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책 ‘스승’은 흔히 인터넷 세대라 불리며, 빠른 것, 감각적인 것, 재미를 추구하는 나에게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의 지루한 얘기를 듣는 것 같은 첫 느낌을 받았다. 그 고루한 얘기들을 가만히 읽으면서,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변하고 그 할아버지 시절과는 판이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교육이란 사람이 사람에게 행해지며, 또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다는 것,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기계나 문명이 아닌 사람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교육의 목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과 저자와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시대를 사는 나에게도 이 ‘스승’이란 책이 나에게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을 보면, 올바른 교사상 혹은 스승의 모습은 몇 세기가 지나도 그 타당성이 인정되어져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지금 교사가 되고자 준비하는 나에게 교수님이 던져주신 화두 ‘스승’은 나에게 올바른 교사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필요성과 교사란 자리의 중요성에 대해 우회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본론Ⅰ. 스승의 모습저자는 스승은 직업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주신 소명으로 여겨야 한다고 했다. “무슨 일 또는 직업이건 간에 어느 것이나 그것이 단순한 노동이 될 수도 있고 소명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사람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태도에 있다고 하겠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 그 일을 함으로써 소정의 임금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노동에 지나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그 가 심는 나무로 말미암아 벌거벗은 산을 녹화하여 우리 강토를 아름답게 하는 동시에, 홍수의 피해를 막음으로써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길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비록 그의 일이 얼핏 보면 비천한 것 같지만 이는 확실히 비전을 가진 애국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소명이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하는가? 종사하고 있는 일에 대한 코미트멘트(Commitment)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코격해야 한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말만이 정말 사람이 감동시킬 수 있다. 나의 정성은 학생들의 정성을 불러일으키고, 나의 정열은 학생들의 정열에 전파된다.”라고 하였다.또 교사에게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교육이 마음의 중요성, 정신성의 무한한 힘을 무시한다면, 사람을 동물의 수준에 벗어나지 못하는 훈련의 과정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교사는 하나의 훈련 기술자로 타락할 것이며, 정신에 감응하여 인격을 함양하는 스승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그것이 사랑의 마음인데. 교사가 지녀야 할 사랑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가르침을 받는 자에 대한 사랑이요, 둘째는 교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사랑이요, 셋째는 진리에의 사랑이다.“예수는 사랑을 설교하여, 나이 바른뺨을 때릴 때 왼뺨을 돌리고, 다른 사람이 겉옷을 요구할 때 속옷을 내주라고 겸손을 가르쳤지만, 성당 안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채찍으로 몰아내는 강한사람이었다.” 사랑을 한없이 주면서도 잘못되었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채찍을 쓴 예수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참된 겸허란 “정신적 가치에 대한 겸허다. 교사가 스스로 무장하여야 할 겸허는 어린이의 인격적 존엄성을 존중하는 겸허요, 진선미에 대한 겸허요, 자신의 과오에 대한 겸허다. 교사라는 권위로 어린이를 억압하지 않는 겸허이며 자신의 편견을 피교육자에게 강요하지 않는 겸허요, 모르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는 겸허다.”라고 설명한다.한 외과의사의 일화를 보면, 문제아와도 같은 아이가 ‘네 손은 참으로 훌륭하고 민감해 보인다. 그 손으로 너는 값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유명한 의사가 되었고 그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외가 의사가 된 동기요, 나를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든 원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교사의 말의 중요성을 말한다. “교사의 말은 학생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학생과 더불어 하는 말이다. 그의 말은 학생에게 명령하는 말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생각을 교환하는 대화다였는데 “아무리 바쁘더라도 벽돌은 한꺼번에 쌓을 수는 없다. 무한한 인내심으로 한 장 한 장 쌓아올려야 한다.” “교육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 성과는 별안간 기적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교육은 기적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에 의에 그 성과가 나타난다고 하였다.교사의 길을 고달픈 행로라고 하였는데, 사람의 일생을 여행에 비유하며, 많은 모양의 길을 걷는데, 교사의 길은 “수많은 개구쟁이들과 하루 종일 싸워야 하는 길이다. 그들에게 지혜를 주기 위하여 무지와 교전(交戰)하여야 하는 길이다. 부정과 불의의 폭풍우로부터 자라나는 어린 생명의 씩을 보호하기 위하여 밤샘을 하여야 하는 길”이며 이 길은 외로운 길이라 하였다. “세상의 영광이 그를 버리고, 부모와 귀가 그를 돌보지 않는 길이다. 옛날의 스승은 임금과 어버이처럼 모셨다 하거니와, 오늘의 교사는 버려진 노방초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진정한 교사는 이 고달픈 길을 버리지 않고 가는데 “이것은 자기 스스로가 택한 길이요, ‘부르심’을 받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라고 교사가 고달픈 길을 가는 이유를 역설하였다.Ⅱ. 기본적 오리엔테이션교사가 연자매에 묶여서 같은 자리를 뱅뱅 도는 말이 되느냐, 철학자가 되느냐는 “교사가 교육의 의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에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며, 그에 얼마만한 중요성을 주느냐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교육을 넒은 의미로 해석하여 모든 가능성을 계발하는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교사는 단순히 연자매를 도는 말이 아니라 철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서 개인은 사회를 떠나서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며, 사회는 개인으로 구성되어 만들어지는 것으로 정의 짓고, “교육이 개인과 집단이 있기 때문에 성립되고, 그 존재가 기초적 구성 요소이며 그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제일의적(第一義的)으로 충성을 바치고 봉사하여야 할 대상을 개인”으로 보고, 교육의 주된 기능은 “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자질을 기르고 안녕이 개인의 성취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자아의 성취와 자아의 초월 이 둘은 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이룬다”라고 하면서 개인과 사회관계를 불가분의 관계로 설명하면서, 두 요소 모두 중요한 것임을 설명하였다.교육의 풍토에서는 민주주의 안에서 자유의 풍토안에서 교육의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성장의 자유, 사고의 자유, 학문의 자유, 평등의 넓은 문, 동등한 존엄성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평등과 수월에 대해서는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논함에 있어 문제되는 것은 평등과 수월을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평등을 요구한다. 동시에 이는 진보를 요구한다.” 차별 없는 균등한 교육과 진보를 위한 소수 엘리트교육 모두 필요로 하는데, 이것은 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문제를 저자는 “엘리트의 다수화”로 풀었다. “소수 엘리트의 양성을 위하여 참된 의미의 다수의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희생하지 않는 교육인 동시에, 다수의 동등한 교육을 위하여 수월을 희생시키지 않는 교육이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교육이 진행될 때, 민주사회가 지향하는 교육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했다.교육의 길에서는 여러 가지 길이 있는데, 푸는 길과 묶는 길에서 “교육이 가야 할 길은 풀어주는 길이다.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길”이라고 하였다. 몬테소리의 글을 인용하였는데, “우리는 한 개인이 인위적으로 벙어리와 같이 침묵을 지키고, 중풍 환자 모양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 훈련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파멸된 것이요, 훈련된 개인이 아니다, 우리는 그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행위를 통제할 수 있을 때 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복돋우는 길, 만드는 길에서는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침해할 수 없는 존엄성을 가지고 있으며, 개발을 기다리는 가능을 가지고 있는데, 교사라고 하여 그 권위로 존엄성을 해칠 수 없다. 그러므로 “교사가 할 수 있고, 또한 하여야 할 일은 그의 우수한 경험과 학식과 예지를 동원하여 학 합리화하려는 정신, 변화를 추구하려는 정신이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근대인의 진취성, 수용성, 규칙성, 계획성, 유효성, 계산성, 존엄성, 과학과 기술에 대한 신앙, 배분적 정의의 9가지의 특징을 가진다고 하였다.Ⅲ. 명일(明日)을 여는 교육우리는 발달된 사회를 살고 있다. 발달된 현대 문명은 “우리 생활 전번에 변화를 일크고 있다. 우리가 믿어 온 종교, 우리의 행위를 통제하여 온 도덕, 우리의 표준이었던 가치 체제, 우리가 몸담아 온 가족과 가정, 우리가 이웃하여 살아온 향토사회, 우리가 충성을 바쳐 온 국가에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창한 변화에 전면적 혹은 직접적인 충격을 현재로서는 받고 있지 않는 우리로서는 아직 절박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발달된 현대문명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현대인은 과연 그의 선대들보다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 그의 물질적 생활의 향상과 발을 맞추어 그의 정신적 생활도 개선되고 있는가?”라고 자문하였다. 대답은 아니었다. 현대인들은 군중 속에서 고독하며, 풍요 속에서 빈한(貧寒)하며, 조직의 중압을 느끼며, 물질문명의 비정함을 받아들여야 하며, 인구폭발의 위기, 대량학살무기의 등장으로 인간 인본주의의 위기, 이데올로기의 갈등 등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내일을 여는 교육은 전통주의를 뛰어 넘어 바람직한 현대인상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단순한 복종자가 아니다. 나 아닌 남이 만든 결정,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명령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순종자가 아니라, 이제 당당한 주권자”가 되어야 하며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요, 내 운명의 배의 선장”이라고 하였으며, 교육의 목표는 “지식의 전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을 기르는데 있다”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시대, 미래를 예측 할 수 없는 세기에 사는 현대인으로서는 이것만이 새 시대에 자기를 적응시키고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여, 인류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