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2
검색어 입력폼
  • 사본학
    책> 사본학 / 브루스 M. 메쯔거브루스 M. 메쯔거 / 강유중?장국원5천개 이상의 사본이 있다. 사본은 많고, 사본에 대한 관심 역시 높다. 왜 사본은 많고 관심도 높을까? 사본이 많은 것은 성경이 읽혀지기 위해 기록된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성경을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인은 성경을 신앙에서 가장 권위있는 표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대로 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진정’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증’받고 싶은 마음이 신앙인들에게 있을 것이다. 또한 문법적-역사적 해석을 시도할 때는 문법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그 대상이 되는 본문이 성경이 기록자가 기록한 바로 그 본문이라는 확증을 얻고 싶다. 원문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고 확신하는 지금의 성경의 뿌리가 되는 사본들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전달되었는가, 신약 본문에 대한 증거물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인쇄판의 특징과 신약 본문 비평역사는 어떠한가에 대해 살펴보고, 나의 생각을 간단히 적고자 한다.Ⅰ. 신약 본문 비평학의 재료고대서적의 시작고대 헬라어 필치 : 고대에는 두 가지 유형의 헬라어 필치가 사용되었다. 빨리 쓸 수 있는 ‘커시브’라는 초서체의 흘림 글씨는 편지, 계산서, 영수증, 탄원서, 법적 증서와 그와 같은 비문학적인 일상 증서에 사용되었다. 반면에 문학작품들은 ‘언셜’이라는 형식적 유형의 글씨로 쓰였다. 지금의 대문자와 같은 것이다. 그후 9세기 초반에 서체가 개혁되기 시작했고 ‘미너스훌’이라 불려지는 흘림체의 소문자 서체가 책의 생산을 위해 생겨났다. 떼 어떤 예식서들은 한두 세기 동안 계속 언셜체로 쓰였지만 이 커시브 글씨체의 수정된 형태는 즉시 모든 헬라 세계에 대중화되었다.필사자 : 양피지, 펜, 잉크 등을 갖춘 몇몇 훈련받은 서기관들이 사본실의 작업실에 앉아서 낭독자가 견본의 본문을 소리내어 천천히 읽는 것을 받아 기록하곤 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많은 서기관들이 사본실에서 일한 것만큼 많은 필사판이 동시에 생산될 수 ① 베껴야 할 본문의 절이나 행을 혼자 읽는다. ② 이것을 기억에 새긴다. ③ 이것을 혼자 (조용히 아니면 조금 소리내어) 말해 본다. ④ 마지막으로 손으로 적는다. 고대 서적의 전사가 매우 어려웠다는 것을 감안할 때 대부분의 서기관들의 성과의 정도가 높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것이다. 대개의 사본들에 있어서 글자의 크기와 원본의 모양이 긴 문서일지라도 놀랍게도 한결같이 같다는 사실이다. 높은 정확성을 얻기 위해 서기관의 작업에 관계된 규칙들이 생겨났다. 예컨대, 테오도르는 수도원 규칙에 사본을 베낄 때 주의하지 않는 수도사에게는 엄한 벌을 주기도 했다. 수도사는 양 피지를 깨끗이 보존했어야 했고, 그렇지 못하면 벌칙은 130번의 고행이었다.신학사본들의 독자를 위한 도움 : 신학사본들에는 독자들을 위해서 배려를 하고 있다. ① 성경의 장 구분 :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장 체계는 4세기의 바티칸 사본의 가장자리에 보존된 것이다. 이 사본에는 마태복음 170, 마가복음 62, 누가복음 152, 요한복음 50장으로 되어 있다. ② 장의 제목 : 유세비우스 캐논의 복음서에서 복음서는 다른 복 음서에 있는 평행구와 서로 관련시켜 길게 혹은 짧게 나누어졌다. 이러한 평행 구분들은 각 복음서에 계속적으로 매겨져 있는데, 마태복음에 355개, 마가복음에 233, 누가복음에 342, 요한복음에 232개이다. ③ 성구주석 : 고전 주석은 독자를 교훈을 위해 본문 옆에 놓여진 교사의 해석적 메모이다. ④ 성구집 : 회당의 습관에 의해 율법과 선지서의 부분들이 안식일 예배에서 낭독 그 습관을 따라 기독교회도 예배 때에 신약의 성구를 읽었다. 복음서에서 취한 규칙적인 교훈 체계가 발전되었고, 해마다 주일이나 거룩한 날에 정해진 순서를 따라 읽도록 이것들을 갖는 습관이 생겨났다.신약 헬라어 사본의 통계 : 몇몇 고대 저작가의 작품들은 겨우 우리에게 전달되어 보존되었지만, 신약의 본문 비평 자료는 대단히 풍부하다. 고대 저작자의 작품은 훨씬 뒤인 중세기의 사본 속에 보존되지만, 시리아어 번역판 학자들은 신약의 전부 혹은 부분으로 된 다섯 가지 다른 시리아어의 번역판이 있다고 한다. 라틴 번역판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려는 최초의 시화 언제 어디에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복음서는 2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에 로마 문화에 매혹된 북아메리카의 카르타고에서 처음 라틴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고대 라틴 사본들도 있었다. 유럽의 고대 라틴 사본들 중에 AD 382년에 제롬에 의해 번역된 ‘불가타’가 있다. 곱트어는 고대 이집트어의 마지막 형태인데 기독교의 시대까지 상형 문자와 두 파생어인 성직자용의 성문자와 민용 문자로 쓰였다. 4세기 중반 직후에 고트의 사도라고 불려진 울필라스는 성경을 헬라어에서 고트어로 번역했다. 이 외에 아르메니아어 번역판, 그루지아어 번역판, 고대슬라브어 번역판, 다른 고대번역판들이 있다.신약으로부터 인용된 교부들의 인용문 : 교부들의 인용문의 중요성은 그것들이 어느 지방의 것인지를 알게 하고 이문들의 날짜를 매기며, 헬라어 사본이나 번역판의 본문의 형태를 구별하도록 해준다는 데 있다.“신약 본문 비평학의 재료에 대해서...”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신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성경이 계속 보급되어야 했다. 하지만 성경 기록을 위한 재료를 구하는 것이나 보존하는 일, 필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증언을 담은 성경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기에 성경이 필사되고 번역되었다. 원문은 정확무오한 영감으로 작성되었지만 필사와 번역에는 한계가 드러나게 되었다. 필사를 하는 인간의 한계와 번역을 하는 ‘언어’의 한계 때문이었다. 따라서 축자 영감의 개념은 원본에 적용되어야 하는 말이 된다. 한편,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발견되는 수많은 사본들은 놀랍게도 한결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고대 서적의 전사가 매우 어려웠다는 것을 감안할 때 고, 이때 인쇄된 헬라어 성경을 ‘에라스무스판’이라고 한다. 이후 여러 사본들이 발견되어 출판되었지만 에라스무스판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633년에 엘제비어 형제가 헬라어 성경을 출판하면서, 서문에 ‘모두가 받아들인 본문’이라고 썼다. 이로써 이후 250여 년간 그의 인쇄 성경은 교회가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공인본문’(Texms Receptus)처럼 통용되었다. 개혁자들은 이 인쇄본을 전적으로 사용했다기 보다, 그 당시 인쇄되어 있으니까 본 것이다. 개혁자들은 헬라어 본문을 필요로 했을 때 발견되는 사본들을 사용했다. 그러나 종교개혁 당시의 번역 성경 중에서 1611년에 영국에서 출판된 흠정역(King James Version)이 이 인쇄본들을 번역했다는 것 때문에 신성시되기까지 했다. 교회개혁 당시 발견되어 사용이 가능했던 사본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대부분의 사본들이 9-13세기에 필사된 비교적 늦은 시기의 사본들이었다. 둘째, 대부분의 사본들이 동방교회가 존속하던 지역에서 사용되던 사본들이었다. 이 지역의 이름을 따라 학자들은 이 사본들을 ‘비잔틴 계열’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셋째, 어느 사본이나 신약성경의 모든 부분을 다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교회개혁 시기에 인쇄본을 출판하면서 출판업자들은 헬라어 성경 사본에는 빠지고 라틴 번역에는 있는 구절을 발견했다. 이때는 라틴어 본문을 헬라어로 다시 번역했다. 당시는 인쇄를 누가 먼저 해야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매우 급하게 이런 작업을 했던 것이다. 한 사본을 그대로 출판하지 않고 여기 저기 손질을 가하고 수정을 했다. 수정을 할 때 참고한 것은 라틴어 성경으로 추정된다. 여러 사본을 비교하여 학자들이 최상의 본문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만들어 출판했다. 비평적인 출판이라고 해서 ‘비평본문’이라고 한다.현대 비평 시대 : 그리스바흐(Griesbach)에서 현대까지18세기 후반기 동안에 독일 학자 요한 야곱 그리스바흐(l747-1812)는 헬라어 신약 본문에 대한 그 이후의 모든-l851)이었다. 그는 전적으로 여러가지 이문들의 평가에 본문비평을 적용한 헬라어 성경판을 발행했다.1514년 이래 얼마나 많은 다른 헬라어 신약판이 인쇄되어 나왔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1869년까지 발행된 판에 대한 서술을 출판한 스트라스버그의 에드워드 로이스는 그 수를 584개라고 헤아렸다. 만일 재판이나 여러 가지 이문판들 그리고 의심이 가는 판까지 가산한다면 그 수는 853개에 이른다. 20세기 초에 1000점이 지났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학문 분야로서의 본문 비평의 기원서구 문화에서 인정되고 있는 많은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본문 비평은 헬라인들 사이에서 생겨났다 이 본문 비평의 발생과 발전은 호머의 서사시와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공중 앞에서 ?일리아드?나 ?오딧세이?의 부분을 낭송한 서사시 음송가들은 이따금씩 특별한 경우나 혹은 효과적인 배열을 위해 그들의 생각에 맞게 본문을 바꾸기도 하였기 때문에 초기에 통용되던 각색판들이 있었다. 오리겐은 그의 모든 작품과 특별히 그의 주석적 논문에서 성경에 있는 비평적 제목에 대해 어떤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복사하는 자들의 태만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괴팍한 대담성에 의해, 또는 그들이 베낀 것을 점검해 않았거나, 혹은 점검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대로 길게도 하고 짧게도 했으므로 (복음서들의)사본들 사이의 차이가 커지게 되었다고 불평했다. 오리겐은 신약의 헬라어 사본들의 여러 가지 이문에 관한 정보를 찾아냈다. 어거스틴(St. Augustine)은 마태복음 27:3이 실제로는 스가랴에 있는데, 예레미야에서 인용한 것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이 구절이 예레미야서에 속했다는 것은 아무 복음서 사본에도 들어 있지 않은 사실임에 주의해야 하며, 또 어떤 복음서는 그저 ‘선지자가 말하기를’이라고만 적혀 있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고 암시했다.본문비평의 현대적 방법본문 비평 방법은 주로 교정과 수정이라는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교정과 수정한 흔적을 통해서 사본들의 계보를 만드는 데는 어려움이
    독후감/창작| 2008.05.22| 5페이지| 1,000원| 조회(260)
    미리보기
  • 화란의독립과 칼빈주의 평가A+최고예요
    칼빈주의 사상의 형성과 화란의 독립과정과의 상호관계서 론네덜란드의 역사는 16세기말에 공화국으로서 독립할 때까지 벨기에 룩셈부르크 북 프랑스의 일부를 포함하는 네덜란드의 역사와 일체를 이루고 있었다. 라인 뫼즈 스헬데 3대 강과 북해의 물이 끊임없이 지형을 바꾸어 국토의 절반이 해면보다 낮게 있는 이 나라의 주민은 둑(제방)을 쌓고 배수로를 만들어 물의 폭력과 싸웠으며, 호소(湖沼)지역을 간척지(폴더)로 바꾸어 국토와 경작지를 확대시켰다. 한편, 해상 하천교통의 요충에 있는 이 나라는 중세 말기부터 국제무역의 중심이 되었다. 17세기의 네덜란드는 국제 중계무역시장인 암스테르담 항구의 번영으로 인하여 유럽 제일의 해운 무역국가가 되었고, 경제적번영과 함께 문화의 황금시대를 쌓아 올렸다. 16세기 후반 네덜란드인은 지방적 특권과 개혁파 신앙을 옹호하여 에스파냐와 싸웠고, 독립을 달성한 뒤 네덜란드 연방공화국을 건설했다. 공화국시대의 네덜란드에서는 칼빈주의가 정통적인 신앙이었는데, 19세기에 가톨릭주의도 왕성해져서, 지금은 신구(新舊) 양교도의 수는 거의 비슷하다. 네덜란드인은 신앙심이 깊으며, 예로부터 자유와 관용을 존중해 왔다. 해상(海上) 상업을 번영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화의 유지와 상업의 자유를 소중하게 지키고, 이 나라를 찾아오는 많은 외국 장사꾼의 입장을 인정하는 일이 중요하였다. 독립전쟁 과정에서 이 나라는 남 네덜란드로부터의 이주자, 포르투갈로부터의 유대인을 많이 받아들였고, 다시 낭트 칙령을 폐지한 프랑스로부터 많은 위그노 교도를 받아들였다.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해상 패권은 영국 프랑스 양국에 의한 격심한 경쟁과 도전으로 네덜란드 공화국의 국력과 경제력은 점차 쇠퇴해졌다. 1815년 네덜란드 양국의 성립으로 말미암아 집권적인 통일국가가 탄생되었으며, 80년 무렵까지 산업혁명이 완료되었다. 20세기로 들어와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 독일 프랑스 3대강국 세력사이에 끼인 약소국가로서 엄정 중립 유지에 힘썼으나, 전쟁은 이 나라에 많은 인방한 여러 주(州) 사이에 일어난 카펠전쟁(1529∼31), 황제파와 신교파의 제후·제국도시(帝國都市) 사이에 벌어진 슈말칼덴전쟁(1546∼47), 프랑스의 위그노전쟁(1562∼98), 칼빈파의 제네바와 사부아공국간의 전쟁(1589∼93), 네덜란드독립전쟁(1572∼1648), 30년 전쟁(1618∼48) 등이다. 카펠전쟁·슈말칼덴전쟁이 좁은뜻의 종교전쟁에 포함되는 데 반하여, 같은 종교개혁시대의 기사전쟁과 독일농민전쟁은 종교개혁이 계기가 되어 일어나기는 했으나, 본래는 신분간·계급간의 대립에서 일어난 것이므로 좁은뜩의 종교전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2) 종교전쟁의 성격 - 좁은뜻의 종교전쟁이 모두 종교적 대립으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카펠전쟁도 취리히의 세력확장정책에 대한 구교의 여러 주(州)의 싸움이라는 일면을 지니고 있었다. 슈말칼덴진쟁은 황제 카를 5세의 신교억압정책으로 일어났는데, 신교파 제후가 신교의 입장을 지켜나가려고 했던 것은 종교개혁을 통하여 영내(領內)의 교회지배체제와 몰수한 수도원의 재산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데에 이유가 있었다. 더구나 신교파 작센공(公) 모리츠가 정치적 야심에서 황제파와 결탁하여 신교파를 패전(敗戰)으로 이끌었던 점, 신교파의 슈말칼덴동맹이 구교파인 프랑스의 원조를 받기 위하여 공작하고 있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위그노전쟁도 구교파의 기즈공(公), 신교파의 부르봉가(家)를 각기 당파의 지도자로 하는 귀족층의 정권투쟁이라고 하는 일면을 가지며, 그것이 내란을 장기화시킨 최대의 이유였다. 이 내란은 부르봉가의 앙리 4세가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이 구교로 개종함과 동시에 낭트칙령(1598)을 발표하여 신교도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종식되었으나 위그노전쟁말기에는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가 프랑스의 구교파에 원군을 보냈다. 에스파냐는 구교파의 아성으로 자처하면서 반동종교개혁세력의 거점이 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에스파냐에서 독립하려고 하는 신교파인 네덜란드와 싸우고 있었던 것을 보면, 위그노전쟁에도 개입하여 . 그러다가 서기 816년 카알 대제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자녀들이 세력다툼을 하는 동안, 네덜란드 각 지방은 왕의 간섭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 후 프랑크 왕국은 몇 개의 나라로 갈라졌고(프랑스, 도이칠타트 등), 네덜란드도 후에 남부(벨기에)는 프랑스에, 북부는 도이칠란트에 속하게 되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프랑스나 도이칠란트가 허약한 나라였기 때문에 네덜란드는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1300년대까지 무역과 공업으로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프랑스가 발전한 네덜란드를 누르고 막대한 세금을 요구하게 되고, 무역까지 간섭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중심 지역이었던 플란더즈 상인들이 이에 불만을 품고 무역국이었던 영국으로 하여금 프랑스와 전쟁을 일으키게 했다(100년 전쟁, 1337-1453). 이렇게 하여 네덜란드가 영국 편의 입장에 서서 싸웠는데, 프랑스 안에서도 프랑스 왕을 배신하고 영국과 한편을 든 지방이 있었다. 그곳은 부르고뉴 지방이었는데, 부르코뉴는 이 전쟁을 통해 네덜란드와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1369년 부르고뉴의 필립왕과 플란더즈의 왕위 계승자인 마아가렛 공주가 결혼하여, 플란더즈지방은 부르고뉴와 합치게 되었다. 이때부터 부르고뉴 왕족이 네덜란드 지방을 지배하게 되었다. 후에 부르고뉴의 왕 필립 왕이 세상을 떠나자 1477년 부르고뉴의 공주며 왕위 계승자인 마라아가 오스트리아 황제 막시밀리안 1세에게 시집을 갔는데, 이로써 부르고뉴는 물론 네덜란드까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막시밀리안 12세의 손자 카알 5세(1500-1558)가 황제의 위를 계승하였는데, 당시의 종교개혁의 바람이 책을 많이 읽는 시민의식이 높은 나라 네덜란드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 동안 네덜란드에 대하여 관용 정책을 폈던 카알 5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으므로, 종교재판의 절차를 이용해 신교도들을 처형하였다. 이러다가 나이 들어 쇠약해진 카알 5세는 황제의 위를 에스파니아의 왕으로 있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면서, '피의 메리대표적 교파이기는 하지만, 먼저 소개된 것은 루터의 사상이었다. 매우 일찍이 루터의 저작들이 네덜란드에 도입되어 두루 읽혀졌다. 즉 루터의 가르침은 어거스틴 수도사에 의해 가르쳐졌으며, 이미 1523년에 어거스틴파에 속한 두 사람인 헨드릭 부스(Hendrik Voes)와 요한 반 에센(Johan van Essen)이, 그들의 열정적인 열심 때문에 화형 당하였으며 그들은 신앙 때문에 죽은 첫 번째 순교자들이 되었다. 이처럼 로마카톨릭교회의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개신교는 점차 많은 추종자를 확보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개신교 그룹 가운데서 루터의 견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성찬 배척론자"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성찬배척론자들은 성찬시에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임재 한다는 주장을 반대하였으며, 다만 성찬은 "거룩한 교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와 같이 성찬 배척론자들 가운데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코넬리스 호엔(Cornelis Hoen)을 들 수 있으며, 그의 성례관은 스위스 종교 개혁자 쯔빙글리에 의해서 출판되었다. 그는 곧 위협을 받고, 이단자로 정죄 되었으며, 급기야는 1526년에 교수형과 화형을 합친 형벌을 받고 죽음에 넘겨지게 되었다. 이렇게 루터주의와 성찬배척론자들은 로마 교황의 보낸 종교재판관에 의해서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복음을 계속 선포하기 위하여, 새로운 설교자들은 성밖의 광야에서 계속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성례배척론자들의 활동 이후에는, 재침례주의자들이 그들의 바톤을 이어받아 네덜란드에서 종교개혁운동의 중요한 주도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들은 임박한 전천년왕국설을 지지하면서 지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던 재침례주의자들로서, 신자들간의 평등을 외치고 신자들 간의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면서 초대 기독교로 돌아가려고 시도하였다. 재침례주의자들은 수 십년 동안 많은 네덜란드인의 열정적이며, 광란적이라고 할만큼의 후원을 받았다. 그러나 과격한 침례주을 확립하는 것이다. 특별히 '예정론'은 '복음'의 핵심이며, 그 뿌리이다. 로레인 뵈트너는 복음은 '예정'교리에 기초한 것이므로 희소식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칼빈 역시 그의 『에베소서강해』에서 "이 교리를 침묵케하기보다는 차라리 온 세상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편이 나올 것입니다."라고 언급하였듯이, '예정론'은 기독교 신앙과 교회 신앙과 교회 신조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다. 따라서 '예정론'에 대한 도르트회의의 결정은 단순히 알미니우스주의를 정죄하기 위한 그 시대의 역사적 산물이 아니다. 바빙크가 언급한 것처럼, '예정론'은 개혁교회만의 고백이 아니라, 또한 어거스틴과 칼빈의 의견이기만 한 것이 아닐, 모든 기독교권의 교리(all of Christendom)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을 알리려는 선지자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손을 거쳐 기록된 성경의 기록이며,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의 계시인 것이다. 따라서 그 회의의 결정은 모든 교회의 축복이며, 우리는 그 계시 (예정론-도르트회의의 결정)를 먹고 마시는 주의 백성이다. 그런데 이제 20세기가 넘어가는 이 시점에선 대부분의 교회가 '예정론'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칼 바르트의 '예정론'에 대하여 논의없이 여과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바르트가 '독일 기독교당'이 히틀러와 그의 획일화된 정책을 하나님보다 숭배하는 것에 반대하여 '바르멘 선언'을 작성한 것은 그 역사 속에서 높이 평가받을 일인지 모르겠으나, 진리를 보수하는 그의 신학에 있어서, 그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후속역사는 그를 바르게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1967년 신앙고백이 그 예이다. 그 안에는 복음이 없고 바르트의 얼굴과 그의 신학만이 남아 있다. 이러한 역사는 지금도 열려져 있다. 그러나 복음의 빛이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바빙크가 몇몇 사람을 진술했듯이 오늘 이 시대에도 그 정신을 이어가는 몇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그 몇 .
    인문/어학| 2008.05.22| 10페이지| 1,500원| 조회(293)
    미리보기
  • 계약신학과 그리스도
    계약신학과 그리스도제1부 하나님의 계약에 대한 서론?제1장 하나님의 계약의 속성?하나님은 특정한 사람들과 계약(covenant) 관계를 자주 맺으셨다. 노아(창 6:18), 아브라함(창 15:18), 이스라엘(출 24:8), 다윗(시 89:3)과 계약을 맺으셨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새로운 계약(렘 31:31)을 예언했고 그리스도 자신은 최후 만찬을 계약적인 언어로 설명하셨다(눅 22:20). 하나님은 인간과 계약 관계를 수립하실 때 주권적으로 삶과 죽음의 약정을 세우시므로, 계약은 피로 맺은 약정, 또는 주권적으로 이루어지는 삶과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계약은 주권적으로 사역되는 피로 맺은 약정(約定)이다.”? 이 계약은 약정이다. 계약은 사람들을 한데 묶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계약에 있어서 서약이나 표적의 특징은 계약이 본질상 약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계약은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을 결속시킨다. 계약을 맺으려면 상대방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계약을 세우기 위해 말씀하셨다(구두 선언).? 계약은 피로 맺은 약정(bond-in-blood)이므로 삶과 죽음의 궁극적인 문제까지 포함한다. “계약을 체결한다”라고 번역되는 구절은 문자적으로 “계약을 자른다”인데, 이 절단의 개념은 계약 관계의 결속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준다.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 계약을 보면, 아브라함이 먼저 동물들을 쪼개어 그 조각들을 마주 대하여 놓을 때 하나님께서 쪼갠 동물 사이를 상징적으로 지나가신다. 이렇게 계약은 ‘이루어지고’, ‘절단’되는 것이다. 동물 절단은 계약 체결 시에 ‘죽기까지의 서원함’을 상징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잘려진 동물은 서약한 사실을 범할 때 계약자 자신에게 임할 저주를 나타낸다. 이와같이 계약이란 ‘피로 세운 약정’ 또는 ‘삶과 죽음의 약정’이며, ‘피의 약정’이란 말은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다’(히 9:22)는 성경의 강조점과 연결된다. 성경에 나타난 피의 의미는 잔인하거나 살벌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리스출 24:4). 족장 시대의 족속 구성이 모세 계약이 이루어지는 때 잘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언약에 주어진 약속이 모세 계약이 세워지는 역사적인 동기를 제공해 준다.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도 과거와 무관하게, 전혀 새롭게 다가온 것이 아니었다. 다윗과 계약을 맺은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불러 내신” 하나님과 동일하신 하나님이셨다(삼하 7:6,23). 다윗이 임종시 솔로몬에게 “모세 율법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명을 지키라…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나에 관해 말씀한 그 약속을 이루시리라”고 말했다(왕상 2:3). 아브라함과 모세, 모세와 다윗의 계약에서 연속성을 찾아 볼 수 있다. 계약하에서는 이스라엘의 실제적 경험이 계약의 연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출 32:13-14) 금송아지 문제가 생겼을 때, 모세는 아브라함의 언약 위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다. 모세의 간청은 아브라함의 약속을 근거로 한다. 모세의 언약이 수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계약의 중요성은 계속된다. 여호수아에 의해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된 것도 모세와의 약속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맺은 옛 약속이 성취됨을 나타낸다(창 15:18; 출 23:31; 수 1:3). 따라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브라함과 모세 계약의 통일성을 나타낸다. 중앙집권적 성소(a centralized sancturacy)를 통해서도 계약의 통일성을 보게 볼 수 있다.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가지고 올 때 다윗의 노래를 보면,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너희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이는 언하고 있다. 신정(Theocracy)의 핵심은 하나님이 백성과 함께 거하신다는 원리이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장막의 모습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있으리니 열국이 나를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는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37:26-28) 하나님은 성육신한 아들로서 인간 육신에 ‘거한다’(장막으로 오시다, 요 1:14).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도록 함께 지어진” 주의 성전이다(엡 2:21). ‘계약’의 공식적인 말은 요한계시록 21:3에 마지막으로 나타난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 21:3) 이 구절은 창조 질서와 관련이 있는데, 이 창조 질서의 묘사는 임마누엘 원리가 성경 전체를 하나로 연합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계약의 핵심 속에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거하는 긴 역사가 통일을 이루고 있다.?③ 이 주제는 한 사람에 의해 실현됨으로써 절정에 이르게 된다.이사야 선지가 예언한 메시야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 고통당함으로 계약을 실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하나님 왕국의 머리이며, 계약의 실현자이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약속이 이 한 사람 속에서, 구체화 된다. ‘왕국’과 ‘계약’은 ‘임마누엘’ 아래서 하나로 통일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것은 나의 언약의 피니라”고 선언하셨다(마 26:28; 눅 22:20). 왕 같은 계약의 중개자로서 백성을 통치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약들은 구체적인 통일성을 이루게 된다. 것이 아니라 여자에 의해 태어난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상호 의존의 관계이다. 결혼 관계에서 남자는 아내의 머리로서 아내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고, 그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함같이(엡 5:25) 부인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창조에 의해 남녀 관계의 질서가 확립되었기 때문에 이 질서는 바뀌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일부다처제는 결혼의 창조 질서에 위배된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둘, 오직 둘만이 한 몸이 된다고 지적하셨다. 이혼은 결혼의 창조 질서에 위배된다. 동성연애는 결혼의 창조 질서에 위배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할 때만 하나님의 질서가 지켜지게 된다. 결혼과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구원 목적에서 연속적인 의미를 가진다(롬 1:26-27).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차원으로 간주 된다.?노동?의미있는 안식의 개념은 노동에 의해서만 경험될 수 있다. 에덴 동산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책임은 노동의 창조 규례를 강조하고 있다(창 2:15). 사도 바울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옳은 자세는 노동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는 일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살후 3:10-12). 노동은 창조 계약의 일반적 규례 밑에 안식 규례, 결혼 규례와 연합하여 인간 존재의 의미있는 구조를 제공하고 있다.? 2. 창조의 계약 : 특수한 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인간은 동산의 모든 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는 특권을 가졌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특별한 예외가 있는데, 인간이 하나님이 아님을 상기시켜 주는 상징적인 존재로서 한 나무가 동산 가운데 있게 된다. 모든 것이 그에게 거저 주어졌으나 한 가지 예외는 그가 창조주와 축복받은 유한한 존재인 자신을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창조 계약의 규정 아래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했었다. 두 번째 아담의 예언적 그림자로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만나에 대한 시험을 겪었다. 이 저주의 희생 제물로서 그의 몸을 바치셨다. 그는 계약적 저주의 희생으로서 그의 몸과 피를 주고 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기 위해 그의 몸은 찢겨졌다. “이것은 나의 몸이니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가 만인을 위해 흘리는 계약의 피니 모두 받아 마시라”?제9장 아브라함 계약의 표적창세기 17장은 아브라함 계약의 공식적인 표적이 세워지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몸에다 표적을 받는다.?1. 할례의 최초의 의미?“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창 17:10-11) 할례는 셈족 뿐 아니라 다른 민족에서도 행해졌는데 이스라엘 당대의 가나안 사람들은 예외적이었다. 아브라함의 할례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계약적인 공동체 속의 일원임을 상징했다. 할례는 깨끗해야 할 필요성을 나타냈다. 할례는 아브라함뿐 아니라 후손에게도 시행된다. 후손들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할례의 적용이 결정된 것이다.?2. 구약 역사와 신학에 있어서의 할례할례는 본질상 이스라엘과 그의 하나님 사이의 계약적 표적(sign)이다. 이 예식의 의미는 모세 시대에 다시 강화된다. 모세는 모압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마음속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하나님에 대해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했다(신 10:16).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그 후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그들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신 30:6). 깨끗하게 하는 외부의 표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복종하는 생활에 필요한 내부의 정화를 상징했다. 마음의 정화 이야기는 모세 때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할례 의식 속에 항상 있었던 영혼 정화의 의미를 모세가 그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적용했던 것이다.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고 한 여호수아의 말을 통해서, 할례는 백성들을 정화시키는 표적이 됨을 알 수 있다. 이제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9)
    독후감/창작| 2008.05.22| 19페이지| 2,500원| 조회(580)
    미리보기
  • 셀지도력혁명
    셀 지도력 혁명 강의안▣ 제 1장 변화의 과정에 대한 예언적 시각- 영광에서 영광으로“변화는 우리의 삶에 미래가 침투하는 과정이다”-앨빈 토플러-“역사의 의미는 역사의 목표가 드러날 때 명백해질 수 있다”-데이비드 보쉬-◎ 서론그리스도인의 삶은 여정과도 같다. 믿음은 정체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하는 것이다. 우리는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바로 그 변화속에 축복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세가지 문제변화가 일어날 때, 하루하루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극적인 변화, 혁명적인 변화, 영광에서 영광으로의 변화가 일어날 때 발생하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극적인 변화의 시기는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위태로운 때다. 변화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영역은 세 가지 측면에서이다.1. 관계상 문제2. 효율성의 문제3. 감정의 문제◎ 마음을 새롭게 함기어의 변화는 마음을 새롭게(패러다임 전화)할 때 가능하다. 로마서 12장 2절은 우리에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말한다. 우리의 마음이 변할 때,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을 받아들이고 세상의 방식을 거부할 때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발견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예언적인 말씀을 듣고 그것을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새긴다면 그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방법을 찾도록 도와줄 것이다.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과정에 도움되는 귀중하고 유용한 다음 세가지 것들을 제시하고자 한다.1. 충만(Saturation)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으로 나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것, 하나님이 일에 나 자신을 흠뻑 적시는 것, 하나님이 실제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응시하는 것, 바울이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구하며 기도했던 것(엡1:17)처럼 뜻(계시)을 알게 해달전을 보고, 교인들은 그를 더욱 많이 닮아 오직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눈부신 신부가 되어 주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가족 모델(The Family Model)우리가 겪는 가장 귀중한 경험 중 하나는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난다.상처입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거절당하거나 실망하게 되며 더 크게 상처를 받는다. 래리 크랩은 이런 사람들을 “방어적이고 거만하며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관계에서 상처를 받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바을 지배하거나 조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비롭고 겸손하여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1. 전통적인 모델(Traditional Model) - 결혼의 전통적인 모델은 남자를 집안의 가장으로, 지배자로 바라본다.2. 여족장 모델(Matriarchal Model) - 이 모델은 너무 극단적이라 조작의 위험이 생길 수 있다. 여성은 조작과 유혹을 통해 더 쉽게 지배되기 때문이다.3. 평등주의 모델(Egalitarian Model) - 세상은 결혼에 대한 전통적 모델과 여족장 모델을 함께 채택해 왔고 그것을 결함하여 평등주의 모델에 이르렀다. 평등주의 모델은 “각 파트너가 평등한 관계 안에서 다른 파트너에게 복종하는 상호복종을 강조한다.복음이 전파되는 곳 어디에서나 여성들은 자유롭게 되었다. 성경적 모델은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한 팀으로 세우는 것이다.4. 성경적 모델(Biblical Model) - 이 모델은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성숙하도록 단순히 기능 본위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비전 성취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성경적인 결혼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반영하는 것(엡5:32)이라한다. 하나님은 그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그의 신부인 교회가 영광스런 신부로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기를”(엡5:27)바란다.형 람에게 각기 다른 영역에서 기름을 부어 주셨기 때문에 각 사람이 모여 한 팀을 이루어 일할 때 더욱 강력한 힘이 발휘된다. 아무리 약한 팀도 강력한 한 명보다 낫다. 팀은 구성원을 더 높이 뛸 수 있도록 자극하고 동기를 부여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팀을 세우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시작하기 위해 12명을 선택하셨다.3. 관계(Relationship)관계는 사도와 예언자의 모델을 효과 있게 만드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간의 언약 관계로 세우셨다. 그러한 관계는 은총, 용인, 헌신에 기초한다. 우리가 관계를 성자시켜서 사랑의 끈을 세우게 될 때 그 끈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며 어떠한 난관도 이겨낼 수 있게 한다.우리의 관계는 중요하다. 지도부가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이 주신 비전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비전에 대한 사람들의 피드백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람들의 허락이 아니라 그들의 시각을 구해야 한다.‘ 교회의 목표와 비전을 성취하는 일에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더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영광을 발하게 되면, 사람들도 리더들을 본받아 리더들의 영광을 발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영광은 교회에 회복된다.4. 제자 훈련(Discipleship)제자 훈련은 확립해 있는 모든 것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기 위해 필요하다. 제자 훈련은 항상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으로 더불어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다.효과적인 제자 훈련의 관건은 자신의 역할을 다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훈련시켜 자신이 맡았던 역할을 양도해 주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다음 곳으로 전진해야 한다.▣ 제 3장 하나님나라의 열쇠 -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에 대한 이해“기름부음은 섬김에 필요한 초자연적인 조건으로, 성령에 의해 특별한 능력과 권능이 부여되는 것이다”-두들리 다니엘-“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이사야10:27후반부-◎ 하나님나라의 열쇠누가복음 늘에서 이미 성취한 승리를 이곳 땅에서 성취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다. 그것은 족쇄를 부러뜨리는 성령의 기름부음이며, 가르치는 성령의 기름부음이며 교회를 영광스런 교회로 만들어 주실 성령의 기름부음이다. 이 열쇠들로 교회를 세우는데 써야 할 것이다.◎ 기름부음 받은 자의 지도력하나님은 세우고, 또한 싸울 사람을 찾으신다. 그 분은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검을 들고 설 사람, 벌어진 벽의 틈을 메울 사람, 중보의 역할(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사움에 임할)을 할 사람 그리고 벌어진 벽의 틈을 채울 사람을 찾으신다. 목회는 바로 세우고 싸우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름부음 받아야 할 한 사람을 찾아 그에게 지도력의 망토를 입혀 그를 통해 땅을 회복하길 원하신다. 열쇠는 바로 지도력이다. 지도력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이곳 땅에서 우리와 함께 행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새로운 포도주를 부어 주기 원하시며 그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부대를 원하신다. 벽을 다시 세우기 원하시며 그 작업을 지도할 사람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의 싸움을 허락하시고 군대를 이끌 장군을 필요로 하신다. 바로 지도력이 열쇠다.1. 예언자의 기름부음2. 제사장의 기름부음◎ 우리의 본성은 자신을 지배하고 이기적인 수단을 통해 목표를 성취하고 사람들을 지배하고 조작하기 원한다. 우리는 연약한 사람,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 겸손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겸손이란, 우리의 힘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 스스로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삶을 주관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알 때, 연약한 사람이 될 수 있다.하나님은 V.I.P. 계획을 세우셨다:V (Vulnerable) 취약한I (Intimate) 친밀한P (Partnership) 협력친밀하고 협력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역약한 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방어적이고 교만해서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연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3.히13:16)우리는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눠 주어야 한다. 그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격려할 때 기뻐하신다.5. 찬미(히13:15)하나님은 우리에게 ‘찬미의 제사, 즉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를 바치라고 하신다. 그것은 찬미하기 위한 제사가 아니라 찬미의 제사다.6. 기도(계8:3-5)우리는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께 드린 제사였음을 이미 보았다.7. 안식(히4:9-10)모든 제사장은 하나님의 사역에 자신을 바치기 위해 안식을 누려야 한다. 삶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압박에서 휴식을 취하고,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자신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배움에서 가장 큰 교혼 중의 하나는 모든 생명이 씨를 뿌리고 거두는 것에서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성경과 세속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죄 된 본성을 뿌려서 파괴를 수확하지 말고,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씨를 뿌려서 영원한 생명을 거두라고 말한다(갈6:7-8). 하나님이 더디게 약속을 성취해 가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벧후3:9), 하나님께서 일단 일하시면 심판이나 축복이 빠르게 임한다. 하나님은 응답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 분께 우리의 제사를 바칠 때 우리는 성령을 위해 씨뿌려야 할 것이다.▣ 제 4장 하나님의 앵글 그라인더예언의 말“여호와깨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모세-“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예수-“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계19:10-◎ 우리는 권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간구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V-비전(Vision)I-해석(Interpretation)P-증거(Proclamation)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언을 말씀하실 때 사용하시는 방법이다.예언적인 말씀 선포는 4가지 .
    독후감/창작| 2008.05.22| 11페이지| 1,000원| 조회(209)
    미리보기
  • 성전에서의 환호
    성전에서의 환호세계적인 어린이 셀 전문가 로나 젠킨스의 어린이 셀 목회 비전◈ 서론우리는 지금 어린이 셀 교회로 간다! 어린이에 대한 잘못된 시각은 변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예배의 훼방꾼도, 늘 돌보고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철부지 아이도 미래에 교회를 이끌어 갈 다음 세대도 아니다. 어린이는 지금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일꾼이다."하나님은 어린이를 택하셨다."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중요한 일을 계획하실 때 어린이를 택하여 그 일을 시작한다.하나님의 사역과 목적을 위해 어린이를 양육하고 준비하며 때로는 어린이를 통해 약속하신다.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약속의 자식이며 훗날 이스라엘의 창설자가 되었다. 모세는 아기였을 때 죽을 뻔했지만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냈다. 삼손은 태어나기 전에 주의 사자로 선택받았다.사무엘은 아기였을 때 예언과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받았다. 다윗은 청년이 되기도 전에 왕으로 임명되었다. 사도 요한은 어린이였을 때 메시아가 오실 길을 예비하도록 선택되었다.이 강의안에서 알 수 있는 내용은?어린이의 눈에 비친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교회는 왜 그리스도의 몸에서 어린이를 제외시켰는가?교회는 왜 성령의 은사가 어린이에게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주일 어린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장년예배에 어린이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셀 그룹 회원들이 어린이를 지도하려면 어떤 훈련이 필요한가? 어린이 셀 그룹은 하나님이 주신 어린이들에 대한 비전을 어떻게 이루어가는가? FCBC는 주일학교를 어린이 셀 그룹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변화를 감수했는가?1부 하나님나라에 속한 어린이제 1 장 하나님은 꿈이 있다.◎ 어린이의 교회 출석률로 어린이 목회의 성공을 판단할 수는 없다. 목회의 열매를 보아야 한다. 어린이들이 적극적이고 헌신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다면 목회는 성공한 것이다.◎ 훌륭한 아버지는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주며, 자녀는 훌륭한 아버지를 믿고 따른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신데, 첫째는 부모를 존경하는 것이고,떠넘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린이를 교회의 보물로 주셨다. 하나님은 결코 어린이들을 업신여기지 않으셨다. 어린이들을 귀한 존재로 생각하시며 항상 함께 했다.1. 어린이들은 제일 먼저 가족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가르침과 모범은 다른 어른들과 셀 그룹 친구들에서 본다.2. 교회는 어린이들이 속한 공동체가 가까이 있으면 그곳의 어린이들을 수용하여 부모를 떠나 어린이들이 예배드릴 수 있게 해야 한다. 하나님에게 가족은 전략의 열쇠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어린이들을 돌보고 양육하면 영적 자손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하여 복을 주시면, 그 복은 그의 후손으로 이어진다. 오늘날에도 부모의 뒤를 따르는 어린이들은 동일한 복과 기름부음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복이 항상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엘리의 경우처럼 철회될 수도 있다. 후손들이 부모와 동일하게 하나님께 헌신과 순종을 행할 때 복이 전해진다. 초대 교회 리더들은 ‘가족’의 일원이었다. 리더의 요건 중에는, 신학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특정한 은사가 없더라도 훌륭한 부모와 믿음의 배우자여야 한다고 제시한 항목이 있다.◎ 부모의 믿음은 아이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역동적인 요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려면, 먼저 한 가족의 일원으로 어떻게 가정을 이루어 가는지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가정이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이미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가고 있다. 프라미스 키퍼스와 같은 조직은 이 일을 진행하고 있다. 어린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꿈은 완성될 것이며 우리 세대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교회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일어나 “자녀의 양육을 부모와 가족에게 돌려주자. 그리고 영적 가정이 없는 아이들에게 교회는 영적 가족이 되어주자”라고 선포해야 한다.제 3 장 어린이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 영적 성숙◎ 가정이 어린이들을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첫째 요소라면 둘째 요소는 영적 성숙이다.1. 예수님 곁에는 항상 어린이들이 있었다. 어린이들은 예수님을 좋아한다. 어린이들에게 이 사실에 대해 알릴 것인가?제 5 장 어떻게 우리는 여기까지 왔는가?◎ 어린이들은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직후에 기독교인들의 상황도 변했다. 학교는 금욕적인 전통을 따르는 사람만을 수용했다. 어린이들은 대부분 교육받지 못한 부모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성령의 바람이 어린이들의 삶에도 개입하였다. 마틴 루터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가정에서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라고 역설했다. 루터는 어린이들을 위해 찬송가도 썼다. 칼빈은 어린이들을 위해 그리스도 지침서를 만들었다 칼빈의 제자인 존 녹스는 스코틀랜드에 마을 학교를 세워 교호가 학교를 감독하게 하였다. 18세기에 귀족가문의 아들들이 영국에서 웨슬리 부흥운동에 불을 지폈다. 어린이들은 소규모 그룹으로 참여하였고, 웨슬리는 어린이들을 위해 킹스우드라는 기독교학교를 세웠다. 부흥운동 때 시작된 주일학교는 다양해지기 시작하였다. 주일학교가 교회에 세워진 것은 엄청난 진보라고 할 수 있겠다. 주일학교는 세울 뿐 아니라 대중적인 생각이었다. 이후에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하는 주일학교가 탄생했다.2부 교회에 속한 어린이제 6 장 어린이 눈으로 본 교회◎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느끼는 것을 다 안다. 어린이들은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 자신을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모른다.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옳은 답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에 오는 대다수 어린이들은 질문을 받거나 의심하는 것을 표현하기 두려워한다.◎ 어린이들은, 주일학교 교사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부모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기독교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의 생활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삶은 두 고리로 나뉘게 된다. 오늘날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에 교회를 떠나는 것은 대부분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린이들은 교호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C의 최고 비전은 밖으로 눈 돌리기다.◎ 우리의 목표는 1. 통합 예배 목회, 2. 전도, 3. 제자훈련을 싱가포르 전 지역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이 비전은 어린이 목회를 포함한다. 어린이 목회의 목표는 교회 목표와 동일 선상에 있어야 한다. 어린이 목회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갖는 것뿐만 아니라 그 비전과 목표를 실제로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전과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은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하지만 하나님께로 온 비전은 항상 같다. FCBC는 주일학교의 속성을 바꾸면서 셀 교회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다. 어린이 셀 그룹은 또래 모임에 속해 있는 어린이들에게 모범적인 셀 그룹 생활을 제공하였다.1. 담임목사가 세대간 셀 그룹이라는 새로운 움직임에서 리더 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담임목사는 어린이목회의 핵심 리더다. 담임목사는 내적으로 어린이목호에 대한 비전을 인도해야 한다. 담임목사는 사역의 방향이 비전에서 멀어져 간다고 느껴지면, 리더들을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부름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 어린이목회 리더들은 몇 주간 첫째 셀 그룹과 함께 했다. 모든 어린이들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공동체에 속해야 한다. 셀 그룹이 새로운 지역에 세워지면 어린이들을 포함해야 하며, 셀 그룹이 다른 나라로 선교여행을 가려면, 그룹은 어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위해서도 준비해야 한다. 교구 목사들은 어린이들이 포함된 그룹의 리더들과 함께 일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2. 셀 리더들은 예매, 기도, 셀 목회에 어린이들을 어떻게 포함할지 모색해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다스리고 자녀들과 함께 있을 때 긴장을 푸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어린이들은 다른 사람 집에서 행동하는 방법과 어른들과 자연스럽게 말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3. 성경공부는 주일에 하는데, 이것은 다음주 세대간 셀의 주제가 된다. 어린이 주일 성찬 예배 리더들은 어린이 성경공부와 양육에 관해 계획하고 있는 것들을 교구 목사들에게 말하고, 예배 리더들은 예배드이 증가할 준비가 되면, 어린이들도 셀 증가에 따른 변화에 포함해야 한다. 교구 목사는 어린이가 너무 많은 셀 그룹이 다시 건강해지도록 도와야 한다. 아기 셀을 이끄는 셀 회원은 새신자가 된 어린이들의 부모를 만나 보아야 한다.6. 세대간 셀 그룹은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헌신을 요구한다. 여러분이 변하려고 할 때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제외한 셀 그룹 모양을 정해 버리면 사람들은 더 이상 변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공동체의 삶이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하여 공동체 삶을 회복해야 한다.제 10 장 셀 모임에서 어린이와 친구 되기◎ 셀 그룹은 어린이들에게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어른들은 어린이들과 함께 있을 동안 어린이들이 보호받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어른들은 그릇된 비난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당신이 어린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면, 어린이들이 당신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당신이 어린이들에게서 떨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어린이는 리더가 바쁜 시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보러 온 것에 감격해 한다.◎ 어린이 시간 도우미들은 내게 어린이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을 조용하게 할 수 있는지 묻는다. 어린이들이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린이들이 무엇인가 알고 있다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언제 가면 어른들이 좋아하는지 알고 있으며 어떤 어른이 자신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지도 안다. 우리는 자신이 한 실수에 웃을 수 있어야 하고, 어린이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어린이들의 기도를 구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교회는 어린이들이 공동체를 찾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제 11 장 경배찬양과 주일성찬 예배◎ 어린이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자기 수준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른 방식들을 찾아야 한다. 열 살이 안 된 어린이들은 사실적이고, 관계적이고,다.
    독후감/창작| 2008.05.22| 9페이지| 1,000원| 조회(243)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4
4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3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17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1:16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