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스케이프 건축의 한국적 수용과 도시에의 반영1.서론오늘날 한국의 건축은 랜드스케이프 건축에 대한 빠른 수용과 그것을 통한 도시에서의 건축의 역할에 대한 하나의 화두가 형성되었고 그것은 서구의 랜드스케이프 건축을 그대로 답습한것이 아닌 또다른 한국적 랜드스케이프로서의 다른 도시에서의 건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는 랜드스케이프 건축의 한국적 변형의 본질과 그것이 도시에서 어떤 의미로 적용되어지는가에 대한 현상을 정리해보고자 함이다.2.랜드스케이프 건축의 정의2.1랜드스케이프 개념의 변화랜드스케이프는 현대건축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적인 용어로서 풍경,경치,경관 또는 조경의 의미로 해석되어 풍경이나 조경개념의 일부로서 느껴지지만 이것은 건축을 둘러싼 물리적인 주변환경과 주변상황을 의미하는 용어이기도 하다.1)랜드스케이프 개념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장르에서 처음 소개 된 것으로 18세기 픽쳐레스크 개념을 바탕으로 한 영국의 풍경식 정원을 통해 본격적으로 건축에 사용되었다. 그이후 ‘조경’으로 독자적인 장을 구축하면서 수목의 절삭기법이나 공간구성방식을 통해 발전하였다. 랜드스케이프가 건축과 본격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것은 1980년대 선구적 건축학교를 중심으로 랜드스케이프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게 되었고 최근 10년 정도가 본격적인 담론이 형성된 시기이다.랜드스케이프 개념은 문화적 장치로써 주변 환경을 배경으로, 건축을 독립적인 오브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속의 일부로써 작동하는 장치로 보는 것이다. 즉 랜드스케이프 건축은 물리적으로 사물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 대한것에서부터 출발하여 사물과 사물의 공간을 관계 맺는 역할로 주변상황과 위치하는 대지의 일체화되는 건축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다.2.2 랜드스케이프 개념의 현대적 의미1900년대 후반에 들어서 랜드스케이프라는 용어는 ‘건축적 경관(Architecture landscape)’2) 이라는 개념으로 건축분야에서 사용되며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엇다. 현대 사회에서 ‘건축적 경관’은 기존의 ‘자연적 경관’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넓은 의미의 경관이 된다. 현대 도시에 있어서 건축적인 개념으로서 랜드스케이프는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 푸른 환경, 이상향 등의 1차적인 의미에서 널리 영향을 미치는 장, 생태적이며 경험적이고 시적인 것이 뒤얽혀있는 것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것은 ‘관계성의 장’을 뜻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즉, 랜드스케이프는 건축의 오브제화를 거부하며. 건축을 단지‘환경을 점유’하는 구조물로 보는것이다. 이것은 건축적 관심이 주인으로서의 건축이 아니라 도시의 배경으로서 존재하는 건축, 건축과 건축 사이의 공간, 점유와 점유 상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옮겨진 것이며 부분과 전체에 대한 관계에 관심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변화 했다는것을 의미한다.3.한국에서의 랜드스케이프 건축의 정의와 의미한국의 랜드스케이프 건축은 2000년대이후 본격적으로 이슈화되었다. 처음 이 개념을 서구에서 받아들일때부터 한국건축가들은 친밀감을 느꼈고, 그러한 이유로 인해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었다.그 이유는 그들이 지금까지 추구했던 생각들과 유사한 생각이 랜드스케이프 건축에 깔려 있었다. 이 과정에서 몇가지 서구와 다른 생각들이 있었는데 자연,건축,그리고 공간에 대한 생각에 근본적으로 한국만의 정서가 포함되어져 있었다. 한국의 랜드스케이프 개념은 서구의 그것과 기본적 맥락은 같았으나 한국이라는 장소성과 맞물려 변형되어지고 그것은 한국전통 건축에서 바라보는 랜드스케이프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서구의 랜드스케이프 건축이 지형의 변형이나 인공적인 지형을 구성하는 것으로 그 특징을 크게 말할수 있다면 한국의 랜드스케이프 건축은 단순한 지형의 변형이나 인공적인 지형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자연과 건축의 조화 공간과 자연의 일체화를 고민으로 한다는것에 차이를 둘수 있다.그뿐만 아니라 시간의 경계나 흔적 그 대지가 포함하고 있는 성격까지도 통합하고자 한다는것이 한국적 랜드 스케이프라 볼수 있다.4.시대에 따른 한국적 랜드스케이프 건축과 변화와 사례랜드스케이프 건축의 시작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다르지만 본격적으로 서구의 개념이 들어오기전 한국에서도 유사한 탐구가 진행되어져 왔다. 1990년대에 과거와는 다른 담론의 형성이 필요하다고 느낀 신진 건축가들에 의해 탐구가 시작되었다.먼저 1991년 ‘가회동 11번지 주거계획 건축전시회’에서 보여지는 골목길과 주거와의 관계는 단순히 도로와 집의 관계가 아닌 그리고 사람이 지나다니고 지나쳐버리는 장소가 아닌 마을 사람들간의 이야기가 있고 머무는 장소를 표방하고 있다. 이 골목들은 막힌 골목이었고 특별한 목적이 없이는 아무도 오지 않는곳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의 건축가들이 생각하는 비움에 대한 생각이었고 서구의 랜드스케이프가 추구하는 도시의 여백과 건축의 공공성에 대한 의견과도 맞아떨어지는 생각들이었다.그 이후 1993년 파주출판단지는 도시 랜드스케이프를 만드는것을 목표로 했다. 코디네이터로 승효상이 선정되었으며 이전과는 다른 건축적 사고를 보여주었다. 단지의 배치계획부터 생태적인 요소를 고려하였고 수로를 제외한 나머지 땅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였다.파주출판단지의 흥미로운 건축유형은 한강변부터 삼학산까지 시계를 확보하는것이었다. 건물 사이 사이를 개방하여 건물의 내외부가 단절되기보단 매우 긴밀하게 연결된다. 그 빈공간들은 도시의 여백이 되고 그것은 랜드스케이프의 주요 개념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건축가들이 주장했던 길과 마당을 현대적으로 실현하는것이었다. 파주출판 단지는 한국에서 랜드스케이프 건축을 실현 시킨 최초의 계획이다. 하지만 이미 프로젝트전에 마스터 플랜이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토목공사가 진행되어짐으로 도로와 대지의 구분이 너무나도 명확해져 버렸고 자연과 건축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프로젝트로 남아버렸다.그 이후 헤이리 아트벨리는 파주출판단지와는 달리 부정형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모든건물이 자연환경과 통합되도록 했다. 하지만 헤이리도 자연과 통합된 건축을 목표로 했지만 오히려 자연속에 건축이 오브제처럼 남아있게 되어 각각의 건축의 연결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그이후 백남준 미술관, 이화여대 캠퍼스센터, 아시아 문화의 전당, 전곡 선사박물과, 행정복합도시등에 이르기까지 랜드스케이프 건축에 관한 변화는 계속 이루어 지고 있다.5. 도시와 랜드스케이프 건축과의 관계과거 도시계획은 도시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들이 가지고 있던 도시 이론도 한국 현실과는 맞지 않았다. 많은 한국과 서구적 이론을 통하여 도시문제의 해결책을 이끌어낼려고 했지만 건축가들은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고 이러한 문제들이 랜드스케이프 건축 개념의 적용으로 인해 또 다른 관점에서 도시를 바라보게 되었다. 랜드스케이프는 도시의 단절에 대한 부분을 실제의 대지와 가상의 대지의 혼합으로 소통을 시도했고 그 소통을 통하여 도시는 이전 도시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건축물의 내부에서만 구축되어진 완결된 세계가 랜드스케이프 건축가들의 urban void 개념의 강조로 외부와 소통하고 공공성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베이겔의 이론을 잠깐 인용해볼까 한다.“ 우리는 물체의 강조에 염증을 느낀다. 오히려 물체 자체보다 물체와 물체의 사이에 존재하는 공허한 빈 공간에 대해 더 흥미가 있다. 건축의 존재이유는 공간이지 물체가 아니다. 최근의 건축은 물체의 강조에 의해 중심요소로서의 공간은 그 의의를 상실하고 논의에서조차 사라져 버렸다.나는 오브제에 대한 의심을 갖고 있다. 이 오브제로부터 멀리하는 방식의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 여기엔 몇 가지 전략이 있는데 하나는 오브제 대신 공간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갑자기 오브제가 있던 곳을 비우는 것이다. 즉 조직공간이 오브제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것은 오브제가 사라져 지형이 되는것이다.“베이겔의 이론은 외부가 실내로 끌어 들여지고 실외와 실내의 모호한 관계가 landscape 이며 이것은 랜드스케이프의 본질이자 물리적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이며 만남의 장소이라는것을 의미한다.이것은 도시에서의 랜드스케이프 건축은 공동체적 연대감을 형성할수 있는 공간적 기능을 수행하는 개방된 도시를 구성할수 있게끔 유도한다는것을 알수 있다.6. 도시에 반영된 한국적 랜드스케이프 건축의 사례6.1 선유도 공원 - 조성룡선유도공원은 산업시설이었던 구축물들까지도 그 땅의 일부라 인식하고 인위적인 모습의 장치로서의 풍경이 아닌 일부의 재구성을 통한 새로운 도시 공원이다. 이것은 단지 새로운 구축만이 랜드스케이프가 아닌 그 공간이 가지는 현재를 중요시하고 그것이 미래에도 반영되어야 한다는 건축가의 생각이 들어있다.6.2 광주 아시아문화의 전당 현상설계 당선안 - 우규승2005년 국제 현상설계로 진행된 광주 아시아문화의 전당 당선안 빛의 숲은 해당 부지의 물리적 켜와 역사를 인식,공개,재생 하고자 했다. 숭고한 기억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거의 모든 건물 프로그램을 지하층에 배치했고 광주시를 위한 시민공원을 계획했다.6.3 이화여대 캠퍼스센터 계획안 - 도미니크 페로2004년 이화여대가 주최한 국제현상설계에서 캠퍼스 벨리라는 타이틀로 도미니크 페로가 당선되었다. 그 이름에서 보여지듯 지하6층의 보이드한 계곡의 개념을 살려 그곳을 거리이자,공원이자,동시에 통로가 되며, 그 형태와 강력한 방향성을 가지는 요소로서 정문 주도로로부터 캠퍼스 내부로 통하는 길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
Final Report건축구조시스템구조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은 디자인을 하는 나에게 많은 물음을 던진다.단지 구조를 이용한 디자인을 말하는것인가 아니면 구조를 통한 건축 디자인을 의미하는것인가... 무엇이 구조디자인이다 아니다라고 말하기엔 그 경계가 분명치 않음은 누구도 부정할수 없을것이다.어떤 건축물은 구조를 필요에 의해서 힘의 방향대로 최소의 부재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위해 디자인 보단 효율에 타협 했을것이고 또 어떤 건물은 건축가의 의도대로 필요치 않은곳에 장식처럼 구조가 달린 부분도 분명 있을것이다 한학기 동안 구조를 배워 오면서 힘의 원리와 여러 구조 시스템에 대해 배웠음에 이 시간은 먼저 간단한 사례를 하나 보고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더 들어 내가 생각하는 구조 디자인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처음 간단히 볼 사례로는 산티아고 칼라트라바라는 건축가의 작품을 보겠다.그 누가 보더라도 칼라트라바의 작품은 구조를 이용한 아름다운 작품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구조미가 탄생한것에는 합리적인 구조시스템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긴 어렵다. 물론 궂이 칼라트라바의 건물을 구조를 통한 구조디자인이라 말을 한다면 구조라는것은 건축을 간단히 포장하거나 장식할수 있는 그런 정도로 밖에 취급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칼라트라바의 작품이 그정도로 구조를 남용했다는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구조디자인이다! 라고 명확히 말할정도는 아니라는 이야기다.밑에 사진은 발렌시아 해양박물관이라는 칼라트라바의 대표작중 하나이다.과도하다 싶을정도로 많은 강재와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늘어서 있는것이 보인다. 사람눈을 컨셉으로 스케치하여 럭비공 모양의 돔을 아치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명쾌하게 구조만을 가지고 디자인 했다고 보기엔 육중한 콘크리트 기둥 패턴들이 구조시스템의 효율에 대해서 물음을 던진다.이 같은 패턴으로 늘어선 구조물들이 꼭 필요한 구조물들이었을까? 당연히 칼라트라바의 형태 즉 이미지 만들기를 도와주는 장식적인 요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치 않은 많은 구조들이 그의 건축을 장식하고 있기에 구조디자인이라 말하기 힘들다는것이다.그렇다면 이제는 두 번째 구체적인 사례를 보겠다.칼라트라바의 디자인은 어딘가 명확하지 않은 구조시스템과 형태에 의존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이번에 살펴볼 사례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구조디자인의 개념에 적합한 예가 되기에 소개 하고자 한다.위 사진은 스위스 베른에 있는 렌조피아노의 파울 클레 미술관이다.이 미술관은 알프스 산맥을 뒤로 하고 완만한 언덕에 자리 하고 있다. 렌조피아노가 클레라는 예술가의 사상을 표방하고 지형에 대한 많은 관찰 끝에 설계 했다고 한다.사진에서 보면 알수 있듯이 언덕이라는 지형적 특성을 그대로 가져와 자연스러운 힘의 흐름을 이용한 곡선을 통해 세 개의 인공적인 언덕을 잘 배치 했음을 볼수 있다.자연스런 형태 덕분에 주변 풍경과 하나가 되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방해하지 않고 미술관의 차분한 분위기와도 잘 어울린다.구조물은 얼핏 보면 개개의 아치로 이루어진것처럼 보이나 하나의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물결무늬의 곡선은 중간부분의 아치에 걸린 추력을 양옆 반대 방향의 땅을 향하는 아치로 힘을 상쇠 시키고 양옆은 두 아치는 기초를 통하여 지지하고 있다.이 건물은 아치의 특성상 추력이 생기는것을 이용하여 앞쪽 파사드와 안쪽 부분의 벽을 인장 와이어를 이용하여 매달았다. 그리고 평면을 보면 알겠지만 아치곡선의 방향과 공간을 구획하는 벽들의 방향이 일치하는것을 볼수 있다. 벽을 바닥 슬라브에 고정한것이 아니라 아치를 이루는 부재에 고정시켰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역시 아치의 추력을 잡아주기 위한 방법이자 벽을 고정시키는 1석 2조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 된다.그리고 곡선 부재가 한쪽 방향으로 쓰러지거나 기울어지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강관을 보 형식으로 열결했다. 하지만 디자인적 요소를 고려한것인지 굵은 강관으로 안정되게 연결 한것이 아니라 가는 강관을 연결한뒤 일정한 위치마다 힌지로 접합된 보강재를 두었다. 이 보강재는 강관의 비틀림이나 휨을 방지하기 위한것과 디자인상 패턴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치의 뎁스를 두껍게 한것은 힘을 받는 면의 깊이가 깊어야 좌굴을 막을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것이다. 이렇게 파울 클레 미술관은 명확한 구조와 건축가의 컨셉이 잘 어우러진 건물이다.
브루넬리스키의 돔을 읽고...20000741 고영성책의 내용은 이렇게 시작된다. 처음 시작에서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 공사 현상설계가 진행되고 거기서 필로포 브루넬리스키의 안이 당선된다. 당시에는 생각도 할수 없었던 이중 쉘 구조라는 생소한 구조와 목조틀을 대지 않고 시공한다는 그 자체 만으로 많은 놀라움을 가져다준 안을 제시하여 놀라움을 알겨주었다고 한다. 브루넬리스키는 공증인 양아버지 밑에서 자라 십오세때에 공방에 들어가게된다. 물런 아버지는 공증인으로 크길 바랬지만 브루넬리스키가 공방에 들어가길 바랬다고 한다.금 세공사로 일하다 이름을 알리게 될즈음 로렌초 기베르티를 만나게 된다. 그와는 라이벌 관계로 죽을때까지 싸우게 된다. 그들의 인연은 산타마리아 대성당 앞의 세례당 문의 조각을 세공하는 공모전에서 공동 우승을 하면서 부터이다. 이후 부루넬레스키와 조금은 다른 길을 걷지만 이 사람이 없었다면 브루넬리스키를 자극해줄 만한 사람들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든다.브루넬리스키는 흑사병으로 고통받는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여행을 다니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판테온을 보고 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판테온의 거대한 돔과 그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보면 흥미를 가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놀라고 감탄하게 되는 공간에서 하물며 브루넬리스키 같은 건축가가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건 생각도 할수 없는 일이다.그 후 다시 피렌체로 필리포가 돌아오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바로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 현상설계 였다. 다시 돌아와 대성당의 돔을 맡게된 브루넬리스키는 5등분 첨두 아치를 이용하여 반구형 돔보다 높고 큰 돔을 만들게 된다. 브루넬리스키는 수학,역학에도 관심이 많이 돔 공사중에 권양기,기중기를 새롭게 발명해 효율을 높이기도 하였다. 브루넬리스키의 권양기와 기중기는 기존의 것보다 훨씬 적은 힘으로 많은 일들을 하게되었다. 브루넬리스키는 목재, 석재등 재료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렇기에 그 큰돔을 지을수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목재를 기다리다 2년의 세월이 흐르기도 하고 석재를 강을 통하여 옮기다 자신이 설계한 배가 가라 앉기도 했다. 석재는 대리석으로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외부 마감재였다. 그것이 강에 수장되면서 브루넬리스키에게 많은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브루넬리스키가 그리 좋은 성격을 아니었기에 그 비난을 다 견뎌내지 않았을까? 철저한 재료를 골라냄으로서 더욱 견고한 모습의 돔이 나왔으리라 생각이 든다. 이런 부분의 지금의 설계하는 사람들이 배워야할 부분이기도 한 것 같다. 물런 그런 건축가들도 있겠지만...대리석의 수장으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고 또 그쯤하여 피렌체는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거기서 브루넬리스키의 활약을 기대해 보지만 계속되는 불운인지 그만 크게 패하고 만다. 브루넬리스키는 전쟁에 군사작전을 계획하는 사람으로 참가하게 된다. 그 당시엔 그런것까지 건축가가 했다고 한다. 운이 좋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그 고집때문인지 브루넬리스키의 전략이 크게 실패하고 그 뒤 피렌체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빠진다. 당연히 그로 인해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 공사는 더욱 더 더디게 진행되어졌고 인부들의 삯도 많은 부분 삭감되어졌다. 브루넬리스키도 말할 것이 없었다.많은 어려움 끝에 1436년 돔이 완성 되고 피렌체은 축제분위기 속에 헌당 예배를 드린다. 그도 그럴것이 그크고 웅장한 그리고 기념비적인 돔이 완성되었으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좋았을까?만약 한국 해양대학교 해양과학 기술대학이 리노베이션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그보다 좋을까... 아마 그 소식과는 비교할수 없을만큼 피렌체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고 좋았으리라...헌당 예배후에 돔위에 올라갈 첨탑을 현상공모로 하게 되었다. 이것은 브루넬리 스키의 처음 안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게 되는 그런 상황을 브루넬리스키는 맞이하게 된다. 어이없게도 같이 일했던 자신의 모형을 만들어주던 목수가 디자인을 베껴 내어 그것이 당선되게된다.브루넬리스키의 죽음후에 그는 자신의 혼신의 힘을 다해 건축한 그 돔 밑에 묻히게 되는 아주 운좋은 건축가가 된다. 책은 이렇게 끝이 난다.
여객터미널 국내 국외 사례 조사국내 – 목포여객선터미널 국외 – 오산바시 여객선 터미널목포여객선터미널국제여객선터미널 연안여객선터미널 42개 항로에 60척으로 전국 여객선 보유량의 43%를 점유살펴볼 순서목포국제여객터미널과 목포연안여객터미널의 위치 목포항의 역사 여객선터미널에 대하여 목포여객터미널의 재개발에 대하여 주변여건 정리목포여객터미널의 위치목포항의 발자취고종 34년(1897년10월16일) 개항 과거 목포진 또는 목포영진으로 통칭 1945년 8월 교통부 목포부두국 1961년 10월 교통부 목포지방해운국 1977년 12월 해운항만청 목포지방해운항만청 1980년 10월 목포항 종합여객터미널 준공 1997년 5월 해양수산부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이후 대불부두, 신한, 용당부두 준공 2004년 3월 목포항 연안여객터미널 신축공사 착공(2006년 11월 완공예정 1898목포부두목포항 과거-현재1901년 개항 4년후의 목포항1912년 목포전경1930년대 목포항1930년 현재 만호동의 모습(뒤편의 작은 산이 만호진이 있던 곳임)1960년대 목포1970년대 목포1989년 삼학도와 목포2000년대 현재의 목포목포항개발계획목포여객터미널안벽길이(m) : 351m 수심(m) : 6.5~8m 접안능력DWT : 1만톤급 1선석, 4천톤급 1선석 야적장(㎡) :984㎡운행되는 배의 크기로 추정해 보는 여객터미널의 규모1920년대 현재터미널자리2000년대 여객터미널2007년 완공예정인 여객터미널 조감도목포항 연안여객터미널 실정현 목포항 연안여객터미널은 1979년도에 건립되어 노후가 심하고 협소하여 터미널을 분산운영 함으로써 이용여객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으며, 또한 신안군 등 연안도서를 운항하는 여객선의 대부분이 차도선(차량운송겸용)이며 차량이용 여객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나, 현 여객터미널은 여객중심으로 건립되어 여객의 다양한 서비스 요구를 능동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최대의 여객항로를 보유(40개 항로 60척, 전국점유율 40%)하고 있어 목포항의 위상에 걸맞게 최신시설을 갖춘 연안여객터미널 확보가 절실히 필요한 실정목포 연안여객터미널 재개발에 대하여새로이 건립하게 될 연안여객터미널은 목포항의 이미지와 미래지향적인 상징성을 고양하고, 이용객 및 주민에게 문화, 관광 및 휴식장소 등 환경친화적인 문화공간을 제공함으로써 피서철마다 겪던 교통혼잡과 여객의 불편이 해소되어 관광객의 증가를 더욱 촉진시키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 2005년까지 총 사업비 약 250억 원을 투자하여 기존 연안여객터미널을 철거하고 목포항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연면적 12,900㎡(3,900평) 규모의 연안여객 터미널을 새로이 건립하기 위해 10월 8일 설계 현상공모에 들어감. 현상공모를 마친 후 실시설계 및 사업 인허가 과정을 거쳐 2004년 3월 신축공사 착수.연안여객부두 조감도여객터미널 부근의 주요시책*원도심 경제 활성화 지원 @북항에 서남해권 수산물거래 및 관광거점화 기반마련(해양수산청 어항단지 조성과 병행 추진) → 북항 상가 명소화(사례 : 부산 자갈치 시장, 군산 수산업 센터 등) @상해직항로 취항에 따른 중국 및 국내 관광객 래방에 대비하여 쇼핑거리를 조성하고, 중국인을 상대로 한 음식점, 숙박업 등 유통 및 서비스업 지원 →건어물 상가, 차 없는 거리, 목포극장 앞 거리등을 의류, 식품, 생필품 등 쇼핑 특성화 거리로 조성 →역세권 개발사업과 병행하여 지역간 유기적인 연결체계 유지 ◆ 상해 직항로 재취항 : '05. 2월 재 취항(주 2회 왕복운항) - 운항선박 10천t, 화물 140t, 승객 1.200명 운송 ※ 상해 크루즈사에서 '02. 11. 20·'03. 4. 21까지 운항 중 적자 누적으로 운항 중단*원도심 발전기반 지속 확충 @목포내항에 국제 유통기능과 연안 종합 항만시설을 확충하고, 역세권을 종합적으로 개발해 감으로써 상호 발전 도모 ◆ 내항(여객터미널) 일대 정비 - 목포항 연안 여객터미널 신축 및 현대화 추진(연면적 3,500평) - 국제항만타운(8,000평) 진입로 개설 설계용역 수행 ◆ 역세권 개발 - 역전 교통체계 개선(버스승강장 증설 정비, 교통안내소 철거) - 역전→내항, 역전→유달산 등 주요 통행로 정비 *멋과 맛과 남도 문화 마케팅 @만호진 역사공원 지표조사와 진입로 개설을 추진하고, 「역사·문화의 길」조성사업을 구체화하여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 → 구 동양척식 건물정비(595㎡) 및 구 목포청년회관 보수추진결론유달산 보호지역과 연관되어 전반적으로 발전의 속도가 느려진 공간을 터미널의 재개발을 통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려는 점에서 지금 설계 하고 있는 항만재개발을 통한 도심의 활성화와 연관이 깊었다. 부산과 같이 항만도시라는 점에서 점차 발전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개발계획을 할 때 장기간으로 넓은 시야를 가지고 개발을 해야 전체 도심이 함께 발달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출처목포시청홈페이지 – 행정정보 주요시책, 목포개항 100년사, 목포홍보책자 등 인터넷 사이트 NAVER, GOOGLE,PARAN,DAUM 등 다수 자료Yokohama International Port Terminal오산바시 국제여객 터미널위치요코하마에 대해서 - 19세기 일본에서 가장 먼저 개항하여 서구문명을 받아들여온 무역항 - 원래 조그마한 어촌이었으나 1859년 미일수호통상조약에 따라 이웃한 가나가와가 외국인의 거주와 교역이 가능한 항구로 선정되면서 발전하기 시작. 1923년 지진과 화재로 도시가 파괴된데 이어 제 2차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미국의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2차례 모두 재건이 이루어 졌다. 이후 일본 제2의 도시로 성장했으며, 주요 항구이자 산업 중심지가 되었다미나토 미라이 21과 오산바시24시간 활동하는 국제 문화도시로서 국제회의와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기능을 갖춘 국제 교류의 거점 21세기의 정보도시로서 첨단기술, 지식집약, 국제업무 기능르 집적시켜 경제, 문화 등 각종 정보를 창조 또는 발신하는 정보도시 3. 물과 푸르름과 역사로 둘러싸인 휴식공간으로서 풍부한 녹지와 주차장, 미술관, 음악 콘서트홀등을 설치 4. 분명한 목적과 미래를 지향하는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고자 1981년 10월 사업명칭을 공모하여 '미나토미라이 21' 사업을 확정함. 5. 연안의 초고층 건물은 스카이라인을 고려하여 설계된 것으로, 토지주(주로 대기업)와 제3섹터(사업자)간 제휴(협정)을 통해서 건설미나토미라이 발전과정2005년 5월ConceptFOA가 제안한 'Battle Field' 개념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수용하기 위해 여러 요소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하여 실질적으로 전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전쟁터, 즉 가변적 공간 설정을 위한 것이다. 여객터미널과 도시 공공시설, 거대한 정원이라는 복합적 기능을 수용하기 위해, FOA는 프로그램들의 판을 겹쳐 연속적으로 구성함으로써 해결하고 있다.터미널 개요위치: 일본 요코하마 시설규모 구조: 철골조 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최고높이 15m, 건물의 길이 약 430m, 폭 약 70m 전체바닥면적: 44,000㎡(지하: 약 2,000㎡, 1층: 약 20,000㎡, 2층: 약 22,000㎡) 시설내용 지하: 기계실, 방재센터 외 1층: 주차장 외 2층: 여객선 터미널 시설(출입국 로비, CIQ(세관, 입관, 검역시설, 오산바시 홀, 레스토랑 외) 옥상: 광장, 송영 데크 건물의 특징 야마시타 공원등으로부터의 전망이나 주변경관에 대응하는 높이로 주역인 여객선을 강조하며 배가 항구에 닫는 경관을 배려 지붕면은 느슨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개성적인 디자인 건물내부는 주랑이 없는 대공간을 구성 계단이 없고 슬로프나 엘리베이터에 의해 상하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대응. 계선능력 7만톤(QE2) 클래스가 2척, 3만톤급 클래스 4척의 동시 착안이 가능. ① 야마시타측 돌벽/연장: 450m, 수심: 12m ② 심미나토측 돌벽/연장: 450m, 수심: 10~11m공간구성평면상의 길다란 사각형의 판들은 코르뷔제의 도미노처럼 수직으로 쌓인 것이 아니라 판들이 겹쳐져 건물 전체가 하나의 판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단면은 조금씩 형태가 변하는 코일을 붙여놓은 것 같은데, 모든 공간이 연결되고 열려 있기 때문에 이용객들의 유동성이 확보된다. 주름진 부분의 높이가 다른 판들을 연결하는 동선이자 구조적으로도 강성을 높여주고 있다. 더불어 건물의 일부를 도시 지면까지 연속시키고, 각 프로그램이 수용된 판들이 그대로 외피로 이어짐으로써 내부의 구성 방식과 구조, 외피가 통합되는 체계를 만들고 있다.총 4개의 바닥판이 접혀지고 갈라지면서 이음새없이 연결되는 형상이 프로그램의 개념과 밀접함을 보여준다. 또한 랜드스케이프와 같이 완만한 고저차를 갖고 있는 형태는 건물 전체를 통해 여러 기능들이 명확한 분절에 의해 지정되지 않고 특수한 영역을 설정한다. 건물을 구성하는 바닥 면은 도시 지표면과도 물리적으로 연속되어 있어 인근공원을 보완해 줄 공공공간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도시공간을 건물 안으로 침투시키고 있다1층- 주차장유로 주차장으로써 양벽으로 휘어지며 건물의 선단으로 펼쳐진 천장은 종이접기 같은 형태로 아름다움을 연속시켜간다. 최대 400대의 중형차, 28대의 대형버스가 주차 가능하다. 버스의 이용빈도가 적기에 일반차량의 주차공간을 넓혔다.2층- 출입국 로비, CIQ, 오산바시 홀세관, 출입국 관리, 검역시설(CIQ플라자) 외국 선객의 출입항시 승선객의 물건의 통관 검사, 여권 비자의 심사,전염병 이나 동식물의 조사를 행하는 장소이다. 여기에 설치된 검사대는 가동식으로 여객선이 없을 때는 창고로 사용되며 CIQ플라자로써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출입국 로비 사진CIQ 전경결론결론 요코하마 여객터미널은 MM21지구의 일환으로 기존의 지형적인 요소(녹지가 연결이 되는)를 이어나가면서도 여객터미널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데에서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터미널 하나만 봐야 할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 전체가 함께 발전하고 있는 점이 인상이 깊었다. 국제 터미널의 요소를 갖추기 위해선 터미널의 주변 환경과 시설, 프로그램 등도 골고루 개발되어야 하는데 오산바시의 경우는 잘된 것 같다.{nameOfApplication=Show}
Peter latzPeter latz 1939년 Darmstadt 태생 Technische Universitat Munchen-Weihenstephan 조경 전공 1968까지 도시연구소와 Technische Hochschule에서 조경가로 활동 1989년 Hafeninsel municipal park로 BDLA상 수상 1991년 IBA Emscher park의 한 부분인 Landschaftspark Duisburg – Nord 설계 Luxembourg, European City 계획 현재 조경가 및 도시계획가로 활동중Peter Latz는 유럽조경의 혁신을 가져온 사람중의 한 사람이며, 자연을 시적으로 묘사해 오던 경향을 거부 하면서 자연의 문화적인 표현을 중요시한 작가이다. Peter Latz 의 디자인은 주어진 상황과 site의 맥락과 특징들을 기초로 한 그의 작품들은 최소한의 개입(minimum intervention)을 통해 산업시설의 잔재들을 보여줌으로서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성격을 후손들에게 전달시켜주는 문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 하고 있다. Peter Latz의 디자인 철학과 그의 작품 중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Duisburg Nord Landscape Park와 Burger auf der Hafennisel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 경향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존재(EXISTING)를 다루는 디자인그의 작품은 장소성, 장소의 령(genious of place) 으로부터 시작한다. 디자인 요소들은 장소의 한 부분에서 비롯되며 주어진 상황과 부지의 이해에서 기초되어진다. 따라서 그의 디자인의 첫 단계는 지역을 분석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고, 부지의 맥락과 특징들은 바뀌거나 없어 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이용되거나 다른 기능 으로 전환되어 디자인으로 나타난다. 그는 산업시설의 잔재들을 숨기거나 파괴하는 것보다 이러한것들을 기초 로하여 해당 부지의 역사를 자유롭게 그리고 새롭게 만드 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원은 역사적인 공시키기 위해서는 조경가와 생태가 사이의 대화가 필요하며 이것은 생태와 디자인을 통합하기 위한 시간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즉 그의 디자인은 생태와 디자인 두 분야를 모두 다루면서도 또 그들의 구분을 추구 한다. 또한 표면적으로 그의 디자인 접근은 변화하는 인공 환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전까지의 자연의 시적인 표현 을 거부하고 길들임을 언급하면서 자연의 문화적인 표현을 중요시 하였다. 이는 무엇보다도 어떻게 인간의 삶을 자연의 생태적 체계와 상호작용에 적절히 맞추고 어떻게 생태적인 원리들을 도시구조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오늘날 완전한 생태계의 보전은 인간이 복합적인 환경의 일부라는 사실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창출해야 하며 그러한 환 경은 개별적인 것이 아닌 총체적인 프로 젝트에 기초를 두고 분석되고 관리되고 조절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친환경적이고 생기 넘치는 도시구조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경관과 다목적 이용에 적절한 오픈스페이스 체계의 형성과 물, 에너지, 물질 등과 같은 자원의 재순환과 재활용이 필요하다.이 개념으로 시작된것이 바로 Peter Latz의 Duisburg Nord Landscape Park의 하천 시스템이다. 그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함수 했다가 천천히 투수 시키거나 방류시키는, 트렌치 시스템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정화된 물을 수로로 들어오게끔 하여 식물들에게 정화된 물을 돌려 주었다. 그 외에도 Duisburg Nord Landscape Park에서 하부구조와 벽돌포장 식생과 같은 재료를 재활용함으로서 여러 방식의 생태적 접근을 선보이고 있다.그림 Duisburg Nord Landscape Park통사론법(syntax) 디자인대부분의 예술가들이 형태보다 패턴을 덜 중요 시 여기는 반면 Peter Latz에게 패턴과 그리 드는 독립된 이용행태를 위한 하부구조를 이 루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그의 디자인은 단일 개체가 아니라 여러 레이어들의 구성이다.그의 작품들에서 가장 기본적인 구조는 철도 네트워크이다. 이지에 자연스레 형성된 소생물권(biotop)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기념 할만한 공업 유적물들을 industry landscape라는 개념하에 랜드마크로서 보존하고 있으며 새로운 예술적 접근으로 복구하기도 하며 내부를 개조하여 전시장, 공공기관, 연구소, 사무실 등으로 재활용 하기도 한다. Duisburg Nord Landscape Park 계획에서는 “금지구역”- 철광이 문을 닫은 1985년까지만 하더라도 산업 노동자들만이 이곳을 드나들 수 있었다 –이라는 과거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흥미로운 레크레이션 구역으로 새로이 변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부지의 독특한 성격만은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이러한 그의 의도는 이 공원의 이용자들에게 여가와 자연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하였고 철도 제방을 따라 가다보면 철강 공장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현존하는 기존 요소들을 유지한 채 다른 요소가 도입되어 많은 종류의 다양한 형태가 이 공원에서 행해지도록 하였다.그림 트레이닝 장소그림 공연장Duisburg Nord Landscape Park (뒤스브르그-노드 공원)대규모 공원계획 프로젝트인 엠셔파크 프로젝트는 독일 북서부의 역사적인 중공업 지대인 루르 지방의 생태적 해 결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건전 한 생태적·경제적 재개발 전략”을 실현 하기 위해 약 90개의 개별 프로젝트 가 7개의 키 프로젝트로 구성되며 키 프로젝트인 엠셔공원-보편적인 구조와 연결고리에 이질적인 패턴을 주기 위해 개발예정인 오픈 스페이스 체계-과 관련되는 프로젝트중의 하나가 Duisb urg Nord Landscape Park이다.거의 200ha에 달하는 예전의 철강지역이 경관공원으로 재개발되어 산업 역사 박물관이 들어서며 Duisburg시의 여러 도심과 인접지역의 도시들을 잇는 대규모 공공 오픈 스페이스가 조성되었다. 1991년 설계공모전에서 당선된 Peter Latz팀은 “보호적 계획과 실현개념(protective planning and realization concept)을 제 가장 중요한 방법중의 하나가 물을 정화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하려고 하는 것은 자연형태를 이용하거나 또는 오염 된 어떠한 것들을 남겨놓으면서 그것을 자연으로 회복시켜 경관을 재창조 하는것이다. 주 개념은 해당 공간을 재해 석하여 수로의 물을 정화하는 것이다. 이는 버려지고 오염된 땅으로부터 출입금지를 시켜 부지내의 수로에 빗물을 모으고 베드를 올리는 것을 포함한다.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 걸을 수 있고, 볼 수도 있고 더 이상 펜스가 필요 없는 깨끗한 물을 함유한 수로를 창출하는 것이다.그림 Duisburg Nord Landscape Park그림 Duisburg Nord Landscape Park이 프로젝트에는 '색'이 있다 : 빨간색은 지구를 표현한다. 회색과 녹색 지역은 금지된 곳, 오르거나 들어갈수 없는 지역을 표현하며 화이트와 블루는 오픈된 지역을 의미한다. 또한 생태법칙이 있다 : 식물성장을 위한 매개물과 건물 재료로 서의 재생이다. 식물매개물로서 메탈, 석탄, 금속을 이용한 것 중에 하나이다. 전체적으로 이 공원은 산업이 남겨놓은 것들을 숨기거나 파괴하는것보다 새롭게 이러한 것들을 기초로 하여 이러한 것들의 역사를 자유롭고 새롭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버려진 땅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벙커들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어서 기르도록 하고 이렇게 이용된 정원들 은 환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또한 몇 년 동안 방치된 산업 잔재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나무와 식물들은 사람들 에 의해 일어나는 피해의 잔상을 보여주며 Latz는 이러한 것들을 통해 Site가 품페이와 같은 황폐한 도시로 방문그림 벙커가든객들을 매료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벙커 건물들의 오래 된 벽은 “암석 표면”이 되고 콘크리트를 가로 지르는 암벽 길은- 갈라진 틈, 움푹 파인 곳, 흔적 – 등산 그룹들의 트레이닝을 위해 이용된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분화구가 경관으로 인식되고 제방 위 에는 풀들로 가득차 있다. 기존의 산업 구조물로서의 목적 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요소들은 조경으로 재창조 되었다.작되었고 Duisburg Nord Landscape Park의 선례가 된다. Latz가 Duisburg Nord Landscape Pa rk에서 보여주었듯이 그는 레이어들에 의한 디자인을 시작했다. 첫번째 레이어는 공원과 도심들을 연계하기 위해 도시 도로망을 회복하거나 창조하는 것 이었다.섬 주위의 북쪽 수로는 이곳을 쉽게 가로지르도록 연계되어있다. 이 수로는 역사적 관점에서 오래된 Prussian Ordnance Survey 지도의 그리드를 따른다. 두번째 레이어는 잡석 언덕으로부터 나누어지는 새로운 공공 가든 의 연결이다. 이 오픈 스페이스 또한 공원과 도심을 연결하고 하페니셀이 만들어지는것을 돕는다. 세번째 레이어는 사이트에 존재하는 흔적의 보전에 기초한다. 네번째 레이어는 건물, 석탄 벙커 , 철로 등 산업 유적물을 포함한다. 이곳의 레스트 가든은 물놀이, 꽃, 과실수의 파라다이스 정원으로 둘러 싸여있고, 커뮤니티 공간은 주민들이 사이 트로부터 모아온 돌과 암석으로 만들어 졌다.결 론Peter Latz의 작품 경향에서 보듯이, 공간이라는 개념 하에서 전통이란 몇 백년 동안 내려온 역사성만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 그 공간이 원래 지녔던 기능이나 의의 또는 그 공간에서 생활하였던 사람들의 기억에 대한 작은 배려와 같은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Duisburg 지역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공장과 공터, 산업 유적물의 보수 및 보존에 대한 정책에 힘입어 Industry Landscape라는 이름으로 그 지역의 옛 모습을 각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들이 그리 낭만적이거나 풍경식적이지 않은 경관이라는데 더욱 큰 의의가 있다. 이처럼 Latz는 산업 잔재들을 조경의 한 요소로서 놓음으로서 사람들이 새롭게 해석된 방법으로 이러한 산업 유적물들을 알게 되고 자연을 자연스럽게 발견할수 있도록 하였다.참고문헌 · Stefanie Meinicke, “서유럽의 생태적 도시계획과 조경”, [환경과 조경], 1995년 12월호 · Arno Sighart 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