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생의 한중일 이해?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나라들인 일본과 중국에 대한 초중고 학생들의 이해를 엿보기 위해 인터뷰를 준비하였다. 외국인 배우자를 찾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인터뷰도 인터뷰 대상자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4명씩 각각 초중고생을 인터뷰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초등학생은 사촌 동생들을 총 동원했다. 다행히 친가와 외가에 각각 2명의 초등학생이 있어서 쉽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내가 현재 과외하고 있는 학생들을 동원했다. 현재 나는 중학교 3학년생과 고등학교 2학년생을 각각 과외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친구들을 섭외하려했지만 불행하게도 중학생은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을 포함해서 2명, 고등학생은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을 포함해서 3명을 인터뷰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중학생 2명과 고등학생 1명을 더 찾기 위해 노력해봤지만,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인터뷰 시작 전의 목표는 수적인 목표는 달성하지 못해, 더욱 다양한 의견들을 들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학생들의 일본과 중국에 대한 생각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1) About JapanQ 1. ‘일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까지..A : 악독하다는 것이요. 일제강점기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잔인하게 한국 사람들을 많이 괴롭힌 것 같아요. ‘일본’하면 잔인하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라요.B : 만화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만화를 좋아해서 즐겨보는데, 한국 만화보다 일본 만화가 훨씬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일본 만화는 정말 재미있고 주인공들이 멋지다. 그림도 훨씬 멋있어요.C : 음식이요. 부모님이 회를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회를 많이 먹었어요.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좋아하는 회랑 초밥은 일본 음식이라고 하셨어요. 일본에 가면 더 맛있는 회랑 초밥이 많다고 하셨어요. 이것들을 먹을 때마다 일본 생각난다. 꼭 일본에 가보고 싶어요.D : 일본사람들이 싫어요. 잔인하게 우리를 괴롭혔으니까요.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일본이왜 일본 만화책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어가게 만드는지도 궁금해요.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돈이 많다고 하는데 뭘 해서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는지도 궁금해요.C : 왜 일본에서 한국 스타들이 인기가 그렇게 많은지 궁금해요. TV에서 보면 일본 사람들이 한국 스타들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특히 신기한건 아줌마들이 극성으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애들은 스타에 열광적이라도 아줌마들은 그런 것을 많이 못 봤는데 일본은 아줌마들이 많이 열광적인 것 같아서 신기했어요.D : 일본은 우리나라랑 가까운 나라이고, 같은 동양인인데 왜 생긴게 다르죠?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키도 많이 작은 것 같고..Q 3. 일본, 일본인, 혹은 일본 문화에 대해 좋은 점이나 부러운 점은?A :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산다고 하는데 부럽다.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을 것 같다.B : 계속 이야기 했듯이 만화책이 가장 좋아요. 어쩜 그렇게 만화를 잘 만드는지 부럽고.. TV에서 보면 일본 사람들이 질서를 잘 지킨다고 하던데 그것도 좋은 것 같아요.C : 역시 회가 가장 좋죠. 초밥도 좋고요.D : 부러운 점은 하나도 없어요. 그냥 일본은 쪽바리, 쪽바리 일 뿐이에요. 그래도 구지 꼽자면, 도시들이 번화하고 좋아 보여요. 높은 빌딩도 많고.Q 4. 일본, 일본인, 혹은 일본 문화에 대해 싫은 점은?A : 너무 잔인해서 싫어요. 일본 만화 같은 것만 봐도 잔인한 장면도 많은 것 같고 일본 영화에서도 그런 것 같아요. 정말 그 인간성이 너무 싫어요. 어쩜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우리 땅에서 지네 땅처럼 살았다니 정말 도둑놈들 같아요.B : 독도가 지네 땅이라고 우길 때가 가장 싫어요. 독도는 옛날부터 우리 땅이라고 들었는데, 왜 자꾸 지네 땅이라고 우기고, 이름도 바꾸고 그러는지 정말 싫어요.C : 일본 사람들 너무 얍삽해 보여서 싫어요. 왠지는 몰라요. 왠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일본사람들은 비열해 보이고 비겁해 보여요. 말하는 것도 싫어요. 혀가 짧은 것도 같고,저씨 모습이 떠올랐어요.D : 우리보다 못 산다는 거요. 왜 그렇게 못 사는지는 몰라도 우리보다는 훨씬 못 사는 것 같아요.Q 2. 중국, 중국인, 혹은 중국 문화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알고 싶은 것, 혹은 좋은 점은?A : 땅덩어리가 넓어서 온갖 진귀하고 신기한 것들이 많을 것 같아요.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지도 궁금해요.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모여서 축구응원 할려면 얼마나 큰 땅이 필요할지도 궁금해요.B : 중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이 안 씻는건지 궁금해요. 물이 부족한가요? TV에서 사람들 보면 다 머리를 한 달씩 안 감고 사는 것 같아요. 좋은 점은.. 땅이 넓다는 것. 땅이 넓어서 부러워요.C : 중국 사람들은 별 이상한 것들을 다 먹던데 호랑이도 먹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자장면이 진짜 중국에는 없는지도 궁금해요. 만리장성 꼭 가보고 싶어요.D :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우리나라보다 축구를 더 못할까요? 그렇게 사람이 많으면 축구 잘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축구를 되게 못해요. 땅이 넓어서 좋을 것 같아요. 놀러 다닐 데도 많을 것 같고.Q 3. 중국, 중국인, 혹은 중국 문화에 대해 싫은 점은?A : 사람들도 잘 안 씻는 것 같고, 환경도 많이 더러운 것 같아요. 아, 그리고 학교에서 배웠는데 황사가 중국에서 오는 거라고 배웠어요. 황사 바람이 너무 싫어요.B : 불결해서 싫어요. 너무 사람들이 안 씻고 다니는 것 같아요.C : 굉장히 강압적인 나라인 것 같아요. 북한처럼 막 군인들이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것 같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불쌍해요.D : 중국 사람들 말하는 거 보면 너무 시끄럽고 중국 노래들도 너무 이상한 거 같아서 듣기 싫어요. 사람들은 지저분하고 너무 가난하게 사는 것 같아요.(1) About JapanQ 1. 일본, 일본인, 혹은 일본 문화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알고 싶은 것, 혹은 좋은 점은?A : 일본이 바다에 점점 가라앉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본 사굉장히 희한하게 입고 머리 스타일도 독특하다. 다 날라리 같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것 같아서 좋아 보인다.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것도 부럽다.Q 2. 일본, 일본인, 혹은 일본 문화에 대해 싫은 점은?A : 일본 사람들은 그냥 다 싫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서 온갖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하고 갔다. 그들은 인간성 자체가 매우 잔인한 것 같다. 정말 비인간적인 짓들을 많이 했다. 그리고 자꾸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도 정말 싫다. 무슨 이유로 자꾸 그렇게 우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울릉도가 독도 바로 앞에 있는데 너무 억지 부리는 것 같아서 싫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끔찍한 짓을 너무 많이 하고도 현재 반성하지도 않고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싫다.B : 정말 일본 사람들 양심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옛날에 그렇게 미친 짓을 많이 하고 가서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계속 헛소리들을 해댄다. 자꾸만 자기네들이 한 잔인한 짓들을 은폐하려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하지도 않는다. 교과서 왜곡도 심한 것 같다. 사람들의 성향은 상당히 변태적인 것 같아서 싫기도 하다.(2) About ChinaQ 1. 중국, 중국인, 혹은 중국 문화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알고 싶은 것, 혹은 좋은 점은?A : 왜 그렇게 뭐든지 짝퉁을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다. 유명 브랜드의 옷들을 비롯해서, 자동차도 똑같이 만들고 뭐든지 유사품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왜 그렇게 하는지 궁금하다. 좋은 점은 희한한 것들을 많이 만든다는 것이다. 물가가 싼 것도 좋다. 아직 중국에 가 보진 못했지만 물가가 싸다고 많이 들었다. 싼 가격에 재미있게 놀다 올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B : 중국음식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한다. 중국음식은 맛있는 것도 많고 여러 가지 희한한 것들도 많은 것 같다. 땅이 넓어서 부럽다. 땅이 넓으니까 할 것도 많고, 가볼 데도 많고 구경거리도 많을 것 같다. 그 밖에 좋은 점은 아무리 생각해 보려 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Q 2. 중국, 중국인, 것도 싫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한 가구당 2명 이상의 아이를 낳으면 벌금을 낸다고 들었는데, 아이 낳는 것 까지 제한 당하고 여러 가지 사는데 있어서 나라가 참견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희한한 범죄들도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1) About JapanQ 1. 일본, 일본인, 혹은 일본 문화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알고 싶은 것, 혹은 좋은 점은?A : 일본은 우리랑 가장 가까운 나라이면서 가장 싫어하는 나라인데, 사실 배울 점이 상당히 많다. 일본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보이며 이제는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점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일본에는 선진문화들도 많은 것 같다. 건물들도 화려한 것들이 많고 신기한 것들이 많아서 좋다. 사람들 성격도 좋은 것 같다. 항상 “쓰미마셍”하는 것 보면 겸손하고 친절한 것 같다. 이런 점들은 배워야 될 점이라고 본다.B : 대중문화가 굉장히 다양하고 많이 발전한 것 같다. 음악, 영화, 만화, 패션 등 우리나라에서 많이 따라하는 것만 봐도 우리나라보다 더 좋은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 소설을 좋아한다.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참 예쁘고 서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궁금한 점은.. 기술이 발전했다는 것이 좋은 것 같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기술이 발달했는지 알고 싶다. 가전제품들 보면 너무 잘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어쩌다가 그렇게 음란한 문화들이 많이 발달했는지도 궁금하다.C : 일본에 직접 가봤는데, 관광지가 굉장히 잘 되어 있고 사람들이 친절해서 좋았다. 사람들이 질서도 잘 지키고 거리들도 우리나라에 비해 깨끗한 것 같아서 좋았다. 그리고 우리나라보다 경제수준이 훨씬 높아서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아서 좋아 보이고 부러웠다. 궁금한 점은.. 인간성이다. 잔인하고 음란한 것들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사무라이 정신’ 어쩌구 하면서 자기 배를 같다.
외국인 배우자 인터뷰? 내 주위에 외국인이랑 결혼한 우리나라 사람이 있었던가.. 처음 이 과제를 듣고 많이 당황했다. 명색이 국제학부이면서 알고 지내는 외국인도 한명도 없고, 그렇다고 주변에 “누가 외국인과 결혼했다더라.”하는 이야기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언론에서는 매년 국제결혼이 급증하고 있어 10쌍 중 1쌍 이상이 국제결혼을 한다고 떠들어대는데, 나에게 있어서 ‘국제결혼’이란 아주 먼 남들의 이야기일 뿐 사실 피부에 닿을 만큼 가까운 이야기가 아니었다.이 와중에 인터뷰 대상자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주변의 지인들에게 수소문해서 인터뷰 대상자를 찾아봤지만 다들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그러던 중 얼핏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횟집에서 예전에 일하셨던 분의 부인이 중국인이라고 들었던 생각이 났다. 꽤 오래 일하셨던 분이었기 때문에 나와도 안면이 있었지만 벌써 일을 그만 둔지 1년 가까이 되었기 때문에 인터뷰가 쉽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벌써 시간도 꽤 흘렀고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어머님이 연락처를 아직 갖고 계셔서 연락해달라고 부탁드렸지만 어머님은 완강하게 거절하셨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나는 어머님에게 지독하게 졸라댔고 결국 어머님이 그 분에게 연락을 취하시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 분에게 내 사정을 말씀드리진 않고 어머님이 부부를 함께 모셔서 식사대접을 하고 싶다고 하여 마침내 이 부부를 직접 만나게 되었다.정말 힘들게 만나게 되는 만큼 많은 준비를 해서 나갔다. 초면인 분에게 무턱대고 인터뷰하자고 하면 곤란해 하실까봐, 머뭇거리며 한참 기회를 엿보다가 슬며시 인터뷰제의를 해 보았다. 다행히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허락을 해 주셨다. 인터뷰 대상자가 성격이 활달한 편이고 우리나라에서 6년째 거주 중이었기 때문에 의사소통 문제나 별다른 걸림돌 없이 순조롭게 인터뷰를 진행 할 수 있었다. 친절하게도, 녹음까지 허락해주셔서 인터뷰 할 때의 어투를 최대한 살려서 정리 할 수 있었다.1. 혼인경위Q : 처통의 중국 남자들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굉장히 일을 열심히 하는 구나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저는 그런 모습이 좋아보이더라구요. 그러다가.. 음.. 처음으로 단 둘이 있게 된 게.. 아.. 정확히 기억이 나는데, 첫 회식 때였어요. 내가 공장에 들어 온지 한 달 쯤 지나서 회식이 있었는데, 남편이 공장에서와는 다르게 말도 많고 많이 웃는 모습을 보면서 놀랐어요. 하지만 그날 더 놀랐던 건 회식이 끝나서 집에 갈 때쯤에 남편이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는 거에요. 그렇게 남편과 처음으로 단둘이 있게 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했는데 이 사람이 은근히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죠. 그 이후로 공장에서 농담도 가끔 할 정도로 편해졌어요. 그렇게 편하게 지내다가.. 가끔 밖에서도 만나다가.. 뭐 그러다가 사귀게 되었죠.(웃음) (쑥스러운 듯 사귀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빨리 생략하려는 듯 했다.)Q : 연애를 시작한 이후부터 결혼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한데요.A : 처음에 연애를 시작할 때는 공장에서는 비밀로 했어요. 그래서 몰래 데이트를 즐겼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갈수록 우리 사이는 점점 깊어졌어요. 자연스럽게 결혼을 바라보게 되고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와 부모님이랑도 아주 가깝게 지냈어요. 그런데 결정적인 일이 생겼죠. 공장이 계속 적자가 나면서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어요. 결국 남편은 공장을 정리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러자 저는 일자리를 잃는 건 둘째 치고 우리 관계가 끝나버리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에 너무 불안해했었어요. 사실 주변 사람들이 “한국인은 평소에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만 생각하고 휙 떠나버린다더라..“라면서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그동안 많이 했었어요. 나는 물론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까 너무 불안해지더라구요. 그런데 금방 내 생각이 짧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남편은 공장 문제를 완전히 정리하고 나자 내게 청혼을 했어요. 결혼하자고, 결혼해서 한것이 가장 싫었어요. 또 내가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이라서 너무 두려웠어요.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얼떨결에 청혼을 받아들였으니 그냥 남편 믿고 왔죠.(웃음)Q : 남편분과 결혼을 결심하면서, 혹은 사귀면서라도 국적이 다른 사람과 사귄다거나 결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땠나요?A : 사실 처음부터 결혼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고, 외국인과 사귄다는 것에 대한 편견이나 걱정은 있었죠. 그렇지만 한국인에 대한 생각만큼은 다른 나라 사람보다는 편견이 적고 친근한 편이었어요. 왜냐하면 대학을 다니면서 가장 친했던 친구가 조선족 친구였거든요. 조선족 중국인들은 같은 중국인이기는 하지만 사실 한국인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그들은 국적만 중국인일 뿐 생활 습관이라든가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한국인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그 친구를 통해 한국문화도 많이 접했었고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어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만약에 남편이 한국 사람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이었다면 처음 연애를 할 때나 결혼을 결심하기 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꺼에요. 그리고 남편이 중국어를 꽤 잘 했었기 때문에 별로 외국인이라는 느낌도 없었어요. 아마 그런 점들 때문에 국제결혼에 대한 거부감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2. 현재의 삶Q : 한국에 처음 왔을 때의 생활은 어땠나요?A : 처음에 한국에 오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시어머님과의 첫 만남이었어요.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시면 어떡하지.. 나를 며느리로서 인정 안 해주시는 건 아닐까.. 이런 저런 걱정들이 너무 많았어요. 남편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어요. 아버님은 남편이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고요. 그래서 어머님이 나를 받아주셔서 딸처럼 잘 지내야 할 텐데.. 걱정이 너무 앞섰죠. 한국에 온지 며칠 안 되서 어머님을 처음 뵈었는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셨죠. 그렇게 어머님과 남편과 셋이서 함께 살게 되었어요. 남편은 한국에 오자마자 다시 예전에 하던 칼질(횟감을 붙어 있었던 것 같아요. 뭐.. 처음에는 그렇게 한국에서 적응하는 기간이었죠. 고향 생각나서 많이 남몰래 울기도 하고요..Q : 남몰래 많이 울기도 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힘든 점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A : 일단은 방금 말했듯이 고향 생각과 가족 생각에 많이 힘들었었고요. 지금처럼 한국어를 잘 하지 못했을 때는 사람들과 말이 잘 안 통하니까 주로 집에만 있는 것도 심심하고 외롭기도 했어요. 그렇게 혼자만 있고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마치 대인기피증처럼 사람들을 자꾸 피하게 되더라구요. 내가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저를 한국인처럼 보는 것 같은데 서툴게 한 마디라도 하면 바로 나를 대하는게 많이 달라지더라구요. 외국인이라고 자기네들끼리 수근덕대는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엔 그런 시선들에 기분이 많이 안 좋았었어요. 그래도 요즘에는 내가 처음 한국에 왔던 6년 전보다는 훨씬 그런 시선들이 덜한 것 같아요. 내가 한국어가 많이 늘어서 그런 건지, 한국인들의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Q : 중국에 비해서 한국의 이것은 정말 신기하다든지, 아니면 재밌었던 일들이나 좋았던 점들이 있으면 이야기해주세요.A : 신기했던 것은 정말 너무나 많아서 갑자기 말하려니까 잘 생각이 안 나는데요.. 음.. 아, 2002년 월드컵 때가 기억이 나네요. 그 때는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는데요, 남편과 함께 시청에 응원하러 갔었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무슨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중국에서도 사람이 워낙 많아서 사람 많이 모여 있는 건 신물 나게 봤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큰 거리를 가득 메우고 다 똑같은 옷을 입고 응원하는 건 정말 처음 봤어요.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남편을 놓칠 뻔했다니까요, 그 때 남편 놓쳤으면 난 미아가 되었을 꺼에요. 지금도 남편 찾아다니고 있을 지도 몰라요.(웃음) 음.. 신기한 것들은.. 또.. 시간 약속이라든지, 청결한 것 정도?? 한국 사람들 즐겨 봤는데요,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중국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는데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하루에 최소한 드라마 하나씩은 봐요. 특히 사극을 좋아해요.특별히 좋았던 점들도 참 많죠. 특히 꼽자면 대중교통이 참 좋아요. 중국에도 지하철도 있고 전차도 있고 버스도 있고 한데요, 서울처럼 복잡하고 잘 되어있지가 않아요. 버스 갈아타고 지하철 갈아타고 하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시설도 중국보다는 훨씬 깨끗하고 편리했어요. 대중교통 이용하면 서울에서 못 가는 곳이 없자나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너무 따뜻하게 나한테 잘 대해준 사람들이에요. 어머님과 남편은 말할 필요도 없이 너무 나한테 잘해줬고요. 4년 전부터 사귀어 온 친구들도 너무 잘해줘요. 아이 낳을 때 많이 도와주었던 엄마들이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까 애기 키우면서 재밌는 일들이 많았었네요. 지금도 애기 재롱 보면서 즐거워요.Q : 현재의 고민거리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해주신다면..A : 요즘 가장 고민은 아이 키우는 문제죠. 한국 엄마들은 아이의 교육열이 참 강한 것 같아요. TV를 봐도 그렇고, 주변에 엄마들을 보면 정말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맞춰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생활은 다 접어두고 다른 아이들에 뒤처지지 않을려면 뭐든지 다 하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는 이제 5살인데 내년이면 유치원에 보낼 생각이에요. 그래서 걱정되는 부분이 좀 있어요. 혹시나 엄마가 중국인이라고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 받진 않을까. 아이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진 않을까, 걱정이 되요. 또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처지진 않을까 걱정도 되죠. 그래서 요즘에 또래의 엄마들을 많이 만나서 많은 정보를 얻어요. 우리 아이한테도 부족함 없이 다 해주고 싶어요.일단 단기적인 계획은 올해 안에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에요. 결혼했을 때는 중국에서 결혼해 한국에 바로 들어오느라 정신없었고 무엇보다 그 때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어요. 남음)
1. 서론우리가 모든 생각, 혹은 행동을 할 때 그 바탕에는 어떠한 신념이나 가치관이 깔려있다. 우리가 확고하게 믿고 있는 가치관은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틀에 생각을 가두어 고정관념을 양산해 낸다. 고정관념은 흑을 백으로 보이게 하고 거짓을 참으로 믿게 만든다. 내가 진리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진리가 아닐 수 있고, 단순히 누군가에 의해서 주입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니 내가 깨닫기도 전에 형성된 고정관념은 쉽게 전복되거나 바뀌기 어렵다.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가치관은 우리가 세상을 왜곡된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고정관념과 어긋나는 것들은 애써 외면하려 하고, 맞는 것들만 보도록 만들어서 자신의 고정관념을 강화시켜 나간다. 그 예로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세상이 맞아 들어가는 것을 보기 위해 신문을 본다. 내가 좋아하는, 관심이 있는 부분만 유심히 보게 되고 그로부터 희열을 느낀다. 반면에 알고 싶지 않은, 혹은 인정하기 싫은 것들은 무시하고 넘어가 버리게 된다. 이처럼 고정관념은 스스로를 강화시켜서 기존의 신념체계를 굳건하게 지킨다.우리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가치관(paradigm)이 세상에 적용이 되지 않을 때 분노를 느낀다. normalcy와 abnormalcy가 충돌하는 것이다. 이것은 문명의 충돌로 이어진다. 서로에 대한 이해 할 수 없는, 혹은 알 수 없는 paradigm은 갈등을 발생시켜 문명의 충돌을 야기한다. 본론에서는 대조되는 견해를 보이는 Samuel Huntington과 Harald Muller의 이론을 중심적으로 비교하고, 문명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인가, 고정관념은 정말 바꾸기 어려운 것인가,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여 서술하도록 하겠다.2. 본론(1) 문명의 충돌헌팅턴은 오늘날의 세계에 정치적 갈등의 배후에는 문명 간의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하면서 “인간 사이에서 거대한 분열과 갈등이 일어날 것이고 그 근본은 문명적인 것이 될 것이다. 문명의 갈등 원인은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 언어, 전통에서 발생한다. 문명의 갈등의 핵은 종교적 신앙이다.”라고 했다. 문명권을 구분하고 이것이 종교적 신앙에 의해 상호 충돌하는 현상을 ‘문명의 충돌’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헌팅턴은 자신이 구분한 문명권에 대해 “이 문명권들은 총체적인 체계로써 나름대로의 가치와 기준과 제도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독창성을 띠고 있다. 이 문명권들은 상호 호환이 불가능하고 서로 수렴되지 않는다. 서구 문명의 독자성은 사회적 다원주의, 개인주의, 대의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제도, 관습, 신념은 서구문명권 외에 다른 문명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은 바로 이 독특한 서구문명의 계승자로서 이 문명권의 존속과 발전에 책임을 진다.”라고 했다.이 미국 중심적인 헌팅턴 교수는 주체적으로 성립되지 않은 가치관은 주체적으로 바꾸기 힘들다고 말한다. 고정관념은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문명의 충돌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충돌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현실주의적인 주장으로 문명의 대화와 공존은 불가능하므로,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제도를 개편해야한다고 말함으로써, 편협한 시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2) 문명의 공존, 대화뮐러는 ‘문명의 충돌’이라는 개념이 정치용어나 시사용어가 되었다는 것을 매우 꺼림칙하게 여긴다. “사고는 언어를 규정하지만 또 언어는 사고를 규정한다.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개념도 어느새 맹목적인 신뢰를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개념이 전 지구를 상대로 개념화되고, 그것은 다시 하나의 새로운 세계관으로 자리 잡아 가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뮐러의 논리에 의하면 ‘문명의 충돌’은 미국의 국제관계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뮐러는 세계사는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의 공존’이라는 주장을 한다. “상호의존과 지구화가 불러온 경제적 필연성과 사회세계의 전 지구적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상이한 문명의 다양한 특징과 규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규범의 속도는 느리다. 하지만 문명은 변하고 있다. 근대는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특징의 문명권 내의 공통되는 핵심영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영역의 성장은 근대화 과정이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심도 있게 작용하느냐, 그리고 문명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뮐러는 세계의 문명권을 대결구도의 이원화된 논리로써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파트너로써 전 세계를 유기적 공동체로 보고자 하는 논리를 주장한다.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에드워드 사이드는 문명이라는 것은 충돌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무지의 장막만 걷을 수 있다면 서로 대화하며 소통할 수 있다.”라고 했다. 문명 자체는 문제가 없고 서로에 대해 너무 무지할 뿐이며, 대화를 통해 충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정관념은 충분한 소통을 통해 바뀔 수 있다는 이상주의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3. 결론문명의 충돌, 혹은 고정관념에 대한 상반된 주장들을 살펴보았다. 이는 곧 현실주의적인 시각과 이상주의적인 시각의 대립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상과 현실은 서로 적절하게 보완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이상과 현실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이다.
거울에 비친 유럽- 목차 -1. 야만의 거울2. 기독교의 거울3. 봉건제의 거울4. 악마의 거울5. 촌뜨기의 거울6. 궁정의 거울7. 미개의 거울8. 진보의 얼굴9. 대중의 거울1. 야만의 거울소위 유럽 ‘문명’의 기원은 기원전 8000~7000년 전 근동에서 출현한 일련의 진보에서 출발한다. 동식물의 ‘길들이기’와 최초의 도시들의 형성과 함께 농업은 이 최초의 지역, 즉 근동에서부터 서쪽으로 매우 느리게 확산되어 갔다. 이처럼 유럽문명의 기원이 혼혈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유럽사에 대한 전통적 관점과 날카로운 대조를 보이는데, 그 전통적 관점은 유럽의 발전 과정 전체를 아주 독특하고 우월한 기원에서 연원하는 것으로 설명하기 위해 전체 맥락으로부터 진정 유럽적인 것을 분리시키는데 전력해왔다.이러한 관점은 그리스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만들어낸 이미지에서 유래한다. 예로부터 “페르시아의 위협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그리스는 자기 정체성을 발견했다”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규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남과 구별하기 위해 비추어보는 거울로서 ‘야만인’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냈다. ‘그리스인’이라는 개념은 ‘야만인’이라는 개념과 동시에 만들어졌음이 분명하다. 그리스인은 ‘야만인’개념을 확산시켜 나가며 ‘상이함’을 열등함으로 해석했다. 이는 노예제를 합리화하는 데도 기여하고 전혀 자유롭지 않은 ‘폴리스’를 만들어 냈다. ‘폴리스’는 분명한 차별을 은폐하고 있었고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전혀 평등을 지향하지 않았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완전한 정치적 권한을 가진 소수의 시민들이 권력의 한몫을 차지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았다.그리스인들을 야만인과 구분시켜준다고 하는 높은 수준의 지식과 예술에의 폭넓은 참여도 사실과 다르다. 이 세계에서 식자능력을 갖춘 사람은 매우 드물었고 책의 출현 역시 극소수의 독자층을 위한 것이었다. 도서관들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지배 도구로서, 그리스어를 말하는 소수의 ‘전문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변화를 의미한다.(가난하고 소외된 자들 ? 바울로의 추종자들과 결합한 유복한 시민들) 원래의 기독교는 “매우 다양한 목소리와 매우 폭넓은 관점들을 포함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가 최초 단계에서는 여러 교파의 유대교와 공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 기독교 역사의 세 번째 단계는 제국의 정치권력과의 결탁의 역사이다. 제국은 기독교를 ‘세속 정부와 함께하는 교회 정부’로 만들었으며, 제국의 법령이 준수되도록 교회와 협력했다.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 공인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국가에 의해 공인된 유일하고 보편적인 하나의 기독교가 만들어졌다. 교회는 새로운 ‘기독교 제국’을 떠받치는 대들보 중 하나가 되었다. 기독교가 정치적으로 인정되어 새로운 상황이 나타나게 되면서 기독교의 다양한 경향들 간의 평화로운 공존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종교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은 소외되었고,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권위가 확립되자 기독교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에 따라 이제 다원주의의 모든 측면은 배제되고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아니면 소급하여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동시에 교회는 교회의 역사를 로마의 역사와 연계시켰다.전통적 종교는 계속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했다. 테오도시우스 1세가 즉위 후 강제로 종교의 통일을 확립하려는 쪽을 택함에 따라, 이교도들은 반복되는 금지 조치와 엄격한 처벌에 도전했다. 이교도 철학자들은 결국 시를 떠나 도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부는 기독교화 된 도시들을 피해 시골로 잠적했다. 이런 식으로 기독교의 야만적 박해로부터 고대의 철학을 지켜낸 소수의 지식인들이 있었다.탄압받던 신앙이 안정된 종교로 바뀌자 이제 이 종교는 사회 속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사회를 지배하고 사람들을 기독교화 해서 습관과 풍속을 바꾸려고 했다. 새로운 의미를 가진 시간과 역사가 창조될 필요성에 의해 새로운 달력을 만들었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공간 개념을 고 통합시키는 데 상당한 능력을 가진 하나의 문화가 성숙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유럽적인 문화였다. 이 시기는 또한 문화적 혁신의 시기이기도 했는데, 이로부터 “신은 자연 속에서 행동한다는 식의 보다 합리적인 관점”이 생겨났다. 이 일련의 혁명들은 인구 증가를 가능케 한 농업 생산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1000년경에 유럽사회에는 봉건제의 출현이라고 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이것은 하나의 사회가 세 가지 위계 혹은 신분으로 나뉘고, 각 집단은 서로 다르면서도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회적 구도를 정당화해주는 체계였다. 그 결과 영주제의 틀 안에서 새로운 유형의 착취가 이루어지고 사적 유대에 기반을 둔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지배가 나타났으며, 농촌과 도시 간의 노동 분화가 경제 발전을 자극했다. 이것은 ‘봉건 사회의 출현’이었다. ‘봉건제’라는 말은 두 가지의 근본적인 측면을 포함하는데, 하나는 정치적인 것으로서 주권의 해체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토적인 것으로서 모든 토지와 이러한 토지를 통해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포함하는 종속의 망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봉건제와 농민에 의해 집단적으로 조직화된 새로운 경작 형태의 도입에 따라 농촌이 발전함과 동시에 상업 혹은 공업 도시들도 발전을 이루었다. 1000년경의 유럽 도시들은 하나의 핵심 도시에 의해 지배되는 지역들이 몰려있었다. 다양한 공간들 각각에서 이루어진 활동은 상호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 간에 결속의 끈이 만들어졌고 하나의 문화와 언어를 가진 공동체가 건설될 수 있었다. 유럽의 도시들은 아시아 제국의 도시들과는 달리 주변 세계에 확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주변 세계에 발전을 위한 자극을 제공했다.이 모든 것은 잠시도 중단되지 않은 발전의 결과로 설명되어야 한다. 사회적 대변화들은 경제성장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였다. 그것은 하나의 혁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반응이었던 것이다.4. 악마의 거울사회적?종교적 혼란의 시대에서 그러한 혼란이 유주는 사례는 유대인 박해이다. 이들은 고유한 문화적 색깔을 가진 집단이었고, ‘동양과 서양의 중요한 매개자’로서 뿐만 아니라 자신들만의 고유한 공헌을 통해 유럽 문화 형성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문화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교회가 이들을 소외시켜버리고 십자군은 박해와 대학살을 앞서 행했다. 당시 실상을 왜곡시켜 보여주는 새로운 거울 속에서 유대인들은 악마적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었다.5. 촌뜨기의 거울1000년 이후 유럽 인구의 지나친 증가는 식량 확보를 위해 변두리 토지까지 경작하도록 만들었고, 그것이 전체적으로 사람들의 생존을 어떠한 기후의 재난에라도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불안한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기근으로 인해 생물학적으로 아주 허약해진 유럽은 반복되는 홍수와 가뭄, 그리고 페스트의 좋은 먹이가 되었다. 중앙아시아의 풍토병이었던 페스트는 아무런 방비도 갖추지 못한 유럽인들을 덮쳐 막대한 희생자를 내게 했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아무 소용이 없었고 유럽인들은 계속 죽어나갔다. 페스트로 시작된 재난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정착지의 포기와 농업 생산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정신에도 깊은 흔적을 남겨서 도시 폭동과 농민 반란 등의 심각한 사회적 위기의 출현으로 이어졌다.하지만 이처럼 사회적 성격을 가진 현상들이 자연 재해의 ‘반향들’인 것처럼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러한 위기의 기원은 프랑스, 플랑드르, 이탈리아 혹은 신성로마제국의 도시들의 통치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중간계층’과 ‘대영주들’간의 대립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페스트 훨씬 이전부터 있어온 문제였다. 경제 성장이 지속되고 농촌과 도시의 밀접한 관계가 유지되다가 14세기 초에 경제 발전이 굴절하는 듯한 징조가 나타나 도시 시장이 약화되었다. 따라서 농민들에게 이전의 번영은 끝나고 사람들은 다시 봉건적 시스템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하지만 이미 ‘자유’를 맛본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경제적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폭 통해 민중 계층에 대한 지배를 회복하기 위해, 16, 17세기 유럽은 하나의 동질적 사회를 만들어내고,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확인할 것을 목적으로 했다. ‘견해를 달리하는 자들’에 맞서 투쟁하고 사회적 통제를 쉽게 해줄 수 있는 정통 종교를 확산시키려는 두 가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통 종교와 도덕’의 강요는 무엇보다도 ‘민중적’종교를 통제하고 모든 비정상적 행위를 미신으로 단죄해 배제시킬 것을 요구했다. 정통적 행위와 비정상적 행위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교회의 통제를 벗어났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종교적 재정복을 통해 사고의 자유가 관습의 방종과 동일시되고, 동성 간의 성관계가 철학적 죄로 일컬어지는 등 종교와 도덕이 서로 연결되었다. 이 캠페인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 캠페인이 가톨릭 국가나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국가에서 동시에 모두 시작되고, 또 정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가차 없이 처벌할 때 정치적 지지를 얻고, 그리고 18세기에 교회의 영향력이 쇠퇴하게 되자 의학이 이러한 역할을 떠맡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모든 것이 종교적 영역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대안적 문화에 대한 탄압은 또한 ‘촌스러움’에 대한 투쟁으로 제기되었다. 이제 ‘교양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가치까지 바꾸려고 했다. 과거에는 소수 특권 계급의 소유물이었던 것을 사회의 광범한 계층을 위한 규범으로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궁정 문화’라는 용어 대신 ‘문명’ 혹은 ‘도시적임’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야만의 새로운 이름이었던 ‘촌스러움’이라는 말과 분명하게 대조시켰다. 언어의 규제를 통해 서민적 어휘의 사용을 통제하고, 그것을 불건전한 것으로 간주하여 금지함으로써 서민들에게서 어휘에 해당하는 이념을 표출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세속적 십자군의 문화 속에서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중세의 음울함과 르네상스의 근대적 찬란함을, 종교개혁과 미신 혹은 마법을, 그리고 과학의 합리성과 마술.
『국경을 넘는 방법』서평*요약*1장. 세계지도의 이데올로기 - 세계지도를 제작하는 나라라면 어디든 자국이 중심에 있고 색으로 국경을 나누어 구분하고 있다. 이는 세계지도 속에 숨어있는 자국 중심주의이고, 우리에게 국가와 민족과 문화가 일치한다는 편견을 심어준다. 현실세계에서 국경은 침범당하고 국가는 불가피하게 변형되고 있지만 우리는 자국과 타국, 국민과 외국인의 이분법이 특징인 국가이데올로기에 푹 빠져있다고 비판하고 있다.2장. 좋아하는 나라, 싫어하는 나라 - ‘좋아하는 나라와 싫어하는 나라’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일본인의 각 국가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를 분석하고 있다. 이어서 “민족이나 국민의 이미지는 국가 이데올로기가 창출해낸 환영이며 대개 그 실체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고 말하며 편견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편견의 구조가 우리가 속한 사회와 국가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식 속에도 존재하고 있다. 이 구조가 ‘좋아하는 나라’와 ‘싫어하는 나라’를 만들어내고 있다.3장.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다시 읽으며 - 『오리엔탈리즘』에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고, 이 책이 “문화 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과 그것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 그 대상인 오리엔트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살피고, 이항대립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오리엔탈리즘 내에 은폐되어 있던 차별과 지배의 구조를 폭로한다. 저자는 사이드의 주장을 자세히 서술하면서, “이문화란 무엇인가?”, “하나의 확실한 문화라는 개념은 유익한 것인가?” 나아가 ‘문화’라는 개념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4장. 서구화와 회귀 -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래 ‘서구화’적 풍조와 ‘국수’적 풍조가 규칙적인 사이클을 이루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일본의 근대는 서구화시대와 국수시대에 지극히 상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그것을 관찰하는 우리가 어느 쪽에 더 가깝냐에 따라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가 달라진다. 대해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어를 어원으로 삼고 있는 ‘문명’은 서구의 자기의식이며, 계몽주의 철학의 중추가 되는 개념을 형성했고 계몽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를 가리키게 되었다. ‘문화’는 프랑스에서 일정한 개념형성이 이루어지고 독일에서 발전 ? 심화된 개념이다. culture는 ‘경작’이나 ‘돌보다’라는 행위를 표시하는 말로 변했다가, 정신 형성이나 교육이라는 지적 형성과정을 표현하는 의미를 차츰 획득하고 그러한 과정의 결과까지도 의미하게 되었다.6장. 프랑스와 독일 - ‘문명’과 ‘문화’는 원래 형제 개념으로서 거의 동시에 연이어 탄생했으며 계몽사상이라는 하나의 흐름 속에서 공통된 가치관과 세계 인식을 표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역사적인 사건들이 이것들을 대항적 개념으로 만들었다. 프랑스인은 ‘문명’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고 반대로 독일인은 ‘문화’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 저자는 두 나라에서 각각의 단어들의 개념의 형성과정과 양자 간의 대항적 성격에 대해 서술했다. 프랑스 혁명이 ‘문명’과 ‘문화’개념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고 있다. “프랑스혁명은 근대적 국가기구와 국민통합을 추진함으로써 ‘문명’의 개념에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기반을 부여했다.” 또한 인류학자들의 ‘문화’에 대한 관점을 소개하면서, ‘문화’는 일반적인 정의는 절대 할 수 없지만 후진국(독일 같은)의 반동적인 국가 이데올로기적 특색을 드러낸다고 하였다.7장. 일본에서의 수용 - 오늘날 우리는 ‘문명’이나 ‘문화’를 익숙한 표현처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이 두 단어는 번역어이다. 번역어이기 때문에 이 두 단어는 이미 서구중심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메이지시대의 서구화주의가 ‘문명’ 또는 ‘문명개화’라는 구호를 통해 확산되었다면, 다이쇼시대의 서구화주의는 ‘문화’라는 의상을 걸치고 있었다.” 메이지 시대의 ‘문명’은 서구의 식민주의에 이르는 과정과 궤를 같이 하며 국가이데올로기를 형성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후진국형 국가로 등장한 일본은 일상적으로 문화와 나라의 이름을 크게 고민하지 않고 연결 짓고 있지만, 문화의 단위를 정치적 국경으로 구분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국민문화’의 개념은 국민과 민족의 허구성이 역사적인 현실을 통해 폭로되면서 그 기반이 침식당하고 있다. 문화와 국가와 민족의 일체성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는 다양한 문화가 있지만 일본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문화’라고 번역할 수 있는 사문화私文化가 존재할 뿐이다. 문화상대주의는 전 세계 모든 문화의 독립과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고 주장함으로써, 결국은 문화적인 세계지도를 그렸으며 문화라는 국경을 만들어버렸다. 우리가 향후에 문화상대주의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9장. 두 개의 『일본문화사관』 - 사카구치 안고가 타우트의 『일본문화사관』을 비판하고 반박하는 내용과, 동일제목의 두 책을 비교 ? 대조함으로써 순수한 국민문화의 허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카구치는 타우트가 ‘일본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허위성, 더 본질적으로는 ‘문화’에 관한 원리적인 문제를 논하고 있다. 사카구치는 문화란 ‘생활’의 문제이며 그러한 입장을 철저하게 개개인의 선택과 결단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발언했다. “일본정신은 허구이며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가변적인 문화 모델을 구상하고 개인에 철저함으로써 국경을 넘어서는 문화 이론을 준비하고 있었다.10장. 글로벌리제이션 ? 다문화주의 ? 아이덴티티 - 글로벌리제이션이란 “세계 시스템의 붕괴와 재편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저자는 “글로벌리제이션이란 문명화의 최종 국면이다”라는 가설을 제시하고 civilization과 globalization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글로벌리제이션은 자본주의와 함께 국민국가가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내셔널리즘을 강하게 수반하고 있다. 다문화주의란 어떤 단일한 사회나 집단 속에서 복수의 문화가 공존하는 상태를 표현하는 동시에, 이 상태를 적극적으로 추 아이덴티티 개념이 내셔널리즘이나 국민국가의 재생을 목표로 하는 운동에 크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개념의 정치적 역할은 명백하다. ‘사문화’를 표상하는 넓은 의미의 ‘이민’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밀고 나갈 때, 영역적인 국가 및 문화 개념은 변용되거나 해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본론 - 결론*어렸을 때, 정확히 몇 살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교육용으로 사주신 지구본을 무척이나 신기해하고 세계 여러 나라들의 위치와 크기를 비교 해가면서 알아 가는 것이 마냥 재미있었다. 어렸을 때의 이런 흥미가 지금의 나에게도 영향을 주는지 나는 지금도 세계 지도를 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의 이름과 수도를 머릿속에 되뇌고 야구팀으로 인해 많이 알고 있는 미국의 주 이름을 지도에서 확인한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많이 접했던 세계지도에 자국중심주의와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숨어 있다니, 미처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문제였다. 국경을 기준으로 국민과 외국인, 우리와 그들이 구분된다. 저자는 우리가 당연한 듯이 여겼던 이 사실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한 개인에게 특정한 국적을 강요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무릇 국적이란 절대적 논거가 있는 개념인가?”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은 어떻게 폐기될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저자는 이것을 현대의 가장 커다란 사상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봐 왔다. 내가 속한 것은 ‘우리’가 되고 내가 속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되었다.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해 보이는 이 구분이 내가 세상을 너무 ‘나’와 ‘나 이외의 다른’으로 차별하고 분리하면서 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말했듯이 국제화와 타문화 간 교류에 대한 갈등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나는 항상 ‘통합’이 좋은 것이고 꼭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이분법적인나라’와 ‘싫어하는 나라’를 만들어 낼 때, 그 아래에는 우리가 속한 사회와 국가가 만들어내는 구조가 존재하고 있다. 저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많은 학생들이 일본인이기 때문에 아무런 불만 없이 일본을 좋아하며 사랑한다는 발상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일본인이기 때문에’라는 말은 논리적 필연성이 전혀 없고 비합리적인 감정인 것이다. 만약에 이 설문조사를 우리나라에서 했어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국가에 의해 생각을 조종당하고 국가에 의해 조작된 것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비합리적인 감정들이 양산된다. 국가는 이데올로기적인 의도에 따라 국민을 통합시키려 하고 국가의 말을 잘 듣는 국민을 만들어 내려고 유도한다. 국가에 의해 한번 걸러져 나온 정보와 가치관을 비판적인 사고과정 없이 흡수해 버리기 쉽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고방식이 ‘좋아하는 나라’와 ‘싫어하는 나라’를 구분하고 사실과 다른 편견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항상 반대로 생각을 해봐야 하고 “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가.”하는 반론을 제시 해야만 한다.걸프전은 ‘서구에 의해 인위적으로 선동된’ 현대의 전쟁이었다. 미국은 ‘정의’를 구현하는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걸프전을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목적이 아니었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슬람교와 기독교로 대표되는 종교적인 분쟁과 이문화에 대한 배타성이었다. 압델 말레크는 걸프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랍세계는 사실상 9세기의 제1차 십자군전쟁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럽, 나중에는 북미와 서유럽을 포함한 서양세계와 전쟁 상태에 놓여있다. 이 오랜 기간에 걸쳐 반복되어온 것은 정치적 지배, 경제적 침탈, 군사적 침공 등이었지만 가장 심각했던 것은 종교, 철학 이론, 윤리규범, 이데올로기라는 지적인 정면대결의 파도가 밀려 들어왔다는 점이다.” 걸프전은 이문화의 충돌이었다. 서구에서 봤을 때 폭거에 지나지 않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행동이 이슬람세계 민중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던 것은 문화적 차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