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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탈해왕-삼국유사와삼국사기
    삼국유사와삼국사기 내용 비교삼국유사삼국사기탈해왕은 용성국(龍城國)의 함달파왕(含達婆王)과 적녀국(積女國)의 공주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왜국(倭國)의 동북쪽으로 1천리 떨어진 다나파국(多婆那國)의 왕과 여국왕(女國王)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가락국 앞바다에 배가 도착했을 때 수로왕이 북을 치며 배를 맞아들이고, 그 배를 자기 나라에 머물게 하려고 했으나 배는 곧 되돌아 신라 동쪽 아진포 앞바다에 도착.배는 맨 처음 금관가야의 바닷가에 도착하였지만, 금관가야 사람들은 그 배를 괴이하게 여겨 주워들지 않았고, 배는 아진포 어귀에 도착.“옛적 우리집이었다”란 트집으로 호공의 집을 차지했다고 해서 성을 석(昔;옛)이라 함.궤가 떠내려 왔을 때 까치 한 마리가 울면서 날아 따라왔다 해서, 작(鵲;까치)자를 줄여서 석(昔;옛)자로 성씨를 삼음.노파가 탈해를 대접한 지 7일만에 토함산 에 올라가, 그곳에 머무르면서 도성을 굽어 살펴 길운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는 살 만한 터전을 찾음.고기잡이로 생업을 삼아 어머니를 봉양하다가 어머니로부터 학문에 종사하라는 명을 받고 학문에 전력을 다하고 겸하여 지리를 알게되어 좋은 집터를 알아 봄.알지라는 말을 어린아이, 즉 아기를 부를 알지가 세한(勢漢)을 낳고 세한이 아도때 쓰는 말이라고 함. (阿道), 아도가 수류(首留), 수류가 욱보(郁甫), 욱보가 구도(仇道)를 낳고, 구도는미추를 낳았다고 함으로써, 알지를시조로 하는 경주김씨의 세보를(世譜)소개함.1.내용탈해치질금(脫解齒叱今; 토해니사금吐解尼師今이라고도 함)은 남해왕(南解王) 때(고본古本에는 임인壬寅년이라고 했으나 이것은 잘못이다. 가까운 일이라면 노례왕弩禮王의 즉위 초년보다 뒤의 일일 것이니 양위讓位를 다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또 먼저의 일이라면 혁거세왕赫居世王 때의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이 일은 임인壬寅년이 아닌 것임을 알겠다)에 가락국(駕洛國) 바다 가운데에 배 한 척이 와서 닿았다. 이것을 보고 그 나라 수로왕(首露王)이 백성들과 함께 북을 치고 법석이면서 그들을 맞아 을 바르게 했소. 팔품(八品)의 성골(姓骨)이 있는데 그들은 고르는 일이 없이 모두 왕위에 올랐소. 그때 부왕 함달파(含達婆)가 적녀국(積女國)의 왕녀(王女)를 맞아 왕비(王妃)로 삼았소. 오래 되어도 아들이 없자 기도를 드려 아들 낳기를 구하여 7년 만에 커다란 알[卵] 한 개를 낳았소. 이에 대왕은 모든 신하들을 모아 묻기를, '사람으로서 알을 낳았으니 고금(古今)에 없는 일이다. 이것은 아마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하고, 궤를 만들어 나를 그 속에 넣고 칠보와 노비들을 함께 배 안에 실은 뒤 바다에 띄우면서 빌기를, '아무쪼록 인연 있는 곳에 닿아 나라를 세우고 한 길을 이루도록 해 주시오'했소. 빌기를 마치자 갑자기 붉은 용이 나타나더니 배를 호위해서 지금 여기에 도착한 것이오." 말을 끝내자 그 아이는 지팡이를 끌고 두 종을 데리고 토함산(吐含山) 위에 올라가더니 돌집을 지어 7일 동안을 머무르면서 성(城)안에 살 만한 곳이 있는가 바라보았다. 산봉우리 하나가 마치 초사흘달 모양으로 보이는데 오래 살 만한 곳 같았다. 이내 그곳을 찾아가니 바로 호공(瓠公)의 집이었다. 아이는 이에 속임수를 썼다.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 곁에 묻어 놓고, 이튿날 아침에 문 앞에 가서 말했다. "이 집은 우리 조상들이 살던 집이오." 호공은 그렇지 않다 하여 서로 다투었다. 시비(是非)가 판결되지 않으므로 이들은 관청에 고발하였다. 관청에서 묻기를, "무엇으로 네 집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하자, 어린이는 말했다. "우리 조상은 본래 대장장이었소. 잠시 이웃 고을에 간 동안에 다른 사람이 빼앗아 살고 있는 터요. 그러니 그 집 땅을 파서 조사해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이오." 이 말에 따라 땅을 파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다. 이리하여 그 집을 빼앗아 살게 되었다. 이때 남해왕(南解王)은 그 어린이, 즉 탈해(脫解)가 지혜가 있는 사람임을 알고 맏 공주(公主)로 그의 아내를 삼게 하니 이가 아니부인(阿尼夫人)이다. 어느 날 토해(吐解)는 동악(東岳)에 올라갔다가 내고 뼈마디는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은 이른바 천하에 짝이 없는 역사(力士)의 골격(骨格)이었다. 이것을 부수고 소상(塑像)을 만들어 대궐 안에 모셔 두었다. 그랬더니 신(神)이 또 말하기를, "내 뼈를 동악(東岳)에 안치해 두어라"했다. 그래서 거기에 봉안케 했던 것이었다(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탈해脫解가 죽은 뒤 27世 문호왕文虎王 때 조로調露 2년 경진庚辰(680) 3월 15일 신유辛酉 밤 태종太宗의 꿈에, 몹시 사나운 모습을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였다. "내가 탈해脫解이다. 내 뼈를 소천구疏川丘에서 파내다가 소상塑像을 만들어 토함산吐含山에 안치하도록 하라." 王은 그 말을 좇았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지금까지 제사를 끊이지 않고 지내니 이를 동악신東岳神이라고 한다).2. 해석탈해이사금에 관한 남해왕때의 일이다. 어느 날, 가락국 앞바다에 배 한 척이 와 닿았다. 그 나라의 임금 수로왕은 신하와 백성들을 이끌고 북을 치며 나아가 배를 맞아들였다. 수로왕은 그 배를 자기 나라에 머물러 있게 하려고 했다. 그랬더니 배는 곧 되돌아 쏜살같이 달아나버렸다. 배는 신라동쪽 하서지촌의 아진포 앞바다에 와 닿았다. 아진포 갯가에는 한 노파가 살고 있었다. 그 노파의 이름은 아진의선이라고 했다. 그는 바로 혁거세 왕에게 해물을 진상하던 고기잡이 어미였다. 아진의선 노파는 어느날 바다 쪽으로 들려오는 난데없는 까치들의 지저귐에 놀랐다. 바다 쪽을 바라보며 노파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 바다엔 까치들이 모여들 곳이라곤 바위하나도 통 솟아 있는게 없는데 웬일일까? 까치들이 저리 모여 우는 건...." 노파는 곧 배를 끌어 내어 까치들이 지저귀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까치들은 어떤 배 위에 모여들어 지저귀고 있었다. 노파는 그 까치들이 모여 지저귀는 배 곁으로 바싹 배를 대어 보았다. 배 안에는 궤 하나가 놓여 있었다. 길이가 스무 자쯤, 폭이 열 석 자쯤 되어 보였다. 갯가 수풀밑으로 그 배를 끌어다 놓고서, 노파는 그 궤속에 무엇이 들어 있으며, 그것이 흉한 일인지 길한 일는 아니라고들 생각했나봐요. 그래서 커다란 궤를 만들어 그때 아직 알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나와 또 일곱가지 보배와 나를 모실 노예들을 넣어서 배에다 실어 바다에 띄웠답니다. 바다에 띄워 보내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빌었답니다. 아무쪼록 너와 인연 잇는 땅으로 흘러가서 나라를 세우고 집을 이루어 잘 살라고요. 나와 보배와 노예들을 실은 배가 그 용성국의 해안을 떠나자 홀연히 붉은 용이 나타나더니 배를 이곳으로 호위해 왔답니다." 말을 끝내자 그 용성국의 애송이 왕자는 지팡이를 끌고 두 사람의 노예를 데리고서 토함산으로 올라갔다. 그는 산마루 위에다 무덤 모양의 돌집을 짓고서 7일 동안 그 속에 머물렀다가는 서라벌의 도성을 굽어 보며 제가 살 만한 터를 찾아보았다. 초승달처럼 생긴 한 산언덕을 발견했다. 길운을 오래도록 누리게 될 터전으로 보였다. 곧 서라벌 도성으로 내려와 토함산 마루에서 눈여겨두었던 그 터를 찾았다. 하나 그곳에 이미 호공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왕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 터전을 차지하고 싶었다. 이에 한 궤계를 꾸몄다. 즉 고 호공의 집 곁에다 몰래 숫돌과 솣부스러기를 묻어 두고는 그 이튿날 아침 일직 호공을 찾아가 말했다. "이 집은 우리 조상이 살던 집이오" 호공은 그럴리 없다고 부인했다.이렇게 내집이라거니 아니라거니 하여 두사람의 다퉁은 끝이 없었다. 드디어 두 사람은 관가에 가서 서로의 주장을 알렸다. 판결을 맡은 판원이 그 애송이 왕자를 보고 말했다."무엇으로 네 집임을 중명하는가?”애송이 왕자는 답변했다."우리 집은 대장장이었습니다. 얼마간을 이웃 고을에 나가 있다 돌아와 보니 저 사람이 차지해 살고 있지 않겠어요. 그 집 둘레의 땅을 파 보면 아실거예요."판결을 맡은 관원은 애송이 왕자의 말을 따라 그 호공의 집 둘레의 땅을 파헤쳐 보았다. 과연 숫돌과 숯 부스러기가 나와, 그곳은 지난날의 대장간 터로 보였다. 마침내 애송이 왕자는 호공의 집을 차지해 살게 되었다. 이 용성국에서 표류해 온 애송이 왕자가 곧 탈해다. 알을 벗어나고이 나타나 < 내 뼈의 매장을 삼가라>는 지시가 있었다. 능을 헤쳐 보았더니 그 해골의 둘레가 석 자 두 치, 몸뼈의 길이가 아홉 자 일곱 치, 이는 엉키어 한덩어리가 되어 있고 뼈마디는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살았을 때의 그것처럼 사슬진 그대로 있었다. 이른바 천하 무적의 역사(力士)의 골격 바로 그것이었다. 그 뼈대들을 부수어 소상을 만들어 궁궐 안에다 안치했더니 혼령이 나타나 일렀다. < 내뼈를 동악(東岳)에다 두도록 하라.> 이지시에 따라 그곳에 봉안케했다.3. 요약남해왕 때 가락국바다 한가운데 배가 한 척 나타났다. 이에 수로국왕이 나타나 맞이하였으나 급히 달아나 신라동쪽 하서지촌 아림포에 이르렀다. 그때 갯가에 혁거세왕 때 고기를 잡아바치던 아신의선이라는 할미가 있어 배를 끌어당겨 보니 까치가 모여있고 그 안에 상자가 하나 있었다. 그 배를 끌어다가 하늘에 고하고 상자를 열어보니 단정한 사내아이와 일곱가지의 보물과 노비가 있었다. 그들을 7일 동안 대접했더니 그 사내아이가 말하기를“나는 원래 용성국의 사람인데 우리 부왕 함달파가 적녀국의 왕녀를 맞아 왕비로 삼았는데 오래도록 아이가 없어 기도하여 아들을 구했더니 7년 후에 알 하나를 낳았다. 이에 대왕이 신하를 모아놓고 말하길‘사람이 알을 낳은 일은 고금에 없는 일이니, 아마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하여 상자에 나를 넣고 일곱 가지 보물과 종을 배안에 실어 바다에 띄우면서 인연이 있는 곳에 닿아 나라를 세우고 집안을 이루라 축원했는데 문득 붉은 용이 나타나 배를 호위하여 이 곳으로 왔다”라고 하였다. 말은 마친 사내아이는 토함산위에 올라가서 돌집을 짓고 7일 동안 머물면서 성안에 살 곳을 찾던 중 지세가 아주 좋은 곳을 발견하였다. 내려가 알아보니 호공의 집이었는데 이에 간사한 꾀를 내어 숫돌과 숯을 몰래 땅에 묻어놓고 이튿날 아침에 그 집 앞에 가서 그 집은 조상대대로 살던 집이라 하였더니 호공은 그렇지 않다하여 서로 다투었다. 시비를 가리지 못하여 관가에 가게 되었는데 관가에서 그 집이 아이되었다.
    교육학| 2004.05.13| 7페이지| 1,000원| 조회(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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