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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양의 종교적 지혜]동서양의 종교적지혜 레포트 선(禪)이 말하는 참선 수행
    REPORT 1禪이 말하는 참선 수행파란 눈의 학자들까지도 이 작은 나라 한국의 선방으로 불러 모은 禪. 禪은 이들에게 어떠한 해답을 전해주기에 그토록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것일까?나에게는 종교가 없다. 어린시절, 원불교교당에 성실히 나가시는 아버지의 권유에도, 고등학교시절, 투철한 기독교신자였던 친구들의 설득에도, 나는 모든 답은 내 안에서 내 스스로의 의지로 찾겠다는 생각으로 신에 귀의하기를 거부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독단과도 같았던 나의 태도는, 종교를 '신에 대한 의지'로만 생각했던 나의 잘못된 상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나의 그런 그릇된 상식에 대한 변명을 굳이 해보자면, 고등학교 시절 윤리 교과서는 '사람들은 왜 종교를 찾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전에, 그 근원은 설명되지 않았던 각 종교의 핵심주장에 대해서만 말해주었기 때문이오, 내 주변에 보이는 각양각색 종교의 신자들은, 거의 모두 자신의 매일매일 당면하는 문제에 대한 깨끗한 해결을, 어찌보면 너무나 이기적인 태도로, 신의 일방적인 희생을 바란다는 듯한 기도로써 갈구하려는듯한 인상을 풍겨주었기 때문이다.그러던 내가 계절학기 첫번째 수업에서 그동안 내가 종교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파편의 옳고 그른 생각들이 깨끗하게 정리됨을 느낀다.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의 상징, 삶의 긴박한 문제를 푸는 기제, 삶의 핵심적인 가치를 현실에 부여하는 의미망. 이 모든 것들을 제시하여 준다는 종교라는 지혜의 전통은 실로 수억의 신자들을 끌어모을만큼 매력적이고 의미있는 존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준다든가, 삶의 가치를 부여한다는가에 관한 문제는 내게 종교를 공부하고픈 새로운 욕구가 되었다.그리고 첫번째 과제를 맞아, 한가지 종교를 선택해서 짧은 요약과 자기 생각을 정리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나는 불교, 특히나 한국에서 禪이 의미하는 참선 수행에 대하여 정리해보고자 한다. 현대사회에서 소위 '이성을 가진 자아'에 대한 신뢰로, 종교를 신비주의적이고 무조건적인 믿음과 동일시하며 비판하려고 했던 나에게 있어, 기존의 경전을 거부하고 부처를 거부하며, 모든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내 안의 끊음없는 성찰을 통해 불성을 자각한다는 禪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또한 화두의 주고받음과, 화두에 집중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참선의 과정이 나의 호기심을 불러오기도 했다. 매순간 바쁘게 일상에 몰두하고자 하지만, 궁극적으로 삶의 근본적인 목표와 이유가 없어 흔들리던 나에게 禪의 화두는 나에게 길을 제시해줄 수 있을것 같았다.禪이 말하는 참선 수행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크게 선불교에 대하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내가 이해한바가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선은 지난날 부처님이나 여러 조사들의 수행과 깨달음을 모범으로 하여(그를 그대로 쫓는것과는 다르다.) 우리들 각자가 자기의 성스러운 인격의 주체이며 참된 자아인 불성(佛性)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각적으로 된 자기가 진실(본래의 마음은 언제나 평온하고 나는 이미 자유롭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정법의 안목을 갖추는 것이다. 즉, 참나를 찾고,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평상심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듯 하다.불교에서는 이러한, 참된 자기를 회복시키고, 인간과 천지만물의 근원을 밝혀내며, 인간의 참된 주체성을 곧바로 열어서 인간과 진리의 참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공부를 참선(參禪)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참선의 방법으로는 조용하게 앉아서 하는 좌선(坐禪)이 최상이라고 말한다. 한국 불교의 수행법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참선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간화선(看話禪)의 전통이 한국 불교의 큰 줄기를 형성하였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간화선이란 부처님이 설한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화두(話頭)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수행해 나가는 참선법이다.화두란 공안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선불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수행법이다. 불교의 화두는 진리를 깨우친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들의 말씀이기도 하고 몸짓이기도 하다. 화두는 참선하는 이에게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제공하는 일종의 참선 공부의 문제지라고도 할 수 있다.화두에는 1,700여가지가 있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을 예로 들어보자면, '무자(無字) 화두'가 있다. 옛날 중국의 유명한 선승이었던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주 스님은 "무(無)"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지않은가? 그렇다면 조주 선사가 왜 "무(無)"라고 대답한 것일까? 바로 여기서 조주 선사가 무엇 때문에 무라고 말한 것인지를 뚫어내는 것이 바로 화두가 된다.선승들은 이렇듯 스승이 던지는 수수께끼 같은 선문답 뒤에 숨겨진 뜻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곤 한다. 선승들은 잡생각 없이 한 가지 화두에만 집중하도록 교육받는데, 걷거나, 먹거나, 일하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때, 화두의 생명은 의심이다. 그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을 끊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써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런 상태로 지내다보면 어떠한 찰나에 확철대오를 하게 되는데,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그렇지만 여기서 화두를 통해 꺠들음을 얻거나, 깨달음이 생기는 것이라고 이해해선 안된다. 선불교에서 깨달음이란 이미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해있다고 간주하며, 선승들은 꺠달음이 수행을 통해 얻거나 생기는 것이 아니며, 현재의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개인으로서는 우리가, 자신이 아직 깨닫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원래 부처라는 사실을 당장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따라서, 자신의 본성이 부처의 본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기 위해서 장기간의 수행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선승들은 선방에서 오랜기간을 화두와 보내는 것이다.그렇다면 이러한 화두라는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여 참선할 것인가? 불교에서 수행승들은 여름철과 겨울철, 각 세 달 동안은 돌아다니는 것을 중단하고 일정한 장소에 머물면서 연구와 정진 등의 수행을 하는 관습이 있는데 이를 안거(安居)라고 부른다. 한국 불교에서는 이러한 안거의 행사가 선원(禪院)을 중심으로 행하는데, 여기서 참선 수행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선원은 대표적인 참선 수행의 장소이다. 이때의 선방 수행은 참선 경력이 짧아 혼자서는 암자에서 수행할 수 없는 신참 선승들의 수행장소이기도 하지만, 수행 경력이 긴 고참 선승들에게도 이상적인 수행 장소가 된다. 일단 선방에 들어온 선승들은 참선 수행 외엔 일체 신경쓰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규정되어있기 때문이다.안거 기간에는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며, 빈틈 없이 짜여진 일과표에 의해 참선 수행을 한다. 특히 동안거 떄는 하루 14시간 이상 좌선하며, 잠은 4-6시간 정도 잔다고 한다. 보통 하루의 참선 수행은 3-4시간 단위로 이루어 지는대, 새벽 3-6시, 아침 8-10시, 오후 1-4시, 그리고 저녁 6-10시가 있다. 이들 각 단위는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50분간은 좌선을 하고 나머지 10분간은 행선을 한다. 선승들에게는 참선 이외의 다른 할 일이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참선에만 매진하면 된다.
    인문/어학| 2005.10.28| 3페이지| 2,000원| 조회(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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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산문강독]75 readins 중 fifth avenue uptown 번역 평가B괜찮아요
    Fifth Avenue, Uptown한때 우리가 자라난 집이 있던 그 자리에 주택단지가 들어서있다. 그리고 발육이 멈춰버린 도시 나무들이 우리 대문이 있던곳에 얽혀있다. 이건 재건된 쪽 길가의 모습이다. 또 다른 한쪽은, 진행에 시간이 걸리기에, 아직 재건되어 있지 않았고, 우리가 길 저편으로 갈 수 있길 바라며 창유리에 코를 대고 앉아 바라보았던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외상판매를 해주곤 했던 슈퍼마켓도 아직 그대로 였고, 아직도 분명히 외상판매를 해주시고계실거였다. 이 주택단지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정말로 필요한 일이니까, 그뿐아니라 사실, 외상이란 주택 그 자체보다 더 필요한 것이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곳을 지나갔을때, 유태인 주인은 아직 선반 근처에 서서 더 슬프고 무거워보였지만 나이는 거의 안들어보였다. 블록 저 밑쪽엔 신발수선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우린 더이상 고칠수 없을때까지 신발은 고쳐신었고, 그때서야 새 신을 사신곤 했다. 그집 흑인 주인은 아직도 창문 안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가죽을 고치고 있다.이 두사람은, 내가 상상해보건데 아마 긴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것이다(어쩌면 그럴 수 있다는것에 기뻐할지도 모르리라). 그들은 그만큼 많은 것을 봐왔고, 정말 오랫동안 이 거리의 낚시줄과 철조망 사이에서 몸부림쳐왔기때문이다.이 거리는 다른 어떤 의미로는 유명하고 우아한 그 5번가이다. 내가 묘사하고 있는 동네는, 오늘날 폭력배들의 말투를 빌리자면 그 '세력권'이 서쪽으론 레녹스가로, 동쪽으론 할렘 강으로, 북쪽으론 135번가, 남쪽으론 130번가로 인해 규정되어있다. 우린 이 경계선 넘어로는 살지 않았고, 이곳이 우리가 자라난 곳이다. 예를 들어 145번가를 걷는다는것은 친숙하고 비슷하게도 내가 그 동네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때문에 같은 충격을 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동쪽으로 돌아서 131번가나 레녹스 가로 간다면, 첫번째 소다수 바가 있었고,차례로 구두닦이 집, 슈퍼마켓, 세탁소, 그리고 집들이 나왔다. 이 거리에 사는 사람들 모두 내가 자라나는 것을 봐왔고 나와 함께 자라났으며, 내 남자형제와 여자형제와 함께 자라나는것을 내가 또 봐온 사람들이었으며, 어쩔땐 내 품안에, 어쩔땐 내 발치에서, 어쩔땐 내 어깨에, 또는 내 어깨위에 그들의 아이들이, 아주 폭동 한 산림의 아이들이 자라났다. 그 중엔 내 조카들도 있다.이 긴 블록의 끝에 다다르면 우린 넓고 불결하고 적대적인 5번가에 다다르고 마치 어리석음과 겁의 기념비처럼 서있는 그 주택단지를 좋은 의도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 거리에는 아는사람은 다 알듯, 사람들사이에 분화구같은 거대한 틈이 있었다. 그러한 틈은피할수 없이 다른 빈민가로 이사가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자기혐오와 자기기만의 능력에 빠지거나 아니면 어떤 수단 예로 WWII나 한국전쟁이나, 경창관의 총이나 곤봉, 패싸움, 말다툼, 광기, 헤로인의 과다복용, 아니면 단순한 부자연한 소모로 인해 죽은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나는 떠난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며, 난 특히 젊은이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글쎄, 몇몇 소수는 광적인 교회신봉자이고, 극단적인 오순절 교회 계통의 가장 광적인 종파였다. 그들중 아주 많은 이들은 이슬람교도들이었고, 입회나 동정으로 인해, 즉 그들은 백인세계에와 그와 관련된 모든 일들에 대한 증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결속되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예를 들어 연설자가 청중에게 백인들과 거래하는것을 그만두고 독립정인 경제를 이루라고 촉구하는 '흑인 제품을 사시오' 캠페인에 서있었다. 흑인들은 GM이나 RCA 또는 A&P같은 대기업중 어느것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였고, 그들이 할렘에 있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해 전적으로 부족한 부분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였으므로 그 연설자나 청중 모두 실제로 자신들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였다. (그들 중 어떤 것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자들은 그들동료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더욱 혈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이러한 모임들은 참가자들의 특정 비통함에 대한 자존심 속에서 계속되었고 이런 쓰라림이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가와는 관계없이, 이런 자존심없이 참가자들이 거의 살아갈 수 조차 없었다. 많은 수가 그냥 포기했다. 그들은 집에서 tV를 보면서 그들 부모나, 사촌, 형제, 삼초들의 수입으로 먹고 살면서 영화를 보거나 주변 바에 가기 위해서만 집을 나섰다. 길가나, 바에서 그들 중 하나와 마주치는 이는 "너 어떻게 해내고 있는거야?"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가장 슬프고 달콤한, 가장 부끄러운 형태의 미소로, 저 멀리에서 "오, TV로 하는거지뭐"라는 대답이 들려올거다. 이렇게 멀리 간 이는 계속 지켜나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멀리 가버린 이는 다시 게상으로 끌려 들어오기 쉽지 않기때문이다. 물론 TV나 바보다 더 멀리 후퇴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 중 어떤이는 그저 현관에 돌처럼 굳어서 앉아서, 갚아도 되지 않은 돈을 빌려줄 어떤이가 다가올때만 잠깐의 순간동안에만 놀랍게도 움직였다. 아니면 그들이 그것을 살수 있는 이가 다가설때, 즉, 가장 빈틈없는 방법 중 하나로, 감옥으로 가는 길이나 나오는 길에 있는 사람들이 다가설때 였다.
    인문/어학| 2005.10.28| 2페이지| 1,000원| 조회(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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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산문강독]75 readins 중 hanging 번역
    1> A HangingGeorge Orwell버마의, 어느 비내리는 습한 아침이었다. 노란 은종이같은 흐린 불빛이 높은 벽을 비스듬히 넘어 교도소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동물 우리같이 이중창살로 막힌채 줄줄이 놓여있는 사형수 독방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각 감방은 가로세로 약 10피트정도였고 널빤지 침대와 식수포트를 제외하곤 거의 비어있었다. 그 중 몇엔 갈색피부의 조용한 사나이들이 담요를 칭칭 감고 안쪽 창살쪽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이들이 바로 다음주나 그 다음주에 사형될 사형수들이었다.한 사형수가 그의 감방에서 꺼내져나왔다. 그는 힌두사람이었고, 매우 작고 허약해보였으며, 빡빡 깎인 머리와 멍하지만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의 몸에 비해 어울리지않게 큰 콧수염을 기르고있었고, 그것은 마치 영화속에 나오는 코믹한 인물의 콧수염과 같았다. 여섯명의 키 큰 교도관들이 그를 감시하며 교수형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그들 중 둘이 소총과 고정된 총검을 들고 서있는 동안, 다른이들은 죄수에게 수갑을 채우고 그사이에 체인을 끼우고 그것을 다시 자신들의 벨트에 연결시켰으며, 그의 팔을 그의 양옆구리에 단단히 묶어놓았다. 그들은 그 주위에 아주 가까이 모여서, 마치 그가 그자리에 있다는것을 계속 확인할수 있게 그를 느끼겠다는 듯이 손은 항상 남자 위에 조심스럽고 달래듯이 올려놓고 있었다. 이 광경은 마치 아직 살아있는 물고기가 다시 물 속에 뛰어들까봐 붙들고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러나 그는 꽤 얌전히 서있었으며,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나고있는지 눈치를 못챈 듯 힘없이 팔을 줄에 맡기고 있었다.8시 종이 울렸고 옅은 나팔소리가 젖은 공기사이로 먼 병영에서 쓸쓸히 들려왔다.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있던 교도소 감독관은 막대를 가지고 침울히 자갈을 찌르고 있다가 이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군의관이었고 뻣뻣한 회색 콧수염과 거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 제발 좀 서두르지그래, Francis," 그가 안달하듯 말했다. "지금 쯤이면 벌써 죽었어야 할 사람이란 말이야. 아직도 준비가 덜된 건가?"수석 교도관 Francis는 뚱뚱한 드라비다 사람으로, 흰색 훈련복과 금색 안경을 쓴채 그의 거뭇한 손을 흔들었다. "예, 예" 그가 흥분한채 말했다. "모오든게 아주 만족스럽게 준비되었습니다. 교수형 집행인이 기다리고 있습죠. 시작해야할듯합니다.""그럼, 빨리 진행시켜. 이일이 끝나기 전까지 죄수들이 아침을 먹을 수 없으니까. "우린 교수형을 위해 출발했다. 두 교도관은 소총을 어깨에 든채 죄수의 양쪽에 서서 걸었고, 또 다른 둘은 가까이에 서서 걸으면서 마치 그를 미는 동시에 지탱하고 있는듯 그의 팔과 어깨를 잡고 있었다. 판사와 기타 등등의 남은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돌연듯, 우리가 한 10야드 정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쯤, 어떠한 지시나 경고 없이 행진이 갑자기 멈췄다.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어디서 나온지 모를 개 한마리가 마당에 나타났다. 개는 계속해서 크게 짖어대면서 우리사이로 뛰어왔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한번에 봐서 매우 기쁘다는듯 온 몸을 흔드며 우리 주위를 뛰어다녔다. Airedale과 pariah가 섞인 아주 크고 털 많은 개였다. 잠시동안 우리 주위를 뛰어 돌아다니다가, 우리 중 어느 누가 멈추기 전에 죄수를 향해 돌진하더니 뛰어올라서 그의 얼굴을 핥으려 했다. 모두 깜짝놀라고 당황해서 개를 잡지 조차 못하고 있었다." 어느 놈이 이 썩을 짐승을 여기 들여놓은거야? 감독관이 화나서 말했다. "누가 좀 잡아봐!"떨어져있던 한 교도관이 개를 쫓기위해 어색히 쫓아봤지만, 개는 날뛰며 그를 피해 깡총깡총 뛰어다녔고 이 모든것을 놀이로 여겼다. 젊은 유라시안 죄수가 자갈 한줌을 쥐어 개에게 던져 쫓아보려했으나 개는 다 피하고 다시 우리를 쫓아왔다. 개 울음이 교도소 벽 사이에 울렸다. 두 교도관에게 잡혀있던 죄수는 마치 이것이 교수형의 한 절차인마냥 호기심있게 바라보았다. 몇 분 후가 되서야 어떤 사람이 개를 잡았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내 손수건을 개 목걸이에 걸었고 개가 계속 용을 쓰고 낑낑대게 놔둔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이제 교수형장까지는 40야드정도 남았다. 나는 내 앞에 서서가는 죄수의 발가벗은 갈색빛 등을 바라보았따. 그는 팔이 묶힌채 어색하지만 착실하게 계속 걸었다, 절대 무릎을 피지 않는 인도사람의 빠른걸음으로. 매 걸음마다 그의 근육이 제자리에 잡혔고 그의 머리에 난 머리카락 한 줌이 위 아래로 춤을 췄으며, 그의 발은 젖은 자갈위에 꾹꾹 놓였다. 그리고 한번은 그의 양 어깨를 잡고있는 교도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 위의 조그만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가볍게 옆으로 옮겼다.이상하게도 나는 그 순간까지 건강하고 의식있는 한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의 모든 장기들이 아직 작동하고 있었다- 창자들이 음식을 소화하고, 피부가 스스로 재생되고, 손톱이 자라나고, 조직들이 생겨나고-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되어 마지막 숨을 쉴 그 0분의 1초의 순간에도 그의 손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 그의 눈은 여전히 누런 자갈과 회색빛 벽을 볼 것이며, 뇌는 여전히 기억하고 예견하고 추리한다. 웅덩이에 대해서 까지 말이다. 그와 우리는 함께 걷고 똑같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는 일행이었다. 그런데 2분 후 순식간에 우리들 중 한 명이 가버릴 것이다. 하나의 정신이 줄고 , 그만큼 세상 하나가 준다.교수형장은 따끔거리는 긴 잡초로 덮힌 교도소의 주요 공간에서 떨어진 작은 마당에 있었다. 그곳은 벽돌건물로 마치 3면으로 된 창고같았고 판자때기 천장이 있는 위에는 두개의 들보와 빗장이 있어서 밧줄이 매달려있었다. 머리가 샌 사형집행인은 흰 감옥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으로 자신이 곧 작동할 기계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그는 비굴한 인사로 우리를 맞았다. Francis의 한마디에 사형수를 그 어느때보다도 세게 잡고있던 두 교도관들은 반쯤 이끌리는듯 반쯤은 미는듯 사형장으로 그를 밀어넣었으며 어설프게 사다리 오르는 것을 도왔다. 그 후 사형집행인이 오르고 죄수의 목에 밧줄을 고정시켰다.우리는 5야드 떨어져서 기다렸다. 교도관들은 사형장주위에 대강 원을 그리고 서있었다. 그리고나서 올가미가 완전히 고정되자, 죄수가 그의 신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높게 반복되는 외침으로 "램! 램! 램!램!" 거렸고, 급하다거나 두려움이 느껴지는 기도나 구원요청이라기보다는 안정되고 리드미컬한 거의 벨소리에 가까운 소리였다. 아까 그 개가 그 소리에 낑낑거리며 대답했다. 아직 사형장에 서있던 집행인은 밀가루봉지같은 면자루를 꺼내서 죄수의 얼굴에 씌웠다. 그러나 천에 가려서 조금은 약해진 그의 목소리는 계속 계속해서 "램! 램! 램! 램" 지속됬다.교수형 집행인은 사다리를 내려와서는 레버를 붙든채 똑바로 서있었다. 몇 분이 흐른듯 했다. 안정되고 조금은 천에 가려진 죄수의 외침이 계속 되서 "램!램!램" 거렸고 단 한순간도 더듬거리지 않았다. 감독관은 고개를 가슴까지 숙인채 천천히 그의 막대기로 땅을 찔려대고 있었다. 어쩌면 죄수에게 50, 아니면 100과 같은 일정한 숫자를 요구하는듯 그의 외침을 세고있는듯도 했다. 모두들 얼굴색이 변해있었다. 인디언들은 썩은 커피처럼 회색빛이 되있었고 보병 중 한 둘은 떨고있었다. 우리는 밧줄에 묶인채 천으로 덮여있는 남자를 모았고 그의 외침을 들었다. 한 외침으로서 인생의 1초가 또 지나가겠지. 같은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지나가고 있었다. '으, 빨리 좀 죽여주세요, 끝내버려요, 저 지긋지긋한 소리를 멈춰요!'별안간 감독관이 결정을 내렸다. 머리를 쳐들며 그가 막대를 휙 움직였다. "Chalo!" 거의 사나울정도로 그가 외쳤다.절거덕 하는 소리 뒤에 죽은듯한 고요가 흘렸다. 사형수는 사라졌고 밧줄은 혼자 꼬이고 있었다. 나는 개를 놓아주었는데 개는 바로 사형장 뒤쪽으로 막 달려갔다가 가서는 잠시 멈춰서 짖더니 다시 마당 한구석으로 물러서서는 잡초들옆에서서 겁먹은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사형수의 시체를 점검하기위해 사형장을 돌았다. 그는 돌처럼 굳어서는 발가락이 땅으로 향한채 댕글댕글 매달려서는 아주 천천히 돌고있었다.
    인문/어학| 2005.10.28| 4페이지| 1,000원| 조회(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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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산문강독]75 readins 중 once more the the lake 번역 평가A좋아요
    One More to the Lake1904년경 한 여름, 우리 아버지께선 메인 주의 호수에 있는 캠프사이트를 렌트하셔서 8월한달동안 우리 모두를 데려가셨다. 우린 고양이새끼들에게서 백선(동전버짐)이 다 옮아버렸고 Pond's 엑스를 팔과 다리에 온종일 발라야 했고, 아버지께선 카누안에서 옷을입으신채 구르셔야했지만, 그런것을 제외하면 우리의 휴가는 아주 성공적이였고, 그 후로 우리 중 누구도 메인주에 있는 그 호수보다 더 좋은곳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린 매 여름마다 , 8월 1일이면 한달동안의 휴가를 위해 그곳에 갔다. 그 후로 나는 바다에 익숙한 남자가 되었지만, 간혹 여름이되면, 끊임없는 조류와 무섭게 추운 바닷물과 오후를 지나 저녁까지 부는 끊임없는 바람이 숲 속에 위치한 호수의 온화함을 그립게 한다. 몇 주전 이러한 느낌은 너무나 강해져서, 나는 배스 낚시바늘와 스피너를 가지고 우리가 가곤 하던 호수에 가서 한 주동안의 낚시를 즐기고 예전에 자주 가던곳을 들려보려하였다.나는 한번도 코앞까지 맑은 물을 접해본적없고, 물위에 뜬 수련 잎을 기차 창문밖으로밖에 본 적이 없는 나의 아들을 데려갔다. 호수로 가는 길에, 나는 그곳이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해보았다. 나는 시간이 어떻게 이 독특하고 신성한 장소를 망쳐놨을지, 그 산골짜기와, 계곡과, 해가 지곤하던 언덕, 캠프사이트, 캠프 주위의 길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했다. 나는 아스팔트길이 생겼을거라 확신했고, 또 어떤식으로 이곳이 황폐해졌을지 궁금했다. 참, 스스로 예전의 습관들로 이어지는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게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을때, 얼마나 한 장소에 대해서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는지 정말 놀랍다. 한가지가 생각이 나고, 그리고 또 갑자기 또 다른걸 떠올르게 한다. 나는 특히 이른 아침에 대해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듯하다. 호수가 시원하고 미동이 없건그때, 침실은 또 나무로 만들어져서 그 향이 났고, 또 창사이로 젖은 숲향이 났다. 캠프안에 벽들은 아주 얇았고 천장까지 닿지 않았 않게 조심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그 호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야생의 호수가 아니였다. 호수 가장자리엔 오두막들이 여기저기 흩어 뿌려져 있었고, 비록 호수 근처는 나무가 울창했지만, 전체적으로 농사지역이였다. 오두막들 일부는 근처 농부들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물가에 살다가 농가에 가서 식사를 하곤 했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그랬다. 비록 그곳이 완전히 야생지역은 아니였지만, 꽤 크고 방해받지 않은 호수였고, 적어도 아이가 보기엔 완전히 외딴저보이고 원시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었다.나는 아스팔트에 대해서 맞았다. 물가까지 반 마일정도 이어졌으니까. 그러나 내가 그곳에 나의 아들고 돌아갔을때, 우리는 내가 여름을 보내곤 하던 그런 비슷한 농가 근처에 캠프에 묵었고, 난 이 모두가 예전과 별 다를바 없을거란 생각이 든게, 첫날 아침 침대에 누워서 침실 향을 맡고, 아들이 물가에 보트를 찾으로 조용히 나가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나라는 환영에 빠졌고, 그렇기에, 간단한 전위로서, 나는 나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러한 느낌은 지속되었고,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떠오르곤 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느낌은 아니였지만, 이러한 장소에서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마치 두개의 존재로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단순한 배역을 맡으며, 미끼 박스를 들거나, 포크를 내려놓거나, 어떤것을 말하고, 나는 불현듯 내가 아닌 나의 아버지가 되어 이야기를 하거나 제스처를 취했다. 약간은 오싹한 느낌이었다.우린 첫날아침 낚시를 하러갔다. 나는 미끼 캔 안에 지렁이를 덮고 있는 젖은 이끼를 느꼈고, 잠자리가 물 수면위에서 몇 인치쯤 떨어져서 맴돌면서 내 장대 끝에 살짝 앉는 것을 보았다. 특히나 이 잠자리의 등장이 그 무엇보다도, 아 모든것이 예전 그대로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고, 시간이 단순히 신기루이고, 흐르지 않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우리가 작은 물결들은 그대로 우리가 낚시를 하는 동안 보트 아래쪽을 가볍게 쳤고, 보트도 예전 그대로 녹색이면서, 어떤곳은. 나는 시험삼아 장대 끝을 물 속에 넣어서 잠자리를 떼어놓으려 했는데, 잠자리는 2피트정도 멀어지더니, 멈춰서, 다시 2피트를 돌아와서는 아까보다 약간 위쪽에 앉았다. 이 잠자리의 앉음과, 내 기억 속의 잠자리사이엔 어떠한 시간의 흐름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잠자리를 보고 있는 아들을 보았고, 그의 장대를 잡고 있는건 나의 손이고, 내 눈이 보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어지러웠고, 내가 잡고 있는 것이 어떤 장대인지 헷갈렸다.우리는 배스 두마리를 잡았고, 그들이 고등어인냥 가볍게 세게 답아당기곤, 보트 안쪽으로 끌어내서 어떠한 그물도 없이 민첩히 내려놓으면서 머리 뒤쪽에 충격으로 기절시켰다. 우리가 점심을 먹고 수영을 하러 돌아왔을땐, 호수는 우리가 두고간 그대로 였고, 부두에서 정확히 똑같은 인치만큼 떨어져 있었으며, 바람은 조금뿐이 느껴지지 않았따. 이건 마치 완전히 마법에 걸린 바다같이 느껴졌는데 그것은 이 호수는 그대로 몇 시간쯤 놓고 돌아와도 변해있지 않았고, 지속적이고 믿음직한 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얕은 물이 있는 쪽에는 어둡고 물에 젖은 막대와, 오래되고 부드러운 잔가지들이 깨끗이 이랑진 모래위로 무리지어 바닥에서 물결치고 있었고, 홍합의 움직임도 분명했다. 잔챙이 한무리가 헤엄치고 있었는데, 잔챙이 한마리마다 햇빛을 받아서 아주 분명하고 날카로운 각자의 작은 그림자가 있어서 2마리처럼 보였다. 또 다른 캠핑하는 사람들은 물가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는데, 한명은 비누를 들고 있었고, 물은 아주 엷고 깨끗하고 실체가 없이 느껴졌다. 몇 년 동안, 비누를 들고 서있는 이 남자는 계속 존재했고, 이사람은 또 여기있었다. 그곳엔 시간의 흐름이 없었다.비옥하고 먼지나는 들판을 지나 농가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길은, 우리 운동화 아래로 이어지는 그 길은 2차선 도로였다. 중간 트랙은 사라져서, 고창증 흔적과 마르고 바삭한 비료 흔적뿐이었다. 그곳엔 언제나 선택할 수 있는 트랙이 세개가 있었는데, 이젠 그 선택의 폭이 둘로 줄어든 것이다. 난 순 색이었고, 네트는 (6월에 설치되어서 9월에 철수되는) 건조한 정오동안 축 늘어져있었고, 온 곳이 정오의 뜨거움, 배고픔, 텅빔으로 데워졌다. 디저트로 파이가 블루베리와 애플파이가 나와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웨이트리스들은 예전과 같은 시골 여자아이들이었는데, 역시 전혀 시간의 흐름이 안느껴졌고, 극장에서 막이 내리는 것처럼큼의 환상으로, 웨이트리스들은 아직 15살이었고, 단지 머리를 감았다는 차이가 있을뿐이었고, 그건 그 아이들이 영화를 보러가곤 예쁜 애들이 깨끗한 머리를 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여름, 아, 여름, 삶의 패턴이 지워지지 않는 호수로 잊혀지지 않고, 숲의 기억도 부수어 지지 않으며, 관목과 관향나무로 된 방목지가 영원히 지속되고, 여름은 끝이 없었다. 이것이 배경을 이루었고, 물가의 생명들이 디자인이었고, 오두막은 그들의 순수하고 평온한 디자인으로서 그들의 깃발대와 파란 하늘 구름 사이로 팔락이는 미국국기가 있는 아주 작은 부두를 가지고 있었고, 작은 길들이 나무 뿌리 사이로 이어지면서 캠프와 캠프사이를 이어줬고 헛간으로도 이어졌으며, 살포를 위한 라임 캔이 있었고 기념품 상점 카운터에는 미니어쳐 박달나무 카누와 실제보다 약간 더 아름답게 모든것을 보여주는 옆서가 있었다. 이것은 미국의 가족들이 도시의 열기를 떠나 휴가를 즐기는 장면으로, 그들은 캠프에서 새로온 관광객들이 그냥 보통인가 착한가 생각하거나 일요일 저녁식사때 농가로 찾아간사람들이 치킨이 부족해서 거절을 당한건지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내가 보기에, 내가 이런것들을 계속 기억해내면서, 그런 모든 시간들과, 모든 여름들은 무한히 소중하고 간직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곳엔 즐거움과, 평화, 친절이 있었다. 8월 1일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아주 큰 일이었고, 기차역에 농장 짐마차가 다가온다던가, 처음으로 솔나무 향이 담긴 공기를 맡거나, 미소짓는 농부아저씨를 처음 보거나, 짐들의 엄청난 중요성과 그런 일에 있어서 당신 농부의 엄청난 권한, 그리고 10 마일동안의 운전동안 밑으로덜 흥미로웠는데 그것은 이제는 우리 차로 운전하고 들어가서는 캠프 안 나무 아래 주차를 하고 5분안에 가방을 꺼내면 다 끝나고, 아무런 문제나, 트렁크에 대한 어떠한 멋진 야단법석도 없었기 때문이다.)평화와 친절과 즐거움. 현재 딱 한가지 잘못된 거라면, 그 장소의 소리였는데, 선외 엔진이 달린 보트 바깥쪽에서 엔진소리가 낯설게 들려왔기 떄문이다. 그 음은 삐꺽거렸고, 내 환상을 깨고 다시금 시간을 흐르게 하는 장치였다. 그시절 여름엔 모든 모터들이 배안에 있었고, 가까이에 올때는, 그 소리가 아주 달래는듯, 여름 잠을 불러왔다. 그들은 실린더 하나와 실린더 2개 엔진이었고, 어떤것들은 전기회로개폐식이거나 점프스파크 식이였는데 그들 모두 졸음오는 소리를 내며 호수를 건너곤 했다. 1기통엔진은 고동치고 떨렸으며, 2실린더짜리는 떨고 또 떨었으며 조용한 소리도 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캠퍼들은 다 선외 엔진이 달린 보트를 가지고 있었다. 오전이나, 뜨거운 아침이면, 이 모터들은 까다롭고 짜증나는 소리를 냈으며, 조용한 저녁의 밤에 물위에 저녁놀이 비출때면, 모기처럼 귀에서 윙윙거렸다. 내 아들은 우리가 빌린 보트를 좋아했고, 그의 소망은 이 보트를 혼자 가지고 노는것이었고, 곧 엔진을 초크하는 법을 약간 배우고, 니들밸브 설치하는 법을 익혔다. 그녀석을 보면서 나는 예전 무거운 플라이윌이 달린 원실린더 엔진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고, 영적으로 가까워졌을때 어떻게 복종시킬 수 있었는지 새악했다. 그시절 모토배들은 클러치가 없었고, 모터를 적당한 시간에 끄고 키를 돌리면서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되돌리는 법이 있었고, 그 기술을 배우면, 스위치를 내렸다가 플라이윌이 마지막으로 감길때 딱 다시 올린다음에 그것이 다시 압력에 위해 밀쳐지고 돌아가게 하는 방법이었다. 부두에 강한 바람과 함께 멈추는 것은 일반적인 연안항해 방법으로는 부족했고, 아이가 그의 모터에 완전한 지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면, 아마도 시간을 넘어서서 계속 돌아가게 하고 부두에서 몇다.
    인문/어학| 2005.10.28| 4페이지| 1,000원| 조회(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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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산문강독]75 readins 중 the death of the moth 번역 평가A좋아요
    The Death of the Moth(나방의 죽음)대낮에 날아다니는 나방은 완전히 나방이라 불리기 어렵다. 그들은 커튼 뒤 그림자에서 잠자는 가장 흔한 노란 뒷날개가 언제나 우리에게 일으키는어두운 가을밤과 담쟁이 꽃의 기분좋은 느낌을 일으키지도 못하기때문이다. 그들은 나비처럼 화사하지도 않고 그들 종족처럼 어두침침하지도 않은 잡종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표본은, 그의 가는 건초색 날개와, 그와 같은 색으로 술을 단 그녀석은 인생에 만족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온화하고 인자하지만 여름 추운 숨결을 지닌 9월 중순의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이니 창 건너편 벌판에선 경작이 진행중이었고, 가랫날이 지나간 곳에는 땅이 납작히 눌려있었고 습기로 반짝거렸다. 이러한 활기가 벌판으로부터 몰려왔고 그 떄문에 책 위에만 눈을 완고히 올려놓기란 어려운 일이였다. 까마귀들도 마치 몇천개의 까만 매듭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네트가 허공위에 던져진 것처럼 보일정도로 나무 꼭대기위를 빙빙 날아돌며 그들의 연간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까만 네트는 나무위에 천천히 내려왔고 모든 가지들끝에 까만 매듭이 올려져있는 듯 보였다. 그러다 한순간, 네트는 다시 허공위로 던져져서 마치 허공으로 던져졌다가 천천히 나무 꼭대기에 올려지는 것이 엄청나게 시난는 일인냥 아까보단 좀더 넓게 퍼져서 극도의 아우성과 고함을 해대는 것이었다.까마귀들을 고무시킨 그 같은 에너지가 농부, 말, 그리고 수확이 끝나 벌거숭이가 된 초원지가,나방까지 그의 창유리를 왔다갔다 거리게 만들었다. 안쳐다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그에게 이상한 동정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날 아침 기쁨을 느낄만한 가능성은 너무나 거대하고 다양하게 느껴져서 인생에서 나방만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은 게다가 낮나방이라는 것은, 불운으로 보였고, 그의 그 빈약한 기회를 즐기여는 열정은 애처로와보였다. 그는 그의 구역의 한 코너에서 활기있게 날다가, 1초 후에 또 다른 코너로 날라갔다. 그에게 남아있는 일이란 세번째코너, 네번째 코너로 날아가는 것 외에 무엇이 있을까? , 초원지의 크기나, 하늘의 넓이나, 저 멀리 집들의 연기나, , 이따금 바다위 떠가는 증기선의 로맨틱한 목소리와는 상관없이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단건 아주 가늘지만 깨끗한 세상의 엄청난 에너지 섬유한줄기가 그의 여리고 작은 몸안에 끼어들어간 듯 보였다. 그가 판유리를 건날때 마다 나는 그 활기찬 빛 줄기를 볼 수 있다고 상상했다. 그는 작거나 아무것도 아니였지만 생명체였다.그러나 그가 열린 창문으로, 그리고 나와 다른 인간들의 뇌의 복잡한 복도로 굴러 들어오는 그렇게 작고 심플한 형태의 에너지였으므로 그에게는 애처로우면서도 신기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이가 깨끗한 생명의 쪼그만한 구슬을 가져다가 털과 깃털로 가능한 가볍게 꾸며서 진정한 생명의 본질을 보여주기위해 춤추고 지그재그꼴로 돌아다니게 한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그걸 본 이는 그 이상함을 벗어날 수 없었다. 우리는 생명이란 것이 분투하고 잘못하고 꾸며지고 방해되는 것을 보면서 생명에 대한 모든것을 잊어버리기 마련이고 그것이 가장 위대한 용의주도함과 위엄으로 움직여야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그 생명이 다른 형태로 태어났더라면은 하는 생각은 그의 그러한 활동을 동정심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조금 후, 분명히 그의 춤에 지쳐서, 그는 햇빛이 내리쬐는 창가에 앉았고, 그 이상한 광경이 끝난 것을 보고 난 그에대해 잊고말았다. 그리고 다시 올려보았을때 난 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춤을 계속하려 했으나 뭔가가 뻣뻣하고 이상해서 창가에서 날개짓을 할 수 있을 뿐이었고, 그가 가로나르려 했을때는 실패하였다. 다른 일들에 집중하여, 나는 생각없이, 마치 잠시 멈춘 기계가 왜 망가졌는지는 생각 못한채로 다시 굴러가길 바라는 마름으로 무의식중으로 그가 다시 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쓸모없는 시도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어쩌면 7번째쯤 시도후에 그는 창가에서 미끄러져서 떨어졌고 그의 등이 창문턱에 올려진채로 날개를 펄렀거렸다. 그의 무력한 태도가 날 일깨웠다. 그가 어려움에 쳐했다는 것을, 그가 스스로를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을, 그의 다리가 쓸모없이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꺠달았다. 내가 다시 똑바로 앚을수 있도록 연필을 꺼내면서 난 그 실패와 어색함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연필을 내려놓았다.다리가 다시 움직였다. 나는 그가 싸우고 있는 적을 찾아보겠다는 심정으로 주위를 보았다. 문 밖을 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것일까? 아마 정오쯤 되었고, 초원의 일은 멈췄을것이다. 그 전에 생기는 이제 고요와 침묵으로 대체되었다. 새들은 먹이를 찾아 나섰다. 말들은 똑바로 서있었다. 그렇지만 힘은 아직도 그곳에 있었고, 바깥에 뭉쳐있었으며, 무관심하게, 비개인적으로, 어떤 것에 특정적이지 않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무슨이유에서인지 그 힘은 작은 이 건초색 나방에게는 맞서고 있었다. 무엇을 할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었다. 우린 그저 그 쪼그만 다리들이 다가오는 숙명, 전 도시를, 도시뿐만 아니라 인류를 파괴시킬 수 있는 그 숙명을, 내가 알기엔 그 누구도 이긴적 없는 그 숙명을 싸우고 있는 엄청난 노력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순간의 피로 뒤에 다시 다리가 움직였다. 정말 놀랍게도 그의 마지막 투쟁은 정말 멋지게도 다시 몸을 바로하는게 성공했다. 우리의 동정심은 물론 그가 살기를 바랬다. 그리고 아무도 신경을 쓰거나 알지 못했을때, 거대한 힘에 대항하는, 그 누구도 중요하다고 여기거나 지키길 원하지 않는것을 얻으려는 이 하찮게 작은 나방의 거대한 노력은 나를 감동시켰다. 다시한번 나는 생명을, 깨끗한 구슬을 보았다. 나는 다시 쓸모없는 일인줄 알았지만 연필을 들었다. 그러나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의 헷갈릴수 없는 증조들이 스스로를 드러냈다. 몸은 이완되었다가 순간적으로 딱딱해졌다. 투쟁은 끝났다. 그 하찮게 작은 생명체가 이제는 죽음을 알았다. 난 죽은 나방을 바라보며, 하찮은 경쟁자를 향한 그 엄청난 힘의 몇분의 보류된 그 승리가 날 생각에 빠지게 했다. 몇 분전에 생명이 이상했던 것처럼 이제는 죽음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자신을 똑바로 일으킨 나방은 이제 가장 점잖게 앉아서 불평없이 놓여있었다. '오 그래' 그가 말하는 듯 들렸다. '죽음은 나보다 강해.'
    인문/어학| 2005.10.28| 2페이지| 1,000원| 조회(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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