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물의 전기를 읽거나 어떤 학자의 저서를 읽고 나면 나는 그렇게 깊이 오래 남는 것이 없는게 사실이다. 아 그래서 유명하구나, 어떤 업적이 있구나! 등의 생각은 해보지만, 그것을 통해서 내가 어떤 주관을 가져야 하는지는 따로 고려해본 적이 별로 없고, 내가 어떻게 사상이나 이론을 소화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쉽게 결정내리기가 어렵다. 내 기존의 주관이 있고, 나름대로 쉽게 소화되는 부분도 있지만 난해한 부분은 그냥 지나치거나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에 속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 책을 통해서 기존에 알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대한 나의 주관이 확실히 서게 되었고, 누군가가 묻게 된다면 조리 있게 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일대기를 위주로 서술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만, 전기에 나타나 있는 주인공의 생각(예를 들면, 어릴 때의 교육환경과 청년시절의 포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특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학자들의 위대한 스승인 두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다소 두렵기도 하였고, 사실 내용 파악에 어려움이 많았다. 앞으로 전개될 내용들의 대부분은 “마르크스 평전”에서 인용한 것과 책 안에서 주되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기초로 전개되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주관적으로 이러한 부분은 동감하고, 깊이 생각한 것도 있었다. 우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일대기를 알아보고 두 사람의 우정의 결과와 업적을 위주로 살펴보고, 현재 자본주의가 독점하는 이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사회주의, 더 나아가 공산주의의 진정한 이념과 목표는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1. 교육 환경과 자기 재능의 발휘칼 마르크스는 명망 있는 변호사이자 법률고문관의 셋째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부유한 상인이자 공장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25살이 되었을 때에 갑자기 자신들의 출신계급에 등을 돌리고 미래를 이끌어 갈 계급, 즉 노동자 계급 편이 되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이 계성장일로에 있던 마르크스는 직업의 선택이 개인의 바램과 의욕에만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다.“우리는 항상 자신이 소명을 받았다고 믿는 지위를 차지할 수는 없다. 사회에서 맺어지는 관계는 우리가 그것을 정하기도 전에 이미 어느 정도 진척되어 있다.”이것은 마르크스가 이미 사회적 차이(즉, 신분의 절대적인 차이)를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졸업논문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청년 마르크스는 삶을 인간적으로 형상화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최고로 요구되는 계획이었으며, 이 계획은 전인적 인간으로서의 근면, 훈련, 용기, 강인한 성격 등을 필요로 했다. 그는 형법과 로마법의 역사, 그밖에 법학에 관한 주제를 다룬 강의를 신청하였고, 이미 베를린에서의 첫 학기에 그는 엄청난 전문서적, 주로 원전을 철저히 연구했고 광범위한 발췌문을 작성했다. 그는 자신이 읽은 것을 검토하지 않고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한번 읽은 작품의 작가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그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비판적이 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기가 공부한 지식을 철저하게, 특히 비판적으로 습득했다.엥겔스의 가정은 엄격하게 종교적이었다. 그러나 , 상인의 아들로서의 풍족한 생활에 반하여, 바르멘과 엘버펠트에서(엥겔스가 살고 있는 근처 동네지역) 푼돈을 받고 일을 해야 하는 수백 명의 아이들을 보았다. 자신들은 매주 일요일 두 번 교회에 가면서, 자기들의 공장에서는 아이들을 혹사시키고, 그 아이들의 부모들에게는 기아임금을 위해 악착스럽게 일하도록 강요하는 부유하고 위선적인 공장주들을 보고 분개했다. 이러한 인상은 지워지지 않고 평생 그를 따라 다녔다. 대학 시절 엥겔스는 문학과 역사, 어학을 특히 좋아해서, 몇 십 년 후에 그는 약 12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그 밖에 6개의 언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특히 엥겔스는 지그프리드와 빌헬름 텔, 파우스트에 심취했다. 이 세 인물은 엥겔스에게 전제적인 강제와 억압에 대한 투쟁을 구체화해 주었고, 과단성과 용기, 희생정신과 강인에서 종결되고, 개혁된 프로이센 국가, 즉 입헌군주제에서 절정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보수적인 관점이었다. 즉, 정지와 절대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변증법적 방법과는 완전히 모순되는 것임을 당시 마르크스는 인식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헤겔 변증법의 수용이 나중에는 과학적 공산주의의 발전을 위한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4. 철학적 유물론에서의 사상의 일치마르크스는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을 접하게 되면서 크게 의식의 변화를 보게 되었다. 봉건계급의 종교적 이념을 단지 비판만 하지 않고, 헤겔 철학의 각 측면을 비판적으로 계속 발전시킨 철학자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서는 모든 종교 및 헤겔의 관념론 전체가 세계의 실제적인 본질 및 인간의 가치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거부되었고, 대신 철학적 유물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세계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신도, 헤겔의 ‘절대이념’도 필요치 않다고 포이에르바하는 설파했다. 인간은 단지 자연의 덕택으로 존재하고 자연의 발전의 산물이다. 자연과 존재는 본질적이며, 인간과 인간의식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인간과 자연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또한 신도 없다. 종교는 인간의 산물일 뿐이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헤겔과 포이에르바하의 인식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을 관념론적 장식에서 해방시키고 이 방법의 근본을 이루고 있던 것, 즉 자연과 사회와 사유의 가장 보편적인 운동법칙에 관한 과학을 창시했다. 또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계속 발전시켜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도 적용했다. 그들은 변증법을 유물론과 유기적으로 결합시켰고 그래서 질적으로 새로운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창시했다. 다른 한편 그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인간사회와 역사에 적용했고, 그래서 질적으로 새로운 역사관인 사적 유물론을 창시했다. 모든 과학적 공산주의 옹호자들은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이지 결코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편협한 인간일 수가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5. 두 사람에 의해서발전을 촉진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은 그것이 대중의 욕구를 언급하고 대중의 이해를 반영할 때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어떤 힘이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인간의 궁극적인 해방을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마르크스는 이 질문에 대해서 단지 하나의 계급 ‘프롤레타리아트’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혁명적 민주주의자로부터 공산주의자로, 철학적 관념론자로부터 유물론자로 결정적인 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노동계급이 새로운 미래의 착취가 없는 사회의 창조자가 될 것 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선도적으로 투쟁하는 계급으로 보았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사회적 진보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며, 자신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모든 피압박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생산수단-공장(Fabrik)과 제작소(Werk), 토지-의 사적 소유와 계급지배의 기초를 폐지할 것이며, 그로인해 모든 착취와 억압의 토대는 제거가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단지 착취의 한 형태를 다른 형태로 대체했던 이전의 모든 혁명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고 보았다.“이념은 옛날의 세계상황을 결코 넘어설 수 없고 단지 옛날의 세계상황의 이념만을 넘어설 수 있다. 이념은 결코 아무것도 수행할 수 없다. 이념의 수행을 위해서는 실제적인 힘을 모으는 인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인간이 상황에 의해서 형성된다면 사람들은 상황을 인간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이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연구해서 얻었고, 또 우리가 사적 유물론이 라고 부르는 이론의 핵심이다.“문제는 사유재산의 개조가 아니라 오직 그것의 폐지이며, 계급대립의 은폐가 아닌 계급 자체의 사멸이며, 기존사회의 개선이 아닌 새로운 사회의 창조이다.”노동자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하에서 국가권력을 조직하고, 그것의 도움을 받아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성취하는 것, 바로 이것을 두 사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Klassendiktatur)’라는 개념으점은 이러하다.사회주의사회 - 이 사회는 이제 막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발생해서 경제, 도덕, 정신적인 모든 관계에서 아직은 이 사회가 유래한 구사회의 모반과 연관되어 있으며, 사회주의 사회에서 일하여 얻어진 부는 사회 구성원의 실적에 따라 분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엥겔스 또한 “최후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회 상황처럼, 지속적인 변화와 개량이 진행 중에 있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공산주의사회 - 분업화로 인한 각 개인의 노예적인 예속 그리고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이 사라지며, 노동이 우선적인 삶의 욕구가 되며,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d. 자본주의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파멸의 길로 갈 것이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내재된 원인(문제) 때문에, 예를들어, 경제공황의 순환 등. 한마디로, 자본주의는 노동하는 인간에 대해 존재의 불확실성이자 존재의 두려움의 질서라고 하였다.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은 강제노동이고 노동자가 누리는 자유는 외관상의 자유이다.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보다 훨씬 우월한 역사 발전의 합법칙적 결과라는 점을 설명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화해 할 수 없는 대립에 의한 계급 분열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때는 전체 사회의 이해관계와 개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보았다.6. 치열한 투쟁과 인고, 가족들의 후원, 공동작업의 긴밀성a. 친구를 위한 희생정신으로 산 엥겔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동으로 자기들의 공산주의 사회 건설 목표를 위해서 희생을 아끼지 않았음을 망명자 생활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당시 부르주아지들의 독무대 속에서 조심스럽지 않고, 거칠며 생동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던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은 사상의 창시자인 둘 사람을 평생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엥겔스는 상인으로서의 생활에 대해서 “하잘 것 없는 일”로 여길 만큼 사상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첫 번째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겨낸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노동자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었다. 특히,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고..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래의 과학은 얼마나 변해갈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한다.최점단 장비를 이용해서 정보성을 다룬 영화이다.범죄자 수색용으로 쓰이는 스파이더 로봇, 손가락에 달려있는 센서로 움직이는 스크린 뷰어, 어디든지 날아갈수 있는 비행보조장치, 질서정연하게 숙직-수평으로 움직이는 도심 교통망, 프리그라임 계획을 이용해서 앞으로 일어날 살인 사건을 예방하는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기발하고 신기한 볼거리와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의 인권에 도전하는 또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영화다.책으로도 출판이 되었지만, 아직 읽지는 못하고 영화만 보았는데, 누구나 한번 볼 만한 영화라 추천하고 싶다.더욱이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서 비교해 보면 한층 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미래는 과학의 조화된 발달이 있지만 살인을 예측하는 하이프리크라임 월드라는 회사가 존재한다.미래의 워싱터은 살인 확률이 없는 아주 살기좋은 도시가 되었다.프리크라임이 먼저 살인을 예측하고 그 살인을 막으로 갔다고 하면, 그는 아직 살인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미래의 살인자 이다.영화속에서 미래에 일어날 살인을 예측할 수 있는 프레고 3명이 있다.이들은 자신의 자유와 상관없이 반 강제적으로 감옥이나 다름없는 곳곳에서 자신들의 재주를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다.이들이 수많은 살인을 방지하는데에 기여를 해서 워싱턴은 더 이상 살인은 없다. 프레고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자유의사에 따라서 원하는 인생을 살 권리가 있지만 이런한 권리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결국 프리크라임이라는 제도는 이 3명을 희생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심지어 프리크라임은 우두머리가 가장 뛰어난 프레고인 아가티의 어머니를 살인하면서 까지 프리크라임을 유지하려한다.이것은 과연 정당하다고 할수있을까?소수의 희생에서 다수의 이득을 볼 수 있는 그러한 제도가 과연 용납될수 있을까? 영화속 프리크라임이라는 제도는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따라간다고 믿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영화속 안델톤은 자신이 미래에 살인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그러한 사실을 안다는 안델톤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으니깐 그것을 피할수 있을 법도 한데,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살인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결국에 놓이게 된다. 과연 운명은 그러한 것인가..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알면 바꿀수 있는 것일까?이렇듯 영화는 관객들한테 매우 복잡하면서도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스필버그 감독은 결국 특유의 낙천주의 때문에 인간에게 자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영화속에서 보여준다.이것은 어찌보면 커다란 모순이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을 감옥에 넣는다. 이것은 과연 인간이 납득할수 있는 제도인가...미래에 일어날 일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일까?예를 들어 갓 태어난 애기들 중에서 미래에 어른이 되었을때 사형선고를 받을 애기를 사형시킨다. 프리크라임이라는 제도가 만약 먼 미래를 내다 볼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분명히 위와같은 미래에 일어날 범죄 때문에 사형시키거나 감옥에 가둘 것이다.어떤사람은 범죄 발생 1년전에 잡자고 할것이고,어떤사람은 하루전에,어떤사람은 한시간 전에 잡자고 할 것이다결국 범죄를 아직 저지를지도 않은 사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남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일이 벌어진다.실제로 프레고들은 영화 맨 마지막 장면에서 오류를 범한다.프리크라임은 우두머리가 자신의 자유 의사에 따라서 자살을 하기 때문이다.또한 프레고 3명이 의견일치를 보이지 않고 한 명이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제출할 때도 프라크라임에 오류가있었다.
미래의음악 미래에도 지금처럼 여러장르의 음악이 존재할 것입니다.하지만 지난 시대를 보아도 어느 특정 시대엔 유행처럼 비슷한 주류의 음악이 성행하곤 했습니다. 이처럼 미래에도 어떤 장르인가가 유행을 할것입니다.어떤 사람들은 유행은 돌고도는 것이기 때문에 예전에 유행했던 장르가 다시 유행 할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포크송, 우유송 이밖에 여러 가지들이 있습니다.하지만 저는 그런 보통 음악보다는 명상음악 같은 분류의 음악이 유행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건강 에 굉장한 관심을 보입니다.음식이나 운동, 생활 모든 부분에서 사회의 이슈중 하나가 건강입니다.건강을 지키는 방법중에 명상이 있는데,명상과 음악을 통한 명상음악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명상음악 을 소개하기전에 명상에 대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일상의 번거로움과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잠시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혀 내면의 평화를 얻는 것, 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을 얻으려는 것, 판에 박히고 따분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무언가 새롭고 신비한 내면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것, 삶의 매 순간에 늘 깨어있으려는 것, 내 몸의 기운을 다스리고 정신을 다스려 천지인(天地人)이 조화를 이루려는 것, 삶의 근본적인 문제인 생사 번뇌의 족쇄를 풀고 영원한 대자유인이 되려는 것, 덧없는 기쁨과 슬픔을 넘어 영원한 기쁨을 찾으려는 것,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참나를 찾는 것, 유한한 소아를 벗어나 무한한 우주와의 합일에 이르는 길, 이 세상의 창조주이나 근원자인 신을 만나는 길....명상에 대한 답은 각자 자기의 수준에 따라 그리고 자기의 세계관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속에서 비교적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정의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명상에 대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명상은 건강한 몸, 맑은 정신, 깨어 있는 얼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명상법의 종류에 따라 어떤 것은 건강한 몸을 더 중시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몸보다는 마음을, 어떤 것은 영적인 각성을 더할 수 있다.이전에는 명상법은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명상은 이전에는 주로 종교인이나 세속을 떠난 은자들이 행하는 것이었고 명상법도 주로 종교 집단의 전문 수행자들이나 깊은 산중의 은자들 사이에서만 전수되어 왔다. 그래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거나 혹은 비전의 명상법을 전수 받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을 하거나 기이한 인연을 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요즈음은 서점에만 가면 명상법에 대한 좋은 책자가 수없이 깔려서 애타게 독자를 찾고 있다. 그 책들의 수준은 실제로 옛날의 비전의 책보다 훨씬 높다. 아울러 여러 명상 단체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온갖 교태를 다 부리고 있다. 이제는 스승을 만나고 비전의 책을 접하기 위해서 눈물겨운 고생을 할 필요도 없으며 기이한 인연이나 하늘의 도움을 구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약간의 돈이 있으면 된다.옛날에는 명상의 세계는 고원하고도 심오한 세계였다. 명상의 효과는 눈으로는 알 수가 없으며 명상을 통해 얻은 높은 경지도 일반인으로서는 감히 추측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명상의 세계는 종교와 바로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막강한 권위가 부여되기 마련이었다. 그리하여 명상의 세계는 항상 신비에 쌓여 있었다.지금은 과학의 시대이자 탈신비화의 시대이다. 과학의 위력은 명상의 세계에까지 점차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명상의 원리도 점차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중이다. 과학의 힘은 명상을 대중화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최근 구미에서는 명상법이 우리의 육체와 정신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안정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 논문이나 실험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여러 명상법들을 권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업체에서 사원들의 작업능률의 향상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하여 명상법을 권장하기도 한다.명상은 분명히 우리가 행복한 삶을 누리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접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쉽고 접할 수 있고 그 원리도 점차 과학적으로 규명되고에게는 알파파를 찾아보기 어렸습니다.따라서 가끔씩 과중한 공부나 업무에서 벗어나 정신과 육체를 쉬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지성적인 뇌를 하루종일 혹사시키면 신경세포가 지치고 능률이 오르지 않게 되며 심한 경우에는 몸과 마음의 병을 얻게 되므로 긴장상태에서 벗어나 알파파를 나오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그러나, 알파파가 과도하게 나오게 되면 뇌세포가 수면상태와 비슷한 상태로 빠지게 돼 능률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공부나 업무 중간중간에 지친 뇌세포를 쉬게 해야 능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적당한 긴장은 뇌세포의 기능을 자극해 주기 때문에 공부에 필수적이며 결론적으로 베타파와 알파파의 조화로운 조절이 뇌기능을 극대화 시키는데 필수요인이 됩니다.2. 어떻게 해야 알파파를 나오게 할 수 있을까...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것처럼 인위적으로 뇌에 자극을 가해서 알파파를 나오게 하는 것 보다 자연적인 방법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알파파를 나오게 할 수 있을까...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명상을 하거나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쉬는 것입니다.(1) 명상과 알파파명상은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잡념을 없애고 정신을 하나로 통일해 무념무상의 경지에 몰입하게 합니다.교회나 절에서 하는 종교적인 기도도 명상과 비슷한 효과가 있습니다.그러면 [명상(瞑想)]이란 어떤것일까요.국어사전에 의하면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것]입니다.일반적으로 명상이라 함은 일상생활과는 관계가 없는 특수한 세계의 것.혹은 좌선이나 요가의 수행의 일환으로 소개되어 종교적인 의미를 먼저 떠올리게 되나 여러분에게 추천하는 명상은 종교적으로 심원한 수행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묵상(默想) 정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눈을 감으면 일반적으로 뇌파 속에 포함된 알파파가 많이 나옵니다.이는 의식을 집중하기 쉽기 때문이며, 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차단되므로 어쩌면 집중하기 쉬운 것은 당연합니다.여러분도 아침, 저녁.잠시 눈을 감고 오늘 하루의 시작과 계], 베토벤의 [전원교향곡]등 자연의 소리와 닮은 물리적인 파동을 지닌 음악을 듣는 것이 좋으며 여기에 숲속의 바람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는 정신을 맑고 쾌적하게 만들어 알파파 상태를 만들어 줍니다.명상이나 알파파의 유도를 위한 수련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청각을 이용한 알파파 유도를 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사람들이 classic을 들으면 눈이 감기고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이겠습니다.그러나, 굳이 classic 만이 효과가 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곡이나 선율이면 가요나 기타 장르의 음악에서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같은 자연이라도 폭포소리, 천둥, 지진, 폭풍우등 일정 궤도를 벗어난 자극은 평온함을 주지 못하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고 듣기 편한 소리나 곡을 선별하여 듣는 것이 효과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상의 세계에 용기 있게 뛰어들려고 하지 않는다.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명상이란 무언가 별난 호기심을 지닌 사람들이 추구하는 특이한 세계이거나 혹은 현실 세계에서 낙오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도피처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서 명상을 통하여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얻는 것을 보아도 자신이 직접 명상의 세계에 뛰어들려고 하지는 않고 계속 회의스러운 눈초리로 감시하는 입장에 서 있으려고 한다.그 이유는 우선 명상의 세계가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실로 다양한 명상법이 있고 그 명상법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현상들도 실로 다양하다. 최근 들어와서 이러한 명상의 현상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과학적인 규명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여전히 전체를 설명해 주는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명상법은 종교의 도그마와는 달라서 표면적으로는 서로 크게 대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명상법 또한 서로 간의 대립이 많다. 일단 제각기 자기네 명상법이 최고라고 하고 자기네 명상을 통해서 것일까?어느 한 명상법이나 명상 단체에 빠져 있는 사람은 이것을 별로 문제 삼지 않는다. 그 명상법을 통해서 몸이 건강해지고 정신이 맑아짐을 느끼고 이전에 체험하지 못하던 오묘한 세계도 알게 되면 다른 것은 볼 겨를도 없이 거기에 쏙 빨려들 수밖에 없다.그러나 밖에서 보는 사람의 입장은 그렇지가 않다. 전체적인 원리에 대한 납득이 없이 단순한 현상만 가지고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일반 사람들의 심정이다. 그래서 명상의 효율성을 인정하면서도 명상의 세계에 쉽사리 뛰어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명상법은 주로 내면 세계의 각성만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칫 외면의 현실 생활과 괴리되기 쉬운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냥 아마추어로서 명상을 할 때는 별로 문제가 없다. 그러나 명상의 세계에 깊이 심취하는 경우 일상의 현실 생활과의 충돌이 생기게 된다.우리는 주변에서 명상의 세계에 심취하여 일상의 삶을 팽개치고 산으로 들어가거나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경우 본인은 행복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주변의 사람들, 특히 가족들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이것은 주관적인 내면세계에 도취되어 삶의 전체적인 효율성을 해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명상에 대해 어느 정도 호감을 지니면서도 명상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려고 하지 않는 것은 바로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명상음악’을 통해 마음의 본향(本鄕)을 찾아 나서는 이들이 늘고 있다. 무심무병(無心無病), 마음이 없으면 병도 없다 했듯이, 명상음악은 우리를 무념(無念)의 상태로 인도해 평화로 이끈다.생명은 호흡. 순간의 호흡이 영속한 것이 생명체다. 들숨과 날숨 사이의 공백, 그 짧은 순간에 열쇠가 있다. 호흡을 강조하는 명상음악은 그 공백 상태를 확산시켜 주는 소리다. 기도나 요가가 모두 안정된 호흡을 찾기 위한 것이다.태고적부터 음악은 영적인 것들을 실어 나르는 도구였다. 따라서 명상음악의 기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