 경우 쓸개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쓸개는 간에서 만들어낸 쓸개즙을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소장으로 분비하는 역할을 하는데, 말하자면 쓸개에서 쓸개즙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그저 쓸개즙을 언제 분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댐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쓸개가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쓸개즙 분비를 조절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건강에 좋을리 없다는 말이 된다. 곰이 사람과 같다고 보았을 때, 곰에게서 웅담이 없던 그 기간동안 곰의 건강상태는 전보다 나빠졌을 것이다. 곰은 웅담을 빼내는 조건으로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았다. 이점에서 환경을 보호하고자하는 곰의 아름다운 희생정신을 엿볼 수 있다.
    독후감/창작| 2004.10.27| 2페이지| 1,000원| 조회(399)
    미리보기
  • [사학] 실크로드의 악마들 평가A+최고예요
    실크로드의 악마들1. 실크로드의 성쇠투르크어로 ‘들어가면 당신은 나오지 못하리라’는 뜻의 타클라마칸은 3면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은 고비 사막에 의해 닫혀 있어 그 접근조차 어려워 탐험가들에게는 유쾌하지 않게 회고되고 있다.흉노의 위협에 직면에 한 무제는, 과거 흉노에 의해 타클라마칸 서쪽으로 쫓겨난 월지와 동맹하여 이들을 공격하기 위해 장건을 월지에 보낸다. 우여곡절 끝에 월지에 도착하지만, 새로운 땅에서 번영을 이룬 그들에게 복수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장건은 13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가 한 문제에게 귀국보고를 하는데, 이를 통해서 서역에 대한 각종 정보와 천마가 중국에 전해진다. 장건은 중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길을 최초로 개척한 실크로드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4. 스벤 헤딘 - 개척자스웨덴 출신의 탐험가 스벤 헤딘은 온순해 보이는 외모 뒤에 가차 없는 결단력, 강인한 체력과 야망의 소유자였으며, 과학적 탐험가로서의 뛰어난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헤딘은 타클라마칸 모래 속 깊숙이에 수많은 고대 보물과 함께 사라진 도시에 매료되어, 이 미지의 땅을 탐험하고 지도를 작성해 나가면서 모래 속에 묻혀 있다는 도시를 발굴해 보리라 마음 먹었다.헤딘은 타클라마칸으로 들어간 첫 번째 모험에서 식수 부족으로 거의 최후를 맞을 뻔했다. 낙타 여덟 마리와 캐러밴 네 명과 함께 시작한 첫 번째 탐험은 헤딘 자신과 일행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 비운의 모험의 되었다.두 번째 탐험에서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사막의 서쪽 가장 자리를 위회하는 길을 택한 그의 일행은 호탄에 당도하여 유물 몇 점을 찾아냈고, 오아시스 주민들로부터 ‘타클라마칸’이라 불리는 곳에서 오랫동안 사라진 불교 문명의 유적지 두 곳을 발견해냈다. 발견물에 대한 헤딘의 도상학적 관찰은 놀라운 투시력을 보여주었다.국왕과 재력가로부터의 후원으로 시작된 세 번째 모험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롭 노르였다. 강 측량 기간 중에 롭 사막에서 고대 가옥과 목조탐험가인 반면, 스타인은 역사 분야의 탐험가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스타인은 캘커타 정계에 힘을 가진 휘른레 박사와 인도 최고 권력자인 총독의 지원으로 중국 통행증을 얻게 된다. 그는 헤딘의 저서를 통해 사막의 탐사와 발굴은 겨울철에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극한의 한파에 철저히 대비했다. 스타인은 유물 사냥꾼 아훈의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고, 헤딘이 호탄 북쪽에서 발견한 신비의 도시 ‘타클라마칸’을 찾아가 완벽하게 발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그의 일행은 야르칸드를 거쳐 구마에서 아훈이 발견했다는 유적이 거짓임을 확인하고, 옥과 양탄자로 유명한 호탄으로 가서 전문가 수준의 소규모 발굴단을 편성하여 유물을 찾게 하였고 그 자신은 곤륜 산맥의 측량작업을 하였다.발굴단원 중 트루디라는 사람은 헤딘이 말한 ‘타클라마칸(단단윌릭)’에서 귀중한 유물들을 가져왔는데, 스타인은 이 곳을 첫 공략지로 삼기로 결정했다.6. 엄청난 유물을 발견하게 된 스타인스타인은 인부 30명을 고용하여 추위를 뚫고 단단윌릭에 도착해서 투르디의 안내로 약탈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건물들을 중심으로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신중히 작업한 결과, 고대 불교의 프레스코 벽화와 스투코 부조를 비롯하여 고문서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사원으로 추측되는 건물군에서는 호탄을 구했다는 성스러운 쥐들의 왕이 그려진 목판과 정확한 날짜가 기록된 중국어 문서들이 발견되었다. 우연한 계기로 발굴하게 된 작은 불교 사원에서는 7세기 실크로드 화가들의 높은 수준을 엿볼 수 있고 세린디아 미술이 동방으로 전파된 과정을 보여주는 채색 패널 세 개와, 두루마리들이 파묻혀 있는 수장고를 찾아냈다. 스타인은 이곳에서 발견된 모든 문서의 연도가 782년에서 787년 사이인 것을 보아 단단윌릭이 사막화된 시기를 8세기로 추측하였다. 3주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14채의 건물을 발견하였고, 단단윌릭이 갑작스런 천재지변으로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내놓았다.단단윌릭을 떠나 케리야를 거쳐 니야로 향한 일행은 그곳에서 110불교 사원에서 오래된 티베트 문헌 자료를 발굴하였다. 그 후 카라동 유적에서는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다음 목표인 라왁에서 거대한 불탑과 부처상, 보살상을 줄줄이 발굴했다.8. 본격적인 경쟁의 시작1902년 독일인과 일본인 타클라마칸에 진출하면서 고대 불교 유물을 발견하려는 ‘국제적 경쟁’의 막이 올랐다. 독일의 첫 탐험 대원는 베를린 민속한 박물관 직원인 그룬베델과 후트, 브루트스 였다. 그들은 중국령 트루키스탄 지역의 고고학적 가능성에 관심을 가졌으며, 사면이 구릉과 불모의 사막으로 둘러싸인 녹색의 비옥한 오아시스 투르판 일대를 최초의 탐험지로 선택했다. 막대한 재정을 지원받은 그들은 1차 탐험에서 불교 관계의 프레스코 벽화, 고사본 등의 유물을 발견하였다.2차 탐험대는 르콕과 바르투스 두 사람만으로 출발하여, 피로 물든 과거 탓에 비참하고 불결한 도시가 된 옴스크를 거쳐 투르판에 당도하여 벌레들과 함께 원주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진흙으로 건축된 고대 도시 카라호자에 도착하여 대량의 유물을 발견하였는데, 가장 먼저 높이 180cm의 마니교 창시자 마니를 그린 프레스코 벽화를 찾아냈다. 다른 지역에서는 박해를 받아 그 유물이 자취를 감춰버린 마니교는 8세기 중엽 카라호자에서 번영했던 것이 명백했다. 그 외에도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아름답고 찬란한 유물들을 대거 발견하였다. 르콕은 돔 형태의 건물에서 불교승의 시체 백여 구를 찾아냈는데, 이 대학살을 중국이 자행한 종교 탄압으로 보았으며 이곳에서 불교와 마니교가 공존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간다라 양식의 아름다운 등신대 불상과 비잔틴 양식으로 그린 벽화가 남아있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사원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북쪽의 생김 골짜기에 있는 석굴 사원으로 장소를 이동한 르콕 일행은 석굴 사원 두 곳에서 완전한 필사본 서고를 발견한 뒤, 베제클릭의 불교 석굴 사원으로 발길을 향했다.9. 폰 르콕이 동전을 굴리다베제클릭의 수많은 석굴 사원은 절벽에 뚫어놓은 벌집의 형태를 하고 있다. 수세기 이상 계이 유물들을 뜯어내어 베를린으로 보냈다.근처에 있는 또 다른 불교 사원지에서 7세기 프레스코 벽화와 자수품, 필사본을 발견하고, 포도로 유명한 토육으로 자리를 옮겨 인도의 영향을 받은 승방 내에서 다량의 종교 문헌을 찾아내고, 쉬팡의 유적에서는 초기 기독교 필사본을 발굴해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하미로 가서 진귀한 대접을 받은 뒤, 돈황의 비밀서고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그룬베델과 합류하기 위해 카쉬카르를 향해 출발했다.10. 투르키스탄에서 가장 뛰어난 벽화르콕의 일행 바르투스는 다양한 경험과 그의 타고난 재기와 범선에서 배운 실제적 기술들이 결합해서 그를 탐험에 이상적인 인물로 만들었고, 점차 전문적인 발굴가가 되었다. 카쉬카르에서 그룬베델과 합류한 일행은 천산 기슭에 있는 키질의 석굴 사원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그룬베델의 도착 지연으로 두 사람과 그룬베델 사이에는 불화가 싹텄다.한편, 인도에 있는 스타인은 마카트니로부터 독일인들이 쿠차 지역에서만 활동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마음을 놓았고, 저서의 교정 작업에 매달렸다.독일인들은 툼슉의 불교 유적을 대략 살펴본 뒤, 황토산에서 발견한 천불동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고 쿠차를 거쳐 쿰트라로 이동했는데, 이곳에서 발견한 석굴 사원에서 불교 유물들을 발견하였다.르콕 일행은 협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악용하려는 러시아의 이중거래에 분개하고 그들과 실랑이를 벌인 뒤, 러시아인들에게 쿠차 지역을 내주고 더 풍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 키질을 향해 떠났다.키질의 석굴 사원에서 그리스식 화법으로 그려진 벽화와 광택을 발하는 청색 안료가 풍부하게 칠해져 있는 벽화를 발견하였다. 키질에서 발견된 벽화들은 이전의 어떤 것보다도 훨씬 훌륭했고 전혀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 이것은 쿠차가 658년 중국 통치를 받기 전까지 독자적인 언어와 회화 양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탐험대는 석굴 작업을 하는 중에 낙석으로 인해 몇 번의 위기를 맞았고, 탐사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로 르콕과 그룬베델의 갈등도 심각했다. 이후스탄의 동단을 가로지른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습격의 위험이 심각한 지대를 통과하는 것을 의미했다. 스타인은 람 싱그, 무함마듀 그리고 중국 청년 장과 함께 누란을 주목표 탐험을 시작했다. 카쉬카르에서, 스타인과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던 헨드릭스 신부의 죽음으로 출발이 지연되었지만 곧 서역남도를 따라 열사의 사막을 피해 밤에만 이동하기로 결정하고 기나긴 여행에 나섰다.얼마 후, 구상의 불탑의 발견으로 누란에 도착했다. 누란은 군사 행동에서 전략적으로 핵심 역할을 하는 요새 도시였기 때문에 프레스코 벽화나 거대한 불상 등은 발견되지 못했지만, 고대의 쓰레기 더미에서 군사 기록들을 발견했다. 누란은 본국과의 모든 접촉이 끊어졌음에도, 독립적인 오아시스로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장기간 동안 무장을 풀지 않았다. 수많은 중국 공문서 외에도 카로슈티 목독을 다량 찾아냈는데, 이로써 중국의 국경 요새인 누란이 역사의 어느 시기에는 아직 현대 사가들이 미처 알고 있지 못한 고대 인도 제국의 동쪽 끝 변방의 요새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장과 함께 미란으로 간 스타인은 그곳의 불교 사원지에서 서양적인 천사상과 로마 출신으로 추정되는 화가의 서명을 발견하였는데, 이 점으로 보아 중국령 중앙아시아에 로마인 마을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12. 돈황 - 숨겨진 고대의 서고캐러밴과 순례자들의 빈번한 왕래로 수세기 동안 번영을 누린 돈황의 천불동은 낙준이라는 중이 천 명의 부처를 보고 순례자에게 여행을 마치고 안전하게 귀향하기 위해서는 지역 화공을 사서 석굴 하나를 아름답게 장엄한 뒤 이를 부처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설득한 데서 기원하여, 그 후 이를 선례로 많은 석굴 사원이 벼랑을 파고 생겨나고 사원내부가 찬란하게 장식되었다. 돈황은 수세기의 영고성쇠를 거쳤음에도 비교적 본래의 모습을 간직한 채 살아남았다.미란에서 돈황으로 오는 도중에 만리장성의 연장 부분을 찾아냈고, 돈황에 도착한 스타인은 왕원록이라는 도사가 한 석굴 안에서 방대한 고문서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사를 찾아가 거뒀다.
    독후감/창작| 2004.10.27| 6페이지| 1,000원| 조회(950)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2
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2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8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9:00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