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에 걸림없는 사람 원효나는 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고등 학교 수업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교양 수업은 수강 인원도 많고 배우는 내용과 강의 방식도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한국사와 민족정신은 고등학교 때에 배운 내용이 도움이 많이 되는 과목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었다. 그러나 같은 사료를 가지고 각기 다른 해석을 해내는 학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이 얼마나 틀에 박힌 사고를 하고 있는가를 깨닫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원효'를 읽으면서도 원효의 자유로움에 대한 것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책을 펴자 가장 먼저 원효의 영정이 눈에 들어왔다. 동그란 얼굴에 눈을 지그시 감은 모습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왠지 모를 편안함과 친근감이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표지의 원효가 사실적이라는 느낌만 준 것과 달리, 그 영정의 원효는 여러 표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잠자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반대로 모든 잡생각에서 벗어난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원효의 삶의 모습이 다양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얼굴에서 다양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린 원효는 총명하여 일정한 스승이 없이 배우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한 배움은 후에 원효의 사상적 자유로움의 바탕이 되었다. 원효의 중심 사상은 일심(一心)이다. 일심은 마음 밖에 법이 없다 는 깨달음으로 모든 갈라진 마음과 대립된 것들을 받아들여서 한 마음으로 귀일 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원효가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고 여러 학문을 구별 없이 익혔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선배들의 행적에 주의를 기울이고 종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광, 안함, 자장 등은 불교의 토대를 다졌었고, 낭지와 혜공은 토론자이면서 스승의 역할을 했고, 혜숙, 혜공, 대안 화상이 보여주었던 알몸으로서의 인간의 모습과 민중 속에서의 어울림이 원효의 무애로 나타났다. 원효에 대해 자세히 알기 전에는 원효의 거사로서의 삶과 민중에게 불교를 알리려는 노력이 그의 독특한 행적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원효의 삶과 더불어 그 앞대 승려들의 행적을 알고 나니, 왜 원효를 보고 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고, 원효의 사상이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원효의 자유로움은 요석과의 인연에서도 나타난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계율인 계체와, 계율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작은 방법에 속하는 계상의 대한 자유로운 해석으로 요석과의 인연도 중생을 구제하는 한 방법으로 여긴 것이다. 그리고 그가 겉으로는 설총을 낳고 소성 거사라 칭하며 다녔지만, 그의 마음은 한번도 부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이것은 진리를 구하는 것에 있어서, 어디서 가 아니라 어떻게 가 중요하다는 그의 깨달음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요석과의 인연이 중요한 또 한가지의 이유가 있다. 그는 요석을 만나기 전에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주겠는가? 하늘을 떠받친 기둥을 끊으리! 라고 외치고 다녔다. 무열왕은 단지 원효가 귀부인을 얻어 귀한 아들을 낳으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숨은 뜻은 그가 왕실과 귀족 중심의 신라 불교를 찍어버리고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를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효는 그 당시 왕실과 귀족들로부터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사상을 마음껏 펼 수 없었다. 책에 보면 그의 가문이 상위 귀족이었으며 상당한 존경을 받았을 것을 알 수 있는데, 원효가 부르짖는 민중 불교의 사상과, 사람들의 원효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지는 것이 왕실과 귀족들의 권위를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효가 요석을 통해 왕실과 인연을 맺음으로써 귀족들이 안심하게 되고, 원효도 그들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즉, 원효는 요석과의 인연을 통해 설총이라는 훌륭한 아들도 얻고 자기 사상을 펼칠 기반도 마련한 것이다. 또, 궁에 들어가기 전에 일부러 물에 빠진 것 등을 생각하면 원효는 미래를 보는 눈과 함께 치밀한 계획력도 갖춘 사람인 것 같다.원효 를 읽고 나의 원효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좁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일심 보다 화쟁을 강조했기 때문에 원효의 중심 사상이 화쟁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화쟁은 일심을 위한 방법이었고, 그 실천이 무애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평소에 스님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여자를 멀리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었다. 그래서 원효와 요석의 인연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가 파계승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불교에 여자를 멀리하라는 계율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인도의 불교 이야기에는 성적인 묘사도 많이 있는데, 우리 나라에 들어온 불교가 중국을 거쳐서 들어왔기 때문에 성에 대한 윤리 부분이 더 강조된 것이었다. 여기서 사료 해석에 있어서 그 내용 자체를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황적, 역사적 배경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닫게 되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스스로를 변호한 것을 그 자리에 있던 플라톤이 직접보고 나서 적은 글이다. 늦게 읽으면 도서관에 책이 없을 것 같아서 몇몇 시험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빌리러 중앙도서관에 갔다. 빌리고 보니 생각보다 분량이 적었다. 몇몇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읽어 내려가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처음 책을 보지 않고 제목을 들었을 때에는 소크라테스가 변명이라는 책을 지은 것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손에 들고 보니, 저자 명이 플라톤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조금 의아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책의 겉장을 넘겨보니 플라톤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었다. 알고 보니 소크라테스가 유명하긴 했지만, 자기 스스로는 책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행적을 플라톤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흔히 공자의 말씀이 담긴 책이라고 생각하는 논어가 공자가 쓴 것이 아니라, 그 제자들이 평소 공자의 언행을 담아 놓은 책인 것과 비슷한 것 같다.책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한 변명에 관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현혹시키고 나라에서 신봉하는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판에 고소되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직접적인 고소인은 아니토스와 멜레토스이지만, 예전부터 소크라테스에 대한 험담을 하고, 나쁜 소문을 퍼뜨린 소피스트들 역시 간접적인 고발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두 경우를 나누어서 변명한다.먼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서 변명한다. 소피스트들은 소크라테스가 천상과 지하의 일을 탐구하고, 약한 주장을 강변하며, 설득력이 약한 주장을 강한 주장보다 더 그럴 듯하게 만든다고 모함했다. 그리고 그가 신을 믿지 않는다는 말을 퍼뜨리고 다녔다. 왜냐하면 소피스트들은 소크라테스가 던지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고, 그 결과 그들의 지혜가 허세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에게 영향을 받은 많은 젊은이들이 소피스트들에게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에 자존심이 상한 소피스트들은 소크라테스를 자신들이 지위를 위협하는 위험 인물이라고 여기고 소크라테스에 대한 나쁜 소문들을 퍼뜨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세월이 지나 축적되면서 사람들이 소크라테스가 자연의 비의를 탐구하며 약한 주장을 강하게 한다는 편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편견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받은 신탁을 이용해 변명했다.예전에 소크라테스의 친구가 아폴론의 신전에서 무녀에게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있는지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무녀는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평소에 자기 자신이 무지하여 아무 것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탁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신이 내린 신탁을 거역할 수 없어서 그 신탁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 실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가장 현명하다는 세 사람을 찾아갔다. 그들은 정치가, 시인, 수공업자였다. 그들은 확실히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정치인은 정치에 관해서, 시인은 말을 아름답게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수공업자는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기술에 관한 것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는 양 거만하게 행동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무지함을 알고 있는 자신이 그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현명하다는 여러 사람들을 찾아갔다. 그들 중 대부분이 소피스트들이었다.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이 현명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을 만나 얘기하면서 소크라테스는 그 신탁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인간이 아무리 현명하려고 노력해도 신의 입장에서 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그러니 서로 현명하다고 잘난 척하지 말고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얕은 지식을 자랑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리고 두 번째로 직접적인 고소인인 아니토스와 멜레토스에 대한 변명을 한다. 그들이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이유는 그가 민주정치를 반대하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은 소피스트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었다. 그들이 고발한 표면적인 이유는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충동질하고 신을 믿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문답법을 이용해 변명한다. 그는 멜레토스에게 사람들은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과 어울리려 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많은 친구들을 예로 들면서 자신이 그들에게 진정 해를 끼쳤다면 그들이 자신의 주위에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믿는 다이몬을 통해 변명한다. 신의 후손이 있다는 것은 믿으면서 신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이몬은 신의 일종이며 다이몬을 믿는 것은 신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사실 멜레토스는 자신이 소크라테스를 고발하는 이유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에 의해 자신의 잘못을 자기 입으로 밝혀내는 꼴이 되었다.소크라테스의 이러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결국 소크라테스는 360:240으로 사형을 선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사형을 선도 받고 나서 심판관들에게 목숨을 구걸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판결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한 일은 아테네의 입장에서 보면 유익한 일이지 결코 해가 되는 일이 아니므로 오히려 소크라테스의 그러한 행동을 격려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망치거나 잘못을 인정하고 눈물로써 애원하면 쉽게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머지 않아 자신들의 사악함에 따라잡혀 타락할 것이라고 충고해 준다. 그리고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겁을 내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죽은 다음의 세계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죽음 뒤의 세계가 꿈도 꾸지 않고 잠자는 것과 같다면 어떤 면에서 보면 살아 있는 것보다 더 소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죽음 뒤에는 또 다른 죽음이 없으므로 죽음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고, 먼저 죽은 여러 성인들이나 신들과 얘기할 수 있다면 오히려 자신에게는 더 행복한 생활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기존의 죽음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것이었다. 이처럼 그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여성학의 이해 과제 도서 중에는 내 흥미를 끄는 제목의 책들이 많이 있었다. 신데렐라가 집을 나간 이유, 슈퍼우먼 죽다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서두르지 못한 탓인지 내가 그 책들을 찾을 때에는 벌써 누군가가 대여해 간 후였다. 그래서 이리 저리 도서를 검색하던 중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적이 있어서 제목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딱딱한 이론서들보다는 읽기도 쉽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기로 마음먹었다.이 책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남녀의 평등을 강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남녀의 선천적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쓰여져 있다. 그들은 남자와 여자에게 적합한 일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남성은 공간 지능이 뛰어나서 컴퓨터, 건축가 등의 직업이 알맞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이·공 계통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머, 건축가 등의 직업에 남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공간 지능이 더 많이 발달했기 때문이며, 대부분의 여성이 집에서 양육과 가사를 담당해온 것은 여성의 두뇌, 신체가 양육과 가사 활동에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말을 잘못 들으면 남녀 차별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여성의 사회 참여를 반대하는 내용의 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일상 생활의 예와 과학적 근거를 들며 설명해나가는 것을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남녀의 차이가 확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조건 평등만을 외치면서 경쟁력이 부족한 분야에 진출하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여성적인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가지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연인이나 부부 등 많은 남녀 관계가 실패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행동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오랜 세월동안 남자는 먹이 추적자의 임무를 수행했고, 여자는 둥지 수호자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남자들은 먹이를 찾아 이동하고 집에 제대로 찾아 들어가기 위해서 공간 지능이 중점적으로 발달했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가지며, 좁고 멀리 보는 터널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반면에 여자는 아이들을 돌보고 주변의 여자들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언어적 기능이 중점적으로 발달했으며 뛰어난 감각적 기능과 넓고 가까이 보는 주변 시야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 습관들이 굳어짐에 따라 여자와 남자의 두뇌는 각기 다른 기능에 중점을 두게 되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서로 다른 형태로 발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두뇌차이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사고방식과 행동 방식이 달라졌고 남녀 사이의 불화가 생기게 된 것이다.책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남자는 말을 잘 듣지 않고, 여자는 지도를 잘 읽지 못한다. 또 남자들은 뛰어난 공간 감각으로 평행 주차를 잘하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또한 여자들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한 대화에서 동시에 여러 화제를 다루면서도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못하며 오히려 수다떠는 여자들을 혐오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차이는 사소한 차이이거나 개인적 차이로 생각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두뇌의 구조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완전히 바꾸거나 적응할 수 없다. 때문에 남녀간의 불화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남녀의 차이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차이를 이해하기 쉽고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그리고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며 스스로 참여해 보게 한다는 것이다. 우선, 각 장을 여러 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다루고, 일상적인 예와 각종 삽화 등을 통해 읽는 이가 지루하지 않게 해 준다. 그리고 직접 해볼 수 있는 각종 테스트들이 실려 있다. 나도 그 테스트들을 전부 해보았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자신의 두뇌가 남성형인지, 여성형인지 알아보는 테스트였는데, 문항들만 보고는 그것이 어떤 테스트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정말 솔직하게 답할 수 있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내 두뇌가 남성형에 가깝다는 결과가 나왔을 때에는 무척이나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평소에 무척 여성스럽고 조용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고, 수학적 능력도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항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눈치 없고 몸이 둔하며 너무나도 조용한 성격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남자의 특성이 말이 없으며 조용하고, 여자의 특성이 수다스럽고 시끄럽다고 하기 때문에 너무 조용한 내 성격이 잘못 해석된 것 같았다.그리고 사랑에 대한 남녀의 견해 차이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섹스를 좋아하고, 여자는 로맨스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경우에는 부부관계가 지속될 수 있지만,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 경우에는 여자의 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부부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밖에도 남녀의 의식과 행동차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직 남자 친구가 없어서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빠하고 비교해 보면 이 책에 나온 남자의 특성이 믿을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교에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다른 종교들에서 보이는 창조주 혹은 인격신이 없다. 때문에 간혹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고 이슬람교도들이 코란을 중시하는 것처럼, 유교도 사람들의 정신생활에 영향을 주고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목표가 되거나 올바른 삶으로 인도해준다. 차이점이라면 타종교들이 내세나 사후세계를 중시하는 반면에, 유교는 현실세계에서의 도덕적 삶의 완성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유교는 절대자가 없는 대신에 우주 자연의 모습인 천(天)과, 천의 성실한 생명 생성의 덕을 인간의 윤리적 가치로 나타낸 인(仁)을 추구한다. 유교는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선진유학에서 시작해, 중세 봉건사회에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군림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유교문화권 나라들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선진유교는 공자와 맹자에 의해 확립되었다. 그들이 활동한 시기는 각각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주왕조를 지탱해오던 전통적 질서가 붕괴되어가고 있었다. 주나라는 혈연관계를 바탕으로한 봉건사회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혈연관계가 소원해지게 되어 각각의 제후국들이 독립된 나라와 같아지게 되었고 세력 확장과정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우경법과 철제 농기구의 발달로 생산성이 높아져 개체 농민이 생겨나 지주와 갈등을 빚었다. 이러한 상황을 공자와 맹자는 인륜이 무너지는 것으로 간주하고 주례의 회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자는 예(禮)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인 의 실천을 강조했으며, 그 당위적 근거로 도를 매개로 한 천과 인의 결합을 들었다. 인의 실천에서 효(孝)와 제(悌)를 핵심으로 보고 충(忠)과 서(恕)를 그 방법으로 보았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을 바탕으로 사단(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확충하고 호연지기를 기르면 궁극적으로 이상적 인격을 완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공자와 맹자의 논리는 춘추전국시대의 정치,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지는 못했다.진시황이 중국을 통일 한 후에 유교는 어려움을 겪었다. 진나라의 통치이념은 법가로 덕보다 힘으로 다스렸다. 그런데 맹자의 왕도정치 같은 것은 진의 지배층에게 위협이 되는 것이었고, 따라서 유교 이념을 들먹이는 유학자들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유학자들을 생매장하고 유교경전을 태우는 등의 분서갱유로 유교를 억압했다. 그 결과 한동안 경전의 복원과 주석을 다는 경학과 훈고학을 중심으로 유교가 발달했다.한 무제 때에는 동중서에 의해 유교가 국가이데올로기로 채택되었다. 동중서는 유교와 음양오행설을 결합해 천인합일 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군신, 부자, 부부로 분류하고 양존음비라는 불변하는 천의 권위를 결합시켜 봉건적 신분차별의 논리를 정당화시켰다. 그러나 봉건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주-소작농간의 갈등이 심화되자 수직적 신분관계를 강조했던 그의 이론이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성선설에 반대하는 입장과 유교와 음양오행설의 무리한 결합으로 유교의 정통에서 배제되었다.송대 신유학에서는 리(理) 개념에 주목했다. 리는 인간의 의지로부터 독립된 무형의 관념적 실체인 동시에 사물이 사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원리이다. 그리고 리에 바탕을 둔 성즉리설을 통해 천과 인을 결합시켰고 윤리의 존재론화를 완성했다. 그 결과 물질적 측면보다 관념적 측면을 중시하고 엄격한 금욕주의 및 신분차별을 인정하는 신분질서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성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목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이었다.명 중기 이후 지주와 소작농간의 모순이 극에 다다르고 도시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맹아가 출현하기 시작하면서 신유학적 사상이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다. 신유학을 비판한 것에 양명학과 고증학이 있다. 양명학은 성즉리설에 반대해 심즉리설을 내세웠으며, 아는 데에서 그치지 말고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고증학은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기일원론적 세계관을 통해 신분차별을 극복하려고 노려했다. 그러나 당시 중국 사회가 중세적 성격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존재론화된 유교윤리의 해체에는 실패하고 계몽적 차원에서 그치고 말았다.우리나라에 유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사회규범이나 정치제도의 틀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고려시대를 지나면서 조선시대에는 건국이념이 되었다. 일상 생활에서 주자가례를 도입했고 삼강오륜을 바탕으로 하는 수직적 신분질서가 확립되었다. 삼종지도, 칠거지악등에 의해 여성의 지위가 하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고증학의 영향을 받은 실학이 등장해 관념과 형식만을 중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유교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이라고 하면 흔히 시대에 뒤떨어지고 부정적인 면이 생각난다. 특히 삼강오륜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유교에서 삼강, 남존여비, 남아선호사상을 강조했기 때문에 남녀 차별이 심했고, 아직까지도 성차별과 성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삼강과 오륜을 한꺼번에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삼강은 한 무제 때에 동중서가 지배체제 확립을 위해 만든 것으로 신하는 임금에게,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각각 종속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오륜은 선진유학시대에 확립된 것으로 삼강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것이고, 그 안에는 수평적 윤리관이 내포되어 있다. 오륜은 인륜관계에 있어서의 상호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 것으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충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왕도정치를 추구하며 덕이 없는 임금의 경우에는 혁명을 일으켜서라도 바꾸어야 한다던 맹자도 오륜을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또 하나는 온고지신 때문에 과거에 묻혀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온고지신의 말뜻만 알아도 무엇을 강조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온고지신은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 라는 뜻이다. 공자는 온고도 중요시하였지만, 그를 바탕으로 한 지신을 더 중요시하였다.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의 역사에 주목하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대주의와 조선 후기의 당쟁을 근거로 유교를 비판하는데, 이것은 식민사관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실제로 조선 후기에 당쟁 때문에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처음에 당쟁은 서로 다른 의견을 수렴하려는 의도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중국의 신유학도 목표는 인도주의에 있었지만 결과는 비인도적인 것으로 나온 것처럼, 우리의 당쟁도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의 의도를 잃고 변모한 것이다. 그리고 당쟁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학과 같은 근대적 성격을 지닌 학문도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유교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만 할 수는 없다.
연암 박지원의 생각 (허생전).박지원의 소설 작품들 중에서 허생전 을 살펴보았다. 전에는 박지원 하면 열하일기의 저자, 북학파 실학자, 소설로는 양반전, 허생전, 호질 정도만 생각났었다. 그러나 이번에 박지원의 소설 작품을 공부하면서 그 외에 열녀함양박씨전, 광문자전, 김신선전, 봉학자전, 우상전, 민옹전, 마장전, 예덕선생전 등의 작품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 광문자전, 예덕선생전, 김신선전을 읽어보았다. 그러나 광문자전, 예덕선생전은 단지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하는 내용이고, 김신선전은 그 이야기에서 박지원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예전에 배운 적이 있어 친숙한 허생전을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또, 허생전을 다시 보았을 때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이기도 했다.허생은 묵적골에 사는 가난한 양반이었다. 그는 과거도 보지 않으면서 글읽기만 좋아하고,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아 부인이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부인의 불평에 혀를 차며 집을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성내에서 가장 부자라는 변씨를 찾아가 돈 만냥을 꾸었다. 변씨는 허생의 당당한 모습에 감탄하며, 이름도 물어보지 않고 선뜻 만냥을 내어 주었다. 허생은 그 돈을 가지고 안성으로 가서 과일을 모조리 사들였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과일 값이 폭등했다. 다음에는 제주도로 건너가 말총을 다 사들였다. 그러자 말총 값도 폭등했다. 허생은 이 일로 큰 돈을 벌었지만, 우리나라의 취약한 경제구조에 대해서 실망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번 돈을 가지고 도적들을 모아서 무인도로 떠났다. 그리고 일본과 무역을 통해 백만냥을 벌었다. 그러자 허생은 자신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다고 말하고는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 태우고, 배를 불사르고, 50만냥을 바다에 버리고 그 섬을 떠나왔다. 그밖에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남은 돈으로 변씨의 돈을 10배로 갚았다. 변씨는 허생을 존경하게 되어 이완대장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허생은 이완에게 3가지 계책을 제안하지만, 어느 것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허생의 위협에 쫓겨났던 이완이 다음날 다시 찾아가보니 허생은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허생전은 조선 정조 때 박지원이 지은 한문 단편 소설로 '열하일기'의 '옥갑야화'에 수록되어 있다. 박지원은 장가 들때까지도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었으나, 글을 배우기로 마음먹자 3년만에 깨우쳤다. 그는 북학파 실학자인 박제가, 홍대용 등과 사귀었고, 홍대용의 중국 여행담을 듣고 자극을 받아, 중국으로 가는 사절을 따라 나섰다. 사절단중 가장 낮은 신분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중국을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열하일기는 이때 보고들은 이야기를 적은 26일 간의 일기이다. 중국을 다녀온 후에 열하일기로 인해 명성을 떨치기도 했지만, 고문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는 북학파 실학자답게 청나라의 우수한 문물들을 소개하고, 비록 적이라도 훌륭한 점은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현실개혁적인 사상 때문에 열하일기가 금서가 된 적도 있었지만, 정조 대에는 북학파를 형성하는 중심사상이 되었다.박지원의 이러한 이용후생의 실학사상과 현실 개혁 사상은 허생전에서도 나타난다. 허생전에서는 허생의 아내를 통해 무능한 양반 계층을 비판하고, 현실 개혁의 의지를 가진 허생을 통해 선비들의 자아 각성을 촉구했다. 그리고 매점매석을 통해 우리나라의 취약한 경제구조를 지적하고, 경쟁력을 키우고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상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당시 사회의 부정 부패한 모습과 정의가 상실된 상황을, 도둑이 성행하는 변산 군도(群盜)를 통해 표현했다. 또한 허위적인 북벌론을 비난하고, 현실 문제의 해결 대책으로 시사 3책을 내 놓았다. 그리고 시사 3책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을 비판하고, 무능한 위정자의 대표인 이완대장을 혼냄으로써 양반들의 각성을 촉구했다.이처럼 허생전에는 박지원의 시대에 앞선 생각과 현실 개혁의 의지가 드러나 있지만, 한계점도 가지고 있다. 학교에서 배울 때에는 박지원의 실학 사상에 입각해서 허생의 개혁적인 면에 집중해서 배웠다. 그러나 나는 허생전을 다시 읽으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허생전 곳곳에서 보수적인 면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 읽고 난 후에 왠지 이희승의 딸깍발이 라는 수필이 생각났다. 배운지 좀 오래된 글이지만, 방망이 깎는 노인과 함께, 무척 기억에 남는 글이다. 그 글은 남산골 샌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고지식한 생활모습을 보여주었다. 얼핏보면 융통성 없고 고집강한 선비들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선비정신이 긍정적으로 나타났던 사실들을 들면서, 그러한 정신을 본받을 것을 주장하는 글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허생전을 읽고 그 글이 생각난 것은 허생이 추구하는 것도 그러한 진정한 선비정신일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좀 다른 관점으로 보려고 작정하고 읽어서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문학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에 힘입어 허생전에서 나타나는 보수적인 면들을 살펴보고, 허생이 추구하는 것이 참다운 선비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먼저 허생이 현실 개혁의 의지를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비판할 수 있다. 묵적골은 몰락한 양반들이 모여 살던 대표적인 마을로, 허생이 사는 곳이다. 또, 허생은 7년동안 책만 읽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이는 몰락한 양반의 전형이고, 허생의 아내는 그것을 비판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비판하는 것은 허생을 포함한 무능한 양반층이다. 그리고 허생은 비참한 현실 상황을 인식하고 그것을 개혁하기 위해 스스로 집을 나온 것이 아니고,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마지못해 집을 나온 것이다. 5년 후 집에 돌아와서도 허생의 집안 살림은 전혀 변한 것이 없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그리고 그가 행했던 이적들도 현실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매점매석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행해져서는 안되는 일이다. 이것은 그 자신도 밝히고 있다. 바람직한 방법으로 상공업을 발달시키고 경제구조를 튼튼히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향의 섬에서 일본과 무역을 하기도 하지만, 무역을 통해 번 돈을 쓸곳이 없다고 한탄하면서 바다에 버리고 돌아온다. 50만 냥이라는 돈을 바다에 버린 것은 우리나라 안에서도 그만한 돈을 쓸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재력과 능력이 있어도 초야에 묻혀 살았던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무능한 집정자들 때문에 자기 능력을 펼칠 수 없다고 한다. 그가 정말로 현실 개혁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정권이 없기 때문에 할 수없이 포기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뒤에 그가 제시한 제3책처럼 그 자신이 그 돈으로 중국의 상계에 스며들어 상권을 잠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또 허생은 돈과 상업, 상인을 천하게 여기는 면도 가지고 있다. 허생이 남루한 모습으로 변씨를 찾아가 돈을 빌릴 때, 변씨는 그의 겉모습만 보지 않고 그의 당당함에서 비범함을 느끼고 선뜻 만냥을 빌려준다. 이것은 변씨가 사람보는 눈이 있는 훌륭한 인물임을 나타낸다. 그러나 허생은 빌린 만냥의 열배를 돌려주면서 변씨를 무시한다. 돈을 빌릴때에는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만 냥(兩)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해 변씨를 어느정도 높여주었다. 그러나 변씨에게 돈을 갚으면서는 재물에 의해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이오. 라고 말한다. 이것에서 허생의 맘속 깊은 곳에는 상인을 깔보는 마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글읽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만 냥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라는 말과, 당신은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라는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변씨가 십만냥을 다 받지 않고 이자를 쳐서 받겠다는 것은 그가 올바른 상도덕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인데, 그런 변씨를 한낱 장사치로만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