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국왕 이야기』를 읽고서...“왕(王)도 고뇌하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조선의 국왕(王)이라하면 나는 아직도 고등학교 교과서속의 각 시대별 왕이 행한 정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태. 정. 태. 세. 문. 단. 세 … 연대기순으로 그들이 펼친 국가 정책을 외우며 국가를 통치한 위인으로서의 그들의 업적을 알고 있는 것이 아마 대부분 일 것이다.더욱이 학창시절 국사책의 왕들은 항상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정치를 펼치는 위엄 있는 모습이었기에 이 책이 주는 왕들의 이야기는 좀더 신선하며 국가의 지도자의 모습보다는 그들의 내면 갈등과 소소한 일상생활까지 보여주므로써 기존의 왕의 대한 인식을 보다 좀더 새로운 시각에서 고뇌하고 외로웠던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알아볼 수 있었다.“왕도 고뇌하는 인간으로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사실 왕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임에는 다름없으나 그들에게는 우리와 다른 환경의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왕이라는 무거운 명예와 그들 주변에는 항상 치열한 정치세력들의 다툼이 있었다는 것이다.특히 조선국왕 이야기 2권에 나오는 왕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 데 그것은 아직 어린나이에 어느 순간 자신이 왕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나 시국의 흐름에 떠밀려 어쩌면 자신이 원치도 않는 왕이란 무거운 짐을 떠맡았다는 것이다.더욱이 왕이 되는 그 과정 속에는 형제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과 정권을 주도하기 위한 측근들의 세력다툼이 있었으며 왕이 된 후에도 치열한 계략의 접전 속에서 홀로 그들과 싸워야하며 이겨내야만 하는 험난한 자리가 바로 왕이었던 것이다.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모범적인 성품을 지니고 총명함을 지녔다고 할지라도 어린나이에 홀로 사리사욕에 물든 간신배들과 정치세력들에 맞서 주도권을 잡기위해서 왕(王) 자신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처받고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리고 왕이라는 험난한 자리에 앉은 그들은 결국 홀로 정치세력과 싸우고 버티다 정신적인 고통에 괴로워하거나 몸이 쇠약해져 단명(短命)하거나 주도권을 빼앗긴 채 유배를 당하는 등의 씁쓸한 결말을 맞이한다. 이 책에서 말하기를),「아무리 평탄하고 부유한 시대를 살았다고 하여도 권력의 정상은 힘들고 어려운 자리이다.겉으로는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동/서양의 수많은 황제와 왕들의 삶이란 것이 그 내실을 들여다보면 온갖 갈등과 좌절, 분노와 두려움, 진한 고독감으로 가득 차있다. 다른 모든 직업에서와 마찬가지로 황제와 왕들도 그의 직업이 주는 고통과 어떻게 싸워나가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 하늘이 내려준 권좌라고 해도 이 부분에는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왕의 강력한 권력과 화려한 배경만을 생각해오던 나에게 왕(王)도 누리는 만큼 하늘에게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했는지를 알 수 있었고 나 역시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서 왕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다.“왜?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역사 들여다보기”역사를 보는 사람의 눈은 다양하며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고 한다. 각 시대를 통하여 역사를 보는 눈은 오목렌즈와 볼록렌즈가 있는가 하면, 지극히 평면적이면서 빛을 되돌려 보내는 편광렌즈도 있다고 한다. 서양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의 투키디데스(Thoucydides)가 편광렌즈를 끼고 동서의 군영을 자유로이 내왕하면서 아무런 편견 없이 전쟁사를 썼다고 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감탄을 한다고 한다.)그럼 이 「조선국왕이야기」는 어떠한 눈으로 역사를 바라봤을까?작가 서문에 의하면,) “왕의 개성이나 소소한 일상들은 대개가 조선시대의 편찬된 야사나 실록에 수록되어있는 뒷이야기에서 채록한 것이다. 그 중에는 기록자가 체험한 이야기도 있고 떠도는 소문을 채록한 것도 있다. 소문은 시간이 갈수록 불려지고, 각색된다. 내용이 극적이고 재미있을수록 사실은 허구가 많다. 반면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의 증언, 동시대의 소문은 상대적으로 신빙성이 높다고 하겠다. ? ? ? 그래서 필자는 가능한 한 여러 가지기록을 전체적으로 비교/검토하여 신빙성 있는 자료를 선택하고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다시 말해 「조선국왕이야기」의 작가는 기존의 단편적인 기록의 서술이 아니라 각 시대상과 인간관계. 그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들춰내어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왕이란 인물에 대한 총체적인 모습으로 역사를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다.특히 인간적인 면모에 초점을 맞춰 그들을 단순한 역사의 과정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그 내면과정을 통해 좀더 구체적이고 심층적으로 해석 하는 것이다.그러므로 내가 보기에「조선국왕 이야기」는 역사를 편광렌즈를 통한 투키디데스처럼 역사에 대한 기존의 편견 없이 새로운 시각에서 평가하기 위해 좀더 더 가까이 세부적이고 다양한 자료를 통하여 왕이란 한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역사를 바라본 것 같다.지금까지 내가 본 교과서를 비롯한 일반적인 역사서는 한나라를 지휘했던 왕(王)에 대한 역사적 접근에 있어 다른 역사분야에 비해 편견적인 시각이 많았다고 생각한다.왕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한 시대를 지휘했던 인물이기에 당연히 존경받을만한 위인으로 오목렌즈와 같이 위대한 부분의 업적만을 강조하는 면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미화되거나 훌륭하게 편집되어 그려진 왕의 역사는 누군가에게 과거에 대해 끊임없이 “왜?” 라는 질문을 나오게 할 것이고 가려진 내막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킬 뿐이다.그 예로 대원군이나 연산군과 같은 폭군이라 평가하는 왕에 있어서의 그런 편견은 더 심하다. 교과서나 드라마를 보면 그가 인간적인 면모나 성장과정 등의 내면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저 어떻게 하여 폭군이란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만을 대변해 줄뿐이었다.이와 같은 왕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은 우리에게 왕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당연히 폭군 아니면 존경할만한 위인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두 갈래의 평가만을 제시하게 만드는 것이다.어떠한 인물이나 사건을 정확히 평가하려면 그 과정전체를 종합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그런데 우리 역사에서는 그러한 총체적인 파악보다는 정형화된 과거의 틀에 맞춰 역사를 단편적으로만 재해석 하는데 치중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런 「조선왕국이야기」에서처럼 역사를 총체적으로 들춰내고 밝혀내는 새로운 시각의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왕에 대한 역사적 시각에 있어 기존의 단순한 업적 등의 나열보다는 “왜?”라는 질문을 하며 끊임없이 하나하나 세세한 과정을 들춰내며 그들을 분석해 보는 새로운 접근 말이다.특히 그러한 과정에 있어 야사(夜事)나 비화, 소문 같은 자료는 터무니없는 소리이며 신빙성이 없다고 하여 외면하기 보다는 과거의 역사에 대한 평가는 사실 역사가의 주관성이 개입된 아주 주관적인 하나의 해석이기 때문에 틀에 박히고 고정된 기존의 평가보다는 자신이 다양한 자료를 이용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접근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같은 민족, 같은 역사, 그러나 다른 이념”마치 국사 교과서처럼 사진과 역사식 서술로 구성된 이 책을 읽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북한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한나라의 역사책을 쉽게 이해하고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북한의 역사가 남한의 역사와 익숙한 사건과 그 흐름이 별다를 게 없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사실 민족해방시기부터 현재까지 북한의 역사는 단지 남한의 민주주의 국가체계의 설립과 그들의 사회주의 이념의 대립속에 이념적 쳬계과정에서만 차이가 날뿐 그들의 역사는 곧 우리의 역사의 일부분이였다.해방이 된 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서로 대립된 이념을 지지하는 권력자들에 의해 한국은 둘로 갈라졌고 남한의 이승만정권이 확립되는 동안의 엄청난 권력 암투가 있었듯이 북한 역시 해방당시 민족의 지도자로 부각됐던 조만식과 조선공산당의 박헌영등의 쟁쟁한 지도자들 속에서 끊임없는 정권 다툼속에서 김일성이란 지도체제가 확립되었으며, 그 후 남한에서 박정희정권이 경제를 살리기에 주력하여 새마을 운동을 하였듯이 북한 역시 남한처럼 분단이 된후 김정일을 중심으로 경제를 살리기위해 천리마 운동 등을 펼치며 폐허가 된 북한을 재건하였다. 이렇게 남과 북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사상이념은 다르지만 그 아래에서의 국가의 과정과 역사는 같은 민족과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었다.“김일성과 공산주의 국가-북한”다만 북한과 남한의 역사와의 큰 차이점을 꼽아본다면 김일성과 그들의 주체사상일것이다.남한이 여러 지도자들의 권력구조를 통해 국가를 확립했다면 북한은 유일하게 절대적 지도자인 김일성 수령체제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이며, 또한 한국전쟁이후에 혼란스런 상황에서 남한이 미국과 강대국에 의해 경제적 원조를 받을때도 북한 지도부는 이른바 “주체사상”을 강조하면서 소련과 중국의 어느쪽에도 서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걸으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체사상이 후에는 북한을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하게하여 80년대말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되면서 이제 “주체”냐 “변화”냐의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되지만, 나의 개인적인 견해로 주체사상이란 이름아래 외국의 도움을 받지않고 스스로 자립하기위해서 수많은 시도와 노력으로 일구어낸 국가라는 점에서 독립적이면서 독자적인 그들의 주체사상은 그들이 남한을 강대국의 속국이라 비난하듯 의존적이지 않고 스스로 국가를 재건하고 발전하고자 했던 북한의 독립성과 주체사상은 높이 살만하다고 생각한다.“남한의 역사속의 북한”그렇다면 우리 남한은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한민족이 단지 국가의 이념에 대한 다른 시각으로 나뉘어 이제는 분단이란 비극을 낳고 서로의 이념을 비방하거나 옳지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보면 각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될만한 상황이다.북침과 간첩사건, 그외의 북한의 공작 등에 의해 우리 역시 북한을 위협적인 적대적인 존재로 생각해왔지만 하지만 남한의 정부는 이러한 이중적인 시각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사회적인 편견과 시각의 차이를 부추기었다.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김정일 가짜설”일 것이다. 김정일 가짜설의 유포된 많은 이유중 하나는 바로 “박정희정권의 확립과 북한에 대한 불신유도”이다. 이렇게 정부는 북한과의 통일을 위해 노력한다면서도 항상 이중적으로 북한을 이용했던것이 사실이다.어느 외국인기자가 하는 말이 “한국은 북한을 장롱에 둔 짐짝취급을 한다”던 말이 생각나는 데 역사의 이면을 들추어보면 북한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갈팡지팡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 선거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등을 운운하며 정치적, 권력적 이익을 위해 정부는 북한을 포용하다가도 북한의 북핵문제 앞에서는 나 몰라라 하며 장롱에다 도로 넣어두며 뒤로 물러나 제3자의 입장에서 강대국의 입장에 눈치 보기 바쁘기에 어쩌면 이러한 이중적이고 갈팡지팡하는 남한의 태도에 대해 불신하고 마음을 열지 않는 북한의 입장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역사의 주인은 누구인가?”먼저 북한을 이해하기에 앞서 왜 분단이 되었는가를 따져볼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해방이후 혼란스런 무정부상태에서 소위 지식인이라 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사상이 대립되었고 그들에 의해 권력은 구성되었다. 그리고 그 대립은 민족 분단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된것이다.그러나 그러한 소수 권력자들외에 우리 국민들은 어떠하였는가?인공기와 태극기 조차 구분하지못했던 무지의 상황속에서 한국전쟁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형제와 가족간에 총을 겨누는 엄청난 비극을 만든것이다. 또한 그 후 분단이 된후에도 정부는 북한이라는 존재를 상황에 맞게 조작하거나 이용하며 우리에게는 알면 않되는 존재로 만들어버렸고 그렇게 은폐되고 가려진 역사속에서 이제 우리에게 북한은 ‘적화야욕을 불태우는 집단’과 ‘통일 한반도 시대를 향해 함께 가야할 동반자’라는 두개의 극단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되는 혼란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것이다. 우리가 너무 몰랐고 당연히 몰라야 했던 상황으로 역사가 만들어버렸기에 북한은 남한에게 있어 화해와 통일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가도 금새 등돌려버리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그리고 벌써 50년이 훌쩍 넘은 반세기가 지나가고 북한이란 존재는 이제 우리에게 더이상 민족이기보다는 남의 나라로 떠밀리고 있는것도 사실이 되어버렸다.지금까지 우리는 그저 정부와 권력자들이 만드는 역사에 휘둘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된것인지 판단할 기회도 없이 그저 그들의 외침에 떠밀려 반세기가 넘은 분단의 상황을 만들어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