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목록을 보다가 나는 눈에 띠는 책을 발견하였다. 그 책은 병원에 관련된 책이 였다. 책 제목자체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존에 내 생각은 병원은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 갈수록 나의 경험과 많이 비슷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읽은 것 같다. 더불어 경영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와서 직접 충고해주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병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하얀 색, 무서움, 아픔, 지루함, 짧은 처방, 불친절 등 많은 이미지가 있다. 이런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생각하는 요소일 것이다. 대부분의 이미지가 좋은 않은 이미지이다. 이런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예전부터 병원을 운영하면 많은 돈을 벌게 된다고 생각해 왔다. 또 그 말은 진실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IMF 부 터 신문상에서 병원이 부도나고 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앞으로 2010년 의료인력 증가 예상치는 약 11만 5,700명의 의사가 배출될 것 이라고 한다. 98년도에 비하면 1.8배나 증가한 수치다. 이와 같이 많은 수요가 예상된다. 더욱이 진료 받을 국민들의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고 의식수준도 높아져 많은 문제를 예상하게 한다. 또한 의료시장도 개방될 것 이라고 하니 의사들도 많이 어려워 질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기존 병원은 과거와 같은 사고로 경영을 하면 안 된다. 이제 환자들이 아쉬워서 오는 시기는 지났다. 각자 동네 주위를 돌아보면 수많은 병원을 볼 수 있다. 이제는 환자들이 병원을 선택해서 가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럼에 따라 병원도 진료수준, 진료기술 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제 병원도 서비스에 관심을 가질 때가 왔다. 이제 병원도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서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시대가 왔다. 군인을 상대로 하는 병원 말고는 모든 병원은 다른 병원과의 경쟁을 해야 한다. 그 경쟁요소 중 중요한 게 서비스이다. 만약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병원은 망하게 되는 것이다. 으로 그 병원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병원운영이 원활이 잘된다고 자신의 월급이 많아 지는 것도 아니고 병원운영이 잘되지 않는다고 자신의 직장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병원에 들어와 손님과 제일 먼저 대면하게 되는 사람은 간호사이다. 그런 간호사는 병원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첫인상을 중요히 여긴다고 한다. 처음 병원을 방문해서 대면하게 되는 간호사가 불친절하다면 고객은 그 병원이미지가 매우 불친절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병원은 간호사들에게 서비스 마인드를 주입시켜야 한다. 친절한 인사는 물론이고, 고객은 나의 월급을 주는 사람 이라는 인식을 각인 시켜 놔야 한다. 또한 병원장은 간호사를 관리할 때 인센티브제도를 운영 하는 게 좋을듯하다. 예를 들어서 병원의 매출이 올라가면 간호사의 보너스도 올라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간호사는 고객들 얼굴이 돈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환자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게 되고 최상의 서비스로 대우를 해줄 것이다. 하지만 병원장 입장에서도 그런 선택은 매우 어렵 울 것이다. 당장 자신의 이익을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 방법이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증대 시킬 수 있는 길이다.좀더 장기적인 병원관리를 해야 한다. 사소한 서비스 하나가 환자들이 차후에 자신의 병원의 단골이 될 수가 있다.두 번째로 많은 요소는 ‘말’ 과 관련된 상황 이였다. 특히 몸이 아파 오는 환자에게는 많은 배려가 있어야 한다. 특히 말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줘야 한다. 병원에 다니다 보면 의사들의 거만한 말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할머니들 에게 반말 로 대화를 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는 이게 허용이 되었다. 이제는 환자 의식수준도 높아져 이런 행동을 하게 되면 병원운영이 힘들어 질것이다. 의사는 자신의 권위 의식을 버리고 환자를 대해야 한다. 따듯한 말 한 마디, 정성스러운 손짓으로도 몸이 아픈 환자들은 많은 감동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많이 좋아 지셨네요’, ’금방 적은 이윤을 창출하려는 목적이 가장 클 것이다. 그러면 의사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방법을 실행해야 한다. 특히 병원과 같은 곳은 방문하는 환자들이 몸이 않 좋아 방문을 하기 때문에 사소한 서비스에도 감동을 받게 되고 단골고객으로 만들기 쉽다. 병원이 잘되기 위해서는 서비스 마인드가 중요하다. 이제 환자를 자신들의 왕으로 생각을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2장에서는 실생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의 다루고 있다. 1650명을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족한 진료상담’, ‘긴 대기시간’,’직원들의 불친절’ 이 병원을 싫게 하는 요소로 판명되었다. 환자들은 세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만족되는 요소가 있으면 그 병원을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 만큼 병원의 서비스는 열악하다.또한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실행하고 있다고 하는 병원들도 많은 실수를 하고 있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오히려 고객들을 짜증나게 만든다. 예를 들어 간호사가 고객에게 병에 대한 많은 정보를 주려다 오히려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질병을 알릴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이름과 개인정보과 노출되면 그 사람은 다시는 그 병원을 찾지 않을 것이다. 즉 병원이 서비스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나의 사례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설명하겠다.나도 몸이 약해 병원을 많이 다녀봤다. 그러나 병원을 갔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대기시간에 비해 진료시간은 엄청 짧다는 것이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어디가 아픈지 말만하고 나오는 것 같다. 그럴 바엔 약국을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행정적인 이유로 그럴 수는 없다. 그에 비해 진료시간은 엄청 길고 지루 하기 그저 없다. 요즘 병원은 그나마 많이 변화한 듯 하다. 동네 병원에 경쟁 병원이 많이 생김에 따라 서비스가 많이 좋아졌다. 깔끔히 정리된 대기실, 책, TV, 음료 등 많은 서비스가 제공된다. 얼마 전 일이 였다. 내가 치과를 갔을 때였는데, 고향에서 진료를 하다가 서울에서 진료를 받게 되었다. 고향. 의사의 실수나, 불친절은 바로 자신의 병원에 대한 믿음을 떨어트리게 되고 병원 운영을 어렵게 한다.의류매장에서 직원들이 쫓아다니며 설명하는 것이 매우 싫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은 그 반대이다 최대한 자신에게 많은 정보를 주는 병원이 좋은 서비스를 하고 있는 곳이다.나는 3시간을 기다려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병원은 피부쪽에 유명한 병원이 였다. 나는 내가 진료를 받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진료를 받고 나오는 순간 답을 알 수 있었다. 그 병원의 대기시간이 긴 이유는 물론 손님이 많은 이유도 있지만 의사의 진료시간이 길었다. 내가 병원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진료를 받아 본적이 없을 정도로 많은 상담을 해주었다. 그래서 그 병원은 대기 시간이 길었던 것이 였다. 하지만 환자들은 풍부한 진료시간에 만족을 하고 오랫동안 기다린 것이다. 그만큼 병원의 서비스는 열악하고 환자들을 만족시키기도 쉬운 것이다.흔히 의사들은 진료만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고객은 그렇지 않다. 고객은 자신이 어떤 약을 먹고, 자신의 어떤 치료를 받는지 잘 모를 경우가 많다. 차라리 자신이 어떤 약을 먹게 되는지, 치료 과정은 어떤지를 설명 해주는 의사를 좋은 의사라 생각할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 전문적이 의료지식이 없기 때문에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른다. 차라리 그런 일을 자세히 설명해주면 자신이 올바른 치료를 받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여 만족감을 높일 수 있다. 다른 게 엉망이더라도 의사의 꼼꼼한 설명만 동반이 된다 해도 많은 감동을 환자에게 줄 수 있을 것이다.3장에서는 서비스 경영을 다루고 있다. 경영을 내부와 외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내부 경영은 직원들을 잘 관리 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관리라 함은 좋은 직원을 선발하고 지도 하는 것이다. 자신의 병원에 맞는 직원을 선발하여 고용 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는 “가장 뛰어난 리더는 자신에 필요한 사람을 잘 찾는 사람”이다라고 표현했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직원. 한번의 고객확보 비용으로 계속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단골고객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재와 같이 병원 서비스가 엉망이 상태에서는 위에서 언급했던 서비스를 조금만 실행하면 금방 단골고객이 될 것이다. 더불어 고객관리를 해야 한다. 고객들의 생일을 챙기거나 , 퇴원한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꾸준히 점검해주는 것이다. 이런 요소는 이메일 이나 문자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상항 이다. 비싼 광고를 하는 것 보다 몇 배의 효과를 낼 수 도 있다. 또한 고객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객의 목소리를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환자들은 자신이 불편한 상황을 병원장 에게 직접 말해주지도 않는다. 다만 환자들은 행동으로 보여준다. 자신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병원을 다시는 이용하지 않고, 주위에도 나쁜 소문을 퍼트리는 것이다. 이는 손님 한명을 놓치는 것 이외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 소문을 타고 동네에 퍼지게 되면 그 병원은 망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마을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중소병원은 이런 점을 명심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불편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병원장은 설문지를 통해서 자신의 병원을 점검 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병원 서비스는 만족하는지?, 진료시간은 적당한지?, 대기시간은 적당한지? 등 서비스에 중요한 요소를 파악해서 개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이제는 병원원장은 장사꾼이 되어야 한다. 이제 병원도 경영이라는 학문이 필요해지는 시기이다. 내가 추측하는 건데 미래에는 병원원장이 라는 말이 사장님이라는 말로 바뀌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병원도 기업처럼 변할 것이다. 기업처럼 인사, 운영, MIS , 회계 모든 방면이 필요해지고 적용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병원은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속이 후련하다는 생각을 했다. 기존 병원의 불친절함을 꼼꼼히 지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고 있었던 점과 매우 비슷해서 놀라기도 했다. 병원의 서비스는 타 업종에 비해서 아직도 부족하
요즘 쌀시장 개방에 따라 많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국가발전을 위해서, 농부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시위를 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많은 농민들이 자신의 일터가 아닌 서울 여의도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실 쌀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이다. 우리의 주식이며, 한국사람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쌀 시장은 2005년 개방이 되기로 WTO와 이미 협상된 상황이다. 그런데 10년 동안 우리 농민, 정부는 무엇을 했길래 지금 와서 싸우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 글에서 정부와, 농민 모두 비판을 하겠다. 정부는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했고, 농민들은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WTO는 GATT 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1994년 탄생 되었다. GATT의 포함범위는 공산품만 한정이 되었고, 강제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서 WTO가 1994년 UR라운드를 통해서 창설되었다. 그럼에 따라 우리나라도 농산물을 관세화 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1993년 UR 협상을 통해 농산물을 관세화 하는데 합의했고 2000년부터 농산물 관세화를 다시 협상을 했다. 하지만 2005년은 금방 왔고 우리나라의 농민과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10년간 ‘쌀 관세화 유예’를 연장하기 위해서 세계 각국과 협상을 해야 한다. 분명 농민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세부적 내용은 그렇지 않다. WTO 협상 내용에 따라 2014년에 이르러서는 40만 8천 톤까지 쌀이 수입이 될 것이고 이전과 달리 ‘쌀시장’에 직접 수입이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농민들은 자신의 직업을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거리로 나섰다.그럼 우리나라는 10년 동안 무엇을 했나? 과거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 94년 UR라운드에서 자신의 대통령직을 걸고 쌀 시장 개방을 막겠다고 공약을 했다. 하지만 당선이 된 후 95년 그 말은 지켜지지 않았고, 사과로 대신했다. 김영삼대통령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94년 대로 협상을 통해 성과를 이뤄냈다. 10년 동안 쌀시장을 지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쌀 시장개방에 대해서 대비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농민들은 그 점에 소홀히 하였고 결국 지금 와서 심각성을 알고 싸우고 있다. 내가 보기엔 둘 다의 문제다. 사실 쌀 시장에 대비해서 정책은 몇 가지 있었다. 쌀 제배에 종사하는 농민을 줄이고 한 사람당 생산하는 쌀의 양을 늘리는 것 이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도 소규모 농업을 하고 있고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정부는 자신들은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왔고 지금도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솔직히 현정부는 억울 할만도 하다. 과거의 대통령들이 해놓은 일을 수습하는 느낌도 들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선거공약으로 쌀 문제를 거론 했기 때문에 책임은 있다. 과거 대통령들의 공약에는 ‘쌀시장 개방’ 에 대해서 무조건 농민들을 편안히 살게 하겠다고 말을 해왔다. 순진한 농민들의 표를 의식해서 이다. 몇 번의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현재 농민들은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 청와대는 “국회에서 쌀 협상비준안이 통과 된 것은 다행, 이제는 농민들의 불안과 걱정을 줄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 라는 입장을 표현 했다. 구체적으로 각종 금리를 인하 해줄 것이며, 500만석의 쌀을 정부가 구매 할 것 이라는 입장이다. 정부의 입장에서 모두의 의견을 만족시켜 줄 수 없겠지만, 농민들에게 진정으로 효과적인 대책을 제시해줘야 한다. 돈을 빌려주는 정책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도록 유도를 해줘야 한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의 수익의 일부분에 대해 농업 발전에 투자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또한 각 정당의 입장도 재미있다. 각자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같은 입장으로 정부를 지원했다. 우리당은 여당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원을 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마지막까지 눈치를 살피다가 자신들의 지지세원했다. 우리당은 지지세력이 농업 쪽에 많다. 하지만 그런 지지세력까지 버리면서 당론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경우는 반대의 입장을 내세웠다. 자신들의 지지세력이 농업분야에 많은 이들은 “쌀 비준안 통과”에 반대를 외쳤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의원은 단식투쟁을 하면서 까지 반대를 외쳤다. 여의도에서는 이렇게 각 정당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싸우고 여의도 밖에서는 농민들이 무기를 들고 싸우고 있다. 무기를 들고 시위를 하는 방법은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많은 위험이 있고, 죽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얼마 전 한 농부가 죽음을 당했다. 이 또한 현재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대두되고 있다. 농민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반성을 해야 한다. 왜 자신들이 무기를 들고 여의도에 있는지를. 자신들의 뜻을 전달해줄 국회의원은 소수인지를. 기존에 아무 관심 없이 투표를 했다면 이제는 자신들의 표를 민주노동당에 집중 시켜야 한다.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할 힘이 필요하다.농민단체들은 “쌀 협상” 자체를 부정하면서 세계화의 흐름에 역행하려 하고 있다. 모든 정책에 자신들의 이익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신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농민들만 사는 곳이 아니다. 수출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한국사회에서 세계화 흐름은 피 할 수 없다. 더욱이 이들에게는 1995년부터 10년간의 기회와 시간이 있었다. 그때부터 많은 변화와 노력은 하지 않고 지금 와서 싸운다고 해결될 문제들은 아니다. 이제 세계 속 에서 혼자 살수는 없다. 이것은 진리이다. WTO에서 탈퇴를 하게 된다면 수출을 주 수입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농민들은 많은 변화를 해야 한다. 지난 10년간처럼 특별우대를 해줄 수는 없다. 이제 농민들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현재 국민들의 입맛은 서양화가 되어가면서 쌀의 수요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많은 농민들은 쌀 재배를 할 필요가 없다. 과감히 특품화된 농산물을 재배 해야 하며, 쌀을 재배하거든쌀을 재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계화를 이룩해야 하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지원금 및 대출을 이용해야 한다.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각 나라와 쌀 협상을 해야 한다. 먼저 일본과 대만의 경우는 스스로 자신들이 관세화를 인정하고 수입 쌀에 대해서 높은 관세를 할당하는 전략을 펼쳤다. 그럼으로써 수입 쌀의 가격을 높여서 자신들의 쌀의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이 전략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관심을 가져야 할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도 10년 유예라는 방법을 쓰고 있다. 차후 10년 뒤 ‘관세화’를 하려는 목적 같다. 하지만 저는 지금 바로 관세화를 통해서 높은 관세를 할당 하는 게 장기적으로 좋은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부디 10년 뒤 우리나라의 쌀시장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미국, 호주, 필리핀 등 농업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는 각 나라들과 우리나라는 협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쌀의 특별한 의미’를 설명하고 협상을 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언제까지나 우리의 입장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전자제품이나 다른 분야의 수출품이 불이익을 받게 되고 WTO에 가입하는 의미마저 상실할 수가 있다.만약 이런 문제점을 우리 정부가 인식 했으면 노력을 해야 한다. 다음 10년 후에는 이런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고 바로 정부나 농민들이 적응하수 있도록 말이다.그러기 위해서 우리정부는 5가지의 정책을 통해 준비를 하고 있다.첫째, 고품질 쌀 생산 유통체제의 구축고품질품종 재배면적은 2005년까지 80%로 확대하여 규모의 경제를 실행하고 해외쌀 과의 차별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또한 건조·저장·가공을 일괄처리 하여 비용부담도 줄여줄 계획이다. 더불어 품질관련 표시제도를 강화하여 소비자에게 신뢰를 줄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 2005년이 되었는데 얼마의 진행이 되었는지 발표도 없다. 이런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와 농민간의 분쟁만 제공할 뿐이다. 신뢰 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둘째, 쌀 산a 규모 농가에 자금을 집중지원하고, 노령 농업인의 논을 젊고 유능한 농업인 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늙은 농업인은 임대료를 받아서 좋고 젊은 농업인은 농업의 대형화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이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임대료의 액수를 적정수준으로 정해야 할 것이다. 과도한 임대료는 오히려 젊은 농업인 에게 독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늙은 농업인과 젊은 농업인 모두 만족하는 임대료가 중요하다.셋째, 소득보장쌀이 공급과잉으로 인해서 쌀의 가격이 폭락 할 경우 정부에서 소득의 일부분을 보장해주는 제도 이다. 농가소득의 안정을 위한 계획입니다. 하지만 WTO와 협상이 관건이다. WTO에서 보조금지급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더욱 만약 이 제도로 인해 농민들이 농사를 게을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책을 실행할 때 ‘소득보장을 90% 보장한다.’ 라는 구체적 조항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넷째, 친환경 농업육성소득보장을 통해 농가는 친환경 농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친환경 농업을 하다 실패를 하면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농민은 고품질의 쌀을 재배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정책을 실행할 때는 정부가 소득을 보장해주는 대신 이익이 날 경우 몇 % 로열티를 획득 하는 게 좋을 듯 싶다. 그 이익으로 다른 농민들을 도와 줄 수 있기 때문이다.다섯째, 생산시설 공용화비싼 농기계 공동 이용 하여 농사에 필요한 불 필요한 지출을 줄일 계획 이다. 당연히 생산비의 절감으로 이익이 향상할 것으로 기대된다.이런 제도로 쌀시장 개방에 대비하고 있다. 만약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우리나라가 원하는 대로 쌀시장 개방이 10년 뒤로 미루어 지면, 정부, 농민들은 많은 노력을 해야 하다. 정부는 말로만 하는 정책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농민들도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서 농업을 변화시켜야 한다. 대량생산, 품질 좋은 쌀, 쌀 농업자 수의 축소 등 많은 변화를 해야 한다.그래서 향후 10년 후에는 더 이상의 자살도, 더 이상의 싸움한다.
조선 최고의 왕으로 우리는 세종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세종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할 수 있었는지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그답은 세종의 아버지인 이방원이 있었다. 태종은 왕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였다. 많은 전쟁을 하였고 많은 제도를 수정했다. 그래서 많은 잔인한 행동을 했을것이다. 이방원은 우리에게는 나쁜 이미지가 많을것이다. 형제를 죽인 왕, 권력에 욕심이 많은 왕 등 많은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럴수 밖에 없었던 그 당시 상황을 나는 이야기 하려고 한다. 또한 현대사회의 한국과 리더의 차이 , 비슷한점을 조사하여 한국사회가 나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자한다.태종시대는 현재 한국의 시대와 공통점이 많다. 수도의 이전, 주위의 복종인물, 탄핵, 검찰과 언론의 갈등 등 많은 사건이 비슷하게 일치한다.먼저 수도의 이전은 노무현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언급을 했던 선거 공약 이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밀집해 있는 주요 기능을 충남지역으로 이전시켜 인구 과밀 현상과 지방의 발전을 해결하려 했다.태종은 아버지 태조의 노여움을 풀기 위하여 아버지의 희망사항 이였던 수도 이전을 실행한다. 건국 초에 조선 조정은 세 번에 걸쳐 수도를 옮겼다. 태조 3년에 개경의 기운이 다 됐다는 이유로 한양으로 천도했다가 1398년 정종 원년에는 한양을 버리고 개경으로 다시 왕궁을 옮겼다. 이 때 개경으로 다시 옮겨 간 이유는 우선 한양의 시설이 미비하여 개경을 그리워하는 신민들 의 정이 심각하다는 것이었고 다음으로는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왕실의 큰 불상사인 골육상잔의 참변이 일어났다 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경으로 옮겨 간 이후에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정종은 세제 방원에게 왕권을 물려주 었다. 태종은 등극하자마자 태조의 뜻을 이어 다시 한양으로 천도하려 했으나 신하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해 실행치 못하다가 1404년(태종5년) 9월에 경복궁이 준공되자 한양 천도를 단행하였다. 이 후로 한양은 5백년 동안 조선의 문 화와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비슷하다.하지만 그 목적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태종의 그 당시 자신의 왕권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위파동을 일으켰다. 일종에 계획된 의도였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발언과 행동은 국민들에게 불안과 정치적 불안만을 제공한것 같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원망스러워 한말일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요즘도 검찰과 언론의 관계가 좋지는 못하지만 태종시대때도 지금의 검찰 과 언론 에 해당하는 사헌부 와 사간원의 관계가 좋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때는 태종의 일종의 서열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하였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지금의 대통령은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였고, 검찰과 정부의 관계도 좋지 못하다. 나름대로 검찰과 대화를 통해 방향을 제시하려 하나 부족한점이 많다.이상하게도 지금의 사태와 비슷한 점이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그러나 차이점도 많은 것 같다. 태종시대에는 어느 한명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었고 왕권강화가 집중되어 있던 시대였다. 하지만 현재는 야당과 여당이 있고 권력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예전처럼 왕의 힘이 강하지는 못하다. 일종의 민주주의현상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속에서도 태종과 노무현 대통령의 차이는 발견할수 있다. 태종은 자신의 능력과 꾀를 모두 상용하여 왕권을 강화하려 했지만, 노무현대통령은 스스로의 실수로 권위를 상실하고 있으면서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이점이 큰 차이라고 볼수 있다.태종은 조선을 건국한 왕이자 조선의 인프라를 설계한 왕이다. 많은일을 하면서 항상 주위의 신하들의 말을 경청했으며, 많은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결정은 항상 자신이 스스로 하였다. 그 중 하나의 일화를 소개하자면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몰아네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명한일이다. 물론 그 과정은 자신의 신하들과 충분한 대화를 했지만 결정은 스스로 하였다.양녕대군은 애당초 공부에는 뜻이 없는 인물이였다. 태종게 되었다.결국 태종은 세자를 바꾸기로 결정한다. 특히 넷째 아들이 죽었을 때 세자는 유흥을 즐겼으나, 충녕대군은 극진한 간호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태종은 충녕대군을 맘속에 두고 있었는지 모른다.또한 그당시 많은 신하들이 세자를 바꾸는 것을 적극 건의를 하였다. 이미 결심을 한 태종은 양녕대군을 광주로 보내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정하였다. 태종은 이미 세자를 바꾸는 것에 대한 준비를 해놓았었다. 그동안 꾸준히 신하들과의 토론을 통해 준비를 해놓았던것이다. 단지 그 시기만을 기다리고 준비했을것이다. 그의 정치적 능력을 보이는 상황이였다. 내가 만약 태종이였으면 어떻하였을까? 과연 유교사상이 가득찬 조선시대에서 셋째 아들에게 왕을 물려 줄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든다. 그만큼 혁신적인 조치였다.사람들은 태종을 정치9단, 쿠데타의 주역, 철저한 냉혈인, 무(武)의 제왕,이라 비유를 한다. 나아가 그를 시대가 만들어 낸 풍운아이자 혁명가라면, 이 말 또한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역사에 드러난 권력이라는 게, 비록 허망하기 이를 데 없어도, 그것 또한 세상을 만드는 한 수단이라면 말이다.태종 이방원. 과연 그와 같은 사람을 우리는 리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에게도 과연 리더십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어떤 점에서 우리는 그의 리더십을 찾아내고, 현대에 맞게 재해석해낼 것인가. 역사를 다룸에 있어 태종에 대한 의미부여가 혹여, 우리 현대사를 어둡게 한 군사 쿠데타와 연이은 독재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와 같은 의문을 품고 우선 태종이 누구인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만약 한 시대의 리더로서 태종을 정의하라면, 그는 너무나 '복잡한 인물’이라고 말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너무 복잡해 조선 창업 시 가장 걸림돌이었던 정몽주를 직접 선죽교까지 쫓아가 죽임으로써 복잡하기만 한 정국을 일시에 국면 전환시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태종은 무(武)의 제왕이다.하지만 태종 이방원이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한 수재로 역대 국왕 가운데 가장 뛰어난 왕위를 물려주면서는 사돈까지 죽여 없앤 제왕이라면, 이는 오히려 그에 대한 명징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태종에 대해서라면, 그게 전부가 아니다. 오늘날의 리더십과 연결해 그를 보면, 그는 순리에 의해 리더가 된 사람이 아니라, '역리(逆理)’에 의해 없는 권력을 만들어낸 리더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만큼 태종이란 인물은 복잡하다.역사에 나타난 그의 활동상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태종은 태조가 신흥세력으로 부상할 때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며 역사에 부상한다. 부친을 도와 권력을 만드는데 동참한 쿠데타의 동지였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미래의 권력 세력과 협력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그의 리더십은 비인간적 요소를 포함하고, 동시에 잔인함이 느껴진다.생각해 보면, 권력이란 어느 시기나 비정한것이다. 철저한 야심가였던 그는 새로운 사상으로 우리 역사에 전면 등장하는 유학을 받아들여 새로운 질서의 사상적 기초를 삼는다. 그 스스로도 유학으로 무장한다. 그가 성리학의 대가인 민제의 사위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권력 앞에선 형제간의 피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제들은 그의 권력을 치장하기 위해 피를 흘려야 할 대상이었다. 나아가 권력을 잡은 후에는 공신들을 토사구팽하고 500년 조선의 경영권을 확실히 다졌다. 이것이 태종의 진면목이다.그는 그랬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썩어가는 고려를 뒤엎고 진정으로 새 시대를 연 사람이 아닌가. 시대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쿠테타의 주역들을 묶어내고, 나아가 사상적 대안을 제시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공신이란 이름으로 권력에 맛들인 권력층과 맞서 다시 계속 개혁에 성공한 영원한 혁명가이다. 창업 동지들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 사적인관계가 서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공정함을 실행한 혁명가이다.또 집권하면서는 과감한 개혁으로 고려의 때를 씻어내고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가려 했다. 고려 500년이 권력 분산으로 한번도 중앙집권을 이뤄내지 못했으나 조선은 국왕 중심의 국가가 되도록 하였다. 내는 모험 정신으로 창업에 성공했기에 말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에게 사상적, 정치적 리더십으로 새로운 정치를 보여 준 왕의 면모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 시대는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가 보여준 다른 형태의 리더십을 통해 우리는 리더들의 참으로 진실한 면목을 볼 수 있게 되었다.태종시대는 조선의 건국시기라 많은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태종은 이런시기에 적절한 많은 행동을 하였다. 이책에서 나는 현재 리더와 태종의 차이를 4가지를 볼수 있었다.첫재, 주위사람들 관리이다. 이방원의 공신들도 있었고, 고려의 충신들도 있었다. 현재 에도 노무현 대통령 주위에는 많은 공신들이 있을 것 이다. 하지만 그런 공신들이 현재에는 많은 비리와 연관되어 있어 많은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태종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태종은 자신의 공신들이라도, 비리, 왕권을 위협하는자는 엄중한 처벌을 하였다. 이광제, 안희정 등 많은 공신들을 품고 가는 것은 물론 인간적으로 좋을 듯 하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의 왕이다. 즉 태종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실 필요가있다. 자신 주위의 사람들이 나라와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면 즉각 피하는 그런 카리스마를 원할 것 이다.둘째, 왕권 강화이다.태종은 스스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힘을 섰다. 많은 살인과, 체재 개편으로 왕권강화에 힘을 섰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스스로의 언행으로 왕권을 깍아 내리는듯 하다. 대통령 다운 언행을 보이지 못함으로써 많은 구설수와 비판을 받았다.셋째, 국민들에 대한 자세이다.나는 태종우를 생각하면 많은 전율이 느껴진다. 그 당시에 태종이 국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 태종은 무모함을 알지만 몸과 마음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재의 리더에게는 이런점이 조금은 부족한 것 같다. 현재 시장에 가보면 많은 상인들의 한숨을 들을수 있다. 이런 걱정을 대통령께서는 몸과 마음으로 걱정해주시기 바란다.넷다.
도서 목록을 보던 중 나는 재미있는 제목 하나를 발견했다. 제목은 ‘미쳐야 미치다’ 였다. 책 제목을 보고 나는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 가면서 글을 쓴 목적을 알았다. 이 책은 조선지식인들의 열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사람이 어느 일에 미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물론 의학적으로 미친다는 뜻은 아니다. 좋은 일에 집중하거나 몰두 하는 일은 아름답고 존경이 간다. 나 자신도 어떤 일에 미치고 싶다. 하지만 아직 그럴만한 열정은 매우 부족 한가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진짜 열정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동안 나 자신에게 너무 소홀히 했던 것을 느꼈다. 이제는 나도 열정을 품을 수 있는 젊은이가 되어야 한다. 황우석 교수님도 그 분야에 미쳤기 때문에 그런 위대한 결과를 창출하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조선시대의 억울한 인재들을 다시 한번 찾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현대 사회는 개인의 능력이 중요시 되는 사회다. 자기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일정 정도에 수익과 직위를 보장 받는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조선시대는 신분사회이다 보니 사람의 자질 보다 신분을 우선시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 못한 인재들이 많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다. 그래서 조선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일본은 서양의 지식을 수용했으나 조선은 자국 내에서의 지식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 현재, 그리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이 책은 억울한 인재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어떠한 억울한 인재들이 있었는지, 그들의 인맥과, 고수들의 눈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있다. 각 장마다 인재들의 생활모습과 기록을 통해 그들의 모습을 기록해놔서 이해하기가 쉬웠다. 자세히 표현이 되어 있어 마치 나의 곁에 조선지식인들이 살아있는 듯했다.1장은 자신의 일에 몰두 하는 사람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아 붇 권력을 잡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왕이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변화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 실력을 마음껏 펼쳐 보지 못하고 마이너에서 죽어간 인재들이 많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런 인재들이 기량을 못 폈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까웠다.김영 이라는 천문학자는 그 시대의 최고의 천문학자였다. 하지만 그 의 신분이 초라하고, 생김새와, 말투가 어눌하여 많은 무시를 당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이 오히려 그를 공부에만 몰두 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 수도 있다. 어째든 그는 홀로 독학으로 조선 최고의 천문학자가 된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많은 세력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뛰어난 사람 주변에는 많은 시기와 질투가 있는 것 같다. 황우석 교수도 주위의 시기와 질투로 많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언론은 그를 괴롭히고, 새튼은 그를 떠났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뛰어난 인재들의 성과물에는 욕심 내 한다. 김영은 국가가 그를 필요로 할 때 마다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였다. 또한 그를 시기했던 세력들은 그가 죽자 그의 연구 자료를 훔쳐갔다. 현대 사회도 황우석교수의 성과물을 원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그를 지지하고, 많은 네티즌이 그를 지지하고 있다. 얼마 전 11월 22일 야후 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6% 네티즌이 그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의 경우는 자신의 질투세력 많아지자 벼슬을 그만두고 나왔다. 결국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 불운한 생을 마감했다. 황우석 교수님도 그런 생활을 할 수도 있다. 얼마전 황교수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 분명 그는 모든걸 그만 두고 싶을 것이다. 김영 처럼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연구에 복귀했다. 사회가 그를 가만히 놔뒀으면 좋겠다. 또 다시 불운한 인재를 만들기 싫으면 말이다.조선시대에는 김영 처럼 신분이 낮아 억울하게 재능을 발휘 못한 인재들이 많았다. 노긍 이라는 사람은 과거시험을 대신 응시해주고 돈을 받던 사람이었다. 현대판 수능 부정이다. 그가 직접 과거에 통과해다. 물론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이 없이 열정만 있게 되면 그것은 사고로 이어 질 수 있다. 특히 내가 하고 싶은 분야가 사람 목숨과 관련이 많기 때문에 나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열정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 같다.2장은 조선 인재들이 만남을 통해 성공한 사례를 적고 있다. 만남은 굉장히 중요하다. 만남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경우는 많다. 좋은 스승을 만나서 인생의 진로가 바뀔 수도 있고, 좋은 아내를 만나거나 가족으로 인해 인생의 진로가 바뀔 수 있다. 2장에서는 이런 사례를 적고 있다. 나의 경우는 초 중 고를 거치면서 수많은 좋은 스승을 만나 나 자신이 많은 변화를 했다. 때로는 매로, 충고로, 해서 나의 잘못된 습관을 고쳐주셨던 분들이 많다. 갑자기 2장을 읽다 보니 스승들이 생각이 난다. 이번 겨울에는 꼭 한번 찾아가서 인사를 드려야겠다.인재들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본다. 그들의 재능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인재들도 있다. 그들의 재능은 인재들만 알아볼 수 있다. 인재들만 그들의 재능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것이다.이정은 허균보다 9살 아래에 보잘것없는 화가의 신분이었다. 나이와 신분의 차이에도 불과하고 둘은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다. 이정이라는 화가는 사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살았던 화가이다. 그런 이정을 허균은 몹시 아꼈다. 조선시대에 신분차이를 극복하고 이렇게 우정을 나눌 수 있고 서로 존중을 해줄 수 있는 사이였던 걸 보면 이정이 정말 대단한 사람 이였나 보다. 그런 이정의 재능을 허균은 알아보고 귀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허균은 또한 기생 계량과도 우정을 나누었다. 계량은 기생으로 시를 좋아했다. 또한 허균과 공통점이 많았다. 불교, 거문도에 관심이 많았던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 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우정을 나누었다. 남녀라는 관계를 넘어서서 인간과 인간으로 우정을 나누었다. 허균이 이정, 계량과 신분, 성을 뛰어넘어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지만, 배울 기회가 없어서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던 존재였다. 겉모습만 보고 무시를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권필을 만나게 되고 꾸준한 노력으로 학문에 빠른 실력 상승을 이룬다. 또한 스승을 위해 그는 많은 헌신적인 자세를 보였다. 권필이 아파있을 때 오직 그만 스승의 병을 간호하였다.또한 정약용과 황상도 마찬가지 경우다. 황상이 “자신이 멍청하고, 사리구분을 못하며, 분별력이 모자란다” 라며 공부에 두려움을 떨자 정양용은 그런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공부를 시킨다. 스승의 가르침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이렇듯 누구와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자체가 변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만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과의 만남이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왔고 앞으로도 나의 일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나에게는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즐거워야 나도 모든 일에 집중할 수 있다. 혹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하는 일이 잘 안되어 걱정을 하시고 계실 때는 나는 정서적으로 불안해지고 괴로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에 가족들이 이용할 수 있는 카페를 활용해서 가족과의 교류를 하고 있다. 이렇듯 정약용도 가족과의 관계를 굉장히 중요시했다. 정약용은 가족과 20 년 동안 떨어져서 살았다. 국가에 의해서 가족과 떨어져서 살았던 정약용은 각종 편지에 가족들에 대한 정성이 애절히 나타난다. 아들들의 공부를 걱정하는 부모 마음, 아내에 대한 애절한 사랑, 등 많은 내용이 담 겨져 있다. 특히 부인의 치마에 그린 매조도 는 더욱 간절하다. 또한 자신의 죽은 아들들을 위해 천연두 치료법을 계발 하는 등 그의 가족 사랑은 끝이 없었다.이렇듯 모든 만남은 중요하다. 만남을 통해 자신이 더욱 성장할 수도 있고 편안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한다. ‘메슬로의 욕구 5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고수들의 눈을 활용하지 못했다. 그들을 장님으로 만든 것이다. 자신들의 직위가 사라질까봐 두려워서 일수도 있고, 자신의 이익을 보존 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는 고수들을 활용하지 못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숨어있는 고수들을 어떻게 사용할지 궁금하다.현대에 지금 활동하고 있는 고수들은 많은 실수를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많은 실수를 하고 있다. 정부, 여당, 야당 등을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실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럼 숨어있는 고수들을 찾아서 활용해야 할 것이다. 혹시 지금 고수들이 숨어있는 고수들의 등장을 막지는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3장을 보면 이옥에 관한 글이 나온다. 연기에 관한 글을 남긴 이옥(1760∼1813)은 담배를 몹시 사랑한 나머지 그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만큼 담배에 미쳐있던 인물이다. 『연경』에서는 담배를 소재로 법문을 펼치는데 그 행간에 불교의 연기설에 대한 비판이 놀랍도록 정연하게 담겨 있다.박지원이 관재라 이름 붙인 벗의 집을 위해 글을 써주면서‘헛것을 보지 말고 제대로 보라’고 한 일침에서도 프로들의 내공이 전해져 온다.천하의 명문장을 논한 홍길주(1786∼1841)는 두 번의 여행을 소재로 훌륭한 문장론을 완성했다. 그는 여행길 에서 보고 느낀 점을 상세하게 비교하며 ‘아주 같다고 해도 안 되고, 같지 않다고 해도 또한 안 되는 것이야말로 천하의 지극한 문장’이라고 표현했다. ‘문장은 다만 책 읽는 데 있지 않다. 독서는 단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모두 독서다.’정약용이 과거 합격 후 친구들과 양평 수종사에 올라 청운의 꿈을 펼치던 순간, 30대 초반 서울에 살 때 세검정의 휘몰아치는 물굽이를 보러 가는 장면 등에서도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뛰어난 안목이 느껴진다.이 책에서는 조선시대의 뛰어난 인재들의 일상을 표현했다. 그들이 살아온 길, 그들의 생각, 그들 싶다.
요즘 ‘쌀시장개방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 등 때문에 국가의 존재 이유와 국가 권력의 정당성이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국가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범위까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지가 이야기 되고 있다.국가는 국민들이 모여 이루는 집단이다. 국가는 국민이 없으면 존재 할 수 없다. 반대로 국민도 국가라는 보호집단이 있어야 자신들의 이익과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다. 국민들 하나하나를 뭉쳐줄 수 있고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집단이 국가인 것이다. 국가는 개인이 하기 힘든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개인개인의 힘이 모여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나라로부터의 침략을 막을 수 있고, 이익도 지킬 수 있다. 예전에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막는 일이 가장 주된 임무였다면 이제는 이익을 지켜준다는 게 주된 임무일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마찰로 인해서 발생했을 때 개인차원보다는 국가차원의 대응이 더욱 효과적이다. 이처럼 개인이 하기 힘들 일을 국가는 대신해줄 수 있다. 국가와 개인간에는 일종에 계약이 성립되어 있다. 개인이 국가에게 세금을 제공하는 대신 국가는 개인에게 생명의 안전, 재산의 안전, 등을 보장해준다. 어느 개인이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국가라는 큰 틀을 만들어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을 신속히 하고 공정히 하기 위해서 국가에게는 힘이 부여된다. 그 힘은 권력이다. 요즘 그 권력에 관해서 많은 말이 많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와, 이익이 무시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쌀시장문제도 국가의 수출을 활발히 하기 위해서 쌀을 희생하는 경우이다. 또한 양심적 병역 거부도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개인의 신념을 무시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국가가 발전하고 안전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라고 생각된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이익과 국가의 발전이 중요시될 수 있다. 요즘은 소수의 이익은 다수의 이익을 소수에게 분배해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국가는 권력을 통해 경찰활동, 외교, 행정 등의 역할을 수행할 수 다. 이렇듯 구심점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을 하나로 묶고 리드 해나갈 수 있는 단체의 존재 여부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게 된다. 현대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나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리더가 중요하다. 그런 리더역할을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이다. 국가의 명령 아래 개인들은 자신의 의무를 실행하고 또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약 국가의 존재가 없다면 개인들은 불운해질 것이다. 국가가 하던 일을 개인이 하게 되면 비효율적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련된 일만 하려고 할 것이다. ‘7인의 사무라이’ 에서 그런 점은 잘 나타난다. 마을을 요새화 하던 사무라이들이 모든 영역을 다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마을 밖에 3채를 포기 하기로 한다. 그때 그 집에 관련된 사람들은 그럼 자신들도 싸울 의미가 없다고 무기를 버려 버린다. 하지만 곧 사무라이에 의해서 무기를 다시 들게 된다. 이처럼 국가가 없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 할 것이다. 설사 국가가 없다고 해도 어떤 형태로든 소수 집단이 형성이 될 것이다. 가족을 중심으로 하든, 목적을 중심으로 하든, 자신들 스스로 작은 국가를 형성할 것이다.내가 생각하기에는 국민보다 국가가 우선이다. 국가가 존재해야 국민의 안전이 보장된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국가에 의한 개인 자유는 제재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위의 글에서 예로 들었듯이 자신의 집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집 주인들은 무기를 버리고 개인행동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무라이(국가)에 칼에 의해서 다시 무기를 들게 된다. 그러면서 “이것은 전쟁이다. 만약 마을이 함락되면 너희 집도 없을 것이다” 라는 말을 합니다. 즉 국가가 존재해야 개인의 목숨, 재산도 존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영화에서 키쿠치요라는 사무라이가 경계를 하다가 잠을 자게 됩니다. 국가를 위해 개인의 자유가 침해 당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희생 당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국가가 없게 되면 개인의 자유와 안전도 없게 되기 때e dimension of a nation is more effective than the way of individual dealing. Like this, a nation can perform its duty, which is difficult for an individual to do. There is a sort of contract between a nation and a member of a nation.While an individual offers tax to the nation, nation guarantees the safety and the property of an individual. Because an individual cannot keep his or her safety and the property, by himself or herself, nation is formed as a large frame. In order to do work rapidly and fairly, the big power is appointed to the nation. It is the power of authority. There are many arguments about the power now because there are many cases that the freedom and interest of an individual are often ignored for the development of a nation. The issue of rice marketing is the case of rice sacrifice for the development of export. In addition, the individual faith is disregarded for the national safety in case of the conscientious rejection of military service. However, I think that properly. If we place society on the autonomy of an individual, our society will be disintegrated because of a excessive individual desire. That problem was occurred as a world economy great depression in 1930.Meanwhile, if government infringes the individual freedom too much, many problems can be occurred. The freedom of an individual is oppressed by the government and human right can be trampled. From the liberation from Japan to the early of 1990, our country experienced dictatorship so that we know the damage of it. In this regard, Government intervention should be enforced within the particular areas. The range of its effect can be the frame, set by law. I think that the freedom and human rights can be guarded in the range of not giving damage to others, and if someone violates law and social rule, he or she should be punished within the frame of social law and social customs. Since the capitalism society admits the private property, all of citizens try to increase their property.whole village so they made a decision to give up 3 houses. In this time, people who possessed those houses threw away their weapons with a great disappointment. However, they held weapons again by samurai. Like this case, if we don’t have our nation, we will only prioritize our interest. Even though we may not have a nation, we can form the collective group. We can form our small nation, whether it focuses on family or purpose.In my opinion we should prioritize our nation to the member of a nation. The safety of people can be guaranteed when a nation exists. In this sense, the freedom of an individual can be restrained. But I think that the freedom can limited by the nation only for the national prosperity and public interest.Like the example above, when people realized that they could keep their houses, they wanted to behave individually and threw away their weapons. However, people held their weapons by the force of Samurai (representing the nation). Samurai said, “It’s a war. If 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