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슬픔의 여로(감상문)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랑과 슬픔의 여로] 이 한편의 영화는 우리들 자신의 지나간 삶의 발자취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을 한다. 나의 삶이 운명에 의해 만들어 졌는가? 흔히들 삶은 운명에 의해서 결정져있어 그 운명에 의해 선택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어르신들은 항상 이런 말씀을 하시곤 한다. 지금 자신의 삶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현대인은 과학문명에 너무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고, 그런 나로 써는 의문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과 같은 기계문명과 보이지 않는 기술의 발달은 운명이란 단어와는 상반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몇 가지 전달 매세지은 살펴보게 되면 파머라는 남자주인공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데에 익숙하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삶은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은 수학적인 공식에 의해 문제를 풀수있는 그런 삶으로 비추어지고 있다. 즉 계산, 확률과 같은 과학적 사고를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인간임을 보여주고 있다. 파머의 운명의 장난의 시작은 한나의 임신과 그 이야기를 들은 파머의 원치 않는 결혼이라는 대답에 한나와 헤어짐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이 영화의 매세지은 이런 우리 현실에서 있을 수 있을법한 이성과의 만남을 다시한번 비극적인 우연을 겹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머의 딸과의 재회를 통하여 이 영화는 마치 세상 좁은 필연에 의해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운명을 설정해 놓구 있다. 이 순간 파머는 현대인의 기계적이고 과학적인 계산에서 비롯된 삶에서 운명과 숙명의 삶으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랑이란 연인관계가 근친상간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며, 이런 메시지는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결국 도달하는 운명의 그림자는 피할 수 없는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 영화에서는 딸과의 근친상간을 넘어서 다시금 옛 애인인 한나와 재회를 하게 되고 자신의 딸을 잃게 되며 결국에는 이운명의 발달인 한나와 재회는 동양의 유교사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다. 즉 인연은 소중한 것이며 작은 만남도 책임을 다해야하며 잘못을 한다면 언제인가는 그 사람에게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다양하며 물질만능주의와 정서적으로 매 말라있다. 또한 최고의 학벌만이 사회에서 성공한다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으며 이런 단계를 밟아야지만 엘리트로서 사회에서 인정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삶이 기계적인 삶이 아니겠는가? 이런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운명을 비관하기도 하고 낙관하기도 한다. 어떤 운명이라는 굴레에서 살아갈지라도 미래를 알 수 없을지라도 지금 현실의 삶은 미래의 운명으로 전개 될 수 있으므로 인간 본연의 사랑과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면 이런 비극적인 운명에 얽매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의 만남에서도 자기 성찰의 기회는 그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